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비에서 '이집트인 모세'를 시작으로 '프리즘' 총서를 발간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나올 책들도 기대된다.
프리즘 총서의 구성
프리즘 총서는 7개의 프리즘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프리즘은 전체 프리즘의 지향을 구현하면서도 고유한 분야에서 제 각각 독특한 색채를 발산하게 될 것이다.
▲ 신자유주의의 프리즘 세계를 지배하는 유일사상, 신자유주의의 다층적인 면모를 드러내기
이 프리즘에서는 현재 세계를 지배하는 유일한 사상, 유일한 이데올로기로서 신자유주의의 해체를 추구할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유일사상이라는 것은 그것이 단일한 이데올로기와 조직, 실천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의미하지 않으며, 또한 신자유주의가 절대적 이데올로기로서의 지위를 유지한다고 해서 그것이 아무런 내적 모순이나 간극, 공백을 포함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신자유주의의 프리즘”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경제 환원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 신자유주의를 좀더 면밀하고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해체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신자유주의를 비난하고 저주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그것의 거대한 이데올로기적 위력과 정치ㆍ경제ㆍ문화적 뿌리들을 드러내는 것은 세심하면서도 끈기 있는 노력을 필요로 한다. “신자유주의의 프리즘”에서는 이러한 노력을 구체적이고 치밀하게 보여주는 저작들을 계속 출간할 것이다. 예컨대 신자유주의를 단순한 이데올로기나 정책이 아니라 새로운 지배적 합리성의 구성 과정으로 이해하는 크리스티앙 라발ㆍ피에르 다르도의 『새로운 세계 이성』과 세계화 시대에 출현하는 새로운 전쟁의 양상을 분석하는 메리 칼도어의 『새로운 전쟁과 낡은 전쟁』 등이 그 사례들이다.
▲ 탈-근대성의 프리즘 근대 세계를 형성한 여러 갈래의 길을 보여주기, 또 다른 장래의 가능성들을 열어놓기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논쟁의 의미는, 일부의 오해와는 달리, 근대성의 종언에 대한 선언 여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근대성에 대한 새로운 독서 방식들 사이의 갈등에 있다. 만약 근대성의 종언과 탈근대성의 도래와 같은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근대성(들)에 대한 전혀 새로운 인식을 통해서만 가능하게 될 것이다. “탈-근대성의 프리즘”은 이러한 의미에서 근대성(들)을 읽는 새로운 방식, 근대성을 형성하고 근대의 출구로 이끄는 다양한 길들의 가능성들을 보여주고자 한다. 교조적인 근대의 정통으로 복귀하지 않으면서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독단에 맞서서 탈-근대의 새로운 전망들을 개척하는 것, 그것이 탈-근대성의 프리즘의 목표다. 이를 위해 탈-근대성의 프리즘에서는 주로 근대성의 형성 및 전개 과정을 보여주는 독창적인 저작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사상적인 측면에서는 에티엔 발리바르의 『스피노자와 정치』, 피에르 마슈레의 『헤겔 또는 스피노자』가 재출간될 것이며, 사회사적인 측면에서는 사회적 시민권의 형성 및 전개 과정을 치밀하게 분석한 로베르 카스텔의 대작 『사회 문제의 변모』, 제라르 누아리엘의 『국가, 국민, 이민』, 정신분석의 사회 문화사에 관한 탁월한 저작인 엘리 자레츠키의 『영혼의 비밀』등이 우선 소개될 것이다.
▲ 생명권력의 프리즘 생명 그 자체를 좌우하게 된 권력의 지도를 그리기
생명에 대한 인식과 기술, 권력의 발전은 20세기 후반 이후 현대 사회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생명공학의 비약적 발전은 두 가지 대립적인 이데올로기 속에 우리의 사고와 행동의 틀을 가두는 경향이 있다. 그 한쪽 편에 기술 유토피아가 섣부른 열광을 자극한다면, 다른 쪽 편에는 생명의 종말에 관한 묵시록적 경고가 맹목적인 공포를 조장하고 있다. 이러한 이중적인 정념의 굴레에서 벗어나 이미 우리의 삶과 존재 자체의 일부가 된, 생명에 대한 미시적이고 거시적인 권력의 메커니즘과 그것에 내재한 위험과 잠재력을 경험적이면서 개념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생명권력의 프리즘”이 추구하는 바다. 이를 위해 생명권력의 프리즘은 생명 그 자체는 처음부터 자연적이면서 동시에 인공적인 것이었으며, 권력은 지배이면서 자유의 조건이라는 것을 기본 전제로 삼는다. 생명권력의 프리즘을 통해 출간될 저작으로는, 영미권 통치성 학파의 대표자인 니컬러스 로즈의 『생명 그 자체의 정치』와, 인류학적인 현장 조사와 마르크스주의 잉여가치론 및 포스트구조주의의 독창적인 결합을 통해 생명권력 분석의 새 지평을 제시한 카우시크 선더 라한의 『생명자본』 등이 있다.
