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선량한 보통 사람의 무의식에 잠재한 '차별'의 넓고 깊음을 길어올렸던 저자 김지혜가 이번에 '가족'의 공고한 '정상성'을 질문한다. 아직 출간 전이어서 『OO각본』이라는 표제가 붙은 샘플북을 출판사로부터 받아 보았다. 제목에 대한 궁금증은 프롤로그 '가족이라는 각본'에서 바로 풀렸다. 전작에서 누구에게나 해당되(지만 본인은 모를 수 있)는 편견의 실체를 다뤘다면 이번에는 국가 소멸을 운운케 하는 저출생 문제의 근본 원인인 가족을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당신의 OO은 '정상'입니까?

차별 없이 평등한 OO을 꿈꾸는 모두에게


가족 제도에 대해 저자의 촉발한 한 문장이 있다. "며느리가 남자라니 웬 말이냐!" 차별금지법이 거론될 때마다 등장하는 외침인 모양이다. 이 "개탄의 구호"를 외치는 쪽은 차별금지법이 동성결혼을 인정하면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문란해지며 결과적으로 출산율이 떨어져서 나라가 망한다는 논리를 편다. 주장의 불편함은 둘째치고 여러 모순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목소리가 큰 힘을 얻고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여전히 요원한 일로 남아있고.



김지혜 저자는 "가족 안에서 우리의 관계와 역할은 왜 성별로 규정되며, 애초에 이 역할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를 파고든다. 도덕, 윤리, 전통이라고 믿어지는 정상 가족을 상정한 '각본'에 빨간펜을 들이댄다. 그리고 질문한다. "며느리가 여자여야 하는 게 더 문제가 아닌가?", "결혼을 해야 출산하고, 결혼을 하면 출산하는 게 당연"한가?, "동성커플의 등장으로 성별 분업이 해체된 가족은 어떨"까?, "성교육이 가족질서를 유지하는 규율로서 작동하"는가?, "한국사회가 애써 지키는 가족각본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 "가족각본을 넘어선 가족과 제도"는 어떤 것일까?



샘플북에는 책의 프롤로그와 1장부터 3장까지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미리 공개된 차례를 살펴보면.


프롤로그 가족이라는 각본

1장 왜 며느리가 남자면 안 될까

2장 결혼과 출산의 절대공식

3장 초대받지 않은 탄생, 허락받지 못한 출산

4장 역할은 성별에 따라 평등하게?

5장 가족각본을 배우는 성교육

6장 가족각본은 불평등하다

7장 각본 없는 가족

에필로그 마피아 게임


"출산 기반인 결혼이 해체되면 "사회적 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종말적 예언"에 대한 반론 과정이 인상적이다. 결혼이라는 제도로서 출산의 적법성을 가리려는 이유를 따져보면 "남성에게 결혼 밖에서 출생한 자녀에 대해 아무런 의무도 지우지 않음으로써" "부정적인 재정적 결과를 피하면서도 성적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서 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저자는 문제의 원인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한편 "자기 자식을 버"리려는 의식적인 의도라기보다는 "남성을 중심으로 구축되어온 역사적 배경에 기인한다"는 (부분)면죄부를 주어 논의를 극단화하지 않는 묘수를 발휘한다.



저출생을 논의하는 대목에서 출생 당사자인 아이를 중심에 놓아보는 시도도 주목할 만하다. 앞선 세대를 부양할 인구가 부족하다던가 나라가 없어질 거라는 정치 경제적 위기의식을 부각시키는 것이 과연 출생에 무슨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인가. 태어난 아이를 국가 유지나 경제 부양의 부속품으로 취급하는 사회가 아이를 양육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 당신이 태어날 아이라면 이런 사회에서 나오기로 결심할 것인가.



출생하는 아이의 입장으로 관점을 돌리면, 사람의 탄생을 맞이하는 마음이 어떠해야 할지 다르게 보인다. 국가의 존속과 발전보다는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 존엄하고 평등한 삶을 살 수 있는가. 양육자를 희생시키지 않으면서도 행복한 시간을 나누며 성장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된다. 사람을 그 자체로 존엄하게 여기지 못하고 도구로 취급하는 사회에 기꺼이 태어날 아이가 있을까. 자신이 어떤 삶의 제비를 뽑을지 모르는 불평등한 세상에 나오기로 마음먹는 일이 쉬울까. 어쩌면 지금의 낮은 출생율은, 사람이 어떻게 태어나든 존엄하고 평등한 삶이 보장되는 사회가 될 때까지 세상에 나올 수 없다는 아이들의 절박한 집단행동일지도 모른다.

pp.62-63


결혼을 출산의 전제 조건으로 여기지 않는 (이른바 선진국인) 나라들은 높은 합계출산율을 유지하고 있다. 동성결혼과 혼외출산을 인정하는 이들 나라를 문란하고 비도덕적이라고 손가락질 할 것인가.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전통의 틀에 급변하는 미래 사회를 우겨넣으려는 시도는 재앙일 뿐이다. 경직된 결혼과 가족 제도를 출산의 기반으로 한정한다면 (상상하는 바로 그) "사회적 재앙"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가족각본에 관한 무수한 의심과 질문을 던질 뿐 해답을 주지는 못할 것"이라며 양해를 구했다. '우리 사회가 이러한 질문이라도 충분히 해볼 수 있는 상황인가'하는 의문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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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우다 1~3 세트 - 전3권
현기영 지음 / 창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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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북도 아니고 남도 아니고, 제주도다!

『제주도우다』 1권, p.297


해방 후 일본에서 귀향길에 오른 제주민에게 미군이 물었다. 북조선으로 가겠느냐, 남조선으로 가겠느냐. 전쟁 중 살아남기에 급급해 조국의 상황을 몰랐던 사람들은 "북조선은 뭐고, 남조선은 뭐냐"고 반문했다. 그리고 결정했다. "북도 남도 아닌 제주도로 가겠다"고.


