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아이 58. 갓꽃과 함께 (2014.4.17.)



  아이들은 어버이 뒤를 졸졸 따른다. 아이들은 어버이 말씨를 고스란히 따라한다. 아이들은 어버이 눈빛을 낱낱이 물려받는다. 내가 비오는 날 마당으로 내려와서 조용히 빗물 사진을 찍자니, 작은아이가 어느새 눈치를 채고는 “나도 마당에 나가야지!” 하면서 졸졸 뒤에 붙는다. 작은아이더러 “보라야, 너도 갓꽃을 좀 보렴.” 하니 “꽃? 어디에?” 하고 묻는다. “바로 뒤에 있어. 저기 노란 꽃.” 네 살 작은아이는 노란 꽃을 보았을까. 저보다 키가 크게 자란 갓꽃을 작은아이는 어떤 마음으로 바라볼까.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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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구두 - 소년한길 그림책 3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 한스 크리스찬 안데르센 원작, 이지연 옮김 / 한길사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78



살아남은 이와 살지 못한 이

― 빨간 구두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글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

 이지연 옮김

 소년한길 펴냄, 2002.4.10.



  서울에서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던 때를 가만히 떠올립니다. 1995년 여름이던 그무렵, 나는 서울 이문동에서 신문배달을 했습니다. 밤 한 시에 지국으로 신문 뭉치가 텅텅 떨어집니다. 부시시한 눈으로 일어나 신문을 지국 안으로 들입니다. 바깥에 그대로 두면 누군가 신문 뭉치를 훔쳐 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잠자리에 들고는 한 시간쯤 달게 자고서 두 시에 일어납니다. 나는 밤 두 시부터 신문을 돌려 새벽 네 시 반에 일을 마무리지었습니다. 그런데 이날, 내가 돌리는 신문에는 아픈 사람들 죽은 사람들 슬픈 사람들 얼굴이 신문에 가득했습니다. 이날부터 여러 날 같은 이야기가 신문을 그득 채웠습니다. 새벽에 두어 시간 신문을 돌리면서 코끝이 찡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사람들한테 알리려고 신문을 돌려 하느냐 싶어서 힘들었습니다. 아마, 새벽에 신문을 받는 분들도 이런 이야기를 신문에서 읽어야 하느냐 싶어서 가슴이 아팠겠지요.


  기쁜 이야기가 신문에 실리면 즐겁게 웃고 노래하면서 새벽을 열 텐데, 슬프거나 궂긴 이야기가 신문에 실리면 슬프게 울면서 새벽을 열었습니다.



.. 카렌이 빨간 구두를 받은 건 엄마의 장례식 날이었어요. 빨간 구두는 장례식에 어울리는 신발이 아니었지요. 하지만 카렌은 다른 구두가 없어서 맨발에 빨간 구두를 신고 엄마의 관을 뒤따라갔어요 ..  (2쪽)





  2014년 4월 어느 날, 인천 앞바다를 떠난 배가 진도 앞바다에서 가라앉습니다. 배에 탄 사람 가운데 백일흔 사람 즈음 빠져나올 수 있었으나 삼백에 가까운 사람은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빠져나온 사람은 가까스로 살아났다 하지만,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은 남이 아닙니다. 동무요 이웃입니다. 한식구요 교사이며 제자입니다.


  이들은 왜 이런 끔찍한 일을 겪어야 할까요. 이들은 왜 이처럼 아픈 일을 치러야 할까요. 빠져나온 이들은 빠져나와서 살았어도 살았다고 말할 만할까 잘 모르겠습니다. 빠져나온 이들 어버이는 한숨을 쉬면서 가슴을 쓸어내리겠지만, 빠져나오지 못한 이들 어버이는 한숨을 쉬면서 가슴을 치겠지요. 다른 두 어버이는 서로 어떻게 얼굴을 마주해야 할까요. 아이들도 어른들도 가슴에 깊이 아로새겨지는 생채기를 오래오래 씻을 수 없겠지요.


  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깔려죽은 사람은 왜 깔려죽어야 했을까요. 성수다리가 무너지고, 충주 유람선이 불에 타며, 대구 지하철이 터졌어요. 서울 아현동에서는 가스가 터지며 수많은 집이 하루아침에 사라졌습니다. 누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런 일이 생길까요. 전쟁터에서 군인이 쏜 총에 맞아서 죽는 민간인은, 전쟁통에 비행기가 떨구는 폭탄이 터져서 죽는 민간인은,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애꿎게 원자폭탄에 맞아 죽어야 했던 징용 조선사람은, 일본에서 땅이 갈라졌을 때 어처구니없게 죽어야 했던 조선사람은 무슨 잘못을 저질렀을까요.



