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대 (2023.4.16.)

― 부산 〈대영서점〉



  아침저녁으로 곁님이랑 아이들을 마주할 적마다 처음 곁으로 찾아온 날부터 갓 태어난 날에 차츰차츰 자라나면서 눈망울이 빛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달음에 느낍니다. 이웃 마을·고장에서 살아가는 분을 만날 적에도 처음 만나던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어떤 말을 나누면서 이야기를 지폈나 하고 돌아봅니다.


  부산 보수동 책골목을 거닙니다. 오늘은 〈대영서점〉에 깃들고서 고흥으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부산 사상에서 탈 버스를 헤아리면서 아주 느긋하게 책시렁을 돌고, 책더미를 헤아리고, 눈과 손과 마음과 발바닥에 책빛을 담습니다.


  새책집으로 가든 헌책집으로 가든, ‘이미 아는 책’은 들추지 않습니다. 언제나 ‘새로 읽을 책’만 들춥니다. 열 해나 서른 해 앞서 읽은 책이라 하더라도, 오늘 눈앞에서 다시 만나서 손에 쥐면 ‘새로 읽을 책’입니다. 예전에 이미 읽어서 줄거리를 안다는 마음을 말끔히 지우고서 ‘오늘 이 책집에서 처음 만나서 새롭게 읽어 즐겁게 맞아들일 숨결’을 헤아립니다.


  어느 책집지기님은 “아니, 최종규 씨 같은 분이 아직 그 책을 안 읽었는가?” 하고 묻습니다. 숲노래 씨는 빙그레 웃으면서 “예전에 읽었는데, 오늘 또 보이기에 새로 읽으려고요.”라든지 “아직 모르는 책이 수두룩해서 늘 새롭게 배우는걸요.” 하고 말씀을 여쭙니다. 이러면 책집지기님은 “그래, 우리도 모르는 책이 참 많답니다. 날마다 새로운 책이 이렇게 쏟아지는데에도 처음 보는 책이 많아요. 책이 이렇게 많고 다른데, ‘책을 안다’고 말할 수 없겠더구만.” 하셔요.


  ‘잘 팔린 책 = 남이 많이 읽은 책’입니다. 남이 많이 읽든 말든, 남이 돈이 많든 적든, 남이 키가 크든 작든, 남이 잘생기든 못생기든, 우리 삶에는 하나도 안 대수롭습니다. 우리 삶은 늘 우리 발걸음으로 디디는 곳마다 풀씨 한 톨을 옮기듯 마주하면서 천천히 짓습니다. ‘대박’이란 말이 언제부터인지 불거졌는데, ‘大’가 아닌 ‘대’입니다. ‘대단하다·대나무·대머리·장대’에 깃드는 ‘대’예요. 하늘을 날듯 가벼우면서 곧게 크고 빛나는 결을 우리말 ‘대’에 담습니다.


  걸으면 보고 느낄 수 있는 삶터가 한결 넓어요. 쇳덩이(자동차)를 몰면 얼핏 더 멀리 오가는 듯 보이지만, 막상 쇳덩이에 몸을 싣기 때문에, 바람소리도 새노래도 풀벌레 노랫가락도 다 못 듣거나 잊어버려요. 아이 손을 잡고 걷다가, 곁님하고 나란히 아이 손을 하나씩 잡고 천천히 거닐 적에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면서 수다꽃을 피우고, 바람소리에 구름소리에 온갖 푸른 철빛을 고스란히 맞아들이게 마련입니다. 걷는 다리야말로 가장 빠르면서 가장 느긋한, 삶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ㅅㄴㄹ


《若さに贈る》(松下幸之助, 講談社, 1966.4.15.)

《紙つぷて(全)》(谷澤永一, 文藝春秋, 1986.3.25.)

《三角砂糖》(吉行淳之介 外, 講談社, 1989.10.15.)

《ブリキの太鼓 第1部》(ギュンタ-·グラス高本硏一 옮김, 集英社, 1978.9.30.)

《沈默の春》(7レイチェル·カ-ソン/靑樹築一 옮김, 新潮社, 1974.2.20.)

《三文オペラ》(ベルトルト·ブレトヒ/千田是也 옮김, 岩波書店, 1961.9.25.)

《釣魚大全》(アイザック·ウォルトン/森秀人 옮김, 角川書店, 1974.12.30.)

《겨레와 함께 한 쌀》(편집부, 국립중앙박물관, 2000.7.24.)

《풍경과 마음》(김우창, 생각의나무, 2003.10.24.)

《오타 벵가》(필립스 버너 브래드포드/손풍삼 옮김, 고려원, 1994.7.20.)

