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오는 건 사람이 아니라 사랑이야
아오야마 미치코 지음, 이경옥 옮김 / 빚은책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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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일본 서점대상 2위 작품이다. 3년 연속 서점대상 후보다.

이런 기세라면 몇 년 이내에 일본 서점대상을 수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번 소설은 다 읽고 난 뒤 왠지 잘 쓴 서정적 미스터리 느낌이다.

에필로그의 마지막 문장을 읽고 프롤로그의 문장들과 비교하는 재미도 상당히 좋다.

보통 에필로그에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 소설의 에필로그는 그 이상이다.

작가가 가볍게 던져 놓은 듯한 몇 가지 사실들이 마지막에 하나로 이어진다.

작가가 창조한 세계 안에서 이어지는 관계와 사랑은 가슴 한 곳에 조용히 따뜻하게 파고든다.


네 편의 연작 단편과 에필로그로 이야기를 멋지게 마무리한다.

이 연작에서 계속 나오는 한 그림이 있다. 바로 잭 잭슨이 그린 <에스키스>다.

첫 이야기 <금붕어와 물총새>는 이 그림의 모델이 되는 레이와 그녀의 남친 부의 이야기다.

잭 잭슨이 레이를 보고 그녀를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잭 잭슨의 부의 친구다.

교환학생으로 호주에 간 그녀에게 부는 친절한 일본계 호주인이다.

1년 뒤면 일본으로 돌아가야 하는 레이는 부의 기간 한정 연애를 받아들인다.

잭이 그림을 그리는 도중 두 사람의 감정이 교차하는 장면은 진짜 마음이 그대로 보여준다.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났고, 그 시간을 얼마나 사랑하면서 보냈는지 아주 조용히 말한다.


<도쿄 타워와 아트센터>는 액자 공방의 직원 소라치의 이야기다.

도쿄에 새로운 화랑을 열기로 한 화랑 주인이 가지고 온 그림 중에 잭 잭슨의 <에스키스>가 있다.

소라치는 호주 여행을 갔다가 잭 잭슨의 그림을 보고 반한 적이 있다.

흔히 그림에 관심을 두지 액자에 눈길을 주지 않는데 이번 이야기에서 이 둘이 어떤 관계인지 보여준다.

미대 출신이지만 미술 활동 대신 액자 공방을 선택한 소라치.

다른 길을 간 동기의 성장과 자신의 현재를 비교하면서 자신감을 조금 잃은 듯한 그.

하지만 <에스키스>와의 만남은 그가 한발 더 앞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된다.


〈토마토 주스와 버터플라이피〉는 천재 만화가 스나가와를 잠시 가르친 다카시마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 속에도 <에스키스>는 등장한다. 스나가와가 인터뷰하는 카페에 걸려 있다.

카페 주인은 미술품의 가치를 매겨 판매하는 것은 옳지 않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와 별개로 다카시마는 말이 거의 없는 스나가와의 인터뷰에 살짝 자신의 이야기를 끼어 넣는다.

사실과 다른 이야기이지만 동반 인터뷰는 잘 마무리된다.

하지만 스나가와는 그가 거짓말했다는, 왜곡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런 관계 속에서 다카시마의 질투와 부러움과 부끄러움 등이 빠르게 교차한다.

탁월한 재능을 가진 스나가와의 권태와 재능보다 더한 노력을 보여주는 다카시마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사사한다.


〈빨간 귀신과 파란 귀신〉은 해외 출장을 가지 위해 전 남친 집에 두고 온 여권으로 시작한다.

그 여권을 가지러 가기 위해 잘 차려 입고 그곳에 간 그녀.

변함없는 모습으로 그녀를 맞이하는 전 남친. 그런데 고양이 한 마리가 함께 살고 있다.

습관처럼 커피 한 잔을 받고, 얼마 후 자신이 방으로 돌아온다.

