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끼 by 이밥차 2 - 완벽한 레시피로 다시 만나는 삼시세끼 by 이밥차 2
이밥차 요리연구소.tvN 삼시세끼 제작팀 공동 기획 엮음 / 이밥차(그리고책)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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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끼니는 닥쳐온 끼니를 해결할 수 없지만, 바로 앞에 지나간 끼니의 메뉴는 닥쳐온 끼니의 메뉴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암묵적 규칙이 있다. 이를 어기게 되면 입맛을 잃어 다이어트 효과가 있게 될 지도 모르겠으나, 식사 담당이 비난을 면치 못한다. 하루 세 번 닥치는 끼니의 종류를 결정하는 일은 평생 경력의 9단 주부의 경험으로도 쉽지 않다. 매일 먹는 점심 흔하고 흔한 길바닥의 음식점을 고르기조차 그렇게 힘든데, 집에서만 구성원 제각각 다 다르고, 유독 집에서만 까다로운 입맛을 가진 가족들의 식단을 세 번 결정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삼시세끼를 즐겨본다. 별로 하는 일도 없이 하루 종일 밥 하고 먹고 밥하고 먹고 하는 그 진부해 빠진 흔하디 흔한 일상을 왜 넋놓고 보는 걸까. 출연자들의 입담이 재치있거나 억지 웃음을 강요하는 요란한 리얼 버라이어티 쇼도 아니다.  화려하고 이국적인 요리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호화로운 요리 프로그램도 아니고, 가장 맛있게 만드는 비법을 공개하는 방송도 아닌데, 그저 하루 무사히 세 끼의 끼니를 때우기 위헤 네 식구가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그렇게 매번의 식사 때마다 앞마당에 심어 놓은 고추를 따고 상추를 씻고 물고기를 잡아다가 나무에 불을 지펴 음식을 해야 하는 요리 방식이 현실과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같은 건 마음이고 다른 건 방법이다. 삼시세끼가 훈훈한 건 요리를 매개로 가족 단위의 구성체가 하나가 되는 그 모습, 점점 멀어져가는 온가족이 밥상에 모여 세끼를 해결했던 풍경에 대한 향수이기도 하다. 먹는 것을 준비하는 마음, 준비해준 것들을 함께 먹는 것의 따스함을 공유하는 거다. 식재료에 대한 제약 때문에, 카메라 바깥에서라면 간단히 슈퍼 마켓에서 사서 해결했을 모든 것들을 하나씩 다 만들어서 먹는 모습은 새로운 즐거움을 준다. 공산품에 대한 의심이 점점 커져서 고추장과 김치 뿐만 아니라 마요네즈, 케찹, 튀김가루, 요구르트 같은 부재료들을 집에서 만들어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늘 하지만 막상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해내는 모습은 하나의 챌린지 프로그램으로서도 기능한다. 


연기가 아닌 요리에서는 평범하기만 한 남자들이(물론 차승원은 예외다) 모여 끼니를 궁리하는 프로그램에서 만든 먹거리가 대단한 것일 리가 없다. 바로 그 점, 누구나 언제나 따라할 수 있는 누구든 먹어본 음식, 누구든 만들줄 아는 음식을 만들기에 그들이 제대로 하는지,  저렇게 해도 맛이 나는지 이런 것들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래도 방송이 많아지니까 메뉴도 다채로와졌고, 제작진과 출판사에서는 소개된 메뉴들에 대한 제대로된 레서피를 개발해서 이번이 벌써 두번째인 책을 내었다. 


