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트 - 인간의 행동 속에 숨겨진 법칙
앨버트 라슬로 바라바시 지음, 강병남.김명남 옮김 / 동아시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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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어린왕자가 지구에 살고 있다면 사람들은 그와 어떤 관계를 맺고 싶어 할까.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트위터로 소식을 전하거나 실시간으로 어린왕자의 위치를 파악하고 싶어 할 것이다. 아무것도 숨길 수 없는 세상이 되어 버린 현대 사회에서 우리의 사생활은 어디까지 보호받을 수 있을까? 네트워크 세상에서 우리는 씨줄과 날줄 사이의 어디쯤에 끼워진 퍼즐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그 조각 하나가 빠져 나가도 금세 빈 자리는 또 다른 노드가 메울 것이다. 노드의 연결 고리가 되는 허브가 있지만 수많은 허브도 결국 네트워을 연결하는 또 하나의 고리에 불과하다.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니 우리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 뿐 만 아니라 사회적 연결망의 위치를 거시적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나면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알 수 있지 않을까? 현대 사회에서 정체성은 관계망 속의 접속 지점을 나타내는 지표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의 망을 아름답고 재미있게 풀어 낸 『링크』의 저자 바라바시가 이번엔 『버스트』로 우리 곁을 찾았다. 책을 읽는 즐거움, 지적 유희의 행복함을 전해주는 이 책은 새로운 형식의 텍스트를 제공한다. 역사 소설과 과학적 지식의 탐구라는 두 축이 하나로 통합되면서 색다른 책읽기를 요구한다. 독자들은 이 복잡한 텍스트를 통해 마치 기차 레일을 연상할 수 있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 한 채 평행하게 뻗어가는 이야기들이 결국에는 하나의 소실점에 모이게 되는 책이다. 하지만 소실점은 눈의 착각일 뿐 결코 만날 수 없는 것처럼 이 텍스트도 ‘인간’이라는 알 수 없는 텍스트에 대한 메타 텍스트의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읽으려고 할수록 읽히지 않는 인간 존재에 대한 탐구는 언제나 즐겁다. 바라바시는 물리학의 법칙과 복잡계 네트워크 과학을 통해 이번에는 인간의 행동을 읽어내려고 시도한다. 열흘 후에 날씨를 예측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인간의 행동 패턴을 예측하는 일은 가능할까. 바라바시는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방식과 조금 다르게 과학적 지식을 알기 쉽고 재미있게 전달한다. 중세 십자군 원정에 관한 역사적 고증과 상상력을 통해 인간 행동의 예측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현대 물리학의 사례를 통해 검증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두 개의 이야기를 교차해 놓고 있어 한 개의 이야기가 끝나면 또 다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독자들은 두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느낌이면서 서로 연결된 두 개의 텍스트를 나란히 읽고 있는 느낌을 갖는다.

저자가 이 책에서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모든 행동에 숨어 있는 ‘폭발성의 패턴’이다. 그 폭발성의 이면에는 ‘우선순위 결정’의 비밀이 숨어 있다. 어떤 일이 매일매일 벌어지는 우선순위에서 밀리다 보면 일정한 패턴을 읽어내기 어렵지만 그 행위들은 결국 멱함수의 법칙을 따른다는 것이다. 저자는 알기 쉽고 상식적인 사례들과 그 이론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함께 설명함으로써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이 책이 갖는 장점은 단순한 과학적 지식을 전달하거나 최근의 연구 성과를 전달하는 데 있지 않다. 바라바시는 이 책에서 과학자이면서 심리학자이고 소설가이다. 다양한 관점은 하나의 사물과 사건을 입체적으로 보는 눈을 제공한다. 저자가 여러 번 인용한 ‘칼 포퍼’는 절대로 인간의 행동은 예측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 말을 부정하기 위해 이 책을 썼는지도 모른다. 아직 불완전하지만 인간 행동의 패턴을 읽어내는 일이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으며 어쩌면 날씨를 확률로 표시하듯이 확률적 예측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사실들을 설명한다. 앞으로 남겨진 과제는 인간행동의 ‘bursts’가 아니라 그 원인과 예측 가능성에 대한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는 일이다. 학자의 입장에서 이론을 확립하고 실험을 통해 그것을 증명하는 것은 당연한 관심이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을 통해 창조적 상상력을 발휘하고 이미 벌어진 행동의 결과를 미래의 인간 행동 예측 시스템과 대비시킬 수 있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 책이 읽을 만한 것은 바로 이처럼 독특한 방식의 글쓰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바라바시의 통찰력과 흥미로운 과학적 사례들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즐거움이다.

