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밥하면서 읽는 책 2017.11.5.


《자전거 타는 CEO》라는 책을 무척 설레며 기다렸다. 대만에서 ‘GIANT’라는 자전거 회사를 일군 할아버지가 이녁 발자국을 돌아본 이야기를 갈무리한 책이다. 여든이 넘었어도 자전거로 일터를 오간다고 하는 터라, 이 책은 회사를 꾸리는 바탕뿐 아니라 자전거를 사랑하는 마음을 다루리라 여겼다. 그렇지만 막상 책을 손에 쥐어 첫 쪽부터 끝 쪽까지 읽는 내내 ‘자전거 이야기’는 너무 적다. 게다가 같은 얘기를 너덧 차례나 되풀이한다. 어쩌면 더 되풀이했을는지 모른다. 나중에는 또 나오는 대목은 건성으로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밥상을 차려 놓고서 아이들 먼저 먹으라 하고 이 책을 읽다가, 마지막 쪽까지 덮은 뒤에 가늘게 한숨을 쉬었다. 그처럼 커다란 회사를 일구는 대표인데, 이녁이 쓴 글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얼개로 책을 내놓아도 될까? 텁텁하다. 까끌까끌하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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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자전거 타며 읽은 책 2017.11.4.


낮에는 따뜻한 가을볕을 두고볼 수만은 없는 노릇. 아직 마치지 못한 일감이 있지만, 두어 시간쯤 쉬면서 아이들하고 함께 놀자는 마음으로 자전거를 달린다. 먼저 책숲집에 들러 큰아이가 바라는 만화책을 읽으라 한다. 이다음으로 면소재지 초등학교 놀이터로 간다. 아이들하고 ‘시소’를 타다가 문득 생각한다. 예전에는 ‘시소’라는 놀이틀 이름을 ‘널방아’로 지어 보았는데, 오늘 떠오르기로는 ‘엉덩널’이 한결 재미나지 싶다. 엉덩이를 쿵쿵 찧으니 엉덩널이라고 할까. 엉덩널을 한참 놀고서, 달팽이 출판사에서 새로 낸 《나무》를 읽는다. 번역 말씨는 여러모로 아쉽다. 번역 말씨를 정갈하게 한국 말씨로 가다듬어 줄 일꾼이 한국에 없을까? 내가 보기로 앞으로는 ‘번역가’ 못지않게 ‘한국말을 한국말답게 읽고 듣고 말하도록 돕는 글손질지기’가 나와야지 싶다. ‘나무’하고 얽힌 이야기를 수수하게 풀어내는 이야기가 어여쁜 《나무》라고 느낀다. 참 멋스럽다. 한국에서는 나무나 풀이나 꽃이나 들이나 숲이나 바다나 하늘이나 바람을 놓고서, 이렇게 수수하면서 어여삐 이야기를 풀어낼 이웃님이 얼마나 있으려나. 두 아이들이 실컷 놀고 집으로 돌아오는 자전거길은 맞바람. 이제 겨울을 앞둔 맞바람이 제법 세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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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빨래터에서 읽은 책 2017.11.3.


한동안 들여다보지 못했더니 마을 어귀 빨래터에 물이끼가 잔뜩 꼈다. 어제 비로소 알아챈다. 오늘 낮에 치우려 했으나 낮을 지나친다. 마당에 넌 빨래를 걷어 마루로 옮기고서 큰아이하고 빨래터에 간다. 큰아이더러 물이 차니 담에 앉아 책을 읽으라 하지만, 큰아이는 굳이 소매를 걷고서 일손을 거든다. “아버지는 발 안 시려?” “응, 안 시려.” 빨래터에 잠자리가 둥둥 떠다닌다. “여기 잠자리가 빠져서 죽었어. 왜지?” “잠자리가 여기에 알을 낳으려고 했나 보네. 알을 낳고 죽었나 봐.” “어디? 알 안 보이는데?” 큰아이가 죽은 잠자리 두 마리를 손으로 건져서 풀숲으로 옮겨 준다. 나도 죽은 잠자리를 한 마리 건진다. 아무리 포근한 남녘이라 해도 11월이면 잠자리도 숲이나 흙으로 돌아가야지. 이듬해에 새로운 알이 깨어나서 물속에서 힘차게 노닐어야지. 요즈막에 마을 할매랑 할배한테서 들은 ‘샘터님(또는 샘터지기)’을 그려 본다. 우리가 마을 빨래터랑 샘터를 정갈하게 치워 놓으면 모두 잠든 밤에 살며시 이곳에 나타나서 신나게 물놀이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어쩌면 작은 시골마을 빨래터에 밤마다 하늘에서 선녀님도 샘터님도 이런저런 숱한 님도 내려와서 노닐는지 모른다. 왜 일본 만화영화에도 이런 얘기가 있잖은가. 센하고 치히로가 나오는. 선녀님이든 샘터님이든 모두 우리 마을 정갈하며 싱그러운 물을 누리시기를 빌어 본다. 이렇게 일을 마치고서 나는 아프리카 오카방고를 다룬 《지구의 마지막 낙원》을 읽는다. 이 책은 새 한 마리가 하늘을 날면서 이웃 숲짐승한테 말을 거는 얼거리로 이야기를 편다. 이 책에 실은 사진도 좋고, 그림도 좋다. 글은? 글도 시원스레 읽는다. 평화로운 아프리카뿐 아니라 지구라는 별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아이들한테 들려주는 눈길이 좋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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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마당에서 읽는 책 2017.11.2.


