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소 -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작지만 강력한 이야기
필립 볼 지음, 고은주 옮김 / 휴머니스트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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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발견은 각 개인의 동기와 능력, 가끔은 특이한 성격에 좌우된다. 원소의 발견에는 통찰력뿐 아니라 결단력, 상상력, 야심이 필요하다. 물론 행운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 8쪽

거시적 관점으로 밤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상상력은 무한하다. 코스모스의 세계에 대한 확장적 사고력은 인간을 우주로 보냈다. 반면 미시적 관점은 세상의 근본에 관심을 기울인다. 만물의 근원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한 인류의 생각은 철학적 고민에서 출발해서 이제 첨단과학의 영역이 되었다. 나와 세계를 미분하면 무엇이 남을까.

고교 졸업 후 처음 보는 주기율표는 흑백사진을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 원자 번호 30번 이후의 원소들은 외계어다. 비주얼 히스토리를 표방한 『원소』는 세상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방식을 제시한다. 원소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가장 작고 원초적인 물질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의 역사는 단순한 흥미를 넘어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인간의 역사는 질문의 역사다. ‘왜’ 그런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만물은 유전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 거라는 희망 때문이었을까. 수많은 과학자들은 무엇을 바라 한평생을 그 작고 단단한 세계에 몰입했을까.

만물의 근원을 찾아 떠난 여행은 그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연금술로 이어졌고 전기로 분해한 원소에서 선 스펙트럼, 인간이 원소를 만드는 단계로 발전해왔다. 기초과학은 문명의 토대를 이루며 수많은 분야에 응용되어 인간의 삶을 혁명적으로 변화시켰다. 건축, 의학뿐 아니라 핵전쟁에 이르기까지 화학의 역할과 기능은 일일이 나열할 필요도 없다. 필립 볼은 원소의 사회적 의미와 철학적 접근을 배제한다. 철저하게 원소의 ‘역사’에 집중한다. 고대 철학자부터 최근의 사례까지 꼼꼼하게 점검하면서 객관적 사실들을 설명한다. 문명발달을 이끈 구리, 금, 은, 철에서 시작해서 주기율표의 마지막 줄 테네신, 오가네손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원소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책은 과학 이론도 실험 도구도 필요 없다. 주기율표를 암기해도 소용없고 실생활에 응용할만한 정도와도 무관하다. 원소 하나하나를 앞세워 그것이 발견된 경위와 인류에 미친 영향을 살핀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는 궁극의 미시세계를 통해 우리는 세상을 또 다른 눈으로 살펴볼 수 있다. 작지만 아름답고 볼 수 없지만 느낄 수 있는 원소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이 아테네에 아카데미아를 세운 건 기원전 380년이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우리는 앎의 세계를 향해 거친 파도를 헤치며 항해를 계속했다. 눈부신 속도로 발전하는 현대 과학을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사는 현실의 어제를 살피면 겸손해진다. 한없이 낮은 자세로 세상을 살필 수 있다면 외부 세계를 조금 다른 눈으로 볼 수 있다. 각 장에 소개된 과학과 문명사 연표도 눈에 띈다.

초고속 인터넷 시대의 시초가 됐을 해저 케이블을 깔아 최초의 대서양 횡단 전신을 주고받은 건 1858년의 일이다. 자전거가 유럽과 북아메리카 전역에서 유행하며 급증한 시기는 1890년경이다. 먼 과거에서 최근까지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의 역사는 생각보다 짧고 또 생각보다 아득하다. 아주 잠깐 세상을 사는 우리가 알고 경험할 수 있는 지식과 정보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언제나 그렇듯 정확하고 분명한 세계가 주는 안도감은 불확실한 미래를 사는 우리에게 다른 방식의 위로를 건넨다. 이치에 맞는 생각은 합의하기 힘든 수많은 인간에게 과학적 사고의 중요성을 깨우친다. 아주 작고 아름다운 원소의 역사를 통해 지금의 나를 돌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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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과학자의 사고법 - 더 나은 선택을 위한 통계학적 통찰의 힘
김용대 지음 / 김영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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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적 성취와 대중적 글쓰기는 비례하지 않는다. 한 분야에 애정을 갖고 꾸준하게 몰입한 사람에게 느껴지는 아우라는 스스로 포장하거나 자랑하지 않아도 저절로 드러난다. 어눌하지만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꾹꾹 눌러쓴 글들은 독자도 무겁게 받아들이고 가슴에 담는다. 감상에 치우쳐 호들갑을 떨고 달달한 설탕만 듬뿍 뿌려 차린 보기 좋은 다과와 차이가 난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지만 특히 과학은 읽을만한(?) 읽고 싶은(?) 책이 많지 않다.