과학자들은 인간 행동이 사실상 무작위적이라는 가정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게 되었고, 이 가정은 인간 행동을 연구하는 과학 분야에서 근본적인 패러다임으로 기능해왔다. 그러니까 인간의 행동은 사실상 예측 불가능하고, 일회적이고, 결정불가능하고, 예견 불가능하고, 불규칙하다는 것이다 이 가정에는 문제가 딱 하나 있다. 틀렸다는 점이다. - 바라바시, <버스트> 131쪽

용감을 넘어 대담하게 느껴지는 마지막 문장, ‘틀렸다’는 표현을 함부러 쓸 수 없지만 과학자인 바라바시는 인간 행동의 예측 불가능성을 부정한다. 몇 마디로 압축하고 요약할 수 있는 책이 될 수도 있는 이 두툼한 책을 꼼꼼하게 천천히 읽어야 하는 이유는 하나의 가설과 그것을 증명해가는 과학 이론 서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그것에 이르는 과정과 과거의 시간들이 보여주는 사실들은 독자들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또한 무의식적인 행동 방식과 패턴을 돌아보게 한다.

또한 ‘모른다’ 혹은 ‘불가능하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는 사실이 과학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뒤집어 생각해 보는 것, 이미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에 대한 관심과 관찰과 분석이 새로운 관점과 이론을 탄생시킨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복잡계 네트워크 과학의 진면목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유 방식과 관습적인 사고의 틀을 깨뜨리는 방법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 과학은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줄 수도 있다. 과학은 지금까지 그래왔고, 과학자들은 늘 ‘불가능’에 도전해 왔다. 다만 그것이 모두 과학자들만의 몫이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요구되는 과학적 사유 방식은 아닐까 싶다. ‘버스트’는 인간 행동 속에 숨겨진 법칙의 핵심이 아니라, 인간 사고의 핵심이 될 수도 있다. 그 잠재적 폭발성을 기르기 위해서 끊임없이 읽고 생각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이 책은 과학과 역사가 결합되어, 인간에 대한 가장 진보적인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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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생태보고서 - 먹고, 싸우고, 사랑하는 일에 관한 동물학적 관찰기
한나 홈스 지음, 박종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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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류가 쌓아온 지식과 학문적 성과는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일지도 모른다. 존재론적 측면에서 인간의 본질을 추구하는 형이상학적 질문부터 생태학적 관점에서 인간존재에 대한 탐구에 이르기까지 우리 자신에 대한 고민은 계속될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밝히는 일이고 무엇보다도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도전이며 현실적인 문제 해결의 출발이다.

  낯선 세상을 경험하고 싶다면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세계관을 바꿔야 한다. 세상은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서 촉발된 인간의 기원에 대한 논쟁은 과학적으로 종결된 상태지만 종교적 관점에서는 21세기에도 여전한 논란거리이다. 과학적 사고와 증명과정을 거쳐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신의 영역으로 처리하면 얼마나 완벽한가.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안일하게 사유하는 동물이 아니다. 인간의 기원에 대한 수많은 논란거리에 대해 접근하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 철학과 종교는 물론 심리학, 생물학 등이 그것이다. 과학적 접근방식이 우리에게 항상 정답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익숙한 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이기도 하다.