제주도는 이질적인 환경 때문에 육지와는 다른 역사적 상황에 종종 처했다. 육지에서 구할 수 없는 특산물을 공물로 수탈당했고 빼앗기다 못해 탈출하려는 주민을 묶어두기 위해 이 백년 동안 출륙금지령이 내려졌다. 육지에서 떨어진 섬은 조선 시대에는 유배지로 일제강점기와 미군정 시기에는 군사기지로 이용됐다. 한라산 자락의 조붓한 농토와 바다에 의지해 살아온 제주민은 고립된 지리적 특성때문에 역사적 격변기를 더 혹독하게 겪었다. 작가 현기영은 제주가 겪은 이러한 고난의 역사를 소설 『제주도우다』에 형상화했다.


제주 출신의 현기영 작가는 공식 역사가 덮어왔던 섬의 실상을 꾸준히 밝혀왔다. 소설집 『순이삼촌』을 비롯한 그의 작품들은 4·3항쟁과 제주 현대사의 이면을 파고들었다. 「순이삼촌」을 출판한 후에는 독재 정부에게 고문당하고 금서로 지정되는 고초를 겪었다. 당시의 권력자가 30년의 비행을 감추고자 한 일이었다. 작가이기 이전에 제주민이었던 현기영이 당한 상황은 1940년대가 여전히 실재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작가는 제주가 헤쳐온 환난을 소설 『제주도우다』에서 "압박과 착취와 기만과 강요"의 역사로 표현했다. 그런데 소설 속 그 세월은 과거가 아니다. 현재도 굳건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지난 2016년 제주4·3정립  연구·유족회는 제주 각지에 추모·표지석을 세웠다. 추모 표지석 내용을 눈여겨보면 모골이 송연해질 표현이 보인다. "이곳 세화리 1452-3번지는 4·3 당시 제1구(제주) 경찰서 세화지서 옛터이다. 1948년 4월 3일 오전 2시 무장폭도 40여명이 세화지서를 습격했다." 여기서 '무장폭도'로 지칭된 사람들은 누굴까. 제주 역사를 모르는 사람이 이 표지석을 본다면 그 사람은 '4·3'과 경찰서를 점거한 '폭도'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2023년 제주에는 아직 남과 북으로 우와 좌로 나뉘었던 시간이 흐르고 있다.


『제주도우다』는 선문대할망의 전설부터 1950년대까지 제주의 역사를 그린다. 노년에 이른 작가 현기영은 자신이 나고 자랐으며 작품활동의 근원이 된 제주의 총체를 하나의 소설에 담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간 장편, 중단편 소설을 출간하며 꾸준히 알렸던 제주와 4·3이 『제주도우다』에 망라돼있다.


소설은 다큐멘터리 필름 제작자 부부 임창근과 안영미가 4·3항쟁을 다룬 장편 다큐 기획에서 시작한다. 제주 출신인 안영미에게는 4·3항쟁에 가담했던 할아버지 안창세가 있었고 다큐는 그의 증언을 바탕으로 할 예정이었다. 안창세는 참사의 와중에 "누나와 외삼촌을 한꺼번에 잃었고 그 자신도 죽음의 문턱 바로 앞까지 끌려갔었다." 그는 평생을 "그 사건에 영혼이 붙들린 채" 고립된 삶을 살았다. 손녀 부부의 청에도 안창세는 끝까지 입을 다물려했다. 아무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으리라는 절망감때문이었다.


"(…) 그건 천하 인간 세상에 없던 일이여. 바로 지옥이주, 지옥! 아무리 내가 말해주어도 느네들은 당최 모른다게. 당해보지 못한 너네들이 어떵 그 엄청난 걸 이해할 것고. 모르고서는 좋은 영화 못 말들주. 엉터리밖에 못 만들어."


할아버지의 말 속에는 그때 그 사태를 겪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설명해줘도 결코 그 참상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깊은 단절감이 있었다.

『제주도우다』 1권, p.17


안창세의 일생이 "영미야, 창근아"로 시작하는 이야기로 풀려나오기 시작했다. 이야기에는 제주도의 기원과 역사가 스며있다. 선문대 할망 설화, 고려 시대 복속, 조선 시대의 수탈과 민란, 기미년 3·1 만세운동이 이어진다. 제주는 혹독한 일본의 착취를 벗어나기 위해 투쟁했고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 항일 시위를 조직했던 활동가들이 모진 고문과 옥고를 치렀다. 어린 창세와 누이 만옥은 항일 투쟁 회오리 속에 비밀 야학을 다니며 배움을 계속했다. 


사람은 그 산천을 닮는다고 했거니와, 그들을 가난하제 만든 화산섬의 척박한 풍토는 그들의 심성을 거칠게 만들기도 했다. (…) 게다가 그곳 선비들 중 상당수는 유배객과 망명객의 후손이었으니 그들의 핏속에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분노의 씨앗이 감춰져 있기도 했을 것이다. 출륙 금지에 의한 이백년간의 유폐 생활이 그러한 심성을 더욱 조장했을 것이다. 그 선비들은 교활을 싫어하고 단순명료를 좋아해서 어떤 일이 옳다고 생각하면 주저 없이 받아들이고 목숨까지 바치기도 했다. 관권의 침학이 더이상 견딜 수 없어 민란이 일어났을 때, 몸 바쳐 무리를 이끄는 장도(將頭)들이 바로 그들 중에서 나왔다.

