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말(인터넷말) 38] 프리미엄 웹방화벽 BIG 이벤트

 회사나 공공기관이 영어 쓰기를 좋아하는 까닭이라면, 요즈음 여느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영어 쓰기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아무것 아닌 자리에서도 영어를 함부로 즐겨쓰니까, 회사이든 공공기관이든 사람들 눈길을 끌고자 영어를 섣불리 씁니다. “BIG 이벤트”라지만, “BIG event”처럼 모조리 영어로 쓰지 않고 뒤쪽은 한글로나마 적어서 고맙다고 해야 하지 않느냐 싶기까지 합니다. 가만히 보면, 이런 말을 쓰는 사람들은 우리 말로는 어떻게 말해야 좋거나 알맞거나 옳은지를 모르는구나 싶습니다. 우리 말은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영어로 쓰는구나 싶어요. 삶도 생각도 오로지 영어이기 때문에, 쉽게 튀어나오거나 사람들 앞에 널리 선보이는 자리에서도 영어를 쓸밖에 없다고 느낍니다. 지난날에는 “프리미엄 웹방화벽”이 아니라 “고급 웹방화벽”이나 “최고급 웹방화벽”이라고 쓴 우리들입니다. ‘고급’이나 ‘최고급’ 또한 우리 말이 아닌 한자말입니다. 곧, 회사나 공공기관 사람들은 한자말만 쓰다가 영어로 휙 건너뛴 셈입니다. 그러니까, 차근차근 생각할 노릇입니다. 고급이든 프리미엄이든, 우리 말로는 무엇을 가리키거나 뜻할까요. 스스로 우리 말이 무엇인지를 살펴야 합니다. 아이들 앞에서 어떤 말을 쓰면서 이야기를 나누려 하는지, 나이든 사람들 앞에서 어떤 말투로 생각을 주고받으려 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센 수학”이 있고 “핸드볼 큰잔치”가 있습니다. 세니까 “센 수학”이라 합니다. 방화벽 가운데 조금 더 튼튼하며 훌륭하니까 “센 방화벽”이겠지요. “더 나은 방화벽”이거나 “(더) 빼어난 방화벽”이라 할 테고요. 크게 벌이는 무슨 행사라 하기에 ‘큰잔치’입니다. “출시 기념 큰잔치”가 되고, “봄맞이 큰잔치”가 됩니다. (4344.2.2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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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말(인터넷말) 37] 나의 서재 바로가기

 ‘바로가기’나 ‘바로가다’ 같은 낱말은 국어사전에 안 실립니다. 그러나 이 낱말을 띄어서 쓰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요즈음 흔히 듣는 낱말인 ‘바로가기’나 ‘바로가다’는 새로 태어난 낱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처음 인터넷이 들어왔을 때에는 다들 영어로 ‘go’라고만 적었습니다. 요즈음에도 ‘go’라는 영어를 쓰는 누리집이 꽤 많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바로가기’를 쓰는 누리집이 제법 많이 늘었으며, ‘favorite’을 ‘즐겨찾기’라는 낱말로 다듬으면서 밀어냈듯이, ‘go’ 또한 ‘바로가기’라는 낱말로 걸러내면서 보듬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글자수로 치자면 ‘바로가기’는 네 글자나 되니 ‘go’보다 훨씬 길지만, 글자수보다, 이러한 낱말을 쓸 때에 사람들이 얼마나 잘 알아보거나 알아차리는가를 본다면, ‘바로가기’가 우리한테 알맞을 낱말이요, 우리 말입니다. 다만, “나의 서재 바로가기”는 아쉽습니다. “내 서재 바로가기”로 적어야 올바르거든요. ‘나의’는 우리 말이 아닙니다. ‘私の’라는 일본 말투를 한글로 어설피 옮긴 말투입니다. “아무개님 환영(歡迎)합니다”도 “아무개님 반갑습니다”로 적으면 훨씬 좋았습니다. (4344.2.2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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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이상 : “그 이상(以上)이다”라 할 때에는 “그보다 크다”로 다듬으면 됩니다. “평균 이상이다”라 할 때에는 “평균보다 높다”로 다듬으면 되고요. 아니, 다듬는다기보다, 이처럼 이야기해야 알맞습니다. “이상(理想)을 높게 펼치라”라면 “꿈을 높게 펼치라”라든지 “뜻을 높게 펼치라”로 손질하면 됩니다. 아니, 이때에도 손질한다기보다, 이렇게 이야기할 때에 올바릅니다. 우리는 우리말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며, 제대로 생각하는 길을 잊은 얄궂은 사람입니다.

