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신간 러시아 판타지 소설 <나이트 워치>를 소개하면서 러시아 입문서 두 권에 대해서도 덧붙인바 있는데, 그걸 조금 보완하고자 한다. 오늘자 한국일보의 '강정의 나쁜취향'에서 러시아 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가 다루어지기도 해서 대략 '분위기'도 좋은 걸로 간주하고 말이다. 물론 우호적인 분위기만 형성돼 있는 건 아니다. 며칠전 뉴스에서는 극동러시아에서 가짜 술을 마시고 주민 19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타전됐으니까.

 

인테르팍스통신에 따르면,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3일까지 마가단 시에서 가짜 술을 마신 주민 23명이 복통증세로 입원해 이가운데 19명이 사망했다. 말 그대로 독주(毒酒)를 제조하고 또 그걸 마신 것인데, 지역 내무국(우리의 경찰)은 '사마곤'이라는 가내 술을 제조해 판매한 지역 주민 4명을 검거했다고(대낮에 아직도 이런 일이 벌어지는 나라가 러시아 말고 또 있을지 궁금하다). 해서, "러시아는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다." 웬만해야 말이지.

 

"러시아는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다"(1866)는 사실 19세기 러시아의 표도르 이바노비치 츄체프(1803-1873)의 시구이다(다른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러시아시도 제목이 없는 경우 대개 1행을 제목처럼 사용한다). 츄체프란 이름을 영어로 음역하면 'Tjutchev'가 되는데, 이에 대한 우리말 표기는 '튜체프', '츄체프', '쮸체프' 등 다양하다('쮸쳅'이라 표기하는 경우도 있다). 귀족출신에다 외교관이었는데 시인으로 인정받은 것은 좀 나이가 들어서이다. 해서 '철지난 낭만주의' 경향의 철학적인 시들을 주로 썼다. 

 

하지만 문학사에서의 평가는 후한 편이어서 푸슈킨(1799-1837) 이후의 19세기 최대 시인으로 꼽힌다. 그리고 그러한 평가에 한몫한 이가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이다. <츄체프와 도스토예프스키>란 연구서가 있는 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이다. 사실, 둘의 친연성은 "러시아는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선언적인 시에서도 유추해볼 수 있다(도스토예프스키 왈, "유럽은 러시아를 이해할 수 없지만 러시아는 유럽을 이해할 수 있다." 왜 아니겠어?). 

 

 

츄체프의 시들은 더러 우리말로 번역/소개돼 있지만 시집으론 <말로 표현한 사상을 거짓말이다>(새미, 2001)가 유일하다. 어차피 시란 (잘) 번역되지 않으므로 아쉽지만 유감스러울 정도는 아니다. 그 번역시집은 내가 안 갖고 있는데, 지금 인용하고자 하는 번역은 예일 리치먼드의 <러시아, 러시아인>(일조각, 2004), 107쪽에도 실려 있는 것이다.   

 

지성만으로는 러시아를 이해할 수 없네,

별난 기준이 그 광대함을 채우고 있기에;

러시아는 홀로 유일무이하게 서 있도다 -

러시아에서는 오로지 믿음뿐.

 

매우 유익한 러시아 입문서로서 내가 추천까지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시만큼은 부정확하게 번역되었다. 음역한 원문과 영역, 그리고 나의 번역을 차례로 나열하면 이렇다: 

 

Umom Rossiju ne ponjat',

Arshinom obshchim ne izmerit';

U nej osobennaja stat' -

V Rossiju mozhno tol'ko verit'.

 

One cannot understand Russia with the mind;

She cannot be measured with a common yardstick.

She has a special image.

One can only believe in Russia.         

 


러시아는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다.

러시아는 보편적인 척도로 잴 수 없다.

러시아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으니

러시아를 우리는 단지 믿을 수 있을 뿐이다.

시 흉내를 내느라고 '러시아'란 두운을 맞추었는데, 내용은 간단하다. 러시아는 뭔가 특별하기 때문에 이성으론 이해할 수 없고 다만 믿을 수 있을 뿐이라는 것. 그러니 "지성만으로는 러시아를 이해할 수 없네,/ 별난 기준이 그 광대함을 채우고 있기에;/ 러시아는 홀로 유일무이하게 서 있도다-/ 러시아에서는 오로지 믿음뿐."이란 번역(특히 2행)이 부분적으로 엉뚱하다는 건 알 수 있다. 요컨대, 우리는 "러시아는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시조차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   

 

 

 

 

어제 날짜 한겨레의 칼럼 '유레카'는 '영혼의 모독'이란 제목을 달고 있었는데, 이렇게 시작된다: "'사형은 영혼의 모독이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이다. 작가는 <백치>에서 토로한다. '선고문이 낭독되면 이젠 죽음이 기정사실화합니다. 바로 여기에 무서운 고통이 있습니다. 이보다 더 가혹한 고통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리고 덧붙여진다: "상상이 아니었다. 절절한 체험이다. 38살 때다. 사회주의 혁명사상을 논의하던 모임에 참여했다는 이유였다. 체포됐다. 사형선고를 받고 사형대에 올랐다. 집행하던 순간이었다. 니콜라이 1세의 특사가 내렸다. 시베리아 유형에 처했다." 짧은 문장들로 아주 긴박했던 분위기를 묘사하고 있는데, 문제는 '38살 때' 아니라 '28살 때'라는 것('38살'은 필자의 착오 혹은 상상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1821년생이고 그가 페트라셰프스키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시베리아 유형에 처해지는 것은 1849년의 일이다. 팩트에 좀더 주의를 기울였으면 좋았겠다.

