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아이 132. 2014.4.5. 담요 쓴 책읽기



  한창 뛰놀면 땀이 나서 덥다 하지만, 얌전하게 앉아 만화책을 펼치면 서늘하다고 해서 스스로 담요를 뒤집어쓰는 아이. 그래, 그렇구나. 그런데, 조용히 앉아서 책을 넘길 때에 춥다 싶으면 햇볕 내리쬐는 바깥으로 걸상을 갖고 나가서 읽으면 되지. 그러면 따뜻할 테니까.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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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은 신문 들추기 (사진책도서관 2014.4.5.)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유채꽃 냄새를 맡으며 두 아이와 함께 도서관으로 간다. 도서관 둘레로 피어나는 딸기꽃을 들여다본다. 딸기 익을 철을 기다리며 하얀 꽃잎을 쓰다듬는다. 도서관 창문을 모두 연다. 향긋한 풀내음이 고소하다. 숲에 깃들어 살아가는 사람은 풀내음을 먹고도 배부르겠다고 느낀다. 이 풀내음이 바로 밥이요, 풀내음과 섞이는 봄꽃가루가 맛난 숨이 되리라.


  오늘날에는 시골에서도 숲을 누리기 만만하지 않다. 외딴 멧골로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면 숲바람이나 숲내음을 알기 어렵다. 마을에서는 농약을 끔찍하도록 많이 쓴다. 면소재지나 읍내는 도시하고 똑같은 얼거리이다. 시골마을조차 나무그늘이 드물고, 풀밭에 드러누워 햇살을 누릴 수 있는 데를 찾을 수 없다. 시골에서는 풀밭마다 농약을 쳐대니 섣불리 풀밭에 앉거나 드러눕지도 못한다.


  살림집과 도서관을 시골로 옮기며 우리 식구가 품은 꿈 가운데 하나는, 우리 도서관에 찾아오는 책손이 ‘풀밭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풀밭에 드러누워 하늘바라기를 하면서 쉬’도록 할 수 있는 터를 마련하는 일이었다. 나무로 짠 좋은 책걸상에 앉아서 책을 읽어도 좋고, 풀밭이나 나무그늘 맨땅에 앉아서 책을 읽어도 좋다. 책은 내려놓고 풀밭에서 뒹굴며 바람을 쐬어도 좋다. 풀노래를 듣고 풀벌레와 개구리와 멧새 노래를 가만히 들어도 좋다.


  책이란 무엇인가. 지식이나 정보를 담아야 책이겠는가. 삶을 노래할 때에 책이요, 책을 이야기할 적에 책이며, 삶을 사랑하는 사이에 시나브로 책이다.


  이런 책을 반드시 읽을 까닭이 없다. 사진길 걷는 이들이 꼭 이런 사진책을 들추어야 사진을 잘 알 수 있지 않다. 이런 책이 있어야 도서관이 되지 않는다. 종이책을 곁에 두어도 좋은 한편, 종이책에서 홀가분하게 살아가면서 이웃을 사랑하고 풀과 나무와 숲이 얼크러진 보금자리를 가꾸거나 아낄 수 있어도 좋다.


  묵은 신문을 들춘다. 그동안 차곡차곡 모으기만 하고 너른 자리에 펼치지 못한 신문꾸러미이다. 신문을 잔뜩 모으지는 않았다. 신문배달을 하며 살던 1995∼1999년 사이에 오려모으기를 무척 많이 했고, 어느 때에는 신문을 통째로 건사했다. 중·고등학교 다니며 모은 예전 인천 신문이 몇 가지 있다. 대학교 학보에 글을 쓰면서 건사한 대학신문이 제법 있다. 네덜란드말을 배울 적에 그러모은 네덜란드 신문이 조금 있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 같은 이들이 대통령이 되던 날 나온 신문이 차곡차곡 나온다. 중앙일보가 신문에 ‘한자’를 안 쓰기로 하면서 가로쓰기를 처음 하던 1995년 10월 9일치 신문이 있다. 모든 신문을 건사할 수는 없으나, 이럭저럭 뜻있고 재미난 신문들이 보인다. 우리 도서관에서 한결 너른 자리를 쓸 수 있으면 이 신문들을 알뜰히 펼쳐서 선보일 수 있겠지.