[이상(異常) : 정상적인 상태와 다름. 지금까지의 경험이나 지식과는 달리 별나거나 색다름. 의심스럽거나 알 수 없는 데가 있음]
※ 이상한 일
→ 다른 일
→ 무언가 다른 일
※ 이상한 느낌
→ 다른 느낌
→ 아리송한 느낌
→ 알 수 없는 느낌
※ 이상한 사람
→ 남다른 사람
→ 알쏭달쏭한 사람
→ 얄궂은 사람
→ 못미더운 사람


22. 차이 : 우리말을 담은 국어사전이 사랑스럽거나 아름답다면, 우리 말사랑벗한테 국어사전을 틈틈이 읽고 알뜰히 살피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말을 실은 국어사전이 안쓰럽거나 슬프더라도, 이 국어사전을 가만히 살피고 곰곰이 돌아보면서, 말사랑벗들 나름대로 옳고 바르게 우리말을 헤아리면서 익히면 좋겠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한자말 ‘차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다름”이라고 풀이합니다. 이 말풀이를 제대로 읽을 수 있다면, 우리말 ‘다름’을 한자말로는 ‘차이’로 적는 셈이로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우리가 쓸 말은 ‘다름’이고, 중국사람이나 일본사람이 쓸 말은 ‘差異’예요. 한글로 ‘차이’라 적는다 해서 우리가 쓸 만한 낱말은 아닙니다.

[차이(差異) : 서로 같지 아니하고 다름]
※ 견해 차이가 크다
→ 생각이 크게 다르다
→ 생각이 참 다르다
→ 생각이 아주 다르다
→ 생각이 크게 벌어진다
→ 생각이 크게 갈린다


23. 접촉 : 제가 1980년대에 국민학교를 다니며 중학교로 들어설 때에는, 두 학교에서 쓰는 교과서 ‘말투’가 달랐습니다. 국민학교 때에는 쉬운 말투를 쓰지만, 중학교부터는 어려운 말투를 썼어요. 이를테면, 국민학교 때까지는 ‘세모’와 ‘네모’였으나, 중학교부터는 ‘삼각형’과 ‘사각형’이었어요. 국민학생 때 자연을 배우면서 들은 말은 ‘닿다’와 ‘맞닿다’였으나, 중학생 때부터는 과학을 배우면서 ‘접촉’이라는 말을 듣고 써야 했습니다. ‘닿은 자리’나 ‘닿은 곳’ 같은 말투는 과학하는 말투가 될 수 없고, 오로지 ‘접촉면’이라고만 해야 했어요.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사회라는 데로 나오니, 우리나라 대통령과 다른 나라 대통령이 만나든, 이웃과 이웃이 만나든 으레 ‘접촉’이라는 말을 씁니다. 우리말은 ‘만나다’요 ‘사귀다’이며 ‘어울리다’인데, 이런 우리말을 듣거나 쓸 자리는 자꾸 사라집니다.

[접촉(接觸) : 서로 맞닿음. 가까이 대하고 사귐]
※ 이웃과의 접촉을 꺼리다
→ 이웃과 만나기를 꺼리다
→ 이웃과 사귀기를 꺼리다
 
 
24. 이하 : 학교에서 ‘이상-이하’랑 ‘미만-초과’가 어떻게 다른가를 배웠습니다. 그러나 ‘넘다/넘치다-모자라다’라든지 ‘웃돌다-밑돌다’라든지 ‘적다-많다’ 같은 말이 어떻게 다른가를 배운 적이 없습니다. 한눈에 알아보도록 쉬우면서 바르게 말하도록 우리말을 가르치는 어른이 없었고, 쉽고 바른 우리말을 애써 배우려는 또래 동무 또한 없었습니다. 가르치면 그저 가르치는 대로만 배워야 하는 ‘쑤셔넣기(주입식)’만 판쳤습니다.