  데즈먼드 모리스의 『털 없는 원숭이』를 통해 우리가 받았던 충격은 외면하고 싶었던 인간의 진실 때문이었다. 동물학적 관점에서 별로 진화한 것도 없이 고도로 발달된 물질문명의 혜택 속에서 살고 있는 인간에 대해 생각해보자. ‘털 없는 원숭이’에 불과한 인간은 얼마나 나약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인가.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하기 위해서는 ‘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결국 인간은 끊임없이 뇌를 발달시켜 ‘도구의 사용’에 목숨을 건 종족이기 때문이다. 뇌가 발달하지 않았다면, 도구가 없었다면 지구는 지금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과학저술화의 대중화는 아카데미즘에 매몰된 학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저널리스트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빌 브라이슨의 명저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비롯해서 한나 홈스의 『인간생태보고서』가 그렇다.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각과 지루할 정도의 상세한 설명과 객관적 데이터에 의한 분석은 또 하나의 진지한 인류학 보고서를 탄생시켰다. 얼만큼 주목과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또 하나의 기념비적 ‘인간 사용설명서’가 탄생했다고 말할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가장 관찰하기 쉬운 대상을 선택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다. 자신의 몸과 행동 그리고 삶의 궤적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면서 인간에 대한 진지한 생태보고서를 펴낸 것이다. 최근 들어 진화심리학이 주목받았던 것도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이 책이 주목받아 마땅하다. 풍부한 실증사례와 인간과 동물의 비교, 섬세한 관찰로 인해 독자들은 다른 동물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에 대한 이해를 높이게 된다.

  저자는 인간의 모습을 세밀하게 관찰하며 객관적으로 통찰하고 새롭게 해석한다. 특히, 인류가 쌓아온 지적 유산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이 뼈아프게 들린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라는 관점에서 인간이라는 종의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하며 현재 우리의 삶을 성찰하는 자세가 독자의 공감을 얻고 우리 모두의 반성을 촉구한다.

  인간은 두 종류가 있다. 남자와 여자. 여성인 화자이자 저자의 입장에서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인간과 원숭이의 차이만큼 흥미있는 주제이다. 그래서 이 책 곳곳에는 두 종류의 인간에 대한 비교가 재미있게 기록되어 있다. 물론 생태학적 관점에서의 차이를 드러내기 위해서.

지금껏 기록된 1,154개의 문화권 중에서 오직 100여 개만이 '한 번에 한 사람'하고만 짝을 맺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모든 문화권들, 이슬람이나 모르몬교도들도 이에 포함되겠지만 이런 쪽에선 일부다처나 일처다부를 눈감아주고 있다. 비록 직접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극소수라고 해도 말이다. 요컨대 결론은 다수의 문화권에서 다중 짝짓기를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고로, 호모 사피엔스는 일부일처 동물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다. - P. 294

  영원히 결론이 나지 않을 수도 있고 비교할 수도 없는 남자와 여자의 차이. 우리는 그 커다란 간격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자. 여성은 남성을 이해하고 있는지 남성은 여성을 이해하고 있는지. 아니 그보다 우선 서로를 이해할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해 보자. 인류학적 관점에서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단순히 유전적, 생물학적 차이뿐만 아니라 인류가 살아온 삶의 과정의 차이만큼 분명한 생태학적 차이에서 기인한다. 인간을 이해하는 일은 어쩌면 서로 다른 이성에 대한 이해와 공감에서 시작되는 아닐까 싶다.

  그러나 다른 동물과 지구 환경의 측면에서 인간의 행동과 발달과정을 살펴보면 충격적이다. 저자는 이러한 인간의 습성과 욕망에 대한 경고를 잊지 않고 있다. 다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들 자신의 적나라한 생태학적 보고서를 통해 현재를 통찰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메시지일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라고 믿고 싶다.

불과 수천 년, 진화 과정에서 보면 찰나에 불과한 시간 동안 행동 습성을 완전히 바꾸고 그럼으로써 지구에 강력한 충격을 가한 종은 인간 동물이 유일하다. 이제 지구상의 모든 동물들은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중에서도 인간 동물이 받는 압박이 가장 크다. - P. 535

더욱 중요한 것은, 인간만이 자신의 본능과 싸울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행성의 다른 거주자들을 위해 스스로를 기꺼이 희생하는 태도는 우리가 가진 가장 비범한 자질이다. 이는 우리의 미래에 희망이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 P. 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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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i 2010-05-28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행성의 다른 거주자들을 위해서 스스로를 기꺼이 희생하는 태도...를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을까요?

sceptic 2010-05-30 21:15   좋아요 0 | URL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를 저자는 이타적 행동에서 찾고 그것을 '희망'이라고 부릅니다.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저는 저자의 관점에 동의했습니다.

