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사진 - 사진의 오래된 미래
김경훈 지음 / 북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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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한국인 사진기자 최초 퓰리처상 수상자다.

저자의 첫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네 권의 책이 출간되었다.

필력이 상당해 재밌게 읽었고, 다른 책에도 관심이 생겼다.

약간은 별 생각 없이 사진이란 것 때문에 선택했다.

그런데 예상 외의 재미와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평소 아무 생각없이 보던 사진에 대해 좀더 고민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요즘처럼 AI로 합성한 사진이 범람하는 시대를 생각하면 알맞은 선택이었다.

저자가 AI 생성 사람 사진의 손 등을 지적한 부분에서 공감했다.

하지만 최근의 생성물을 보면 이전보다 확연히 발전한 것을 볼 수 있다.

조금은 AI를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읽으면서 잠깐 과거 친구가 찍어주었던 사진이 떠올랐다.

사진 동아리를 다니는 친구가 흑백 사진으로 찍고 직접 현상해준 사진이다.

젊은 날의 내 모습을 볼 수 있는 사진이지만 지금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이 기억이 사진과 추억, 암실에서의 작업 등을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했다.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경험의 공유이자 추억의 단면들이다.

그리고 사진의 탄생과 발전 등의 역사를 보면서 새로운 것을 많이 배웠다

저자의 아들이 필름 카메라의 감성을 이야기할 때는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직업이 아닌 취미 생활에 얼마나 많은 돈과 노력이 필요한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색감도 AI로 작업하면 필름 카메라의 느낌이 나타나지 않을까?


사진기자란 직업과 보도사진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오래 전 글 하나가 떠올랐다.

사진의 편집이 얼마나 사실을 왜곡할 수 있는지 말해주는 글이었다.

사진이 사실만 보여준다고 믿었던 순진했던 시절에 큰 충격이었다.

이때 배운 것이 사진의 프레이밍 밖 진실에 더 관심을 가지게 했다.

신문기사의 인용문이 문맥이 아닌 일부 인용으로 전체를 왜곡하는 것처럼 말이다.

저자도 프레임의 선택, 구도의 구성, 빛의 활용 등이 사진가의 주관이 반영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이 악용되었을 때 심각한 왜곡을 불러올 수 있음을 기억”하라고 한다.

이 악용에는 기자의 것만이 아니라 해석하는 사람에 의해서도 가능하다.

요즘도 사실을 그대로 보지 않고 왜곡 해석하는 무리들이 있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수많은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다.

늘 말하는 준비된 사람에게 기회가 온다는 것은 사진에도 마찬가지다.

그의 학창시절 일화나 최근 작업에 대한 이야기는 이것을 잘 보여준다.

물론 스마트폰 덕분에 우연히 좋은 사진을 얻는 경우도 있지만.

이것은 다시 좋은 카메라가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한 필수 조건이 아님을 알려준다.

하지만 좋은 카메라 덕분에 이전보다 훨씬 수월하게 찍는 사진도 있다.

필름 카메라에서 디카, 미러리스 등을 최신 사양을 사용한 저자의 경험담이 이것을 말한다.

특히 양궁에서 화살이 날아가는 순간 포착 같은 경우는 쉽게 이해된다.

카메라 기술의 발전을 알려주는 대목들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포토샵 이야기를 읽으면서 최근 찍은 증명사진이 생각났다.

AI로 증명사진을 만들어주는 경우도 주변에서 봤다.

실제 내 모습과 다른 사진, 사실의 재현이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암실과 포토샵 이야기는 위의 친구와 최근 사진 후반 작업을 대변하는 변화다.

저자가 속한 회사에서 포토샵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다행이다.

일반적인 사람에게 사진은 추억이자 개인의 기록이다.

전몽각의 <윤미네 집>은 딸의 출생과 결혼 등의 긴 세월을 담고 있다.

