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 -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현실에서 만드는 법
뤼트허르 브레흐만 지음, 안기순 옮김 / 김영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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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Utopia). 현실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의 나라를 뜻하는 말이다. 옛부터 우리 조상들은 유토피아를 꿈꿔왔다.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세상, 굶거나 병든 이가 없이 오래도록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세상을. 그리고 지금의 우리는 조상들이 꿈꿔온 그런 유토피아에 살고 있다.
​하지만 풍요로워진 이 현실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매일 열심히 일을 하며 살아가야만 하고, 지금도 세계곳곳에서는 빈곤에 허덕이며 살아가고 있다. 아이러니한 이 현실 속에서 우리는 과거 우리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유토피아를 꿈꾸려고 한다. 우리의 유토피아는 어디쯤 있을까?

 

 

 

이 책의 저자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역사학, 경제학, 사회 심리학, 문학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우리가 꿈꿀 수 있는, 그리고 지금 바로 실현 가능한 유토피아를 제시해준다. '보편적 기본 소득'을 시작으로 '주 15시간 노동','국경 없는 세계' 등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 문제를 바탕으로 미래 지도를 그려주고 있다. 그가 제시하는 사회 문제들은 결코 멀리서 바라보아야 하는 것들이 아니었다. 작게는 우리 한국 사회에서도 볼 수 있던 문제였고, 넓게는 신문이나 뉴스를 통해 들려오는 한국 밖 세상에서 볼 수 있었다.

​★ 유토피아 1. 보편적 기본 소득

​  나는 4학년이다. 이 말은 곧 내가 취업난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일을 구하기까지의 과정은 벅차다. 그렇다고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괜찮은 삶을 위해선 무조건 일을 해야 한다.
​이 생각을 뛰어 넘는 것이 '보편적 기본 소득'의 취지다. 모든 국민에게 조건없이 일정한 현금을 주는 제도인 보편적 기본 소득은 일하지 않아도 빈곤 없는 삶을 영위하도록 해주는 것이다.

​  얼마 전, 서울시에서 청년수당을 받고 있던 일부 청년들에 대해 자격상실을 이유로 지급을 중단하였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들이 구직활동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취업난에 허덕이는 청년들의 부담을 덜자는 취지로 시작된 청년수당은 '보편적'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기본 소득에 대한 개념을 심어주었던 제도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급된 기본 수당으로 청년들이 조금이나마 안심할 수 있어 좋은 제도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모두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몇몇 사람들은 보편적 기본 소득이 사람들을 게으르게 만드는 원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  그러나 저자는 과거 있었던 여러 실험 정책들을 예시로 들며, 기본 소득이 생긴  빈곤층들이 어떤 변화를 보였는가에 대해 보여준다. 또, 그동안의 복지들이 '어떻게 하면 이들이 일을 하며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서 파생되어 유급 일자리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지고 있었다는 문제를 꼬집어 낸다.
​ 세계는 조금씩 변하고 있다. 스위스, 네덜란드, 캐나다 등에서 보편적 기본 소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어쩌면 빈곤에서 벗어난 삶은 멀지 않았다.

​★ 유토피아 2. 15시간 노동

  최신 시사 이슈에 대해 칼럼을 쓰는 전공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다. 매주 주어진 주제 중 선택하여 자유롭게 칼럼을 작성하면 되는 수업이었다. 어느 날 '주 4일 근무제(유연근무제)'에 대한 주제를 받게 되었다. 조사를 하던 중 이미 일본에서는 주 4일 근무제를 실시하는 기업들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우리나라 역시 주 4일 근무제를 시행하는 기업들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근무 시간이 단축되자 직원들의 업무 성과율이 증가하여 기업 성장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1명이 담당하는 근무 시간이 단축되니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1명이 더 채용되는 현상이 나타나니 일자리 창출 효과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여가'시간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주 15시간 노동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가시간이 생긴다면 근무가 아닌 자신에게 중요한 다른 활동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여가시간은 필요하다는 근거를 시작으로 그는 주 15시간 노동의 필요성에 대해 피력한다. 이 외에도 언급했던 일자리 창출 효과와 출퇴근 시간 감소로 인한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소, 초과근무시 발생할 수 있는 사고 예방에 대한 근거를 들며 주 15시간 노동에 대해 이야기한다.