TV에서 본 것도 있고 안본것도 있는데, 의외로 빵류를 많이 만들었다는 걸 알았다. 빵을 만들려면 여러가지 도구도 많이 필요하고 정확한 계량과 오븐과 장비도 필요한데, 척박한(?) 환경에서 많이도 만들었다. 어려운 빵 말고, 집에 있는 도구로, 집에 있는 시설로 쉽게 만드는 방법들이 눈길을 끌었다. 아주 간편한 음식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날의 끼니로라도 그것을 만들어낼 생각을 해내지 못한다면 음식은 없다. 오늘 저녁은 뭐 해먹지? 고민고민하다가 또다시 김치 찌개, 또다시 생선구이.. 이렇게 쳇바퀴 돌듯 돌지 않고, 아무데나 펼치면 냉장고에 굴러다니는 집에 있는 재료로 뚝딱뚝딱 생각지도 않았지만 누구나 먹어보았던 흔하고 친근한 요리들을 만들 수 있다. 계량된 레서피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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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하는 남자는 무적이다
후쿠모토 요코 지음, 김윤희 옮김 / 오브제(다산북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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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니는 어김없이 돌아왔다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했다먹은 끼니나 먹지 못한 끼니나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끼니를 해결할 수 없었다

                                                                       - 김훈, <칼의 노래> 중


예전부터, 일식이, 이식이, 삼식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어느 날 어떤 남자가 그 말을 어디서 듣고 와서는 불쾌해했다. 자기 입에 들어갈 음식 하나 자기 스스로 만들지 못하는 무능한 퇴직 남편들에 대한 더 심한 농담들도 많다. 평생 가장으로 식구들을 먹여살리느라 밥을 직접 지어먹을 시간이 없었을 뿐이라고 억울해해봤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평소 차려주는 밥상에서 숟가락만 들 줄 아는 남자는, 전업주부 아내가 거울처럼 닦고 가꾸어놓은 부엌의 식기들과 정리해놓은 냉장고에서 뭔가를 꺼내 스스로 요리를 한다는 게 자칫 아내의 영역을 침범한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그런 쓸데 없는 걱정은 하지 않는 게 좋다. 남자의 요리를 막을 권리는 누구도 없다. 


우리집에 사는 어떤 남자는 생각이 남다르다. 남자의 독립과 자유는 요리할 줄 아는 정도에서 나온다고 믿는 것 같다. 남자가 요리를 하면, 여자는 자유롭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냉장고 정리 차원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냉장고에서 오래된 야채가 물이 질질 나오는 상태가 되거나 안먹는 반찬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소파위에 오줌싼 강아지처럼 눈치를 슬금슬금 보며, 냉장고 문을 열고 씩씩거리는 남자를 피해다니게 된다. 반면 밖에 나가 노는 측면에서 보면 여자는 자유롭다. 여자들이 어디 놀러갈 때 가장 부담되는 건 집에 있는 남자들 끼니인 경우가 많다. 요리를 잘하는 남자가 집에 있으면, 남자가 집을 몇일 비우는 동안 오히려 집에 있는 여자가 끼니를 굶게 되더란 말이다. 


우리 집에 사는 남자를 기준으로, 그리고 삼시세끼의 길다란 남자 차승원을 기준으로 만든 책이 아니다. 그들에게 필요한건 이탈리아나 중식이나 하는 완전 전문화된 요리책이다. 반면 이 책은 요리의 필요성도 모르고, 요리를 전혀 할 줄도 모르고, 요리에 관심도 없는 사람을 위해 요리의 필요성에 대해 쓴 책이다. 요리는 즐겁다, 요리는 필요하다, 요리를 할 줄 알면 여러가지 좋은 점이 많아, 이런 하나마나한 소리를 한 권에 걸쳐 써놨는데, 형광펜으로 중간중간에 밑줄까지 쫙쫙 그어져있다. 뒤편에 레서피가 몇 개 있는데 그건 매우 유용하다. 저자에게 서민 교수의 글쓰기 책을 권하고 싶다. 내용이 있는 책을 쓰란 말이다.  어쨌든, 요리가 무서워서 혹은 와이푸가 무서워서 끼니 때마다 사먹는 영식이가 되지 말고 신선한 재료로 스스로 만든 음식으로, 당당한 삼식이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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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7-15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맛나는 거 만들어 주는 사람 싫어할리가 없겠죠..요리는 못하고 음식은 약간 하는 편인데 좋아해주니 신나서 더하게 되더군요 ..ㅎㅎㅎㅎ물론 자뻑도 좀 있어요 ㅋ~

