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시외버스에서 읽은 책 2017.10.30.


사진가 로버트 카파 이야기는 이녁 자서전을 읽은 적이 있다. 사진가 가운데 제 발자국을 낱낱이 적은 사람이 많지는 않다고 느낀다. 그러나 한국말로 옮긴 책이 드물 뿐일 수 있다. 로버트 카파 자서전은 고맙게도 한국말로 옮긴 책이 있기에, 엄청난 전쟁 불구덩이에서 온몸을 바치며 사진을 찍은 사람이 어떤 마음인가를 돌아보는 길잡이가 될 만하지 싶다. 이 자서전 이름이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였지, 아마. 이 책이름처럼 카파는 그때 손을 벌벌 떨었고, 벌벌 떠는 손으로도 악착같이 필름을 갈아끼웠으며, 죽음이 용솟음치는 총알바다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아서 사진을 남겼다. 살아남기에 남기는 셈이랄까. 그 필름은 그야말로 죽음수렁에서 살아남았다고 할까. 그러나 사진가는 가슴에 맺힌 앙금을 품고 헤매고 떠돌다가 아시아 어느 나라 숲에서 지뢰를 밟고서 사진기를 내려놓았다. 만화책 《로버트 카파, 사진가》를 보면서 피맺히고 눈물맺힌 사진가 발자국을 새삼스레 되새긴다. 사진책이자 만화책인 《로버트 카파, 사진가》는 맨마음으로 읽기 어렵다. 곁에 술 한 잔을 놓고서 눈물 한 방울과 함께 읽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만화책을 맨마음으로 시외버스에서 읽다니, 나도 참.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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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마실길에 읽는 책 2017.10.31.


예전부터 퍽 궁금하게 여긴 만화책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을 서울마실길에 장만해서 전철에서 읽는다. 책이름으로 줄거리가 어떠할는지 확 떠오르기 때문에 이 만화책을 그동안 안 장만했는데, 이러면서도 장만해 볼까 하고 생각했다. 간기를 보니 2012년에 1쇄가 나왔다. 여섯 해씩이나 조용히 지켜보며 기다린 셈이네. 나도 참 대단하구나 싶다. 그런데 어느 책이든 갓 태어날 적에만 사서 읽어야 하지는 않는다. 뒤늦게 장만할 수 있고 느즈막하게 읽을 수 있다. 붐빌 듯 말 듯 숱한 사람들이 끊임없이 타고 내리는 전철에서 노래를 들으며 만화책을 읽는데, 이 만화에 나오는 마흔한 살짜리 만화가 지망생 아재는 애틋하면서 살갑다. 이 만화책을 사서 읽을 분은 어느 나이일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마흔한 살이라는 나이를 벌써 지났다. 그래서 마흔한 살인 아재를 놓고 마흔한 살짜리라고 말할 수 있다. 내 나이도 재미있구나 하고 생각하며 내 모습을 돌아본다.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이지만 11월을 하루 앞둔 오늘도 반소매에 반바지를 입고 돌아다닌다. 80리터들이 커다란 가방에 책하고 무릎셈틀을 가득 채웠고, 고흥으로 돌아가면 곁님하고 아이들한테 줄 선물을 챙겼다. 노래하는 박완규 님만큼은 아니지만 긴머리를 치렁치렁하면서 다니고, 오직 책방 앞에서만 가방에서 사진기를 꺼내어 찰칵찰칵 찍는다. 전철길에 만화책을 읽다가 눈물바람이 되기도 하고, 내릴 곳을 으레 놓치기 일쑤이며, 길에서 사람들은 나를 외국사람으로 여기는데, 이런 내가 하는 일이란 한국말사전 새로짓기. 내가 걷는 길이나 내가 하는 일이 나하고 얼마나 어울릴까? 나는 잘 모른다. 그저 나 스스로 즐겁게 노래하면서 가는 길이다. 만화책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에 나오는 아재는 열다섯 해 동안 다니던 일터를 그만두고서 빈둥거리다가 이녁이 온힘을 다해서 할 만한 일이란 ‘만화 그리기’라고 깨달았단다. 남 눈치를 볼 일이란 없다. 스스로 온힘을 다하면서 살면 된다. 스스로 환하게 웃을 수 있는 길을 걸으면 된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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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은 여전히 아름답다 - 네팔인에게 배우는 인생 여행법
서윤미 지음 / 스토리닷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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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은 어떤 삶을 짓는 사람이 사랑스레 어우러져서 소곤소곤 이야기꽃을 피우는 싱그러운 나라일까 하고 생각하면서 이 책을 읽는다. 글결이나 마음결이 따스하다. 이곳 너머 저곳에서, 또 저곳을 지나 이곳으로, 서로 고이 만나는 자리를 느낄 수 있다면 모든 나들이는 ‘아름다운 길’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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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마실길에 읽는 책 2017.10.30.


