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물었다 -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있느냐고
아나 아란치스 지음, 민승남 옮김 / 세계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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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많은 사람이 죽은 것처럼 사는 삶을 택하지만 모두가 살아 있는 상태로 죽을 권리를 갖고 있다. 그날, 나는 살아 있고 싶다."


생명이 끝나기 직전의 사람들은 다양한 증상을 보이는데, 그 증상은 고통 그 자체이다.

그런 이들에게 삶의 끝자락에 나타나는 통증을 완화시켜 존엄성을 가지고 떠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완화의료라고 한다.

안락사를 시키는 의사와는 엄연히 다르며, 오히려 안락사를 막아준다고 할 수 있다.


『죽음이 물었다』는 브라질의 한 의사가 쓴 완화의료 이야기로 죽음을 기다리는 환자들과 그 가족들을 돌보며 느끼고 성찰한 내용들을 담았다.

어떤 환자들을 만났고, 그 환자들에게 치료했던 완화치료는 무엇이며, 무엇보다 죽음이 물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저자, 아나 아란치스는 브라질 완화의료 최고 권위자로 상파울루주립대학병원에서 노인의학으로 레지던트 과정을 수련했고,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완화의료를 전공했다.

20여 년째 저작 활동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 활동을 통해 완화의료가 올바르게 인식되도록 사회에 알리는 역할을 해오고 있다.

2013년에 오래도록 금기시돼왔던 ‘죽음’이라는 주제를 전문가의 시선으로 풀어낸 TEDx 강연이 큰 호응을 얻으며 이름을 알렸고, 이후 출간된 《죽음이 물었다》가 브라질에서만 50만 부 이상 판매되고 미국, 스페인, 중국 등 전 세계 10개국에서 출간되며 글로벌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Ⅰ 나는 누구인가


내가 처음부터 꼭 하고 싶은 말은,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안다고 해서 반드시 그 사람 인생의 일부가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누군가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보지 않아도 그 과정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우리 모두 자신의 삶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 속에 존재하며, 단지 육체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으로, 행위로도 존재한다. 그리고 오로지 그 존재 안에서만 죽음은 끝이 아닐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실을 이야기하자면 죽음은 삶으로 이어지는 다리이다.

우리는 다수가 믿고 있는 '정상적인 것'을 뒤집어야만 한다.


저자가 의사로 일한 지 무려 20년이나 지났다.

대부분 의사의 길로 들어선 이들은 가족 중에 혹은 존경하는 사람들에 의사가 있거나 꿈 혹은 명예를 위해서 '의사'라는 직업을 택한다.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 병과 고통이 끊이질 않았는데, 특히 그녀의 할머니와 관련이 깊다고 한다.


말초동맥 질환으로 인해 절단 수술을 두 번이나 받은 그녀의 할머니는 긴 시간 비명과 눈물로 고통을 감내했다고 한다.

하느님께 제발 데려가달라고 애원하면서도 그녀를 교육시키고 돌봐주셨던 할머니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의 고통이 극에 달하는 날이 있었는데 혈관외과 의사 아라냐 선생님이 왕진을 오게 된다.

흰 셔츠, 반짝거리는 버클을 뽐내는 가죽 허리띠, 작은 검정색 가방 그리고 단정하고 좋은 냄새를 풍기는 선생님이었다.

다섯 살밖에 안 되었기에 매번 밖으로 쫓겨났던 그녀는 간간히 열린 문 틈으로 아라냐 선생님이 할머니께 진료하는 모습을 보곤 했다.

그 날도 그랬다.

할머니가 울부짖자 선생님은 할머니를 진심으로 위로하며 손을 잡아주었다.

아라냐 선생님이 저자의 어머니에게 새로운 치료법에 대해 알려주며 옆에 있는 저자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물었다.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의사요."

그녀에게, 아라냐 선생님은 세상에서 제일 힘세고 신비한 존재였다.


시간이 흘러 할머니는 결국 두 다리는 절단하게 되었는데, 이후 환상통을 겪어 통증은 계속되었다.

어린 저자에게는 환상통 자체가 무서웠다.

기도하고 또 기도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으니깐.

그러다 인형들의 다리를 모조리 절단하게 되었는데, 인형 로시타가 앉은뱅이로 살고자 해도 삶이 흔적을 남길 것임을 상기하기 위해 볼펜으로 수술 자국을 그려 넣는다.

일곱 살에 병원을 운영하게 된 저자, 그녀의 병원에서는 아무도 고통에 시달리지 않았다.

할머니는 그런 그녀를 보며 자신 또한 그녀의 병원에서 치료받고 싶다고 말하며 웃음지었다.

"마음이 바뀐 거니? 선생님이 될 거야?"

"둘 다 될 거예요, 할머니! 누구나 아픈 게 나으면 뭔가를 배우고 싶거든요!"

그렇게 그녀는 상파울루 대학에 들어가 의학을 배우게 된다.