흥미로운 일이지만, 이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 혹은 '러시아 백치'는 들뢰즈 읽기에서도 종종 마주치게 된다. 들뢰즈의 철학극장, 혹은 철학의 경연장에서는 두 종류의 백치가 등장하는데, 그것은 '데카르트적 백치'('방법론적 백치'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와 '러시아 백치'이다. 라이크만이 <들뢰즈 커넥션>(현실문화연구, 2005)에서 정리하고 있는 대목을 따라가본다: 

"데카르트의 경연에서는 '백치'라는 새로운 개념적 인물이 등장한다. 이 백치는 프랑스어 같은 이성적 언어를 선호하는 인물로, 프랑스어는 학술어인 라틴어를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다. 들뢰즈는 이 인물이 독창적인 형상임을(비록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에 의해 예견된 것이라 할지라도) 알게 된다... 그러나 이 새로운 인물과 그 빛은 동시에 코기토, 즉 '나는 생각한다'를 철학의 최초의 출발점, 즉 전제조건 없는 출발점으로 만들려는 데카르트의 시도 안에 있는 암묵적인 가정을 드러낸다. 이 가정은 데카르트가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게 분배되어 있는 것이라고 선언하는 '통념'이라는 가정을 말한다."(77쪽)

비문인가 싶어 다시 읽어보니 굵은 글씨로 내가 표시한 대목은 오역이다(아무래도 역자의 '영어'에 좀 문제가 있는 듯하다). 원문은 "an Idiot who prefers a rational language like French, which anyone can understand to learned Latin."(37쪽) 표시한 대로 'prefer A to B' 구문이고, 여기서는 A에 해당하는 것이 '프랑스어' 그리고 B에 해당하는 것이 '학문어로서의 라틴어'이다. 데카르트적 백치는 현학적인 라틴어 대신에 프랑스어 같이 합리적인 언어를 선택한다는 것.

반면에 '새로운 인물(new persona)'로서의 '러시아 백치'란 데카르트적 백치의 '암묵적인 가정' 마저도 벗어던진 백치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어떤 새로운 인물이 통념이라는 사유학적인 기본전제 없이도 해나갈 수 있도록 나타나게 되며, 대신에 러시아문학에서 백치 또는 배우지 않은 사유자라 불리는 인물 형태의 조건에 근접하게 된다."(78쪽) '백치 또는 배우지 않은 사유자'는 'Idiot or unlearned thinker'의 번역이다.

그러니까 러시아 백치는 데카르트적 백치를 더 극단에까지 밀어붙인 형상이라 할 만하다. 그는 프랑스어 같은 자연어의 규칙마저 기꺼이/즐겁게 포기하는 것이다(참고로, 러시아문학에서 가장 철저한 '데카르트적 백치'의 형상이 등장하는 작품으로 톨스토이의 <참회록>(1882)을 들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만큼 <참회록>은 러시아적이기보다는 프랑스적이다. 톨스토이에게서 <참회록>은 새로운 삶을 위한 '방법서설'격의 작품이다).

 

 

 

 

그렇다면, "철학에서 우리는 데카르트의 백치보다는 러시아의 백치를 보는 데서 출발한다."(In philosophy, we start to see a Russian rather than a Cartesian Idiot.) 그 백치는 "프랑스어와 같은 '자연어'에서조차도 개념적으로 낯선 어떤 것을 찾기 시작한다." 이때 들뢰즈가 예시하는 사례는 "폴란드어로 글을 쓰거나 철학적인 독일어를 '춤'으로 만들려는 니체의 꿈"이다. 그리고 (들뢰즈가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라이크만이 들고 있는 사례는 "늘 공적인 교수직과 새로운 분석철학의 '스콜라주의'의 도래에 대해 안절부절" 못했던 비트겐슈타인이다. 거기에 내가 들고 싶은 사례는 실제로 춤을 추었던 러시아의 무용수 니진스키이다(그의 일기 <영혼의 절규>를 보라. 러시아어 원제는 <감정>). 그리고 영화의 용도를 전혀 다른 것으로 만든 타르코프스키. 하면, 니체도 비트겐슈타인도 니진스키도 타르코프스키도 모두가 백치였던 것. 러시아 백치.

다시 들뢰즈: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에서 실제로 철학에서 '전제들 없이 시작하는' 유일한 길은 일종의 러시아 백치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통념이라는 가설을 포기하고, 자신의 '해석 나침반'을 던져 버리고, 그 대신 자신의 '백치짓'을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는 '특이한' 스타일로 바꾸고자 노력하는 그런 백치가."(79쪽) 그런 러시아 백치는 보여주는 것은 무엇인가?

"러시아 백치가 보여주는 것은, 철학적 사유는 학습되는 것이 아니며, 뿐만 아니라 철학이 자유롭게 창조된다는 말은 모든 사람이 동의할 때나 규칙에 따라 놀이할 때가 아니라, 반대로 규칙이 무엇이며 놀이자가 누구인지가 미리 주어지지 않는 대신 (그것들이) 새롭게 창조되는 개념과 새롭게 제기되는 문제들과 함께 등장할 때다."(79-80쪽) 그러니까 데카르트적 백치가 최소한의 규칙을 갖고서 출발한다면, 러시아 백치는 그마저도 빼먹고서 춤을 춘다. 이어지는 문장은 좀 길다.

"다시 말해 이런 백치들은, 처음에는 직관에 의해 주어지고 그 다음에는 많은 복합된 방식으로, 들뢰즈가 인용하기를 좋아한 라이프니츠의 격언, 즉 '우리는 항구에 닿았다고 생각할 때 사실은 여전히 바다 한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뿐'이라는 격언이 암시하는 방식으로 다른 개념들과 얽히게 되는 개념들을 창조함으로써, 더이상 고정된 방법들이나 선행하는 형식들에서 나왔다고 말할 수조차 없으며 그 대신 자신의 특이한 문제들로 작업하는 데 만족하는 철학을 통해 '실천학적으로 가정'된 것을 극화하도록 돕는다."(80쪽)

이해를 돕기 위해서 줄거리는 굵은 글씨로 표시했는데, 다소 부정확한 대목이 있다. 굵은 글씨로 표기한 대목의 원문은 이렇다: "Such Idiots help dramatize, in other words, what is 'pragmatically supposed' by a philosophy that no longer even purports to be derived from fixed methods or prior forms, that is instead content to work out its pecular problems..."(38쪽) 

역자는 'content to'를 '-에 만족하는'으로 옮겼는데, 'content to-inf'는 ('willing to-inf'처럼) '기꺼이 -하다'란 뜻이 아닌가 한다. 그러니까 우리의 백치들은 사전의 어떤 공식이나 방법 등의 도움을 받지 않고 그 고유한(그리고 아주 복잡한) 문제들을 풀기 위해 기꺼이 달려드는 것. 해서 이 백치들은 난생 처음 수박을 먹어보고(물론 '수박'이란 개념도 갖기 이전에), 난생 처음 헤엄을 쳐본 이들이다(물론 '수영'의 방법도 배우기 이전에). 아무도 가르쳐주기 전에.