.. 카렌은 춤을 추었어요. 아니 춤을 추어야만 했어요. 빨간 구두는 카렌을 가시덤불로, 나무 그루터기로 이끌었어요. 카렌은 다쳐서 발에 피가 났지만 계속 춤을 추며 황량한 들판을 지나 어느 외딴 집에 이르렀어요 ..  (22쪽)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님이 쓴 글에 이와사키 치히로 님이 그림을 붙인 《빨간 구두》(소년한길,2002)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나는 어릴 적에 이 동화를 읽을 적에도 도무지 믿기지 않았으나, 어른이 되어 이 그림책을 읽으면서도 참으로 믿기지 않습니다. 빨간 구두를 신은 ‘카렌’이라는 아이는 무슨 잘못을 저질렀을까요? 너무 가난한 집에서 맨발로 살다가 겨울에는 커다란 나막신을 신었다는데, 나막신을 신으면 나무에 살이 쓸려 작은 발이 온통 빨갛게 헐었다는데, 이 아이를 가엾게 여긴 이웃 구두장이 아주머니가 빨간 구두를 한 켤레 지어서 선물했다는데, 아이가 구두를 선물받은 때가 마침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치르는 장례식 날이었다는데, 장례식 날에 맨발로 있을 수 없어 이 구두를 신었다는데, 홀로 남은 아이를 안쓰럽게 여긴 어떤 이가 아이를 거두어 돌보았다는데, 아이는 왜 ‘슬프고 아픈 삶’을 보내야 했을까요.


  아이로서는 빨간 구두가 ‘어머니를 그리거나 떠올리는 하나 있는 유품’일 수 있습니다. 아이로서는 다른 어느 구두보다 이 구두를 신고 싶을 수 있습니다. 언제나 어디에서나 이 구두를 품에 안고 싶을 수 있어요.



.. 오르간 소리와 함께 아이들의 찬송 소리가 맑고 사랑스럽게 울려퍼졌어요. 햇살이 카렌이 앉아 있는 의자를 환히 비추었어요. 카렌의 마음도 환한 햇살로 가득 찼지요. 깨어졌던 평화와 기쁨이 돌아왔어요. 카렌의 영혼은 햇살을 따라 하늘에 가 닿았어요. 그곳에서는 카란에게 빨간 구두에 대해서 묻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  (32쪽)




  빨간 구두만 신던 아이는 어느 날부터 춤만 추어야 합니다. 멈출 수 없는 춤을 구두에 따라 춥니다. 깊은 숲으로 춤을 추며 들어간 아이는 끝내 다리를 자릅니다. 다리를 잘랐으나 구두는 잘린 다리와 함께 혼자 춤추며 떠돕니다.


  다리를 스스로 자른 아이는 더 춤을 추지 못합니다. 춤을 추지 못할 뿐 아니라 ‘스스로 죄인으로 여기는 삶’을 보냅니다. 그러다가 조용히 숨을 거둡니다. 환한 햇살을 받으면서 몸과 마음이 따스해지면서 하늘나라로 갑니다.


  그림책 《빨간 구두》에서 어떤 삶과 사랑을 읽을 수 있을까요. 나는 우리 아이들과 함께 이 그림책에서 어떤 넋과 숨결을 읽을 수 있을까요. 카렌이라는 아이를 빌어 내 마음속에서 깨뜨리거나 열어젖힐 어떤 이야기가 있는 셈일까요. 어처구니없이 목숨을 잃어야 한 수많은 동무와 이웃과 아이들을 떠올리면서, 내가 선 이곳에서 내 삶을 바꾸도록 깨우치는 슬기를 붙잡아야 한다는 뜻일까요.


  살아남은 사람은 배 바깥에도 있지만, 이곳에도 있습니다. 배에서 빠져나온 사람만 살아남은 이가 아니라, 배를 타지 않은 이들도, 배하고는 동떨어진 곳에 있는 우리들도 모두 살아남은 이입니다. 살아남은 이들은 어떤 하루를 일굴 때에 사랑스럽거나 아름다웁거나 즐거울까요. 우리들은 어떤 길을 걸어가면서 하루를 밝히거나 빛낼 숨결일까요. 4347.4.2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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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바지 걷고 꽃놀이



  왜 바지를 죽 걷으면서 놀까. 집에서도 밖에서도 곧잘 바지를 걷은 채 어기적어기적 걸어다니면서 논다. 어디에서 보았을까. 스스로 생각했을까. 어기적어기적 다니는 재미를 어느 날 문득 깨달았을까. 빗물이 살몃살몃 내리는 날 갓꽃 흐드러진 곳에서 꽃놀이를 한다. 4347.4.2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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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1 17: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4-21 18: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묶음표 한자말 188 : 등온유지육아等溫維持育兒