▲ 정치적인 것의 프리즘 또 다른 사회를 상상하는 정치적 사유의 모험에 참여하기
정치적 사유는 오랫동안 마르크스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의 좁은 틈새에 갇혀 왔으며, 국내에서는 여전히 이 두 가지 대립항들 사이에서 질식된 채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30여 년 동안 외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된 정치이론의 발전을 감안해보면 이것은 크나큰 지체이고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정치적인 것의 프리즘”은 오늘날 외국에서 논의되는 가장 빼어나고 독창적인 정치적 사유의 면모들을 소개함으로써 한국에서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을 일깨우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민주주의, 인민주권, 시민권, 대표, 입헌주의, 인민주의(populism), 인권, 노동, 혁명 같이 매우 익숙해 보이는 개념들을 낯설게 만듦으로써, 곧 해체함으로써, 새로운 정치적 사유의 가능성들을 모색해보기로 하자. 정치적인 것의 프리즘에서는, 현대 민주주의 이론의 대가인 클로드 르포르의 고전, 『정치적인 것에 관한 시론』, 시민권 및 공동체에 관한 독창적인 저작인 헤르만 판 휜스테렌의 『시민권 이론』, 포퓰리즘에 관한 혁신적인 저서인 벤자민 아르디티의 『자유주의 가장자리의 정치』 등이 소개될 예정이다.
▲ 예술의 프리즘 세계와 불화하는 감각의 움직임들을 탐색하기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는 종종 들리는 매혹적인 구호는, 사실은 오늘날 예술은 신(新)귀족들의 재테크 수단과 다를 바 없는 것이 되었고 예술가들은 자본 축적 회로의 말단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포섭되었다는 사실의 역설적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한 철학자의 표현대로 하면 정치는 감각의 질서의 문제이고 감각의 질서가 함축하는 세계와의 불화를 가장 명징하게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예술이라면, 예술은 자본과 권력에 대한 포섭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러한 포섭의 사실 덕분에 처음부터 정치적인 저항의 출발점들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또한 다른 철학자의 표현을 빌릴 경우 예술은 탁월한 시빌리테(civilité)의 도구라면, 예술은 저항의 또 다른 방식을 실천하기 위한 시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의 프리즘”은 그러한 실천들을 모색하기 위한 장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예술의 프리즘에서는 피에르 마슈레의 『문학생산의 이론을 위하여』 새 번역본과 장-뤽 낭시/필립 라쿠-라바르트의 『문학적 절대』, W.J.T. 미첼의 『그림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외에 미술과 영화, 물질 문화 및 미학 일반에 관한 저작들이 출간될 것이다.
▲ 철학적인 것의 프리즘 명사로 정형화된 철학이 아닌, 동사로서의 철학적인 것을 실천하기
오늘날 철학은 다시 새로운 기로에 서 있다. 그것이 어떤 미래(들)을 향해 걸음을 내딛었던 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철학의 형태와 실천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할 새로운 전환기에 우리가 놓여 있다는 점이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 철학사란 철학이 자신의 영역들을 하나하나씩 상실하면서 자신의 정체를 재규정해온 역사라고 할 수도 있는데, 아마도 오늘날 문제가 되는 것은 이제는 아무런 영역도 남지 않은 철학의 활동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곧 철학은 자신보다 더 철학적인 탈-분과학문들의 등장으로 인해 이제 포스트 철학의 시대로의 진입을 강요당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철학의 장래를 기약하는 한 가지 방법은 급진적인 유명론을 추구하는 데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이미 유명무실해진 자신의 영토를 고수하려는 헛된 노력 대신, 활동으로서, 실천으로서의 철학을 추구하는 것이 이미 유령화된 철학의 “경계 위에서의 삶”(sur-vie)의 방식일 것이다. 적어도 그것이 “철학적인 것의 프리즘”의 이론적 내기다. 철학적인 것의 프리즘에서 출간을 준비하고 있는 저작들로는 루이 알튀세르 등이 공동 저술한 『‘자본’을 읽자』 완역본과, 서양 유일신교의 역사를 혁신적으로 재조명하는 얀 아스만의 문제작 『이집트인 모세』, 알라이다 아스만의 『기억의 공간』, 베르나르 스티글레의 『기술과 시간』, 헤이든 화이트의 『형식의 내용. 서사 담론과 역사적 재현』 등이 있다.
▲ 탈식민주의의 프리즘 제국과 식민의 상처를 가로질러 새로운 세계 문명들의 가능성을 꿈꾸기
어떤 시각에서 본다면 지난 반 세기 동안의 세계사는 탈식민주의 운동들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근대성의 역사가 동시에 서구 열강들의 식민지 분할 경쟁과 그에 맞선 반제국주의 투쟁의 역사였다면, 지난 반 세기 동안의 세계사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탈-근대성의 시작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탈식민주의는 아마도 인류 문명의 새로운 전환의 다른 명칭일 것이다. 그러한 전환이 평화와 공존의 장래를 가져다줄지 아니면 또 다른 갈등과 폭력의 장래를 가져다줄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따라서 필연적인 전개 과정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동안 국내에서 탈식민주의는 미국에서 출세한 제3세계 지식인들의 이데올로기로 치부되거나 ‘근대성=식민지 근대성’이라는 등식의 이론적 정당화의 토대 정도로 기능해왔다. “탈식민주의의 프리즘”은 탈식민주의가 본래 지니고 있는 광범위한 이론적ㆍ실천적 질문들을 소개하고, 한반도 및 동아시아에서 그 질문들을 독자적으로 제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 총서에서는 서발턴 연구의 대표작 중 하나인 디페쉬 차크라바르티Dipesh Chakrabarty의 『유럽을 지방화하기』(Provincializing Europe) 및 라틴 아메리카 해방 철학의 대가인 엔리케 두셀의 『정치에 관한 20개의 테제』 이외에 탈식민주의의 역사와 주요 쟁점을 다루는 저작들이 소개될 것이다.
관련 도서
[출처] 그린비 출판사
http://greenbee.co.kr/column/column_view.php?article_id=1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