 

 

 

 

그렇다면 이 백치와 유사한 형상, 혹은 인물은 <안티 오이디푸스>(와 레비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에 나오는 손재주꾼(handyman)이겠다. 국역본 번역으론 "우리는 이것저것 긁어보아 잘 꾸려내는 자들이다." 불어로는 'bricoleurs'. '개념 없는 자들', 하지만, 개념 대신에 재주를 갖고 있는 자들. 그래서 아무런 개념도 없이 기꺼이 자르고 오려붙이고 해서 무얼 만들거나 아니면 결국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놓는 자들. 아이들. 백치들. 이쯤이면 들뢰즈가 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그토록 경탄해마지 않는지 이해할 만하다. 그에게, 혹은 진정한 경험론자에게 세계는 말 그대로 '원더랜드'인 것!  

 

 

 

 

'앨리스'의 러시아식 이름은 '아냐'이다. 그리고, '아니시야', '안토니나' '안나'가 다 같은 이름들이다. '안나 카레니나'. 이 대목에서 얼마전 장정일 선집의 한권으로 다시 나온 소설 <보트 하우스>(김영사, 2005)를 잠시 떠올려보는 것도 괜찮겠다(이전에 '모스크바통신'에서 한번 소개한 바 있다). IMF가 배경인 소설에서 주인공 애라가 다니는 노문과에는 그녀가 다니는 노문과에는 네 남자 친구가 있었는데, “음악을 좋아하는 차이코프스키. 영화를 좋아하는 타르코프스키. 문학을 좋아하는 도스토예프스키. 미술을 좋아하는 칸딘스키.”가 그들이었다. 이 “네 명의 ‘스키’는 단돈 5만원을 주고 산 폐차 직전의 차를 타고 4년 동안 함께 단짝이 되어” 어울려 다녔는데, “강북에서 프롤레타리아의 피를 빨아, 강남에 부르주아의 천국을 만든 거”라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고 한 건을 계획한다.

“‘스키’들이 정한 곳은 압구정동에 있는 외제품 전문 백화점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거기에 당도했을 때는 거리에는 차량과 인파가 붐볐고 백화점은 아직까지 영업중이었다. 유럽식 외관을 하고 있는 외제품 전문 백화점의 대리석 벽에 넷이 나란히 오줌을 누기 위해서는 유치장행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에코와 푸코 그리고 바흐친을 이리 저리 섞고 아전인수식으로 변조하여 장래의 문화평론가로 행세하게 될 노어노문학과의 네 ‘스키’들은 전혀 그런 대가를 치를 생각이 없었다. 길거리에 방뇨를 하는 것은 꺼림칙하지 않지만 파출소에 붙들려 들어가 경을 치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맥주와 보드카까지 섞어 마신 ‘스키’들은 보무도 당당하게 백화점 현관으로 걸어 들어가서 도우미의 안내를 받아 현관에서 가장 가까운 화장실을 찾아 들어가 시원하게 오줌을 눈다. 그러면서 “너무나 자연스레, 생리적으로, 체제 친화적이 되었다.” 이들과 같이 차를 타고 동행하던 애라는 히스테리를 부리며 차에서 내려 인도로 뛰어가는데, 그런 “까닭을 이 멍청한 ‘스키’들은 조금도 알지 못했지만, 어떤 현상도 자신들이 분석하지 못할 게 없다고 믿는 이 시건방진 ‘스키’들은 그 가운데 한 명의 ‘스키’가 중얼거리는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흠, 알 수가 없는 여자군. 안나 까레니나야.” 

05. 11. 08.

P.S. 들뢰즈의 '백치'는 영어로 Idiot(백치)로 옮겨지고 어떨 땐 fool(바보)로도 옮겨진다. (라이크만도 혼용하고 있는) 이 '백치'와 '바보'가 같은 것인지 구별되는 것인지 나는 아직 분간이 되지 않는다. 이전에 '바보를 포함하고 있는 세계'에서 헷갈렸던 이유이다. 어쨌거나 들뢰즈에 관한 페이퍼들이 몇 주째 밀려 있다. 머리속에서 웅성대는 말들을 얼른 쫓아내고 싶은데, 그간에 그럴 만한 시간을 내지 못했다. 오늘은 또 '백치들' 때문에 공치고. 하긴 이런 글에 공연히 시간을 축내며 '목숨 거는' 이유는 나 자신도 모를 일이다. 하긴 '로쟈'는 러시아인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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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네파벨 2005-11-08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너무나 잼있게 읽다가 (러시아 문학이라고는 근처에도 안가보고 들뢰즈와도 당근 안친하고-일때문에 들뢰즈 책을 억지로 몇구절 찾아본 적이 있기는 하지만-아무튼 무식이 깊은 제가 보기에도 재미있게 쓰셨네요...)

쿤데라의 소설에서도 바로 이런 이야기....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러시아인"에 대해 나오죠. 불멸에서...쿤데라가 호모 센티멘털리스(감정? 감성? 감상? 지상주의자들) 라는 개념을 설명하면서...
러시아를 유럽의 합리주의에 오염되지 않은 위대한 감성의 나라로 소개하지요.
러시아에서 누군가가 거절받은 사랑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면 감성이 메말라 비틀어진 이성의 나라 프랑스의 변호사들이 (잃어버린 감성에 대한 향수로!) 떼거지로 모스크바행 기차 한칸을 전세내 러시아로 달려가 치정범을 변호하고...치정범이 감사의 뜻으로 변호사에게 키스를 퍼부으면 변호사가 질겁을 하고 뒤로 물러나고.....상처받은 치정범이 또 살인을 저지르고...그래서 그 모든 것이 강아지와 순대의 셈노래(이게 무엇일까요? 뭔지 전혀 모르겠지만 또 알 것도 같은 알쏭달쏭한 번역문의 수수께끼처럼 신비스러운 매력^^)처럼 반복되었다......뭐 그런 내용의...