CREBBP 2016-07-15 13:47   좋아요 1 | URL
요리하는 남자는 자뻑 자격이 되지요~ ~
 
내 생애 마지막 그림 - 화가들이 남긴 최후의 걸작으로 읽는 명화 인문학
나카노 교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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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예술가의 마지막 작품은 그 예술가가 걸어온 삶이 도착한 지점을 반영한다. 긴 삶을 살았던 사람과 짧게 살고 간 사람들 사이에도 마지막 작품이 품은 의의는 차이가 크다. 떄로, 추하게 늙을 거였다면 일찍 죽은 것이 예술적 불멸의 원천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어쨌든 예술가의 마지막 작품은 죽기 전의 삶을 말해준다. 죽기 전에 당도한 곳이 잠시 서늘한 그늘일 수도 있고 뜨거운 사막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 전부가 지나왔던 자취와 흔적은 죽기 직전까지의 삶 속에 녹아 있다. 그래서 긴 인생과 그 인생이 내놓은 작품들에 대한 이해 없이는 마지막 작품 역시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생의 마지막 그림>이라는 제목과는 달리, 15세기에서 19세기 사이, 시대를 대표하던 몇몇 화가들을 가려 뽑아, 그들의 인생을 이야기한다. 인생 속에 그림이 있고, 그 그림들 중 하나가 마지막 작품이다. 


나이가 들어 연륜이 쌓이면 더 깊이 있고 완성된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노화가 가져오는 감각의 퇴행이 예술 작품 자체에 반영되어 퇴보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아닐까. 거기엔 어떤 규칙도 없다. 문학 작품만 하더라도 한 때 위대한 작품 하나로 반짝 세상을 놀래키고 세상의 이목으로 완전히 사라지는 경우도 많지 않은가. 미술은 여기서 다루는 류의 근대 이전의 화가들의 경우, 그림 한 점만 그리고 그걸로 평생 먹고 살았던 사람은 없었을 것 같다. 그림 한 점으로 평생을 먹고 살 수는 없으므로, 그리고 아마도, 그림 한 점을 그려서 세상에 이름을 알릴 만한 작가가 되려면 쏟아부어 습득해야 할 기술적 숙련도를 위한 비용을 그림을 그려서 뽑아야 했을 것이다.


작가는, 서문에서 흔히 미술사를 중세, 르네상스., 마니에리스모, 바로크, 인상파, 현대 등의 흐름으로 설명하는 기존 서적과 달리,  화가와 신, 화가와 왕, 화가와 민중 이렇게 세 파트로 나누었으며, 그 이유로 각 장에서 다른 화가를 다루더라도 동시대의 취향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모두 같은 경향의 작품만 열거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이렇게 기존 서적과는 다른 방법을 취함으로써 다양한 그림을 선보이고자 했다는 말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한 작가가 시대를 대표하고, 왕의 그림을 그렸던 역사적인 화가들을 다루고, 그 화가들의 인생에서 중요한 그림들을 선택하다보니, 기존의 다른 미술 관련 서적에서 접했던 그림들이 다수 있다. 설명하는 방식과 주제가 조금씩 다르므로, 이 점에 대해서는 큰 불만이 없다. 