『제주도우다』 1권, p.43


창세의 아버지는 바다에서 죽었다. 남매의 어머니는 일본에서 배워온 재봉질로 끼니를 이었다. 섬 사람들의 생활은 칠만 관동군이 제주에 주둔하면서 "삶이 아닌 삶"이 됐다. 섬주민 전체가 전쟁 준비에 강제로 투입됐고 물자란 물자, 낱알 한 톨까지 징발당했다. 어린 창세도 잔뜨르 비행장 활주로 공사에 끌려간다. 작가는 서사 곳곳에 당시 불렸던 노래 가사를 넣었다. 이야기에 녹아든 유행가, 군가, 동요 등은 문화사 자료같이 보여 작품에 현실감을 불어넣었다.


한라산 곧은 나무는 전신주로 다 나가고

보리깨나 거둘 밭은 비행장으로 다 나가고

말깨나 하는 놈은 감옥소로 다 나가고

아기깨나 낳을 년은 정신대로 다 나가고

힘깨나 쓸 사내 놈은 강제 노력에 다 나가니

도대체 이놈의 종노릇이 웬말이냐

『제주도우다』 1권, p.101


일왕의 항복 후 섬은 자유의 희망으로 가득찼다. 주민들은 빠른 시간 안에 인민위원회를 구성하고 차치에 나섰다. 그러나 미군이 섬에 들어오기까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미군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세운 조직을 인정하지 않았고 심지어 아직 섬에서 철수하지 않은 일본 관동군이 치안을 담당하게 했다. 미군이 주둔한 다음의 형세는 점입가경이었다. 주민들의 민주적인 조직 인민위원회를 해산하고 인력부족을 이유로 친일세력을 재등용했다. 미군은 주민들을 구경거리 삼았고 민간인 살상도 서슴지 않은데다 일제때와 같은 수탈이 다시 시작됐다. 제주민에겐 일제나 미군정의 지배가 다르지 않았다.


3권으로 이뤄진 소설의 1권은 미군정의 본색이 드러나고 해방 후 잠시 찾아왔던 자유의 분위기에 암운이 닥치는 1부와 2부를 다룬다. 시기로는 1945년까지. 2권 3부에서는 도민들의 귀환과 반미 시위, 충남부대, 서북청년단 등 육지 토벌 부대 입도, 단독선거 반대 시위로 위기감이 고조되는 1948년 초까지의 상황을 그린다. 


맥아더는 일본 경제의 안정을 위해 조선인의 은행 잔고를 동결시켰다. 해방 후 귀국하려는 섬주민은 빈털털이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 수가 7만. 섬의 빈곤은 갈 수록 정도를 더했다. 미군의 폭정을 견디는 제주민은 남과 북을 나눠 통치하고 각각의 정부를 세우겠다는 결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시위는 갈 수록 고조됐고 폭력 진압을 위한 토벌대가 투입됐다. 서북청년단의 등장이다. 북한에서 공산당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혈혈단신 남으로 내려온 청년들을 기독교 단체에서 거뒀고 이들이 폭력조직 서북청년단의 모태가 됐다. 공산당에 대한 피맺힌 원한을 제주 학살로 해소한 이들은 종교의 품 안으로 돌아가 신분을 세탁하고 선량은 국민이 됐다.


밑도 끝도 없는 동족의 학대를 마주한 섬 사람들은 분열하기 시작했다. 이념을 선택한 이는 삶을 선택한 사람을 뒤로하고 산으로 들어갔다. 


그리하여 오랫동안 뜨거운 열정으로 뭉쳐 있던 결속과 믿음에 공포와 불신의 기류가 밀려들었다. 해방 후 지금까지 좌우 개념 없이 함께 생각하고 함께 행동해오던 공동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탈자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 전향자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으니, 상당수가 대청과 학련에 가입했다.

『제주도우다』 2권, p.307


3권 4부는 1948년 4·3봉기 직전과 직후를 그린다. 3월 6일 조천중학원 자치회 회장 김용철 조천 지서 사망 사건이 원인이 되었다. 스스로를 '인민자위대'라 칭한 입산 청년들은 4월 3일 봉화를 올리고 "일제히 경찰지서들을 습격했다."


4월 3일에 산부대가 공격한 곳은 스물네개 경찰지서 가운데 고문이 심했던 열한개 지서, 그리고 경찰 후원회 간부, 대청 간부 들과 그 가족들이었다. 사망자는 민간인 여덟명, 경찰 네명, 산군 두명이었다.

『제주도우다』 3권, p.25


토벌 명령을 받았던 9연대 연대장 김익렬과 산부대 군사총책 김달삼은 무익한 전투를 피해 평화협상에 나섰다. 그 사이 시간을 번 미군정은 전열을 정비해 무력 진압에 나섰다. 온건파 연대장을 전출시키고 서청 인원을 대거 파견했다. 5·10단독 선거를 막으려는 제주의 투쟁은 필사적이었다. 5·10선거 보이콧으로 토벌 작전은 더욱 격화됐고 입산자는 갈 수록 늘었다. 토벌대는 말도 안되는 이유를 들어 사람들을 잡아들였고 고문했다. 행방불명이 속출했다. 안창세는 그 때를 회상다.


잡히면 무조건 죽도록 때렸주. 형편없이 두들겨 패니 살 수가 없어. (…) 그러니 입산할 수밖에. 그 사람들이 뭐 사상이 있거나 특별히 애국심이 많아서가 아니고 그냥 매 안 맞으려고 입산한 거라.

