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 때문에 몇년 전에 몇 자 적어둔 글을 옮겨온다. 카뮈의 <전락>에 대한 강의를 준비하면서 쓴 거 같기도 하다. 카뮈의 생애에 관해서는 올리비에 토드의 <카뮈>(책세상, 2000)를 참조했었다. 국내에서 나온 입문서로는 유기환 교수의 <알베르 카뮈>(살림, 20004)와 박홍규 교수의 <카뮈를 위한 변명>(우물이있는집, 2003) 정도를 비교적 최근에 나온 책으로 꼽아볼 수 있겠다. 물론 카뮈에 관한 가장 방대한 연구는 국내 최고의 권위자인 김화영 교수의 <문학 상상력의 연구>(문학동네, 1998 개정판)를 꼽을 수 있으며, 가장 최근에 나온 연구서는 김진식 교수의  <알베르 카뮈의 통일성 향수와 미학>(울산대출판부, 2005)이 있다.

카뮈(1913-1960)가 영향을 받은 러시아 작가들을 들라면, 톨스토이(1828-1910)와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가 대표적이겠지만(레르몬토프도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전락>의 원고는 <우리 시대의 영웅>이란 제목이 붙을 뻔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들에는 아무래도 도스토예프스키의 흔적이 더 많이 배여 있다. 대표적인 작품이 <전락>(1956)이다.

 

 



 

이 작품은 카뮈가 43세 때 쓴 것이고, 그가 1960년에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기 때문에, <최초의 인간>을 제외하면 거의 유작과도 같은 작품이 되어 버렸다. 많은 사람들은 이 작품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생활자의 수기>(역시나 도스토예프스키가 43세 때 쓴 작품)에 대한 20세기 버젼(혹은 변형)으로 이해한다. 나 또한 <전락>을 읽으면서 먼저 읽었던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벌써 십년도 더 된 얘기가 돼 버렸나...

나는 <지하생활자의 수기>(1864)를 대충 잡아도 대여섯 번은 읽은 듯하다. 더 읽었을지도 모른다. <전락>은 세 번쯤 읽었다. 이 두 작품을 비교하는 학위논문도 대충 읽어 보았다. 그래서? 과연 이 두 작가는 어디에서 만나고 어디에서 갈라지는 것인지? 요점을 말하자면, <전락>은 카뮈의 작품 중에서 가장 이채로운 작품이다. 달리 말하면, 카뮈적이지 않은 작품이다. 물론 이때 카뮈적이란 말은, <이방인>(1942)과 <시지프의 신화>의 카뮈를 말한다. 태양의 작가 카뮈, 지중해의 작가 카뮈.

 

 

 


도스토예프스키와 카뮈, 둘다 가난한 작가였고, 저널리즘에 종사하였으며(한 사람은 발행인으로, 한 사람은 기자로) 문학적 논쟁의 중심에 서 있었던 것도 일치한다. 그래서 <지하생활자의 수기>가 체르니셰프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1863)에 대한 문학적 응전(작가는 원래 리뷰를 쓰려고 했으나 결과는 작품이었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이었다면, <전락>은 <반항적 인간>(1951)을 놓고 벌어졌던 사르트르(패)와의 논쟁에 대한 작가로서의 답변서라고나 할까. 작품의 많은 모티브들은 이 두 논쟁을 염두에 두고서야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그리고 형식(스타일)상의 유사성. 둘다 1인칭 독백(타자의 말에 대해 자신을 방어하는 독백)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두 작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말들'뿐이다. 어떤 말을 하는가? 지하생활자는 물리법칙과 마찬가지로 도덕의 법칙이 있다고 주장하는 합리적 에고이스트들에 대해서 딴지를 걸며 흥분한다. 2*2=4 따위는 인간에 대한 모욕이라고. 클라망스(이 이름은 '사막에서의 외치는 자의 목소리'라는 성경 글귀에서 나왔다. 장 바티스트 클라망스는 세례자 요한이면서 외치는 자이다, 말 그대로)는 진정한 선행을 하는 대신에 그 흉내만 내면서 도덕적인 인간인 척 행세하는 자기 자신과 모든 사람들을 고발하고 심판한다(타인들을 심판할 권리를 얻기 위해 먼저 자기 자신을 혹독하게 심문한다).

그리하여 이 두 작품 모두 신이 사라진, 혹은 죽은 시대에 '성자'는 어떻게 가능하며 '신앙'은 어떻게 가능한지는 묻는다. 물론 작품 내에서는 아무런 해답이나 대안이 주어져 있지 않다. 그래서 두 작품은 모두 가장 음침하고 음울한 작품이 되었다. 한 전기작가의 말을 빌면, 두 작품은 모두 "(가장) 비참한, 그러나 낄낄거리며 조소하는 자포자기로 끝나는 유일한 소설"들이다.(이런 작품들을 좋아하다니!)



'속죄자이면서 재판관'이라는 클라망스의 자기 규정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카뮈가 아마도 가장 좋아했던 작품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이었을 듯한데(카뮈는 <악령>을 각색하여 무대에 올리기도 했었다. 이 각색본은 폴란드의 영화감독 안제이 바이다의 연출로 러시아 무대에도 올려졌었다. 내가 가졌던 기대에는 못 미치는 공연이었지만), 속죄자-재판관 모티브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 나온다(나의 심증이다).

조시마 장로가 죽기 전에 남기는 설교 중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의 심판자도 될 수 없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심판자 자신이 자기 앞에 서 있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죄인이며, 아니 자기야말로 다른 누구보다도 그 범죄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까지는 아무도 죄인을 심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깨달을 때 그는 비로소 심판자가 될 수 있다. 언뜻 듣기에는 정신나간 소리 같지만 이것이 진리다." 정신나간 소리같지만, 클라망스는 바로 이 진리를 깨닫고 실천한 자가 아닌가!

<전락>의 공간적 배경은 오늘처럼 흐리고 비가 많이 내리는, 안개가 자주 끼는, 물위의 도시 암스테르담이다. 알제리의 사막이 아닌 것. 이 가장 비카뮈적인 배경이 이 작품의 비카뮈적인 성격을 낳는다(카뮈는 1954년 10월에 이틀간 암스테르담에 체류한 적이 있다. 그리고 꼼꼼한 작가 카뮈에게서 <전락>은 아주 우발적으로 탄생한 작품이었다). 암스테르담은 역시나 우중충하고 진눈깨비 흩날리는 페테르부르크의 카뮈적 버젼이다. 말하자면 러시아적 공간이고 도스토예프스키적 공간이다. 클라망스의 목소리가 좀 세련되긴 했어도 지하생활자의 목소리를 닮은 것은 우연이 아니겠다. 그는 지하생활자를 '연기'하고 있는 것이다. 즉 '배우' 카뮈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연기하고 있는 것이다.

 

 

 



정리하자. 카뮈적인 세계란 무엇인가? "스스로 인정하는 무지, 광신의 거부, 세계와 인간을 테두리짓는 한계, 사랑받는 얼굴, 그리고 끝으로 아름다움, 이런 것이 바로 우리가 스리스 사람들과 한데 어울리게 되는 우리의 진영이다.('헬레네의 추방')이라고 적을 때, 그 '우리의 진영'에 속하는 것이 카뮈적인 세계이다. 거기엔 정오의 태양과 바다가 지배하는 세계이다(다시 한번 더 암흑의 철학은 빛나는 바다 저 위에서 흩어져 버릴 것인다. 오, 정오의 사상이여!).

그에게서 지중해가 가진 태양의 비극성은 북구(와 러시아)의 안개의 비극성과는 다른 비극성이다. 그의 정오의 사상은 도스토예프스키적인 암흑의 철학과 다른 철학이요 사상이다. 이러한 둘을 묶어주는 것은 인간의 부조리한/비극적인 운명에 대한 집요한 관심과 지극한 사랑이다.

만약에 진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있지 않다면 나는 그리스도 곁에 남겠다라고 도스토예프스키는 적었다. 카뮈라면? 아마 그는 진리 대신에 바다(지중해)를 택할 것이다. 그리스도도 바다도 없는 나는? 이렇듯 비오는 날에 이런 걸 적으며, 중얼거리고 탄식할 따름이다. "나의 삶은 내가 바라는 바에 적합하지 않는구나!..."

06. 03. 27.

P.S. 타이밍을 맞추자면 봄비라도 내리는 날에 옮겨적어야 했나 보다. 아래 그림은 러시아 화가 알렉산드르 볼코프(1960- )의 <비오는 날>. 이걸로 비오는 날의 분위기를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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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shot 2006-03-28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타 신고: 김진석->김진식

로쟈 2006-03-28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정헀습니다.^^

닉네임을뭐라하지 2006-03-28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퍼갈게용)

비연 2006-03-28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퍼갈께요. 도스토예프스키나 카뮈나 제가 다 좋아하는 작가들인데..
로쟈님의 페이퍼를 보니 아...그렇구나 하는 마음이 새삼...

로쟈 2006-03-28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소략한 글인데, 좋아하는 작가들을 한번 더 떠올릴 수 있다면 나름대로 제몫은 한 것이네요.^^

2006-05-28 0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테렌티우스 2006-12-20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뮈는 노벨 문학상 수상 직후에 벌어진 자신의 알제리 독립 반대입장에 관련된 비판에 이렇게 대답했지요 : "나에게 정의와 어머니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나는 어머니를 선택하겠다"...

그런데 이 답변은 그 맥락상 좀 (상당히) 문제가 있기도 한데요... 함 간단히 브리핑을 해드려보면...


이 대답은 카뮈의 스웨덴 노벨 문학상 수상 연설 직후 한 청중이 알제리 독립에 관한 그의 의견을 묻는 '스캔들'을 일으키면서 시작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1957년 카뮈의 수상 당시 젊은 푸코(카뮈는 1913년생, 푸코는 1926년생)가 스웨덴 프랑스 대사관의 문정관으로 일하며 그를 영접했었다는 사실인데, 푸코는 노벨상 위원회가 1954년 이후의 알제리 독립선언에 대한 일종의 헌정행위로서 카뮈를 '잘못' 선택했음을 이해하고 있었다.

카뮈는 일반의 예상과 달리 알제리 독립에 반대했으며(나도 카뮈를 너무나 좋아했던만큼, 이는 충격이었다. 왜 우리의 카뮈 연구서들은 이러한 점을 밝히지 않나? 하긴, 서양에서도 미시마 유키오가 파시스트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 알제리 문제와 관련하여,

'특히 프랑스의 정착 규모와 기간은 역사에서 그 어느 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문제를 야기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알제리의 프랑스인은 이 어휘가 지니고 있는 강력한 의미에서 역시 토착민이다. 더구나 순수하게 아랍적인 알제리는 - 정치적인 독립이라는 하나의 환상이 없었다면 - 결코 경제적 독립을 성취할 수 없었다. 프랑스의 노력이 아무리 부적절하였다 할지라도, 그것은 오늘날 그 어떤 나라도 기꺼이 책임을 떠맡으려고 동의하지 않는 상당한 노력, 바로 그것이었다'라고 적었다.

이 카뮈의 말을, 우리의 예로 치환시켜, 점령국의 국민이자 노벨상 수상작가인 한 일본인의 입에서 아직 미독립 상태의 1940년대 한국을 향해 발설된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망언'이라고 부를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문화와 제국주의' 중 2장 8절 '카뮈의 제국주의 경험' 편을 보면 된다. 이 글에서 사이드는 카뮈의 '이방인'과 '페스트'를 '문화와 제국주의에 대한 논쟁의 일부'로서 분석하고 있다

단적으로 카뮈의 소설에 등장하는 그 많은 아랍인들은 하나도 이름이 '없다'. 일제시대 군산의 한 백사장에서 '태양빛이 너무나 뜨거워' 총을 난사한 '이방인' 일본인에 의해 사망하는 '조선인'에게는 이름이 없는 것이다.

로쟈 2006-12-20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적으로 카뮈의 소설에 등장하는 그 많은 아랍인들은 하나도 이름이 '없다'"라는 게 새로운 비판은 아니지만 카뮈를 읽을 때 참조해야 할 대목이라고는 생각됩니다...
 

재작년 가을에 모스크바통신에 올린 것을 이미지-버전으로 다시 띄운다. 겸사겸사 오류도 수정하고 군말도 더 보태면서.

막간을 이용해서(이래저래 무거운 머리도 비울 겸) 러시아문학 ‘20세기의 책 20권’을 꼽아본다. 선정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페테르부르크대학의 이고르 수히흐 교수가 한 것인다. 그는 체홉 전공자로서, <체홉 시학의 제문제>(1987, 박사학위논문)와 <세르게이 도블라토프: 시간, 장소, 운명>(1995, 사진) 등의 저서를 갖고 있는 중견학자이다(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미국에 망명했던 작가 도블라토프는 이미 ‘클래식 작가’의 리스트에 올라 있고, 4권짜리 전집과 함께 대부분의 작품이 문고본으로 나와있다. 그 자신은 작가 체홉을 가장 닮고 싶어했다고). 아래 사진은 차례대로, 도블라토프(1941-1990)의 마지막 책과 전집, 그리고 생전의 모습.