 

전문 지식을 늘어놓은 책은 대학교재로 쓰이거나 연구성과의 정리에 불과하다. 그것이 갖는 의미와 그 과정에서 길어 올린 생각, 그것이 타인과 사회에 미칠 영향과 유용성을 찬찬히 설명하는 책은 만나기 쉽지 않다. 더구나 국내 과학 서적은 아쉬움이 더 많다. 그런 면에서 김용대의 데이터 과학자의 사고법은 주목할만하다. 흥미로운 사례 중심의 서술로 일반 독자에게 어필하고 실제 우리 삶에 적용 가능성을 설명한다. 데이터과학이 무엇인지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하는데 그치지 않고 미래 사회를 전망하는데 도움을 준다. 또한,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는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 시대를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데이터과학의 목적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합리적 의사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즉 데이터과학은 데이터합리적 의사결정이라는 2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합리적 의사결정은 인간의 진화과정에서 결여된, 아니 인간에게 가장 부족한 DNA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타고난 본능에 반하는 합리성, 논리적 사고, 이성적 판단 능력은 후천적 노력에 의해 기를 수밖에 없다. 이를 돕는 보조 장치가 통계다. 숫자 없는 통계학을 읽어내는 안목이 바로 데이터 리터러시다.

 

우리는 평균의 함정, 표준편차의 의미, 일상시험의 과정, 인공지능의 부작용 등 골치 아픈 제목으로 가득하지만 이 책에는 숫자나 통계 공식과 이론이 등장하지 않는다. 데이터과학이라는 바탕 그림 위에 펼쳐진 인간의 삶과 세상의 작동원리가 퍼즐처럼 놓여 있을 뿐이다. 개별적 존재로서 한 인간이 자신의 사고 과정을 살피고 타인과의 관계를 조망하며 세계를 탐구하는 능력은 저절로 길러지지 않는다. 허명을 떨치고 세속적 성공을 거두는 일도 중요하지만 독서의 본질은 그 이면에 숨은그림찾기와 비슷하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유리의 성이라고 해서 그림자의 빛깔이 다르지 않다. 데이터과학은 찬란한 희망만큼 인간의 삶에 짙은 그늘을 만들 터. 행간에 숨은 위험성과 우려를 읽어내는 건 아마도 독자의 몫이 아닐까 싶다.

 

D = I + N

D는 데이터Data, I는 정보Information, N은 잡음Noise

 

데이터는 결국 세상의 넘치는 정보에서 잡음을 제거한 결과물이라는 설명이 눈길을 끈다. 그러니까 데이터는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과학이다. 우리는 정보와 잡음을 정확하게 걸러낼 수 있을까. 그 기준과 차이는 무엇일까. 매일 쏟아지는 뉴스부터 사건 사고뿐 아니라 일상에서 들려오는 상품광고에서 지인들의 가십에 이르기까지 정보와 잡음은 구별조차 힘들다. 데이터 과학 이전에 논리적 사고와 합리적 판단이 우선이다. 이성을 가진 존재로서 세상을 사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자기만의 정답을 외치고 언제나 진리를 외치며 정확히 선악을 구분하는 태도는 오만이다. 아니 그걸 인정하는 태도만이라도 갖출 수 있다면 다행한 일이다.

 

코로나 시대의 백신부터 상관관계와 인과관계에 대한 오해까지 다양한 주제와 내용으로 가득한 이 책은 데이터과학자의 사고법이 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지 웅변한다. 무엇을 생각하는가. 아니, 어떻게 생각하는가. 대체로 현실은 과정과 태도보다 목적과 결과를 중시한다. 미시적이고 단기적인 안목은 전체를 통찰하는 눈을 가린다. 어쩌면, 데이터과학은 지금, 여기가 아니라 저기 멀리 내일을 향한 손가락이다. 과학적 사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법하다.

 

세상에는 놀라운 사건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도 알 수 있고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다는 것도 데이터과학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의견을 잘 절충하면 훨씬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것도 데이터과학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데이터과학을 이해하면 상대방을 이해하는 능력이 높아집니다. 일반인이 데이터과학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데이터과학의 수준이 올라갈수록 사회는 선진화됩니다. - 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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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과학의 목적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합리적 의사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즉 데이터과학은 데이터합리적 의사결정이라는 2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16

 

야구통계학자로 명성을 쌓고 미국 대선 예측으로 유명해진 네이트 실버Nate Silver는 그의 책 신호와 소음에서 정보를 신호로, 잡음을 소음으로 표현합니다. 데이터 자체는 정보가 아니며 데이터에서 잡음을 제거해야 정보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 49

 

D = I + N

D는 데이터Data, I는 정보Information, N은 잡음Noise

 

요약본능은 생존을 위해 타고나는 본능으로 시작해서 후천적 교육으로 강화되고 있습니다. - 63

 

앙상블 방버론에는 매우 흥미롭고 이해하기 어려운 과학적 현상이 숨어 있습니다. 앙상블으 예측 성능을 높이는 데에는 개별 예측 방법의 정확성보다 다양성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 주어진 문제에 대해 모두 비슷한 답을 주는, 성능이 우수한 10개의 예측 방법보다 성능 은 좀 떨어지지만 다양한 답을 제공하는 10개의 예측 방법이 앙상블에는 더 효과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인간 사회에 적용하면 비슷한 생각을 하는 우수한 인재 10명보다 다양한 의견을 내는 평범한 10명의 의견이 훨씬 유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앙상블 방법은 사회의 발전에는 효율성보다 다양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 141

