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의 마지막날 아침이 밝았다. 어제까지 공식일정은 마무리했다. 오늘은 오전에 소호거리에 있는 마르크스의 집을(현판만 붙어 있는 것으로 안다) 찾아보고 나머지는 자유시간이다. 오후에 공항으로 이동하여 귀국행 비행기에 오르게 된다(네덜란드항공이라 이번에도 암스테르담을 경유한다).

현재는 버스를 타고 도심으로 향하는 중인데 이제는 런던식 교통체증에도 익숙해졌다. 좁은 도로를 마치 전통처럼 고수하다 보니 런던의 교통난은 트레이드마크처럼 되었는데 런더너들은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는 듯하다. 이 또한 영국식일 터이다. 대신에 도심 녹지가 30퍼센트에 이르고 크고작은 공원이 3천 개가 있다고 하니 런더너의 삶이 팍팍한 것만은 아니다. 고도제한으로 고층빌딩도 없고 네온사인도 없는 거리는 런던을 항상 런던이게끔 한다. 세월의 마모를 버텨내는 런던!

어제 일정은 버지니아 울프(와 댈러웨이 부인)의 산책길을 따라가본 워킹투어와 찰스 디킨스 박물관 방문으로 구성되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앞에서 시작하여 세인트제임스파크와 버킹검 궁전 앞을 지나 리젠트파크까지 이어진 워킹투어는 3개의 호수를 거치고 런던 도심을 가로지르는 여정으로 3시간이나 소요되었다(당초 2시간쯤으로 생각한 일정이었다). 폭풍의 언덕 트래킹과 함께 이번 문학기행의 하이라이트. 중도에 <댈러웨이 부인>에도 나오는 전통 있는 서점 해처드(1797년에 문을 열었다)에도 들러 영국식 서점도 구경할 수 있었다(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서점답게 품위 있는 책진열과 배치를 보여주었다).

수제 햄버거집 바이런에서 점심을 먹고 디킨스 박물관을 찾았는데 런던의 작가 디킨스에게 바쳐진 런던 유일의 문학관이다. 내막을 알아보니 그가 살았던 다른 집들은 현재 남아있지 않다. 1837-39년까지 3년 못 되게 살았는데 당시 신혼의 디킨스는 세 자녀와 처제 등과 함께 이 집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가 사랑했던 처제 메리 호가스가 숨을 거둔 것이 1837년이었고 화제작 <올리버 트위스트>를 발표한 것도 이 시기다. 1839년말에 디킨스 가족은 식구가 늘어난 데다가 수입도 늘어서 리젠트파크 쪽의 더 큰집으로 이사한다. 박물관은 4층으로 구성돼 있는데 각층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실제 살았던 집을 박물관으로 꾸몄기 때문일 텐데 디킨스의 명성에 비하면 소박하다는 인상까지 주었다. 1870년에 사망한 디킨스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되었다.

디킨스 박물관에서 나온 일행은 마지막 저녁식사를 하기 전에 트라팔가 광장 옆에 있는 오스카 와일드의 조각상을 찾았다(1998년에 세워졌다). 더블린에서 시작한 여정이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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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첫날 일정은 박물관과 미술관 투어다. 의당 대영박물관(‘브리티시 뮤지엄‘이지만 ‘영국박물관‘ 대신 ‘대영박물관‘이라고 블러왔다)을 들러야 하고 많은 미술관 가운데서는 테이트모던이 공식 일정에 포함되었다(내셔널 갤러리는 선택사항이다). 중간에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을 둘러보는 것이 유일한 문학관련 일정이다.

미술관 관련서로는 전원경의 <런던 미술관 산책>을 들고 왔는데 관람 전에 잠시 펴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교통체증으로 악명 높다는 런던답게 대영박물관으로 가는 길이 꽉 막혀 있다. 호텔에서 30분거리라고 했지만 두배는 소요될 듯싶다. 그 사이에 읽어봐도 되겠지만 아침에 원고를 보내느라 머리를 쓴 탓인지 휴식을 취하고 싶다.

바깔 기온은 높지 않은데 화창한 날씨여서 버스 안은 더운 편이고 급기야 기사에게 부탁하여 에어컨까지 켰다. 미술관 투어 중심 일정이라 오늘은 내게 절반의 휴일이다. 글로브 극장 앞에서만 셰익스피어와 극장에 관하여 몇 마디 거들려 한다. 오늘 저녁은 자유시간으로 공연을 보거나 클럽에 가거나 개인별 일정을 진행할 예정이다. 나는 공연(라이언킹)을 단체관람할 예정. 그렇게 런던의 첫날이 지나갈 것이다. 일단은 대영박물관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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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부인 2019-10-03 0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정 잘 마무리하시고 건강히 잘 귀국하시길

로쟈 2019-10-05 01:33   좋아요 0 | URL
무탈하게 귀국중.
 