"너 괴상하다."

해부학 수업, 저자가 실습용 표본들의 얼굴들을 살펴보며 저마다의 이야기를 만들자 동기는 이티 보듯 그녀를 쳐다봤다.

3학년 말에는 병력 청취를 배우게 되는데, 그 때 저자는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환자를 만나 대화를 나눌 때의 상세한 지침이 나를 안전한 길로 인도해주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그 과정이 얼마나 잘못된 길로 빠질 수 있는지 깨우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느 날, 내과 병동에서 안토니우라는 환자를 배정받게 된다.

【남성, 기혼, 알코올중독, 흡연, 자녀 두 명, 간경화, 간암, B형간염 말기】

복잡한 병력을 보고선 마음 속에선 두려움이 치솟기 시작했다.

그렇게 진료실에 들어가 그를 마주하니 수척한 몸에 배가 부풀어 올라 마치 거대한 거미를 연상케했다.

시커멓고 누렇게 뜬 피부, 얼굴에는 주름이 깊게 패여 있는 그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고 저자 또한 정중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저자는 그의 과거에 대해 자세히 물으며 면담을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안토니우의 고통 앞에서 대화하는 것이 불가능했고 간호사실에 가 담당 간호사에게 통증약을 더 줄 수 있는지 물었지만 방금 해열진통제를 줬다며 기다리라는 답변 뿐이었다.

간호사와 이야기가 통하질 않자 휴게실에 계신 교수님에게 토로했고 교수님은 저자를 크게 질책하였다.

그 순간 저자는 느꼈다. 병원에서 불치병으로 죽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예상했던 죽음과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마주할 때마다 버틸 수 없었고 결국 저자는 의대 4학년 중간쯤에 대학을 떠나게 된다.

집에만 틀어박혀 있어봤자 시간은 흐르고, 가슴 속 소명 의식은 계속 메아리쳤다.

재능이 부족해도 어떠하리. 다른 사람들처럼 모든 것에 적응하게 될지.

저자는 대학으로 돌아간 뒤 동네에 있는 산부인과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하게 되었고 1년 후 4학년 과정을 마치게 된다.


이후 그녀는 학부 선택에 큰 고민을 했지만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의 「죽음과 죽어감」을 읽고서야 답을 얻게 된다.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걸 배우겠어.'




Ⅱ 완화의료와 안온한 엔딩


스스로 돌보는 것이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진리를 발견한 저자는 그 때부터 삶이 충만해졌다고 말한다.


23세 환자 마르셀루는 대장암 진단을 받았다.

진행도 빨랐고 종양학적 치료에 반응을 보이지 않은 상태였다.

어느 금요일 저녁.

폭우가 쏟아지던 날, 그녀는 첫 방문을 하게 된다.

종양 덩어리로 인해 복부는 일그러져 있었고 방 안에는 피와 대변이 뒤섞여 마치 죽음의 냄새가 풍기는 듯했다.

환자의 눈에는 공포가 서려있고 끊임없이 고통만 내지를 뿐이었다.

비상용 가방에는 소생제가 담긴 약병뿐인지라 모르핀이 필요했지만 마르셀루의 어머니는 끝까지 집에서 돌보겠다는 약속때문에 아들을 병원에 옮기고 싶어하지 않아했다.

그렇게 네 시간 가까이 기달리니 모르핀이 도착하였고 심하게 떠는 간호조무사를 대신하여 저자가 모르핀을 투여했다.

차에 탄 그녀는 엉엉 소리내어 울었고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간호조무사는 그녀에게 마르셀루가 사망한 것 같다고 말한다.

그 날 밤, 악몽에서 깨어나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는데 거울 속에 마르셀루가 서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환각 증세를 보인 저자는 심리치료사에게 울면서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애원했고 이후 40여 일 이상을 쉬게 된다.

저자의 가장 훌륭한 재능이자 장점인 공감력으로 인해 직업적으로 가장 큰 고통에 시달렸던 것이었다.


아이러니가 아닌가?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질문들에 아직 답을 얻지 못한 상태였고, 그중 가장 고통스런 질문은 '환자들의 고통을 오롯이 느끼지 않으면서 그것을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였다.


완화의료는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과 관련된 문제에 직면한 환자와 그 가족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접근으로, 조기 진단과 정확한 평가, 그리고 통증과 기타 신체적, 심리사회적, 영적 문제의 치료를 통해 고통을 미연에 방지하고 경감시킨다. _세계보건기구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인식이 주는 고통은 죽음이 진행되면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고통은 절대적이고, 유일하며, 완전히 개인적인지라 통증의 정도는 개인마다 다른 표현과 지각과 행위의 메커니즘에 달려 있다.

임박한 죽음이 곧 삶의 의미와의 만남을 성사시키기도 하지만 그 만남 자체를 갖지 못할 수도 있다.