★ 유토피아 3. 국경 없는 세계

 

 

2년 전, 사진 한 장이 유럽을 눈물로 채웠다. 시리아를 점령한 IS 테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터키로 건너가 그리스로 들어가려던 3살 쿠르디의 이야기로 세계는 '난민' 문제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많은 난민들을 수용하기 위한 과정에서 국민들과의 충돌이 일어나기도 하며, 많은 인원을 수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견해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들에 대해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그는 '국경'이 세계 빈곤 문제를 유발한다고 보았다. 아직까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은 '경제력'이라는 큰 장벽을 두고 가로막혀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그는 '국경 개방 계획'을 이야기하고 있다. 세계 빈곤 문제는 물론, 개발도상국에 대한 원조 문제도 해결할 수 있으며 난민 이주 문제 역시 해결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우리가 원해야 하는 것은 완성된 유토피아가 아니라,
상상과 희망이 살아 있고 꿈틀거리는 세상이다.

 

  이 외에도 그는 다가오는 4차 산업으로 인한 환경의 변화 속에서 인간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며 유토피아를 위한 방법을 제시해준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이 "인간이 스스로 행복하려면 이런저런 즐거움뿐 아니라 희망과 진취적인 기상과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던 점을 인용하여 그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 자체가 유토피아를 향해 전진하는 밑거름이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유토피아는 멀리 있지 않다. 상상하고 실현시킨다면, 유토피아는 한 층 더 가까워 질 것이다.

 

 

 

 

 

  소설, 에세이 등 문학에만 치중되어 있던 나의 독서 습관에 조금의 변화를 일으켜 준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 '유토피아'라는 꿈의 세계를 빗대어 현실 속 문제들을 꼬집어 준 것이 마음에 들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인지하고 있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추상적이고 허황된 것이 아니라는 점도 눈에 띄었다. 여러 통계적 자료들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가 제시한 미래 지도는 결코 붕 뜬 느낌이 아니었다. 
 그의 미래 지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이 사회적 문제가 결코 나에게서 멀리 있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당장 신문을 펼쳐보거나 SNS를 이용하기만 해도 접할 수 있는 문제들이었다. 가까이 있는 사회적 문제, 현실적 실현 방안, 그리고 멀지 않은 유토피아.
 물론 이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는 시간이 다소 걸릴 것이다. 그러나 옛 우리 조상들이 꿈꿨던 유토피아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유토피아도 언젠간 실현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완성된 유토피아가 떡하니 나타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상상하고 조금씩 변화를 꾀낸다면, 충분히 그것만으로도 유토피아가 될 수 있다. 곧 다가올 우리의 유토피아를 기대하고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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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나폴리 4부작 3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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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해서 책장을 넘겼다. 족히 600페이지가 넘는 책장들을 넘기고 나니, 나는 그녀들의 우정에 의심을 품으면서도 궁금해했고 어느덧 그녀들은 중년기에 접어 들었다. 나폴리 4부작 중 제 3권에 해당하는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는 그녀들의 중년기를 그리고 있다. 릴라의 아들 젠나로는 벌써 초등학생이 되었고, 그 사이 레누도 결혼하여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두 친구에게는 또 다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그 혼란스러운 도시, 나폴리에 대해서.

