-
-
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역시 잘 넘어간다. 540쪽이나 된다. 책 판형이나 글자 수를 감안한다고 해도 대단한 속도감으로 읽힌다. 이 부분에선 그의 매력이 한껏 발휘되었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간다면 과연 사회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소년 범죄와 법률과 피해자의 분노를 균형감 있고 섬세하면서 깊이 있는 내면으로 다루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사건은 청소년들이 길을 가던 한 소녀를 납치하여 강간하면서 시작한다. 강간범이 흉측하거나 못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단순히 재미있기 때문이다. 이 3인조 무리가 클로로포름과 마약으로 쉽게 납치하여 강간하고, 이를 녹화하여 협박한다. 피해자는 어쩔 수 없이 신고하지 못하고, 경찰은 알지 못하고, 다른 피해자가 이어지는 악순환은 되풀이된다. 그런 중에 섣부른 마약 사용으로 납치한 소녀를 죽인다. 여기서 이전까지와는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피해자가 경찰에 노출된 것이다.
납치되어 강간당하고 살인된 소녀 에마에겐 아버지가 있다. 그가 나가미네다. 이 아버지는 딸을 사랑하고 죽은 아내를 대신하여 열심히 키우고 있었다. 그의 세계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는 바로 에마다. 근데 어느 날 시체가 되어 자신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세계는 무너지고 삶은 의미를 잃는다. 이때 한 통의 전화가 온다. 범인에 대한 제보다. 범인들의 숙소를 찾아간 아버지는 딸이 강간당하는 비디오를 본다. 그 분노, 절망, 광기, 아픔 등은 미루어 짐작할 뿐 정확히 알 수 없다. 그 순간 범인들 중 한 명이 방으로 들어온다. 아버지는 자신의 손에 식칼을 들고 그 소년을 난도질한다. 그 또한 범죄자가 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의 소년을 죽이기 위해 찾아다닌다.
나가미네가 아버지의 감정과 소년 범죄에 대한 법의 한계와 모순을 지적하는 존재라면 나가미네가 강간범 가이지를 찾기 위해 간 마을 펜션의 주인 와카코는 또 다른 모습을 대변한다.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나가미네를 감싸고 이해하지만 극단적 행동보다 자수를 권하는 인물이다. 도망자가 된 그를 숨겨주고 이해해주면서 그에게 정신적 안정을 주는 존재다. 그녀의 삶 속에서도 어린 아이를 잃은 아픔이 있다. 부모의 부주의한 행동으로 인한 사고다. 이런 일들이 그녀가 나가미네를 이해하고 동정하고 도움을 주는 여성으로 만든 모양이다.
소설은 강간 살인 소년 범죄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내용이다. 시선은 피해자와 가해자 가이지를 쫓거나 두려워하는 인물들의 시선에 고정되어 있다. 가이지의 시선은 없다. 다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글들을 통해 일부 드러날 뿐이다. 이 부분이 균형감이란 점에서 약간 아쉬운 대목이다. 소년 범죄에 대한 법률의 한계에 대해 계속해서 공격을 가하지만 그 반대 의견을 충분히 살려내지 못한 점도 아쉽다. 물론 점점 소년 범죄가 잔인하고 폭력적이면서 그 연령이 낮아지는 문제가 있음을 알고 있다. 미성년이란 이유만으로 법의 보호를 받는다는 느낌을 전해주는데 집중했기에 이런 시각이 우세한 듯하다. 이 부분에선 사회 공론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자극적인 몇 가지 사건으로만 판단하긴 어려운 점도 있다.
황당하고 이상한 대목 두 곳만 이야기하자. 먼저 나가미네가 딸 에바가 강간당하는 비디오를 보는 장면에 대한 묘사다. 번역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작가가 “봉사”라는 문장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정신을 잃고 삶을 포기한 상태에 있는 딸아이의 섹스 장면을 보면서 “봉사”라는 단어를 연상할 수 있을까? 황당한 단어가 아닐 수 없다. 다른 장면은 다른 피해자의 강간 비디오를 신원확인을 위해 아버지에게 보여주는 행동이다. 충분히 출력된 장면이나 사진으로 가능한 확인을 전체 비디오를 보게 하다니 그런 무신경한 형사들이 존재할까 하는 점이다. 만약 먼저 보여주는 형사가 있다면 우린 과연 그를 믿고 의지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소설은 한 사건을 통해 여러 사건을 돌아보고 사회에 문제를 제기한다. 하지만 작가는 “세상이라는 시스템이 만들어낸 ‘괴물’을, 사람의 힘으로 ‘인간’으로 되돌리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482쪽)라고 단정하는데 이는 역자가 후기에서 인구의 1%가 사이코패스라고 통계를 신뢰하는 것만큼 위험하고 잘못된 시각이 아닌가 한다.
형사가 자신들이 정의의 칼날이라고 믿고 있는 것은 정말 옳은 방향을 향하고 있을까 하고 의문을 가지는 장면이 있다. 법과 정의. 이 두 가지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최선이자 최고이겠지만 언제가 같은 길을 가지는 않는다. 그러면 우린 어디에 중심을 두어야 할까? 법일까? 정의일까? 법이 가진 자들의 편으로 돌아선 모습을 자주 보아온 우리에겐 답은 분명할 듯하다. 하지만 과연 정의에 대한 정의와 기준은 어떻게 정할 것인가 하는 또 다른 의문이 생긴다. 이 소설이 이런 많은 의문에 답을 제공하지 못하지만 한 편의 추리소설로 소년 범죄의 피해자 시선과 감정을 다루면서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에 만족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