완화치료는 헛된 치료의 중단 가능성을 제공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환자가 겪는 신체적인 고통, 증상을 통제하기 위해, 공격적 치료의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의료진이 제공하는 확대된 돌봄이라는 실체적 현실도 포함한다.

환자 뿐만이 아니다. 환자가 중병에 걸려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면 가족 또한 병이 든다.

오죽하면 암에 걸리면 집안이 풍비박산 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완화치료는 병이 진행되어 신체적 고통이 극심해지고 의학적으로 손 쓸 수 없게 되었을 때 가장 큰 가치와 필요를 지닌다.


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본 딸이 저자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남겼었다고 한다.

완화의료는 환자와 보호자의 말에 귀 기울이고 돌봄을 베푸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능한 한 가장 숭고하고 다정한 방식으로, "그래요, 언제라도 해줄 수 있는 게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의학의 진보입니다.




완화치료는 안락사와는 전혀 다르다.

완화치료가 통증을 없애주다 보니 증상이 좋아지면 환자가 죽음을 찾아가는 일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외할아버지께서는 내가 아주 어릴 적에 돌아가셔서 외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딱 한 장면밖에 없다.

색동저고리를 입고 철퍼덕 세배를 한 후, 외할아버지 무릎에 털썩 앉아 옹알옹알거렸던 기억.

무려 세 살 때의 일이라니, 이 기억이라도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첫 손녀였기에 마냥 예뻐해주셨다고 하는데, 기억 속의 외할아버지도 매우 인자한 웃음을 지어주셨다.

외할아버지는 암으로 돌아가셨다.

처음엔 병세에 대해 정확히 알리지 않고 외할머니께서 지극정성으로 돌봐드렸다고 한다.

병세가 나아지는가 싶었는데, 외할아버지께서 본인의 병을 정확히 알고나서부턴 눈에 띄게 악화되었다고 한다.

어느 날, 엄마에게 물었다.

"외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엄청 슬펐겠다."

"슬펐지. 많이 슬펐지만, 그래도 돌아가신다는 것을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해서 그런지 슬픔을 털어내는 데 수월했었어."

그 이야기를 듣고 많은 생각이 들었었다.

인간의 생명은 한계가 있어 언젠가는 죽는다.

다만, 그 때가 되지 않았는데도 죽는 날을 받게 된다면 크나 큰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다.

외할아버지께서 정확한 병세를 끝까지 모르셨더라면 삶의 의지를 놓지 않았을까?

이미 처음부터 말기암 판정을 받으셨기에 그렇다고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예전에 외할머니께서 그런 말을 해주신 적도 있었다.

가는 사람은 말이 없다고. 다만 남는 사람들은 어찌되었든 살아야 하기에 간 사람 명복 잘 빌어주며 더더욱 열심히 사는 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지금 이 순간, 나는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네!"라고 확신있게 대답하고 싶지만 "아니오"가 먼저 떠올랐다면, 돈과 명예 등 물질적인 면이 먼저 떠올랐기에 "아니오"가 먼저 떠오른 것이다.

결국은 살아온 대로 죽는 것이기에, 삶의 진정한 의미를 되돌아보고 내게 있어서 진정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고찰해봐야 한다.


지금의 나에게 무엇보다 꼭 필요한 책이었던 것 같다.

오늘 열심히 살아내어 내일을 활기차게 맞이하고, 내일이 오늘이 되면 또 열심히 살아내어 다음 날인 내일을 또 활기차게 맞이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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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캐럴 - 반인간선언 두번째 이야기
주원규 지음 / 네오픽션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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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하나밖에 없는 쌍둥이 동생인 월우의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쌍둥이 형인 일우가 소년원에 들어가게 된다.

과연 일우는 월우의 죽음을 밝힐 수 있을 것인가.




탁자가 뒤집어졌다. 커피잔이 엎어졌고, 의자가 쓰러졌다. 동시에 대학생으로 보이는 뿔테안경을 쓴 남자 한 명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곧이어 젊은 여자들의 비명 소리가 이어졌다.


눈빛엔 살기가 가득했고 그것은 사람의 눈이 아닌 꼭 야생 동물의 눈만 같았다.

그의 이름은 주일우였다.

참 희한하게도 이렇게보면 잔인한 행동을 보이는 싸이코패스라 여길지 모르겠지만 그의 행동은 누가 보기에도 희한했다.

오히려 경찰한테 붙잡아달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마냥 경찰이 등장하니 더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다.

한편 소년원에서는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하는 최누리 그리고 백영중과 문자훈은 주일우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네가 알고 있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

-어느 정도까지요?

-네 동생 주월우가 죽었다는 거.

-단지 그것만인가요?

-아니.

-…….

-주월우가 죽은 게 사고사가 아니라는 것.

-…….

-동생이 살해당했다고 믿는다는 것.

-…….

-아닌가?


-주일우, 이러지 마.

-무슨 소리예요?