다음 출근길에 그녀는 숨을 쉬기 힘들어한다. 나중에 진단결과 공황장애다.

휴가를 받아 집에서 쉬는 그녀에게 전 남친이 고양이를 부탁한다.

약을 먹고 공황장애를 이겨내야 하는 그녀는 다시 옛집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방에서 스나가와 인터뷰가 실린 잡지 사진을 발견한다.

당연히 그 사진 속에는 <에스키스>가 걸려 있다.

하지만 진짜 나의 가슴을 울린 것은 돌아온 남친에게 그녀가 내뱉은 이름 때문이다.

에필로그를 읽으면서 앞에 등장했던 인물들을 다시 찾아본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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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비
청예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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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을 찾아보니 단편 <웬즈데이 유스리치 클럽>에서 작가를 만난 적이 있다.

한방을 꿈꾸는 주인공의 삶을 세밀한 심리 표현으로 보여준다고 적었었다.

그런데 이번 처음 만난 장편에서는 이 심리 표현이 전작의 밀도보다 조금 떨어져 보인다.

주인공 마시안의 감정이 너무 즉흥적이고 감성적이기 때문이다.

대신 읽는 내내 어떤 반전을 보여줄까? 하고 여러 방면으로 추측하게 했다.

마피아 게임을 현실에 적용시켜 실제 죽을 자를 뽑는 투표를 하기 때문이다.

누가 진짜 휴머노이드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투표로 선택한다. 황당한 설정이다.

이때 선택된 사람은 사탕비에 노출되고, 죽는다. 사람이 아닌지 여부도 이때 밝혀진다.


이런 황당한 투표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인류가 핵 전쟁으로 살기 어려워졌고, 방사능 물질이 하늘에서 떨어지기 때문이다.

작가가 설정한 재밌는 부분은 이 사탕비가 가진 놀라운 효능이다.

사탕비에 맞으면 죽지만 이 사탕을 정제하면 놀라운 식량으로 변한다.

정제하는 방식에 따라 색깔이 다른데 그 효능도 모두 다르다. 특히 빨간색은 불로장생의 보약 같다.

이 다양한 색깔의 사탕을 정제인이 매일 사탕비로 정제해서 사람들에게 배급한다.

관리자라는 사람이 있어 청백성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나 상황을 통제한다.

청백성은 사탕비가 내리지 않는 공간에 세운 93층 빌딩이다.

사탕비의 공포와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이곳으로 왔다.


마시안이 첫 투표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많은 표를 받은 사람을 캔디 인간으로 불리는 휴머노이드로 간주해 성밖으로 내보낸다.

성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사탕비를 맞고 죽는다는 의미다.

가장 많은 표를 받은 노인 매트는 밖으로 나가고, 죽고, 캔디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이 투표에는 관리자가 선별한 소수의 사람들만 참여한다. 이 사람들을 어떻게 뽑았을까?

인간 속으로 파고든 휴머노이드를 찾아내기 위해서인데 이 휴머노이드가 사람을 죽이는 것일까?

이 휴머노이드는 사탕비를 맞고 그 사탕들을 가져오기 위해 제작되었다.

필요에 의해 이 휴머노이드를 개량하고 성장시켰다.

문제는 한 휴머노이가 자신을 사람으로 인식하고, 인간이 바라는 바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휴머노이드에게 이성을 부여한 것과 충돌하는 부분이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캔디 인간을 찾기 위한 투표는 계속되고, 마시안의 캔디 인간을 찾는 노력도 계속된다.

마시안은 1년 동안 잠들어 있다가 깨어나자마자 이 투표에 처음 참여했다.

첫 투표는 기권했지만 이후에는 적극적으로 누군가를 지적하면서 분위기를 선도한다.

이 급격한 감정의 변화와 이성적 판단 부재는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이 와중에 이 청백성에 살고 있는 이상한 이웃들이 나오고, 적과 아군이 구분된다.