 

 

 

 

 

  소설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나폴리에 남을 사람은 레누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대학까지 나오면서 모든 것을 이루었기에 다시 나폴리에 돌아와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누는 혼란스러운 그 나폴리를 뒤로 한 채, 피에트로와 결혼하여 피렌체로 떠난다. 그리고 남편 스테파노와의 관계가 끝으로 치우치고 있던 릴라는 다시 나폴리로 돌아온다. 
  나폴리를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들의 삶은 운명의 장난일까. 결혼의 굴레에 갇혀버린 레누는 어느 순간 예전의 자신의 모습을 잊어버린다. 그에 비해 릴라는 예전에 비해서 생기 있는 모습을 띈다. 새로운 기술을 익힌 그녀는 당시 여성으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의 임금을 받고 일을 하게 된다.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는 그 이전의 <나의 눈부신 친구>나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보다 당시 시대상의 모습을 더 많이 보여준다. 자본주의와 계급사회, 프롤레타리아 혁명 등 노동자들이 눈을 뜨기 시작한 그 격동의 시대 속에서 함께 눈을 뜬 페미니스트적 시각을 중심으로 보여준다.
  지식인 집단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레누는 그런 움직임에 동참하려다가 이내 그것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전환한다. 그러던 중, 그녀는 자신의 결혼 생활에 대해 생각한다. 그 결혼 생활의 굴레에 갇혀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한, 그 결혼 생활이라는 감옥에서 스스로 나온 릴라에 대해서.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그저 생각만 한다. 누가 보아도 레누의 결혼생활은 평탄하기 그지 없었고 그녀 역시 그 결혼 생활에서 변화하려고 하지 않는다. 물론, 그녀의 사랑 니노를 만나기 전까지.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를 읽으면서 릴라보다 레누에게 질려버리게 되었다. 그 전편인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레누가 릴라에게서 벗어나 그녀 혼자서 성장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에서는 레누를 다시 찾은 릴라와 여전히 릴라의 곁에 머무는 레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릴라에게서 멀어지겠다고 다짐하는 것도 잠시 뿐이다. '이질감과 친숙함' 그 사이에 놓여있는 그녀들의 우정은 마치 용수철처럼 늘어났다 줄어들었다한다. 그들은 서로를 잊지 못해 서로를 찾기도 하며, 반대로 서로에게 상처되는 말들을 내뱉으며 멀어지려고도 한다. 친구 알폰소가 릴라에게 느꼈던 감정인 '이질감과 친숙함'은 어쩌면 레누와 릴라 역시 그렇게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레누에게 가졌던 호감은 그대로 릴라에게 옮겨갔다. 레누에게 애착이 가 있는 동안, 레누에게 모진 말을 내뱉는 릴라가 싫어졌다. 뭐가 잘나서 그렇게 레누를 괴롭히는 것인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레누가 릴라에 의존하고 여전히 그녀와의 삶의 잣대를 릴라로 세우는 태도를 다시 보이는 반면, 릴라는 자신만의 일을 개척하고 있었다.
  엔초를 도와 그가 일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하였고, 더 나아가서 그녀가 다시 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레누가 더이상 소설을 쓰지 않고 살림과 육아, 결혼 생활에 집중하는 동안 릴라는 자신의 삶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당시의 페미니스트적인 행동을 진행한 건 대학까지 나와 지식인 집단에 놓여있던 레누가 아닌 릴라였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레누는 결혼 생활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태도를 보이다가 이내 자신의 잃어버린 삶을 찾겠다는 결심을 한다. 릴라가 자기 중심의 삶을 찾았듯이, 자신 역시 그러고자 한다. 그 첫 걸음으로 그녀는 피에트로와의 이혼을 선택하게 된다. 그녀가 자신의 삶에 대해서 생각하고 선택한 일은 매우 기쁜 일이다.
  그러나 어째서 왜 그녀의 선택에 항상 '니노'가 끼어드는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릴라가 그랬듯이 니노와의 사랑의 도피(?)를 하게 되는데, 이 대목에서 레누에게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는 레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담고 있었기 때문에 레누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행동들을 해왔는지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단 한 가지. '니노'에 대한 그녀의 마음이다.