-내가 왜 이런 말 하는지 네가 더 잘알 거 아니야?

-뭘 말이에요?

-네가 이곳에 들어온 목적 말이야.

-…….

-문자훈, 백영중, 최누리…… 그 아이들을 심판하기 위해 들어온 거잖아.

-……

-아니야?


그에게는 쌍둥이 동생인 주월우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곁에는 월우가 없다.

참혹한 모습으로 물탱크 안에서 발견된 월우는 누군가에게 심하게 맞은 상태였다.

할머니와 살았던 일우, 월우 세 가족은 월우의 죽음 이후 한순간에 무너졌다.

월우가 시신으로 발견되자 할머니 또한 충격을 받아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우는 오로지 복수를 위해 소년원에 들어간 것이었다.


그러나 소년원에 들어가면 순조롭게 이루어질 복수라 생각했지만 일우의 뜻대로 흘러가진 않았다.

소년원 내에서도 폭력이 폭력을 낳는 양산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특히 교정 교사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는 인간이었다.


-넌 왜 안 짖어?

-잘못한 게 없으니까요.

-잘못한 게 없어?

-예.

……. 마지막 질문을 던짐과 동시에 한희상에 손에 쥔 쇠파이프가 주일우의 머리로 날아들었다.

……. 쇠파이프가 주일우의 머리를 강타할 때 깜짝 놀란 최누리가 외마디 비명을 지를 정도였다.

하지만 구타의 당사자 주일우는 무릎 꿇은 자세 그대로였다.

……. 5분, 10분, 시간이 흐를수록 푸르른 바닥엔 주일우의 몸에서 터져 나온 검은 핏방울들이 사방으로 번졌고, 창백할 정도로 환한 복도엔 쉼 없이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한희상의 거친 숨소리와 북을 두르리는 듯한 마찰음만 반복되었다.


이렇듯 교정 교사는 아이들의 교육을 목적으로 극악무도하고도 잔학스러운 폭행을 휘두르고 있었다.

엄청난 구타를 당했음에도 독방에 갇혀있어야만 했던 주일우는 구타하기 전의 한희상의 행동과 말을 생각해본다.

"여기서 너흴 도와줄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어. 내가 생사여탈권을 쥐었다고. 그걸 명심해."


주일우는 이곳에서만큼은 비상식이 난무하며 양호 선생의 무성의한 응급 조치와 한희상에 대한 원장 선생의 절대적 의존도를 보며 잔혹한 세계 안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괴물이 되는 것뿐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주일우는 동생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이곳, 소년원에서 괴물이 되기로 다짐한다.

과연 일우는 하나밖에 없는 쌍둥이 동생인 월우의 죽음을 낱낱히 파헤칠 수 있을까?




쌍둥이 동생 월우가 죽은 후 복수를 위해 스스로 소년원에 들어간 형 일우가 소년원 패거리와 잔혹한 대결을 펼치는 액션 스릴러로, 꼭 현실에서도 있을 것만 같아 읽는 내내 마음 졸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꼭 영화로도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 찾아보니 영화화 되었다고 한다.

개봉일인 내일 맞춰 올릴까하다가 전날 급히 올려본다.


크리스마스 캐럴

개봉 2022.12.07 |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 장르 드라마, 액션 | 러닝타임 131분

크리스마스 아침, 쌍둥이 동생 ‘월우’가 죽은 채로 발견된다. 단순 사고로 사건이 종결되자, 형 ‘일우’는 복수를 결심하고 ‘월우’와의 마지막 통화에서 들렸던 목소리를 찾아 스스로 소년원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동생을 돌봐주던 상담교사 ‘조순우’의 도움을 받으며 비밀을 숨기고 있는 ‘손환’과 자신을 없애려는 ‘문자훈’, 그리고 무자비한 힘으로 군림하는 교정교사 ‘한희상’까지 폭력에 맞서 목숨을 건 싸움을 계획하는데…


OCN에서 사이비 종교를 주제로 크게 주목받았던 드라마 『구해줘』를 만들었던 김성수 감독이 처절한 복수극을 그린 영화인데 배우 박진영이 1인 2역을 하며 쌍둥이 형제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김성수 감독은 말한다.

"일우와 월우로 대변되는 이 사회에서 소외 당한 사람들, 약자들, 피해자들이 보여지는 얼굴들이 떠올랐다. 자기 통제가 안 될 정도로 분노가 넘치는 얼굴과 웃지 않고 싶은데 웃는 이미지가 책을 덮고 생각났다. 이 사회에서 약자로 불리는 사람들, 좋은 선택지를 선택할 수 없는 사람들의 모습이라고 생각됐다. 영화를 통해 그런 이들의 이야기를 하고, 그런 모습을 보여주며 사회 속의 얼굴을 관객들과 진지하게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적 대우는 아직도 일어나고 있으며, 이 짐을 고스란히 짊어지게 되는 대상은 피해자, 약자, 소외 계층들이다.