[이하(以下) : 수량이나 정도가 일정한 기준보다 더 적거나 모자람. 순서나 위치가 일정한 기준보다 뒤거나 아래]
※ 18세 이하 관람 불가
→ 열여덟까지 볼 수 없음
→ 열여덟 살까지 못 봄
→ 열아홉 안 되면 못 봄
→ 열아홉부터 볼 수 있음


25. 작업 : 사회 한켠에서는 ‘일하는’ 사람을 일컬어 ‘근로자(勤勞者)’라 하고, 다른 한켠에서는 ‘노동자(勞動者)’라 합니다. 어느 쪽에서도 “일하는 사람 = 일꾼”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일을 하는 곳은 ‘일터’이지만 ‘작업장(作業場)’이라고만 가리킬 뿐이요, 이제는 ‘잡(job)'이라는 영어를 두루 쓰기까지 합니다.

[작업(作業) : 일을 함]
※ 작업을 완수하다
→ 일을 다하다
→ 일을 마치다
→ 일을 끝내다
→ 일을 끝맺다
→ 일을 마무리하다
→ 일을 마무리짓다


26. 계속 : 처음 듣고 말을 할 때에는 그때와 그곳에 알맞으니까 이런 말을 써야 하는구나 하고 느꼈으리라 봅니다. 나중에는 왜 이런 말을 써야 하는지를 헤아리지 않으면서 그냥 말합니다. 익숙해진다고 해야 할까요, 길든다고 해야 하나요. 참으로 좋은 말인지, 더할 나위 없이 알맞을 말인지, 여러모로 괜찮은 말인지를 살필 겨를이 없을 뿐더러, 애써 살피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냥 쓰니까 그냥 쓰는 말입니다. 자꾸 쓰면서 버릇이 되는 말입니다. 잇달아 듣고 말하다 보니 뿌리내리는 말입니다. 좋은 말도 익숙해지지만, 궂은 말 또한 익숙해집니다. 익숙해지는 말이란 참 무서운 삶이라고 느껴요.

[계속(繼續) : 끊이지 않고 잇따라]
※ 계속 진행하다
→ 그대로 이어가다
→ 끊지 않고 하다
※ 계속 걷다
→ 꾸준히 걷다
→ 한결같이 걷다
※ 계속 펼치다
→ 잇달아 펼치다
→ 자꾸 펼치다


27. 순수 : “순수한 뜻이었어.” 하는 말을 곧잘 했습니다. 이래저래 나쁜 뜻이란 없었다는 마음을 밝히려고 읊은 말입니다. 이제 와 돌이키면 “나쁜 뜻은 없었어.”라든지 “그런 뜻이 아니었어.”라든지 “해코지할 마음이 아니었어.”라든지 “일부러 한 일이 아니었어.”처럼 말해야 올발랐겠구나 싶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순수예술”이나 “순수학문”이나 “순수문학”을 이야기합니다. 오늘날 숱한 예술이나 학문이나 문학이 ‘돈을 바라보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순수’라는 낱말을 꾸밈말처럼 붙이는구나 싶은데, “못된 생각이 섞인”다면 예술도 아니고 학문도 아니요 문학도 아니에요. 처음부터 끝까지 ‘순수’를 앞에 붙일 수 없습니다. “그냥 학문을 할” 뿐이고, “좋아하는 문학을 할” 뿐입니다.

[순수(純粹) : 전혀 다른 것의 섞임이 없음. 사사로운 욕심이나 못된 생각이 없음]
※ 순수한 애정
→ 티없는 사랑
→ 맑은 사랑
→ 꾸밈없는 사랑
→ 깨끗한 사랑
→ 고운 사랑


28. 선택 :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같은 분들을 ‘뽑는’ 자리에서는 으레 ‘선거’와 ‘선택’이라는 낱말만 쓸 뿐, ‘뽑다’나 ‘뽑기’ 같은 말은 쓰지 않습니다. 그분들한테는 ‘뽑다’ 같은 낱말이 버르장머리없다고 느끼기 때문일까요. 대통령도 뽑지만, 반장도 뽑습니다. 국회의원도 뽑으나, 청소당번도 뽑습니다. 뽑는 일이랑 비슷하게 ‘가리기’와 ‘추리기’와 ‘솎기’와 ‘골라뽑기’가 있습니다. ‘추리기’와 ‘간추리기’는 또 다릅니다. 우리들이 ‘선택’이라는 한자말에 매인다면 이 숱한 우리말을 제대로 못 쓰기도 하지만, 제대로 쓰는 결마저 잃거나 잊습니다.