 

빅데이터는 현재 4차 산업혁명의 최첨단 분야에서 엄청난 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검색시장을 휩쓸고 있으며, 무인자동차를 시작했고, 유튜브로 미디어시장의 혁명을 이끌고 있는 기업인 구글은 빅데이터의 창시자이자 리더입니다. 검색 서비스와 유튜브 콘텐츠 추천은 빅데이터의 대표적인 결과물입니다. - 173

 

주어진 정보에 대한 진위 여부를 알기 위해서는 결과 자체뿐 아니라 결과를 얻는 과정까지 살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데이터 자체가 문제일 수 있습니다. - 179

 

빅데이터로부터 찾아내는 새롭고 유용한 지식이 빅데이터의 가치를 결정합니다. 여기서 새로운정보와 유용한정보는 서로 대립하는 개념입니다. 대체로 새로운 정보는 유용성이 떨어지고 유용한 정보인 경우 이미 알려진 정보인 경우가 많습니다. - 180

 

1956년에 개최된 다트머스 학회Dartmouth Conference에서 존 매사키John McCarthy가 이 연구 분야의 이름을 인공지능’AI, Artficial Intelligence이라고 최초로 명명해서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습니다. - 330

 

인공지능 번역 알고리즘은 생각보다 너무 단순합니다. 인간이 사용하는 거의 모든 문장을 숫자 700개의 조합으로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인간이 사용하는 문장이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문장은 달라도 의미가 비슷해서 생기는 현상일 수 있습니다. 언어학자도 이 현상을 보며 놀랐습니다. 인공지능이 단순히 인간의 지능을 자동화하는 것을 넘어서서 인간도 모르는 인간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알려주는 시대가 왔습니다. - 359

 

데이터과학으로 나오는 모든 결론을 그대로 믿으면 안 됩니다. 데이터에 기반하든 논리로 추론하든, 모든 판단에는 오류가 있기 마련입니다. 완벽한 판단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1931년 독일의 수학자 괴델에 의해서 증명되었고, ‘불완전성 정리’Theory of Incompleteness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떠한 골리 체계도 증명할 수 없는 참인 명제가 항상 존재하며, 따라서 스스로 모순성이 없음에 대한 증명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 자신이 한 증명이 맞았는지를 자신이 증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 380

 

세상에는 놀라운 사건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도 알 수 있고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다는 것도 데이터과학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의견을 잘 절충하면 훨씬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것도 데이터과학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데이터과학을 이해하면 상대방을 이해하는 능력이 높아집니다. 일반인이 데이터과학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데이터과학의 수준이 올라갈수록 사회는 선진화됩니다. - 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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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피엔스와 과학적 사고의 역사 - 돌도끼에서 양자혁명까지
레너드 믈로디노프 지음, 조현욱 옮김 / 까치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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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려는 욕망과 능력을 함께 가진 유일한 존재이다. 그것이 우리를 다른 동물보다 돋보이게 만드는 가장 큰 재능이다. 그 덕분에 생쥐와 기니피그가 우리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들을 연구한다. 20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 순응하는 인간과 저항하는 인간, 나서는 자와 숨는 자. 지키는 사람과 깨트리는 사람, 생각하는 인간과 행동하는 인간 , 머리가 큰 사람과 가슴이 큰 사람, 솔직한 자와 가식적인 자, 변하는 인간과 고집스런 인간, 앞장서는 사람과 뒤처지는 사람, 살려는 자와 죽으려는 자…….

 

인류의 역사는 호모 사피엔스의 지난한 변화의 과정이었다. 제아무리 젠체하는 인간이라도 숭고한 신의 형상을 닮은 게 아니라 한낱 털 없는 원숭이에 불과하다는 자명한 진리 앞에선 미진微塵한 존재에 불과하다.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의 호모 사피엔스와 과학적 사고의 역사는 과학사의 눈으로 바라본 인류지성의 발달사로 읽힌다. 인간은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물질문명을 발전시켜 왔는가에 대한 질문 자체가 놀랍다. 개인적인 취향이겠으나 이렇게 근본적이고 원론적인 호기심에 답하는 책이 좋다. 이 질문들은 대부분 답이 없거나 아직 밝혀지지 않았거나 너무 복합적이어서 정답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부단히 대답 없는 질문을 던지며 호기심을 탐구해왔다. 구원은 신의 몫이나 자연 질서에 답이 신의 영역을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과학기술은 눈부시게 발달한다. 이 책은 특이하게도 인간과 세상 즉, 자연과 물질 그리고 생명에 관한 철학적 질문으로 시작해서 최첨단 과학에 도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과학사이며 인류사이고 문명사이며 철학사에 해당하는 거대한 빅히스토리.