 
21세기 다윈혁명 - 우리 사회 지성 19인이 전하는 다윈 혁명의 현장
최재천 외 18인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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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념이 가득한 자, 자신이 정의롭다고 확신하는 자들을 믿지 않는다.
오히려 의문이 가득한 자를 신뢰한다.” - 김훈

  무슨 책인지 잡지인지 알 수 없지만 소설가 김훈의 한 마디가 사무쳤다. 잘 적어 놓은 걸 보니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실천에 대해 고민이 있었나보다. 어떤 글이든 사람이든 ‘때’를 만나야 한다고 믿는다. 아무리 좋은 사람, 훌륭한 글을 읽어도 마음에 닿지 않는 때가 있고 보잘 것 없는 사소한 인연이지만 평생 함께하는 인연이 되기도 하고 평범한 한 줄의 글이 삶의 방향을 제시하기도 하는 것은 ‘언제’인가가 중요하다.

  짧은 생이지만 돌아보면 무수한 사람들과 만났고 헤어졌으며 많은 책을 읽고 잊어버렸다.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있듯 잊고 싶지 않은 문장과 구절들이 이제 기억 속에서 희미해진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는 말이 새삼스러운 이유는 나이 탓이 아니라 기억의 한계 때문일 것이다. 망각의 힘은 위대하지만 인간의 한계를 고백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잊고 사는지.

  굳은 신념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이제 겨우 150년이 흘렀기 때문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암울한 전망 때문에 다윈을 찾는 것은 아닐까? 과연 다윈이 우리에게 길을 열어준다고 믿는 이 많은 사람들의 맹목은 또 다른 종교적 광신은 아닐까? 하지만 왜 여전히 다윈을 기억해야 하는지 우리는 가만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인류에게 잊혀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죽음은 한 존재의 망각으로 완성된다고 한다면 잊혀지지 않는 사람들은 불멸의 존재가 되어 누구보다도 열심히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다윈이다. 불과 150년 전인 1859년 11월 24일 영국 런던의 존 머레이 출판사가 <종의 기원>을 내 놓는다. 초판 1,170권은 당일 매진됐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 사회에 코페르니쿠스적 충격을 가한 이 책은 여전히 살아 숨쉬는 우리들의 고전이 되었다.

  특정 시기에 특정인을 기억하는 것은 하나의 상징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상징이 만만치 않게 우리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밝혀주고 있다. 이념을 넘어 다윈의 생각은 시대의 반역이다. 있는 그대로의 사회와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고 믿는 생각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변화도 발전도 즐거움도 없는 것은 아닐까?

  평생 병마와 싸우며 어린 딸을 잃고 신의 존재마저 부정하고 싶었던 불행한 남자의 책은 작가의 삶을 투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명의 탄생이 우연이라니!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말을 뱉어버리고 싶은 다윈의 심정을 헤아려본다. 점점 지질학부터 인류학에 이르기까지 학문을 넘나들며 그 명백한 증거들 앞에서 진실을 외친 다윈은 행복했을까?

  개인의 행복과 불행을 넘어 인류의 지적 토대 자체를 뒤흔든 대지진이 벌어진다. 마르크스, 프로이트와 함께 20세기를 뒤흔든 지구인 3명 중 하나인 다윈의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말을 건네며 살아있다. 다만 우리가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지 귀를 막고 제 갈 길을 가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뿐이다. <21세기 다윈 혁명>은 신자유주의의 거센 물결과 세계화를 통한 금융위기, 민주주의의 위기와 인문학의 위기, 환경 문제와 미래 사회를 내다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최재천을 비롯한 19명의 각 분야의 교수들이 21세기의 전망을 다윈코드에 맞춘다. 하나의 키워드로 이렇게 다양한 학문 분야를 섭렵할 수 있다는 사실도 놀랍기만하다. 철학, 과학, 윤리학, 종교, 사회과학, 심리학, 법학, 정치학, 경제학, 인류학, 성, 문학, 미술, 음악, 지질학, 환경, 의학, 공학, 복잡계과학이 그것이다.