그나저나 데카르트적 백치와 러시아적 백치가 어떤건지 정말 궁금하네요. 특히 데카르트적 백치라는게 과연 무엇일지....궁금...궁금....

이네파벨 2005-11-08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글을 올리는 동안 나머지 부분을 올려주셨군요...
데카르트적 백치와 러시아 백치....흑흑 제겐 너무 어렵군요....
백치라는 말의 정의 조차 헷갈리고 있어욤...ㅠ.ㅠ

내가 바로 백치가 아닐까...나는 무슨 백치일까? (한국산 백치~)

로쟈 2005-11-08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읽어보시면 아마 이해되실 겁니다.^^

이네파벨 2005-11-08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히...어려워요.....

어딘가...좌뇌형 인간과 우뇌형 인간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자연과학쪽이 저의 일차적 관심사이니만큼...)

아무튼 오후를 축내가며 써주신 글....한 사람의 독자로서 감사드려요.

오후의 졸음을 쫓는 커피와 함께...정말 맛있게..향기롭게 음미했습니다.

yoonta 2005-11-08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테의 신곡에서부터 시..그리고 산문집까지 문학이라는 '원더랜드'에서 좌충우돌하시는 로쟈님의 모습도 '백치'라고 한다면 로쟈님에 대한 칭찬인까요?...
하루빨리 데카르트적 백치성을 회복하시어...흄의 경험론이후 진척이 없는 들뢰즈관련 페이퍼좀 올려주세염..눈 빠집니당.^^

그런데..들뢰즈커넥션번역은..쫌 심하네요..원서를 사볼라도 비싸서 못사고 있는뎅..어디 남아도는 복사본이라도 없으신지...ㅜ.ㅜ

이리스 2005-11-08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그냥 읽고만 지나가던 독자 --; 인데 오늘은 그래도 댓글 한줄 올리고 갑니다. 좋은글 항상 감사하게 읽고 있습니다. 꾸벅~

로쟈 2005-11-09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yoonta님/ 눈 빠지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주중에 강의 두 개 하고 논문 쓰고 애보면서, 게다가 집에서는 인터넷이 안되는 상황에서 몇 마디 올리기가 쉽지 않네요. <들뢰즈 커넥션>은 저처럼 복사하시면 됩니다. 국립도서관이나 대학도서관 등에서 (대출은 안되더라도) 복사는 가능하니까요. 저도 한때 국립도서관에서 하루 3-4시간씩 복사하곤 했습니다. 돈이 안되면 몸을 팔아야죠.^^ 낡은구두님/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 새구두 한 켤레 장만하시길!..
 

"네바 강의 환각"이란 기행문의 부제는 '라스콜리니코프와 더불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가다'이고, 이번에 나온 김윤식 교수의 <김윤식 선집 7 -문학사와 비평>(솔)에 실려 있다(85-113쪽). 읽어 보니, 고희를 앞둔 이 원로 비평가가 작년 8월에 네바강을 보기 위해 러시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것. 일정을 보니, 2004년 8월 21일 인천공항을 떠나서 페테르부르크에 도착했다가 돌아올 때는 모스크바를 거쳐서 2004년 8월 25일 귀국행 비행기에 다시 몸을 실었다. 인천공항에는 26일 오전쯤에 떨어졌을 테니까 5박 6일의 패키지 관광이지 않았을까 싶다.

 

 

 

 

올해도 5월부터인가 페테르부르크행 직항로가 다시 열리는데, 이 직항로는 작년 여름에 최초로 개설되었고 때문에 작년 여름엔 러시아, 특히 페테르부르크를 찾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았다. 이전에는 보통 모스크바에서 1-2박 정도를 하고 페테르로 가서 3일쯤 관광을 하고 다시 모스크바로 되돌아와서 서울행 비행기를 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던 것이 하절기에 직항로가 열리면서는 막바로 페테르부르크를 향하게 됐던 것이고, 김윤식 교수 또한 그런 여정을 밟았던 것이라 짐작된다(그리고 글의 내용으로 봐서 지난 페테르부르크 여행은 김 교수에게서 첫번째 경험이었던 듯).

그런 여정이 왜 필요했던 것일까? "네바 강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네바 강을 보고 싶다. 네바 강에 가야 한다. K교를 건너며 저물어가는 태양과 네바 강을 동시에 보아야 한다. 이렇게 중얼거리며 오랫동안 별러 왔소."란 시작이 말해주듯이 그것은 네바강이 파리도 아니고 런던도 아닌 페테르부르크에만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죄와 벌> 때문이기도 하다. 'K교를 건너며'란 표현이 말해주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결국 필자가 직접 인용하고 있지만, <죄와 벌>(1866)의 시작은 이렇지 않은가? "7월 초순, 찌는 듯이 무더운 어느 날 저녁 무렵, 한 청년이 S골목 뒤의 아파트에 이중으로 세 들어 있는 그의 방에서 바깥 길로 나와 느릿느릿 망설이는 듯한 걸음걸이로 K교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 네바강을 노비평가이자 노교수는 보고 싶어한 것. "태양이 저물어가는 네바 강, 한 대학생 청년(라스콜리니코프)의 망상을 해방시킬 수 있는 강 네바. 만일 네바강이 아름답지 않다면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났으리. 이것이 내가 네바강을 보고 싶은 까닭이오." 그러니까 네바강의 환각은 러시아 작가 도스토예프스키가 빚어놓은 환각이다. 하지만, 그 환각은 욕망과 마찬가지로 직접적인 것이 아니라 간접적/매개적인 것이다. 누구에 의한? 노교수는 일본 작가 마사무네 하쿠초와 거물 비평가 고바야시 히데오의 경우를 든다.