  나폴리 4부작의 마지막 이야기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는 11월에 출간될 예정이다. 아직은 두 달이나 남아 어떻게 기다리나 걱정이다. 책장을 넘기다보면, 자연스레 애착이 가는 릴라와 레누. 릴라와 레누가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모두 자신의 삶의 중심에 놓여서 스스로 그 삶을 개척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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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허 아이즈
사라 핀보로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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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녀의 감은 두 눈의 뒤에는 무엇이 숨겨져 있던 것일까. 가끔 사람들은 "눈은 그 사람의 마음과도 같아." 라는 말을 할 때가 있다. 혹은, "누군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의 눈을 잘 지켜봐봐." 라고도 하든지. 사람들의 지나가는 말이 어떻든 간에 중요하지 않다.
  지금 중요한 건, 표지 속 그녀의 감은 두 눈 뒤에 숨겨진 그 진실들을 사라 핀보로는 매우 감각적이고 섬세한 심리 묘사로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심리 스릴러'라는 소설의 장르답게, 사라 핀보로는 아슬아슬한 관계에 놓인 세 사람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세 사람의 자세한 심리들을 읽어내다보면, 예상치 못했던 큰 반전을 만나게 된다. 어쩌면, 이런 맛에 심리 스릴러를 읽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한다.

 

 

 

 

 

  <비하인드 허 아이즈>는 루이즈가 어느 날 바에서 만난 젊고 매력적인 남자 데이비드를 상사로 맞이하게 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루이즈는 전 남편 이안의 바람으로 이혼한 뒤 아들 애덤을 홀로 키우고 있었다. 바에서 만나 키스까지 한 데이비드에 대한 생각을 잊어버리기도 전에, 그를 직장 상사로 만나게 되었으니 루이즈의 입장에서는 매우 난처했다.
  더구나 데이비드가 유부남이고, 그에게는 매우 아름다운 아내 아델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루이즈는 그에 대한 관심을 끊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러기엔 그가 너무 매력적이었나보다. 그러던 중, 애덤의 등굣길에서 우연히 만난 아델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녀와 친구가 된다. 루이즈는 아델을 통해 데이비드와의 결혼생활을 조금씩 알게 되고 아델에게 강압적으로 대하는 데이비드에 대한 의심을 품게 된다.
  한편, 아델은 자신과 같은 야경증을 앓고 있는 루이즈에게 신기한 능력을 가르친다. '자각몽'을 꿀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이후 비밀의 '두번째 문'까지. 루이즈는 이 신비한 현상을 아델과 공유하면서 친해지게 된다. 그러나 데이비드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된 루이즈는 '친구'가 된 아델과 '사랑하는' 데이비드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

 

 

 비밀은 셋 중 둘이 죽었을 때에만 지킬 수 있다.
-
벤저민 프랭클린

 

  <비하인드 허 아이즈>의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이 문장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루이즈는 데이비드& 아델 부부와의 관계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그 둘의 결혼 생활의 비밀에 대한 의심을 품게 된다.  아름답고 부잣집 상속녀인 아델이 왜 데이비드의 강압적 행동에 눌려서 살아야 되는가? 그녀는 그런 생활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마저도 데이비드의 사랑이라고 여기는가? 에 대한 루이즈의 의심은 책장을 덮고 나서야 해결된다.

 

 

 

  <비하인드 허 아이즈>는 총 3파트로 구성된다고 볼 수 있다. 데이비드와 아델 부부의 결혼 생활이 시작되기 전, 그들의 과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그때(Then)", 세 사람의 관계가 모두 정리된 후의 이야기인 "그 후(Later)", 그리고 세 사람의 아슬아슬한 관계가 진행되고 있는 "현재(Now)".
  그 중 현재는 아델과 루이즈, 두 사람을 중심으로 번갈아가면서 진행되고 있다. 아델의 입장에서는 아델이 루이즈와 데이비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루이즈의 입장에서는 그녀의 개인적인 갈등과 아델과의 관계가 중점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아쉽게도 데이비드의 입장으로 쓰여진 부분은 없었다. 이러한 전개방식 덕분에, 독자들은 쉽게 아델과 루이즈의 심리를 엿볼 수 있다. 그들의 중심에 놓인 데이비드에 대한 두 여인의 생각이라든지, 데이비드&아델 부부를 바라보는 루이즈의 입장이라든지 말이다.