  다윈 탄생 200주년, <종의 기원> 출판 150주년을 맞은 올 해 기념식처럼 출간된 이 책은 최재천의 기획과 주도로 이루어졌다. 제목만 들어도 토할 것 같은 쓰레기 신문에 연재되었지만 김지하와 박홍을 들러리 세우는 신문에 실렸던 모든 글이 다 나쁠 수는 없다. 다윈을 통한 지식 백화점을 둘러본 느낌이다. 새로운 미래 사회에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각 분야에서 다윈은 신선한 자극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학문을 통섭하는 다윈의 힘은 단순해서 아름다운 진화이론에서 나온다.

  그것은 고정 불변의 진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며 언제 어디서든 행복하고 즐겁게 춤출 수 있는 혁명을 노래하고 있는 듯하다. 변화와 새로움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이 책도 다윈도 무의미하다. 중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아니라 새로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을 따라 뛸 수 있는 체력과 열정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다윈보다 다윈의 생각이 낳은 결과와 여전히 창조론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을 함께 생각했다. 진리는 각자 마음 속에 간직하면 그뿐이다. 다만 변하지 않는 진리가 존재한다고 믿는 생각조차 영원히 변하지 않을 수 있을지 그것이 궁금할 따름이다.


090929-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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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없는 원숭이 - 동물학적 인간론
데즈먼드 모리스 지음, 김석희 옮김 / 문예춘추(네모북)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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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옷 입는 원숭이들은 오늘도 안녕하신가? 인간을 비하하고 조롱하는 말로 들리는 이 인사가 흑인들의 “What's up?"처럼 지구 인류 문명에 대한 통렬한 풍자로 들릴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은 지나친 비관주의일까?

  어떤 어려움과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생존해 왔으며 진화하고 있다는 믿음은 굳건하다. 교에 기대든 과학기술에 의존하든 이 믿음은 영원히 유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구의 역사에서 인간의 역사를 돌아보면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잠시 빌려 쓰는 행성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못하는 종족이 멸종하지 않고 지속되리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193종의 원숭이와 유인원 가운데 유일하게 털이 없는 원숭이인 인간에 대한 본질은 무엇일까?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불가능하다고 전제한다면 데즈먼드 모리스의 <털없는 원숭이>는 인간에 대한 주관적 해석에 불과하다. 그러나 동물학이라는 학문적 관점에서 인간을 하나의 동물로 간주하고 관찰하자면 문명사에서 위치를 지워버려야 한다.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관점을 가지고서는 이 책을 읽을 필요조차 없다.

  결국, 언어를 사용하며 정교한 손을 사용할 줄 알며 이성이 발달했다는 몇 가지 특성을 제외하고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털없는 원숭이에 불과하다는 평가는 정확해 보인다. 1967년에 출판될 당시의 논란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을 만하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 자체가 인간에 대한 모독이며 신성 모독이라는 평가는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인간의 존엄성을 스스로 무너뜨린 것 같은 한 동물학자의 도발적 발언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우리들의 본질이다.

  21세기에 <털없는 원숭이>를 털없는 원숭이는 숭고함을 느낀다. 아무리 미사여구와 화려한 수사로 포장해도 인간은 한 마리 원숭이에 불과하다. 본능에 내재한 숨겨진 동물적 속성들은 당연한 것이면서도 충격적인 사실들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우리는 숲에서 도대체 몇 발짝이나 벗어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외계인이 존재한다면 인간에 대한 필독서 1위에 오를 만하다. 지금까지 인간의 영혼 혹은 지적 영역에서 다루어진 우리들의 본질이 여지없이 무너진다. 동물학적 인간론은 너무나 적나라하고 솔직하며 기발하고 자극적이다. 독창적인 관점과 놀랄만한 호기심으로 인간을 관찰하고 있는 듯 한 이 책은 비범한 종인 인간의 모든 것을 해부한다.