고바야시의 <네바강>이란 글의 한 대목: "어쩌다 러시아 여행 얘기가화제로 되었을 때 마사무네 씨는 얘기를 하다 말고 갑자기 머리를 돌려 먼데를 보는 표정이 되어 '네바강은 참 좋아. 네바강은 참 좋아'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마사무네 씨의 심중은 물론 알 수가 없었지만 어쩐지 나는 아아, 이 분은 라스콜리니코프의 일을 생각하고 있구나라고 멋대로 생각했다... 하바로프스크에서 모스크바행 시베리아 상공에서 나는 그것을 생각해냈다. 모스크바의 호텔 큰 식당에서 재즈 소음을 들으며 춤추는 남녀를 보면서, 네바강을 보고 싶다라고 문득문득 생각했다." 고바야시가 보고 싶어한 네바강이므로 '나' 또한 보아야 하지 않을까?

노교수는 <죄와 벌>을 열번도 넘게 읽었다고 한다. 콘스탄스 가네트 역의 영역본도 같이(가네트 여사는 가장 저명한 러시아문학 번역자의 한 사람이다). 그리고 프랑스 영화와 러시아 영화도 보았다고( "키도 작고 초라한 전당포 노파를 청년이 온 힘을 쏟아 큰 도끼를 번쩍 들어 내리치는" 장면이 나오는 러시아판 <죄와 벌>과 그 주연 배우에 대해서는 '모스크바 통신'에서 언급한바 있다. 예상보다도 '큰 도끼'라는 게 내게도 인상적이었다). 그러니 페테르부르크행은 벼르고 벼르던 여행이었던 것이고, 이미 정년퇴직하고 고희를 앞둔 노교수는 마침내 결단을 내리고 가방을 챙긴다. 예술이라는 환각에 한번 더 몸을 싣게 된 것.

그리고, 그렇게 해서 도착한 것이 '환각의 도시' 페테르부르크이고 에르미타주 박물관이다(에르미타주는 페테르관광의 제1코스이다). "그렇소. 이 에르미타쥐 박물관의 덩치는 제법 컸소." 에르미타주에 전시된 그림 이야기가 잠깐 나오지만, 노교수의 기행문은 대부분 페테르와 관련한 문화적 기억으로 채워져 있다. 대한제국의 특사 민영환의 페테르 방문기부터, 이태준의 <소련기행>과 앙드레 지드의 <소련기행>, 그리고 루카치의 도스토예프스키론에 이르기까지. 사실 직접 눈으로 본 러시아, 그리고 페테르부르크란 이런 문화적 기억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아름다움 풍광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대단한 무엇으로 격상되는 것은 '환각' 혹은 '위대한 망집'과 함께함으로써이다.

"비행기 속에서 포도주 몇 잔에 내가 곯아떨어졌다고 말하지 마시오. 주체할 수 없는 황당무계한 러시아적 망집의 무게에 짓눌려 내내 숨조차 쉴 수 없었던 것이오. 그렇다면 5박 6일 동안 나는 과연 마법에 걸려 꼼짝 못하고 허우적거리기만 했던가. 네바 강의, <죄와 벌>의 포로이기만 했던가. 내가 숨 쉴 틈은 아무 데도 없었던가."(112쪽) 과연 어느 정도였던가? "2004년 8월 25일 9시 반. 저무는 모스크바 공항을 뒤로 하고 귀국길에 올랐소. 내내 <죄와 벌>에 시달렸소. 크렘린 광장에서도 바실리 성당에서도 아르바트 거리에서도 그러했고 레닌 묘소 앞에서도 그러했소. 심지어 볼쇼이 극장에서 <백조의 호수>를 보면서도 그 <백조의 호수> 너머에 있는 <죄와 벌>이 보였소."(109쪽) 요컨대,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들린 이가 작년에 작고한 시인 김춘수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다행히도 그것만은 아니어서, 노교수는 러시아적 망집이 아닌 그만의 고유한 환각과 대면할 수 있었다. 그 계기를 만들어준 건 에르미타주에서 마주 친 김흥수 화백의 <승무도>("피카소의 방에서 나와 바야흐로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복도에서 문득 마주친 <승무도>".  이 그림이 에르미타주에 걸려 있는 유일한 한국 그림이며, 정말로 '복도'에 걸려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여름궁전'에서 트럼펫 연주로 들은 <고향의 봄>(거리의 악사들이 아르바이트로 관광객들을 위한 레파토리를 연주한다). 이 두 가지가 그를 러시아 여행의 피로와 멀미로부터 구해준 셈이다.  

"내 것인 환각 하나, 내 것인 환청 하나에 가까스로 매달려 있는 나를 깨운 것은 덜커덩 하는 비행기 바퀴 내리는 소리였소. 긴 다섯 개의 낮이었고 짧은 여섯개의 밤이었소. 공항에 내리자 늙은 마누라가 근심스레 기다리고 있었소."(113쪽)

개인적으로 나는 작년 8월 25일 저녁 시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모스크바 통신'에서는 그날을 니체의 사망 104주년이 되는 날로 기록하고 있다). 일행과 같이 한국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서 한국 노래들을 부르기도 했던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 시간에 한국에서 온 노교수는 모스크바 제2 공항에서 서울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니 나름대로 인연이라 할 만하다(그날 그 시간에 나는 노교수와 '함께(?)' 모스크바에 있었던 것이다!). 그 인연은 아마도 더 이어질 만하다. 지난 여름 내내 나 또한 <죄와 벌>에 시달렸던바, 새로운 번역이 나온다면 노교수도 한번쯤 읽어줄 듯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너무 멀지 않은 장래이길 바란다...

05. 04. 30.

P.S. 더위를 좀 식히려고 후배들과 칡냉면을 시켜먹고서 배부른 김에 몇 자 적었다. 내가 네바강을 처음 본 건 작년 10월초이며, 나 대로의 기행문은 '모스크바 통신'을 참조하실 수 있다. 평소에 존경하는 노비평가의 여정이 우연히도 '익숙한' 것이서 덩달아 '네바강의 환각'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었다(친구와 함께 걷던 네바강의 주변의 거리들과 다리들. 그리고 라스콜리니코프의 집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뒤지고 다니던 기억들 등등). 비록 나로선 남성적인 네바강보다는 여성스러운 모스크바강에 더 애정을 느끼긴 하지만...