《범우문고 229 조선책략》(황준헌/김승일 옮김, 범우사, 2007.5.30.)

《日本의 歷史》(민두기 엮음, 지식산업사, 1976.11.30.)

《알기 쉬운 독일語》(關口存男·眞鎬良一/S.S.Kang 옮김, 교학사, 1978.3.30.)

《자유 속으로 날다》(J.크리슈나무르티/조찬빈 옮김, 문장, 1983.5.15.)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클라리사 P.에스테스/손영미 옮김, 고려원, 1994.5.1.)

《詩精神과 遊戱精神》(이오덕, 창작과비평사, 1977.4.25.)

《人間은 모두 죽는다》(시몬느 드 보봐르/정병희 옮김, 수문서관, 1979.7.10.)

《小學算數 4年 下》(편집부, 大辦書籍, 1994,5,20,)

《新版 標準 國語 四年上》(西尾實 엮음, 敎育出版株式會社, 1972.6.20.)

《新版 標準 國語 五年下》(西尾實 엮음, 敎育出版株式會社, 1972.6.20.)

《인간과 음악, 인간 조건으로서의 음악》(백대웅, 이론과실천, 1988.2.15.)

《만국의 노동자여》(백무산, 청사, 1988.8.15.)

《아아 내나라, 항일민족시집》(조태일 엮음, 시인사, 1982.4.19.)

《눈 감고 보는 하늘》(최병두, 도서출판 세종, 1984.8.30.)

《韓國의 漢詩 14 梅窓 詩選》(매창/허경진 엮음, 평민사, 1986.4.15.)

《김소월 시의 어휘와 그 활용구조》(윤주은, 학문사, 1991.6.25.)

《저 물레에서 運命의 실이, 이것이 女性이다》(이어령, 범서출판사, 1972.9.25)

《韓國의 장승》(이상일 글/주명덕 사진, 열화당, 1976.11.15.)

《世界美術文庫 13 베르메르》(편집부, 금성출판사, 1976.10.15.)

《REMBRANDT》(Lionello Puppi, Thames & Hudson, 1969.)

《학생중앙 미스테리 英文小說 704 프란세스 양의 失踪》(도일/김상형 옮김, 중앙일보·동양방송, 1977.10.1.)

《최불암 이야기》(윤덕주 엮음, 백암, 1991.12.6.)

《몰래카메라와 최불암》(이성환 엮음, 미주출판, 1992.3.10.)

《유쾌한 게임백과》(김휘문 옮김, 동아문예, 1986.11.15.)

《詩와 畵集 1 시와 사랑의 수채화》(김나영 옮김, 해바라기, 1991.3.20.)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003 포트폴리오 어떻게 만드나?》(에드 마퀸드/편집부 옮김, 월간디자인, 1986.12.1.)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005 착시조형》(시라이시 가즈야/김수석 옮김, 월간디자인, 1987.6.15.)

《우리동네 꽃담》(이종근 글·유연준 사진, 생각의나무, 2008.5.25.)

《한국전쟁 1 불길한 징조》(장문평·이동식, 도서출판 신한, 1987.9.1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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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책이 무슨 잘못입니까만 (2023.5.19.)

― 부산 〈예스24 F1963〉



  서울 강서에 깃든 마을책집 〈다시서점〉은 5월 18일에 열었다고 합니다. 2023년은 ‘열돌’이에요. “열 해면 숲이 바뀐다(십 년이면 강산이 바뀐다)”는 말처럼, 지난 열걸음은, 마을책집 한 곳이 마을숲으로 나아가는 씨앗을 심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새로 걸어갈 열걸음도 하루하루 즐거이 노래이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오늘 5월 19일에 전남 고흥에서 부산으로 건너오며 서울 한켠 작은책집을 가만히 그려 보았습니다. 이레 뒤에 서울 강서로 날아가서 볏골(화곡동) 어린이하고 노래쓰기(동시창작) 이야기를 펼 텐데요, 노래(시·동시)는 꾼(전문가·문학인)만 쓰는 글이 아닙니다. 누구나 말을 하고, 누구나 글을 읽기에, 누구나 노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 노래는 조촐히 꾸러미(책)로 여밀 만합니다.


  셈 ‘10’은 ‘열’로 셉니다. ‘십(十)’으로 안 셉니다. 요새는 북녘에서 셈을 어떻게 읽는지 모르겠으나, 《보리 국어사전》 엮음빛(편집장)으로 일하느라 연변조선족자치주 이웃을 만나며 말씨를 귀여겨듣던 2001∼2003년에는 “여러 열(수십)”이라든지 ‘세열(삼십)·넉열(사십)’ 같은 말씨를 이따금 들었어요. 그때에 이런 셈읽기를 들으며 놀랐지요. “여러 열”에 ‘닷열’이라 할 수 있으니까요.