 

저자의 노고와 집중력에 경의를 표하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의 원제인 ‘THE UPRIGHT THINKERS’는 기나긴 한글판 제목과 무관하게 이 책의 성격을 간명하게 드러낸다. 좋은 책은 간명한 제목과 적절한 부제가 뒤따른다. 상당한 분량의 과학책을 마치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읽은 이유는 당연히 작가의 스토리텔링 능력에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하이젠베르크까지 인간의 역사에서 과학적 사고가 어떻게 발전해왔는가? 사회적 상황, 문화적 전통, 개인적 성향은 물론 종교의 교리와의 갈등은 무엇이었을까?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혁명적 발상의 전환과 혁신적 사고는 어떤 조건에서 왜 일어났을까? 이 책은 과학자의 생애는 물론 시대별 과학계의 이슈를 통해 그 가능 조건을 제시한다. 개인의 능력과 과제에 대한 몰입 정도는 물론 개인적 탄생 배경, 집안의 재력, 시대상황과 사회적 요구가 결합되어 놀랄만한 과학적 발견통찰이 증명된다.

 

이 책은 인간의 특성과 호기심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 이야기가 문화, 문명, 이성을 거쳐 과학적 사고의 토대를 다지고 보이지 않는 영역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놀랄 만큼 탄탄한 구성과 사실에 대한 고증 뿐 아니라 과학에 대한 이슈를 누구나 알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하는 능력은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의 능력이다. 세계사의 새로운 서술방식으로 유발하라리의 사피엔스가 있다면 이 작가는 과학계의 유발 하라리다.

 

이 책이 무엇보다 흥미를 끈 이유는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의 창의성에 대한 꾸준한 관심이다. 발상의 전환을 통해 과학계의 이론뿐 아니라 인류의 삶을 뒤흔든 과학자들, 과학적 발견과 발명 뒤에는 고정된 틀을 깨려는 개인의 노력과 기질, 꾸준하고 끊임없는 도전정신, 시대적 요구와 사회적 인정이 함께한다. 각 시대마다 명멸했던 천재적인 과학자들은 사실 천재가 아니라 엉뚱한 호기심과 괴팍한 발상, 남들과 다른 상상력을 갖춘 사회 부적응자들이 많았다.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지 않으면 관습적 사고로 해결되지 않았던 그 많은 과학적 난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흔히 부모님 말씀 잘 들어라, 학교가면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 어른이 얘기할 땐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남들은 바보라서 그런 말과 행동을 하지 않겠느냐, 어디를 가든 중간만 해라(특히 군대에서), 모난 돌이 정 맞는다, 튀지 마라 좋은 게 좋은 거다와 같은 삶의 지혜를 전수받는다. 그러나 과학 혁명은 이런 말들에 정면으로 반박한 사람들에 의해 일어났다. 저자는 이 과정을 상세하고도 알기 쉽게 풀어낸다. 이론 물리학자의 말빨과 글 솜씨가 탁월했기 때문에 이렇게 훌륭한 책이 만들어졌으리라.

 

과학뿐만 아니라 철학사에 대한 이해와 흐름 역사의 변천과정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 이 책 곳곳에 녹아있다. 어떤 과학자의 생애를 요약할 때도, 과학적 성과와 이론을 설명할 때도 균형감을 잃지 않고 전후좌우 맥락을 잘 살핀다. 세상에는 글을 잘 쓰는 사람과 못 쓰는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생각이 깊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 뿐이다. 전공, 직업과 무관하게 깊이 고민하고 넓게 사유하며 자기만의 길을 걸어온 사람들의 책에서는 향이 난다. 시류에 영합하고, 트렌드를 쫓으며, 팔기 위해 쓴 책은 비린내가 난다. 그러나 이 책은 말할 수 없이 은은한 향으로 과학책을 읽어야하는 이유를 보이지 않게 설득하는 힘이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인간 지식의 진보는, 세상을 아주 약간 다른 방식으로 볼 능력이 있던 사람들이 했던 공상이 계속 이어진 덕분에 가능했다. - 404

 

집안은 부유하고 저명했지만 찰스(안철수 아니다-.-;;)는 학업성적이 나빴으며 학교를 혐오했다. 그는 판에 박힌 학습에 대한 나쁜 기억을 가지고 있으며 특별한 재능이 없었다.”는 평가를 받은 다윈은 학교 부적응, 학계의 비주류, 사회적 고립자였다. 당신이 어떤 자리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든 성공을 향한 불나방이 아니라면, 돈과 권력에 올인한 사람이 아니라면 나름대로, 각자의 방식의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음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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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려는 욕망과 능력을 함께 가진 유일한 존재이다. 그것이 우리를 다른 동물보다 돋보이게 만드는 가장 큰 재능이다. 그 덕분에 생쥐와 기니피그가 우리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들을 연구한다. 20

 