 

 

 

 

진정한 사랑의 길은 절대로 평탄하지 않다. 나는 누구보다도 그걸 잘 안다. 하지만 그래도,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나는 진정한 사랑을 믿는다. 정말로 믿는다. 가끔 진정한 사랑에는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항상 도움의 손길을 제공하는 데 뛰어났다. (P.435)

 

 

  <비하인드 허 아이즈>의 막바지에 다다르면, 데이비드&아델 부부의 결혼생활에 비밀이 파헤쳐지는데 그동안 루이즈가 데이비드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던 것처럼 독자들도 데이비드라는 사람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작가 사라 핀보로가 선사하는 조금은 소름돋는 반전으로 그들의 아슬아슬한 관계는 끝을 맞이하게 된다. 
  아름답고 매력적이었던, 그래서 어느 누구도 그녀를 쉽게 미워할 수 없었던, 그녀의 추악한 진실은 그녀의 '잘못된 사랑'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루이즈뿐만 아니라 독자들 역시 그제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된다.

 

 

누군가를 사랑하다면, 그 사람을 놓아주어야 한다고?
말도 안되는 헛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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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나폴리 4부작 2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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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 중 제 2권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는 레누(엘레나 그레코)의 친구 릴라가 노트가 8권 들어 있는 금속 상자를 레누에게 전해주면서 시작된다. 낡은 노트 8권에 담긴 릴라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간 있었던 일을 회상하면서 독자들에게 드라마틱한 그들의 젊은 청년기의 이야기를 말해준다. 
  제약 없이 무언가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갖게 되는 청년기에는 그만큼의 두려움이 따르게 된다. 그 두려움은 레누보다 릴라에게 주로 찾아왔는데, 성장하면서 느끼는 내면의 두려움, 사랑에 대한 두려움, 선택과 결정에 대한 두려움 등 다양한 두려움은 릴라에게 선과 악이 섞인 행복으로 다가왔다.


 

 

 

   스테파노와 결혼하고 동네 사람들에게 부유한 '사모님'으로 불려 행복할 것만 같은 결혼 생활은 시작도 하지 못한 채 끝이 나고 말았다. 자신의 뒤에서 이루어졌던 스테파노, 오빠 리노와 솔라라 형제의 은밀한 거래를 알게 된 뒤로, 릴라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삶의 목적을 다 잃어버린 것 같은 상실감에 휩싸인다. 그리고 결혼 전에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좋아하던 남편 스테파노에 대한 역겨운 감정까지도.

 

 

 

 

  소설의 전반부에서는 '릴라의 방황'을 보여준다. 그동안 레누가 보았던 릴라의 모습은 늘 똑부러지고 당당해보였다. 그녀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그 누구도 옳고 그름의 잣대를 댈 수 없도록 행동했던 릴라였다. 그러나 그 불행의 결혼 생활로 릴라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학업을 포기하는 대신, 많은 생각을 하고 구두 디자인에 열성을 쫓고, 자신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 결혼까지 하였지만 한 순간에 그녀가 쌓아온 것들은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어쩌면 릴라 역시 그에 대해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남편 스테파노에게 휩싸여 사라질 것만 같은 자신의 '경계의 해체'에 대한 두려움을.