  우리말 ‘열’은 ‘열다’랑 맞물립니다. 셈 ‘10 = 열·열다·틈·틔움·눈뜸·움·싹’, ‘100 = 온·오롯·옹글·알·얼’, ‘1000 = 즈믄·즐거움·집·지음’, ‘10000 = 골·고을·곱다·곰·검·고요·밤’, ‘억(億) = 잘·잘하다·자랑·잠·젖·잣’, ‘조(兆) = 울·우리·하늘·하나·누리·빛·숨’을 나타냅니다.

  작은책집 한 곳 ‘열돌’이란, 새길을 여는 첫씨입니다. 마을책집 한 곳 ‘스무돌’을 지나고 ‘서른돌’에 ‘마흔돌’로 나아간다면 온누리를 새롭게 일구지요.


  큰책집이자 누리책집인 〈예스24 F1963〉으로 가려고 수영 골목을 걸었습니다. ‘왜놈’을 물리친 곳을 알리려는 시늉(조형물)이 곳곳에 있군요. 칼을 쥐고 화살을 날리고 주먹을 흔드는 시늉을 보며 혀를 찼습니다. 우리 아이들한테 불길(분노)을 물려주어야 할까요? 작은 골목집마다 5월 늦봄을 빛내는 꽃찔레(장미) 덩굴이 눈부십니다. 우리는 이 ‘골목빛’을 아이들한테 들려주고 물려주어야 비로소 어른으로 새빛을 열리라 봅니다. 주먹질 아닌 골목꽃·마을꽃이 빛(문화유산)입니다.


  아무튼 커다란 〈예스24 F1963〉에 등짐을 내려놓고서 한참 둘러보았습니다. 자리값(공간활용)을 너무 못 하더군요. 손이 안 닿을 뿐더러 사다리도 안 보이는데, 책을 시늉(장식품)으로 때려박고서 잘난책(베스트셀러) 장사에만 힘을 쏟네요. 책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만, 이런 눈먼 장삿길로 돈을 벌면 뭘 할 만할까요?


ㅅㄴㄹ


《자연의 신비 7 괭이갈매기》(오다 히데모토 쿠보 히데카즈/편집부 옮김, 교원, 1990.2.20.첫/1997.11.27.20벌)

《밀리의 특별한 모자》(키타무라 사토시/문주선 옮김, 베틀북, 2009.4.15.)

《용감한 아이린》(윌리엄 스타이그/김서정 옮김, 웅진주니어, 2000.12.28.)

《베렌스타인 곰가족 1 왕호박과 괴물의 대결》(스탠 & 잰 베렌스타인/서창렬 옮김, 도토리창고, 2010.7.20.)

《노란 샌들 한 짝》(캐런 린 윌리엄스·카드라 모하메드 글, 둑 체이카 그림/이현정 옮김, 맑은가람, 2007.10.25.첫/2020.12.11.11벌)

《꼬마 돼지》(오드리 우드·돈 우드/최정선 옮김, 보림, 2000.5.30.첫/2024.3.25.8벌)

《에란디의 생일 선물》(안토니오 에르난데스 마드리갈 글·토미 드 파올라 그림/엄혜숙 옮김, 문학동네, 2009.5.12.)

《물 속을 나는 새》(이원영, 사이언스북스, 2018.9.2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한심한 부산 수영 예스24 매장'을 보면서

이곳 예스24 직원들은

'경쟁업체 알라딘중고샵'을 

가 본 적이 없는지 궁금했다.


적어도 '알라딘중고샵 매장운영'을

구경이라도 하면서

보고 배워야 하지 않을까?


참 한심한 예스24 중고매장을

부산 수영구에서 보았다.


아니, 예스24 관리자와 대표와 직원을 넘어,

부산시청과 부산 수영구청과 부산문화재단

공무원들이 부산에서 무슨 짓을

이렇게 벌여놓고서

부산을 망가뜨리는 꼴인지

헛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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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마실꽃

2023.5.18.


이따가 마실을 가야 한다.

마실을 가기 앞서

오늘몫 일을 바지런히 한다.


#새로쓰는밑말꾸러미사전 에 담을

#ㄱㄴㄷ찾아보기 를 꾸리면서

#글손질 을 하는데,


#밝다 라는 낱말 밑자락(어원)을 캐고 풀다가

#지렁이 란 우리말하고

#아지랑이 란 우리말을

얼결에 덩달아 풀었다.