질문을 제기하는 행위는 우리 종에게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인류가 사용하는 언어들에는 보편적인 지표가 있다. 모든 언어는 성조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막론하고 질문을 할 때, 뒷부분의 억양이 비슷하게 높아진다. 일부 종교에서는 의문 제기를 불안의 최고 형태라고 본다. 과학과 산업분야에서 제대로 된 질문을 제기하는 능력은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재능일 것이다. - 36

 

1903년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자신의 학생에게 해준 조언은 과학이나 시 모두에 진실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네 마음속에서 해결되지 않은 모든 것에 대해서 인내심을 갖지라. 그리고 그 의문들을 사랑하려고 노력하라.” “그 의문을 품고 살아라.”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은 올바른 질문을 제기하는 능력이다. - 98

 

과학의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언어로 수학을 사용하도록 처음으로 인류에게 도움을 준 사람은 피타고라스(570년경~490년경 기원전)라고 전해진다. 그는 그리스 수학의 창시자이며 철학(philosophy)”이라는 용어의 발명자이며 전 세계 중학생들의 저주의 대상이기도 하다. a 의 의미를 배우느라 휴대전화 채팅을 오랫동안 중단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 100

 

탈레스는 자연이 질서 있는 규칙을 따른다고 말했지만 피타고라스는 한발 더 나아가서 자연이 수학적 규칙을 따른다고 단언했다. 우주의 근본적인 진실은 수학법칙이라고 그는 설법했다. 숫자는 실재의 본질이라고 피타고라스 학파는 믿었다. - 102

 

아리스토텔레스의 해석의 특징은 목적을 찾는다는 점이다. 이 점은 그 이후 인류의 사상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탓에 그는 기독교 철학자들에게 대대로 사랑을 받게 되지만 과학의 진보는 거의 2,000년 동안 방해를 받았다. 목적주의는 오늘날 우리의 연구를 이끄는 과학의 강력한 원칙들과 양립하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하다. 두 개의 당구공이 충돌하면 그 다음 일어나는 일을 결정하는 것은 뉴턴이 처음으로 제시한 법칙이지 그 뒤에 숨어 있는 원대한 목적이 아니다. 113

 

실용적 가치로부터 독립된 새로운 가치가 부여되자 과학적 탐구가 올바른 평가를 받게 되었다. 이윽고 진리에 대한 교회의 소유권이 잠식당했다. 성경 및 교회 전통과 경쟁관계인 진리가 나타난 것이다. 자연이 드러내는 진리 말이다. - 127

 

사실 오늘날의 6학년생은 14세기의 가장 뛰어난 과학자보다 수학에 대해서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다. 28세기의 어린이와 21세기의 과학자의 관계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 134

 

우리는 과학의 발전이 일련의 발견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지적인 거인이 비범하고도 분명한 비전을 가지고 외롭게 노력한 결과들이 하나하나 이어진 것으로 말이다. 그러나 지성의 역사에서 위대한 발견을 해낸 사람들의 비전은 분명하다기 보다는 흐릿한 경우가 더 많았으며, 그들의 업적은 친구와 동료, 그리고 운에 더 큰 빚을 지고 있었다. - 152

 

과학은 최고의 아름다움을 가진 주제이다. 과학의 진보에는 아이디어의 교차 수정이 필요하고 이는 오직 다른 창조적인 사람과의 교류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의 고립 또한 필요하다. 이 고립은 사교 활동을 하지 않으려 하거나 심지어 고립된 생활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뚜렷한 장점을 제공할 수도 있다. - 166

 

우리는 희한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좀 가질 필요가 있다. 사실 뉴턴이 그런 사람이었다. 흑사병 기간 중에 그처럼 상서로운 출발을 해놓고도 그는 잘못된 아이디어를 추구하는 데에 삶의 다음 단계의 많은 부분을 허비했다. 그의 업적을 연구한 후대의 많은 학자들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한 아이디어 말이다. - 178

 

뉴턴이 자신이 시작한 일의 끝장을 보았을때 당초 9쪽이었던 궤도를 도는 물체의 운동에 관하여3권짜리 프린키피아가 되었다. 이 책의 정식 이름은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Philosop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이다. - 195

 

창조하기 위한 투쟁에서 승리하려면 엄청난 끈기가 필요한 것이 보통이다. 심리학자들이 불굴의 투지(grit)”라고 부르는 이 속성은 인내와 완고함뿐만 아니라 열정이라는 지금까지 우리가 이 책에서 보아온 모든 인물이 가진 자질과 연관이 있다. “장기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오랜 시간 노력하는 성향이라고 정의되는 이 성향은 결혼생활에서부터 미군 특수부대에 이르는 모든 분야의 성공과 관련되어 있다. - 245

 

갈릴레오가 달의 경치를 보고 토성의 고리를 발견하고 크게 기뻐했다면, 레이우엔훅은 자신의 렌즈를 통해서 작고 기괴한 존재들의 새로운 세계를 관찰하는 데에서 똑같은 기쁨을 누렸다. - 268

 