  ‘신문 박물관’이 있을까? 있겠지? 신문박물관에서는 열 해나 스무 해나 서른 해쯤 묵은 신문을 손으로 만지면서 볼 수 있을까? 헌책방에서 찾아낸 1970년대 〈기자협회보〉라든지 〈조선일보 노동조합 소식지〉는 앞으로 여러모로 뜻있는 자료가 되리라 생각한다. 이런 신문꾸러미는 그저 들여다보기만 하면서도 온갖 이야기가 쏟아진다.


  도서관 골마루를 이리저리 달리면서 놀던 아이들이 조용하다. 큰아이는 도라에몽 만화책에 빠졌다. 일본책인데 아랑곳하지 않고 들여다본다. 워낙 많이 읽은 만화책이니 그림만 봐도 무슨 줄거리인 줄 알 테지. 하늘은 파랗고 들은 푸른 아름다운 사월이다. 이 사월빛을 가슴에 담는다.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0.5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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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잡고 걷는 길



  아이들과 손을 잡고 걷는다. 아이들이 우리 손을 놓고 저희끼리 신나게 앞으로 달린다. 큰아이가 곁님이나 나보다 훨씬 빠르게 앞장서서 걷는다. 작은아이가 혼자서 콩콩 뛰듯이 걷다가 제 어머니 손을 잡고 걷는다. 걷다가 힘이 드니 어머니 손에 기대어 걷는 셈이다.


  어디에서 살든 네 식구는 함께 걷는다. 함께 손을 잡고 눈을 마주하면서 살아간다. 일곱 살 큰아이는 열 리 길도 씩씩하게 걸을 수 있고, 네 살 작은아이는 다섯 리 길쯤 씩씩하게 걸을 수 있다. 두 아이를 지켜보면서 곁님과 내가 이 아이들만 하던 나이에 어떤 몸짓과 눈빛으로 놀고 어울렸을까 돌아본다. 나도 씩씩하게 이 길을 걸었겠지. 나도 힘이 들면 기대거나 업히면서 다리를 쉬려 했겠지.


  들판을 가로지르는 바람이 분다. 사월바람이 싱그럽다. 조용히 호젓하게 들길을 걸어가면서 온몸이 개운하다. 4347.4.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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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아요 선생님 - 남호섭 동시집
남호섭 지음, 이윤엽 그림 / 창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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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26



함께 살아가면 모두 노래

― 놀아요 선생님

 남호섭 글

 창비 펴냄, 2007.1.10.



  사월 십육일은 우리 면소재지에서 잔치를 하는 날입니다. 면민잔치를 합니다. 그러께에는 면민잔치 하는 날에 체육대회를 했는데, 올해에는 무엇을 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께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줄다리기나 달리기를 함께 했지만, 올해에는 순천에 일이 있어 다녀오느라 면민잔치 자리에 가지 못합니다. 해가 기우는 저녁에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면소재지에 살짝 들러 봅니다. 잔치를 마무리하는가 하고 살짝 들여다봅니다. 면소재지를 쩌렁쩌렁 울리는 노래가 울립니다. 초등학교 운동장에 천막을 곳곳에 치고 북적거리는 모습을 봅니다. 자전거에 탄 큰아이가 “놀이터에서 놀고 싶은데.” 하고 말합니다. 오늘은 놀이터에서 놀 만하지 않습니다. 자전거를 댈 만한 자리도 없고 너무 시끌벅적합니다. “다음에 다시 오자. 오늘은 안 되겠어.” 하고 말하면서 집으로 돌아갑니다.


  작은아이는 집으로 돌아가는 자전거에서 잠듭니다.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가 “저기 꽃길로 가요.” 하고 말합니다. 큰아이 말이 아니더라도 유채꽃이 물결치는 들길로 갈 생각입니다. 들길로 접어드니 큰아이는 “나 걷고 싶은데.” 하고 말합니다. 그래, 그러면 같이 걸어 볼까.


