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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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소설을 읽은 때면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하지만 이 공유한 시간과 공간이 같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지 함께 삶의 일부분을 겪었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에 나오는 두 인물은 비슷한 시기에 다른 경험과 비슷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들이 보여주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읽는 재미를 느끼지만 쉽게 그 실체를 가름하지 못한다.

 

제목에서 말하는 ‘네가’는 누굴까? 그리고 얼마나 외로웠을까? 책을 덮고 난 지금도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에서 나는 해매고 있다. 그 누구의 슬픔도 아니라고 주장하는 한 남자의 기이한 삶에 대한 이야기라는 이 소설은 시작부터 다른 이야기로 출발한다. 그것은 한 장의 누드사진이고, 화자의 사랑과 삶에 대한 이야기다. 그 당시 소위 말하는 운동권에서 동지와 연애를 하고, 좌절을 하고, 방황을 한 그가 한 남자의 기이한 삶을 만나는 대목에 오면 다른 분위기와 이야기로 이어진다.

 

화자와 정민의 이야기는 내가 직접 겪은 일은 아니지만 그 당시 주변에서 가끔 보았던 모습이다. 가끔 이런 모습은 왜곡되어 운동권에 대한 도덕적 타락으로 와전되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스운 일이다. 사실 이들의 이야기에서 재미난 대목은 둘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그 둘이 계속해서 주고받은 자신의 할아버지와 삼촌에 대한 기억과 추억이 의미와 재미를 주고 있다. 태평양 전쟁에서 누드 사진을 들고 돌아온 화자의 할아버지와 어느 날 조용히 자살한 삼촌 이야기가 다음에 나오는 기이한 삶을 산 이길용이자 강시우의 이야기와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길용의 삶은 한 편의 비디오로 요약되어 말해지는데 그렇게 단순히 드러난 삶의 이면에 또 다른 삶이 숨겨져 있다. 그리고 이길용의 과거 속에 우리나라 운동권이 가진 환상과 낭만과 비극이 동시에 담겨있다. 어떻게 보면 이 소설도 90년대 나온 수많은 후일담 소설의 한 형태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그 당시의 분위기와는 다른 전개와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어떻게 보면 전혀 별개의 인물과 이야기를 한 장의 사진으로 이어붙이고 엮어내고 있는 것이다. 음! 이렇게 적고 보니 갑자기 그 사진을 보고 싶어진다. 어떤 사진이기에 이렇게 사람들을 매혹시킨 것일까?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들어가면서 만나게 되는 고문실에서 이길용이 느낀 감정은 공포를 뛰어넘어 왜 그를 변하게 만들었는지 충분히 깨닫게 한다. 실수에 의해서건 고의에 의해서건 고문실에서 죽더라도 누구 하나 그의 죽음을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고, 시체는 한강에 쓰레기처럼 던져 버려질 것이라는 협박은 육체의 한계를 넘어 정신을 무너트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훈련을 받은 인물이라면 조금 다르겠지만 그냥 평범한 일용노동자였음을 생각하고, 뒤에 나올 그의 과거사를 생각하면 당연한 반응이 아닌가 한다.

 

지적하고 싶은 한 장면이 있다. 그것은 화자가 평화통일축전에 비상조로 베를린에 체류한 곳에서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찾아와 도움을 청할 때다. 자신이 잘 몰라 정 교수라는 분에게 묻는데 그 분 말이 “외국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한국말을 할 줄 아는 낯선 이들이야.”(218쪽)라고 하는 대목이다. 물론 그가 고문실을 경험하고 죽음 바로 앞에까지 다녀온 사람이란 사실도 있지만 그 시대에 우리나라의 풍경을 절실히 드러낸 장면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폭력은 체제의 문제라고 지적한 대목에선 공권력과 학생, 민중운동이 강하게 충돌한 그 시대를 가장 간결하게 설명한 문장이라고 느낀다. 지금은 이미 이 문장이 퇴색한지 오래 되었지만.