집안은 부유하고 저명했지만 찰스는 학업성적이 나빴으며 학교를 혐오했다. 그는 판에 박힌 학습에 대한 나쁜 기억을 가지고 있으며 특별한 재능이 없었다.”고 나중에 썼다. - 273

 

무작위성이 어떤 역할을 하다는 깨달음은 과학 발전에서 중요한 이정표를 상징한다. 다윈이 발견한 메커니즘 때문에 진화는 신의 설계라는 사상, 그리고 실질적으로 그런 내용을 담고 있는 어떤 사상과도 서로 어울리기 어렵게 되었다. 물론 진화라는 개념 자체가 성서의 창조 이야기와 상반된다. 그러나 이제 다윈의 특정 이론은 아리스토텔레스 학파와 전통 기독교의 견해를 정당화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무심한 물리법칙이 아니라 목적에 의해서 사건이 전개된다는 견해 말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일상세계를 이해하는 데에 다윈이 끼친 영향은 갈릴레오와 뉴턴이 무생물계를 이해하는 데에 끼친 영향과 같다. 종교적 심문이나 고대 그리스 전통으로부터 과학을 뿌리째 결별시킨 것이다. - 282

 

1910년 철학자이자 심리학자 겸 교육학자인 존 듀이는 썼다. 비판적 사고에는 정신적 불안 및 동요 상태를 기꺼이 견뎌낼 의사가 흔히 포함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비판적 사고에 대해서만 아니라 창조적 노력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예술에서든 과학에서든 선구자들이 편안하게 지낸 예는 없다. - 305

 

과학에는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질문을 제기하는 보통 사람이 다수이며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은 잘 살아간다. 그러나 가장 성공한 연구자는 이상한 질문을 제기하는 사람인 경우가 흔하다. 아무도 생각하지 않은 질문, 혹은 다른 사람들이 흥미롭다고 보지 않는 질문들 말이다. 이런 사람들은 천재로 인정받는 시기가 오기 전까지는 이상하고 괴짜이며 심지어 미쳤을지도 모른다는 평가를 받게 마련이다. - 311

 

화학에서 종신교수 제도가 그토록 소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구에 실패해도 안전할 수 있게 보장해주는 것은 창의성을 키우는 데에 필수적이다. - 342

 

놀랍게도 당시 나는 물질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했던 덕분에 알게 된 것들이 스스로를 냉담하게 만들지 않고 오히려 나에게 힘을 주었다는 사실을 느꼈고, 그것은 내가 슬픔을 딛고 일어서서 고독감을 덜 느끼도록 도움을 주었다. 나는 어떤 더 큰 것의 일부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우리 존재의 경이로운 아름다움에 눈을 떴다. 우리 각자에게 허용된 세월이 얼마이든지 말이다. 아버지는 심지어 고등학교를 다닐 기회도 없었던 분이지만, 물질세계의 속성에 대해서 커다란 감탄과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어린 시절 거실에서 아버지와 대화할 때 그에 대한 책을 언젠가 쓰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마침내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바로 그 책을 낸다. - 402

 

어떤 의미에서 인간 지식의 진보는, 세상을 아주 약간 다른 방식으로 볼 능력이 있던 사람들이 했던 공상이 계속 이어진 덕분에 가능했다. - 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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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 - 미국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허먼 멜빌 외 지음, 한기욱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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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건 없다. 하지만 시간을 조금 오래 견뎌내는 건 말이 아니라 글이다. 글쓰기는 침묵과 수행이다. 부족한 인간이 안간힘을 쓰며 토해내는 사자후. 고전은 그런 의미에서 가장 오래 버티는 인류의 자산이다. 1830~1930년대의 미국 대표 단편소설을 엮은 필경사 바틀비는 근대와 민주주의, 청교도와 자본주의, 인디언과 흑인노예가 충돌하며 태동한 미국의 역사를 반증한다.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해서 최초의 민주적 근대국가를 이뤘으나 아메리카 원주민을 학살하고 흑인을 노예로 삼은 모순이 내재한 나라가 미국이다. 인종과 계층, 지역과 종교가 충돌하며 미국은 오늘에 이른다. 지구상에 어떤 나라보다도 복합적이고 다층적이며 생동하는 삶이 얽혀있다. 겨우 열 한편으로 미국의 국민문학 형성기부터 모더니즘이 한창이던 시기를 읽어낼 수는 없으나 이 책에 수록된 단편은 시대를 읽어내기에 충분하다.

 

너내시얼 호손의 젊은 굿맨 브라운, 에드거 앨런 포우의 검은 고양이도 인상적이지만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는 무라타 사야카의 소설 편의점 인간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작품으로 명불허전이다. 이런 인물 유형을 창조한 작가에게 경의를 표할 수밖에. 월가로 상징되는 미국 자본주의 태동기에 바틀비는 다양한 존재로 해석 가능하다. 문학적 모호성 ambiguity를 함유한 독특한 인물이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처럼 관찰자시점은 이 소설이 갖는 가장 큰 미덕 중 하나다.