서울 고속버스역에 시외버스가 닿을 즈음 전철그림을 편다. 저녁 다섯 시 무렵에 망원역 쪽으로 가기 앞서 두 군데 책방에 들를 수 있겠다고 여긴다. 어느 길을 가면 좋을까 하고 어림하다가, 장승배기역에서 내리면 이곳 가까이 있는 헌책방 〈문화서점〉에 들를 수 있고, 살짝 걸어서 상도동에 있는 마을책방 〈대륙서점〉까지 갈 수 있겠네 싶다. 〈문화서점〉을 마지막으로 들른 지 열 해가 넘었지 싶다. 서울에서 살며 출판사 밥을 먹으며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으로 지낼 무렵에 마지막으로 들렀고, 서울을 떠나 인천에서 살다가 인천마저도 떠나 고흥으로 가고부터는 좀처럼 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잘 계신가? 숱한 책방이 문을 닫는 물결에서도 〈문화서점〉 책방지기 할아버지는 잘 계신가? 참 오랜만에 들렀으나 책방지기 할아버지는 내 얼굴을 떠올리신다. 예전에 드린 사진도 되새기면서 아주 반기신다. 저녁에 가야 할 곳이 있어 오래 머물지 못한 터라 책을 예닐곱 권밖에 못 보았다. 곧이어 찾아간 〈대륙서점〉은 마을책방 가운데 대단히 복닥거리는 저잣거리 한복판 매우 좋은 목에 있네. 놀랍다. 이런 목에 마을책방이 있다니. 예전에 이곳이 얼마나 사람이 붐비는 책방이었을는지 어림해 본다. 그리고 책손물결은 예전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넘실거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에 느긋하게 들르며 더욱 느긋하게 책을 살피기로 하고 네 권 즈음 장만한다. 전철역으로 걸어가서 6호선이었나, 전철을 타며 《엄마는 페미니스트》를 읽는다. 민음사 쏜살문고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작은 출판사에서는 어림도 못하는 손바닥책이다. 큰 출판사이기에 이런 손바닥책을 낼 뿐 아니라, 전국 마을책방 책상을 차지할 수 있구나 싶다. 작은 출판사에서 내는 숱한 알뜰한 책이 전국 마을책방마다 다 다른 빛깔로 책상을 차지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페미니스트》는 나쁜 책이 아니지만 너무 얇다. 사잇그림을 빼고 빈자리를 살피면 100쪽은커녕 60쪽쯤 될까 싶은 매우 얇은 글밥인데 9800원. 지나친 장삿속인 쏜살문고네. 줄거리가 좋은 책이기는 하나, 이만 한 책이라면 5000원만 받아도 되지 않나? 큰 출판사가 나쁜 일을 했다고는 여기지 않지만, 큰 출판사 책들이 마을책방 책상하고 책꽂이를 지나치게 많이 차지해 버리지 않았나? 나는 꿈꾸어 본다. 쏜살문고를 안 다루는 마을책방이 한국에 씩씩하게 골골샅샅 태어나기를. 그나저나 이 책을 읽다가 내릴 곳을 놓쳐서 하마터면 인천까지 갈 뻔했다. 겨우 돌고 돌아서 망원역에서 내린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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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군내버스에서 읽은 책 2017.10.30.