그녀가 선택하는 데는 특별한 이성적 기준이 보이지 않는다.

누구가가 준 단서에 기반을 두지만 확실한 증거라고 보기는 어렵다.

특정한 누군가를 선택해 표를 몰지 않으면 죽을 수 있다. 그런데 왠지 이 투표의 긴장감이 떨어진다.


이런 소설을 읽을 때면 기존에 읽었던 소설이나 본 영화 등을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93층이란 높은 건물이지만 보이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머릿속으로 수많은 가능성이 오고 간다. SF소설이란 설정 때문에 더 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다.

수상한 사람, 한정된 등장인물, 갇힌 공간, 사탕의 정제 등.

이런 종말적인 분위기에서 생존게임은 긴박감으로 가득해야 하는데 어느 한 곳이 느슨하다.

아마 주인공이 마지막까지 죽지 않는다는 확신을 얻었기 때문일까?

혹시 이 상황이 현실이 아니라 가상현실은 아닐까?

후반부로 가면서 풀어놓는 단서들은 그 가능성을 하나로 압축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가능성이 아니라 캔디 인간을 뽑는 투표와 그 과정에서 나오는 질문이다.

정말 캔디 인간을 잡고 싶다면 엑스레이를 검사하면 간단하니까.

아직 개인적은 느낌은 장편보다 단편이 더 좋다. 앞으로는 어떨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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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의 아이
츠지 히토나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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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유명하고 익숙해서 당연히 읽었다고 생각한 작가 중 한 명이다.

그의 출간 소설 목록을 검색하면서 낯익은 제목들을 보고 또 한 번 놀란다.

집에 분명히 있는 것을 봤고, 읽은 것 같은데 인터넷 서점에 서평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가끔 이런 작가들을 만나면 검색으로 시간을 상당히 쓴다.

힘들게 여러 인터넷 서점을 뒤지면서 겨우 한두 개 발견한다.

점점 게을러지고, 체력도 떨어지고 있는 시점이라 한 번 정리가 필요할 것 같다.


정말, 아주 오랜만에 읽은 츠지 히토나리의 소설이다.

작가 이름과 무호적의 아이를 다룬다고 해서 관심이 갔다.

호적 없이 살아가는 아이가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동남아나 아프리카 같은 오지의 동네라면 이해하겠지만 현대 일본이다.

부모가 호적에 올리지 않았다고 해서 아이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아이가 된다.

이 아이 렌지를 낳은 부모는 무책임하다. 거의 방치하는 수준이다. 폭력을 행사할 때도 있다.

엄마는 호스티스, 아빠는 호스트다. 자신들의 욕망에만 충실하다.

늦은 밤 아이는 홀로 유흥가를 돌아다닌다. 겨우 다섯 살이다.


현재로 시작해서, 과거로 흘러간 후 다시 현재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현재는 2016년 나카스 파출소로 재발령난 히비키의 시선이다.

이곳을 다시 돌아오고 싶지 않았지만 돌아왔다. 그리고 패싸움 현장에서 낯익은 청년을 본다.

바로 생각나지 않지만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한밤중의 아이 렌지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야기는 과거 처음 나카스 파출소에 신입 발령난 후 렌지와 만나게 시점으로 넘어간다.

히비키는 이 아이에게 호적을 주고, 학교에 다니게 하고 싶어 한다.

아동종합상담센터에 가지만 그 결과는 시원하지 않고, 구청이나 법무국으로 넘겨버린다.

구청에 가도 툴툴거리기만 할 뿐이다. 법무국에 갈 시간도 열정도 이 즈음에는 없다.


히비키가 하나의 관찰자이자 관여자라면 렌지는 자신의 삶이다.

밤의 나카스를 돌아다니면서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하루하루를 보낼 뿐이다.

굶주림으로 히비키에게 밥을 얻어먹는 장면이나 마을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장면은 짠하다.

방치와 학대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렌지에게 동네 친구가 생긴다.