몇 장 보는데 추억이 새록새록 솟아났고, 그의 열정과 기록에 놀랐다.

지금과 비교하면 사진 찍기가 얼마나 번거로운 일인데 말이다.

저자는 아직 AI가 이런 부분까지 오지 못한다고 하지만 미래는 알 수 없다.

“나의 기억과 흔적을 세상에 남기는 일입니다.”라는 말에는 공감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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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작은 미술관 - 골목길에서 만나는 예술가들의 삶
김정화 지음 / 쌤앤파커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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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파리로 여행을 갔을 때 미술관 몇 곳을 돌아다녔다.

긴 시간이 아니다 보니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이 주 목적이었다.

광대한 루브르 박물관은 이틀 동안 갔다.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과 작품들 때문에 제대로 감상을 못했다.

베르사유 궁전에서 본 그림이 같이 걸려 있는 것도 보면서 뭐지? 했던 기억도 난다.

우리에게 좀 더 익숙하고 유명한 화가들이 많은 곳은 오르세 미술관이었다.

초등학생들이 선생님의 설명을 듣는 장면을 보고 부러워했다.

역시 겨우 몇 시간으로 이 많은 작품들을 제대로 감상하는 것은 무리였다.

이 두 곳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간 곳이 로댕 미술관이었다.

에펠탑에서 걸어간 것 같은데 오래 되어 기억이 부정확하다.


나의 파리 미술관 여행은 이 세 곳이 전부다.

다른 관광지도 둘러봤지만 파리 여행에서 최소 루브르와 오르세는 뺄 수 없었다.

나중에 퐁피두 센터도 갔는데 줄을 잘못 서는 바람에 시간만 낭비했다.

여행의 추억 중 하나이지만 다른 곳을 가보지 못한 아쉬움은 있다.

이때의 아쉬움을 달래는 동시에 키우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아쉬움을 달래는 것은 다음에 가면 가 볼 곳이 늘어난 것이다.

키우는 것은 그때도 있던 미술관 중 한두 곳 정도는 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감정이다.

이미 지난 아쉬움은 뒤로 하고 펼쳐 있는데 생각보다 깊이와 무게감이 있어 놀랐다.

비전공자들의 단순한 감상기가 아닌 전문가의 지식들이 나열되었기 때문이다.

그곳을 찾아가는 길과 화가의 삶과 작품들이 묵직하게 다루어진다.


저자의 이력이 읽는 내내 조금씩 가슴과 머리에 와 닿았다.

오랜 세월 머문 도시와 전공자의 시선은 다른 블로그의 시선과 많이 달랐다.

읽으면서 아쉬운 점은 책 속 이미지들이 저자의 사진으로만 구성된 것이다.

딱 하나 QR코드로 검색해야 했던 브레송이 찍은 자코메티의 사진 한 장이다.

QR코드를 보고 일부러 찾지 않았다면 몰랐을 사진 한 장이다.

필요에 따라 컴퓨터로 그림을 검색해서 찾아보기도 했는데 책과 밝기에서 차이가 났다.

이 차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너무 다른 느낌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중요하지 않은 부수적인 것이다.

미술관 등의 공간과 건립 과정 및 작품들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덟 곳의 미술관. 가 본 곳은 로댕 미술관 한 곳.

그곳도 긴 시간의 흐름 속에 퇴색되고 잊혀지고 있는 중이다.

사실 여덟 곳 모두 낯설고, 다시 간다면 둘러보고 싶다.

몇 년 전 한국에서 피카소 전시회를 본 적이 있는데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다.

다시 간다면 나의 한계 때문에 제대로 된 감상을 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퇴색된 로댕 미술관과 피카소 전시회의 이미지 몇 개는 지금도 강렬하게 남아 있다.

이 이미지를 생각하면 그때 받은 것 이상의 감상이 몸속에 남은 것 같다.

이것이 내가 여행을 가고, 박물관 등을 둘러보는 이유 중 하나다.