폭행을 폭행으로 되갚을 수밖에 없는 영화적 설정이 참으로 암담했지만 현실은 영화보다 더 참담하고 암울하기에 괜스레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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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2-07 0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몇 주 후면 크리스마스 캐럴이 곳곳에!저는 지난 달 부터 줄창 듣고 있습니다 ^^

Kletos 2022-12-10 2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너무 씁쓸하더라구요.. 영화 끝나고도 한참을 앉아있었어요
 
누가 뭐라든 당신 꽃을 피워 봐요 - 2023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도서
재발견생활 지음 / 훨훨나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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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작가는 많아도, 시 한 편을 쓰로 일러스트 한 편 내는 작가는 많지 않다.

시 한 편에 위로와 공감을 받고, 시의 감성이 고스란히 녹아든 일러스트를 보고 있으면 따스함마저 느껴진다.

지치고 힘든 하루, 따스한 시 한편 어떠세요?


저자, 재발견생활은 네이버 블로그 아이디로 시와 손글씨 일러스트를 싣고 있는 블로거이다.

국문학 전공자이면서 카피라이터, 전업주부, 디자이너로 젊은 날을 보낸 그녀는 바쁜 생활 속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일상의 아름다움을, 자신의 시선으로 재발견하여 시와 손글씨 일러스트로 표현하고 있다.

재발견생활 네이버블로그 https://blog.naver.com/saengde




【누가 뭐라든 당신 꽃을 피워 봐요】


작다고 피다 만 꽃 없고

크다고 사철 피는 꽃 없어요


꽃이 예쁜 건

하나하나 다르기 때문이고


꽃 핀 모습 기쁜 건

맨땅 뚫고 일어나

비바람에 굴하지 않고

초록으로 애쓰다가

자기만의 절정 펼쳤는데

어떻게 감동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옆 꽃 눈치 보지 않고

다른 꽃 부러워하지 않는

당당한 저 꽃처럼


기다릴게요

누가 뭐라든

당신 꽃을 피워 봐요



드라마를 좋아하는 엄마는 이번에 종영된 「금수저」 또한 재미있게 보셨었다.

난 전 회차를 챙겨보진 않았고 엄마와 이야기하면서 아이스크림 먹다가 엄마 따라 마지막회를 우연히 보게 되었었는데 한 회차 보고나니 모든 내용이 다 그려졌었다.

극 중 아빠가 아들을 위해 희생하는 장면이 나왔다고 하던데, 그 아빠가 아들에 대한 마음이 이 시와 꼭 들어맞는 것 같다.

가난 때문에 몸? 영혼?을 바꾼 아들이었지만, 죽는 순간에도 아들의 결정을 이해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며 대단한 인물이라 생각했다.


주변에 날 믿고 지켜봐주는 이가 있다는 건 참으로 복받은 일이다.

나에게도 그런 이들이 있으니,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있다.

"눈치 보지 말고 당당하게 어깨 피고 행동해. 내가 옆에서 널 지켜봐 줄테니."




【사막의 장미】


어린왕자 별에서

철새 따라 날아 온 씨앗


사막에 내려앉아

코끼리 같은 욕망

삼켜 뉘어버렸네


사막이 꽃밭이 될 때까지

말라도 말라도

하염없이 뿌려준

말 없는 비 덕분에


모진 세월

마침내 꽃피웠네

사막의 장미


꽃을 모른다네

어린왕자 비 되어

찾아온 줄은


보석 같은 고마움

눈물처럼

뿌리에 남아있네



어린왕자를 몇 번이나 읽었는지 셀 수 없을 정도이다.

어렸을 때는 뭣 모르고 읽었던 동화책에 불과했는데 나이 먹을 수록 읽는 관점이 점점 달라진다.

말없이 잠수타는 날이 생길 때면 아픈 나날인 것이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괜스레 복잡해지니 더 아팠나보다.

하염없이 뿌려준 말없는 비 덕분에 피워낸 사막의 장미.

나 또한 그런 장미가 되고 싶다.




【열무김치】


땡글 탱탱

어린 무가

파랗게 살다 죽겠다는 듯

쭉쭉 뻗은 무청

땅 밖으로 내지를 때


너는

우리 어머니 손에

냉큼 잡혀

소금에 절여졌지


칼로 다듬은 무 모서리

깎아 놓은 밤 같겠다

푸른 기운 싹둑싹둑

먹기 좋게 잘렸겠다


이제 넌

내 자식 입에

산삼같이 들어가면

딱 좋겠다


달콤 쌉쌀

어머니가 만드신

말 필요 없는 이 시원함

내 허기진 사랑

채우고도 남겠지만


새파란 가지에 엉킨

흰 머리카락 보니


어머니 푸른 청춘

쏙쏙 빼먹은 내 허물은

무얼 담가 채울지

눈앞이 흐릿

너 볼 낯이 없구나



내겐 '김치'하면 무조건 '외할머니'로 연상된다.