[선택(選擇) : 여럿 가운데서 필요한 것을 골라 뽑음]
※ 알맞은 단어의 선택이 필요하다
→ 알맞은 말을 골라야 한다
→ 읽을 책을 선택하다
→ 읽을 책을 고르다
→ 읽을 책을 가리다
→ 읽을 책을 추리다
→ 읽을 책을 뽑다


29. 설명 : 선생님들은 늘 ‘설명’합니다. 선생님들 ‘설명’을 듣다 보면, 이 설명이란 곧 ‘말씀’이나 ‘말’이나 ‘이야기’이곤 합니다. “자, 내가 설명해 줄게.”란 “자, 내가 이야기해 줄게.”예요. 그러고 보면, 이야기해 주는 일이란, 잘 모르는 사람한테 ‘알려주는’ 일입니다. 이야기란 ‘들려줍’니다. 흐리멍덩하게 알거나 어렴풋이 생각하던 대목을 환하게 ‘밝히는’ 일이기도 해요. ‘깨우쳐’ 주거나 ‘일깨워’ 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설명(說明) : 어떤 일이나 대상의 내용을 상대편이 잘 알 수 있도록 밝혀 말함]
※ 사용법을 설명하다
→ 쓰는 법을 알려주다
→ 쓰는 법을 들려주다
→ 쓰는 법을 얘기하다
→ 어떻게 쓰는지 말하다


30. 기억 : 예전에 듣거나 겪은 일을 잘 떠올리는 사람한테 흔히 “기억력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기억력’이란 “기억하는 힘”이고, 기억하는 힘이란 “되새기는 힘”입니다. 되새김질 잘하는 셈이고, 생각힘이 남다르다는 소리예요. 지난 일을 헤아리는 모습을 일컬으며 ‘떠올리다’를 비롯해 ‘돌이키다’라든지 ‘되돌이키다’라든지 ‘돌아보다’라든지 ‘되돌아보다’라든지 ‘뒤돌아보다’라든지 ‘되씹다’라든지 ‘되새기다’라든지 참 많이 이야기합니다. 숱한 낱말마다 쓰임새가 조금씩 다르고, 느낌과 말맛이 살짝 달라요. 우리말을 생각하는 마음을 기르면 내 넋을 한결 넉넉하고 알차게 가다듬을 수 있습니다.

[기억(記憶) :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냄]
※ 이전의 경험을 기억하다
→ 예전에 겪은 일을 떠올리다
→ 예전 일을 돌이키다
→ 예전 일을 다시 생각하다
→ 지난 일을 되새기다
→ 지난 일을 곱새기다
→ 그때 겪은 일을 되살리다

 (최종규 . 2011 -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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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이용 : 어릴 적, 머리를 깎으러 ‘이발소(理髮所)’나 ‘이용원(理容院)’을 다녔습니다. 이발소나 이용원은 한자말이지만, 간판이 한자로 된 곳은 없었습니다. 아마, ‘이발소’나 ‘이용원’을 한자로 적으면 사람들이 이곳이 어떤 데인지 알아보기 힘들 테지요. 남자는 ‘이발소-이용원’을 다니고, 여자는 ‘미용실(美容室)’을 다녀야 한다 했는데, 나중에 ‘머리방’이 나왔습니다. 생각해 보면, 머리를 만지는 집이니 ‘머리방’이나 ‘머리집’이라 이름을 붙여야 옳아요. 그러니까, 저로서는 ‘이용’이라 한다면, 그리 쓸 만하지 않은 한자말이면서 ‘머리를 깎는 일’을 일컫는다고 여기지, 우리말 ‘쓰다’와 똑같이 쓸 낱말로는 다루지 않습니다.

[이용(利用) : 대상을 필요에 따라 이롭게 씀]
※ 자원의 효율적 이용
→ 자원을 알맞게 쓸
→ 자원을 알차게 씀
→ 자원을 알뜰히 씀
→ 자원을 훌륭히 씀


12. 세탁 : 제가 어렸을 때 동네 세탁소 아저씨는 동네를 돌며 “세에탁!” 하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세에탁!” 하고 노래를 부를 때에 집에서 나와 당신 가게에 맡길 빨래감을 내놓으라는 뜻이었습니다. 어머니들은 ‘세탁소’에 ‘빨래감’을 맡겼습니다. 집에서는 누구나 ‘빨래’를 했습니다. 나중에 ‘세탁기’라는 기계가 나왔지만, 세탁기를 쓰면서 누구나 으레 ‘빨래한다’고 말했습니다. 1990년대로 접어들며 ‘빨래방’이 처음 나왔습니다. ‘머리방’과 매한가지로, 빨래를 하는 집이니 마땅히 ‘빨래집’이라 이름을 붙였어야 했는데, 한글을 1400년대에 만들었다 하지만, 정작 ‘빨래’를 옳게 쓴 때는 2000년을 코앞에 둔 요즈막입니다.

