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나르치스와 골드문트』(세계문학전집 66), 임홍배 옮김, 민음사, 2017(45쇄).
헤르만 헤세,『나르치스와 골드문트』(헤르만 헤세 선집 7), 윤순식 옮김, 현대문학, 2013.
헤르만 헤세,『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배수아 옮김, 그책, 2018(4).
• an dessen[=des Erlösers] Brust er[=der Lieblingsjünger] ruhte
= 구세주의 품에 기대어 애제자가 쉬었다
• ‘애제자’와 ‘배반자’는 <신약성경> 요한복음 13장을 볼 것: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마음이 괴로우셔서, 드러내 놓고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하나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몰라서, 서로 바라다보았다.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 곧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바로 예수의 품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고갯짓을 하여,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여쭈어 보라고 하였다.
그 제자가 예수의 가슴에 바싹 기대어 “주님, 그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내가 이 빵조각을 적셔서 주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하시고 빵조각을 적셔서 시몬의 아들 가룟 사람 유다에게 주셨다.
그가 빵조각을 받은 뒤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 그 때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할 일을 어서 하여라.”
아래 그림을 참고할 것.
Hans Schäufelin, Abendmahl, 1515
Jacopo Bassano, Das letzte Abendmahl, 1542
독일어 원문: Narziß: »Sehr gut. Im Lehrbuch der Dogmatik ist freilich ein Mensch genau wie der andere, im Leben aber nicht. Mir scheint: der Lieblingsjünger des Erlösers, an dessen Brust er ruhte, und jener andere Jünger, der ihn verriet – die haben doch wohl beide nicht dieselbe Bestimmung gehabt?«
① 나르치스가 말했다.「그 말 잘했어. 교리 학습서에 따르면 물론 인간은 모두 똑같은 존재이지. 하지만 삶은 그런 게 아니야.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품에 안고 있는 애제자와 예수를 배반한 또 다른 제자를 생각해 보자구. 두 제자의 소명은 똑같지 않잖아?」(임홍배:70)
→ 나르치스가 말했다.「그 말 잘했어. 교의신학 학습서에 따르면 물론 인간은 모두 똑같은 존재이지. 하지만 삶은 그런 게 아니야. 예수의 품에 기대어 앉아 있는 애제자와 예수를 배반한 또 다른 제자를 생각해 보자구. 두 제자의 소명은 똑같지 않잖아?」
② 나르치스가 말했다. “그 말 잘 꺼냈어. 교리 학습서에 의하면 인간은 모두 다 똑같은 소명을 가진 존재지. 하지만 실제의 삶에서는 그렇지 않아. 구세주 예수를 품에 앉고 있는 애제자와 예수를 배반한 또 다른 제자, 그 두 제자의 소명이 똑같다고 말할 수는 없잖아?”(윤순식:66)
→ 나르치스가 말했다. “그 말 잘 꺼냈어. 교의신학 학습서에 의하면 인간은 모두 다 똑같은 소명을 가진 존재지. 하지만 실제의 삶에서는 그렇지 않아. 예수의 품에 기대어 앉아 있는 애제자와 예수를 배반한 또 다른 제자, 그 두 제자의 소명이 똑같다고 말할 수는 없잖아?”
③ 나르치스가 말했다. “아주 훌륭해. 교리서에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과 똑같다고 적혀 있지. 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그렇지 않아. 예수를 가슴에 안고 있는 사랑하는 제자와 예수를 배반한 제자, 둘에게 정해진 삶이 정말로 같다고 생각해?”(배수아:62)
→ 나르치스가 말했다. “아주 훌륭해. 교의신학 학습서에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과 똑같다고 적혀 있지. 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그렇지 않아. 예수의 품에 기대어 앉아 있는 사랑하는 제자와 예수를 배반한 제자, 둘에게 정해진 삶이 정말로 같다고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