 

 

 

  한 차례의 임신, 유산을 겪으면서 모든 것을 잃어버리던 릴라는 레누가 좋아하던 니노와의 불장난 같은 사랑으로 생기를 얻게 된다. 오래 전에 그녀가 레누에게 했던 것처럼, 니노의 곁에서 그와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더 나아가 그에게 학문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다. 그와 함께 할 생활들을 생각하며 그녀는 선택과 책임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한 편, 레누는 릴라와의 화해와 다툼을 반복하면서 서서히 그녀에게서 독립하는 모습을 보인다. 어려서부터 친구이자 선생님, 또는 경쟁상대로서 늘 자신을 비교하게 만드는 릴라로부터 멀어지면서 그녀는 새로운 자신을 찾아간다. 릴라에게 일어나는 일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성장하는 길을 찾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때부터 소설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엘레나 그레코' 라는 그녀의 이름이 두드러지게 등장한다는 것이다. 여전히 소설의 대부분은 '릴라'가 중심이고, 그녀에 대한 레누의 생각을 서술하고는 있지만. 릴라가 '라파엘라 카라치 부인'이라는 호칭에서 '체룰로 부인'이라는 호칭까지 다양한 호칭으로 불리는 그 과정 속에서, 레누는 '레누','레누차'라는 이름에서 '엘레나 그레코'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엘레나 그레코'라는 자신의 이름으로 소설을 출간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라는 제목은 아마 이 점에서 찾아 볼 수 있지 않나 싶다. 파란만장한 그들의 청년기에는 릴라와 레누를 지칭하는 다양한 이름들이 등장하고, 다르면서도 조금은 비슷했던 릴라와 레누의 삶은 그들의 이름(호칭)으로 인해 완벽히 다르게 느껴지도록 한다.

 

 

 

  릴라의 낡은 노트 8권은 레누에게 릴라 그 자체였다. 그녀의 낡은 노트 8권을 다 읽은 레누는 그 금속 상자를 다리 밑 깊은 강 속으로 밀어 버린다. 깊은 강 속으로 잠식하는 그녀의 노트를 바라보며 그녀는 마치 릴라가 강 밑으로 가라 앉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 장면은 레누가 릴라로부터 멀어지는 느낌을 자아낸다. 마치 자신의 일부인 것처럼 여겼던 릴라로부터 레누는 알 수 없는 이질감을 느낀다. 그 감정은 레누에게 혼란스러움을 안겨주면서도 릴라로부터 독립하고자하는 선택을 내리도록 도와준다.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는 <나의 눈부신 친구>에 비해 훨씬 두꺼운 책이었지만, 그만큼의 흡입력 때문에 눈깜짝할 새에 다 읽을 수 있던 책이었다. 무엇보다도 한번에 파악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이탈리아 이름이 이제는 익숙해졌기 때문이겠지.
  순식간에 바뀌는 인물 간의 관계에 대해 파악하면서 읽는 것이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650페이지의 소설 속에서 벌써 몇 번의 인물 관계가 바뀌었는지 알 수 없다. '나폴리'에서 그들은 젊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그만큼 '사랑'을 즐기고 있었다. (물론 그들의 사랑이 일반적인 사랑이 아닐 때도 많았지만.) 
  
 엘레나 페란테는 전 작품인 <나의 눈부신 친구>가 절정에서 끝난 것처럼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역시 절정에서 끝냈다. 마치 드라마처럼 그 다음 부분이 궁금하도록. 어쩌면 그녀의 나폴리 4부작의 절정은 아직 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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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럴센스 4 - 남들과는 '아주 조금' 다른 그와 그녀의 로맨스!
겨울 지음 / 북폴리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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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럴센스>는 현재 코미코에서 연재 중인 웹툰이다. 그동안 웹툰은 컴퓨터나 모바일을 이용하여 많이 보았는데, 덕분에 손에는 열심히 스크롤을 내리는 느낌만이 남아있다. 그 느낌과는 반대로 단행본으로 만나는 웹툰은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은은하게 풍겨나오는 종이 냄새가 좋았다. 또, 웹툰의 나름 큰 특징이라면 특징인 '일주일 기다려 보는 그 맛'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흐름없이 쭉 보는 느낌이 예전 만화방에서 만화를 빌려다 읽는 추억을 다시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단행본에만 있는 '미공개' 에피소드!! 아마 이런 매력때문에 단행본으로도 웹툰이 널리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남들과는 아주 조금 다른 그와 그녀의 로맨스'라는 부제목을 보고 '얼마나 다르겠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들의 로맨스는 남다르다. 이미 국내에서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로 알려진 성적 취향 SM에 대해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관에서 본 첫 청불 영화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였는데, 사실 이런 류의 영화인지 모르고 보았다가 조금은 놀랐었는데, 그 때의 느낌이다. (물론 그 정도 급의 장면들을 등장하지 않아 충격은 덜하다.)