강에서 텐트를 치고 낚시를 하면서 살아가는 어른 겐타, 같은 또래의 친구 히사나.

특히 히사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렌지에에 강하게 끌리고, 그의 삶을 옆에서 도와준다.

겐타는 렌지의 아버지가 엄마의 남편에게 폭행당해 문제가 생겼을 때 집을 빌려준다.

이런 친구와 주변 사람의 도움으로 렌지는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간다.


16살 소년이 되었을 때 그가 처음 선택한 직업은 호스트다.

이전 아버지의 직업에 영향을 받았다. 초보에게 이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어르고, 잘 생기고, 묘한 매력은 그를 넘버원으로 만든다.

그의 성공은 엄마 아카네가 다시 돌아오게 한다. 이 귀환은 그에게 독이 된다.

호적에도 올리지 않은 자식의 성공에 자신의 가짜 고생을 덧씌운다.

아들의 돈으로 다른 호스트 클럽으로 달려가 그 돈을 탕진한다. 삶은 불합리한 것으로 가득하다.

렌지가 호스트 클럽을 그만 둔다고 할 때 보여준 행동은 너무나도 낯익은 장면이다.

너무 흔한 거짓말과 위선과 협박과 동정을 바라는 말과 행동으로 가득하다.


소설이 히비키의 시점에서 렌지로 넘어간 후 더 가독성이 좋아진다.

어린 시절 나카스 신여를 탄 경험과 자란 후 신여를 맨 경험은 아주 중요하다.

자신의 삶을 새롭게 보게 하고, 다른 사람과 관계와 연대를 맺게 한다.

렌지의 시점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히비키는 조금씩 조금씩 나온다.

히비키의 약혼녀가 일하는 아동보호소와의 관계도.

이 보호소 아이들은 모두 엄마 등이 나카스의 밤에 일하는 사람들이다.

렌지는 이런 최소한의 보호와 관심도 받지 못하고 자란 것이다.

읽으면서 자신의 나라를 만들고, 관계나 시선을 확장하지 않으려는 그 마음이 아주 조금 이해된다.

단순히 내용만 요약하면 어둡고 무거울 것 같지만 아니다.

렌지 주변 사람들이 보여주는 선의와 관심과 상황이 결코 어둡고 무겁게 끌고 가지 않는다.

왠지 모르게 잠시나마 우리 주변을 돌아보게 한다. 법의 사각지대는 생각보다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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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걸 배드 걸 스토리콜렉터 106
마이클 로보텀 지음, 최필원 옮김 / 북로드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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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골드대거 수상작이다. 마이클 로보텀의 두 번째 수상이다.

첫 번째 수상은 2015년 <라이프 오어 데스>다. 박찬욱 감독이 영화로 제작 중이다.

조 올로클린 시리즈를 뒤잇는 새로운 시리즈다. 후기를 보면 두 권 정도가 더 나와 있다.

이 ‘사이러스 헤이븐’ 시리즈는 상당히 매력적인 캐릭터가 등장한다.

당연히 주인공인 사이러스를 제외하고 하는 말이다.

그녀의 이름은 이비 코맥인데 본명이 아니다. 그녀의 별명은 ‘앤젤 페이스’다.

그녀가 매력적인 것은 과거와 더불어 그녀가 가진 진실을 알아채는 능력이다.

그녀는 잔혹하게 고문당하고 죽은 남자의 집에서 발견되었고, 이후 여러 집을 돌아다녔다.

이비는 이 능력으로 포커 게임 등에서 돈을 벌지만 아직 외형은 어리다.

홀로 살고자 하지만 그녀의 능력 등이 홀로 사는 것을 막는다.


사이러스가 이비를 만나러 간 것은 그녀의 능력 때문이다.

이비의 과거가 철저하게 숨겨져 있다면 사이러스의 과거는 모두에게 알려져 있다.