 

오랜만에 읽은 묵직하고 남성적인 소설이다. 문장을 유려하고 간결하다. 과거의 시간을 현재의 시선으로 처리하면서 후일담 소설들이 가지는 흐리고 어두운 분위기는 거의 없다. 물론 이것은 지나온 시간들이 그런 분위기를 씻고 온 것도 하나의 이유다. 처음으로 김연수의 장편을 읽는 나에게 아직 읽지 않고 있는 다른 장편소설들이 기대된다. 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에게서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과 삶의 파편들을 보고 느낀다. 이것도 역시 그와 비슷한 시간과 공간을 함께 했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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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왕국의 게릴라들 - 삼성은 무엇으로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가
프레시안 엮음, 손문상 그림 / 프레시안북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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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명의 게릴라로 풀어내는 삼성이야기다. 좁게는 삼성이지만 넓게 본다면 대한민국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나라 최고 정점에 있는 조직이 삼성이기 때문에, 김용철 변호사 등에 의해 드러난 비리의 규모가 사상 최대이기 때문에 이런 책이 나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얼마 전 나온 김앤장에 대한 책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권력집단을 보았다면 이 책은 너무 잘 알려졌지만 동시에 숨겨진 이야기가 많은 삼성에 대한 글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삼성과 관련되지 않은 제품을 사용하지 않고 살기는 상당히 힘들다. 전자제품이야 다른 회사 제품을 사용할 수 있지만 제일제당 등의 삼성 일가족 그룹의 제품은 수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삼성그룹이 지원하는 스포츠 단체나 행사는 나처럼 삼성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삼성을 응원하게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이처럼 삼성은 한국에서 그 존재를 제외하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기업이다. 불과 십 수 년 전 지금의 기업CI로 변경한다고 했을 때 왜 그런 곳에 헛돈을 쓰냐고 생각한 나 자신을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 기업임에 틀림없다.

 

주변에 삼성에 일하는 친구나 선후배가 많다. 홍보팀에서 일하는 선배의 이전 이야기는 삼성이 어떻게 기자와 언론을 다루는지 그 실체를 알게 하였고, 삼성의 제일주의에 빠져있던 친구의 이야기는 하나의 성역처럼 말해지곤 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도 요즘 많이 사라진 모양이다. 그 힘들다는 삼성전자에 입사한 신입들이 공무원이나 공사 등을 위한 준비를 한다는 이야기에 점점 바뀌는 세태의 한 면을 보게 된다. 그래도 아직 수많은 취업준비생들이 가장 바라는 기업이 삼성임을 생각하면 대단한 기업이다.

 

김용철,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김상조, 노회찬, 심상정, 이상호, 김성환. 이 일곱 게릴라의 삼성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거나 언론 등을 통해 드러난 이야기들도 많다. 하지만 이렇게 정리되어 나오니 삼성의 실체에 대해 조금은 더 알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정확히는 삼성이 아니라 삼성을 지배하고 지배하려는 이건희 일가와 그 가신들의 실체가 맞을 것이다. 특히 1조 원을 가진 사람에게 1억 원의 가치가 1억 원을 가진 사람의 1만원 가치와 같다는 이야기는 섬뜩하면서도 우리 사회의 현 주소를 깨닫게 한다. 삼성공화국이라고까지 불리는 삼성의 관리와 부패와 불법을 이 한 권의 책 속에서 아주 잘 만나게 된 것이다.

 