  인간의 편견은 무섭다. 문화와 종교, 관습과 규범들에 의해 사회가 유지된다고 하지만 비판적 관점 없이 살다보면 털 있는 원숭이들보다 못한 삶을 살게 된다. 저자는 편견이라는 거인의 잠을 깨운다. 인간 본성에 대한 새로운 고찰을 시도하는 용기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놀랍기만 하다. 무자비한 진보를 외치며 친척 동물들을 모조리 파괴하고 심지어 같은 인간끼리도 이유 없이 학살하는 유일한 종에 대한 반성은 이 책 영역 밖의 일이지만 생각의 갈피는 끝없이 뻗어나간다.

  기원, 짝짓기, 기르기, 모험심, 싸움, 먹기, 몸손질, 다른 동물들과의 관계 등 전체 8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권 <인간 동물원>과 3권 <친교 행동> 등 3부작으로 마무리 된 이 시리즈는 철저하게 인간을 동물의 관점에서 파악하고 있다는 또 다른 한계를 지닌다. 하지만 그 내용과 관점은 인간에 대해 고찰한 어떤 책보다 그 한계를 뛰고 넘고 있다.

  지구의 역사를 12시간으로 본다면 인류의 역사는 11시 59분에 시작됐다는 비유는 우리들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짧은 시간동안 그만큼 비약적으로 진화한 인간에 대한 고찰은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어떤 분야에서 어떤 관점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최근 진화생물학에 대한 관심으로 데이비드 버스의 <욕망의 진화>라는 걸출한 역서를 만난 적이 있지만 이 책을 놓쳤더라면 크게 후회할 뻔했다.

  현대 사회의 복잡한 관계와 긴장감 속에서 인간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고 싶은 사람은 천천히 이 책의 책장을 넘겨보아야 할 것이다. 심리학에 대한 관심만큼 진화론의 관점에서 인간의 본질적인 측면에 대한 호기심은 지속될 것이다. 보다 솔직하고 다양한 관점의 책들이 여럿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의 내용만큼 직접적이고 정확하지는 않을 것이다.

  명불허전名不虛傳.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인정받은 책들은 헛된 이름만을 전하는 법이 없다. 수많은 책들 속에서 옥석을 가리고 탁월한 저서들을 골라내고 소화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할 수가 없다. 쉽지 않고 만만치 않지만 안목은 저절로 생기지 않고 읽는다고 모두 내것이 되지는 않는다. 왜, 어떻게, 무엇을 읽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본다.

  한 마리 털 없는 원숭이는 오늘도 스스로가 원숭이인 줄도 모르고 꾸역꾸역 뭔가 머릿속에 집어넣기 위해 책장을 넘기고 있으며 죽음의 길로 걸어가는 그 허망한 생이 지속되고 있다. 시니컬한 비관주의로 인도하는 책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 이 책을 읽고 난 아주 사적인 상념일 뿐이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아주 좁은 관계들을 돌아보고 주변의 모든 인간들을 털 없는 원숭이의 관점으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있다.

우리에게는 다행히도 어린 시절의 창의성과 호기심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어른들이 많다. 이들이야말로 인류가 계속 진보하고 팽창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람들이다. - P.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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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면? 없다면! 생각이 자라는 나무 12
꿈꾸는과학.정재승 지음, 정훈이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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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고 꿈은 현실이 된다는 말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하지만 그 실천적 동력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비행기보다 ‘이카루스의 날개’가 먼저였고, 잠수함보다 ‘해저 2만리’가 먼저 쓰였다. 상상은 창조의 원동력이고 행동으로 옮겨졌을 때 큰 힘을 발휘된다는 사실은 우리는 과학을 통해 확인해 왔다. 예술적 상상력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력과 결합될 때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현실에 대한 비판적 상상력은 미래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몽사이(夢-sci)'라는 이름으로 ‘꿈꾸는 과학’을 실천하는 모임이 그간의 결과물을 책으로 묶었다. <과학콘서트>를 시작으로 과학의 대중화에 열중하고 있는 정재승이 이끄는 미래의 창조적 과학그룹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이 프로젝트팀은 즐거움으로 가득하다. 상상하는 모든 것은 과학적 토론을 통해 이론적으로 점검된다. 얼마나 행복한 상상들인가? 놀이와 상상력은 과학의 무한한 자양분을 제공한다. 딱딱하고 어려운 이론이 아니라 기본적인 원리와 합리적 사고를 통해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러한 이유를 찾아간다.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가능한 상상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이 책에는 그러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말도 안되는 상상,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유쾌하고 웃음 가득한 여행이다. 하늘에서 주스비가 내린다면? <찰리와 초콜릿 공장>처럼 어린시절 누구나 한번쯤 상상했던 이야기이다. 눈이 아니라 빵이나 떡가루가 내리고 비대신 하늘에서 주스가 쏟아지면 어떨까? 과학적으로 그것이 가능한 것인지 확인하고 그에 따른 문제점을 점검한다. 현재 과학수준에서 어떤 원리로 그것이 가능한지 점검하는 과정은 토론이 아니라 상상의 향연이다.