우리 나라 전통 육아법을 ‘체온을 나눈다’ 해서 등온유지육아等溫維持育兒라고도 하잖아요

《신동섭-아빠가 되었습니다》(나무수,2011) 97쪽


 등온유지육아等溫維持育兒

→ 체온 나눔 육아

→ 체온 나눔 아이키우기

→ 살내음 나누는 아이키우기

→ 살내음 나누는 아이돌보기

 …



  예부터 아이를 키울 적에는 언제나 사랑입니다. 앞으로도 아이를 돌볼 적에는 늘 사랑일 테지요. 사랑이란 사랑내음이요 사랑빛입니다. 살내음을 나누고 살결을 보드라이 어루만지는 삶입니다.


  ‘등온유지육아等溫維持育兒’가 있었는지, 이런 이름은 누가 지었는지 모르겠으나, 어버이는 아이를 안으면서 따스하면서 즐겁습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 안기면서 따스하면서 즐겁습니다. 서로 포근한 마음이요 기쁜 웃음입니다.


  예전에 한문으로 글을 쓰던 이들은 ‘等溫維持育兒’처럼 이야기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오늘날에도 이런 글을 쓰거나 이런 말로 이야기를 할 만할까 궁금해요. 오늘날에는 새로운 말로, 아니 아이와 함께 서로 눈높이를 맞추거나 살피는 아름다운 말로 ‘아이키우기’를 노래하면 어떠할까 싶습니다. 4347.4.21.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우리 나라 옛 육아법을 ‘체온을 나눈다’ 해서 ‘체온 나눔 아이키우기’라고도 하잖아요


“전통(傳統) 육아법(育兒法)”은 그대로 두어도 되고 “옛 육아법”이나 “옛 아이키우기”로 손보아도 됩니다. 글월 첫머리를 통째로 손질해서 “예부터 아이를 키울 적에”나 “옛날부터 아이를 돌볼 적에”처럼 새로 쓸 수도 있어요.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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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음표 한자말 189 : 애가愛歌



저의 섬진강 애가(愛歌)를 통하여 함께 섬진강을 느끼시기를 기대합니다

《조문환-네 모습 속에서 나를 본다》(북성재,2014) 10쪽


 저의 섬진강 애가(愛歌)를 통하여

→ 제 섬진강 사랑노래를 들으며

→ 제 섬진강 사랑노래로

→ 제가 부르는 섬진강 사랑노래로

→ 제가 들려주는 섬진강 사랑노래로

 …



  한국말사전에 없는 한자말 ‘愛歌’입니다. 이런 한자말을 쓰고 싶다면 쓸 노릇이지만, 굳이 ‘애가(愛歌)’처럼 글을 쓰기보다는 ‘사랑노래’처럼 글을 쓰면 훨씬 나으리라 생각합니다. 입으로 이야기를 나눌 적에도 ‘애가’라 말하면 알아듣기 어려워요. 다른 한자말하고 헷갈리기도 합니다.


  다른 한자말하고 헷갈리니 한자를 밝혀야 할까요? 처음부터 뜻이 또렷하거나 환한 한국말로 쉽고 예쁘며 슬기롭게 쓰면 한결 즐겁지 않을까요?


  사랑노래, 꿈노래, 슬픔노래, 눈물노래, 웃음노래, 기쁨노래, 해노래, 별노래, 바다노래, …… 온갖 노래를 골고루 부르고 나누기를 빌어요. 노래와 얽힌 수많은 낱말을 곱게 지으면서 말빛을 따사롭게 보듬기를 빕니다. 4347.4.21.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제 섬진강 사랑노래를 들으며 함께 섬진강을 느끼시기를 바랍니다


‘저의’는 ‘제’로 바로잡고 “애가를 통하여”는 “사랑노래를 들으며”로 손봅니다. ‘기대(期待)합니다’는 ‘바랍니다’로 손질합니다. 한국말사전에는 ‘愛歌’라는 한자말은 안 실리고 ‘哀歌’라는 한자말만 실립니다. 한자말 ‘哀歌’는 “슬픈 심정을 읊은 노래”라고 해요. 곧, 이 한자말은 ‘슬픈노래’나 ‘슬픔노래’로 고쳐쓰면 한결 낫습니다. ‘愛歌’는 ‘사랑노래’로 손질해서 한국말사전에 함께 실으면 좋으리라 생각해요.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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