러시아의 체홉 연구에 있어서는 차세대 선두주자로 꼽히는 수히흐 교수는 페테르부르크에 소재한 출판사 ‘아즈부카’에서 나오는 문고본 클래식의 편찬에도 적극 관여하고 있기도 하다(이 문고본의 체홉 등은 그가 편집하고 해설을 붙였다). 그는 올 초에 <20세기의 책 20권: 러시아의 정전>(544쪽/ 5,000부 발행)이란 책을 출간했는데, 말 그대로 20세기 러시아문학의 ‘고전’ 20권을 선정하고 각 작품에 대한 자신의 품평을 곁들인 에세이이다. 물론 그의 취향이 어느 정도 반영돼 있는 선정일 테지만, 내가 보기에 어느 정도의 객관성은 유지되고 있는 듯하며, 따라서 우리가 ‘외국문학’으로서의 20세기 러시아문학을 이해하고자 할 때 유익한 참고가 될 만하다(이와 다르게 참고할 만한 것은 이곳의 문학 교과서들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로선 그의 목록을 보고서야 처음 알게 된 작가와 작품이 없지 않으며, 절반 정도의 작품은 아직 읽지 않았다. 다소간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지만, 자극이 되는 일이기도 하다(목록에 없는 작품들을 읽었다고 변명하는 수밖에). 20권의 목록을 차례로 나열하면서,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국내 소개현황도 함께 언급하도록 하겠다.

 

 

 

 


(1)안톤 체홉의 <벚꽃동산>(1903). 체홉 전공자답게 체홉의 마지막 작품 <벚꽃동산>을 제일 처음으로 꼽았다. 그리고 <벚꽃동산>은 20권 가운데 유일하게 드라마 작품이기도 하다. 나머지 19권의 작품들은 전부 장편소설이거나 단편소설집들이다(그러니까 이 ‘20권’에 시는 빠져 있다). 사실, <벚꽃동산>은 20세기를 시작하는 작품이라기보다는 19세기를 마감하는 작품이다(정확하게는 그 경계를 표시하는 작품이다). 물론 <벚꽃동산>은 우리말로도 여러 종의 번역본이 나와 있으며 자주 공연되고 있기도 하다.



이 작품을 간혹 <벚나무동산>으로 번역/공연하는 경우도 있는데, 원작의 제목이 ‘벚꽃’이나 ‘벚나무’ 둘 다 의미하기 때문에 오역은 아니지만, 이 작품은 <벚꽃동산>이라고 옮겨야 한다. <벚나무동산>이라고 옮기는 건 미적 가치보다는 경제적/실용적 가치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서 이 작품의 주인공을 ‘로파힌’으로 볼 경우에나 유력한 번역이다(그건 ‘독창적인’ 해석이지만, 상식적이지는 않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이 작품은 라예프스카야(=귀족계급)의 아름다운 벚꽃동산이 그걸 고작 벚나무동산으로 간주하는 로파힌(=상인계급)에게 넘어가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는 이 동산을 별장지로 개발하고자 하며, 4막의 배음(背音)으로 이 벚나무들을 찍어내는 소리가 들린다. 참고로, 작가 체홉은 객관적인 관찰자였지만 인간 체홉은 ‘아름다움’의 예찬자였다.

곁다리로 말하자면, 체홉의 (성공한) 첫 장막극인 <갈매기>는 전세계에서 셰익스피어의 <햄릿> 다음으로 무대에 자주 올려지는 작품이라고 한다. 어제 날짜 <문학신문>의 한 인터뷰 기사를 읽다가 알게 된 건데, 이 <갈매기>에는 세 가지 버전이 있다. 물론 체홉 원작의 <갈매기>가 있고, 이걸 비틀어서 트레플료프가 (체홉 <갈매기>의 마지막 장면에서) 자살에 실패하지만, 나중에 누군가에게 타살 당한 걸로 이야기를 다시 쓴 보리스 아쿠닌(1956-, 아래 사진 )의 희곡 <갈매기>(2001, 아래 사진)가 있다. 주로 탐정소설을 쓰는 아쿠닌은 드물게도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는 가장 인기 있는 동시대 작가이다(그의 작품들은 연극으로 공연될 뿐만 아니라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또 하나 오페레타 버전의 <갈매기>가 있으며, 이건 알렌산드르 주르빈(아래 사진)의 작품이다. 그는 1990년부터 12년간 미국 뉴욕에서 살다가 왔으며(그러니까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는다), 미국에서 먼저 공연된 그의 <갈매기>는 이번 시즌에 러시아에서 초연된다. 이 세 <갈매기>를 나란히 무대에 올리는 곳은 극단 <슈꼴라 사브레멘노이 삐에스이>(‘동시대 희곡학교’란 뜻)이며, 연출자는 이오시프 라이헬가우스이다. 언제 시간을 내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언제가 될는지는 모르겠다(하여간에 이번 시즌 안에). 안톤 팔르이치(안톤 파블로비치 체홉을 그렇게도 줄여 부른다)가 당신의 작품을 본다면, 이란 질문에 주르빈은 이렇게 말한다. “아주 만족할 겁니다!”



(2)막심 고리키의 <어머니>(1906-1907). 물론 더 이상의 설명이 불필요한 작품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대학신입생들의 필독서 목록에서는 빠져나간 듯하지만, 그리고 러시아에서의 평가 또한 예전에 못 미치지만, ‘고전’으로서의 가치는 유효하다. 하지만, 이때 ‘고전’이란 말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시대를 초월한 작품’이란 의미가 아니라, ‘시대를 환기시키는 작품’이란 뜻이어야 한다(때문에 <어머니>는 1980년대 우리의 대학가에서 필독서였다. 대학가 축제 때면 <파업전야> 같은 영화를 보는 게 당시의 ‘문화’였고).



 

 

 

한 시대와 운명을 같이하는 작품이 ‘고전’이란 이름에 값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개인적으론, 어떤 작품에 들어맞는 시대/시점이 있는 것이지 시대를 넘어선 작품이 있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작품이 우리의 DNA에 새겨진 것이 아닌 이상. 그건 우리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베스트로 꼽는 작품들이 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물론 그러한 당대성을 감안하지 않고 지금의 시점에서 이 작품을 읽는다면 너무 ‘도식적’이란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그러니까 <어머니>는 ‘도식적’이었던 시대에 어울리는 작품이며, 우리의 80년대는 ‘도식적인’ 시대였다). 아래는 푸도프킨의 영화 <어머니>(1929)의 한 장면.



한 가지, ‘사회주의 리얼리즘’(정식으로 공포되는 것은 1934년이다)의 효시로도 평가되는 작품이지만, <어머니>에는 종교성도 중요한 테마로 등장한다(수히흐 교수가 <어머니>에 대한 장의 제목을 ‘마르크스와 성모 사이’라고 붙인 건 그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는 ‘새로운 시대의 복음서’였다). 그와 관련된 것이지만, 사실 고리키의 이념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휴머니즘이었다(그에게 인간은 언제나 대문자 인간이었는바, 그는 인간을 숭배했다). 그리고 그 휴머니즘의 최대치는 그가 쓴 드라마 작품들 중에서 최고작으로 평가되는 <밑바닥에서>(1902)에서 선언된다. 체홉의 섬세한 드라마들과 비교한다면 투박하기 이를 데 없지만, 고리키의 이 드라마에는(특히 4막) (유머 대신에) 박력과 (페이소스 대신에) 에너지가 넘친다. 해서, 나는 러시아문학의 20세기가 ‘벚꽃동산’이 아닌 ‘밑바닥’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고리키는 국내에 꽤 소개돼 있는 편이다. <어머니>만 해도 최소 2종의 번역서가 있다. <밑바닥에서>는 일제 강점기 때부터인가 <밤주막>이란 제목으로 번역/공연돼 온 걸로 안다(작품의 배경은 빈민굴이다). 고리키의 자전 3부작(<어린시절> <세상속으로> <나의 대학>)부터 미완의 장편 <포마 고르제예프>까지 어지간한 고리키의 작품들은 우리말로 번역돼 있다. 물론 30여권에 이르는 그의 러시아어 전집에 비한다면 약소한 것이겠지만. 참고로,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고리키의 본명은 페슈코프이며 ‘고리키’는 러시아어로 ‘쓴/쓰라린’이란 뜻의 형용사이다. ‘막심’은 ‘맥시멈’이란 뜻이고. 해서 ‘막심 고리키’는 ‘그토록 쓰라린’이란 뜻이 된다. 젊은 시절 ‘룸펜 프롤레타리아’였던 페슈코프의 삶이 바로 ‘그토록 쓰라린 삶’이었으며, 그는 권총자살까지 시도한바 있다(폐에 구멍이 뚫렸지만, 다행히 살아난다).



고리키의 문학적 삶은 레닌과 운명을 같이 한다(고리키는 문학에서의 레닌주의를 대표한다). 레닌 사망(1924) 이후 스탈린 시대의 고리키는 사회주의 작가로서라기보다는 문학적 전통의 보호자 역할에 더 충실했다. 그가 주로 했던 일은 소련문학의 ‘얼굴 마담’ 역과 작가들의 후견인 역이었다. 스탈린 시대 숙청 리스트에 올랐던 작가들 가운데 여럿이 그의 구명(救命) 운동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자신의 생명은 연장할 수가 없었는데, 한편으로 그의 죽음(1936년)에는 스탈린에 의한 암살설이 떠돌기도 했었다. 



참고로, 니즈니 노브고로드는 볼가강변의 항구 도시인데(고리키 초기 단편들의 주된 배경이다), 고리키 사후에 ‘고리키시’로 개명되었던 곳이다. 한데, 사회주의 몰락 이후 레닌그라드가 페테르부르크라는 원래의 이름을 되찾았듯이, 니즈니 노브고로드도 고리키란 이름을 벗겨냈다(그래도 고리키 학술대회는 거기서 열린다). 레닌과 고리키는 그런 사후의 운명까지도 나눠 갖고 있다.

(3)안드레이 벨르이의 <페테르부르크>(1911-1913). 나보코프가 조이스의 <율리시즈>,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함께 세계 3대 소설에 꼽기도 했던 작품이다(이어서 나보코프가 꼽는 작품은 카프카의 <변신>이다). 산문작가로서 벨르이는 시인인 알렉산드르 블록과 함께 러시아 상징주의의 최대 작가이며, <페테르부르크>는 그의 대표작이다(더불어 그는 고골에 대한 고전적인 연구서를 갖고 있다).

 

 

 

 

푸슈킨의 서사시 <청동기마상>에서 시작된 페테르부르크에 대한 문학적/문화적 신화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거쳐서 완결되는 작품이 또한 이 벨르이의 <페테르부르크>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아직 이 작품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언급은 삼가도록 하겠다. 아직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았지만(물론 영역은 돼 있다), 조만간 번역서가 나올 거라는 얘기도 들린다(아마도 1-2년내로 출간될 것이다. *이번 7월에 출간됐다!). 시적이고 장식적인 그의 문체가 얼마만큼 우리말로 옮겨질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벨르이의 소설 가운데 우리말로 번역된 건 <은빛 비둘기>(제3문학사)이다. 이미 절판된 지 오래된 책이지만, 도서관 등에서 구해볼 수 있을 듯하다. 더불어, 러시아문학에서의 ‘페테르부르크 텍스트’에 대해서는(이전에 나도 짤막한 기고문을 쓴 적이 있다) 블라지미르 토포로프 교수의 연구가 독보적이다(그의 ‘소개’ 논문은 우리말로 번역돼 있다). 작년에 이 주제에 관한 논문들을 모은 <러시아문학의 페테르부르크 텍스트>(616쪽)란 책이 페테르부르크 300주년에 즈음하여 출간된바 있다(물론 벨르이의 <페테르부르크>도 다루어진다).

더불어 페테르부르크에 대한 필독서는 솔로몬 볼코프가 쓴 <상트 페테르부르크 문화사>이다. 원래 영어로 먼저 씌어진 이 책의 러시아어본이 지난 여름에 출간됐다. 볼코프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저술가로 시인 브로드스키와의 대담집과 함께 역시 지난 여름에 나온 <쇼스타코비치와 스탈린> 등의 저서를 갖고 있다(그는 본래 음악 전공자였다). 위의 사진은 페테르부르크의 바실리예프스키 섬.