그리고 이런 경험들이 화가와 그림에 대한 관심으로 계속 이어지게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지만 다양한 정보와 묵직한 해설이 재미 그 이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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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작은 몸 어디에 눈물이 그리 흔한지 걷는사람 소설집 24
김종광 지음 / 걷는사람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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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왠지 모르게 손이 잘 나가지 않는 작가들이 있다.

책을 사지 않은 작가의 경우가 아니다.

책도 몇 권 여기저기서 샀는데 펼치지를 않는 작가들 말이다.

언젠가 읽겠다는 생각만 하다 십 년 이상 묵혀둔 작가가 한둘이 아니다.

그런 작가들 중 한 명이었는데 올해 <소설가 소판돈의 낙서견문록>으로 그 벽을 넘었다.

오랜만에 맛본 한국적 해학에 재미를 느껴 이 책을 선택했다.

그 선택은 예상한 재미와 긴 추억 속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리고 아버지 김동창의 삶 속에서 한국 근현대사의 단면을 볼 수 있었다.


작가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삶을 소설로 각색했다.

아버지가 남긴 잡기장과 반장일지 등 유품을 참고해 사실과 허구를 뒤섞는다.

역사적 사실 속에서 한 개인이 느끼고 경험했던 것들을 하나씩 풀어낸다.

다른 시대와 환경에서 살았기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낯익은 것도 적지 않다.

가장 낯선 것 중 하나는 당시 남편들이 아내를 때리고 살았다는 것이다.

김동창의 형님들이나 그 동네 사람들만 그런 것일까? 아니면 작가의 과장일까?

창이 나중에 결혼할 때 아내를 때리지 않겠다고 말한 것도 솔직히 공감할 수 없다.

뭐 내 이전 세대의 부모 중에 이런 폭력인 집이 얼마나 되었는지 잘 모르지만.

창과 조카의 나이가 같은 경우나 조카가 더 많은 경우는 그렇게 낯선 것이 아니다.


동창은 어릴 때 부모가 돌아가셔서 큰형네에서 산다.

동갑 조카와 함께 국민학교를 다니지만 차별을 받는다.

이 차별도 낯설지 않고, 많은 형들이 실제 도움을 주지도 않았다.

다만 창이 중학교를 가려고 할 때 셋째 형이 돈을 내기로 한 것이 전부다.

다른 성격, 다른 경제 형편 등은 그 시대를 감안하면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아직 기계가 농촌으로 들어오기 전이고, 인력이 농사에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시절이었다.

조카와 다른 대우를 받았지만 자신을 버리지 않은 것에 고마움을 느낀 것은 어쩔 수 없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이란 현실은 그런 생각을 하게 한다.

그리고 그 시대의 정치적 구호와 운동은 몰랐던 것도 있어 흥미로웠다.


급격한 경제 성장의 시대. 노력만 하면 먹고 살 수 있던 시절.

하지만 부를 쌓는 것은 자산이 있거나 특별한 능력이 있어야 했다.

대부분의 그 당시 부모들은 하루하루를 걱정하면서 열심히 일했을 뿐이다.

시간이 지난 후 예상하지 못한 곳이 부동산 개발로 부자가 되기도 했지만 말이다.

충청도 시골 마을에서 농사 짓고, 소를 키우던 창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역경리에 남은 사람들이 고향을 지킨 것이 아니라 떠나지 못한 것이라고 할 때 고개를 끄덕인다.

자식을 대학 보내기가 쉽지 않았던 시절에 딸 하나, 아들 둘을 모두 대학에 보냈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하고 쉬운 일일지 모르지만 실제 오빠 한 명을 위해 여동생이 희생된 집도 많았다.

그리고 80년대 대학생들의 데모와 정부의 무자비한 폭력은 부모들의 큰 걱정이었다.

