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활사박물관 11 - 조선생활관 3, 조선, 근대와 만나다 한국생활사박물관 11
한국생활사박물관 편찬위원회 (11권) 엮음, 고석규 감수 / 사계절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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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 2022.4.14.

푸른책시렁 162


《한국생활사박물관 11 조선생활관 3》

 편찬위원회 엮음

 사계절

 2004.8.20.



  《한국생활사박물관 11 조선생활관 3》을 읽었습니다. ‘조선생활관 1∼3’을 나란히 읽었어요. 석 자락으로 조선이란 틀을 잘 간추렸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조선이라는 틀’은 잘 간추렸되, ‘조선이 아닌 틀’은 하나도 안 짚었구나 싶습니다. 임금붙이나 벼슬아치가 ‘조선이라는 틀’을 세웠을는지 모르나, ‘흙을 일구며 아이를 낳아 돌보고 보금자리를 지은 수수한 사람들’은 어떠한 나라틀도 없습니다.


  아이를 사랑으로 낳아서 돌보는 여느 어버이로서는 조선도 고려도 고구려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오직 여느 어버이 스스로 낳아 돌보면서 날마다 사랑을 누리는 하루가 기쁜 새길입니다.


  ‘조선생활관’이라고 이름을 적습니다만, ‘조선이라는 틀’에서 ‘조선왕조실록’ 같은 데에 적힌 줄거리일 뿐, 정작 자장노래도 들노래도 일노래도 놀이노래도 이 《한국생활사박물관》에서 못 찾아봅니다. 홍대용이나 박지원이나 세종 같은 이름을 이 책에서 엿볼 수 있으나, 아기한테 기저귀를 어떻게 대었고, 실이나 천은 어떻게 얻어서 옷을 어떻게 지었는지, 집을 어떻게 닦아서 세웠는지, 지붕은 어떻게 이는지, 호미와 낫과 쟁기와 삽 같은 연장은 어떻게 태어나서 발돋움하여 자리를 잡았는지 하는 이야기는 찾아볼 길이 없어요.


  집은 왜 ‘집’이고, 호미는 왜 ‘호미’일까요? 여러 고을 글바치가 사투리로 중국말을 하면 임금붙이부터 스스로 알아듣지 못하기에 ‘소리값(발음기호)’을 갈무리하려고 생각한 벼슬판입니다. 종(노비)을 거느리며 돈으로 삼은 벼슬밭입니다. 저 하늬녘(서양)처럼 ‘문화예술사’를 보여주려는 얼거리로 따지면 《한국생활사박물관》은 ‘D·K’에서 선보이는 꾸러미 못지않게 값집니다만, 조선 무렵만 하더라도 100사람 가운데 99사람은 흙을 만지는 살림이었을 텐데, 시골 이야기도 흙짓기 이야기도 아기를 어떻게 낳아서 돌보았느냐 하는 이야기도 없습니다. 어떠한 글도 배움터도 없는 판에 수수한 흙사람(시골사람·평민)은 어떻게 말을 물려주고 가르치면서 온누리를 ‘우리말(사투리)’로 지어서 이었을까 하는 수수께끼도 이 책에서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우리 발자취라기보다는 ‘1퍼센트도 안 될, 임금붙이·벼슬아치·글바치 발자취’인 《한국생활사박물관》일 텐데, 여느 배움터에서 쓰는 배움책(역사 교과서)도 이 얼거리하고 똑같습니다. 우리는 ‘전쟁사·왕조사·지식사·문화예술사’가 아닌, 참말로 ‘살림길(생활사)’을 바라보고 익힐 노릇이라고 생각해요. ‘살림길(생활사)’을 다루려 한다면, 임금붙이·벼슬아치·글바치 발자취는 모조리 덜어내야겠지요? 그들은 ‘살림(생활)’을 안 하고 다스림(권력다툼)만 했잖아요?


  살림살이를 들려주려는 책을 여민다면, 우리한테는 조선도 고려도 고구려도 아닌 오직 ‘우리’라는 속모습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조선사람도 고려사람도 고구려사람도 백제사람도 신라사람도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한사람’입니다. 언젠가 오롯이 ‘살림길’을 다루는 책이 태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ㅅㄴㄹ


백성은 가난한데 고을에서 여러 해 걷은 세금은 서류상에만 있을 뿐 온데간데없었다. 지방관과 아전들이 떼어먹고 훔쳐 가는 것이 관행이 된 지 오래였다. (30쪽)


미국으로 간 박정양 일행도 출발 전부터 중국의 온갖 압력에 시달렸다. 자기네 속국이 전권공사를 파견하는 것은 격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37쪽)