 

 

 

 

(4)예브게니 자먀친(1884-1937, 아래 사진)의 <우리들>(1920). ‘자먀찐’(혹은 ‘자먀틴’)으로도 읽히는 이 작가의 대표작으로, 흔히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조지 오웰의 <1984>의 원조(元祖)가 되는 ‘안티-유토피아’ 소설로 알려져 있다(이 작품을 <멋진 신세계>와 나란히 묶은 러시아어본도 있다). 내전의 와중이던 1920년에 이미 혁명의 불행한 종국을 예견하고 있는 이 작품은 29세기 단일제국이란 시공간을 배경으로 하여 유토피아, 즉 모든 것이 합리적으로 관리되는 세계의 극단을 예시해 보인다.

같은 러시아문학으로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생활자의 수기>와 상호텍스트적으로 읽히는 작품(‘수정궁’ 비판과 ‘2*2=4’란 테마). 자먀친은 다른 단편들과 함께 에세이들도 남기고 있지만(단편 두어 편이 우리말로 더 번역돼 있다), 역시나 기억되는 건 <우리들>의 작가로서이다. 우리말로는 두 차례(중앙일보사, 열린책들) 출간된바 있지만, 지금은 모두 품절된 걸로 보인다(*얼마전 재출간됐다). 몇 년 전에 개최되었던, 자먀친에 관한 국제학술회의 논문집을 보니까 “한국에서의 자먀친”이란 발표문도 실려 있었는데, 석사학위 논문까지 총동원됐지만 (당연하게도) 몇 건 되지 않았다.

 

 

 

 

(5)이삭 바벨(1894-1940)의 <기병대>(1923-1925). 바벨은 러시아 남부의 항구도시 오뎃사(영화 <전함 포템킨>에 나오는 도시) 출신의 유태계 작가로서 <기병대>는 내전(1918-1920) 시기를 다룬 연작이면서 그의 대표작이다(이 연작의 화자가 내전에 참전한 유태계 지식인이다). 우리말로는 중앙일보사에서 나온 <소련동구문학전집>에 수록돼 있으며, 조만간 그의 선집이 다시 나오는 걸로 안다. 참고로, 마샬 버먼의 <맑스주의의 향연>에는 버먼의 이삭 바벨론(서평)이 포함돼 있다. 동향의 작가 유리 올레샤(1899-1960)의 <질투>는 <마호가니>(열린책들, 2005)에 실려 있다. 아래 사진은 바벨과 올레샤.

에이젠슈테인과 같이 작업하기도 했으며(<베진초원>의 시나리오를 썼던가?), 실제로 그의 작품들은 영화화하기에 적당한 테마와 문체를 갖고 있다. 다른 연작 <오데사 이야기>의 경우(‘오데사 마피아 이야기’쯤 된다), 내 기억에 그는 시나리오도 따로 썼던 것 같다. 그의 문학세계는 2권짜리 전집에 다 수록될 만큼 간명하다(이에 견줄 만한 작가는 좀 두꺼운 한 권에 다 정리되는 자먀친, 그리고 같은 오데사 출신의 유리 올레샤가 있다). 우리말 선집이 출간된다면, 좀더 자세하게 조명될 수 있을 것이다.

(6) 알렉산드르 파제예프(1901-1956)의 <궤멸>(1925-1926). 역시 내전 시기를 다룬 작품이지만, 바벨의 <기병대>처럼 좀 삐딱한 시각의 작품이 아니라 사회주의적 정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다. 선정자인 수히흐 교수가 아마도 사회주의 리얼리즘 계열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궤멸>을 꼽은 듯하다. 지금은 줄거리도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궤멸>(예문출판사, 1988)은 아주 오래 전에 우리말로 번역 소개된 바 있다. 지금은 당연히 품절된 책이다. 작가 파제예프는 역시나 스탈린 시대에 숙청당한 바벨과는 달리 소위 ‘메인 스트림’에 속해 있던 작가이며, 작가동맹의 의장인가 부의장을 역임한 문학권력자였다.

(7)안드레이 플라토노프(1899-1951)의 <체벤구르>(1926-1929). 요즘 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유명한 연극 연출가 레프 도진의 레퍼토리에도 들어가 있는 <체벤구르>는 러시아에서도 재발견된 작가 플라토노프의 대표작이다(그러니까 러시아에서도 소개/해금된 건 내가 알기에 80년대 중반 이후이다). 그렇게 재발견된 작가로 미하일 불가코프와 비교되기도 하는 플라토노프이지만, <체벤구르>가 <거장과 마르가리타>만큼 폭넓게 읽히는 것 같지는 않다(출판되는 걸 보아도 그렇고, 공연되는 걸 보아도 그렇다). 아래는 연극의 한 장면.

내가 아직 읽지 않은 작품이어서 자세하게 언급할 수 없지만(역시 우리말로 번역중이라는 ‘풍문’은 있다), 이 작가의 몇몇 단편들은 우리말로도 번역 소개돼 있는바 참조해 볼 수 있다(책세상에서 단편집 <귀향>이 나와 있다). 내가 인상적으로 읽은 작품은 <포투단강>이란 단편. 철도노동자 출신의 플라토노프는 사회주의 이념의 철저한 신봉자로서 오히려 소비에트 권력층에 부담을 주었던 작가였으며(스탈린이 싫어했다던가), 한편으론 작품의 매우 형이상학적인/유토피아적인 주제들 때문에 ‘20세기의 도스토예프스키’로도 불린다.



(8)미하일 조셴코(1894-1958)의 <감상적인 이야기들>(1923-1930). ‘조셴코’ 혹은 ‘조시첸코’로 표기될 수 있는데, <감상적인 이야기들>은 단편모음집 이름이고, 장편소설(roman)을 쓰지 않은 작가이기 때문에, 굳이 어떤 한 작품을 거명하기는 어렵다. 플라토노프가 ‘20세기의 도스토예프스키’라면 조셴코는 ‘20세기의 고골’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는 작가이다. 예상할 수 있는 바이지만, 정말로 코믹하고 유머러스하며 풍자적이고 그로테스크하다. 정식화하자면, <조셴코=고골+체홉>이다(이 세 작가를 ‘사소한 것들의 시학’으로 묶어서 다룬 연구서도 있다).   

나는 단편 몇 편을 읽었을 뿐이지만, 보다 본격적으로 소개되어도 좋은 작가이다. 거꾸로 말하면, 조셴코의 단편들이 아직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은 건 미스터리라 할 만하다(*이후에 두 권이 번역되었다).

(9)블라지미르 나보코프(1899-1977)의 <재능>(1937-1938). <재능> 혹은 <선물>은 나보코프의 러시아 시절은 마감하는 장편소설이다(러시아어 ‘다르Dar’는 ‘재능’이란 뜻과 ‘선물’이란 뜻 모두를 갖고 있다. Gift란 영어 단어가 그렇듯이). 주인공이 시인으로서 성장해가는 자기발견적 이야기이면서 나보코프가 러시아문학의 전통과 ‘마지막으로’ 대화하는 이야기라고 정리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을 끝으로 나보코프는 ‘러시아어 시절’을 마감하고 영어로 언어를 바꿔서 작품을 쓴다. 그렇게 처음 쓴 소설이 우리말로도 번역된 <어느 망명작가의 참인생>이다(원제는 ‘세바스챤 나잇의 참인생’). 나보코프에 대해서는 작품을 읽지 않고도 할 얘기가 너무 많지만, 여기선 간단히 줄이도록 한다.  

우리에겐 <롤리타>의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이 작품은 스탠리 큐브릭과 에드리안 라인에 의해 두 번 영화화됐다. 영어로는 영어본과 러시아어본 <롤리타>를 비교하는 사전까지 나와있고), 그리고 간혹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로 ‘오해’ 받기도 하지만, 그는 제임스 조이스의 계보에 속하는 전형적인 모더니즘 작가이다(그는 언어를 다루는 작가적 재능에 있어서 조이스 정도를 질투했을 것 같다. 하지만, 조이스는 러시아어로는 작품을 쓰지 않았다). 적어도 문학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 ‘작가의 죽음’을 전제로 한 텍스트의 유희/게임을 주요한 특징으로 갖는다면 말이다.

나보코프의 문학세계는 진정으로 ‘신적인’ 작가 나보코프에 의해서 자신을 작가로 착각하는 주인공들이 징벌받는 세계이다. 그 세계는 대단히 유희적이지만, 포스트모던적 유희와는 거리가 있다. 현재까지 나온 나보코프의 전기로 가장 방대하며 탁월한 것은 브라이언 보이드의 영어본이다. 그는 나보코프의 삶과 문학을 ‘러시아 시절’과 ‘미국 시절’로 구분하여 두 권의 책으로 상술했는데, 얼마 전에 러시아어로도 번역돼 나왔다(여기서의 평가도 ‘최고의 전기’라는 것이다). 두툼한 양장본 2권의 가격이 4만원 안팎(나는 영어책을 복사했었다). 나보코프 애호가나 전공자에게는 필독서이다. 나보코프의 러시아소설 가운데는 <마셴카>(<첫사랑>으로 번역됨), <루진의 방어>(단행본으론 나오지 않고 한 문예지에 소개됐었다) 등이 우리말로는 번역돼 있는데, <재능> 이외에도 <절망>, <단두대로의 초대> 등이 모두 번역될 만하다(*<단두대로의 초대>가 <사형장으로의 초대>로 번역됐다). 하지만, 저작권이 까다로운 작가이기 때문에(물론 번역도 까다롭다) 정말로 번역될지는 미심쩍다.

영어소설 가운데는 <롤리타> 외에도 <어둠 속의 웃음소리>(언젠가 오래 전에 TV미니시리즈로도 만들어진바 있다. <창밖엔 태양이 빛났다>란 제목이었던가. 기억에, 황인뢰 PD의 작품이었다), <투명한 물체들>, <킹, 퀸, 잭>, <창백한 불꽃>, <아다> 등이 번역돼 있다. 전문가 수준이었던 그의 나비수집에 대한 얇은 책도 한 권 번역돼 나온바 있고. 물론 나보코프에 대한 학위논문들은 상당수에 이르며 단행본으로 출간된 것도 있다.



러시아에는 물론 각종의 너무 많은 나보코프가 있다. 2개의 언어로 작품활동을 했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의 거의 모든 작품이 영어와 러시아어로 ‘거의 완벽하게’ 번역돼 있다. 그 중 푸슈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왼쪽 사진) 번역/주석(이 작품에 대한 주석으로는 러시아의 기호학자/문학연구자 유리 로트만의 것과 쌍벽을 이룬다)과 함께, 러시아어로는 3권으로 나온 문학강의가 기록해 둘 만하다(그는 <롤리타>의 인세 덕분에 팔자가 피기 전까지는 코넬대학 등지에서 문학선생 노릇을 했다. 미국 작가 토마스 핀천이 그의 강의를 들은바 있다). 그 3권은 각각 <러시아문학강의>, <서구문학강의>, <돈키호테에 대한 강의>(오른쪽 사진)이다. 나는 이 강의들도 우리말로 번역되길 바라지만, 가능할는지…  

(10)미하일 숄로호프(1905-1984)의 <고요한 돈강>(1925-1940). 요즘은 대학에서의 러시아문학사 전공강의에서도 빠지는 수가 많지만(부담스런 분량 때문에),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비교되기도 하는 대하장편소설이다(당연히 영화화됐고, 얼마 전에도 이곳 TV에서 시리즈로 나왔다). 나는 학부에서 20세기 문학사 강의를 들을 때 읽었는데, 우리말로는 7권으로 번역돼 나와 있었다(러시아어로는 보통 2권). 지금은 품절이지만. 한 권짜리 만화로도 나와 있었고(기말고사 시험문제가 이 작품의 줄거리를 쓰는 것이었는데, 그때 만화를 본 게 도움이 되었다). 수히흐 교수는 <고요한 돈강>을 다룬 장의 제목을 ‘카자크 햄릿의 오딧세이’라고 붙였는데, 그럴 듯하게 여겨진다. 그 햄릿의 이름은 물론 주인공 그레고리이다.

숄로호프의 다른 작품으론 <인간의 운명>, <돈강 이야기> 등도 우리말로 번역돼 있는데, 나는 읽지 않았다. 사실 그다지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가 문학권력자였다는 점 때문이었다. <고요한 돈강>을 정말로 그가 썼는지에 대한 의혹들도 그래서 나왔었다. 그럼에도 그는 이반 부닌과 파스테르나크에 이은 노벨문학상(1965) 수상자이다('파스테르나크 노벨상 파동' 때 러시아내에서는 파스테르나크가 '국민작가' 숄로호프보다 먼저 노벨상 수상자로 지명됐다는 사실에 분개한 이들도 많았다). 아래 사진은 영화 <고요한 돈강>(1992)의 한 장면. 러시아판 대작 <전쟁과 평화>를 찍은 세르게이 본다르추크(1920-1994)의 마지막 작품이다.