사이러스 가족은 병이 있는 형이 가족 모두를 살해했고, 유일한 생존자는 사이러스다.

살인자 형은 병원에 갇혀 있다. 이번 이야기에서 왜 부모와 쌍둥이 동생을 죽였는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과거는 그를 평생 괴롭힌다.

가끔은 이 사실이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는데 하나의 도구가 된다.

보호소 안의 다른 아이들이 하는 거짓말을 잘 알아채고, 정리에 강박이 있다.

하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이 그녀를 감싸고 있다.

이 부분은 마지막에 그녀의 과거 일부가 흘러나오면서 살짝, 조금 이유가 나온다.


이비와의 관계가 하나의 축이라면 가장 큰 축은 유망한 피켜 스케이팅 선수 조디 시핸의 실종과 살해다.

미성년자 조디는 실종 신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시체로 발견된다.

그녀가 죽은 원인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지만 허벅지와 머리에 정액이 묻어 있다.

법의학적 증거 자료가 있지만 비교할 대상이 부족하다.

이 의혹을 해결하는데 경찰 한 명이 예리한 관찰로 용의자를 찾아낸다.

그가 조디를 죽인 범인일까? DNA 검사에 의하면 같은 인물이다.

하지만 다른 한곳에 묻은 정액의 주인은 아니다. 공범이 있는 것일까? 경찰은 이렇게 추측한다.

경찰은 그의 유죄를 증명할 더 많은 자료를 수집한다.


법정에서 앤젤 페이스 이비의 실제 나이를 두고 재판이 펼쳐진다.

판사는 이비의 나이를 17세로 규정하고, 재판 1년 뒤 성인이 된다고 판결한다.

다시 보호소로 돌아가야 하지만 사이러스가 법원에 양녀 신청을 했다.

심리학자와 진실을 파악하는 소녀의 약간은 어울리지 않는 동거가 시작된다.

이비는 사이러스를 완전히 믿지 못하고, 떠날 생각을 한다.

사이러스도 처음 아이와 함께 사는 것이라 서툴고 불안하다.

그러다 이비에게 문제가 생기면서 둘은 조금씩 신뢰를 쌓아간다.

그리고 이비는 사이러스가 집에 둔 경찰 자료를 읽고 난 후 함께 움직이는 순간도 생긴다.

콤비의 탄생이지만 보통의 경찰 콤비나 탐정 콤비 같은 모습은 아니다.


이비가 자신 있게 나선 곳에서 마주하는 폭력 등은 지독한 현실의 한 모습이다.

그녀가 경험한 잔혹하고 참혹한 폭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에 비해 조디의 죽음은 간단하지만 그 이면은 지저분하고 복잡한 관계로 이어져 있다.

조디를 해부하고, 학교 캐비닛 등을 조사하면서 나오는 증거품은 단순한 어린 소녀가 아니다.

작가는 조디의 주변 인물을 계속해서 파고들고, 새로운 단서를 하나씩 흘린다.

뭔가 수상한 구석들이 계속 나온다. 조디 친구들이 하는 말도 새로운 단서가 된다.

찜찜한 관계와 깨끗하지 않은 과거 등이 엮이고 꼬인다.

새로운 단서를 발견하는데 이비가 중요한 역할은 한다. 물론 문제가 있다.


시간과 체력이 된다면 한 자리에서 읽을 수 있을 정도의 가독성이다.

두툼한 분량 속에 다음 이야기를 위한 밑밥을 잔뜩 뿌려 놓았다.

대표적인 것이 이비의 과거다. 마지막에 살짝 흘린 것을 보면 예상 외의 상황이 나올 수도 있다.

사이러스는 심리학자라고 하지만 거의 탐정처럼 행동한다.

그가 현장을 둘러보고, 단서를 추론하는 모습은 범죄심리학자라기보다 탐정에 더 가깝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인간 거짓말 탐지기가 있지 않은가.