사실 ‘만세(萬歲)’란 것은 중국 황제의 책봉을 받던 시절에는 엄두도 낼 수 없는 구호였다. 고작해야 ‘천세(千歲)’를 외칠 뿐이었다. 이제 중국과 대등한 황제의 나라임을 선포했기에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만세 만세 만만세!”를 마음껏 외칠 수 있게 된 것이다. (38쪽)


그러나 오랫동안 조선의 지식인들은 양반구도에 등장하는 서구 세계가 정말로 자신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영국이 중국을 패배시킨 1840∼1842년의 아편전쟁이 조선뿐 아니라 동양 사회 전체에 큰 충격을 안기기 전까지는. (75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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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바로 화난 거야! 울퉁불퉁 어린이 감성 동화 4
톤 텔레헨 지음, 마르크 부타방 그림, 성미경 옮김 / 분홍고래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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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2022.4.2.

맑은책시렁 250


《그게 바로 화난 거야!》

 톤 텔레헨 글

 마르크 부타방 그림

 성미경 옮김

 분홍고래

 2021.8.2.



  《그게 바로 화난 거야!》(톤 텔레헨 글·마르크 부타방 그림/성미경 옮김, 분홍고래, 2021)는 우리 마음에 깃드는 여러 느낌 가운데 ‘불·부아’를 짚습니다. 한자말로는 ‘화(火)’를 씁니다만, 우리말로는 ‘부아나다’나 ‘불나다’로 옮겨야 알맞아요. 때로는 ‘뿔나다’라 합니다.


  우리는 한자로 생각하며 살림을 가꾸지 않기에 우리말로 헤아릴 뿐입니다. ‘불’이 이글이글하듯 타오르기에 성나거나 짜증나거나 싫은 기운이 드러납니다. 불은 서로 따뜻하게 감싸는 기운이 되기도 하지만, 스스로 알맞게 다스릴 줄 모른다면 그만 모조리 태우고 말아요.


  ‘불·부아·뿔’은 말밑이 하나입니다. 게다가 ‘불·물’은 말밑이 같아요. 결이 확 다른 불하고 물이지만, 밑자락은 하나입니다. 우리가 말을 글로 옮기는 살림살이인 ‘붓’도 말밑이 같지요.


  이러한 얼개를 제대로 읽으면서 나누고 싶기에 ‘화나다’보다는 ‘불나다·부아나다·뿔나다’라는 낱말을 골라서 알맞게 가릴 적에 어른으로서도 어린이한테도 이바지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자,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기에 사납거나 무시무시할 만해요. 활활 타오르기에 모든 일을 재빠르면서 힘차게 해내기도 합니다. 활활 타오르면서 미움도 시샘도 창피도 몽땅 살라서 없애고 새몸에 새마음으로 거듭날 만합니다.


  어떤 불이 되려나요? 어떤 불빛이 되고 싶나요? 어떤 불길로 나아가면서 가만히 촛불이 되고, 천천히 붓을 놀리려나요?


  붓은 부드럽게 놀릴 노릅니다. ‘부드럽게’입니다. 무르기에 물이요, 맑기에 물이라면, 부드럽기에 불이면서, 밝기에 불입니다. 사랑으로 다스릴 줄 아는 불이라면 밝게 온누리를 보듬습니다. 해님처럼 말이지요. 사랑을 잊은 채 날뛰는 불이라면 그만 사납에 온누리를 집어삼킵니다. 우리 마음을 들여다봐요. 불이 났나요? 붓을 쥐어 부드러우면서 밝게 노래하는 길인가요?


ㅅㄴㄹ


다람쥐는 가끔 실제보다 더 진짜처럼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거의 확실한 것과 완전하게 확실한 것이 전혀 다르다는 것도 알아요. (20쪽)


사마귀는 문간에 선 채 구겨진 날개를 펴서 가지런히 접었어요. 그리고 어깨 위에 붙어 있는 열 개가량의 먼지를 불어서 털어 냈어요. 사마귀는 등을 쫙 펴고 아주 당당한 자세로 다시 섰어요. (42쪽)


울퉁불퉁한 돌기로 뒤덮인 커다란 공 모양의 물체가 방바닥에 있었어요. “아니, 저 화 덩어리가 왜 또 여기 있어! 나갈 생각이 없는 모양이네.” 개미는 속으로 빈정거렸어요. “꺼져!” 개미가 소리쳤어요. (45쪽)


“내 상징은 가시로 덮여 있어. 백조의 상징과 달라. 내 상징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그래서 결코 누구도 내 상징을 더럽히려고 하지 않는 거야.” 고슴도치는 한숨을 내쉬었어요. “백조가 지금 원하는 건 뭘까?” 개구리가 고슴도치에게 물었어요. “모르지.” 고슴도치가 대답했어요. “넌 결코 알아맞힐 수 없을 거야!” (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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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와 통하는 채식 이야기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40
이유미 지음 / 철수와영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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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숲노래 청소년책 2022.3.24.