(11)미하일 불가코프(1891-1940)의 <거장과 마르가리타>(1928-1940). 드디어 불가코프! 그의 작품집은 어디서나 눈에 띄고, 또 희곡들은 거의 끊이지 않고 공연되기 때문에 과연 이 작가가 스탈린 시절 이후 오랫동안 탄압 받고 금지됐던 작가였던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거장과 마르가리타>는 그의 생전에 발표될 수 없었던 작품이다).

 

어쨌든 <불가코프 백과사전>까지 고골, 도스토예프스키 사전과 같이 나올 정도의 지명도를 그는 갖고 있고, 또 누리고 있다. 그는 프랑스의 극작가 몰리에르를 (권력과의 관계에서) 자기 삶의 모델로 삼았었지만(그는 <몰리에르의 생애>란 전기도 썼고, 몰리에르가 등장하는 드라마 작품 <위선자들의 밀교>도 썼다), 그가 뒤늦게 누리는 영광은 몰리에르에 뒤지지 않는 듯하다.

 

 

 

 

우리말로 번역된 불가코프도 제법 적지 않다. 혁명을 풍자한 <개의 심장>, <운명의 알> 등의 중편들에서 <백위군> 같은 소설, 그리고 <극장>, <위선자들의 밀교>, <조야의 아파트> 같은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여전히 <투르빈가의 나날들> 같은 대표 희곡들이 아직 번역되지 않았고(출간예정이라는 소문은 있다), 여러 러시아 교수들이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 <거장과 마르가리타> 또한 현재로선 품절이다(아마도 내년까지는 새 번역본이 나올 듯하다. *박형규 교수의 번역본이 재출간됐다). 우리에게서 불가코프가 그 정도의 대접을 받지는 못하는 걸로 봐서 우리의 불가코프 수용에는 어떤 ‘장벽’이 있는 듯하다. 아래는 마리나 코렌펠드의 <거장과 마르가리타> 삽화.



(12)이반 부닌(1870-1953)의 <어두운 가로수길>(1937-1945). 러시아에서는 얼마전에 이반 부닌의 새 전기가 출간됐는데, 러시아 최초의 노벨문학상(1933) 수상자 부닌은 20세기 전반기의 유능한 시인/작가의 한 사람이다.

부닌은 그가 러시아 사람이 아니라 인도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동양적인’ 외모를 갖고 있는데, 외모뿐만 아니라 정신세계에 있어서도 부닌은 지극히 ‘동양적’이다(특히 불교적이다). 러시아나 서구인들에게는 다소 낯설게 여겨질 수도 있는 그의 문학이 우리에겐 오히려 친숙하게 여겨질 정도이다. 나의 도식적인 이해에 의하면, 부닌은 체홉, 고리키와 함께 ‘거대한 작가’ 톨스토이의 문학적 계승자의 한 사람인데, 체홉이 톨스토이의 문학성을, 그리고 고리키가 민중성을 이어받았다면 부닌은 그의 종교성을 계승하고 있다.

 

 

 

 

내 기억에 <어두운 가로수길>은 우리말로 번역돼 있으며(<비밀의 나무>란 제목으로 나왔던가), 기타 그의 단편들(<사랑의 문법>으로 번역돼 있다)과 <마을> 같은 중편들도 번역돼 있다(그의 단편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신사>이며, <일사병>이란 단편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체홉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과 견주어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아직 <아르세니예프의 삶> 같은 자전적 대표작은 번역되지 않았다(*최근에 번역되었다). 더불어 지적하자면, 나보코프도 그랬지만 부닌도 문학적 출발은 시인이었다. 그의 시들도 번역된다면 더 바랄 나위 없겠지만, 가능할는지…

(13)알렉산드르 트바르도프스키(1910-1971)의 <바실리 테르킨>(1942-1945). 드디어 내가 처음 듣는 작품이 나왔다. 사실 트바르도프스키란 이름을 내가 기억하는 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1962년에 잡지 <노브이 미르>에 실을 수 있도록 한 편집장 트바르도프스키로서이다(또 다른 트바르도프스키가 있는 게 아니라면). 그가 솔제니친에 맞먹을 만한 작가였다는 건 모르던 사실이다.

제목으로 봐선 바실리 테르킨의 일대기를 다룬 듯싶은 장편소설인 듯한데(*소설이 아니라 서사시이다. 부제는 '어느 병사에 관한 책'이고, 조국전쟁, 즉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었다고), 아마도 그가 혁명과 내전기를 관통하는 듯하다. 수히흐 교수는 “죽음과 전쟁, 운명, 조국에 대하여”란 장제목을 달았다.



(14)보리스 파스테르나크(1890-1960)의 <닥터 지바고>(1945-1955). 별다른 설명이 필요없는 작품이다. 1956년에 이 작품을 해외에서 먼저 출간하고, 이어서 1958년에 (다소간 정치적인 선정이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작가 파스테르나크는 다소간 은둔적인 성격에 걸맞지 않은 문학적 스캔들의 주인공이 된다(그는 스톡홀름에 가는 걸 포기한다). 그리고 그 스트레스 때문에 그는 1960년에 사망하고 만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신의 이름을 전세계에 알린 이 작품 때문에 그는 조국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자신의 목숨마저 재촉한 것이다. 지바고 때문에!(‘지바고’는 러시아어 ‘삶’의 고어(古語) 형용사형이다)

 

 

 

 

시인 파스테르나크의 유일한 장편소설인 이 작품은 사실 ‘소설로 씌어진 시’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며(그런 의미에서 푸슈킨의 ‘시로 씌어진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과 마주보고 있다), 지바고의 죽음 이후에 남겨진 유고시 25편은 작품 전체를 이해하는 데 참조물이 아니라 핵심이다(이걸 빼놓은 번역서들도 있었는데, 좀 어이없는 경우이다). 이 말은 소설미학적인 기준에서 이 작품을 판단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뜻이다(이 작품에는 어이없는 우연들이 남발되고 있다). 푸슈킨이 ‘특이한 소설’을 썼다는 의미에서 파스테르나크는 ‘특이한 시’를 쓴 것이며, 러시아 소설의 전통은 그렇게 열리고 닫힌다.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두 ‘망명작가’에 의해서.



<닥터 지바고>는 1988년쯤에야 해금되며(그 이전에는 그의 초기 시들만이 출판될 수 있었다) 그맘때쯤 저명한 러시아 문학자 드미트리 리하초프의 편집하에 간행된 최초의 파스테르나크 전집에는 빠져 있다(나는 이 전집과 <닥터 지바고>를 따로따로 샀다). 굳이 찾으러 돌아다니진 않았지만, 이 작품이 포함된 전집은 아직 보지 못했다. 한편, 1930년대 이후 생계를 위해서 옮긴 번역작품들(그는 셰익스피어와 괴테 등을 주로 번역했다)은 요즘 따로 출간돼 있다. 우리말 파스테르나크? <닥터 지바고> 외에, <나의 누이, 나의 삶>이란 번역시집(그의 시들은 상당히 난해하지만, 좀 이해하면 재미있다), 그리고 <어느 시인의 죽음>이라고 옮겨진 그의 자전적 기록 정도(마야코프스키와의 교우와 그의 죽음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다). 그리고, 라라의 모델이었던 올가 이빈스카야의 회고록 정도.



(15)알렉산드르 솔제니친(1918- )의 <수용소 군도>(1958-1968). <수용소군도>가 출간된 건 1972년 겨울 파리에서였고, 이 때문에 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소비에트로부터 망명을 강요받게 된다(그에겐 강제출국 당하거나 망명하거나의 선택이 있었다). 흐루시초프 시대의 해빙 분위기를 타고 자신의 수용소 체험을 바탕으로 했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출간될 수 있었지만, 1970년대는 이미 (해빙은 물 건너 간) 브레즈네프의 시대였고, 이 새로운 시대는 자신의 조국을 ‘거대한 수용소’라고 고발하는 작가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았다. 아래 사진은 수용소 죄수 시절의 솔제니친.

<수용소군도>는 소비에트뿐만 아니라 책이 출간된 프랑스에서도 파문을 일으켰는데, 과거 소련을 지지했던 좌파 지식인들에게 결정타를 안겼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지를 계속 유지할 것인지에 대해서 심각하게 회의해야 했다(상당수는 스탈린주의의 ‘수용소’ 대신에 마오쩌뚱의 ‘문화혁명’을 선택하며, 한편에서는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을 비판하는 신철학자들이 등장한다. 이런 분위기에 대해서는 프랑수아 도스의 <구조주의의 역사>에서도 기술되어 있었던 듯하다). 물론 솔제니친이 망명지로 안착했던 곳은 프랑스가 아니라 미국의 시골마을이었으며, 거기서도 그는 (공산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연설들을 늘어놓는 바람에 곧 여론의 관심밖에 놓이게 된다(흔한 오해와는 다르게 솔제니친은 공산주의자이다. 다만 그의 공산주의는 ‘종교적 공산주의’일 따름. “현대인은 신을 잊었다!”는 게 그의 단골 레퍼토리이다).



한때의 신화였던 작가였지만(한 문학작품이 한 시대의 표정이 되고, 한 시대의 좌표를 바꾼다는 건 얼마나 굉장한 일인가!), 그는 너무 뒤늦게 다시 러시아로 돌아왔으며 (좀 무례한 말이지만) 너무 오래 살고 있다. 몇 번 추진되던 한국방문이 무산될 정도로 건강이 썩 좋은 건 아니면서도 나름대로 장수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엔 <신화와의 작별>이란 제목으로 방대한 분량의 평전까지 출간됐는데, 그는 생전에 자신의 신화가 탄생하고 소멸하는 과정을 직접 목격하고 있는 드문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망명문학으로서의) 러시아문학이 푸슈킨에서 시작해서 파스테르나크에서 끝난다고 했지만,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서의) 소비에트 문학은 고리키에서 시작해서 솔제니친에서 끝난다. 즉, ‘밑바닥’에서 시작해서 ‘수용소’에서 끝난다. 솔제니친 이후의 소비에트 문학은 잠시 농촌문학(발렌친 라스푸친)과 일상문학(유리 트리포토프)에 의해 채워지면서 소비에트 러시아의 종말을 맞는다.

 

 

 



우리말로 번역된 솔제니친은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와 <수용소군도>(5권이던가?)를 비롯하여 아주 많다. <암병동>과 <제1권>, <붉은 수레바퀴>(이 대작도 나오다 만 것 같다)까지가 그의 주요 장편들이라고 한다면, <마트료나의 집> 등과 같은 초기 단편들도 여럿 번역돼 있고, <사슴과 라게리의 여인>(‘라게리’는 ‘수용소’란 뜻이다) 같은 희곡작품도 번역돼 있다(오늘 헌책코너에서 산 그의 희곡집에는 안 들어 있는 걸로 봐서, 그는 희곡작품도 꽤 여럿 쓴 모양이다). 그리고 그의 에세이집까지.



(16)바를람 샬라모프의 <콜리마 이야기>(1954-1973). 샬라모프는 이름만 들어본 작가인데, 이 정도로 지명도가 있는지는 몰랐다. ‘콜리마’는 소비에트 시절 가장 '악명 높았던' 수용소가 있었던 지명이고(그러니까 아마도 시베리아 어디일 것이다), ‘콜리마 이야기’는 콜리마를 배경으로 한 연작이다. 웬만한 작품집에 들어가 있는 <콜리마 이야기>가 다 ‘선집’인 걸로 봐서 이 연작으로 작가가 얼마나 많은 걸 썼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아래 사진은 콜리마 수용소.

사실, 샬라모프 자신이 15년간(1937-1951) 거기에서 유형생활을 했다고 하는데, 그 이후에 그는 그 기간보다도 더 긴 시간 동안(꼬박 20년이다!) 자신의 유형생활을 되새김질하는 이야기들을 쓴 것이다. 그런 사실만으로도 예의상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샬라모프에 대한 논문들이 국내에서도 나오고 있으므로 번역본들도 곧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17)안드레이 비토프(1937- )의 <푸슈킨의 집>(1964-1971, 1978…) 최근에 비토프의 2권짜리 작품선집이 새로 나왔는데, 물론 장편 <푸슈킨의 집>은 제외한 것이다(원제인 ‘푸슈킨스키 돔’은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문학연구소로 보통 ‘푸슈킨연구소’라고 부른다. 거기엔 푸슈킨의 데드마스크가 많은 육필 원고와 함께 보존돼 있다고 한다). <푸슈킨의 집>은 작가가 계속 버전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확정된 연도를 아직 표시할 수 없다. 내가 갖고 있는 건 그나마 작년인가 새로운 장정으로 출간된 것인데, 현재까지는 최종본이라고 할 수 있다.