『제주도우다』 3권, p.57


항쟁의 거대한 불꽃은 이제 급격히 그 생명력을 잃고 있었다. 살기 위해선 굴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공포가 사람들을 똘똘 뭉치게 하더니, 절망적 상황이 된 지금에는 공포가 사람들을 갈라놓았다. 군경 토벌대의 무자비한 파괴 공작은 그때까지 한 몸 같았던 도민 공동체를 두쪽으로 찢어놓았다. 두쪽으로 분리되었을 뿐만 아니라 서로 적대관계가 되도록 내몰렸. 모든 사람이 좌냐 우냐, 산이냐 해변이냐, 철저하게 이분법적으로 찢겨나갔다. 저항 세력을 산부대, 산군 혹은 산사람이라고 부르던 것이 토벌대가 시키는대로 차츰 폭도 혹은 산폭도로 변해갔다. 폭도 놈, 폭도 년을 흔히 불렀다. 처음에는 차마 그 말을 입에 담지 못했으나 그렇게 불러야 살길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산사람은 이제 두렵고 낯선 대상이 되었다.

『제주도우다』 3권, pp.69-70


소설의 5부는 1948년 10월 여순사건에서 시작한다. 제주 파병을 거부한 이 사건으로 산부대는 한 때 고무되지만 토벌대들은 남자만 보면 총질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토벌은 해안에서 산쪽으로 일정하게 진행됐다. 산군을 지원하지 못하게 소개된 산마을은 불태워졌고 마을에 남은 사람은 학살됐다. 학살의 이유따윈 없었다. 살아있는 생명은 모두 시체가 됐다. 토벌대의 초토화 작전은 산부대의 전력을 무화시켰다. 마을은 잿더미가 되고 이웃과 가족은 처형돼 시체로 나뒹굴었다. 산군은 공포에 빠진 주민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어 굶주림 속에 하나둘 죽어갔다.


산군과 마을의 연락병 역할을 하다 입산한 창세는 토벌대의 공격에서 살아남아 투항했다. 혹독한 고문을 견딘 끝에 석방된 그에겐 산에 남은 스승이 준 만년필이 있었다. 살아남아 겪은 모든 일을 글로 쓰라던 스승의 당부는 지켜지지 못했다. 안창세에게 4·3의 기억은 결코 떨칠 수 없는 것이었다. 


도대체 우리가 잘못한 게 뭔가. 무얼 잘못했단 말인가. 아아, 우리의 죽음이 아무 보람도, 아무 가치도 없는 죽음이 되어버렸어. 그것이 원통해! 도대체 이건 인간의 죽음이 아니여. 짐승의 죽음이라도 이런 떼죽음은 없어. 너무 억울해, 원통하고 절통해! 우린 결코, 우린 결코 죽어도 죽지 않을 거여! 너무도 원통해 죽어도 죽을 수 없어!

『제주도우다』 3권, p.265


소설 마지막 대목의 문장은 핏물과 한탄에 잠긴 듯했다. 안창세의 목소리는 죽음과 죽음과 죽음, 끝없는 죽음을 전한다. 청년의 죽음, 촌민의 죽음, 할아버지와 손자의 죽음, 형제의 죽음, 젊은 부부의 죽음, 젊은 아낙의 죽음, 노파의 죽음,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죽음, 엄마와 아기의 죽음……


작가는 4·3의 참상 속에도 삶이 있음을, 그 풍경을 받치는 섬의 모습을  아름답게 묘사했다. 투쟁 가운데 사랑을 꽃피었고 연을 맺었으며 아이가 탄생했다. 산군은 토벌대의 엄중한 감시를 뚫고 밤을 도와 아내와 재회하고 밭의 곡식을 베었다. 한라산 중산간의 말 목장에서 어린 말을 길들이는 순간을 그리는 대목과 원정 물질에 나서는 해녀들의 삶을 묘사하는 부분은 작가의 경험이 없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4·3의 시간을 산 생존자들이 아직 살아 있다. 그럼에도 어느 한쪽이 다른 일방을 '폭도'라 지칭하는 표지석을 세우는 일이 가능하다. 집단 학살에 가담한 자들이 피해자인 양한다. 표지석을 묵과하는 마음도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서로에게 총을 겨눴던 일을 생각하는 건 아닐지. 그런 가책 때문에, 같은 도민끼리 더 이상의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아 무지한 뻔뻔함을 견디는 건 아닐지. 


작가 현기영은 『제주도우다』에서 통해 4·3을 탈이념화했다. 제주도민은 이념이나 사상때문에 투쟁에 나선 것이 아니다. 일제와 다르지 않은 미군정을 반대했고 사람을 빨갱이로만 보는 서북청년단과 토벌대의 폭거에서 목숨을 구하려했을 뿐이다. 민중을 수탈하고 독재 정부를 구성하기 위해 반대의 의견을 잠재워야 했던 쪽이 이념을 외피삼았다. 현기영의 『제주도우다』는 피 맺힌 민중의 목소리다. 아직도 붉고 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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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루스의 교육 - 키로파에디아 현대지성 클래식 51
크세노폰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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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그를 두려워해 떨게 함으로써, 아무도 그에게 저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만들 수 있었다. 키루스는 모든 사람에게 어떻게 해서든 그를 기쁘게 해주려고 하는 열망을 심어주어 언제나 그의 뜻과 판단을 따르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하게 만들 수 있었다.

p.13


『키루스의 교육(원제: Cyropaedia)』은 아테네 출신 크세노폰이 쓴 일종의 위인전이다. 역사적 실존 인물인 키루스 2세의 일대기를 서술하고 있는 책은 페르시아 제국 개척사로도 여겨질 수 있다. 키루스는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그 행적이 비교적 상세히 기록돼 있고 '고레스'라는 이름으로 성서에도 등장하는 인물이다. 이란 고원 남부의 안샨 왕국의 왕자였던 그는 탁월한 군사적 능력과 지혜를 겸비해 소아시아와 이집트에서 인디아 왕국에 걸친 대제국 페르시아를 건설했다. 크세노폰은 키루스 대왕의 소년 시절부터 임종과 상속 이후까지를 기술한다. 그런데 페르시아의 위대한 인물에 대한 책을 쓴 저자가 아테네인이다. 아네네를 포함한 그리스는 기원전 5세기 전반 페르시아의 대군을 맞아 격전을 치른 바 있다. 크세노폰이 책을 쓰던 4세기 전반에도 페르시아를 그리스의 우방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려웠다. 크세노폰은 왜 키루스의 전기를 쓴 것일까.