끝으로, 노교수의 글에 들어 있는 몇 가지 오타 및 착오를 적어둔다. 98쪽에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페테르부르크에까지 갔던, 대한제국의 민영환 특사  일행이 "상트페테르부르크(당시는 페트로그라드)에 왔다가 모스크(바)로 되돌아가 이번엔 한참 건설 중인 시베리아 철도로 귀국했소."(98쪽)라고 돼 있는데, 페트로그라드란 명칭은 1차 대전 발발(1914)와 함께 독일식 이름인 페테르부르크를 대신했던 이름이므로 대한제국시절과는 무관하다.

 

 

 

 

그리고, 100쪽, 각주 13)에서 이태준의 책 <소련기행>(깊은샘)이, '졸저'로 돼 있는데, 당연히 오기이다. 그리고 103쪽에서 "범죄 전문가인 예심판사 포로비치의 첩자일지도 모르는 인물 스비드리가이로프"란 표현이 나오는데, '포로비치'는 '포르피리'의 착오인 듯하고 스비드리가일로프가 그의 첩자일지 모른다는 것은 처음 듣는 내용이다. 106쪽 등에서 <지하생활자의 수기>에 나오는 수학공식이 '1+1=2'로 돼 있는데,  보다 정확하게 하자면 '2+2=4'라고 해야 맞다.

 

 

 

 

더불어, 111쪽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직계 혁명가 레닌"이란 표현도 오해의 소지가 있다('라스콜리니코프의 직계'라고 하면 모를까). 굳이 계보를 찾자면, 레닌은 <무엇을 할 것인가>(1863)의 작가/비평가 체르니셰프스키의 직계이며, 도스토예프스키는 체르니셰프스키 등의 동시대 진보적 인텔리겐치아들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다. 당연한 결과이지만, 사회주의 혁명 이후에 도스토예프스키는 소비에트에서 대단히 폄하되며, 1930년대에는 (그의 영향을 많이 받은) 고리키조차도 그런 비판에 가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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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러시아적이면서도 가장 유럽적인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1866)은 이후 <카라마조프의 형제들>(1880)에 이르는 위대한 작가적 여정의 첫 번째 이정표이다. 이미 작가는 중편 <지하생활자의 수기>(1864)를 통해서, 당시 유럽과 러시아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던 공리적 사회주의의 이념을 공박하면서, 진정 '살아있는 삶'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 바 있다. <죄와 벌>은 이러한 관심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지하생활자의 수기>에 등장하는 2×2=4의 수학적 공리의 세계(합리적 이성의 세계)는 <죄와 벌>에서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의 범죄이론으로 변형된다. 그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범인(凡人)과 비범인(非凡人)으로 나뉠 수 있고, 이때 비범인은 초법적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그는 역사상의 모든 입법자나 건설자들은 이와 같은 권리를 행사해왔다고 주장함으로써 자신의 이론을 정당화한다.

가난한 전직 대학생 라스콜리니코프에게 중요한 것은 과연 자기 자신이 비범인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러시아어로 '(범)죄'의 어원적인 뜻은 '한 발작 넘어섬'인데, 그는 자기 자신이 모든 장애를 딛고 한 발작 넘어설 수 있는가를 시험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고리대금업을 하는 전당포 노파에 대한 살인을 계획하고 이를 실행한다. 하지만 살인 사건 이후에 그는 줄곧 혼미한 정신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데, 그것은 주로 자신이 한 발작 넘어서서 첫 번째 걸음을 옮기는 데 실패했다는 자책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에게는 일종의 정신분열이 일어나는데, 학대받는 늙은 말을 끌어안고 울던 유년시절의 라스콜리니코프와 유럽 합리주의의 세례를 받은 청년 라스콜니코프 사이의 분열이 극대화되는 것이다. 이것은 동시에 러시아와 유럽의 분열을 함축한다.

사실 주인공의 이름에서 '라스콜'은 러시아어로 분리/분열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분리/분열이 해소되는 것은, 루터가 '악마의 창녀'라고 부른 이성의 대변자 라스콜리니코프가 자수를 결심하고 성스런 창녀 소냐의 권유대로 광장에서 대지에 입을 맞추게 됨으로써이다. 하지만, 8년간의 시베리아 유형을 선고받은 라스콜니코프가 진정한 갱생에 이르는 과정의 이야기는 작가의 말대로 이 작품의 주제가 아니다. 나폴레옹 모방이 아닌 그리스도 모방으로서의 진정한 인간의 삶, 혹은 위대한 죄인의 생애를 묘사하고, 고통과 수난을 통한 삶의 구원을 역설하고자 한 작가의 고투는 이후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의 알료샤에 이르는 여정을 남겨놓고 있다.

<죄와 벌>의 현재적 의의란 어떤 것일까? 라스콜니코프의 이론과 그 실행을 소비에트 러시아(1917-1991)의 건설과 파산에 견주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 작가가 유난히 강조한 바, 결코 변증법으로 대체할 수 없는 '살아있는 삶'은, 모두가 합리적/계산적 이성에 근거한 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닌, 새로운 정치학으로서의 윤리학을 요구한다. 역사의 종언 이후에 우리에게 남겨진 삶은 바로 이 갱생의 삶이다.

200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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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같은 페테르부르크가 나에게 역겹지 않다고, 거리에서 욕설과 밀고 사이에서 사는 것이 나에게 즐거우리라고 그대는 정말 생각하는가?”라고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썼던 푸슈킨은 한편으로 “너, 표트르의 창조물을 나는 사랑하네, 너의 엄격하고 균형잡힌 모습을 나는 사랑하네.”라고 페테르부르크를 예찬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 러시아 국민문학의 아버지가 이중인격자인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이중성이란 것은 표트르의 도시이자 성 베드로의 도시, 페테르부르크의 본성(!)이자 페테르부르크 신화의 모순적인 중핵일 따름이다.