비토프의 이 소설 역시 아직 읽지 않았지만, 이 작품은 전형적인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이다(좀 역설적인 표현이지만, 러시아 포스트모더니즘의 ‘고전’이다). 그건 각종의 텍스트들이 교직되어 새로운 텍스트를 축조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그러니까 나보코프의 소설에서와는 달리, 진정한 문학적 유희, ‘텍스트의 즐거움’(바르트의 용어)이 실현되고 있는 것. 물론 제목이 암시하는 바대로, 그것을 통칭할 수 있는 것은 ‘푸슈킨의 집’이다. 푸슈킨의 문학적 유산으로서의 러시아문학 전체가 이 소설텍스트를 구성하고 있는 인자이거나 잠재적 인자들이다. 실제로 비토프는 나름대로의 푸슈킨 ‘연구자’이기도 하며, 푸슈킨에 관한 두 권의 책, ‘1825년의 푸슈킨’, ‘1836년의 푸슈킨’을 편집하기도 했다(1825년은 제카브리스트 봉기가 일어난 해이며, 1836년은 푸슈킨의 생애 마지막해이다. 그는 1837년 1월에 사망했기 때문에). 아래 사진은 페테르부르크의 '푸슈킨 연구소'(=푸슈킨의 집).



물론 내가 아는 한, 비토프의 작품은 아직 우리말로 번역된바 없다(어디 잡지에 소개된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만, 수년 전에 한국 펜클럽 초청으로 방한할 뻔했으나 역시 무산됐다(그러니까 그는 아직 한국과는 아무런 인연을 갖고 있지 않다). <푸슈킨의 집>에 대한 연구서들은 이미 러시아와 미국 등지에서 나오고 있으며, 국내에도 연구논문들이 있다. 작품도 번역돼 나올지는 두고 봐야겠다.



(18)바실리 슉쉰(1929-1974)의 <성격들>(1973). 짐작에 <성격들>은 특정한 작품이 아니라 슉쉰의 문학을 총괄하는 작품집인 듯하다. 또 그래야 말이 된다. 그의 문학은 그의 삶 전체로 웅변하는 문학이기 때문이다.

검게 탄 얼굴에 고지식하고 무뚝뚝한 농부 같은 (한 성격 할 것 같은) 인상의 슉쉰은 70년대 초반 소비에트 문화계의 ‘간판’이었다(우리 작가로는 딱 황석영 같은 타입이다. 황석영이 영화감독도 겸했다면). 그는 영화계에서도 유명인사였는데(감독으로도 유명하다), 1973년에 자신이 직접 각본을 쓰고 주연과 연출까지 맡은 영화 <칼리나 크라스나야>(사전적 의미로는 ‘빨간 까마귀밥나무’란 뜻이다)는 각종 영화상을 휩쓸며 수천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기도 했다(대학원 시절에 이 영화를 봤을 때는 그렇게 유명한 영화인 줄 몰랐다. 오른쪽은 영화의 한 장면). 그건 그만큼 슉쉰이 러시아 나로드(민중)의 정서에 가장 잘 호소하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수히흐 교수의 장제목은 “한 영혼이 아프다”. ‘작가-예언자’란 평까지 듣는 슉쉰은 러시아의 영혼이면서 한 시대의 영혼이었던 것.



하지만, 내가 그에 대해서 아는 내용은 별로 많지 않다. 얼마 전 그의 사망 30주년을 맞는 특집기사들을 보고 새삼 작품집과 영화CD 등을 사두었고, 엊그제 헌책코너에서 우연히 그의 전기를 구입했을 뿐이다. 그러니 알 준비가 되어 있을 뿐인 것. 한국에서의 사정도 크게 다르진 않은데, 몇 편의 단편이 소개돼 있는 게 전부이다. 스첸카 라진의 농민반란을 소설화한 <나는 너희에게 자유를 주러 왔노라> 같은 대표적 장편소설은 한국 독자들의 구미에도 맞을 듯하므로, 한번 기다려봄 직하다(이 작품의 번역은 오래 전에 한번 추진되었다가 무산됐던 걸로 안다. 분량 때문에). 참고로, 슉쉰을 추모하는 기고문에서 한 작가는 러시아문학에서 다섯 명의 위대한 작가를 꼽았는데, “푸슈킨, 고골,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그리고 슉쉰”이 그 다섯 명이다.



(19)발렌친 라스푸친(1937- )의 <마쪼라의 이별>(1976)과 (20)유리 트리포노프(1925-1981)의 <노인>(1978)은 한꺼번에 언급하기로 한다(막간이 너무 긴 것 같으므로). 브레즈네프 시대인 1970년대 러시아문학의 대표적인 경향은 ‘농촌문학’과 (도시의) ‘일상문학’이었는데, 라스푸친과 트리포노프는 각각 이 두 경향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지명도에 있어서는 라스푸친이 한 수 위인데(제정 말기의 괴승 라스푸친과 성이 같지만 무관하다고 한다), 러시아의 중학교(1학년부터 11학년까지 같은 학교에 다닌다) 교과서에는 그의 작품들이 다수 수록돼 있어서 <학교에서 배우는 라스푸친>이란 책도 나올 정도이다. <마쪼라의 이별>은 우리말로 번역돼 있는데(<소련동구문학전집>), 댐건설로 수몰 예정인 한 농촌마을 사람들의 얘기이다.


 

 

 


라스푸친은 농촌문학에 심리적, 철학적 깊이를 부여한 걸로 평가되는데, 우리의 전통적인 ‘무속신앙’과 유사한 ‘지킴 신앙’ 등이 다뤄지기 때문에, 비교적 친숙하게 읽힌다. 라스푸친의 작품으로는 <마쪼라의 이별> 외에도, <마리아를 위하여>(원제는 ‘마리아를 위한 돈’), <마지막 기한>, <살아라 그리고 기억하라> 등이 우리말로 번역돼 있고, 트리포노프의 작품으론 <긴 이별>, <또 다른 삶> 등이 번역돼 있다(<소련동구문학전집>에 실려 있다). <교환>(경희대출판부, 2005)가 가장 최근에 나온 책이다.



 

 

 

이상에서 알 수 있는 것이지만, 페테스트로이카 이후의 러시아문학, 혹은 포스트-소비에트의 문학은 선정에서 빠져 있다. 그건 걸작이 없어서가 아니라 다음 세기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론, 이 20명의 작가와 작품 목록에 (국내에서 다소 과대평가된) 친기스 아이트마토프(<하얀배>, <백년보다 긴 하루>, <처형대> 등이 번역돼 있다)가 빠진 것이 반갑고, 블라지미르 보이노비치(<병사 이반 촌킨의 모험>, <2040> 등이 대표작이다)가 빠진 것이 아쉽다. 또 하지만, 서두에서 얘기했듯이, 이러한 선정이 편파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일을 벌이면서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으므로…

06. 03. 21 -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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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현대 러시아작가 7인을 만나다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9-19 02:10 
    아트앤스터디 '인문숲'에서 지난 겨울 '로쟈의 러시아문학 기행'의 속편으로 '로쟈의 인문학 서재: 현대 러시아작가 7인을 만나다'를 진행한다(http://www.artnstudy.com/inmoonsoop/Lecture/default1010.asp?lessonidx=off_hwLee07&OVRAW=%EB%A1%9C%EC%9F%88&OVKEY=%EB%A1%9C%EC%9F%88&OVMTC=standard&OVADID=193044
 
 
2006-03-21 2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03-22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아직 진행중인 글인데요.^^

urblue 2006-03-23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 다닐 때 러시아극회에서 <벚꽃동산>을 연극으로 올렸습니다. 그때 어떤 선배의 주장으로 제목이 <벚나무동산>으로 나갔는데, 그런 관점의 차이가 있는 건줄은 몰랐군요. ^^

로쟈 2006-03-23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공자들도 <벚나무동산>을 고집하곤 하는데, 저로선 이해가 잘 안 됩니다. 아름다운 건 '벚나무'가 아니라 '벚꽃'인데요...

Koni 2006-03-23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비극에 주목하나 보죠.^^

로쟈 2006-06-26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출간되자 마자 구입해놓은 책인데, 이 페이퍼에 링크시켜놓는 걸 깜박했습니다.^^

2006-07-31 2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외톨이 2007-03-27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히 퍼갑니다.

kjklee88 2008-01-10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저도 감사히 퍼갑니다! 네이버 블로그로 퍼갈께요~(주소도 같이 올려놓을께요^^)

2008-09-17 1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17 2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혹은 한국인의 귀에 가장 익숙한 러시아 노래는 무엇일까? 아마 '카츄샤' 같은 민요도 손에 꼽아봄직 하지만, 짐작엔 라슬 감자토프의 시에 붙인 곡을 알렉산드르 코브존이 부른 (<모래시계>의 주제가) '백학'(남성버전)과 알라 푸가초바가 부른 '백만 송이 장미'(여성 버전)가 아닐까 싶다. 물론 두 노래가 러시아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지만, 상대적으로 더 사랑받는 것은 한국에서가 아닐까 싶고. 그 중에서도 이 글에서는 '백만 송이 장미'에 관한 얘기를 조금 다루기로 한다. 참고로, <굿모닝 러시아>(지호, 2004)에는 이 노래에 얽힌 사연이 자세히 소개되고 있으며 나도 도움을 받았다. <노래로 배우는 러시아어>(문예림, 2003)에는 노래의 러시아어 가사와 그 번역이 실려 있으며, 이 노래 등이 포함된 CD가 부록으로 포함돼 있다.  

국내에서는 '백만 송이 장미'란 타이틀의 드라마도 만들어졌지만, 우선은 심수봉이 개사해서 부른 '백만 송이 장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1절과 후렴의 가사는 이렇게 돼 있다.

먼 옛날 어느 별에서/ 내가 세상에 나올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 음성하나 들었지

사랑을 할 때만 피는 꽃/ 백만 송이 피어오라는
진실한 사랑을 할 때만/ 피어나는 사랑의 장미

(후렴)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때
수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 나라로 갈 수있다네

그리고 이 노래의 원곡 가사는 대략 아래와 같은 내용이다('백만송이 장미 원곡'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시면 노래와 함께 원어 가사 등을 찾아보실 수 있다: http://www.youtube.com/watch?v=oIFmhye6fqw).

한 화가가 살고 있었네. 그에겐 집과 캔버스가 전부였다네.
화가는 꽃을 사랑하는 어느 여배우를 사랑했다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집과 그림들을 팔았고,
그 돈으로 바다만큼의 꽃을 샀다네.

아침에 일어나 창가에 서면, 그대는 아마도 정신이 혼미해지겠지.
꿈꾸는 듯 광장은 꽃으로 가득 찼다네.
어떤 부자가 이토록 놀라게 하는지?
그러나 창문 아래엔 가난한 화가가 숨죽이며 서 있다네.

너무나 짧은 만남이었고, 그녀를 태운 기차는 밤을 향해 떠나버렸네.
하지만 그녀의 삶엔 열정적인 장미의 노래가 있었다네.
화가는 외로운 삶을 살았지, 아주 불행하게...
하지만 그의 삶은 꽃으로 가득찬 광장이었다네.

(후렴)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붉은 장미를
창가에서, 창가에서, 창가에서 그대는 보고있지.
사랑에 빠진, 사랑에 빠진, 진정으로 사랑에 빠진 한 사람이
그대를 위해 자신의 삶 전체를 꽃과 바꾸어 버렸다네.

 : Алсу (Алсу) : Фотка N3 : Алсу (Алсу) : Фотка N2

이 노래를 부른 가수가 알라 푸가초바인데, 러시아의 국민 여가수이다(젊은 여가수들 중에는 '알수'(1983- )가 있다. 아래 사진http://www.youtube.com/watch?v=2Mos7iGcqeo). 모스크바에 체류할 때 TV에서 몇 번 봤는데(더불어 언론에도 자주 등장한다) 체구에 걸맞게 괄괄하고 화려한 무대매너를 자랑하는 여가수였다. 조금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자신의 친구 아들과 결혼해서 한때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최근에 들은 바로는 이들 커플에 올초에 이혼했다고 한다).

'젊은 남편'인 필립 키르코로프 또한 가수이자 엔터테이너인데, 역시나 스캔들 메이커로서 재작년에는 자신의 발표한 앨범 홍보 인터뷰 중 한 여기자에게 폭언을 퍼붓는 바람에 법정소송에까지 몰린 적이 있었다(이 사건이 그해 연예계 최대 스캔들이었다).

이 '요란한 커플'에 관한 자료들을 검색하다가 발견한 글을 잠시 인용한다. <주간동아>(2001. 09. 27.)에 게재된 러시아 통신원의 보고이다. 비만과 관련한. '러시아 문화의 이해'라는 제목과 관련되기도 하므로 전문을 옮겨온다(이미지는 내가 집어넣은 것이다).  