[세탁(洗濯) = 빨래]
※ 매일 세탁해야 한다
→ 날마다 빨래해야 한다
→ 날마다 빨아야 한다


13. 열심 : 말사랑벗한테 “열심히 공부해.” 하고 말하는 어버이나 선생님이 있을 테지요. 저도 어린 날부터 이런 소리를 곧잘 들었습니다. ‘공부’라는 낱말뿐 아니라 ‘열심’이란 낱말이 얼마나 싫고 지겨웠는지 몰라요. 중학생쯤 될 무렵, ‘열심’이라는 낱말을 국어사전에서 뒤적이다가 ‘바지런’이나 ‘부지런’을 한자로 옮긴 낱말일 뿐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니까, 어른들은 우리한테 “바지런히 공부하라”고 말한 셈이고, ‘공부(工夫)’란 ‘배움’을 가리키는 한자말이었어요. 이러거나 저러거나 우리한테는 골아픈 말이라 할는지 모르지만 어차피 할 말이라면, “열공”보다는 “힘써 배우라” 하고 말했으면 어떠했을까요.

[열심(熱心) : 어떤 일에 온 정성을 다하여 골똘하게 힘씀]
※ 열심히 공부하다
→ 힘껏 배우다
→ 힘써 배우다
→ 애써 배우다
→ 온힘 바쳐 배우다
→ 땀흘려 배우다
→ 바지런히 배우다


14. 지각 : 학교에서나 회사에서나 ‘지각’하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늦지’ 말라고는 잘 말하지 않아요. 학교나 회사에서는 ‘조회’를 하고 군대에서는 ‘일조점호’를 합니다. ‘朝會’이든 ‘日朝點呼’이든 아침에 모이는 일이요, ‘아침모임’이에요. 가만히 보면, ‘조회’나 ‘점호’ 같은 말은 우리가 일본 제국주의자한테 짓눌리던 때 슬프게 들어와 여태껏 슬프게 옥죄는 낱말이기도 합니다.

[지각(遲刻) : 정해진 시각보다 늦게 출근하거나 등교함]
※ 지각대장
→ 늦기대장
→ 늦기쟁이
→ 늦쟁이


15. 판단 : ‘판단’ 말풀이는 ‘판정(判定)’을 찾아보도록 나오고, ‘판정’ 말풀이는 ‘판별(判別)’을 살펴보도록 나옵니다. ‘판별’이란 “판단하여 구별함”이라 나와요. 그러니까, ‘판단 → 판정 → 판별 → 판단’인 셈이랍니다. 이런 돌림풀이로 된 국어사전을 펼칠 말사랑벗은 우리말을 어떻게 배우거나 헤아릴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판단(判斷) : 사물을 인식하여 논리나 기준 등에 따라 판정을 내림]
※ 정확한 판단을 내리다
→ 올바로 살피다
→ 올바로 가누다
→ 올바르게 가리다
→ 올바르게 헤아리다
→ 옳고 바르게 생각하다


16. 입장 : 흔히들, ‘立場’이라는 한자말만 일본 한자말로 여기며, 이 말을 안 써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入場’이라는 한자말 또한 우리말이 아니에요. 우리말은 ‘들어옴’입니다. “입장하세요.”는 잘못 쓰는 말이라 “들어오세요.”라 말해라 올바릅니다. ‘입장과 퇴장’은 ‘들어오고 나가기’로 손질해야 알맞습니다. 곰곰이 살펴본다면, 지난날 한국사람은 ‘입장’ 같은 한자말을 안 썼습니다. ‘입장’이라는 일본 한자말을 어찌저찌 고쳐써야 한다기보다, 이런 말을 아예 안 쓰면 됩니다. “내 입장 좀 봐줘.”가 아니라 “나 좀 봐줘.”라든지 “나를 좀 생각해 줘.”라 말해야 올발라요. “입장 바꿔 생각해 봐.”는 “자리 바꿔 생각해 봐.”이거나 “(네가) 내가 되어 생각해 봐.”로 고쳐 주어야 합니다.