그 마을에서도 큰외손녀가 김치를 좋아한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지라, 외할머니께서 아무리 힘드셔도 내가 먹을 김치는 꼭 보내주신다.

초등학교 1, 2, 3학년 여름방학 때 보름 정도는 여동생과 함께 외할머니와 꼭 붙어있었던 나날을 보냈었다.

이후 학업과 일 때문에 바빠 일 년에 한 번 내려가는 것도 힘들어졌지만 몇 년 전에 약 일주일 못 되게 외할머니와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다.

당시 외할머니께서 수술을 하셨었는데 외삼촌 내외는 강원도에서 생활을 하니 간병인을 붙일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 또한 맞벌이셨고 난 다행히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수업 끝나면 곧장 병원으로 가 느지막한 저녁 때쯤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수술끝나고 입원하시는 내내 이틀 정도 빼고는 매일같이 병원에 출석도장을 찍었었는데, 덕분에 외할머니와 단둘이서 드라마도 보고 수다도 마음껏 떨었었다.

외할머니도, 엄마도 무뚝뚝한 편이라 표현을 잘 안 하는 편인데 나름 나의 애교 훈련 덕분에 외할머니께서도 유일하게 나에게만 사랑한다고 마음껏 표현해주신다.

내가 나이를 하나, 둘 먹듯이 점점 왜소해지시는 외할머니를 보면 세월이 야속하기도 하다.

이제는 힘이 드셔서 배추 농사를 짓지 않고 마을 사람들과 모여 배추 몇 포기 담그시는데 올해도 무생채 한가득 얹은 배추와 총각김치 그리고 겉절이까지 잔뜩 보내주셨다.

자주 보진 못해도 화장품, 영양제는 항상 챙겨 보내드리는데 이번에는 백화점에서 외출용 신발 하나와 운동화 하나 사서 보내드렸었다.

엄마, 외할머니와 함께 여자 셋이서 내년에 제주도 여행을 한 번 가려고 하는데, 타이밍이 잘 맞아 그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동화를 보는 듯한 시와 함께 따스함이 느껴지는 일러스트까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작가는 더러 있지만, 자신의 시 한 편 한 편을 일러스트로 그리는 작가는 흔치 않다.

우리의 일상을 작가만의 감성으로 풀어 위로와 공감은 전달하고 시와 일러스트가 만들어낸 새로운 세계가 펼쳐져 참 좋았다.

무엇보다 필사하기도 좋아 연말에 고마운 사람들에게 선물하기도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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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랑하고 살자는 말
정영욱 지음 / arte(아르테)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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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영감의 원천을 묻는 누군가에게 나는 아름다운 사물이나 형상을 보고 그것보다 아름다웠던 사람을 떠올린다고 했다.

누가 보면 멍때리는 줄 아는 때에도 펜을 놓지 않고 그때를 떠올리며 머릿속으로 글을 적는다고.

그랬더니 "그럼, 그 사람이 작가님의 뮤즈인가요?" 묻는다.

나는 답한다.

"아뇨, 그때 사랑인 줄 몰랐던 내가 더 선명합니다. 아마도 그게 뮤즈입니다."


싸이월드 감성보다는 조금 더 깊이 있는 글이라 할 수 있겠다.

지금 인연에 대한 기대, 앞으로 마주할 새로운 인연에 대한 기대, 그 모든 것을 전하고 있으니 편하게 읽으면 될 것 같다.


저자, 정영욱은 주식회사 부크럼의 대표이며 부크럼 출판사와 이외의 문화 사업을 운영 중이다.

대표작으로 『참 애썼다 그것으로 되었다』 『편지할게요』 『나를 사랑하는 연습』이 있으며 40만 부가량의 판매량을 기록하여 스테디셀러 에세이 작가의 입지를 다졌다.




Ⅰ 영원한 나의 뮤즈에게


그런 사람이 있다

감히 청춘이라 부를 수 있는,

찬란했던 젊음을 상징하는


그는 나에게 그런 의미의 사람이었다


그와의 시간을 회고해보면

철이 없었고 미련했고 미숙했으며

때에 맞게 아름답고 애틋했다


「매일매일」

매일매일. "매일매일." 그것은 곧, 언제나가 아닌 언제든을 뜻한다. 언제나 그러는 것이 아닌, 언제든 그럴 수 있는 것. 그러니 매일매일 보고 싶어, 언제나 사랑해, 이 말은 곧 언제든 보고 싶고 언제든 사랑할 수 있다는 뜻일 게다. 어릴 때야 매일매일과 언제나를 '호흡 없이 그러는 것'이라 소망했지만, 이제는 안다. 그것은 곧, 그러한 의미를 넘어서 '언제든 그럴 수 있는 개념'이라는 것을.