삼성은 무엇으로 한국사회를 지배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바로 ‘돈’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사회의 먹이사슬을 말하면 기업은 정치인에게 약하고, 정치인은 언론에 약하고, 언론은 광고주에 약하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이런 먹이사슬을 뛰어넘는 존재가 나타났으니 그것이 바로 삼성이다. 정치와 검찰을 돈으로 다스리고, 자신들에 대해 부정적인 기사를 쓰는 언론사는 광고 중단으로, 노조를 설립하려는 직원은 협박과 회유 등으로 무참히 짓밟는다. 과히 관리의 삼성이란 이름에 부족함이 없다. 그 거대한 제국을 유지하고 존속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법까지 바꾸려는 그들을 보면 무시무시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말하지만 그 권리는 투표소에서 한 표를 행사하는 순간뿐이란 지적은 현재 민주주의가 가지고 있는 맹점을 가장 잘 나타내어준 대목이 아닌가 한다. 또 김성환 위원장이 죽은 사람은 있는데 죽인 사람은 없다고 말하는 대목에선 가해자들은 유유히 자리를 벗어나고 피해자만 가득한 법의 현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과 관련하여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늘 만나는 이야기가 있다. 그렇게 돈을 많이 받고 일한 사람이 그러면 안됀다는 이야기와 그렇게 하지 않는 기업이 있냐는 이야기다. 처음 이야기는 삼성에서 살며시 흘려낸 이야기를 점점 확대하면서 흠집 잡기의 일완으로 상당히 성공한 모양이다. 하지만 이런 작업은 그가 완전한 인격체가 아니라는 점을 드러낼 뿐 삼성이 저지른 잘못에 면죄부를 주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 그런데 계속 본질보다 다른 소문에 더 비중 있게 다루는 현실이 한국 언론과 우리 주변임을 생각하면 안타깝고 무서운 현실이다. 그리고 다른 기업들도 그런 행동을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하니까 그들도 무죄라는 발상으로 아주 위험한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다. 우리사회에서 무너지고 있는 윤리와 도덕관을 한 단면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 한 권의 책으로 삼성으로 대변되는 한국사회의 부조리가 다 나올 수는 없다. 삼성이란 거대 기업의 실체도 모두 알 수 없다. 하지만 입으로 전해지고, 인터넷으로 떠돌던 수많은 이야기들이 하나의 논리로, 사실로, 자료로 표현되면서 그 실체를 조금 더 알 수 있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그 거대조직과 힘겹게 싸우는 사람들이 얼마나 큰 노력과 희생을 하는지도 알게 된다. 너무 거대하고 대단한 기업이기에,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기에 그들이 자정하여 더 발전한 모습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의 애정도 느껴진다. 앞으로 삼성 특검은 어떤 결론을 내놓을까? 아마 짐작한 수준에서 끝나지 않을까 예상하지만 그래도 이 땅에 하나의 희망을 던져줄 것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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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사건사고
시바사키 토모카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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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상의 순간을 포착하여 글로 나타내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니다. 너무 단순하거나 담백하면 재미가 없고, 억지로 사건을 만들어내면 작위적인 느낌이 난다. 그래서 평범한 일상은 늘 이어지지만 그것을 형상화하는 일이 어렵다. 그런 어려운 작업 중에 가끔 성공한 작품을 만나게 되는데 이 소설이 그런 축에 해당한다. 여섯 명의 남녀가 부딪히는 하루 동안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시간을 뒤섞어 놓았다. 현재의 시간 속에 몇 시간 전의 시간으로 돌려놓고, 다시 현재 시간으로 진행한다. 현재의 시간 속에선 불과 몇 시간 전 술자리에서 일어난 소소한 사건사고들을 되돌아보는 일과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는 시간이다. 반면에 과거의 술자리는 새로운 만남 속에서 벌어지는 평범한 술자리 풍경을 담고 있다. 그 평범한 속에 감정과 사소한 문제가 발생하는데 일상적인 술자리에서 늘 있는 모습이라 색다른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기분 좋은 순간들이 이어지고, 감정들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나의 술자리 풍경을 잠시 생각하게 만들고 추억에 빠져들게 한다.

 

이 소설에 누가 누구를 좋아하고, 어떤 사고가 생기고, 충돌이 일어나고 등의 이야기는 큰 의미가 없지 않나 생각한다. 긴 삶의 흐름 속에 한 장면을 포착하여 작가가 그려내었기에 더욱 그런 느낌이 든다. 물론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을 잊자는 말은 아니다. 비록 짧은 순간을 다루고 있지만 상당히 매력적인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이 많지 않은 분량의 소설이 더욱 즐겁게 읽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얼핏 보면 너무 평범한 느낌이 있어 그 재미를 누리지 못하는 순간도 많다.

 

단순한 술자리 모임과 헤어진 후 돌아오는 과정에서 펼쳐지는 에피소드 중심이지만 과거의 추억을 이용하여 작가는 그 넓이를 확장하고 있다. 그 속에 꿈이라는 소재는 기발한 상상력에 놀라게 되고, 꽃 미남 가와치의 동물원 에피소드는 한 연인의 사랑스러운 다툼과 한 남자의 소심한 성격을 잘 드러낸 이야기로 재미를 준다. 운전 때문인지 아니면 전혀 술을 못하는 인물인지 모르는 나카자와는 툭 튀는 인물은 아니지만 은근히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영화에서 츠마부키 사토시가 나카자와 역할을 했다니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오늘의 사건사고라는 제목에서 뭔가 큰 사건이나 사고가 있을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하지만 이벤트 성격의 사건사고를 기대한 사람이라면 아마 이 소설은 재미가 없을 것이다. 사건사고가 너무 일상적이고 평범하기 때문이다. 그 평범한 듯한 일상에, 그 담담함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라면 예상 밖의 재미를 누릴 것이다. 나의 경우는 그 중간에 놓여있다. 약간 밋밋한 재미라라고 해야 하나! 그래도 분명한 것은 이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궁금하다는 것이다. 영화를 보다 보면 몇몇 장면에서 감탄하고 풋! 하는 웃음을 터트리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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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톈, 중국인을 말하다
이중텐 지음, 박경숙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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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중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인을 말한다. 무슨 차이가 있냐고 묻는다면 중국이 다민족 국가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티베트도 중국이란 나라의 자치구이니 중국과 중국인은 다른 점이 많다. 여기서 중국인이란 좁게 본다면 한족이라고 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저자가 이를 염두에 두고 쓰지 않았다 하더라도 읽는 나에겐 머릿속에 한족을 계속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는 9개의 단어로 중국인을 말한다. 그 아홉 가지는 음식, 의복, 체면, 인정, 단위, 가정, 결혼과 연애, 우정, 한담이다. 음식에서 시작한 것이 상당히 재미있다. 우린 흔히 중국 사람은 네발 달린 것 중 탁자 빼고는 모두 먹는다는 표현을 하는데 여기서 다루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아홉 단어가 풀어내는 중국인에 대한 이야기에서 음식은 생존의 바탕이자 가장 중요하기에 가장 앞에 나온 것이다. 이 음식은 단순히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뒤이어 나오는 단어들과 연관성을 맺고 있다. 훠궈에 대한 이야기나 담배를 나누어 피우는 등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과의 관계를, 의복을 통해 서열 관계를, 체면이나 인정이나 단위를 통해 개인의 사회관계를, 가정과 결혼을 말하며 사회의 기본 조직에 대해서, 우정을 말하며 다시 인정이나 용기 등을 말한다.