신을 위해 그림이 존재했던 중세시대의 화가로, 보티첼리, 라파엘로, 티치아노, 엘그레코, 루벤스를 다룬다. 왕의 그림을 그렸던 궁정화가로 벨라스케스, 반 다이크, 고야, 다비드, 비제 르브룅을 다룬다. 풍속화가로 브뤼헐, 페르메이르, 호가스, 밀레, 고흐까지다. 지금 세어보니 총 15명의 화가를 만나볼 수 있다. 각 화가들이 살았던 시대의 배경, 화가들의 어린시절, 그리고 미술을 배우게 되는 계기에서부터 한 사람의 미술가로서 인정받기까지의 과정, 혹은 살아서는 끝까지 인정받지 못하고 단 한점의 그림도 팔지 못했던 루저로서의 고단한 삶을 만나보게 된다. 불멸의 작품을 남긴 미술가들의 영광은 유전자가 빚어준 재능이 선물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가 살았던 시대와 환경에도 영향을 받는다.  절대 군주제 하에 살았던 화가들은 왕실화가로서의 삶이 탄탄대로를 의미했기에, 호화로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왕의 입맛에 맞는 그림을 그렸어야 했다. 회화가 왕후 귀족과 성직자, 또는 일부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던 세대였다. 시대가 급물살을 타서, 혁명이 일어나거나 적들의 세상이 오면, 화가도 함께 버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17세기에서 19세기에는 역사화가 최고 등급의 지휘를 부여받았는데, 그 이유는 해당 주제에 대한 지식과 이해 등과 같은 폭넓은 교양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미학과 미술사 혹은 세계사적 지식이 없이도 쉽게 읽을 수 있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각 장마다, 미술사적 지식을 설명하고 있으므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잘 알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유명한 화가들의 인생을 조명하고 있기에, 그림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작가를 먼저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짧은 전기들의 모음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세계사적 지식과 함께 결합되면 더욱 풍부한 지적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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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와 넬 - 대작가 트루먼 커포티와 하퍼 리의 특별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47
G. 네리 지음, 차승은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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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 치고는 대단한 우연이다. 앨리바마의 시골 아주 작은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함께 지낸 두 사람 중 한 명은 퓰리처 상을 받고, 또 한 명은 퓰리처상의 강력 후보가 되는 일은 그 힘들다는 로또 여러번 맞기나, 번개 여러번 맞기보다도 확률적으로 어려울 거 같다. 앵무새 죽이기에 보면 스카웃의 어린 시절을 엉뚱하고 개구진 추억으로 가득차게 한 멋진 친구가 한 명 나오는데, 그 남자가 바로 하퍼 리와 실제로 6~7(만)세의 어린 시절에 친구였던 트루만 카포티다. 아이들이 스스로 스토리를 만들어내 가며 역할 놀이에 빠져 놀고 모험을 즐기는 전반부의 내용은 <앵무새 죽이기>에서도 가장 재미있고 흐뭇하고 정겨운 장면들로 채워져 있는데, 그 어린시절이 하퍼리가 카포티와의 체험을 반영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할 만큼 이 책에서 트루와 넬, 그리고 그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여러 종류의 이웃들은 <앵무새 죽이기>에서 등장하는 여러 캐릭터들과 매우 흡사하다. 마치 다른 버전의 <앵무새죽이기>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이다. 


책을 받기 전에는 이 책이 두 사람의 어린 시절에 대해 추적해서 쓴 전기류라고 생각했었다. 알고 보니 소설이었다. 후기를 읽어보면 작가 G 네리는,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로, 트루만 카포티와 하퍼 리의 어린 시절에 관한 여러 자료에서 영감을 받아서라고 말한다. 이미 출판된 여러 서적과 매체를 통해 '알려진' 이야기를 바탕으로 다시 가공한 허구다. 카포티의 소설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앵무새죽이기>에서 함께 등장하는 두 개구장이 꼬마들의 모습은 귀엽고 재기 발랄하다. 소설 속에서는 그들이 함께 한 짧은 시간들 속에서 함께 겪은 약간의 사건을 가지기에 그들이 후에 어떻게 만나고 관계를 이어져나갔는지는 후기에만 쓰여져 있다. 


완벽한 왕따 한 쌍이었다. 트루먼은 남자애들과 놀기엔 너무 세련되었고, 넬은 여자애들과 놀기엔 너무 말괄량이였다. 하지만 둘이 노는 것은 나름대로 괜찮았다. 