 

 

 

 

  1권부터 겨울 작가는 SM이라는 성적 취향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독자들에게 간단하게 용어에 대해 설명해준다. 책을 읽다보면 '돔', '섭' 이라는 전문 용어들이 등장하지만 그나마 괜찮은 점은 읽으면서 그 단어에 대해 대충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적 취향'이라는 은밀한 이야기를 겨울 작가는 굉장히 담담하게 그려낸다. 무언가(?)를 기대하는 사람들에겐 적합하지 않을 정도로, 평범하면서도 자극적이지 않게 그려내기 때문에 이 쪽에 대해 알 수 없는 두려움(?)을 갖는 사람들도 편하게 넘어가며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남자 주인공이자 남과는 '아주 조금' 다른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는 정지후. 그는 '섭'으로써, 어렸을 적 트라우마로 남에게 혼나거나 지배받는 느낌을 받는 것을 좋아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은밀한 성적 취향을 숨기면 그의 모습은 흠 잡을 데 없이 완벽하다. 외모면 외모, 성격이면 성격, 그리고 능력이면 능력까지. 어느 하나 빠질 데가 없다. 그러나 알면 알수록 그는 그저 매우 큰 강아지 같다.

 

   지후와 이름이 비슷한 여자 주인공 정지우. 비슷한 이름 때문에 지후의 은밀한 택배가 지우에게 전달되면서, 유일하게 지후의 성적 취향을 알게 되는 지우이다. 더구나, 지후가 대놓고 '나의 주인님이 되어주세요!!!' 라고 외치는 바람에, 그를 좋아하고 있었던 그녀는 조금 갈등한다.

 

 

 
  대부분 이런 로맨스 웹툰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남자주인공에게 빠져들기 마련이지만 이 웹툰은 무언가 다르다. 제대로 '걸크러쉬'를 보여주는 지우의 모습에 "오빠, 날 가져요!!!" 대신에 "언니, 날 가져요!!!"를 외치게 되는 웹툰이랄까. 
  냉정하고 차갑게 선을 긋는, 똑부러진 모습에 지우의 매력에 지후가 빠졌다지만 또 다른 그녀의 매력은 마음 속에 은밀하게 숨어 있는 소녀같은 모습이다. 물론, 그녀의 이렇게 발그레한 모습은 남에게 전혀 티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지후와 지우의 관계는 사실 돔과 섭,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시작하게 된다. 그저 직장동료였던 그들이 친구도, 연인도 아닌 '아주 조금' 다른 관계로 시작하지만, 이런 조금은 이상한 관계 속에서 서로에 대한 감정이 싹트게 된다. 물론, 지우는 지후의 성적 취향을 알기 이전부터 지후를 좋아하고는 있었지만 그녀는 사실 이 아슬아슬한 관계를 가지면서 그에 대한 마음을 접어야할지 갈등한다.

 

 

 


  서로 너무 달라서 더 끌리는 두 사람의 아슬아슬한 취향 존중 로맨틱 코메디는 계속해서 진행될 예정이다. 앞으로 그들의 은밀한 관계는 어디까지 진행될지 기대된다.

 

 

   <모럴센스>가 영화화가 확정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전부터 웹툰을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로 사용하여 2차 콘텐츠를 제작한 경우가 많았는데, 더 과장되거나 또는 그 캐릭터의 특징을 살리지 못해 망한 케이스들을 여럿 보았다. 부디 이 작품의 지후는 지후대로, 지우는 지우대로 살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 이미지: <모럴센스 4>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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