 

구인광고를 보고 어느날 아침 젊은이 하나가 여름이라 문을 열어놓은 사무실 문간에 꼼짝 않고 서 있었다. 지금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창백할 정도의 단정함, 애처로운 기품, 그리고 치유할 수 없는 고독. 그가 바틀비였다. - 허먼 멜빌, 필경사 바틀비, 58

 

바틀비의 행동은 일반적이지 않다. 정상적인 패턴을 벗어난다. 역자가 몇 년을 고심했다는 “I would prefer not to”는 바틀비를 설명하는 문장이다. 한기욱은 그렇게 안하고 싶습니다라고 번역했다. 현실에 대한 거부, 관습적 사고에 대한 저항이라면 지나친 해석일까. 바틀비의 말과 행동은 독자 나름의 방식대로 받아들질 뿐이다. 당대 미국 사회를 관통하는 비판적 관점이 아니라 현대인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부조리에 대한 거부일까. 단호한 외침이 아니라 침착하고 온화한 언어는 텍스트의 의미와 다른 울림을 준다.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이고 다짐했다.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이밖에도 마크 트웨인의 캘레바래스 군의 명물, 뜀뛰는 개구리, 셔우드 앤더슨의 달걀, F. 스콧 피츠제럴드의 겨울 꿈이 인상적이다. 백 년이 훌쩍 넘은 번역된 단편임에도 장편에서 느낄 수 없는 단편의 힘을 느낄 수 있다. 19세기말~20세기초 세계사의 풍랑을 겪는 동안 미국인의 삶은 동시대 한국인의 삶과 다른 문제의식을 지녔으리라. 문화와 전통이 다르고 역사적 배경이 다르면 생각도 행동도 차이가 있다.

 

오래전에,” 그가 말했다. “오래전에 내 속에 무엇인가가 있었지만 이제 그것은 사라졌어. 이제 그것은 사라졌어, 사라졌단 말이야. 난 울 수 없어. 마음을 쓸 수도 없어. 이제 그것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야.” - F. 스콧 피츠제럴드, 겨울 꿈, 306

 

돈에 속고 사랑에 우는 평범한 사람들의 속내는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다. 이수일와 심순애 같은 신파도 있고 위대한 개츠비같은 미국판 러브스토리다 있다. 피츠제럴드는 단편 겨울 꿈에서 유사한 모티브로 현대인의 속내를 이렇게 짚어낸다. 내 속에 무언가 사라졌고 이제 그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자각을 하는 순간, 달의 뒷모습이 궁금해진다. 우주로 간 전기차 테슬라도 궁금하고 유리가가린의 소식도 듣고 싶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지켜야 할 것은 또 무언지. 먼지처럼 떠돌다 이내 사라질 나와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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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감의 기술 - 과학이 알려주는 나이 드는 것의 비밀
마크 E. 윌리엄스 지음, 김성훈 옮김 / 현암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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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사랑하려면 떠나야할 때도 있지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Blade Runner 2049, 2017)에서 릭 데커드(해리슨 포드)K(라이언 고슬링)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사랑했다면 함께 해야 한다는 이분법적 사고는 사랑하기 때문에 떠날 수밖에 없다는 신파를 비웃는다. 인공지능 시대에도 여전히 인간은 사랑그자체일 수밖에 없으니 이런 류의 영화는 계속되리라.

 

한 사람이 태어나 성장하고 늙고 죽어가는 과정은 단 한 순간도 멈춤이 없다. 모든 유기체는 성장하거나 소멸한다. 시간의 흐름은 세상만물에게 공평하다. 마크 E. 윌리엄스는 늙어감의 기술에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조망한다. 노인의학은 소아의학에 대척점에 놓인다. 이제 막 온몸이 단단해지고 성장해가는 인간과 오래된 자동차처럼 여기저기 낡고 삭아가는 인간은 차이가 많다. 늙음과 죽음의 문제는 인류의 오랜 숙제다. 그 숙제를 영생으로 치환하려는 사람도 있고 웰다잉well dying’으로 마무리하려는 사람도 있다. 철학자에겐 실존적 과제였으며 과학자에게는 극복할 수 없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이 책은 사후 세계를 다룬 책과 구별되며 죽음 그 자체를 다룬 이야기와도 다르다. 일상에서 우리가 늙음을 거부하거나 두려워한다고 해서 현실이 달라지지 않는다. “너희 젊음이 네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은 내 잘못으로 얻은 벌이 아니다.”라는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노인에 대한 혐오는 근시안적 자기혐오와 다름없다. 스무 살이 넘어가면 모든 사람은 늙어간다. 사회적으로 노년으로 분류하는 나이가 되어야 늙음에 대해 관심을 갖는 건 아니다. 죽음이 삶의 그림자인 것처럼 늙음은 청춘의 그림자다.