단편적으로 다룬 사건들 속에 잊고 있던 기억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작가는 자신의 소설 속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등장시켜 허구를 지적한다.

대표적인 것이 이문구와 아버지의 동창이란 허구를 말한다.

하지만 이 허구를 이후 능청스럽게 사실처럼 이야기 속에 넣는다.

이야기 곳곳에 창의 행동과 그 속에 담긴 마음을 분리해 표현한다.

제대로 자신의 감정을 말하지 못했던 그 시절 남자의 진심을 말이다.

곳곳에 사투리가 나오지만 낯선데 충청도 사투리라 더 그런 것은 아니다.

“내남없이 하고 들어온 말인데 글자로 써 놓으니까 생판 모르는 말 같았던 것이다.”

이 문장을 읽고 나만 그런 것이 아니란 사실에 무릎을 탁 쳤다.

그리고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과 그 마음과 다른 표현에 웃는다.

어떻게 보면 평범한 한 아버지의 삶이지만 해학적인 문장과 표현들이 그 무게를 덜어냈다.

응축된 삶의 단편들은 낯섦과 반가움과 웃음과 슬픔이 교차한다.

가족의 삶으로 소설을 썼다는 작가의 글을 보고 이전 책들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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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월일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북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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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한때 옌롄커의 소설이 줄지어 출간된 적이 있다.

아마 영화로 만들어진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의 개정판이 나왔을 때였을 것이다.

검색하면 그 이전에도 몇 권의 책이 나왔지만 그렇게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하지만 영화가 작가의 이름을 알렸고, 꾸준히 나온 책들이 그 이름을 기억하게 했다.

많은 작품들은 아니지만 그 중 몇 권은 기회가 되어 사게 되었다.

그 중에서 읽었던 소설이 <인민의 위해 복무하라>였다.

노골적이고 자극적이었지만 묵직한 내용이 기억에 남아 있다.

솔직히 말해 자주 찾아서 읽고 싶다는 생각은 크게 들지 않았다.

최근 무거운 소설에 대해 선호도가 떨어지다 보니 두툼하거나 무거운 책은 피한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책은 이전 중단편 모음집에서 표제작만 뽑아내었다.

당연히 큰 부담은 없었고, 좀 더 집중하면서 셴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태고 이래 최악의 가뭄이 발생한 중국의 어느 시골 마을.

가뭄을 피해 마을 사람들이 서쪽으로 떠날 때 셴 노인은 집으로 돌아온다.

그의 곁에는 마을 사람들이 제물로 바쳤다가 눈이 먼 개 한 마리가 있을 뿐이다.

장님이라고 부르는 눈 먼 개와 셴 노인은 이 척박한 땅에서 옥수수 한 대를 키우려고 한다.

셴 노인은 오줌을 눠도 옥수수가 심어진 곳에 눈다.

당연히 자신들의 분뇨도 아낌없이 옥수수에 준다.

옥수수에 줄 물은 마을의 우물에서 길러 주지만 언제 이 물이 마를지 모른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이 과정에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이야기들은 예상하지 못한 재미와 긴 여운을 남긴다.


옥수수를 키우기 위해서는 노인과 개가 우선 살아야 한다.

생존에 필수적이 두 가지 요소인 물과 음식.

아직 우물의 물은 마르지 않았고, 음식은 기존의 옥수수로 떼운다.

하지만 셴 노인이 가진 옥수수는 얼마 없다. 

다른 사람들이 심은 밭에서 씨앗을 캐고, 다른 집들을 뒤적인다.

밭에서 캘 수 있는 옥수수는 얼마나 되겠는가? 놓친 것도 적지 않다.

이웃이 떠난 집들은 열쇠로 잠겨 있어 처음에는 주저한다.

이 주저는 배고픔에 무너지고, 옥수수를 키우면 배로 갑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집을 뒤져도 숨겨놓은 곡식이 보이지 않는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 쥐들이 파헤쳐 먹는 곡식 더미를 발견한다.