의혹을 풀 실마리는 크세노폰의 생애에 있다. 아테네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소크라테스 문하에서 교육을 받기도 했던 그는 군사적 명성에 더 끌리는 사람이었다. 그의 저서 『아나바시스』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크세노폰은 용병으로 페르시아 내전에 참전했고 이후 스파르타의 왕과 친분을 맺었다. 스파르타와 경쟁관계였던 아테네에서 크세노폰을 탐탁찮게 여긴 것은 당연했다. 한편 기원전 399년 유죄선고를 받고 독배를 마신 소크라테스의 제자라는 점도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는데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크세노폰은 생의 대부분을 스파르타에서 보냈고 그도 여의치 않아지자 코린토스로 옮겨가 생을 마감했다. 



크세노폰은 당시 그리스의 여러 정치 체제의 불완전성에 주목했다. 중우정치로 치닫는 아테네, 구시대적 왕정과 과두정을 유지하는 스파르타, 폭군과 다름없는 참주정치 모두 그에겐 좋은 정치가 아니었다. 에게 해 일대의 여러 나라를 떠돌며 서로 다른 정치체제를 겪어본 그가 내린 결론은 인간이었다. "완벽한 지혜를 갖"추고 이상적인 정치를 실행할 왕을 찾아 추대한다면 어떨까. 크세노폰은 역사적인 인물로서가 아닌 이상적인 왕의 본보기로 키루스를 제시한 것이다. 



크세노폰은 역사적 사실 관계보다 '이상적 왕'을 보려주려는 목표에 충실했다. 때문에 책을 읽다보면 성품과 행적에서 이토록 완벽한 사람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었는가, 싶은 의문이 종종 고개를 든다. '키루스는 소년 시절부터 지혜롭고 타인을 이끌줄 알았으며 논변에 강했다'는 서술에 대해 '어떻게 아이가 이럴 수 있나?'하는 의구심을 품기보다 크세노폰의 상상 속에 그려진 통치자의 어린 시절이라고 이해하면 될 듯 싶다. 



그렇다고 크세노폰이 모든 기록을 전면 왜곡했다는 것은 아니다. 키루스의 외할아버지인 메디아의 왕 아스티아게스에 대한 기록에서는 헤로도토스의 것보다 크세노폰의 것이 더 정확하다고 한다. 


26 "아스티아게스"(기원전 585-550년)는 메디아의 왕이다. (…) 그에 관한 고대 사료는 헤로도토스의 『역사』 외에는 거의 전무한데, 걱에는 잔인한 폭군으로 표사되어 있고, 기원전 550년에 키루스에 의해 폐위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헤로도토스의 기록은 왜곡된 것이고 크세노폰의 서술이 더 정확한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p.14, 각주 中


헤로도토스의 기록과 상충되는 대목이 더 있다. 크세노폰의 키루스는 평화로운 방법으로 외할아버지의 나라 메디아를 합병했다. 헤로도토스는 키루스가 아스티아게스와 전쟁을 벌였다고 기록한데 반해 크세노폰은 아스티아게스의 아들 키악사레스를 통해 키루스에게 평화롭게 왕위가 이어진 것으로 쓰고 있다. 키루스의 외삼촌 키악사레스의 존재는 헤로도토스에게는 없는 설정이다. 또 바빌로니아 제국에 대한 호명이 없는 것도 눈에 띄는 차이다. 도시 바빌론을 함락하는 장면이 나오기는 하지만 크세노폰의 바빌론은 아시리아 제국의 도시다. 그는 어떤 이유로 바빌로니아 제국을 고대의 명칭으로 남겨뒀다. 키루스의 임종 장면도 차이가 있다. 헤로도토스의 키루스는 마사게타이족과 전투 중 전사하는데 크세노폰의 경우는 자신의 집에서 가족들에게 유언을 마친채 평화롭게 임종한다.



한가지 더, 책에 등장하는 풍습의 상당 부분이 그리스의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믿음 깊은 키루스는 중요한 때마다 '제우스'에게 희생제의를 올린다. 페르시아의 종교는 조로아스터교인데 '제우스'라니, 하는 의혹은 거두시길. 책 속의 키루스는 그리스화된(?) 페르시아인이다. 지혜로운 통치자의 이상형을 그리기 위해 크세노폰이 역사적 기록을 취사선택했다고 보는 쪽이 이 책을 이해하는데는 더 도움이 될 것같다. 저자 자신이 역사를 기록하려하기보다 위인의 생애를 통해 정치적 이상에 대해 쓰고자 했기 때문이다. 



크세노폰의 키루스가 자기 사람을 대하고 적국과 싸우거나 협상하며 하는 모든 언행은 지도자의 교본이다. 어린 시절 키루스를 묘사한 대목에서는 그의 아버지 캄비세스가 아들에게 주는 교훈에, 장년이 된 키루스가 정복 전쟁을 앞두었을 때는 그 자신의 연설에 주목해야할 지침들이 들어있다.


네가 다른 사람들에게 이익을 줄 수도 있고 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것을 충분히 보여줄 때만, 너의 말은 힘을 얻게 된다.

p.54


캄비세스가 아들 키로스에게 전한 위의 말은 지도자가 사람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보여지는 '힘'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키루스는 지혜와 신뢰로 자신의 주변에 힘있는 사람을 모아 세력을 형성함으로써 주변 각국의 자발적 복종을 이끌어낸다.