「너를 영원해」

서로의 부재가 익숙해질 때쯤에도 지금 이 감정이 꼭 영원했으면 싶어. 그런 의미에서의 영원으로 너를 영원하고 지금을 영원해. 영원. 꼭 영원할 것 같은 단어잖아. 너는 안 그래?


「가로등」

저게 켜져서 밤이 된 거 같은 기분 때문에 외려 세상이 더 어둡게 느껴진달까. 대충 느끼기엔 분명 밝은데 마음은 그럴수록 더 어둡다 느낀다 말했다. 그 존재가 존재의 가치를 발하지 못하는 것이 가로등뿐일까. 더해서 말을 뱉었다.

밝아졌다는 것만으로 곧 어두워질 것은 반증하는 것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사람 마음이 그렇다.


그는 내가 아주 특별하다 했고,

나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언젠가 자신을 아주 아프게 할 거라는 걸 안다고, 덧붙였다


「완벽해지면 내가 생각한 완벽함과는 다른 게 되니까요」

한때 생각했습니다. "좀 망치면 어떻다고… 마저 그려주질 않는지…." 그 그림, 내 방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었습니다. 매일 보니 정말 이게 딱 내 얼굴 같아요. 그의 실력으로 이 이상을 그렸다면, 정말이지 내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서툰 우리이지 않겠습니까. 어떤 것들은 그렇습니다. 부족한 줄 알았지만 그게 완벽이었고, 완벽하다 생각했지만 두고 보니 엉망이었던 것들. 미완이다 싶었지만 수작이었고, 완성했다 싶었지만 습작이었던 것들.


이 이야기가 꼭 그림 이야기만은 아니겠습니다.




Ⅱ 바다는 우리의 이름을 기억이나 할까


그와의 마지막은 담백한 이별이었다

말이 담백함이지 퍽퍽함에 가까웠다

깔끔해 보이고 싶었을까

잘 지내길 바란다는 말에,

너도 잘 살길 바란다고,

응원한다고 답했다

붙잡지 않았다

속은 너덜너덜했고

마음은 너무 아파서 눈물도 나지 않았다


「슬픔은 밟아야 하는 감정」

"슬픔을 딛고 일어서다"

딛고 일어서다니

밟고 일어서야지

딛고 일어선다면 꼭 도움이라도 된 거 같아

난 그게 싫더라


「사랑을 한다고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외롭다 해서 무조건 사랑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듯

사랑을 한다고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외로움과 사랑 사이엔 일방통행인 것이 전혀 없다는 것

뒤늦게 알아버렸다


「사람은 자신의 세계를 넓혀준 사람을 잊지 못한다」

지독하게 기억한다는 것은 그렇다.

그때의 시간을, 사람을 잊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세상을 맛보았던 그 값진 경험을 놓지 못하는 것이다.


꽤나 유명한 말이다.

"사람은 자신의 세계를 넓혀준 사람을 잊지 못한다."

잊지 않고 살아가야 할 문장이다.


「당신이라는 단어에 갑자기 머물렀어요. 항상 머물렀지만 그 순간 특히나 머물렀어요.」

'너'는 너무 가볍고 '그대'는 구시대적인 느낌이 들어요. '그 애'는 너무 앳된 단어 같고, '그 사람'은 사이가 너무 먼 기분이라서요.

아주 마땅하죠. 당신이라는 말. 평소에는 잘 쓰지도 않는 그 단어가 글에는 왜 그렇게나 자주 등장하는지. 당신을 만나며 당신이라는 지칭 단 한 번도 쓴 적이 없지만, 내 책에선 당신이 자주 당신으로 묘사됩니다. 당신. 당신. 언제는 글을 쓰는데 당신이라는 지칭으로 당신에 대해 적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그러다 멈칫 '당신' 두 글자에서 모든 이야기가 주저합니다.