다음 이야기에서 흘러나올 두 사람의 과거와 이 콤비가 보여줄 활약은 벌써 기대된다.

빨리 시간 내어 아직 읽지 않은 조 올로클린 시리즈도 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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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락의 집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1
이디스 워튼 지음, 전승희 옮김 / 민음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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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1, 402권이다.

미국 도금 시대를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여성의 몰락을 그려낸다.

주인공의 이름은 릴리 바트다. 아주 뛰어난 미모를 가지고 있다.

이 미모가 그녀의 강력한 무기이지만 이 무기를 그녀는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

오히려 이 미모가 다른 사람의 오해와 질투를 불러와 문제를 일으킨다.

물론 문제가 생기기 전 그녀가 순간적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다면 달라졌을 것이다.

그 문제가 되는 인물은 그녀가 사랑했던 셀던이다.

이 둘의 엇갈림과 서로 다른 인식과 오해 등은 끝까지 이어진다.

읽는 내내 왜 좀더 쉽게 자신의 욕망에 솔직해지고, 독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상류층의 삶은 아주 많은 돈을 필요로 한다.

릴리는 그 돈을 감당할 만큼 부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부모가 뒷받침해주지도 못한다.

아버지는 먼저 죽고, 어머니와 세계를 떠돌아다녔을 뿐이다.

어머니가 죽은 후 고모집에 머물면서 상류층의 모임에 나간다.

그녀의 미모에 혹한 남자들이 나오지만 그녀는 도도하고 감성적이다.

작가는 그 시대 상류층의 사치와 향락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사회에 속하려면 갖추어야 할 것이 많다. 당연히 의상 등의 높은 비용도 포함된다.

상류층 파티에 자주 불려가지만 그녀는 부자의 아내가 되어 부를 누리지는 못한다.

현대의 좀더 속물적인 여성이라면 아마 자신의 미모를 이용해 부를 쌓거나 누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태어나서 배운 것들이 그녀의 삶을 더 낮은 곳으로 떨어지는 것을 거부하게 한다.


단숨에 쉽게 읽히는 소설은 아니다.

천천히 조금씩 읽다가 장문의 문장이 없어지면 또 쑥 달려나간다.

작가가 풀어내는 릴리와 셀던의 심리 묘사는 섬세하다.

그래서 어떤 대목에서는 그 정도까지 생각하면서 행동할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릴리가 보여준 호의를 자신의 욕망을 위해 행동하는 남자 때문에 그녀의 삶은 조금씩 망가진다.

그녀의 미모에 겁을 먹은 상류층 여성이 오히려 그녀를 비방한다.

소문은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그녀의 평판을 무너트린다. 사랑의 가능성도.

이런 상황을 한꺼번에 뒤집을 기회가 그녀에게는 몇 번이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기회를 조용히, 단호하게 흘려버린다. 안타깝다.


미모를 수단으로 부자와 결혼한다면 그녀의 삶은 완전히 바뀔 것이다.

그녀에게 빠진 부자들에게 그녀가 손만 제대로 내민다면 인생 역전이 펼쳐졌을 것이다.

아니 자신에 대한 추문을 역전시킬 편지라도 풀어내었다면 어땠을까?

투자의 성공으로 알고 쓴 돈이 빚이란 사실을 알고 괴로워하는 릴리의 모습은 또 어떤가.

이 돈을 소비로 탕진하다 질려 작은 도움의 손길에 보탠 결과가 나중에 나온다.

이 장면을 보고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지만 작가는 현실에 더 비중을 둔다.

상류층 부자의 감각과 현실 노동과의 괴리를 보여주는 장면은 또 어떤가.

소설은 상류층의 삶을 집중적으로 비추어주지만 더 낮은 곳에서 희망차게 살아가는 사람도 보여준다.

묵직하고 섬세한 심리 묘사가 읽는 내내 머릿속을 흔들고, 릴리의 삶을 안타까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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