푸른책시렁 161


《10대와 통하는 채식 이야기》

 이유미

 철수와영희

 2021.11.22.



  《10대와 통하는 채식 이야기》(이유미, 철수와영희, 2021)는 푸름이한테 풀밥이 어떻게 얼마나 이바지하는가 하고 들려줍니다. 이 책을 쓰신 분을 비롯해 숱한 풀밥벗은 ‘비건·프루테리언·락토 베지테리언·오보 베지테리언·페스코 베지테리언·폴로 베지테리언·플렉시테리언’ 같은 바깥말을 그대로 쓰는데, 대단히 어렵습니다. 외우기도 알아보기도 어려워요. 어린이도 쉽게 알아보도록, 또 사람마다 다른 몸에 맞게 풀밥을 헤아리도록 우리말로 새로 엮기를 바랍니다.


과일밥·과일살이·과일살림 ← 프루테리언

온풀밥·온풀살이·온풀살림 ← 비건

젖풀밥 ← 락토 베지테리언

달걀풀밥 ← 오보 베지테리언

젖달걀풀밥 ← 락토 오보 베지테리언

물빛풀밥 ← 페스코 베지테리언

조금풀밥 ← 폴로 베지테리언

두루풀밥 ← 플렉시테리언

풀밥·풀살이·풀살림·풀밥살이·풀밥살림 ← 베지테리언


  글님이 얘기하듯 ‘산 돼지’를 볼 틈이 없을 적에는 돼지가 어떤 숨빛인지를 모르게 마련입니다. 사람한테 시달리는 나무가 아닌 숲에서 씨앗 한 톨부터 싹터서 우람히 자라난 나무를 늘 곁에 두지 않는다면 나무가 어떤 숨결인지를 몰라요. 풀밥을 먹더라도 풀포기가 어디에서 어떻게 씨앗부터 자라서 우리 밥자리로 오는가를 살피지 않으면 풀빛이 어떻게 이바지하는가도 모르겠지요.


  요사이는 ‘스마트팜’이라는 이름을 내걸면서 햇볕도 빗물도 흙도 없이 ‘잿빛(시멘트) 바닥 + 꼭짓물(수돗물) + 전기로 밝힌 불빛 + 들바람 아닌 공기청정기로 흐르는 바람’에다가 죽음거름(화학비료)을 쓰는 푸성귀가 넘칩니다. 해바람비하고 동떨어진 채 살집을 키우는 고기짐승처럼, 해바람비를 모르는 채 포동포동 키우는 ‘먹이풀’을 가게에 놓는다고 할 만합니다.


  우리는 오늘 풀밥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풀’이 무엇지부터 모르는 서울살림이지는 않을까요? 흙하고 땅이 어떻게 다른지, 빗물하고 냇물하고 바닷물이 어떻게 다른지, 햇빛하고 햇볕하고 햇살이 어떻게 다른지, 낮빛하고 밤빛이 어떻게 다른지 까맣게 모르는 채 풀밥차림을 바라보지는 않나요?


  슬기롭게 사랑으로 가자면 맨발로 걷고 맨손으로 일하는 터전을 누릴 노릇입니다. 바람을 마시고, 햇볕을 쬐며, 빗물놀이를 하는 곳에서라야 참사랑이 아름다이 피어난다고 느낍니다. 글님은 “자연의 이치극 고스란히 느끼며 사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쓰면서, 누구나 시골에서 살기는 어렵다고 잘라말합니다. 그러나 참으로 이와 같다고는 여길 수 없습니다. 이 책을 읽은 저부터 시골에서 살아가는 시골내기요, 우리 집 아이들은 시골아이입니다. 아무리 오늘날 우리나라 시골사람이 1퍼센트가 될랑 말랑 하더라도 틀림없이 시골사람은 1/100은 있습니다. 또한 ‘돈이 넉넉해서 시골로 가는 사람’이 아니라 ‘돈이 없어도 삶길을 찾아 서울을 버리고 시골을 품는 사람’은 꾸준히 늘어납니다.


