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밥하면서 읽는 책 2017.10.19.


우리 함께 밥을 차려 보자. 작은 일손을 거들어 보렴. 마당에 내놓아 햇볕을 머금은 파란 물병은 너희가 들여놓으렴. 물병이 비었으면 새로 물을 받아 볕이 잘 드는 곳에 놓으렴. 부엌을 한 번 쓸고 밥상을 닦으련? 달걀을 둘 꺼내고, 배추하고 양파를 건네주겠니. 감자를 씻어 주라. 이모저모 바라고 맡기면서 함께 짓는다. 우리한테 찾아오는 한끼를 기쁘게 누려 보자. 밥상맡에 앉은 아이들이 수저를 놀린다. 한창 배고플 적에는 아무 말이 없이 빠르게 그릇을 비운다. 너희들은 아직 스스로 “배고파요. 밥 주셔요.” 하고 말할 줄 모르지. 늘 어버이가 때를 맞춰서 밥을 먹자고 불러야 하지. 큰아이한테 설거지를 맡기고, 밥찌꺼기 그릇은 작은아이가 비우도록 맡긴 뒤, 나는 자리에 누워서 허리를 편다. 아이들이 제법 크니 참으로 수월하네. 이렇게 한두 가지씩 거들어 주니. 만화책 《하얀 구름》을 천천히 넘긴다. 이와오카 히사에 님이 오래도록 조금씩 빚은 짤막한 만화를 모았다. 사람이 나고 죽는 숨결,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마음, 이 땅하고 저 먼 별이 얽히는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가 포근하게 흐른다. 이런 살뜰한 만화책을 읽다 보면 예전에는 ‘왜 한국에는 이처럼 생각을 깊고 넓게 건드리는 만화를 그리는 분이 안 보일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이런 생각은 안 한다. 한국 교육 얼거리를 보라. 한국에서 만화를 그리든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사진을 찍든 춤을 추든 노래를 부르든 …… 사회 눈치를 안 보고서 오롯이 꿈을 사랑으로 그리는 마음으로 날아오를 수 있는 터전이 있을까? 이 나라 아이들 가운데 몇 아이쯤 어릴 적부터 마음껏 뛰놀면서 꿈씨앗을 심는 하루를 누리려나? 아름다이 어린 날을 누린 이야기를 가슴에 품은 사람이어야 만화길을 걸을 적에 아름답게 피어나는 씨앗을 고이 담을 수 있다고 느낀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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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빨래터에서 읽은 책 2017.10.20.


한가위를 고흥에서 조용히 지내고서 일산에 마실을 다녀오다 보니, 마을 빨래터에 물이끼가 잔뜩 끼어도 치우지 못했다. 마을에서 우리가 아니면 치울 손이 없으니까. 여러 날 바깥마실을 다녀오느라 고단한 몸을 쉬는 틈틈이 ㄱ도의회 공문서를 손질하는 일을 한다. 딱딱하고 어려우며 일본 말씨나 번역 말씨가 가득한 공문서를 손질하자니 눈알이 돌고 등허리가 결린다. 오히려 몸이 더 힘들달까. 즐거운 이야기가 아닌 딱딱한 이야기를 읽으니까. 머리를 쉬고 마음을 풀어 보려고 빨래터에 간다. 이제 바람이 쌀쌀하다며 아이들은 물에 안 들어간다. 물가에서 소꿉놀이만 한다. 혼자 씩씩하게 빨래터 물이끼를 치우고서 쉬려는데 마을 할머니 한 분이 지나가시다가 한 말씀. “빨래터 치우셨소? 빨래터를 치우시는 분한테는 이 물에 사는 님이 복을 내려 주시지. 그만큼 복을 많이 받으시지.” 빨래터 담에 걸터앉아서 《내일 새로운 세상이 온다》를 읽는다. 앞으로 다가올 나날을 아이들이 아름답게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엮은 책이다. 한국에서는 우리 앞날을 바라보면서 어떤 일을 하는가? 썩은 정치였기에 대통령을 촛불로 끌어내렸는데, 새로 대통령이 된 이는 평화와 앞날을 어떻게 그리는가? 사드도 핵무기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모르는가? 일본은 후쿠시마가 터진 뒤로 끔찍한 재난을 아직 겪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오래도록 겪어야 하는데, 한국은 얼마나 걱정이 없다면서 핵발전소를 새로 짓는 공사를 그대로 밀어붙일까? 나라님이 할 일은 ‘일자리 만들기’가 아니다. 일자리는 사람들 스스로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다. 나라를 이끄는 이는 앞으로 이룰 아름다운 평화라는 그림을 그려서 펼칠 줄 알아야지 싶다. 정치하는 이들, 대통령뿐 아니라 작은 지자체 공무원도 《내일 새로운 세상이 온다》를 읽어 보면 좋겠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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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 하늘가에서
마틴 프로스트 요가.글, 다나 레이몽 카펠리앙 사진 / 눈빛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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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삶이 다르고, 이 다른 삶을 바라보는 눈이 다르다. 누구는 환한 기쁨을 사진으로 찍을 만하고, 누구는 뼛속까지 시린 아픔을 사진으로 찍을 만하다. 하늘가에서 요가를 하는 이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어디에서나 새로운 몸짓을 찾으려 한다. 스스로 하늘이 되려 하면서 하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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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마당에서 읽은 책 2017.10.18.