하퍼 리는 넬이라고 불리고 트루먼은 트루라고 불리운다. 둘의 가정에는 각자 서로 다른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넬의 엄마는 오랫동안 병을 앓고 있어 집을 비우고 요양중인 것으로 나오는데 우울증이거나 정신질환으로 추측된다. 형제로 언니들이 있지만 나이차가 너무 많이 나서 모험심이 가득한 넬에게는 아무 도움이 못된다. 이 때, 갑자기 이웃집 아주머니집에서 잠시 머무르게 된 트루는 엄마와 아빠가 이혼의 위기에 처해 있고, 26살의 어린 엄마는 아들 트루를 자신이 증오하는 남편과 동일시하여 냉정하게 군다. 엄마의 모진 불평을 엿들은 트루는 상처받지만 그럼에도 엄마 아빠가 자신을 데려가서 다시 함께 행복하게 살기를 꿈꾸지만 결국 둘은 헤어지고, 자신은 이모 삼촌들의 집에 맡겨진 것이다. 이모들은 아이를 따뜻하게 대하지만 친부모를 향한 그리움은 트루를 위축시킨다. 사내 아이 같은 넬과 함께 다니면서 함께 책을 읽고, 함께 마을의 사건들을 파헤치고, 말썽을 부리고,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며 먼 훗날 작가를 꿈꾸는 아이들은 결국 트루 엄마의 재혼을 이별의 시간을 마주하게 된다.  뉴욕으로 가게 된 사실을 상심하는 트루에게 넬은 대도시로 가게 되어 진짜 세계에 살게 되고, 진짜 이야기를 접할 수 있게 될 거라면서 격려하지만 넬은 "하지만 네가 없자나"라고 말하며 훌쩍댄다.


앵무새죽이기에서도 스카웃이 딜에 대해 느꼈던 거지만, 카포티는 이야기 만들기에 천부적인 재주를 타고났던 것 같다. 작은 사건 하나 하나를 커다랗게 부풀려 어른들까지도 푹 빠질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면, 그것이 거짓인 줄을 빤히 알면서도 귀기울게 만드는 재주를 타고난 인물로 그려진다. 이에 비해 하퍼 리는 그의 그런 재능에 영감과 영향을 받은 듯하다. 그토록 다른 성격의 아이 둘이 그토록 떼어놓을 수 없을만큼 가까운 사이가 된 것은 어릴 때부터 늘 책을 가까이 하고 있었고, 책을 통해 서로 교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넬, 약속 하나 하자. 나 글 쓸 테니까 너도 글 쓴다고 약속해...

넬은 자기한테 트루먼과 같은 재능은 없지만 재미있는 이야기 한두 개쯤은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p227)


작가 노트의 내용을 보면, 둘의 우정은 계속되었고, 먼저 작가로서 성공을 거둔 커포티가 하퍼 리에게 글을 쓸 것을 권했고, 하퍼리가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지만, 하퍼 리의 앵무새죽이기가 풀리처 상을 수상한 후, 자신의 '장황하고 자극적인 작품 세계'에 불만을 품게 되고 하퍼 리의 성공에 대한 질투가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게다가 이후 카포티의 소설 <인 콜드 블러드>는 하퍼 리가 큰 도움을 주었던 모양인데 카포티가 그녀를 '비서 역할'로 격하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 어떤 관계를 지속해왔는지는 모르겠으나, 카포티가 동성애자였으므로 둘이 연인 혹은 부부 사이가 되어 세간의 저렴한 호기심 속에서 조명되지 일은 피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라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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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동서대전 - 이덕무에서 쇼펜하우어까지 최고 문장가들의 핵심 전략과 글쓰기 인문학
한정주 지음 / 김영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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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을 막론하고 선현들은 많은 글을 남겼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도 계속해서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는 이유는 뭘까 ? 생각을 남기기 위해서다. 언어는 생각을 구체화시켜 준다. 문자의 다양한 조합은 사람 사이의 보이지 않는 생각을 연결시켜주는 강력한 기호 수단이다. 복잡한 말의 의미가 전달되려면 복잡하고 정교한 표현이 필요하다. 글이 모아져 책이된 이유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광범위한 공간과 시간을 살었던 사람들이 믿어오는 까닭이다.