어젯밤 런던에 도착해 저녁식사후 숙소로 이동하여 여장을 풀고 첫날밤을 보냈다. 아직 동이 트기 이전 호텔 창밖으로 보이는 런던의 야경을 기념삼아 찍었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었던 대형 크레인들이 이곳이 런던임을 웅변해주는 듯하다(이런 크례인은 도시 전체가 거대한 공사장으로 여겨지던 베를린에서 본 적이 있다. 인구로 보면 런던은 베를린보다 두배 이상 큰 도시다). 현지시각으로는 새벽 4시에 눈이 떠져 머리가 맑아지기를 기다렀다. 일간지 원고 마감인 날이고 일정이 시작되기 전에 보내야 해서다.

막갼을 이용해 런던에 대해서 적을까 했지만 내가 본 것은 이 야경밖에 없다. 한 가지 더 들자면 콜린 퍼스. 어제 저녁을 먹은 한국식당에서 주인이 배우 콜린 퍼스가 가족과 함께 다녀갔다는 자랑을 늘어놓으며 같이 찍은 사진까지 일행에게 보여주었다. 당신이 런던에 왔다는 사실은 달리 말하면 오다가다 콜린 퍼스를 만날 수 있다는 뜻이다. 영국의 간판배우(요즘은 컴버비치와 함께) 콜린 퍼스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비빔밥을 맛본 적이 있어서 한국식당을 찾았다고 한다.

사실대로 적자면 남자배우 콜린 퍼스와 만나는 것이 내게 흥분되는 일일 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딱히 떠오르는 영국 여배우가 있는 것도 아닌데, 두드러진 배우가 없는 것인지 내가 모르는 것인지. 이름을 주워섬길 수 있는 배우라고는 엠마 톰슨 정도인데 벌써 환갑의 배우다. 한술 더 뜨자면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확인해보니 1937년생으로 아직 생존해 있다. 프랑스 여배우 잔 모로와 비교됨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재작년에 세상을 떠난 잔 모로는 1928년생이다. <쥴 앤 짐>(1962)을 찍었을 때가 이미 삼십대였다니!

바네사 레드그레이브는 사정이 다른데 젊은시절 어떤 영화를 찍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대신 예순에 찍은 <댈러웨이 부인>(1997)이 내가 기억하는 그녀의 대표작. 처녀시절의 클라리사를 연기한 배우는 찾아보니 나타샤 맥겔혼이고 1969년생이다. 존 밴빌 원작의 <바다>(2013)에도 나왔었군. 영화 <바다>도 보고 싶었는데 국내에는 수입되지 않았다.

버지니아 울프의 대표작 <댈러웨이 부인>은 이번 영국문학기행에서도 다루는 작품이다. 내일 오전에는 런던의 중심가를 댈러웨이 부인의 동선을 따라서 걸어가보려고 한다. 런던을 경험하는 한 가지 특별한 방식으로 기획한 것인데 어떤 느낌을 줄지는 내일 적어야겠다. 이제 새벽 5시를 조금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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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9-10-02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일 날씨가 좋았으면 합니다.
여행중 짬을 내어 이렇게 올려주시니 로쟈님은 피곤하시겠지만 읽는 사람은 생생한 느낌이 전달되는 것 같아 더 재미있게 읽게 되네요.

로쟈 2019-10-02 17:16   좋아요 0 | URL
런던 날씨는 현재 오전상황으로는 화창합니다.~
 

런던 입성을 코앞에 두고 있다. 이탈리아문학기행에 견주면 로마 입성을 눈앞에 둔 것과 같다. 영국 시간으로는 저녁 7시가 넘었는데 런던 초입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 3일간 묵을 숙소로 이동하면 오늘의 일정이 마무리된다.

어제 셰익스피어에 이어서 오늘의 주제는 제인 오스틴이었다. 오스틴과 관련해서 더 중요한 장소는 생의 마지막 8년을 보내면서 주요작들을 개고하고 집필한 남쪽의 초턴이지만(그곳에 제인 오스틴 박물관이 있다) <노생거 사원><설득> 등의 소설에 나오는 바스를 목적지로 정했다. 바스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관광지이면서 제인 오스틴 센터도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스로 가는 중에는 중세 건축양식이 잘 보존된 마을 캐슬콤에 들렀는데 매우 아름다운 시골마을이었다. 중심부의 저택은 현재 호텔로 쓰이고 있었다.