-문명의 풍요와 더불어 찾아온 병’ 비만은 러시아도 예외가 아니다. 추위에 대항해 열량을 보존하기 위해 기름진 음식과 감자, 밀가루처럼 고칼로리 음식을 주로 먹는 식습관으로 유명한 나라다 보니 러시아인의 비만 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흔히 러시아 여성 하면 늘씬한 금발 미녀를 떠올리지만, 이는 사실 20대의 ‘빛나는 한때’일 뿐이다. 통계에 따르면 러시아인은 총인구의 54%가 과다체중에 시달리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자본주의 체제가 정착하면서 러시아에서도 외양으로 사람을 판단하려는 경향이 강해졌다. 소비에트 시대 강한 여성상의 표본으로 받아들이던 ‘당당한 체구의 여성 노동자’는 미니스커트와 각선미로 중무장한 신세대 여성에 밀려 자리를 잃고 있는 것. 국민가수 알라 푸가초바가 50이 넘은 나이에 18세 연하의 남자와 결혼하면서 대대적인 주름살 및 지방제거수술을 받아 30대 외모로 거듭난 것 역시 무수한 사례 중 하나다. 이러한 세태에 힘입어 때를 만난 것은 피트니스 클럽. 지난 93년 최초의 클럽이 모스크바에 문을 연 이후 러시아 전역에서 800여 업소가 운영되는데다, 은행·석유재벌·대형유통회사들까지 시장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월드 클래스’ ‘플래닛 피트니스’ ‘핏 앤드 팬’ 등 유명 클럽의 1년 회원권 가격은 미화 3000달러를 넘는다. 3개월짜리(600~960달러 상당) 이하의 회원권은 아예 팔지 않을 정도로 이들 클럽은 전성기를 맞았다.

-회원권의 가격은 제공되는 서비스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 4000달러짜리 ‘핏 앤드 팬’ 클럽의 골드카드에는 심장질환 검사 2회, 에어로빅 강습, 트레이너의 개인 훈련, 사우나, 마사지, 자쿠지(거품목욕), 수영장, 일광욕은 말할 것도 없고, 유명 레스토랑과 미용실 할인혜택까지 포함한다. 다이어트 전문 컨설턴트와 상담해 피부 미용 등은 추가비용을 내야 한다. 그 밖에 요가·동양무술 코스도 인기 있는 옵션이다. 이들 피트니스 클럽은 자본주의 문화의 첨병답게 효율적인 마케팅 전략으로도 앞서간다. 낮 시간 이용자에게는 회비를 낮춘다거나 대기업 직원들과 제휴해 단체 할인혜택을 주는 것은 고전적인 기법. 어린이를 위한 특별 프로그램, 청소년 전용 헬스장도 있다. 클럽 내부에 레스토랑과 바, 옷가게, 미용실 등을 설치해 살도 빼고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원스톱 서비스 체제’를 구축한 경우도 있다. 물론 이 클럽들은 수백 달러의 월급으로 연명하는 대다수 서민에게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한편 거센 다이어트 열풍 뒤에는 비만을 여유로 생각하는 ‘만만디족’도 있다. 날씬하지 않음에 대해 긍정적인 면을 찾고 그것을 자신의 모습으로 인정하며 자부심을 갖는 사람이다. 러시아에는 ‘뚱보’ 클럽을 결성해 ‘풍요로운 체구’로 인해 침해당한 권리를 되찾고자 하는 운동도 전개한다(http:// fatgirls.narod.ru/fatclub). 심지어 체중 130kg이 넘는 무용수로만 이루어진 발레단도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이 ‘뚱보 발레단’ 단원들은 신체조건을 극복하며 아름다운 발레를 하는 자신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날씬함이 곧 경제적 여유를 상징하게 된 자본주의 러시아. 그 속에서도 ‘살빼기에 집착하다 건강 버리고 마음 상하느니 있는 그대로 만족하고 살겠다’는 이들의 주장이 돋보이는 것은 분명 우리 나라나 미국과는 사뭇 다르다. 이는 가난한 서민의 일종의 항의 표시일까, 아니면 러시아인의 낙천적인 본성 때문일까. 

아마도 짐작에는 '낙천적인 본성' 때문인 듯하다. 내지는 체중 정도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다시 '백만 송이 장미'로 돌아오면, 러시아어 노래는 실제의 사랑 이야기에 바탕을 둔 거라고 한다. 그 가난한 화가는 그루지야 출신의 니코 피로사니(피로스마니슈빌리; 1862-1918)이고, 비쩍 마른 간판쟁이 화가였던 그가 30대 중반에 사랑했던 젊은 여배우(마르가리타?)는 가사에서처럼 잠시 그의 구애에 감동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돈많은 남자에게로 가버리고 만다. 그리하여 아홉 켤레의 구두처럼 니코에게 남은 것은 '백만 송이 장미'의 추억. 그는 쓸쓸하게 여생을 살다가 56살에 세상을 뜬다. 한국식 가사에 따르면 그의 별나라로 떠난 것. 그의 그림 몇 점을 감상해보기로 한다.

 

마지막 그림은 라일락과 딸기를 그려놓은 듯하다. 그의 그림들 중에서는 굉장히 드물게도 뭔가 따뜻함이 배어나는 것도 같다. 최소한 '백만 송이 장미'보다는 덜 안쓰럽지 않은가? 여하튼 니코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자신의 삶 전체를 꽃과 바꾸어 버리는 일은 자못 삼가해야겠다(내일이 '화이트데이'로군).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

06. 0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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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드레이 보즈네센스키의 죽음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6-04 01:22 
    몇 시간 전 일이지만 어제는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의 현대철학강의 종강일이었다. 가라타니 고진의 사상과 비평에 관해 다루고 강의 뒤에는 몇 분과 간단한 뒷풀이를 가졌다. 어제 아침에서야 서울에서 선거 '패배' 소식을 접하고 수도권의 경우 고작 0:3(예상)에서 1:2(결과)란 말인가 싶었지만, 밤에 귀가하면서 한겨레를 보다가 2% 부족한 승리를 '관대한 승리'로 간주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twoshot 2006-03-13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위에 대항해 열량을 보존하기 위해 기름진 음식과 감자, 밀가루처럼 고칼로리 음식을 주로 먹는 식습관으로 유명한 나라다"...비만의 원인, 이제야 알겠네요.
 

다 완성해놓고 '등록하기'를 누르니까 '로그인' 화면이 뜬다. 그래서 날려버린 게 이 글인데, 사태를 대충 수습해서 다시 마무리짓기로 한다(별 재산도 없는 내가 성질 부린다고 누가 알아주겠는가?). 내용은 세계 100대 부자들에 관한 것이다. 어제(3월 11일) 아침 신문에 '포브스'지에서 이번에 발표한 세계 100대 부자 랭킹에 삼성 이건희 회장 일가가 82위에 올랐다는 기사를 읽은 게 발단이었다.  

 

 

 

 

그에 따르면, ‘2006년 10억 달러 이상을 보유한 억만장자’는 793명이고 이 회장 일가의 순자산은 전년보다 23억 달러 늘어난 66억 달러로 지난해 122위에서 40계단이나 뛰어올라 100대 부호에 들었다. 1위는 12년째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그리고 ‘투자의 귀재’라는 워렌 버핏이 2위란다. 지난해 세계 증시 호황에 힘입어 재산 10억 달러 이상 부자 수는 102명이나 늘었다는데(10억원이 아니라 10억 달러가 이젠 부의 기준으로 정착된 모양이다), 특이사항은 신흥경제성장국 브릭스(BRICs) 국가들, 즉 중국, 러시아, 인도, 브라질에서 부자들이 크게 증가한 점. 인도는 10명 늘어난 23명, 러시아도 7명을 새로 진출시켜 33명, 브라질도 두 배인 16명을 이번 명단에 올렸다고 한다. 

그래서 검색해본 것이 러시아 관련 기사였고, 코트라 홈피에서 관련 내용을 찾았다. 이미지들을 덧붙여서 기사를 정리해본다: "4월 22일자 월간지인 ‘포브스’ 러시아판 특별호에 2005년 러시아의 100대 부호 명단이 개재됐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보다 러시아의 100대 부호 평균 연령은 4살 낮아져 44 이며, 이들의 총 자산 합계액은 40억 달러 늘어난 1410억달러에 달하나, 오히려 억만장자의 수는 지난해 보다 6명 줄은 30명으로 집계됐다." 

"러시아의 가장 부자로는 러시아 추꼬트카 주지사겸 석유재벌이며 영국의 명문 프로축구 첼시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38, 사진)가 자산 평가액 147억 달러를 기록하며 선정됐는데, 그는 또한 지난 ‘포브스’ 미국판 3월호 세계 부호 명단 순위에서 21위를 차지한 바 있다." 나이가 나보다 더 먹지도 않은 이 '신종 러시아인'이 러시아 최고 갑부이다. 아래 사진은 7천 2백만 파운드(1,440억원 가량)에 샀다는 그의 요트이며 대공방어 시스템까지 갖추고 있고 전직 영국군 특수부대원 50여명이 경호하고 있다고. 그에 관한 내용은 조재익, <굿모닝 러시아>(지호, 2004)를 참조할 수 있다.

이어서 "지난 해 자산 평가액 152억 달러를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으나, 현재 세금 포탈 등의 혐의로 고초를 겪고 있는 유코스의 미하일 하다르콥스키(*호도르코프스키, 아래 사진) 전 회장의 자산에 대해 포브스는 7.6배 감소한 20억 달러로 평가 21위라고 발표다. 그러나 최근 언론센터에서는 미하일 하다르콥스키 재산에 대해 1억 달러가 넘지 않는다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하다르콥스키의 공식 재산 평가액에 대해 엇갈린 의견이 나오고 있다." 현재 그는 시베리아의 한 형무소에 수감돼 있는 걸로 안다. 역시나 <굿모닝 러시아>에서  신흥 올리가르히의 이 대표주자의 운명에 관한 이야기들을 읽어볼 수 있다.

1. Mikhail Khodorkovsky
Net worth: $ 15.2 billion
Source: oil
Company: Yukos
Age: 40
/ Photo: Vyacheslav Kochetkov, Moscow News Picture Agency

그리고, "러시아 100대 부자 중 여성으로 유일하게 명단에 오른 것은 모스크바 시장 유리 루스코프(*루쉬코프)의 의 부인 옐레나 바투리나로 지난해 3억 달러의 재산 증가를 보여 현재 14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963년생이니까 그녀의 나이 마흔 셋이다.

35. Elena Baturina
Net worth: $ 1.1 billion
Source: construction, construction materials, petrochemicals
Comment: wife of Moscow mayor Yuri Luzhkov Age: 41
/ Photo from MN Archive 

"한편, 작년까지만 해도 러시아 부호들은 철강, 원유, 다이아몬드 등 주로 천연 자원에 의존했으나, 올해의 부자 100인의 명단에 유통 체인점 거물, 햄 제조업체 사장, 자동차 딜러, 심지어 슬롯머신 운영주가 신흥 부호로 선정됐는데, 이는 필수품에 대한 수요에서 생활 수준 상승에 따른 수요의 다변화와 유통의 활성화, 욕구의 다양화 추세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이런 소개내용을 접하니까 재작년 5월쯤에 써둔 글이 생각이 나서 여기에 옮겨둔다.

지난주(*2004년이다) 목요일자 (호텔 등에 무료로 배포되는 영자지, 35,000부 발행)와 금요일자 <이즈베스찌야>에는 <포브스>지 러시아판이 보도한 러시아의 ‘부자들’ 랭킹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내용을 종합하면, 러시아에는 36명의 억만장자(‘백만불’이 부의 지표이던 시절은 이미 지나간 듯하다. 억만장자는 'billionaire'인데(요즘 '백만장자'는 부자축에도 못 드는 모양이다), 산술적으로는 재산이 10억불 이상인 사람을 뜻하지만, 10억만장자라고 부를 순 없으므로, 그냥 ‘억만장자’라고 해두자. 원화로는 1조 2천억 이상의 재산가들을 말한다)가 있다(미국엔 277명). 이들의 재산은 러시아 GDP(국민총생산)의 24%, 거의 1/4을 차지할 정도로 엄청나다(미국의 경우는 6%).

그건 그만큼 빈부격차가 심하며 부가 편중돼 있다는 뜻도 된다(사회주의 체제가 몰락한 지 아직 15년도 되지 않았다!). 게다가, 이들의 재산은 무섭게 증식되고 있는데, 지난 97년 조사 때의 경우 억만장자는 4명에 불과했었다. 이 부자들의 2/3는 석유나 가스 같은 자연자원을 채굴 수출하는 회사를 거느리고 있다(지금의 러시아는 석유와 무기 수출로 먹고 산다, 얼마전 들은 바로는 최대 산유국이다). 그리고, 이들의 대부분은 모스크바에 거주하고 있는바, 모스크바는 세계에서 억만장자 밀집도가 가장 높은 도시이다! 그대, 억만장자와 결혼하려는가? 일단은 모스크바에 와서 죽치고 있어 보기를...