책의 말미에 의하면, 쇼펜하우어는 글을 쓰는 사람엘 세 부류로 분류했다. 생각없이 글을 쓰는 사람, 글을 쓰면서 생각하는 사람, 생각 먼저 하고 글을 쓰는 사람. 첫 번째 부류는 일어난 일을 그냥 서술하는 사람들이다. 초등학생 일기쓰듯 어디갔고 뭐했고, 누구 만났고 뭐봤고 그런 거. 기록이다.  두번째 부류는 글을 쓰기 위한 목적으로 사색한다. 
세번쨰 글쓰기는 사색 후 나오는 걸 글로 옮긴다. 세 번째 부류 대부분은 그 사색을 위해 다른 사람의 글을 통한 강력한 자극이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세계와 존재 그 자체에 대한 자신만의 사유에서 나오는 독창적인 생각을 기록하는 것, 그것이 글쓰기의 이유라는 말이다. 이 때 생각은 살아가는 이유, 어떻게 살 것인가,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삶의 지침으로 삼아 매 순간 나침반이 되어줄 자신만의 근본적인 가치관이 될 것이며, 그러한 생각을 옮긴 글이 한 개인의 고유한 세계관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말로 이해하겠다.

멀리는 14세기경부터 가깝게는 20세기에 걸쳐 한중일 세 나라와 서양의, 문인으로서 뛰어난 저술 작품들을 남긴 학자, 예술가들을 공통된 특성을 한 챕터씩 묶어 주제별로 그들의 글쓰기 방법을 분석하고 비평한 책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 비슷한 철학을 펼쳤던 동서양 글쓰기 천재들을 한 공간에 모아 연결해서 비교했다. 총 9개의 장을 통해 글쓰기 비슷한 비법을 공유한 한중일 세 나라와 서양의 문인 네 명의 글쓰기 패턴을 분석하므로 이 책을 통해 총 36명의 학자와 고전 작가들을 만나게 된다.

이 36명의 학자와 작가 모두에게 해당되는 공통점은 낡은 가치 체계의 모방과 답습에 저항하고 독창적인 사고를 통한 새로운 사상과 학문, 그리고 장르를 개척하였고 이미 살았던 선인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독창적 글쓰기룰 했다는 점이다. 쇼펜하우어로 끝을 맺은 이유는 바로 독서와 글쓰기가 목적 자체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그의 주장이 수많은 학자들의 글들을 읽고 분석하여 이끌어나고자 하는 이 책의 궁극적 주제와 통하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는 독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책만 너무 많이 읽으면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주장을 했다고. 그는 인생론 원문에 "독서란 자기 스스로를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대신하여 생각해주게 하는 것이다"라고 했을 정도로 독서와 글쓰기에 따르는 사색을 강조했다.