  풀만 차리기에 풀밥이라고는 느끼지 않아요. 스스로 풀넋으로 바라보고 풀살림을 사랑하며 풀집을 누리는 오늘을 짓기에 비로소 풀밥이리라 생각합니다. 풀은 사람한테 ‘먹을거리’에 그치지 않습니다. 먹을거리로만 풀을 바라보는 틀을 버리고서, 사람하고 똑같은 숨빛인 풀빛물결을 맞아들이는 어진 이웃을 기다립니다.


ㅅㄴㄹ


우리는 살아 있는 돼지를 볼 기회가 거의 없으므로 이들이 생명으로 어떤 특성이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45쪽)


아파트를 짓고 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 것도 지구의 광물 덕분이고, 모든 신선한 채소와 과일 또한 땅과 햇빛, 비가 내려야 가능한 일입니다. (59쪽)


인간의 본성은 사랑을 전제로 하고 있기에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나를 존재하게 하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사랑할 줄 아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123쪽)


자연의 이치를 고스란히 느끼며 이렇게 사는 것이 이상적이긴 하지마, 안타깝게도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지요. (153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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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편 스콜라 어린이문고 36
사토 마도카 지음, 이시야마 아즈사 그림,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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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2022.3.12.

맑은책시렁 267


《정의의 편》

 사토 마도카 글

 이시야마 아즈사 그림

 이소담 옮김

 위즈덤하우스

 2021.6.16.



  《정의의 편》(사토 마도카·이시야마 아즈사/이소담 옮김, 위즈덤하우스, 2021)을 펴면 여러 어린이하고 어른이 나옵니다. 사람들 앞에서 좀처럼 말을 못 하거나 더듬다가 얼굴이 붉어지는 아이가 나오고, 이 아이를 놀려먹는 아이가 나오고, 동무를 놀려먹는 아이를 나무라는 아이가 나오고, 놀려먹는 쪽에 서는 아이들이 나오고, 팔짱을 끼는 아이들이 나오고, 놀림받는 아이더러 기운내라고 북돋우는 아이가 나옵니다. 모두 다른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쪽에 섭니다.


  오늘 얼굴이 빨개지는 아이하고 살아가는 어버이는 아이한테 머잖아 얼굴이 빨개지지 않으리라고 얘기하지만, 막상 오늘 얼굴이 빨개지는 아이는 ‘머잖아’를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스스로 얼굴이 빨개지던 나날을 겪어 보았다면 ‘머잖아’ 같은 말은 도움말도 달램말도 아닙니다. 어버이가 들려준 말이라 하더라도 ‘팔짱말’입니다.


  바르거나 옳은 쪽이란 무엇일까요? 어떻게 하고 무엇을 하기에 바르거나 옳은 쪽일까요? 왜 서로 갈라서 싸우거나 다투는 짓이 배움터에서 쉽게 불거지고, 마을이며 나라에서도 끊이지 않을까요?


  우리가 참말로 서로 다르기에 이 다른 빛을 받아들이면서 어깨동무하려는 마음이라면 함부로 ‘왼쪽·오른쪽’이란 말을 안 해야 맞고, 이런 말을 치울 노릇입니다. 굳이 ‘왼쪽·오른쪽’이란 말을 쓸 생각이라면, 어느 쪽이 옳거나 맞다고 가르지 않을 노릇입니다.


  정 왼쪽이 좋다면 오른손은 자르기 바랍니다. 정 오른쪽이 좋다면 왼다리는 자르기 바랍니다. 한 손하고 한 다리로만 살아 보기 바랍니다. 다른 손가락 다섯을 움직여서 젓가락을 쥐고 숟가락을 놀리며 밥을 먹어요. 다른 두 손을 함께 써서 밭을 짓고 나무를 심고 풀꽃을 쓰다듬습니다. 스스로 본다면 ‘나 혼자 옳거나 그르’겠지요. 옳은 길이 아닌 아름다운 길을 찾을 노릇이고, 그른 길이라고 따지지 말고 사랑이란 길을 생각을 노릇입니다. 이때에 비로소 네 쪽도 내 쪽도 아닌 “우리 쪽”이란 말을 슬기롭고 참다이 쓸 수 있습니다.


ㅅㄴㄹ


내가 왜 이러지? 나는 대체 뭘 피하고 싶은 거야? 정우와 친한 사이로 여겨질까 봐? 그렇다. 정우와 친구로 여겨지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79쪽)


나는 왜 이렇게 맨날 남의 시선만 신경 쓸까. 제발 좀 이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어떻게 해야 희지처럼 자기 페이스로 살 수 있을까? (91쪽)


“나는 정우처럼 강하지 않아. 그래서 잘못된 행동을 하는 친구에게 그만두라는 말은 못 해. 그래도 똘똘 뭉쳐 놀리지는 않으려고 해.” (124쪽)


#佐藤まどか #セイギのミカ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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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제비
신시아 디펠리스 지음, 박중서 옮김 / 찰리북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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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2022.3.9.