바스에서 점심을 먹은 후의 주요 일정은 바스의 명소인 로열 크레슨트(초승달 모양의 대저택)와 로만 바스(로마시대에 지어진 온천목욕탕이자 종교시설)를 둘러보는 데 할애되었다. 작가박물관이라고 하기에는 전시품이 빈약하다는 사전정보에 따라 바스의 오스틴센터 앞에서는 사진만 찍었다. 물론 바스의 명소를 둘러보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바스의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었다. 오스틴 소설에서 바스는 온천 휴양지이면서 사교의 공간이다. 그리고 시골과 도시(런던)을 매개해주는 중간지역이기도 하다. 실제로 바스는 생각했던 것보다는 큰 도시였다.

이제 런던에 들어선 듯싶다. 저녁은 8시쯤에 먹게 될 듯하다. 바야흐로 영국문학기행도 막바지, 런던에서의 일정만을 남겨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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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일정은 온전히 셰익스피어에 할애되었다. 그의 고향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에서 생가와 거주했던 집, 와과의였던 맏사위의 집, 무덤이 있는 트리니티성당, 그리고 아내 앤 해서웨이의 생가를 차례로 찾았다. 이미 길잡이 책으로 황광수의 <셰익스피어>(아르테)를 읽은 터라 낯선 곳은 아니었다. 그래도 현지에 있다는 실감은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비가 흩뿌리는 흐린 날씨여서 렌즈를 닦아놓은 듯 모든 것이 더 깨끗하고 명료하게 보였다.

스트랫퍼드는 생각보다 큰 마을이었다(지방도시라고 해야할 듯). 가령 헤세에 대한 기억으로만 이루어진 것 같은 독일의 작은 마을 칼브처럼 셰익스피어로 ‘도배‘돼 있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그에 비하면 셰익스피어는 마을의 자연스런 일부처럼 보였다. 그 당시 튜더양식의 집들이 많이 보존되어 있어서 셰익스피어의 생가나 뉴플레이스(그의 집)가 돌출돼 보이지 않았다.

현장방문 덕분에 셰익스피어의 연보를 새로 환기하게 되었다. 모호한 가운데서 신고기록으로만 남아있는 그의 자취를 실물들이 증언해주고 있어서다. 생가에 있는 침대(유언에 적힌 ‘두번째로 좋은 침대‘)와 당시 두번째로 큰 집이었다는 뉴플레스를 구입한 33살의 셰익스피어의 모습이 그려졌다(그는 바로 전해에 아들 햄닛을 잃는다). 당시로서는 상당한 재력이었다(구입에 6년치 교사 연봉의 비용이 들었다고).

은퇴후에 다시 내려온 집에서 맏사위와 돈독하게 지내는 모습도 인간 셰익스피어의 잘 알려지지 않은 대목이다. 죽기 직전에 둘째사위가 불륜으로 아이를 갖게 되자 부랴부랴 유언장을 고쳐적었다는데(둘째 내외한테는 유산을 남기지 않았다), 이미 셰익스피어 자신이 몸져누운 상태였다. 그는 1616년 4월 23일에 세상을 떠난다. 단순계산으로 52세의 나이였다.

그렇지만 진정한 셰익스피어의 신화가 시작되는 것은 사후 그의 지인들에 의해 1623년 첫 전집이 출간되면서부터다. 그의 작품을 통해서 우리가 만나는 셰익스피어와 스트랫퍼드 출신의 ‘글쟁이‘ 셰익스피어 간에는 간극이 있다는 것을 그래서 강의에서는 강조했다. 평범한 셰익스피어와 비범한 셰익스피어. 이 간극이 근대 영국문학의 원점이면서 세계문학의 출발점이다. 인간을 발명해낸 작가가 바로 셰익스피어이기에.

스트랫퍼드에까지 들고온 책은 <셰익스피어> 외에도 <빌 브라이슨의 셰익스피어 순례>(까치)와 <셰익스피어 소네트>(민음사)가 더 있는데, 당연히 조금 들춰보려는 의도였지만 숙소로 들어서자 곧바로 잠이 들고 말았다(빌 브라이슨의 책은 이곳에서도 기본서였다). 서서히 여독이 쌓이는 모양이다. 현재 머무는 곳은 옥스퍼드인데 아침식사를 마치면 제인 오스틴 투어를 위해 바스로 이동할 예정이다. 그리고 저녁에는 종착지 런던에 드디어 입성하게 된다. 셰익스피어의 런던, 찰스 디킨스의 런던,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의 런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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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gles 2019-10-01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런던이라는 문학의 보고를 앞두고 여독에 쓰러지시면 안되죠. 너무 무리하지 말고 쉬면서 하세요.

로쟈 2019-10-01 22:24   좋아요 0 | URL
남은 일정이 그리 힘들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