이런 대동소이한 내용을 전하면서도 두 신문의 포커스는 각기 다른 곳에 맞춰져 있었는데, <모스크바 타임즈>는 152억불의 재산을 갖고 있다는 러시아 최고의 부자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가 아직 감옥에 있다는 소식을 그의 사진과 함께 보도하고 있고(탈세혐의로 체포되어 지난해 10월 25일부터 철창에 있다), <이즈베스찌야>는 러시아 억만장자 중 유일한 여성인 옐레나 바투리나를 두 장의 사진과 함께 한 면 전체 특집으로 다루고 있다.

러시아에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호도르코프스키란 이름이 낯설지 않을 텐데, 그는 최근에 부도설까지 나돌고 있는 거대 기업 '유코스'의 젊은 (전직)총수로서 정치적 야심까지 품고 푸틴의 재선가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가 권력의 ‘철퇴’를 맞았었다(비슷한 케이스로 현재 런던에 ‘망명’중인 한때의 최고 부자 베레조프스키는 이번에 47위로 순위가 떨어졌다).



11억 달러의 재산으로 전체 35위에 오르면서 러시아 여성 최고 갑부에 등극한 옐레나 바투리나(1963- )는 20여 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인테코'그룹의 총수인데, 그녀가 사업을 시작한 건 1991년 불과 25세의 나이 때였다). 그녀를 아내로 둔 ‘운좋은’ 남자는 현 모스크바 시장인 유리 미하일로비치 루슈코프이다(그는 대권에의 야심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사진). <이즈베스찌야>에 따르면, 그들이 처음 만난 건 1987년이고, 결혼한 건 1991년이다. 바투리나보다 30년 연상인 루슈코프의 나이 55세 때이고, 그로선 재혼이었다. 이들은 현재 12살과 10살 난 두 딸을 두고 있다. 덧붙여, 바투리나가 좋아하는 색깔은 에머랄드색이고, 좋아하는 작가는 미하일 불가코프와 알렉세이 톨스토이이다(레프 톨스토이 말고)…

이상, 나와 ‘무관한’ 얘기를 왜 시시콜콜 늘어놓느냐고? ‘포브스’의 부자 랭킹 관련 기사를 읽은 후에 우연히 옛날에 쓴 ‘프로메테우스 신화에 대한 몇 가지 신화’란 글을 읽다가 앙드레 지드의 소설 <잘못 결박된 프로메테우스>(1899)의 이야기가 문득 ‘현실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의 발단을 다시 옮기면 이렇다: “드라마가 아니라 우화적 소설인 이 작품은 1890년대 파리의 한 다방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제우스(=죄스)는 부유한 은행가(!)로 등장하고, 프로메테우스(=프로메떼)는 무면허 성냥 제조 혐의로 구속된다. 이야기의 발단은 대부호인 제우스가 아무런 이유없이 한 사람(꼬클레스)의 따귀를 때리고 다른 한 사람(다모클레스)에게는 500프랑의 돈을 익명으로 부친 데서 비롯한다.”



그러니까 ‘돈이 말하는(money talks)’ 자본주의 사회에서 과거 그리스 신화의 신들을 대행하는 이들이 바로 ‘대부호 제우스’와 같은 ‘억만장자들’인 것이다(사진은 아테네의 제우스 신전). 그들의 행위는 아무런 동기나 이유를 갖지 않는다는 점에서 ‘무상적’인바, 기호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억만장자’라는 기호는 비동기적인, 즉 완전히 자의적인 기호이다(이들은 발을 땅에 딛고 살지 않는다!). 따라서 하나의 기호체계로서의 이들의 행동양식은 동기적인 관점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평범한 인간들’ 혹은 ‘소금이나 받아먹는’ 샐러리맨들의 관점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얘기다).

왜 한 사람은 따귀를 때리고 다른 한 사람한테는 거액을 적선(기부)하는가? 왜 노동자들의 임금은 떼먹으면서 불우이웃돕기 성금은 수십 억씩 내는가? 평생 먹고 남을 재산을 쌓아놓고도 왜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는가? 이런 걸 ‘인간들’이 이해하려고 하면 머리만 혹사시키게 된다. 탈세라면 합법/불법을 가리지 않으면서도, 아이들에게 몇 백 만원짜리 장난감을 턱턱 사다주고, ‘언니들’한테도 팁을 몇 천불씩 콕콕 찔러주는 ‘몰상식’을 어떻게 이해한단 말인가?(우리 주변에도 백만장자급의 유사-제우스들이 더러 있다) 요는, 그들이 ‘우리들’과는 격이 다르며, 종이 다르다는 것. 왜 아니겠는가? ‘비인간적인’ 그들은 신이거늘!(사실, 자신이 벌었는데 다 탕진할 수 없는 재산이란 얼마나 비인간적인가! 그게 '비인간적인' 자본(capital)과 '인간적인' 재산(property)의 차이이다. 재산이란 그 사람에 대해서 말해줄 수 있는 만큼의 소유를 뜻한다).

 

 

 



따라서, 그리스인들의 신에 대한 관심은 현대인들의 부자에 대한 관심과 등가이다. 오, 불쌍한 호도르코프스키, 감옥에 갇힌 거부(巨富)여! 그는 최고신(권력=부이다!)에 반항하다가 벌받고 있는 현대판 아틀라스요, 시지프스가 아닌가? 미국의 사회학자 베블렌은 이 신들을 일컬어 ‘Leisure Class’, 즉 유한계급이라고 불렀는데(한 국역본은 ‘한가한 무리들’이라고 옮겼다. 이 ‘한가한 무리들’의 대척점에 있는 것이 ‘한심한 무리들’이다), 이때의 레저는 노동의 반의어이다. 그들의 생은 도대체가 무슨 ‘겨를’이 없는 노동자들, 혹은 ‘인간들’의 생과는 달리 온통 ‘남은 겨를’들로 채워져 있다. 그러니, 신들의 자녀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여생을 살기 시작하는 것이다!

IMF때 베스트셀러였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에 따르면(물론 내가 이 책을 읽은 건 아니다. 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혐오스러운데, 사실 모든 아빠는 자녀들을 거느린 ‘부자 아빠’이면서 한편으론 자신을 자녀들에게 한없이 부족하게만 여기는 ‘가난한 아빠’이다), 부자와 가난한 자를 가르는 기준을 간단하다. 노동을 통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돈이 돈을 벌게 하거나(가령 주식이나 이자 소득 등) 한번의 노동으로 지속적인 소득을 얻어내면(가령, 특허나 인세 소득) 부자이고, 주로 노동을 통해서만 먹고 살아야 하면 가난한 자이다. 때문에, 부유할수록 한가하고, 가난할수록 몸으로 때워야 한다.



 

 

 

부자들도 열심히 일하지 않느냐고? 그리스의 신들은 맨날 놀기만 했던가? 그들도 열심히 수작을 걸고, 참견하고, 바람피고, 심술부리고, 진수성찬을 먹어대면서 굉장히 바쁘게 지냈다. 하지만, 그건 ‘신들의 일’이다! 해서, 거꾸로 말하면, 그들은 아무런 삶도 살지 않는다. (인간적) 삶의 근간은 노동이며 고통이기 때문이다. 여가를 꿈꾸고, 행복을 꿈꾸는 것은 삶의 현실, 혹은 인간의 조건이 (여가가 아닌) 노동이고, (행복이 아닌) 고통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 다 아는 바이고, 또 곧 알게 되겠지만 그건 ‘막간의 행복’이다. 당신은 아직 젊은가? 곧 늙고 병들어 죽으리라. 때문에 신화 속 제우스가 이런 인간들을 별 볼일 없게 생각한 것은 아주 당연하다. 그건, 오늘날의 ‘제우스들’이 보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심한 것들’ 같으니라구!

스스로를 한심하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잠시 신적인 관점에 서는 것인지도 모른다. 서점들에 갈 때마다 책의 목차보다도 표시된 가격이 얼마인지를 먼저 확인하는 나는 스스로 얼마나 한심한 것인지. 책을 집었다가 놓았다가 반복하면서 열심히 머릿속으로는 이 달에 탕진한 지출이 얼마인지를 따져보는 나는 얼마나 가련한 것인지. 그러면서 결론은 어디 (제우스의) ‘돈벼락’이라도 좀 떨어졌으면 하는 것이다. 어디서나 마찬가지겠지만, 모스크바에서도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렇듯 한심하게 ‘노르말나’하고, 가련하게 ‘노르말나’하다. 어이, 서울에 있는 ‘인간들’, 노르말나하게 잘 있는지?(*나도 지금은 서울에 있다.)

06. 03. 11 - 12.

P.S. '한가한 무리들'과 '한심한 무리들'의 경계가 아직 모호하지 않다면, 계급투쟁은 지나간 년대의 구호가 아니다. 그건 자본의 윤리와 무관하다. 즉, '도덕적인' 한가한 무리들과 '부도덕한' 한심한 무리들이라는 이차적 범주가 가능하지만, 그것은 이차적이다. '사촌이 땅사면 배아픈' 인간들이 특별히 도덕적이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투쟁의 주체는 바로 그런 오만하고 이기적인, 그래서 '너나 내나'라고 생각하는 인간들이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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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shot 2006-03-12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나 '노르말나'하게 잘 있어서 신들의 삶에는 관심을 가질 틈이 없답니다-.-+

로쟈 2006-03-12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그렇죠.^^
 

레프 도진은 러시아의 저명한 연극연출가이자 말르이(말리) 극장의 예술감독이다. 재작년에 그의 체호프 공연 한편을 보고 적어둔 감상을 여기에 옮겨놓는다. 공연과 관련한 이미지들을 찾아넣으면 그때의 느낌이 조금은 되살아나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해서, 연극은 시간예술이면서 공간예술이지만, 이 글-정리는 공간의 이미지를 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성격이 더 강하겠다. 아래 사진은 레프 도진.

 

 

한편 도진의 작품들은 <가우데아무스> 등이 이미 한두 번 내한 공연된 바 있는데, 소식에 따르면 올 5월 20-21일 양일간에 걸쳐서 그가 이끄는 말르이극단의 <형제자매들>이 LG아트센터에서 국내 초연된다.  러시아에서는 1985년에 초연한 화제작이라는데,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스탈린 정권 아래 살고 있는 러시아 민중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는 <형제자매들>은 억압된 자유와 빈곤한 삶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의 강한 생명력을 예찬한다"고. "40여명의 배우들이 7시간 동안 뿜어내는 에너지와 감동은 영화의 시대이자 뮤지컬의 시대인 오늘날에도 연극이라는 장르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고 하니까 한번 기대해봄 직하다. 아래 사진은 페테르부르크의 말르이극장.  

 

내가 지난주(2004년 6월) 수요일에 ‘타간카’극장에서 본 레프 도진의 <바냐 아저씨>가 바로 ‘마냐 아줌마와 바냐 아저씨’(마야코프스키) 류의 연극이다(<바냐 아저씨>를 간혹 <바냐 외숙>이라고 옮기는데, 촌수야 그렇지만 ‘정떨어지는’ 번역이다). 그러니까 <바냐 아저씨>는 안톤 체호프(1860-1904)의 대표작이면서(나는 ‘체홉’이라고 즐겨 쓰지만, 여기서는 번역 관례대로 ‘체호프’라고 표기하겠다), 러시아 정통극의 상징이다. 

 

<바냐 아저씨>를 그의 ‘대표작’이라고 부르면, 약간 서운해 할 사람들도 있겠다. <갈매기>, <세자매>, <벚꽃동산>의 팬들도 만만찮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여전히 <바냐 아저씨>이고, 그걸 감추기는 어렵다. 내 생각에, 체호프의 이 네 작품에는 인생의 사계(四季)가 반영돼 있다. <갈매기>는 예술에 대한 열정과 좌절의 드라마이면서 동시에 봄의 드라마이고, 청춘의 드라마이다. 니나는 물론이거니와 트례플료프도 젊디 젊다. 그의 권총자살은 그 젊음을 웅변한다. 그는 미숙하지만 구차하지는 않은 것이다.

 



 

 

 

 

 

 

 

하지만, <바냐 아저씨>와 <세 자매>에는 구차하게라도 삶을 계속 이어나가는, 이어나가야 하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이들의 삶은 언제 올지도 모르는 진짜 삶, 삶다운 삶을 준비하고 고대하는 데 다 소진된다. 이들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다 비슷한 족속들일 것이다. 그들은 삶을 항상 고대하지만, 삶은 언제나 그들을 그냥 통과해간다. 마치 가구처럼, 무슨 간이역처럼. 그런 꿈이 허깨비였다는 걸 알게 된 이후에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데 이들의 삶이 가진 비극성이 있고, 진실이 있다(진실은 잔인하다!). <바냐 아저씨>는 그 진실의 남성-버전이고, <세자매>는 여성-버전인바, 드라마에서 이들의 삶은 여름에서 가을로 간다. 어느덧 그들의 젊음은 사라졌거나 대책없이 사라져가고 있다.