  자전거를 세웁니다. 큰아이는 콩콩 뛰듯이 걷습니다. 수레에 앉은 작은아이는 하염없이 잡니다. 천천히 유채꽃 들길을 지나가니 꽃내음이 물씬 퍼집니다. 큰길로 지나가는 자동차는 하나도 없고, 아주 호젓합니다. 호젓하며 조용한 들길에는 바람소리만 흐릅니다.



.. 숲 속 나무들처럼 / 우리는 그저 지켜 주었고 / 숲 속에서 정식이는 / 천천히 아주 천천히 / 마음 문 열어 갔다 ..  (정식이, 간디학교 7)



  보름달이 밝습니다. 아이들을 재우기 앞서 “애들아, 마당으로 나와 보렴. 달 구경 하자.” 하고 부릅니다. “달이요?” 하면서 두 아이가 쪼르르 나옵니다. 아주 환한 보름달인데, 달 둘레로 별이 몇 보입니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지만 달빛이 워낙 밝아 별빛은 사그라듭니다.


  까르르 웃고 떠드는 아이들 목소리 사이로 개구리 소리가 들립니다. 응? 우리 집 옆밭에 개구리가 있나? 아이들더러 “쉿. 조용히 해 보렴.” 하고 말하면서 귀를 기울입니다. 왁 왁 하는 개구리가 두 마리 있습니다. 틀림없이 우리 집 개구리입니다. 겨울잠을 깬 개구리이지 싶습니다. 밤에도 포근한 날씨이니 개구리가 깨어나서 노래할 만합니다.



.. 진선이와 수람이가 얘기했습니다. // 별이 정말 예쁘지 않니? / 그래, 우리 침낭 들고 나가서 자자 ..  (굼벵이, 간디학교 12)



  순천으로 볼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올 적에 이웃 봉서마을에서 군내버스를 내렸습니다. 우리 마을 어귀로 지나가는 버스는 없어, 이웃마을에서 내린 뒤 걸었습니다. 이웃마을부터 천천히 걸어서 돌아오는데, 들판을 날며 노는 제비를 여섯 마리 즈음 봅니다. 고흥에도 비로소 제비가 오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그제 읍내에서 제비 두 마리를 보기도 했습니다. 제비들은 멋진 날갯짓으로 싱싱 하늘을 가릅니다. 우리 집 처마 밑으로도 제비가 찾아올는지 궁금합니다. 지난해까지 우리 집을 찾아오던 제비는 마을에서 끔찍하게 뿌려댄 농약 때문에 모두 숨을 거둔 듯한데, 우리 집뿐 아니라 우리 마을에 제비가 깃들는지 궁금합니다. 부디 농약물결에서 살아남은 제비가 있어 다시 우리 집 처마 밑으로도 깃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마을뿐 아니라 이웃 여러 마을에서 농약물결은 멀리하거나 줄이면서 흙을 살찌우고 가꾸며 돌보면 얼마나 즐거울까 싶습니다.


  시골 할매와 할배도 뻔히 알거든요. 도시로 떠난 이녁 딸아들은 ‘농약을 쳐서 키운 남새’를 가져가지 않아요. 농약을 쳐서 키운 남새는 죄 ‘농협 수매’를 합니다. 이녁 딸아들이 도시로 떠난 뒤 낳은 아이들이 하나같이 아토피를 앓으니 모두 도시에서 비싼값을 치르며 유기농 곡식과 남새를 사다 먹는데, 막상 시골 어르신들은 농약을 줄이거나 없애지 못합니다. 일손이 달리니 농약을 써야 한다고 말씀하고, 도시로 떠난 딸아들은 시골 일손을 거들지 못합니다.



.. 우리 손으로 / 교실도 지을 수 있다면, // 먼 산이 보이는 큰 창에는 / 하늘을 한가득 담아 두고 / 반대쪽 창에는 숲을 들어앉히고 / 새잎 나서 단풍 들 때까지 / 다 볼 수 있을 텐데 ..  (우리 교실, 간디학교 15)



  지난주에 며칠 서울마실과 일산마실을 했습니다. 도시는 벌써부터 찜통입니다. 도시는 봄이 없는 듯합니다. 고흥과 이웃한 순천도 벌써 찜통입니다. 시골이 아닌 도시는 모두 후끈후끈 덥습니다.