맑은책시렁 266


《족제비》

 신시아 디펠리스

 박중서 옮김

 찰리북

 2020.4.30.



  《족제비》(신시아 디펠리스/박중서 옮김, 찰리북, 2020)는 미국이라는 나라이기 앞서 그 터에서 살림을 지은 사람들을 죽이거나 내쫓은 다음에 있던 여러 일 가운데 몇 가지를 엮어서 들려줍니다. 하늬녘(유럽)에서 배를 타고 건너간 이들은 총칼잡이를 앞세워 텃사람을 내몰았고, 텃사람을 내몬 다음에 총칼잡이는 일거리가 사라지기도 했고, 총칼잡이 노릇이 사람답지 못한 줄 깨닫기도 했다지요.


  곰곰이 보면 모든 나라는 총칼로 일어섰습니다. 어깨동무로 이룬 나라는 아예 없다고 할 만합니다. 어깨동무를 할 적에는 ‘나라’가 아닌 ‘마을’이었고, 마을도 ‘집’마다 다른 살림살이를 그대로 품는 숨결이었습니다. 어깨동무를 하는 살림터에서는 우두머리가 없어요. 모든 사람이 저마다 집밥옷을 짓고,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가르치고, 스스로 숲빛인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우두머리가 서려 하면서 손수 집밥옷을 짓지 않는 사람이 나오고, 집밥옷을 안 짓고 살림을 안 가꾸고 사랑을 잊으면서 총칼을 쥔 몇몇은 이웃집을 털고 이웃마을을 불태우고 이웃을 족쳤습니다.


  어느 ‘나라’이든 조용하며 아늑한 옆마을을 짓밟거나 죽이거나 종으로 삼으면서 뻗었어요. 오늘날 ‘한국’이란 이름을 쓰는 나라도 똑같습니다.


  《족제비》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어떻게 읽어야 스스로 슬기롭거나 아름다운가 하고 들려주려 합니다. 줄거리나 얼거리를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가르침(교훈)입니다. 비록 총칼을 앞세워 미국이란 나라가 섰으나, 이웃을 이웃으로 여기지 않은 미움으로 선 뿌리요, 나라를 이룬 뒤에도 스스로 총칼을 버리지 않은 속낯이에요.


  잘 보면 알 텐데, 총칼로 빼앗았기 때문에 총칼로 지킨다고 밝힙니다. 처음부터 총칼로 안 빼앗았다면, 구태여 총칼로 지키지 않아요. 사람이 사람으로서 땅을 알맞게 누리려 한다면 숲짐승이 두려울 까닭이 없습니다. 숲짐승은 왜 이따금 사람한테 달려들까요? 바로 사람이 스스로 먼저 숲짐승 살림터를 짓밟거나 빼앗을 뿐 아니라, 숲짐승을 잡아죽였거든요. 새끼(아이)를 잃은 숲짐승이 사람한테 달려들고, 살림터를 잃은 숲짐승이 사람을 물어뜯으려고 할 뿐입니다.


  미국이란 나라가 어떤 속낯인지를 그리려 하다 보니 《족제비》는 온통 가르침(교훈)으로 줄거리를 짤 수밖에 없구나 싶은데, 텃사람(인디언)한테 잘못했다고 비는 마음을 넘어서 ‘땅·삶·마을·나라’가 무엇인가를 좀 차분하게 되새기면서 그리려 했다면, 이 책은 사뭇 달랐으리라 생각합니다.


ㅅㄴㄹ


아빠 말에 따르면 백인이 인디언을 야만인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그래야만 인디언을 미워하기 쉽고, 인디언을 미워해야 그들을 쫓아내거나 죽인 다음 그들의 땅을 차지하기가 더 쉬워지기 때문이었다. 쇼니족 인디언을 야만인으로 생각하면 그들을 사람으로 대할 필요가 없었다. (56쪽)


“우리는 땅을 개간하고, 이렇게 작은 통나무집도 지었지. 얼마 안 있어 네이선이 태어났고, 이어서 몰리가 태어났어. 참으로 좋은 시절이었지. 우리는 행복했단다. 하지만 쇼니족 인디언들이 쫓겨났기 때문에 우리 자리가 생겨난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지. 세상 일이 다 그런 거라고 여겼던 거야.” (98∼99쪽)


“아니, ‘하지만’은 필요 없다니까, 네이선. 방아쇠를 당겨야만 용감한 사람이 된다는 생각을 도대체 어디서 배운 거냐!” (1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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