  꿈을 캠코더로 찍을 있고, 개가 입에서 불을 뿜는다는 생각은 기가 막히다. 사람에게 뿔이 나고 입이 배꼽 옆에 붙어 있다면 어떨까. 혀가 두배로 길어지고 손가락이 없어진다면 인간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방귀에 색깔이 있고 아기가 나무에서 열리는 상상은 장난스럽기까지 하다. 배낭로켓을 타고 날아다니고, 태양이 두 개인 세상이지만 밤에는 가로등이 없다. 기발하고 엉뚱하고 희한하며 놀라운 상상력은 롤러코스트처럼 정신이 없다.

  마치 만화책을 보듯 황당하지만 도대체 우리가 할 수 없는 상상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듯 하다. 젊은 과학도들과 이런 놀이를 즐기고 있는 저자가 부럽기만 하다. 이 사람들이 어디 할 일이 없고 시간이 남아돌겠는가? 도대체 흥분되고 재밌는 일이 아니라면 우리의 삶은 무엇으로 가득해야 할까라고 묻는 것 같은 이들의 상상력은 분명 미래를 위한 디딤돌이 되리라 믿는다.

  아무리 불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던 생각도 끝없는 도전과 열망으로 현실이 된다. 우리는 그 과정을 과학의 발전이라 불렀고 창조적 상상력이라 명명했다. 이 책은 수많은 청소년들에게 즐거움과 재미를 선사할 것이라고 믿는다. 영어 단어 하나 수학 공식 하나를 외우고 1점을 위해 목숨 거는 공부가 아니라 영혼을 다해 즐기고 행복해지는 공부가 가능한 방법은 이런 방법으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저자의 작지만 위대한 실천과 노력의 결실은 눈에 보이지 않을 지도 모른다. 먼 훗날 우리의 미래에 조금씩 나타날 것이라 믿는다. 이공계 대학생들의 상상 프로젝트는 지속되어야 한다.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적 상상력은 인간을 위한 이기적 욕망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기 위한 고민들로 가득할 것이라는 희망이라고 믿고 싶다.

  글쓰기 공동체로 독서와 토론을 통해 일궈낸 결과물들이라는 데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모든 공부의 마지막은 글쓰기이다. 과학을 대중화시켜 인간의 오만함을 자랑하고 과학이 지배하는 세상을 건설하겠다는 목적이 아니라 ‘자연의 경이로움과 이를 밝혀내는 과학의 즐거움을 세상 모든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는 것’이 공동체의 목표라는 데 누가 반대할 것인가.

  보다 열심히 고민하고 토론하고 글쓰는 과정이 자연과 더불어 공존할 수 있는 인간을 위한 과학이 되길 바랄 뿐이다.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한 세계로 떠나는 모든 사람들의 생각을 모으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확인한다. 과학이 아니라 다른 주제와 목적들로 실천하는 공동체도 생겨나고 책읽고 토론하며 함께 나누는 즐거움이 배가 되는 자생적 공부 모임들이 늘어가는 상상을 해본다.

  어떻게 사느냐는 결국 무엇을 위한 과정일 수도 있다. 결과가 목적이 아닐 수 있는 삶이라면 얼마나 즐거운가. 정재승과 ‘몽사이’의 행복한 상상여행이 현실이 될 때까지 흥미진진한 놀이를 지켜보고 싶다. 아니 나도 과학이 아닌 그 무엇으로라도 즐거운 공동체에 참여하고 싶다. 한 번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080909-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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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9 22: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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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1 23: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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