노인과 장님이는 쥐들을 쫓아내고 마을 사람들이 숨겨놓은 곡식을 찾는다.

이때 장님이의 활약으로 쥐들이 파헤친 굴을 쉽게 찾는다.

이 곡식들을 제대로 모와 둔다면 한동안 곡식 걱정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쥐들의 숫자와 반격도 만만찮아서 원하는 것만큼 모으지 못한다.

힘들게 모은 것도 수많은 쥐들이 달려들어 무수시 사라졌다.

이 장면을 보고 머릿속은 왜 쥐를 먹을 생각을 하지 않을까? 였다.

아직 곡식이 있다 보니 쥐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그 생각을 못한 것 같다.

하지만 배고픔은 이 거부감 대신 단백질로 쥐를 생각하고 열심히 잡는다.

이때는 이미 많은 쥐들이 마을을 떠난 뒤라서 충분하지 않다.


개인적으로 가장 강렬하고 압도적인 장면은 늑대와 대치 장면이다.

물을 찾아 떠난 노인이 계속 사이에 자리잡은 샘터를 발견한다.

물을 길어 집으로 오는데 늑대 무리가 그 앞을 지키고 있다.

배고픈 것은 늑대도 마찬가지고, 둘은 서로 대치한 채 빈 틈을 노린다.

작은 방심만으로 늑대의 먹이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노인은 놀라운 체력과 집중력을 보여준다.

이 대결 장면은 두 고수가 서로의 빈틈을 찾으면서 대치하는 것 같다.

삶과 죽음의 길목에서 보여주는 셴 노인의 정신력과 굶주린 늑대들의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다.

그 긴장감과 긴박감은 잠시 숨을 멈추고, 그 상황에 몰입하게 했다.

그렇지만 이 무서운 순간이 지났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옥수수 한 그루를 살리기 위한 노인과 눈 먼 개의 지극정성.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면 살 수 있을 지 모르지만 노인도 장님이도 떠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들의 모든 것을 바쳐 옥수수 한 그루를 살리려고 한다.

물로, 비료도 필요하지만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노인이 먼 거리를 걸어가야 물을 길러 올 수 있지만 못 먹어 체력이 되지 않는다.

먹지 못하니 나오는 것도 없고, 강렬한 태양이 옥수수가 언제 말라 죽을 지 모른다.

이런 순간에 노인의 머릿속을 오가는 현실적인 해결책.

아니면 비가 내려 가뭄을 해소하는 것밖에 없다.

마지막 장면에서 셴 노인의 노력과 정성이 어떤 식으로 나타났는지 보여줄 때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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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전생 : 하
야마다 후타로 지음, 김소연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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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아주 오래 전 일본 애니로 한 번 본 적이 있다.

이번에 읽으면서 유튜브로 검색하니 기억이 뒤섞인 것을 발견했다.

뒤섞인 기억 속 두 애니의 원작자는 모두 야마다 후타로다.

짧은 시간 동안 간단하게 검색하면서 <마계전생>이 만화로 나온 것도 발견했다.

불행히 품절인데 제목은 <주~인법마계전생>으로 나왔다.

거의 1000쪽에 이르는 이 소설이 버거운 분들이라면 만화와 애니로 먼저 만나도 괜찮을 것 같다.

이 소설이 출간된 시대와 문장 등을 생각하면 그쪽이 더 쉽게 접근하고 재밌을 것이다.

하지만 애니를 본 나 같은 사람에게는 원작은 또 다른 재미를 준다.

헷갈린 기억을 바로잡고, 애니가 생략한 부분을 더 즐길 수 있다.


이 책의 도입부는 전쟁 후의 참혹한 현장에서 시작한다.

이 현장에 있는 유명한 검사는 바로 미야모토 무사시다.

하지만 전쟁에서 그는 큰 역할을 하지 못했고, 그의 이름을 빌리려는 쇼세츠가 나온다.