 

저자는 건강하게 나이 드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우리 몸이 어떻게 늙어가는지, 노화 현상의 특징은 무엇인지 알려준다. 그걸 늦추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은 추하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갖춘 사람을 그리 많이 보지 못했다. 몸의 반응, 감정의 변화를 제대로 알고 건강하게 늙어가는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이다. 단순하게 건강하게 살자는 선언적 의미가 아니라 생의 주기와 일련의 과정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태도는 자기 삶에 대한 또 다른 통찰이다.

 

메이 웨스트는 인생은 한 번뿐이다. 하지만 제대로 산다면 그 한 번으로 족하다.”고 말한다. 지겨운 하루하루도 찬란한 하루도 지나고 나면 그 뿐이다. 허무와 냉소가 아니라 조금 다른 관점을 가질 필요가 있다. 누구나 서른이 처음이며 마흔을 두 번 맞지는 않는다. 지나고 나면 50은 청춘이었음을 절감하리라. 머뭇거리지 말고 원하는 대로 선택했는지, 외면하고 포기하지 않았는지, 누구에게 기대고 주체적으로 살지 못했는지 돌아보자. 남은 시간은 조금 달라야하지 않겠는가.

 

E. M. 포스터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기가 계획한 삶을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로 목표보다 수용과 적응을 강조한다. 내려 놓지 못하면 현재를 즐길 수 없다. 나를 기다리는 삶은 결코 내가 계획한 삶이 아닐 수도 있음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한발만 떨어져 나를 보면 모든 게 덧없다. 배고플 때 먹을 밥과 졸릴 때 잠들 수 있는 집이 있으면 나머지는 사치스럽다. 그걸 해결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몸부림치지만 과정을 즐기지 못하고 결과를 알 수 없는 도박에 인생을 경우도 많다. 늙어가는 기술은 일련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방법이다. 행복한 삶은 무엇일까. 잘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독일 학자들은 노년에 생기는 독특한 스타일을 기술할 때 알터스틸Altersstil’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본질적 형태의 감소와 초월적 특성을 의미하는 단어다. 도나텔로, 미켈란젤로, 렘브란트, 고야의 후기 작품들이 이런 노년 감수성의 빼어난 사례다. 이 작품들은 인간 경험의 본질을 밝혀주고 궁극적인 영적 존재를 표현하고 있다. - 199

 

노인을 비하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모든 늙음이 추하고 재미없고 손가락질 받아 마땅한 건 아니다. ‘알터스틸이야말로 늙어가는 최고의 기술이 아닐까. 시간이 흐를수록 깊고 넓게 생각하고 타인과 세상을 인정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간디의 말대로 내일 당장 죽을 것처럼 살고,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리라.

 

의학 지식을 얻기 위해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없겠지만 과학 정보를 얻고 객관적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도 재미있다. 더불어 자기 몸을 점검하고 나이와 무관하게 건강상태와 감정 조절이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주변을 돌아보자. ‘동안을 열망하지만 아이 같은 마음과 생각은 원하지 않는다. 놀랄만한 체력, 나이를 알 수 없는 얼굴보다 그 깊이와 넓이를 헤아릴 수 없는 사유의 깊이가 간절하다. 욕심을 버리고 여유를 갖는 사람은 늙음의 기술을 아는 사람이다. 저자는 영혼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일이 궁극적으로 가장 훌륭한 기술이라는 비밀을 전한다. 그 방법은 이 책을 읽는 동안 뿐 아니라 시간이 흐르는 모든 시간에 고민해야 할 문제다. 그래야 늙음과 죽음의 공포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사람은 죽기 전 한동안, 보통은 삶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기본적인 일상생활에서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일부는 경제적 지원도 필요할 것이지만, 모든 사람에게 감정적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이런 지원을 어떻게 제공받을까? 많은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근본적인 불편함을 느낀다. 이런 기분은 죽음의 공포보다도 훨씬 강할 수 있다. 바로 의존성의 공포다. - 301

 

 

 

팝핑[popping] : 재미를 보태고_대중성

1.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이강은 역, 창비, 2012.10.05.

2. 화장(2004 28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김훈, 문학사상사, 2004.01.26.

3.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오스카 와일드, 윤희기 역, 열린책들, 2010.12.01.

 

펌핑[pumping] : 외연을 넓히며_동질성

1.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마음산책, 2004.05.01.

2. 노년, 시몬 드 보부아르, 홍상희 역, 책세상, 2002.07.10.

3. 노년에 관하여/우정에 관하여,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천병희 역, , 2005.06.30

 

점핑[jumping] : 깊이를 더해서_연계성

1. 죽음 그후, 제프리 롱, 한상석 역, 에이미팩토리, 2010.04.01.

2. 죽어가는 자의 고독, 노베르트 엘리아스, 김수정 역, 문학동네, 2012.12.10

3. 죽음이란 무엇인가, 셸리 케이건, 박세연 역, 엘도라도, 2012.11.21.

4.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데이비드 실즈, 김명남 옮김, 문학동네, 2010.03.19.

5. 죽음에 이르는 병, 키에르케고르, 임규정 역, 한길사, 2007.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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