 

한편, <벚꽃동산>은 조락(凋落)의 드라마이자, 장년의 드라마이며, 체호프식의 ‘엔드게임’이다(어떤 연구자들은 <벚꽃동산>에서 부조리극의 ‘원조’를 읽어내기도 한다). ‘벚꽃동산’ 대신에 곧 ‘별장’이 들어서는 것처럼, 한 세대(혹은 한 시대)는 가고 또 다른 세대(혹은 또 다른 시대)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벚꽃동산>에는 ‘가을’에서 ‘겨울’로의 그러한 이행의 과정이 쓸쓸하게, 그러나 의외로 코믹하게 그려져 있다. 

<갈매기>를 무척 좋아했던 한 친구와는 다르게(그 친구는 구차하게 살기를 거절했다), 나는 처음부터 <바냐 아저씨>였고, 아직도 <바냐 아저씨>이다. 그래서, 이대로라면, 마흔 일곱까지는 조숙한(조로한) 편이게 된다. 바냐 아저씨의 나이가 마흔 일곱이므로. 하지만, 그 이후에라도 <벚꽃동산>을 좋아하게 되는 건 꺼려진다. 그건, 나의 분류에 따르면, ‘인생의 무대’에서 곧 퇴장할 사람들이나 ‘절절하게’ 즐길 만한 드라마이므로(‘잔혹극’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레프 도진이 체호프극 연출가로서 명성을 얻은 것은 이 달 1일부터 24일까지 타간까 극장(사진. 전철역 ‘타간까’에서 나오자 마자 있는데, 올해로 40주년을 맞이했고, 비소츠키가 활동했던 극장으로도 유명하다)에서 열리는 ‘레프 도진 연극제’의 레파토리에도 들어가 있는 <제목 없는 희곡>의 성공에 힘입은 걸로 보인다. 지난번에 언급한 대로, 이 작품은 체호프가 최초로 시도한 장막극이자 실패한 장막극, 그래서 미완성으로 남은 드라마이다. <애비 없는 자식>이란 제목은 체호프의 한 편지에서 언급되며, 공식적인 제목은 아니다. 그리고, 흔히 일컬어지는 <플라토노프>란 제목은 독일인들이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면서 붙인 제목이라고 한다. 그리고, 아마도 도진은 이 작품을 새롭게 각색한 모양이다(원작은 공연 분량으론 너무 길다). 도진에 의하면, 우리의 삶 또한 ‘제목 없는 희곡’이다. 아래 사진은 <제목 없는 희곡>의 한 장면. 참고로, 니키타 미할코프의 영화 <피아노를 위한 미완성 희곡>도 같은 원작이다.

 



이번 연극제에 대한 정보를 좀더 일찍 알았더라면 (비싸더라도) 표를 구해볼 수 있었을 텐데, 룸메이트가 <바냐 아저씨>를 예매하고, 다른 날 다른 작품들을 예매하러 갔을 때 이미 모든 공연의 표가 매진이었다. <체벤구르>도, <악령>도, <제목 없는 희곡>도. 그래서 결국, <바냐 아저씨>만 보게 된 것인데, 다음에 그의 작품들을 보려면, 아마도 페테르부르크에 가야 할 것이다. 레프 도진은 원래 페테르(페테르부르크를 러시아에서는 ‘삐쩨르’라고 약칭해서 부른다)의 ‘말르이 극장’에서 활동하는 연출가이다(페테르에는 현대식 건물의 ‘제2 말르이극장’도 곧 건축될 예정이다. 지난번 설계공모에서 프랑스 건축가의 출품작이 선정됐다).

 

그래서 이번 공연의 원제는 ‘모스크바에서의 레프 도진의 공연들’이며 지난 봄에 있었던 제10회 ‘황금가면’ 연극제에서 <바냐 아저씨>로 도진이 연출상을 받은 걸 기념하여 기획된 걸로 안다. 그러니까 도진의 모스크바로의 ‘화려한 외출’인 셈이다. 배우들은 물론 전부 말르이극장 소속 배우들이며, 무대장치도 페테르에서 공수해 왔다고 한다. 참고로, 모두 7편이 공연된 도진의 연출작(혹은 감독작) 가운데, 제일 첫작품은 류드밀라 페트루셰프스카야의 <모스크바 합창단>이었다. 페트루셰프스카야? 지난번에 번역해서 올린 단편 <복수>의 작가 말이다. 그녀는 극작가로서도 상당한 명망을 갖고 있다. 막심네에서 들춰본 그녀의 희곡선집에는 <모스크바 합창단>이 빠져 있어서, 자세하게 어떤 내용인지는 모르겠다(그녀의 작품이 일부 <러시아 현대희곡>에 번역/소개돼 있다).

 

 

 


 

 

 

 

 

도진이 연출한 체홉극 목록에서 <바냐 아저씨>는 <제목 없는 희곡>과 <갈매기>, <벚꽃동산>에 이어진 작품이다. 그러니까 <세자매>가 목록에 빠져 있는 셈인데, 한 잡지의 인터뷰 기사를 보니까 현재 오페라 <엘렉트라>를 준비중인 도진은 기회가 되면 <세자매> 또한 연출해볼 의향을 갖고 있다(그는 올해로 환갑을 맞았다). 한국에서 체호프의 공연을 거의 본 적이 없기 때문에(나는 연극을 즐겨보는 편이 아니다), 도진의 <바냐 아저씨>가 어느 정도 뛰어난 작품인지는 잘 가늠할 수 없었지만, 객석이 꽉 들어찬 가운데 배우들이 가구들을 하나 둘씩 날라다 놓으면서 시작된 공연은 상당히 품위 있고 세련돼 보였다.


우리의 ‘바냐 아저씨’를 연기한 배우는 세르게이 쿠르이쇼프인데, 도진의 9시간짜리 <악령>에서는 키릴로프 역을 맡고 있고(내가 갖고 있는 이미지로는 차라리 ‘샤토프’ 역에 더 어울리는데), 이번 <바냐 아저씨>로 ‘황금가면’ 연극제에서 남자연기상을 받았다. 그런 걸로 미루어볼 때, 연기력을 인정 받는 배우이지만, 내가 상상해온 ‘바냐 아저씨’와는 조금 다른 면모의 배우였다. 일단 키가 좀 크고(그래서 어정거리며 걷는다), 갈색 머리는 웨이브의 장발이며, 양복을 아주 단정하게 입었고, 약간 술 취한 듯한, 질질 끄는 말소리에는 콧소리가 좀 들어가 있었다. 다른 배우가 연기한 ‘바냐 아저씨’를 보아야 감을 좀 잡을 거 같다.

바냐 아저씨가 헤프게 어정거리다 말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도진의 <바냐 아저씨>에서 두드러지는 건 의사인 아스트로프인데, 이 역을 맡은 배우 표트르 세마크는 단단한 체구에 똑 부러진 말투로 아스트로프의 열정과 냉소주의를 연기했다. 이 세마크란 배우가 도진의 <갈매기>에서는 역시 의사인 도른 역을, <악령>에서는 주역인 스타브로긴 역을 맡고 있다(이런 내용은 당일 70루블(2,800원)을 주고 산 전체공연 팜플릿에는 배우들의 사진과 약력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알게 된 것이다).

 

 

배우들의 이러한 면면으로 대략 도진 버전의 <악령>을 그려볼 수 있다. 아스트로프와 함께 도진의 <바냐 아저씨>를 끌고 가는 건 늙은 학자 세레브랴코프와 결혼한 ‘미의 화신’ 옐레나 안드레예브나인데, 크세니야 랍포포르트란 여배우가 연기했다. 이 배우는 <갈매기>에서 니나도 맡고 있었는데, ‘아름다우면서 콧대 높고 허영에 찬 젊은 여자’의 이미지에 딱 들어맞는다(실제로 눈이 크고 콧대가 높은 배우였다. 머리는 곱슬머리. 아니, 파마머리인가?). 사진은 아스트로프와 옐레나.

도진의 <바냐 아저씨>에서의 클라이막스는 예상과 다르게, 3막에서 영지를 매각하는 게 좋겠다는 세레브랴코프의 발언에 분노한 바냐 아저씨가 그에게 권총을 겨누지만 그마저 제대로 못 맞히는 장면이 아니라, 4막에서 아스트로프와 엘레나가 단둘이 작별의 포옹을 나누는 장면이었다. 둘은 포옹만 하는 게 아니라 열정적으로 상당히 긴 시간 또한 키스를 하는데, 그 바람에 남편 세레브랴코프를 비롯한 다른 식구들이 모두 그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객석에서는 탄성이 나왔다).

 

내가 읽은 <바냐 아저씨>에도 그런 장면이 있었나 싶어서 기숙사에 돌아와 확인해보니까 원작은 그렇지 않았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에서는 둘이 잠깐 포옹했다가 서로가 화들짝 놀라서 떨어진다(사실 그런 게 ‘체호프적’이다). 즉, 원작에서는 아스트로프가 바냐 아저씨 못지 않은 ‘등신’으로 나오는데(그래서 둘이 친구로서 어울린다), 도진의 <바냐 아저씨>에서는 아스트로프가 나름대로 박력있는 남자로 나옴으로써 ‘배신’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나는 이러한 도진의 해석이 창의적인 것인지 오바한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다(물론 보기엔 더 좋다. 이 ‘한심한 인물들’의 드라마에 그래도 열정적인 키스씬이라도 나오니까 말이다).

 



엘레나의 남편이자 바냐의 처남이자 소냐의 아버지, 세레브랴코프 역은 이고르 이바노프란 배우가 맡았는데(사진은 세레브랴코프와 옐레나), 그는 <벚꽃동산>에서는 로파힌 역을, <악령>에서는 레뱌드킨 역을 맡고 있었다. 로파힌 역을 맡기에는 너무 젊잖고 완고해 보이는 외모인데(김무생 타입이다), 콘찰로프스키의 영화 <바냐 아저씨>에 나오는 아주 얌체 같은 늙다리 세레브랴코프에 비하면, 나름대로 권위적이고, 젊은 아내 엘레나를 거느릴 만한 세레브랴코프를 연기했다.

 

그밖에 주요 배역으론 소냐를 연기한 엘레나 카릴니나와 첼레긴을 연기한 알렉산드르 자비얄로프가 있다. 미스터리한 것은 이 배 나온 ‘첼레긴’이 <갈매기>에서 트레플료프를 연기한다는 점(사진에서 기타를 치고 있는 남자). 자비얄로프란 배우는 이고르 이바노프와 마찬가지로 1954년생이니까 우리 나이로는 51세이다. 나는 (첼레긴 역에나 딱 어울리는) 그가 연기하는 트레플료프를 도저히 상상하기 힘들다!

기타 등등. 이제 마무리이다. 알다시피 <바냐 아저씨>는 “바나 아저씨, 우리, 일을 하는 거예요.”로 시작되는 소냐의 대사로 마무리되는데, 도진 버전에서는 이 마지막 대사가 비교적 절제된 톤으로 담담하게 전달되고 있었다. 룸메이트에 따르면, 한국의 <바냐 아저씨> 공연에서는 이 마지막 대사에 상당히 힘을 준다고(거의 울부짖는 수준으로).

 

하여간에, 우리들 ‘소냐’나 ‘바냐’들은 남은 여생을 그저 일이나 하는 수밖에 없겠다. 천국에 가서 그간의 노고를 위로 받고 쉬게 될 때까지 말이다. 그것이 냉철한 연민의 작가 체호프가 <바냐 아저씨>에서 내리는 결론이다. 이건 위안일까, 냉소일까? 혹은 낙관주의일까, 비관주의일까? 둘 다이다. 그래서 체호프를 ‘Optimo-pessimist’라고 부르기도 한다. 되는 일도 없고, 굳이 안 되는 일도 없는, 그래서 슬프도록 즐거운, 혹은 눈물 나게 즐거운 삶을 우리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갑시다!(막) 짝짝짝…

 

06. 03. 07.

 

P.S. 체호프 원작의 영화들 얘기는 조만간 다른 자리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참고로, 도진과 말르이극장에 관한 영어본 소개서로는 마리야 셰브쵸바의 'Dodin and the Maly Drama Theater'(Routledge, 2002)가 있다. 한번 구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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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레프 도진과 말리드라마극장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4-07 21:59 
    뜻밖의 책이면서 '오늘의 책'이라 할 만한 책은 마리아 셰프초바의 <레프 도진과 말리드라마극장>(동인, 2010)이다. 이미 여러 차례 방한한 바 있는 러시아의 연출가 레프 도진에 관해서는 여러 차례 포스팅한 적이 있고, 셰프초바의 책도 관심도서로 분류했었지만 막상 번역까지 될 줄은 몰랐다. 반가운 마음에 바로 주문을 넣었다. 도진의 <바냐아저씨>가 내달 서울에서 공연될 예정이기도 해서 더욱 의미가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