 키루스의 덕목 가운데 크세노폰이 가장 공들여 설명하는 부분은 주변을 챙기는 마음과 검소함이다. 자신의 배와 창고를 채울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집중하면 필요할 때 더 많은 이득과 도움을 끌어낼 수 있다. '훌륭함'이라는 찬사는 자연히 따라온다.


키루스시여, 술잔과 옷과 황금은 우리가 여러분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는데도, 우리가 여러분보다 못한 것이 이제 더 이상 제게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런 것을 많이 가지는 데 관심을 갖는 반면, 제 생각에는 여러분은 가장 훌륭한 사람이 되는 데 관심을 갖기 때문입니다.

p.210


지도자가 갖춰야 할 자질 중에 스스로 나대지 말고 다른 사람이 밀어주게 만들 것과 시기와 질투를 피하기 위한 대중 홍보 전략도 중요하다. 키루스는 왕이 되는데 "친구들의 추대"를 끌어냈고 위엄을 보이기 위해 대중 노출에 신중을 기했다.


그런 다음 키루스는 친구들의 추대로 왕이 되기로 결심하고서, 먼저 왕에 걸맞은 방식으로 처신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려면 대중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삼가고 어쩌다가 그렇게 하더라도 위엄을 갖추고서 대중 앞에 나타나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생겨날 수 있는 시기와 질투를 최대한 줄여야 했다.

p.325


나라를 존속시키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마키아벨리가 특별히 주목했을 만한 대목도 눈에 띈다. 지도자는 필요하다면 "교활하고 영악하게 기만하고 속내를 숨기며 종잡을 수 없게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점에서 적을 능가하려고 하는 사람은 사기꾼과 도둑과 강도처럼 아주 교활하고 영악하게 기만하고 속내를 숨기며 종잡을 수 없게 행동하는 데서 적을 능가해야 한다.

p.62


진정 지혜로운 지도가가 왕이 되어 다스리는 체제의 문제는 그것이 영속될 수 없다는데 있다. 크세노폰은 위대한 키루스가 죽은 뒤 왕위를 계승한 후손들의 타락상을 적고 있다. 자신이 속아서 참전한 소키루스의 왕위 찬탈 전쟁을 사례로 제시하면서 페르시아 왕들의 불경함을 말한다. 후손의 행태와 대비되는 키루스의 위대함이 더 도드라진다.


그런데 지금은 단 한 사람도 그들을 믿지 않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신들에게 불경하다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소(小)키루스와 함께 원정에 참가한 장군들이 만일 페르시아 왕들이 이렇게 신들에게 불경하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소키루스를 믿고 출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p.400


플라톤과 같은 시대를 살았고 다수의 저작에서 스승 소크라테스의 행적을 소재로 한 크세노폰은 상대적으로 덜 평가를 받았다. 그의 저술이 철학적 형이상학에 몰두한 다른 제자들의 저작에 비해 깊이가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일까. 하지만 철학적 사고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 또는 좀더 평이한 서술로 소크라테의 시대를 읽고 싶은 독자라면 크세노폰에서 그리스 시대 읽기의 여정을 시작하는 것도 색다른 선택일듯. 『아나바시스』는 어떤 전쟁기 또는 여행기 못지 않고 『키루스의 교육』은 또 어떤 위인전, 경영서, 리더십 관련 서적 못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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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의 자리 트리플 18
이주혜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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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혜 작가의 누의 자리'한국문학의 새로운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을 표방하는 트리플 시리즈 열여덟 번째 책이다. 작가 이주혜가 2016년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으면서 작가 생활을 시작했으니 아주 '새로운 작가'는 아니라 해도 발표한 책이 아주 많지는 않은지라 '새로운'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겠다. 경장편 자두, 소설집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 에세이 눈물을 심어본 적 있는 당신에게정도가 단독 저작이다.

 

작가 이력에서 눈에 띄는 점은 번역이다. 번역가로 일하면서 얻은 착상이나 언어에 대한 감수성이 그의 소설에 드러난다. 에이드리언 리치의 산문집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를 우리말로 옮기면서 얻은 단상은 작가의 소설 자두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 누의 자리에서는 ''라는 단어를 등장인물 간의 관계와 연결짓는 언어적 해석과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영화 제목 <캐롤>로 더 잘 알려진) 소금의 값을 일어와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이 주요 장면으로 등장한다.

 

이주혜 작가의 소설은 여성 서사에 집중한다. 소설 자두에서 가부장제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자리를 촘촘하게 내밀한 곳까지 들여다 봤고, 산문집 눈물을 심어본 적 있는 당신에게와 소설집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에서도 비슷한 결을 느낄 수 있다.

 

누의 자리에는 '퀴어소설'로 분류할 수 있는 세 편의 소설과 작가의 창작노트처럼 읽히는 에세이 한 편이 들어 있다. 누의 자리소금의 맛은 동성 연인의 이야기를 그리고 골목의 근태는 여성들간의 따뜻한 연대를 꿈의 한조각처럼 묘사한다.

 

누의 자리

 

이야기 속 나는 너의 유해(라고 여겨지는 것)를 사랑받지 못했으나 죽어서도 왕을 기다리는 조선 왕조의 왕비 무덤 곁에 매장하려 한다. 너는 너의 '자리'를 찾지 못해 방황했다. 너에게 세상은 술을 권하고 또 권하면서 취하면 "씨발년", "빨판"으로 취급하는 곳이었다. 나를 만난 너는 '너와 나'만이 들어갈 수 있는 ''의 자리를 상상했다. 그러나 둘만의 자리는 오래가지 못했다. 누의 사랑은 "나날이 건조해졌"고 언어는 고갈되어갔다. 너의 유해를 네가 싫어했던 바다에 뿌린 가족의 장례식 대신 나는 제비 뜨개방에 만들어 둔 네 흰 옷과 '누의 일기장'으로 너의 진짜 장례를 치른다. 평생 왕을 기다린 왕비와 후손을 낳고도 왕의 곁에 묻히지 못한 여성들 곁에 좋아하던 도토로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너의 자취가 휴식하기를, 나는 바란다.