서울에 다녀오기로 한다. 오늘은 다른 일이 있었으나 그 일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면서, 새로 나온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을 기리는 조촐한 자리를 꾸리기로 한다. 이 알뜰한 사전을 펴내 준 출판사 일꾼, 이 뜻있는 사전을 빛내 준 디자인회사 대표, 이 고운 사전이 태어나도록 함께 글손질을 한 이웃, 앞으로 내 새로운 책을 펴내 주기로 한 출판사 일꾼, 이렁저렁 여러 반가운 분들하고 저녁자리를 누린다. 아버지가 집을 나서려 하니 작은아이도 큰아이도 부시시하게 일어나서 “아버지 어디 가?” 하고 묻는다. “응, 서울에 바깥일을 하러 다녀와.” “그렇구나. 그러면 잘 다녀와요.” “우리 이쁜 아이들도 집에서 스스로 할 몫을 하면서 즐겁게 배우셔요.” 열흘쯤 앞서 읍내마실을 할 적에 한 번 입어 보았는데, 오늘부터 나는 멀리 바깥마실을 갈 적에 새로운 바지를 입기로 한다. 이른바 ‘치마바지’. 이런 멋진 바지가 있는 줄 요즈음에 알았다. 태국에서는 고기잡이가 흔히 입기도 한대서 ‘어부바지’나 ‘태국바지’라는 이름도 있다. 나한테는 시월 끝자락도 아직 더우니 치마반바지를 입는다. 긴머리에는 꽃무늬 머리핀을 꽂고, 아랫도리는 치마반바지에, 80리터들이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앞에는 다른 가방 둘을 어깨에 메고는 한 손에는 사진가방을 든 차림. 나 스스로 보아도 재미난 입성이다. 군내버스에서 읽고 시외버스에서도 읽으려고 책을 여러 권 챙기는데, 맨 먼저 《아직 끝이 아니다》를 편다. 배구선수 김연경 님이 쓴 이녁 이야기이다. 고작 서른 살 나이에 쓰는 자서전일 수 있지만, 김연경 님은 얼마든지 이녁 이야기를 쓸 만하다고 느낀다. 이 책이 나온다는 얘기를 듣고는 날을 잘 맞추어 책모임에 찾아가서 손글씨를 받고 싶었으나, 그때에 아쉽게도 못 갔다. 언젠가 날하고 자리를 잘 맞추어서 김연경 님한테서 《아직 끝이 아니다》에 손글씨를 받을 수 있을까? 동그란 공 하나에 씩씩하게 꿈을 담아서 걸어온 길이 책에 아주 잘 나온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에 즐겁게 춤추고 노래하면서 땀을 흘린 숨결이 더없이 반갑다. 고된 훈련을 마치고 나서 그대로 뻗기보다는 ‘함께 운동하는 지기’가 기운을 차리도록, 또 김연경 님 스스로 새롭게 일어서도록, 웃으며 춤도 추고 노래도 했다는 이야기에 무릎을 쳤다. 참말 그렇다. 우리한테 가시밭길이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한테는 꿈길만 있지 않을까? 우리한테는 꿈을 이루려는 사랑길만 있지 않을까? 우리한테는 꿈을 이루려는 사랑으로 살림을 짓는 길만 있지 않을까? 서른 살 싱그러운 운동선수 한 분이 쓴 이야기책을 읽으며 새삼스레 생각한다. 마흔 줄을 넘고 쉰 줄로 나아가는 나도 ‘꿈을 이루려는 사랑으로 살림을 짓는 길에 서며 웃고 노래하고 춤추고 왁자지껄 수다를 떠는’ 신나는 이야기를 책으로 쓰자고.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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