이때 전멸한 줄 알았던 시마바라에서 탈주자가 나온다.

단순한 탈주자라면 무사들이 척살하면 되지만 이상한 일이 생긴다.

죽었다고 알려진 모리 소이겐이 벌거벗은 여성을 칼로 자른다.

그 여인 속에서 한 남자가 나오는데 역시 죽었다고 알려졌던 아마쿠사 시로다.

뒤쫓던 무사들은 죽고, 무사시는 그 광경을 보고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다만 이것을 기회로 생각한 쇼세츠만 그 앞에 엎드릴 뿐이다.


이 괴이한 술법을 닌자술 마계전생이라고 부른다.

몇 가지 조건과 닌자술이 가미되면 죽기 전의 모습으로 건강하게 다시 되살아난다.

놀랍고 무시무시한 술법이지만 무한정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선택된 사람들만 이 마계전생의 닌자술로 다시 되살아나는데 앞부분은 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창술의 대가 호조인 인슌, 미야모토 무사시, 야규 가의 두 노 검사 등이 대상이 된다.

이들은 모두 마계전생으로 새롭게 되살아난 검사들을 직접 눈으로 봤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 자신들에게 내재되어 있던 욕망이 극대화된다.

극대화된 욕망과 마계전생의 술법으로 다시 되살아난 그들은 이전과 다른 모습이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그 마음과 행동은 사람이 아니다.

여인들을 겁살하고, 윤리와 도덕심은 사라졌다.

통제 불능으로 제멋대로 움직일 것 같지만 소이겐의 명령에는 절대 복종한다.


기다리던 주인공 쥬배애가 나오는 것은 이 마계전생이 끝난 다음이다.

아버지와 대결에서 한쪽 눈을 잃고 야규에 칩거 중인 쥬베에.

그가 머무는 곳에서 검술을 수련하는 세 명의 사무라이 여성들이 있다.

모두 뛰어난 무술 실력을 가진 부모 등을 둔 여성들이다.

그런데 마계전생에 관심을 둔 영주가 자신을 되살리는 여성의 몸을 구한다.

이 때문에 쥬베에와 함께 있던 세 명의 여성들이 성으로 불려간다.

무술로 단련된 건강한 몸과 뛰어난 외모는 최고 적합 판정을 받는다.

하지만 성의 이상한 분위기를 느낀 이들의 아버지들이 그녀들을 구한다.

이들의 탈출과 이들을 뒤쫓는 마계전생의 마검사들.

이름 있고 뛰어난 무사들이지만 마계전생의 마검사들은 능력도 높고 숫자도 많다.

세 여성이 달아나기 위한 목적지는 쥬베에가 있는 야규다.


뒤늦게 등장한 쥬베에의 모습을 보면서 김용의 무협소설 중 한 편이 떠올랐다.

쥬베에가 이 세 여성의 복수와 마계전생의 비밀을 밝히는 과정은 고전 사무라이 영화와 닮아 있다.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중국 무협이 아닌 가끔 본 사무라이 영화의 장면들이 생각났다.

물론 일부 장면에서 고전 중국 무술 영화가 연상되기도 했다.

이 소설 설정 중 재밌는 대목 중 하나는 쥬베에도 마계전생의 대상이란 것이다.

이 때문에 마검사들이 모두 달려들어 쥬베에를 베지 않는다.

쥬베에가 닌자 여성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것에는 운도 어느 정도 작용했다.

쫓고 쫓는 과정 속에서 죽어가는 조연들과 그 역할은 무자비하게 다루어진다.

이 무자비한 현실 속에 불안과 욕망이 뒤섞이고, 긴장감이 고조된다.

용어와 지명, 일본의 관제 등이 조금 어렵지만 그냥 생략해도 읽는 데는 지장이 없다.

애니를 다시 본다면 이전보다 훨씬 재밌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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