  사람들은 으레 ‘봄이 사라졌다’고만 말합니다. 왜 봄이 사라졌는가를 헤아리지 않습니다. 시골은 사월에 사월빛이 어립니다. 시골은 밤이나 낮이나 후끈후끈 무덥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흙이 있고 풀이 있으며 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흙이 있으니 햇볕을 받아들이는데, 흙만 있대서 햇볕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풀이 자라야 햇볕을 받아들입니다. 풀이 싱그럽게 우거진 흙이 있을 때에 봄볕이 포근합니다. 풀이 없이 메마른 흙만 있으면, 풀이 없는 민숭민숭한 밭이나 논이라면 도시와 똑같이 후끈후끈 달아오릅니다.


  나무가 있어도 나뭇가지를 뭉텅뭉텅 베어 나무가 나무답게 살아갈 수 없으면, 나무가 있다 하더라도 무덥습니다. 가지를 잘린 나무는 그늘을 베풀지 못합니다. 가지를 잃은 나무는 싱그러운 잎바람을 나누어 주지 못합니다.



.. 우산을 같이 씁니다. / 동무 어깨가 / 내 어깨에 닿습니다 ..  (사랑)



  남호섭 님 동시를 그러모은 《놀아요 선생님》(창비,2007)을 읽습니다. 간디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며 겪은 이야기가 꽤 많이 있습니다. 간디학교에서 아이들과 마주한 즐겁고 예쁜 눈빛이 싯말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간디학교이기에 이만 한 시가 태어날 수 있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어느 학교에 있든 아이들 눈빛을 읽을 수 있으면 아름다운 시가 태어납니다. 아이들과 함께 놀고 배우며 사랑하면 누구나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습니다. 함께 놀지 못하고 함께 배우지 못하며 함께 사랑하지 못할 때에는 시 한 줄 노래하지 못합니다.



.. 시골 갔다 오던 / 버스가 갑자기 끼이익! / 섰습니다. // 할머니 자루에 / 담겨 있던 / 단감 세 알이 / 통, 통, 통, / 튀어 나갔습니다 ..  (가을)



  글 한 줄은 삶입니다. 스스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스스로 글로 옮깁니다. 스스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스스로 그림으로 그리고 사진으로 찍습니다. 살아가는 이야기가 없으면 글도 그림도 사진도 없어요. 살아가는 이야기를 스스로 길어올리지 못하면 노래를 부르지 못해요.


  더 좋거나 덜 좋은 노래란 없습니다. 모두 노래입니다. 굳이 꾸미려 하지 않아도 아름다운 이야기요 삶이며 노래입니다. 애써 덧바르거나 만지작거려야 이야기가 되지 않습니다. 수수하게 사랑하면서 노래입니다. 투박하게 어깨동무하면서 꿈입니다. 살가이 손을 맞잡으면서 시 한 줄입니다.


  동시집 《놀아요 선생님》은 ‘놀아요’ 하고 노래하기는 하는데, 막상 어른들은 어떤 놀이를 하는지, 또 아이들이 어떤 놀이를 골고루 즐기는지는 그리 드러나지 않습니다. 더 흐드러지게 놀고, 더 신나게 놀며, 더 실컷 놀기를 빌어요. 놀이 아닌 삶이 없어요. 밥짓기도 놀이이고, 빨래하기도 놀이입니다. 마냥 뛰고 달리면서 놀이요, 책읽기나 풀뜯기도 놀이입니다. 4347.4.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동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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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빛

 


풀이 자라 푸르게 뒤덮은
비탈 둑 도랑 길
흙이 쓸리지 않아요.

 

풀을 모두 뽑거나 베거나 약으로 죽인
논밭 둑 도랑 길
흙이 시뻘겋게 쓸려요.

 

풀이 옹기종기 돋은 곁에서
나무들이 싱그러운 잎
찰랑찰랑 노래해요.

 

풀이 없이 민둥민둥 헐벗은 데에서
나무들이 고단하여
잎은 시들고 뿌리는 기운 잃어요.

 

풀이 없으니 땅이 갈라지고
풀이 있으니 밥을 먹고
풀이 없으니 햇볕이 뜨겁고
풀이 있으니 해님이 포근해요.

 


4347.4.1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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