 

  



 

2003년이면 이 제정러시아 시절의 수도 페테르부르크가 탄생 300주년을 맞는다. 페테르부르크는 1703년, 그때까지 유럽사의 주류에서 이탈돼 있던 러시아를 서구화․근대화의 길로 이끈, 러시아란 말의 앞다리를 채찍으로 힘차게 들어올린 표트르 대제에 의해 핀란드만과 네바강 어귀의 늪지에 건설되었다. 즉 페테르부르크는 표트르 대제의 머리가 잉태한, 당대의 가장 거대한 계획도시이며, 늪지에 건설되는 바람에 15만명 이상의 인명을 희생시킨, 무덤 위에 세워진 도시이기도 하다. 이 불가능해 보이는 대공사가 어떻게 가능했을까? “우리의 황제께선 도시 전체를 건설하신 다음 그것을 땅위에 내려놓으셨소.”라는 전설이 이에 대한 답변이다. 요컨대 페테르부르크는 기적의 도시이자 적그리스도의 도시, 악마의 도시이다. 여기서 페테르부르크는 자연스럽고 가장 러시아적인 도시, 아니 ‘커다란 시골’ 모스크바와 대비되는 지극히 추상적이고 비러시아적인 도시로서의 신화적 의미를 획득한다.

 

 

 

 

페테르부르크의 이러한 신화적 의미장을 재현/변주시키는 일련의 문학작품들을 러시아문학사에서는 아예 ‘페테르부르크 텍스트’로 분류한다. 페테르부르크 텍스들에서 이 인공도시는 환상적이고 유령적인 공간이라는 성격을 부여받으며 ‘환영성’과 ‘극장성’을 그 본성으로 거느린다. 이 도시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믿을 수 없는 환영들이며 동시에 가식적인 연극들이다. 그 페테르부르크 텍스트의 머리에 푸슈킨의 <청동기마상>(1833)이 자리한다.

네바강가에 세워진 도시답게 돌의 도시 페테르부르크는 주기적으로 대홍수라는 자연의 재난을 겪게 되는데, 이 작품의 배경은 1824년의 대홍수이다. 가난한 하급관리로서 약혼녀 파라샤와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던 예브게니는 대홍수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미치광이가 되어 페테르부르크를 헤매다가 표트르 대제의 동상인 청동기마상과 마주치게 되고, 그에게 증오의 시선을 보낸다. 하지만, 곧바로 이 청동기마상에게 쫓기는 환상에 사로잡히며 끝내는 죽음에 이르고 만다. 이 작품에는 페테르부르크에 대한 예찬과 한 ‘사소한’ 인간의 비극적인 죽음이 공존하는데, 그것이 바로 페테르부르크의 이중적인 진실이다. 페테르부르크는 서구화된 문명의 상징적 공간이면서 동시에 끔찍한 묵시록적 공간이기도 하다는 것.



 

 

 

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한 고골의 이야기들 역시 ‘페테르부르크 텍스트’에서 빼놓을 수 없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넵스키 거리>(1835)이다. 제목이 말해주듯이 이 작품의 주인공은 페테르부르크의 대표적인 중심가인 넵스키 대로이다(우리의 종로쯤 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두 인물, 피스카료프와 피로고프는 넵스키 거리를 걷다가 각기 한 여인씩의 뒤를 쫓는다. 화가인 피스카료프가 쫓아간 미지의 여인은 유곽으로 사라지는데, 그녀가 매춘부라는 사실을 알게 된 피스카료프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아편과 환상에 의지하다가 면도날로 자신의 목을 긋는다. 반면에 속물적인 장교인 피로고프는 뒤쫓아간 유부녀와 밀회를 하다가 그 남편에게 들켜 흠씬 두들겨맞는다. 무엇이 이러한 에피소드들을 만들어내는가? 그것은 페테르부르크의 악마성을 대표하는 넵스키 거리의 환영적인 불빛들이다. 그대, 페테르부르크에 가려는가, 부디 넵스키 거리의 불빛을 믿지 말지어다!

페테르부르크 텍스트의 정점은 가장 러시아적이면서 동시에 유럽적인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이다. 그의 작품들은 페테르부르크 텍스트의 표준으로 기능하기 때문에 ‘페테르부르크 사전’으로까지 불린다. 그는 페테르부르크에서 살아가는 가난한 대학생과 하층민들의 병든 일상과 과장되고 병리적인 심리를 치밀하게 해부해냄으로써 이 도시가 삶의 공간이 아니라 죽음의 공간이라는 사실을 명시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실제로 19세기의 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의 모든 도시 가운데 사망률이 가장 높은 도시였다. 더불어 여성 인구에 비해 남성 인구가 지나치게 많은 점이 특징적인데, 여성은 전체 인구의 30%에 불과해서 이 도시에는 매춘업과 비합법적인 성문화가 성행했다. 때문에 전체 아이들의 1/4이 비합법적인 아이들이었고(1870년대), 성병, 정신병, 폐병, 알콜중독, 자살자 수에 있어서 단연 러시아 1위였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1866)의 배경 또한 바로 그러한 도시 페테르부르크란 사실은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공리주의라는 서구 사상에 ‘감염되어’ 벌레만도 못한 전당포 노파를 도끼로 살해한다. 하지만 그의 살인에 적극적인 조력자 역할을 하는 것은 찌는 듯한 더위와 숨막힐 듯한 악취로 넘실대는 한여름의 페테르부르크이다. 그를 뒤쫓는 예심판사 포르피리는 라스콜리리코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신선한 공기’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결코 과장이 아닌 것이다. 결국 라스콜리니코프의 새로운 삶은 시베리아라는 새로운 공간에서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이러한 일련의 작품들이 빚어내고 있는 페테르부르크 신화는 20세기초 작가들에게까지 계승되는데,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안드레이 벨르이의 <페테르부르크>(1905)이다. 하지만 그러한 페테르부르크가 요즘은 자본주의에 물든 화려한 모스크바와 비교하여 러시아적이고 ‘시골스런’(!) 도시의 인상을 풍기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만하다.