 

''는 누구의 옛말이야. 의문형 인칭 대명사, 혹은 특정인이 아닌 막연한 사람을 가리키는 대명사. 그러니까 누의 자리는 공백. 누구나 들어올 수 있어. 너도 나도. 그런데 누는 언제부턴가 문헌에서 사라지고 누구만 남았어. () 한동안 누라는 단어에 집착했어. 누의 자리에 들어올 수 있는 것과 들어올 수 없는 것에 골몰했어.

pp.23-24, 누의 자리

 

이제 나는 ''를 고쳐 생각해. () 내게 '''누구'가 아니야. '''너와 나'. () '우리'는 용량이 큰 말이야. 우리의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너무 많기도 하고 하나도 없을 때도 있어. 나는 우리 속에 들어간 적이 별로 없어. 누구도 나를 우리라는 이름으로 환대해주지 않았어. () ''라는 무대에 오직 너와 나, 단 두 사람만 올리고 싶어. 이제 ''는 너와 나만을 위한 단어야.

pp.24-25, 누의 자리

 

소금의 맛

 

소금의 맛은 영화로 만들어진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책 캐롤의 원제목 소금의 값에 착목한 소설이다. 나이와 신분 차이를 뛰어 넘는 여성 간의 사랑을 그린 소설 소금의 값은 나라와 언어 그리고 펜데믹의 시간을 지나야하는 한국과 일본 여성 사이를 잇는 역할을 한다. '신들의 언덕'이라고 불리는 익명의 장소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두 사람의 인연은 하늘길이 막힌 코로나19 기간 동안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영어 소설을 각자의 언어로 번역해 나누면서 이어진다. 그리고 이해한다. 둘에게 닥친 상황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일 거"라는 걸. "소금은 짜서 소금이고 이 사랑은 고통이지만" "끝내 사랑"이라는 걸.

 

신들의 언덕 아래에서 우리는 인간까리 맘껏 사랑했다.

신치토세 공항에서 우리는 헤어졌고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하늘길이 끊겼다. 그러나 우리가 만나지 못했던 것이 단지 코로나 때문이었을까? 우리의 사랑은 오직 그 도시에서만 가능했다는 사실이 균열의 시작은 아니었을까? 나는 의심하며 내 나라의 팬데믹 시절을 힘겹게 지나갔다. 어쩌면 우리는 다시 만나지 못해서 제대로 헤어지지도 못하는 거라고 가끔씩 생각하면서.

p.59, 소금의 맛

 

골목의 근태

 

나는 2년 간의 해외파견 근무를 선택한 일 욕심 때문에 가정을 잃은 여성이다. 육아휴직 후 자리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일했고 덕분에 온 해외파견 기회를 잡았다. 양가 어르신 모두 반대했지만 넉넉한 돌봄 노동 비용을 지불하고 시어머니에게 남편과 아이를 맡겼다. 2년 새 남편에겐 다른 여자가 생겼고 아이는 자신을 버렸다며 엄마를 "씨발년"이라 불렀다. 살던 집 전세 보증금은 남편이 챙겼고 해외 파견 근무 수당은 아이 사고 뒤처리에 몽땅 들어갔다. 기혼 여성의 일이란 이렇게 참혹한 결과를 수반할 수도 있는 극한직업이다.

 

한 겨울 좁은 골목 술집에 혼자 남았던 나는 젊은 직원을 따라나섰다가 제비 뜨개방에 발을 들이고 '뜬금없는' 환대를 받는다. 뜨개방 주인은 엉덩이를 옆으로 물리며 나를 위한 자리를 마련해줬고 그 어머니(노인)는 뜨거운 동지 팥죽을 내놨다. 뜨개방 주인은 "제 자식 버린 년"이었고 젊은 술집 직원은 엄마에게 보낼 돈 벌러 남의 나라에서 노동하는 여성이었다. 나는 초면인 두 여성과 (난데없이) 리스를 만든다. '행운', '환대'를 상징하는 둥근 장식물. 전나무 냄새를 풍기며 수화로 대화하는 노인은 생판 처음 본 나에게 "언제 또 오냐"고 물었고 "하지에 오"라고, "감자 삶아준"다고 말한다.

 

나를 위한 자리를 비워주고 출출한 속을 채울 팥죽을 미래 챙겨주고 또 오라며 담에 먹은 메뉴까지 알려주는 기묘한 제비 뜨개방의 환대에 나는 "콧등이 시큰"해진다. 제비 뜨개방은 각자 감수하고 살아온 삶을 구구절절 말하지 않고도 이해를 나눌 수 있는 연대와 환대의 공간이다.

 

누구도 내가 아이를 버린 게 아니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누구도 내가 지은 죄에 비해 너무나 과도한 벌을 받았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나를 낳고 키워준 친정 엄마마저도 이혼 직후 친정에 와 누워 있는 내게 혼잣말인 듯 중얼거렸다. 그러게, 어미가 되어서는 왜 그렇게 일 욕심을 부렸어.

pp.95-96, 골목의 근태

 

문학평론가 소영현은 "이주혜 소설이 보여주는 여성 동성애에 대한 관심은 이성애의 반대편에 놓을 대항적 선택지를 마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적었다. "뒤집한 남성 중심의 세계"를 보여주거나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하기 보다 "대문자로 추상화될 수 없는 여성들의 개별 얼굴"을 발굴하는 것이 이주혜 작가의 방법이다. 작가가 발굴한 면면을 조급해하지 않고 따라가다보면 당도하리라 생각한 때가 오기 전에 지금과는 "다른 지도" 위에 서있을 것 같다.