 

단순히 단어만으로 보면 피상적이지만 표의문자인 한자를 풀어내면서 해설한 것을 읽다보면 예상 외로 우리와 비슷한 면을 많이 발견한다. 이것은 아마도 같은 유교 문화권이고, 조선시대 주자학을 국가의 기본 이념으로 삼으면서 더욱 강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저자가 중국인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했듯이 국외자인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기는 더욱 어렵다. 비록 한자를 같이 사용했다고 하지만 다른 생활환경 등으로 인해 다른 의미로 해석되기도 하니 그 실체를 좀처럼 잡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알고 있던 것을 다시 한 번 되집게 되고,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된다.

 

기본 시각은 비판적이다. 하지만 무조건 비판적이 아니라 잘잘못을 나름대로 잘 분석해서 말하고 있다. 시간의 중요성을 알면서 ‘세월아, 네월아!’ 외치는 만만디 성격이나 내 것은 내 것이고 국가의 것도 내 것이란 생각은 상당히 재미있는 대목이다. 개인적으로 의복에 대한 이야기는 왜 중국에서 ‘예’에 대한 학문이 발전하게 되었는지 알게 되는 유익한 설명이었다. 복장에서 서열이 정해지고, 장례에서 어떤 복장을 몇 년 할 것인가가 정해지는 대목에선 조선시대를 예송논쟁을 생각하게 되었다. 또 그렇게 충효를 중요하게 되었는지 깨닫게 되는 순간 중국에서 나라보다 중요한 것이 가족이란 옛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었다.

 

체면과 인정에 대한 설명에선 중국 영화나 소설에서 중재자로 힘 있는 사람이 끼어서 문제를 해결하는 장면을 보게 되는데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결혼에 대한 글에선 유학자의 이념이 부부간의 정보다 거리를 우선시 했다는 점과 이런 이유 때문에 아이들에게 더 많은 애정을 쏟게 되고 현재는 소황제란 존재까지 생겼을 정도라니 우리의 현실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변해가는 세태에 대해서는 열린 마음을 강조하는데 우리의 급속한 세태를 생각하면 지금 중국도 중요한 변화의 시기에 있음을 알게 된다. 여기에 교육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이 장유유서라는 대목은 지배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이어지면서 현재의 중국인을 만들었는지 새삼 생각하게 만든다.

 

전체적으로 한자를 풀어서 설명하는 내용들이 읽는 즐거움을 준다. 하지만 중국인을 가장 선한 민족이라고 칭하는 대목이나 예전에 중국 변경의 동이나 서융이나 남만이나 북적 등의 오랑캐에 대한 글에서 살짝 눈썹이 찌푸려진다. 선한 민족이라는 이유가 동정심이 약자 편으로 기운다는 예를 들었는데 그들의 역사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살육과 침공이 있었는지 생각하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최근의 티베트 사태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중국이란 단어에서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라 생각하고 그 외 민족이나 국가를 오랑캐라 부르며 멸시하는데 이 의미를 잘 새겨보면 그들이 가진 공포심이 묻어난다.