그동안 여러모로 숱한 낱말을 다루어 왔기에

살살 풀었구나 하고 느낀다.


문득 살펴보니

우리말 지렁이를 한자 #지룡 에 기대어

말밑을 다루는 사람이 많은 듯싶다.


우리말을 참 모르는구나.

아니, 우리말을 생각조차 안 하는구나.


#우리말 을 알려면

#서울말 이 아닌 #시골말 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우리가 쓰는 모든 말은

먼 옛날부터 시골에서 #손수짓기 를 하면서,

그러니까 사람들 스스로 #자급자족 을 하는 살림이

밑바탕이 되어

저마다 스스로 지었다.


#사투리 란,

자급자족을 하듯 스스로 지은 말,

이라는 뜻이다.


#숲노래책숲 #꽃종이 1003호를 엮었다.

어떤 글을 담을까 하다가

어제오늘 풀어낸 #말밑 이야기를

몇 자락 실어 놓는다.


우리말을 우리말로 읽고서

스스로 눈빛을 밝혀 넋을 살찌우고 싶은 이웃한테

그저 수수하게 #우리말이야기 를 들려주는

작은 종이꾸러미이다.

#숲노래 #최종규 #숲노래도서관 #말꽃짓는책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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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안 쓰는 말 (2023.4.15.)

― 부산 〈스테레오북스〉



  다들 ‘지역’을 그렇게 읊는데, 정작 ‘마을·고을·고장’은 썩 읊지 않습니다. ‘지방’이란 한자말은 낮잡는다고 여겨 ‘지역’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여기는데, 막상 우리말 ‘마을·고을·고장’이 어떻게 결이 다르면서 우리 터전을 나타내는가에 마음을 기울이는 시골사람도 마을사람도 서울사람도 드물어요.


  문득 생각했습니다. 곁님하고 살림을 지으며 아이들을 사랑으로 낳아 숲빛으로 보금자리를 돌보는 하루를 낱말책으로 여미는 길을 걷기에, 부질없거나 덧없고 얄궂은 말씨를 쓸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둘레(사회·정부)에서는 사람들을 부질없는 말씨로 길들이고 덧없는 말씨에 옭아맵니다. “내가 안 쓰는 말”이라는 이름을 붙여 노래(시)를 쓰기로 합니다.


  빗소리가 잦아드는 새벽녘에 고요히 마음을 추슬러 몇 꼭지를 처음으로 여밉니다. ‘남자·여유·연극’ 같은 낱말로 첫노래를 씁니다. ‘존재·언어·시작·상상’이나 ‘존중·도시·문해력·평화·편하다·행복·결혼·노동’ 같은 “흔한 바깥말(외국어)”을 “수수한 우리말”로 어떻게 풀어낼 만한가 하는 이야기를 넌지시 담아 열여섯 줄로 척척 쓸 생각입니다.


  부산버스를 탑니다. 어디에선가 내립니다. 걷다 보니 ‘안락동’이라 하는 듯싶습니다. 버스를 내린 곳에서는 뚜벅이가 드물지만, 안골로 접어드니 가게가 꽤 나오고, 뚜벅이도 여럿입니다. 이런 골목과 마을에 책집이 있구나 하고 두리번거리니, 〈스테레오북스〉 알림판이 나타납니다. 마음먹고 찾아와야 알아볼 곳에 터를 잡았군요. 아무렴요. 책도 마음먹고 들여다보아도 비로소 속빛을 맞아들여 빛줄기로 품을 만합니다. 마음을 머금지 않을 적에는, 책도 살림도 말도 글도 뚜벅길도 삶도 사랑도 꿈도 이야기도 밭일도 이웃맺기도 못 하게 마련입니다.


  빠듯하다면 책은 엄두조차 못 낼 테고, 아이하고 눈을 마주하면서 사근사근 수다꽃을 피울 겨를이 없습니다. 마을책집이란, 큰길이나 길목에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마을책집이란, 마을에 숲바람을 살며시 일으키는 작은 쉼터입니다. 마을사람 스스로 눈뜨면서 깨어나면, 마을이웃도 하나둘 꽃눈이 트듯 생각을 틔울 만해요.


  느긋한 손길이기에 ‘바다빗질’을 합니다. 바닷가를 거닐며 쓰레기를 줍는 이웃님은 ‘쓰줍’이나 ‘쓰담’을 하기도 하지만, 이보다는 머리카락을 정갈히 고르며 반들반들 윤슬이 나도록 하는 손길이기에 ‘바다빗질’ 같은 이름이 어울린다고 느껴요. 그래서 ‘빗질’은 ‘빗방울’이 하늘과 땅을 씻듯, 우리 마음과 마을을 씻습니다. 이윽고 ‘빗질’은 ‘빛질’로 피어나지요.