 

우리는 이주혜의 소설을 통해 실패 위에 실패를 거듭한 기록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아직은 그런 것이 아니라 그것이 다른 지도를 그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p.129, 소영현 문학평론가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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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얼굴 Dear 그림책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이지원 옮김 / 사계절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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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 토카르축의 작품들은 2019년 노벨 문학상 수상가로 선정된 후 활발하게 번역 출간되기 시작했다. 2006년 젊은 작가 단편 모음집에 참여했고 2018년 그림책 『잃어버린 영혼』이 출간됐고 2019년 초 『태고의 시간들』 정도가 나왔었다. 문학계에서는 나름 주목받는 작가였으나 국내 인지도는 이제 막 생기려 할 때였떤 모양이다. 바로 그 시점에 노벨상을 받고 이후 4년 간 소설과 에세이, 그림책이 차곡차곡 번역되어 나왔다. 


『잃어버린 얼굴』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토카르축의 작품 중 거의 국내에 처음 번역된 『잃어버린 영혼』과 연결된 책으로 볼 수 있다. 전작은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몸과 분리된 영혼을 찾아가는 남자의 이야기였다. 이번 책 『잃어버린 얼굴』은 세상의 눈길에 현혹된 자아 이미지 실종을 그린다. 올가 토카르축이 글을 쓰고, 전작과 동일하게 요안나 콘세이요가 그림을 담당했다.


책은 '또렷한 사람'이라 불리게 될 사람의 어린 시절과 성장기를 보여주는 그림으로 시작한다. 아기에서 유아로 어린이로 청소년으로 자라가는 사진들은 그의 부모와 동생들의 모습까지를 담고 있다. 그는 카메라를 마주보고 밝게 웃는 아이였다. 아이는 성인이 되고 카메라 앞의 피사체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찍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여기서 이상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흑백 위주로 어린 시절을 묘사했던 요안나 콘세이요의 그림은 또렷한 사람이 스스로에게 카메라를 돌릴 즈음부터 칼라가 섞여든다. 풍경이 등장하는 것도 이때부터다.  또렷한 사람을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페이지에서 금빛 역광 속에 빛나는 주인공의 얼굴이 하얗게 X 표시된 흑백의 벌판을 찍은 사진 아래 배치돼 있다.이후로 다양한 지역의 아름다운 경치가 이어진다. 화려한 색감의 사진 아래 또렷한 사람이 등장하는 그림엔 그의 얼굴이 불분명하다. 주변의 모습 역시 흐릿해지는 가운데  홀로 있는 그는 손 안의 전화기만 들여다보고 있다.


책의 처음부터 군데군데 따라붙던 검은 원이 있다. 뜬금없이 그림 한 가운데 있거나 인물의 얼굴을 가리기도 한다. 어떤 불길함을 드러내는 듯이 보이는 이 '검은 구멍'은 주인공이 겪게 될 사건의 발단을 상징한다. 검은 구멍에서 시작됐다는 소문이 있는 증상에 또렷한 사람이 감염된다. 그 결과 "사진을 찍을 때마다 그의 얼굴은 점점 흐릿해"진다. 더 많은 이미지, 셀 수 없이 많은 사진이 인터넷에 떠돌수록 그는 희미해졌고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는 인터넷을 찾아보고, 자기가 먼 곳에서 온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고 생각했어요. 최근에 발견된 바실리스크 별자리의 검은 구멍 때문이라는 이론도 있었어요. 특히 신경 쓰인 것은, 인간의 얼굴에서 눈에 보이지도 않고 가장 예민한 진짜 꺼풀이 사진을 찍을 때마다 벗겨진다는 가설이었어요. 자기 사진을 많이 찍는 사람은 결국 진짜 얼굴을 잃어버릴 거라고, 어떤 인터넷 사용자가 써 놓은 거였어요. "셀럽들이 왜 매일 그렇게 진하게 화장을 하는지 알아? 괜히 그러는 것 같아? 그건 아닐걸…."


SNS 사진들은 현재보다 나은 그림을 추구한다. 풍경은 아름다워야하고 음식은 먹음직스러워야 하고 얼굴은 완벽해야 한다. 구도와 색감을 보정하고 인물은 선호하는 형태와 색에 가깝도록 만든다. 어렵지도 않다. 이 모든 일을 처리해주는 앱이 자동으로 구동된다. 이렇게 나를 닮아 나와 비슷하지만 내 실물과는 차이가 있는 모습이 나의 실체를 대신한다. 보정없는 얼굴 사진은 실례라는 말을 들었다. 함께 찍는 기념 사진에 보정앱을 쓰지 않으면 화를 부를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우리의 실물과 얼마나 근접한 인식을 가지고 있을까. 


"최고의 물건이오." 

 거래인의 얼굴에 잠깐 웃음이 스쳤어요. 

 "그리고 사진에도 잘 견디죠."

사람은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볼 때도 실제보다 더 예쁘게 인지한다고 한다. 그런데 보정앱으로 스스로의 외모 기준을 상향 조정한다면 세월의 시험을 겪은 어느 날 자신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을까. 또렷한 사람처럼 새 얼굴을 찾아나서야 하는 건 아닐까. 새 얼굴이 답일까. 전 재산을 투자해야하는데 또렷하지만 변별성이 없는 얼굴을 갖게 된다면? 책은 타인의 시선 또는 정해진 이상을 위해 내적, 외적 자아상을 변형시키는 시대를 숙고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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