큰아이랑 평상에 앉아서 그림책 한 권을 넘긴다. 먼저 글을 다 손질해 놓고서 읽힐까 하다가 함께 펼치면서 잽싸게 글을 손질하면서 한 번 보고는, 다시 한 번 보기로 한다. 다만 나는 이 그림책 《발랄라이카를 연주하고 싶은 생쥐》를 장만할 적에 먼저 한 번 읽었다. 가을볕이 마지막으로 힘을 내는 십일월 첫머리. 발랄라이카를 켜고 싶은 생쥐는 눈이 덮이는 겨울에 맞이하는 새로운 길. 생쥐가 사람하고 이야기를 나눌 뿐 아니라, 악기를 켜면서 생쥐나라에서뿐 아니라 사람나라에서도 가슴을 적신다고 하는 이야기. 오늘날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생쥐가 악기를 켜면서 사람들 마음에 아름다움을 나누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해 볼 만할까? 어쩌면 우리는 생쥐하고 말을 섞을 줄 모를 뿐 아니라, 사람 스스로도 악기를 켜거나 노래를 부르는 마음을 잊지는 않았을까? 배움길을 찾아 씩씩하게 떠나고, 배움을 마친 뒤에 스스럼없이 돌아와서는, 손수 익힌 모든 것을 이웃한테 나누어 주는 생쥐란 얼마나 이쁜가.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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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외버스에서 읽은 책 2017.10.31.


권정생 님 글은 모두 다 읽었다. 다 읽은 책을 다시 읽기도 했고 거듭 읽기도 했다. 권정생 님 글을 놓고 가끔 그림책이 나오기도 하는데 《엄마 까투리》를 이제서야 들춘다. 서울에서 책방을 다니다가 문득 보았는데, 이 그림책은 2008년에 나왔다고 하네. 그무렵에 이 그림책 이야기를 들었을까? 글로 읽었으니 굳이 그림책으로 안 보아도 된다고 여겼을까? 2008년이면 큰아이가 태어나던 해. 어쩌면 그해는 큰아이를 돌보느라 더할 나위 없이 바쁘고 잠을 거의 못 자면서 하루를 보냈기에 그때 《엄마 까투리》라는 그림책이 나온 줄 몰랐을 수 있다. 어느덧 큰아이는 열 해라는 나날을 살아간다. 큰아이는 두툼한 글책도 즐거이 읽지만, 만화책도 좋아하고 그림책도 사랑한다. 생각해 보면 나도 늘 그림책을 챙겨서 읽지 않는가. 그림책마다 네 살에 맞는다든지 여덟 살에 맞는다든지 여섯 살에 맞다는, 이런 알림글이 붙곤 하며, 책방에서도 이렇게 갈라 놓는데, 나로서는 이런 나이로 가르는 틀은 못마땅하다. 오히려 글책을 놓고서 나이를 가르면 모를까, 그림책은 모든 나이에서 누구나 언제 어디에서나 아름답게 누리고 사랑스레 새길 만한 이야기밥이지 싶다. 책도 좋아하고 그림그리기도 좋아하는 큰아이한테 《엄마 까투리》는 좋은 선물이 될 수 있을까? 아이들한테 책 말고 다른 선물도 챙겼고, 그림책도 여러 가지 챙겼다. 묵직한 가방에서 그림책을 꺼내어 시외버스에서 읽는다. 나는 우리 어버이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잘 자라서 이렇게 살아가고, 우리 아이들은 저희 어버이 사랑을 새로 받으며 씩씩하게 잘 자란다. 이 아이들 앞에 언제나 빛이 있겠지. 이 아이들을 보살피는 나하고 곁님 앞에 언제나 꿈이 있을 테고.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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