  책은 빗질하는 빗씨입니다.


ㅅㄴㄹ


《나의 독일어 나이》(정혜원, 자구책, 2021.9.13.)

《우리가 바다에 버린 모든 것》(마이클 스타코위치/서서재 옮김, 한바랄, 2023.3.27.)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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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하니 넉넉한 (2023.3.9.)

― 청주 〈꿈꾸는 책방〉



  읽고 싶은 사람은 잇고 싶은 마음인데, 이어가려면 오늘 이곳에 있어야 하고, 있으려 하기에 이(사람)로 서면서, 일렁이는 물결처럼 모두 깨뜨리듯 흩뿌리는 방울로 다시 태어나게 마련입니다. ‘읽기’는 어렵지 않으나 쉽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읽을 수 있으니 어렵지 않고, 무엇이든 깨야 하니 쉽지 않을 만합니다.


  읽으려면 그동안 받아들여 익숙한 모든 틀(지식·정보·관념·세계관)을 깨야 합니다. 틀을 안 깨는 사람은 못 읽습니다. “아니, 이보라구. 난 이렇게 멀쩡히 책을 읽는데, 내가 안 읽었다구?” 하고 되물을 만할 텐데, ‘눈으로 훑기’는 ‘훑기’일 뿐입니다. ‘읽기’가 아닙니다. 사람을 위아래로 훑어보는 사람은 그이 마음을 못 읽어요. 겉모습을 훑느라 속빛을 읽으려는 ‘틀깨기’로 못 뻗습니다.


  ‘읽는다’고 할 적에 무엇을 보는지 생각해 봐요. 글쓴이 이름을 보나요? 펴낸곳 이름을 보나요? 뭔가 길미(이익)가 될 알맹이를 얻으려는 마음인가요?


  참말로 참답게 ‘읽기(글읽기·책읽기)’를 이루며 누리고 싶다면, 누가 쓰거나 어디서 낸 책인지 가릴 일입니다. 오로지 속빛으로 헤아리면서 이 책이 우리 마음에 새길을 비추는 ‘깨뜨림’인지 아닌지 살필 노릇이에요.


  “술술 읽는” 책이 더러 있겠으나, 모름지기 ‘읽기’는 술술 하지 않습니다. 와장창 깨뜨려서 새롭게 맞아들여 배우려는 몸짓이 ‘읽기’인 터라, 조각조각 흩뿌리고서 다시 처음부터 짜거나 짓거나 엮으니 ‘일구기’요 ‘이루기’입니다.


  청주 〈꿈꾸는 책방〉에 깃듭니다. 해가 넉넉히 스밉니다. 느긋이 앉아서 책을 넘길 자리가 곳곳에 있습니다. 청주 곳곳에 이 같은 책집이 여럿 있는 줄 눈여겨보는 마음이 있다면, 이 고장은 열린배움터(대학교)가 없어도 아름다울 만합니다.


  틀(평안)을 깨고서 새롭게 아늑할 자리를 짓는 작은걸음으로 나아가는 책입니다. 책을 읽기에 왼날개(좌파)가 되지 않고, 새걸음(진보)이 되지 않습니다. 책을 안 읽거나 멀리하기에 오른날개(우파)나 지킴(보수)으로 있지 않아요. 숲을 품을 줄 알기에 날개(왼오른을 아우르는 그저 날개)를 폅니다. 사람으로서 스스로 사랑하며 서로 노래하는 오늘을 짓기에 웃으면서 걷습니다. 모든 걸음걸이는 이쪽도 저쪽도 아닌 ‘온쪽’입니다. 걷지 않는 이들은 목소리만 내면서 뿔뿔이 갈립니다.


  아이들한테 물려줄 곳을 보금자리이자 일터로 삼아서 가꾸어 간다면, 즐거운 살림씨앗을 심는 길입니다. 어른이자 어버이로 일하는 사람들은 아이들이 물려받고 싶어하는 보금자리랑 일터를 언제나 즐거이 노래하며 지으면 넉넉하지요. 우리는 책을 물려줄 만한 어른일까요? 책을 물려받을 아이는 누구일까요?


ㅅㄴㄹ


《박만순의 기억전쟁 2》(박만순, 고두미, 2022.7.1.)

《별들은 여름에 수군대는 걸 좋아해》(코이코이족·산족 글/W.H.블리크 적음/이석호 옮김, 갈라파고스, 2021.3.2.)

《책은 시작이다》(오사다 히로시/박성민 옮김, 시와서, 2022.11.1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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