장만한 지 얼추 보름쯤 되는 그림책이 마루에 있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보름이 지나도록 이 그림책에 눈길을 안 두더니, 드디어 아버지한테 묻는다. “아버지, 이 그림책 봐도 돼요?” “그래. 아직 아버지가 그 그림책에 적힌 말을 안 고쳤지만 보고 싶으면 보렴.” 큰아이가 이렇게 묻기까지 보름을 기다렸네. 어떤 그림책이냐 하면 《오늘은 여왕님 만나는 날!》. 책이름에 웬 ‘여왕님’이라고 고개를 저을 이웃님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이 그림책을 무릎에 얹어서 한 쪽씩 펼치다 보면, 어느새 풍덩 빠져들면서 환하게 웃음을 지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 집 큰아이도 환한 웃음을 이 그림책에서 마주했을까? 아무렴.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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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외버스에서 읽은 책 2017.10.16.


할아버지 집이나 이모 집에서는 ‘있는 잠’조차 몰아내면서 마지막 한 방울 힘까지 쏟아서 놀던 아이들이 시외버스에서 까무룩 잔다. 작은아이는 고흥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기다리는 맞이방 돌걸상에 눕더니 어느새 곯아떨어지기도 했다. 나도 아이들 곁에서 한 시간 반 즈음 잤으나, 이내 기지개를 켜고 책을 꺼내어 펼친다. 지난달에 진주에 있는 진주문고로 나들이를 가면서 마련한 《마을 전문가가 만난 24인의 마을주의자》라는 책이다. 저마다 서울이라는 고장을 씩씩하게 박찬 뒤에 다 다른 시골에서 다 다른 기쁨하고 보람으로 살림을 짓는다는 사람들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이러한 책을 경남 진주 진주문고에서 스스로 펴냈다. 가만히 보면 ‘펄북스’라는 출판사 이름은 투박하면서 이쁘다. ‘진주문고’를 영어로 옮기니 ‘펄북스’이다. 더 생각해 보면 ‘펄’은 ‘뻘’하고 맞닿는 갯살림 낱말이다. 진주가 태어나는 자리를 돌아보니 ‘펄’이랑 ‘뻘’은 어쩐지 먼발치 아닌 살가이 어우러지는 결이 흐르지 싶다. 아무튼 이 나라가 아무리 서울로 몰려드는 살림으로 많이 치우친다고 하지만, 참으로 많은 뜻있는 이들은 고장마다 따사롭고 넉넉한 새로운 마을이 되기를 꿈꾸면서 젊은 바람을 일으킨단다. 《마을 전문가가 만난 24인의 마을주의자》는 꼭 스물네 사람을 다룰 테지만, 이 스물네 사람은 스물네 가지 씨앗을 심겠지. 나는 나대로 우리 시골에서 어떤 씨앗을 심는 ‘시골님’ 노릇을 하는지 생각해 본다. 우리 곁님도, 우리 아이들도 모두 따사로우면서 넉넉한 새로운 씨앗을 심는 마을님으로, 시골님으로, 마을지기로, 시골이웃으로, 또 튼튼한 한 사람으로 즐거이 살림을 짓는 하루이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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