부끄러운 일이다. 책에서 설명하는 우리나라 고전은 단 한권도 읽은 것이 없다 . 반면 일본과 중국의 작가 중에는 나신과 소세키의 아큐정전과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라는 작품을 통해 살짝 접해본 적이 있다는 사실과 비교해서도 그렇다. 각 챕터에 등장하는 네 명의 인물은 주로 서양인들의 저서만 읽어보거나 많이 들어 친숙했던 거다. 동양 고전에 취미를 못붙이는 이유는 자라면서 알게 모르게 형성된 서양적 학문과 세계관에 익숙해져서, 성리학적 사상이 깊이 배인 동양의 고전들을 읽을만한 내공이 갖추어지지 않은 까닭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하나의 이유라면 또다른 이유는 원전이 현대 일상어로 쉽게 번역된 저서들이 흔치 않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정민 선생의 책이 (비슷비한 게 중복된 내용이 많이 있다는 얘기를 누군가의 리뷰로 읽은 적이 있지만) 인기를 끄는 이유가 독해가 쉬운 말로 되어 있기 때문일 거 같다. 이 책 역시 대중서라 알기 쉽게 번역되어 있고 해설이 풍부하다. 그럼에도 나로서는 알 수 없고, 사전에도 없어서 짐작으로면 넘어 가야 하는 단어들이 보이고, 특유의 고문어체와 만연체 번역체들이 가독성을 떨어뜨리는 부분이 보였다. 어리석은 핑계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 책에서 단편적으로나마 글을 마주하고 나서야 우리 선조들의 위대함을 알게 된 이옥, 심노승, 이용휴, 이가환 등은 물론이고 역사책에도 나오고 자주 고전 연구 서적에 등장하는 이익, 이덕무, 박지원, 박제가, 홍대용 등의 학자들의 매우 유명한 저서들 중 단 한편도 원전으로 읽은 책이 없다. 이들은 모두 유교적 사회의 위계질서와 사대부의 허위와 위선의식 속에서 잃고 있는, 개성 있고 자유로운 글쓰기를 추구한다. 어떤 사람들은 시대를 잘못 타서 문체반정으로 정신적인 압박을 받았으며 스스로의 글에 대해 잘못했다는 반성문까지 써야했는데, 정조대왕님도 참 딱하시지 왜 그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도 모자라서, 단지 문체가 옛것을 모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유롭다는 이유로 똘똘한 학자들에게 반성문 같은 걸 쓰게 하고 어린 성균관 유생까지 귀양을 보내 못살게 굴으셨는지. 

중국에서 늘 영향을 받으며 사대를 시대의 가치관으로 종교처럼 믿고 살던 조상들이 문체마저 그들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았다고 해서 문제삼는 일이 일어났다면, 다른 나라, 중국, 일본 역시 글쓰기에 제약이 없지 않았을 리 없다. 캉디드를 쓴 볼테르는 풍자적 글쓰기가 왕조의 심기를 건드렸던 모양으로 망명과 투옥을 밥먹듯했다. 걸리버여행기 역시 볼테르보다 30년 앞서 영국 태생의 조너던 스위프트에 의해 쓰여졌는데 인류 자체를 풍자한 전무후무한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그 밖에도 니체의 신의 부정, 헬렌 니어링 스코트 니어링의 자족하는 여유로운 삶을 추구한 독자적 선택에 대한 삶의 방식과 그 기록들, 삶의 권태에서 벗어나 다시 글쓰기를 할 수 있게 했던 괴테의 로마 유적 답사, 마르코폴로의 동방 여행과 그 여행담이 나오게되기까지 포로로서 함께 하게 된 대필 작가와의 인연 등 많운 사연들과 그들의 글쓰기 전략들이 그들 개개인의 삶 속에서 조명된다.

동서양의 글쓰기 천재들의 글쓰기 방법이 현재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글쓰기의 기술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흔한 말들과 글들 속에서 목적없이 떠도는 현대인들에게 왜 읽는지 또 왜 쓰는지에 대해 성찰하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 특히 책의 유용성에 있어서 수많은 고전들을 직접 마주하고 그 상세한 설명과 함께 일일히 대면할 기회가 되었다는 점이 무엇보다도 값지고 소중했다. 고전 해설서를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인, 소개하는 옛 글, 사상, 인물들이 다소 칭찬 일색이라는 점이 아쉽고, (내게는 반복되는 구절이 도움이 되었지만 ) 다소 중언부언하는 부분들을 좀 더 간결하게 편집했다면 두께를 줄일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이만큼 많은 고전들을 하나의 책에서 다루고 특히 동서양을 오그며 함께 비교하고 분석함으로써 한눈에 문화적 차이와 동질성을 파악할 수 있게 한점도 매우 높이 평가한다.


*작가 서문에 독자들이 완독하지 못할 것을 걱정하는 뉘앙스의 문장이 있는데 일주일 내내, 그리고 토요일 하루 종일 걸쳐 완독했다. 시간을 많이 못내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인용문에 대한 설명이 인용문과 유사하고 비평이라기보다는 해설 방식이어서 가독성은 좋은 편이다. 688쪽에 판형도 큰 편 치고는 빨리 읽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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