  

 

 

 

* 이 글을 쓰는 데 참조한 글은 로트만 등이 쓴 <시간과 공간의 기호학>(열린책들)과 이덕형의 <빛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책세상)이다. 몇몇 인용문구들은 그 책들에서 얻어온 것이다. 그밖에 마샬 버만의 <현대성의 경험>(현대미학사)에서 이 주제와 관련한 유익한 내용들을 발견할 수 있지만, 분량상 이 글에는 참조되지 않았다. 러시아에서는 <페테르부르크의 형이상학>이라는 단행본 엔솔로지도 나와 있다.

200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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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도스토예프스키의 페테르부르크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12-20 17:34 
    이덕형 교수의 <도스토예프스키 판타스마고리아 상트페테르부르크>(산책자, 2009)에 대한 리뷰기사가 있기에 스크랩해둔다. 두 주 전 기사인데, 미처 알지 못하고 지나칠 뻔했다. 내친 김에 오래전에 쓴 글도 찾아서 먼댓글로 링크해놓는다.   한겨레21(09. 12. 04) 환각의 도시를 떠돈 도스토예프스키의 영혼  ‘성 베드로의 도시.’ 1703년 표트르대제가 세운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 정신적 삶의 위업’
 
 
2006-08-01 2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정하가 엮은 에이젠슈테인의 <몽타쥬 이론>(영화언어, 1990)에서 1부를 읽다. 주로 자전적인 내용으로서 러시아 영화와 주변 인물들에 관한 얘기가 덧붙여져 있다. 120쪽 정도의 분량을 훑어봤는데, "나는 왜 영화연출가가 되었는가?"(1944)란 자기 분석, 일종의 정신분석적인 글이 그나마 인상적이다. 보통의 착한 아이들도 어릴 때는 무얼 부수고, 분해하고, 못살게 구는 '나쁜 짓들'을 하는데, 제 때에 그런 짓들을 해보지 못한 '얌전한' '나쁜 아이'는 뒤늦게서야 그런 파괴적인 본능에 눈을 뜨게 되는바, 영화감독의 길이란 바로 그런 나쁜 아이의 길이라는 것이 에이젠슈테인의 자기분석적인 주장이다.

그의 말을 인용해 본다. "파리나 잠자리나 개구리에 적용되지 않았던 잔학성은, 연출가로서의 나의 작품의 주제, 방법, 이데올로기의 선택에 격렬한 특징을 부여하게 되었다. 사실 나의 영화에는, 군중에게 포화를 퍼붓거나, 가난한 농민들을 밧줄로 묶어 머리까지 땅 속에 파묻고 그 위를 말발굽이 짓밟거나(<멕시고 만세!>), 오뎃사의 계단에서 아이들을 짓뭉개거나(<전함 포템킨>), 또는 지붕에서 떨어뜨리거나(<파업>), 부모에게 아이를 죽이게 하거나(<베진 초원>), 타는 장작불 속에 던져 넣거나(<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스크린에 소의 생피를 흘리거나(<파업>), 배우의 피를 흘리게 하는(<전함 포템킨>) 등의 잔인한 장면들이 가득찼다. 또한 소를 독살하기도 하고(<총노선- 낡은 것과 새 것>), 황후에게 독이 퍼지게 하고(<폭군 이반>), 총에 맞는 말을 열린 도개교에 늘어뜨리기도 했다(<시월>). 그리고 포위된 카잔 성의 성벽을 따라 늘어선 사람들한테 비오듯 화살을 퍼붓기도 했다. 게다가 오랜 세월, 내 마음을 사로잡아 왔던 주인공이 다름 아닌 폭군 이반이라는 사실도 우연이 아닌 것이다. 실로 기분 나쁜 작가! 그럴 수도 있다. <폭군 이반>의 시나리오 속에 바로 그러한 작가의 자기 변호가 감추어져 있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37쪽)

에이젠슈타인의 영화론과 관련해서 전양준 편역, <이미지의 모험>(열린책들, 1990)이 유익하다. 이런 류의 감독론으로는 거의 최초의 책임에도 구성이나 내용 면에서 잘 짜여져 있고 풍족하다. 문제는 이미 옛날에 구입했던 이 책이 나에겐 실종도서라는 사실이다. 이것과 함께 사라진 영화책으로는 <세계영화사>(이론과실천)가 있다. 에이젠슈테인과 관련한 일화 중에서 서로 라이벌이었던 푸도프킨과의 관계를 극명하게 말해주는 것. "겉으로는 유대를 가장 하면서도 한번 고집이 나오면 이 두 비범한 예술가는 <골목대장>의 지위를 잃지 않으려고 싸우는 어린아이처럼 서로를 경계했던 것이다. 결국에는 두 사람 다 개를 사서 이 불쌍한 동물에게 상대방의 이름을 붙였다. 푸도프킨은 자신의 개 '에이젠슈테인'에게 앞발을 들고 서 있게 하는 훈련을 시켰고, 한편으로 에이젠슈테인은 개 '푸도프킨'에게 명령을 들으라고 고함을 쳤던 것이다."(16쪽)

에이젠슈테인의 장편영화 7편 중에서 구해볼 수 있는 건 4편뿐이었다. 이 20세기의 다빈치이며, 예술계의 다윈이자, 마르크스에 대해서 더 많은 걸 뽑아낼 수 있을까? 김석만 편역의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감독노트>(예하, 1991)도 읽을 만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에이젠슈테인의 <영화연출강의>(예건사)의 많은 부분은 <죄와 벌>의 장면화에 관한 것이다. <몽타주 이론>(영화언어)의 2부는 <이미지의 모험>(열린책들)과 내용이 겹친다. 다시 한번 <이미지의 모험>이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 궁금하다...

덧붙임: 이 글은 몇 년전에 쓴 것인데, 실종된 영화관련 서적 몇 권은 아마도 현재 조감독을 하고 있는 동생의 친구가 가져가지 않았을까 추측하고 있다. <이미지의 모험>을 나는 작년인가 다시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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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20 1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12-20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다시 한번'이라니요? 귀국하시면 더 바쁘고 중요한 일들이 많으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