[입장(立場) : 당면하고 있는 상황. ‘처지(處地)’로 순화]
※ 내 입장이 난처하다
→ 내 자리가 딱하다
→ 내가 힘들다
→ 내가 어찌할 바 모르다


17. 이해 :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언제나 “이제 이해하겠니?” 하고 물었습니다. 때로는 “이제 알겠니?” 하고도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이해하다’란 ‘알다’란 소리입니다. “네가 나를 이해할 수 있니?” 할 때에는 “네가 나를 알 수 있니?”라는 뜻이며, “네가 내 마음일 수 있니?”와 같은 느낌입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란 알기 어려운 일이면서 ‘알쏭달쏭하’거나 ‘아리송한’ 일이에요. ‘알듯 말듯한’ 일이 되기도 하겠지요.

[이해(理解) : 사리를 분별하여 해석함. 깨달아 앎]
※ 이해하기 어렵다
→ 알기 어렵다
→ 헤아리기 어렵다
→ 받아들이기 어렵다
→ 깨닫기 어렵다


18. 감동 : 마음을 움직이도록 이끄는 책이 좋다고 느낍니다. 저는 ‘좋은’ 책이라기보다 ‘제 마음을 움직이도록 이끄는’ 책을 즐깁니다. 내 마음을 건드리지 못하거나 내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는 소리입니다. 마음이 움직여야 사랑이고, 마음이 움직일 때에 비로소 믿음입니다.

[감동(感動) : 크게 느끼어 마음이 움직임]
※ 감동했어
→ 뭉클했어
→ 짠했어
→ 마음이 움직였어
→ 대단했어
→ 좋았어
→ 아름다웠어
→ 마음이 촉촉히 젖었어
→ 흐뭇했어
→ 가슴이 터질 듯했어


19. 제공 : ‘금품 제공’을 하듯이 ‘애정 제공’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나쁜 꿍꿍이셈인 사람은 돈을 몰래 주거나 뒷주머니에 꽂아 넣습니다. 착한 사랑을 하는 사람은 사랑을 주거나 나누거나 베풀거나 펼치거나 함께하거나 선보입니다. 저마다 선 자리에 알맞게 말을 합니다. 저마다 사랑하는 만큼 말을 가꾸거나 돌봅니다.

[제공(提供) : 무엇을 내주거나 갖다 바침]
※ 음식이 무료로 제공되고 있다
→ 밥을 거저로 준다
→ 밥을 그냥 준다
→ 누구한테나 밥을 준다
→ 아무나 밥을 먹을 수 있다
→ 밥을 거저로 먹을 수 있다


20. 시인 : 시를 쓰는 사람도 ‘시인(詩人)’입니다. 소설을 쓰는 사람은 ‘소설가(小說家)’라 합니다. 그림을 그리면 ‘화가(畵家)’라 해요. 그런데, 우리들은 ‘시꾼’이나 ‘시쟁이’, ‘소설쟁이’나 ‘소설꾼’, ‘그림쟁이’나 ‘그림꾼’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은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가르침이’나 ‘가르침꾼’이라 일컬을 수 있고, 배우는 사람은 ‘배움이’나 ‘배움꾼’이라 가리킬 수 있어요. 언제나 내 모습 그대로 내 이름을 붙이면 되고, 내 모습 그대로 받아들일 때에 비로소 가장 알맞거나 좋은 이름을 얻습니다.

[시인(是認) : 어떤 내용이나 사실이 옳거나 그러하다고 인정함]
※ 과오를 시인하다
→ 잘못했다고 밝히다
→ 잘못이라고 털어놓다
→ 잘못임을 받아들이다
→ 잘못했음을 받아들이다

(최종규 . 2011 -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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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우리 말 81] 택시 TAXI

 택시를 타는 곳에 한글로 ‘택시’라 함께 적은 일이 얼마만인가 모르겠다. 여태껏 알파벳으로만 적어 놓더니, 드디어 한글로도 함께 적었다. 가만히 보면 버스를 타는 데에도 알파벳으로 ‘BUS’라고만 적기 일쑤인데, 나라밖에서 한국을 찾아오는 사람을 헤아리며 이렇게 적는다지만, 그러면 한국에서 살아가는 한국사람을 생각한다면 이런 알림판이란 말이 될까. (4344.2.2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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