 

책 속엔 중국인을 이해하기 위한 수많은 사례들이 있다. 얼핏 보면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이야기도 많다. 하지만 하나의 기준으로 본다면 많은 부분 이해할 수 있다. 현재 처세술에 대한 수많은 책이 나오는데 이 책 속에 담긴 중국인의 인간관계나 살아온 여정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처세술에 대해 배우게 된다. 두툼한 이 책을 한 번 읽고 모두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일독으로 생각보다 많은 부분을 알게 된다. 한자에 대해 조금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많은 것을 배우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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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랑정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임경화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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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책을 읽다 몇 년도 작품인지 찾아본다. 알고 보는 경우도 있지만 추측만 가지고 읽다가 책 속에 나오는 분위기나 시대가 조금 다른 경우는 거의 대부분 찾는다. 이 소설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비교적 초기작에 속한다. 1991년도 출간된 듯하다. 요 근래 읽은 책들과 분위기나 문체 등에서 조금 다른 느낌이 있기에 찾았는데 역시 최신작은 아니다. 하지만 간결한 문장이나 문체는 최근 소설에서 보여주는 그런 느낌을 살려내고 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한다. 이 소설은 복수와 미스터리라는 두 줄기를 이용하여 이야기를 이끌고 있다. 복수를 하고자 하는 여인과 복수의 대상을 찾는 추리가 동시에 진행된다. 그 복수는 예쁘지 않은 자신을 사랑했던 한 남자의 추억에 대한 것이고, 미스터리는 과연 그 누가 자신을 죽이려고 했는가 하는 점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 과정을 교묘하게 숨기고 비틀어서 독자의 시선을 가려놓는다. 복수하고자 하는 여인 기리유의 추억과 행동을 따라가다 보면 더욱 이 늪에 빠지게 된다. 의도된 연출이지만 왠지 높은 점수를 주고 싶지는 않다.

 

반년 전 회랑정에 불이 났다. 그 화재 속에서 한 남자가 죽고, 한 여자가 화상을 입었다. 죽은 남자는 사토나카 지로, 그 여자는 기리유 에리코다. 경찰은 지로가 그녀를 죽이려고 하였고, 그녀는 목이 졸린 흔적이 있다고 말한다. 동반자살시도로 추측한다. 다행히 그녀는 살아났다. 하지만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 지로는 죽었다. 그녀는 이 사건에 의문을 가지고 복수를 하고자 마음먹는다. 그리고 자살로 가장하고 자신을 도와줄 혼마 여사를 찾아가지만 그녀는 죽어있었다. 그래서 그녀로 변신하고 복수를 하려고 다시 복원된 회랑정에 온다. 화재의 그 날 회랑정에 있었던 사람들이 모여 회랑정의 주인인 다카아키 씨의 유언장 공개를 기다린다. 거대한 부의 상속자가 누군인지 가려지는 그 순간을.

 

기리유는 복수를 위해 덫을 놓는다. 하지만 예상외의 인물이 그 덫을 밟는다. 덫을 밟은 인물을 찾아가 복수를 하려고 하는데 이미 죽어있다. 누굴까? 다잉 메시지가 남겨져 있지만 애매하다. 살인사건으로 새롭게 경찰들이 개입하게 된다. 그녀의 추리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경찰들이 찾아내는 단서들은 그녀를 위태롭게 한다. 30대가 70대 노파로 변장하면서 생긴 위화감을 놓치지 않는 몇몇의 시선이 이런 분위기를 더욱 부채질한다. 과연 그녀는 자신을 점점 조여 오는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자신이 원하는 복수를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과연 그 범인은 왜 그녀를 죽이려고 했을까? 답은 예상한 범위 안에 있다. 아마 이 소설과 비슷한 소설을 읽었기에 예측이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한정된 공간과 외부의 다른 인물이 없는 제한된 인원 속에서 벌어지는 이 추리소설이 최근에 나온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과는 분명히 다른 모습이다. 오히려 고전 추리소설의 모습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복수와 추리 일변도의 진행과 전개다. 사회 문제라거나 깊은 심리묘사가 담겨 있지 않다. 덕분에 간결한 느낌을 주지만 새로움이나 대단하다는 느낌을 주지는 못한다. 마지막 반전조차도 약간은 예측한 부분이 있기에 충격적으로 다가오지 못한다. 오히려 작가의 교묘한 기술이 정당하다는 느낌보다 그렇구나 하고 호응하는 정도에 머물고 만다. 인물의 특성들도 역시 입체적인 느낌보다 겉돌고 있는 듯하다. 이 소설 이후 다양한 드라마나 소설 등에서 자주 본 듯한 인물들이기에 그런 느낌을 더 강하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큰 기대 없이 읽거나 고전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그가 주는 속도감과 간결함에 재미가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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