「아름답기도 안타깝기도」

다만 떠난 이의 행복을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을 때

그때 우리는 성장했음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당신을 사랑해요." 이 말은

진행형이건 과거형이건 곧 성장일 것이다


아름답기도 안타깝기도, 사랑은 그러한 것이다




Ⅲ 다음 생에는 너로 태어나 나를 사랑해야지


때는 날이 추워지는 10월이었다

무턱대고 내 인생에 들어온

분에 넘치는 사람이 있었다


기억하기론

오늘의 운세는 악운이었는데…

하며 걱정을 했다


「~겠습니다」

'~요'와 '~니다'를 섞어 쓰고요, 그 끝은 '~겠습니다' 이게 내 문체라며 그가 말해줍니다. 나는 모르고 적어왔는데, 그걸 알아주다니요. 그는 나조차도 몰랐던 나를 발견해줍니다. 어쩜 이런 세세한 알아줌 하나하나가 전부, 과분한 애정으로 향하고 있단 뜻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을 처음 본 순간 원래부터 나에겐 선이었어요」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겐 악이기도 하고 선이기도 한 게 사람이잖아. 그러면서 악은 상처를 입히고 선은 누군갈 껴안겠죠. 우리의 생은 그렇게 발전해나가는 거 아닐까. 피를 나눈 것도 아닌 사람들끼리 원래부터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뭉치고, 뒤엉키며 삶의 이질적인 간극이 점점 좁혀지겠죠. 원래부터 그 누가 좋은 사람이었건, 나쁜 사람이었건, 내 사람이건, 내 사람이 아니건 단지 당장 누군가를 선이라 생각하는 마음이 모여 단단한 관계가, 사랑이 만들어지겠죠. 당신과 나는 서로에게 선일까 악일까. 원래 좋은 사람이었건 나쁜 사람이었건을 떠나서 말예요. 원래부터 악한 사람이라도, 지금은 나에게 원래부터 선이었다 믿고 걸을게요. 신이 실제론 없더라도 있다 믿어서 이륙한 지금 현대의 문명처럼. 당신이 가진 원래의 악도 지금 내겐 마치 선인 것처럼. 이제 내 생의 악역은 당신 아닌 사람들로 충분하죠.


「이미 알아버렸다는 영원한 멀어짐」

…… 하필 지금 알아버려서 다신 모르는 척 지내야 하는 경험은 켜켜이 쌓여왔다.

누군가를 알게 된다는 건 영원한 멀어짐일 수도 있다는 말인 것 같아서,

이미 이어져버린 누군가와의 관계는 섬뜩하기까지 했다.

이어짐을 직감했어도, 멀어짐이 더 익숙할 때가 있었다.




전작인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를 꽤 인상깊게 읽었던지라 신간알리미가 뜨자마자 관심있게 볼 수 밖에 없었다.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는 늘 따스한 응원을 전해 온 정영욱 작가가 다시 한번 독자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하는 힐링 에세이이다.

당신의 말에 동감합니다,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 ▶ https://blog.naver.com/shn2213/222815699223


난 사랑에 있어서, 참 서툴었던 것 같다.

이미 끝났다면 뒤돌아보지 않는다는 주의지만 적어도 두 번의 사랑은 계속해서 뒤돌아보려고 했던 것 같다.

영원한 약속이 아닌 이상 만남이 있으면 결국 헤어짐이 있는 것이니, "연인과의 이별이 그 순간은 힘들지 몰라도 결국은 잘 털어내는 게 나야, 그러니깐 괜찮아."라고 했지만, 겉으론 내색하지 않아도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했을 때는 꽤 힘들었었다.

어렸기에 미숙하기도 했고 서로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기도 했고 나에게 주는 사랑이 이내 과도한 집착으로 보이기도 했고.

20대, 혼자였던 적이 짧았고 누군가와 함께 했었구나...!

그간 나의 연애담을 풀자면 마냥 짧지만은 않은 것 같다.

추억이 방울방울 떠오르긴 하지만 크게 물거품처럼 이내 기억이 희미해지니, 나는 사람과의 인연에 있어서 꽤나 단호한 편인가보다.

INFJ라서 그런 걸까...?


그간의 인연들과 헤어지는 그 순간, 끝끝내 서로의 결정에 대해 존중하며 담백하지 않지만 담백하게 헤어져서 그런지 미안한 감정 따위는 없는데 유일하게 첫사랑에게는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지금에서야 이렇게 털어놓지만, 남들이 보기에도 친구 그 이상으로 가깝게 지냈지만 나는 우리가 사귀는 줄 몰랐었다.

그가 나에게 고백을 했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렇게 어느새 사귀는 사이가 되어버렸는데 그에게는 털어놓지 않았지만 여러 일들이 닥치게 되었고 점점 거리를 두었던 것 같다.

너무 어려서 무서웠나 보다. 다가가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어 더더욱 눈을 돌리려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만 애달프고 힘들어하는 건가 싶었는데 그 또한 정말 힘들어한다고 전해 들으니 누군가에게 미안한 감정이 그렇게까지 크게 든 게 처음이었다.

시간이 훌쩍 지나, 용기 내어 오해를 풀고 싶어 물어보고자 했지만 그것이야말로 더 상처를 주는 게 아닌가 싶어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었다.

아마 그는 모를 것이다. 나의 첫사랑은 당신이라는 것을.


글을 쓸 때 있어서 여러 경험을 해봐야만 글에서 진득한 감정을 묻게 할 수 있다고 하던데, 그 말이 꼭 맞다.

연애도, 진심 어린 사랑도 많이 해봐야 하는 것이.

20대 때의 사랑이 꼭 휴지조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여러 감정을 토대로 많은 대화를 해보았고 많은 경험을 해보았으니, 이것 또한 나의 성장 중 밑거름이 되었을 테니깐.

지금 그리고 앞으로의 관계에도 이로운 영향을 주는 것 또한 분명할 테니깐.


며칠 전에 한 댓글을 받고선 책 몇 권을 추천해드렸었다.

주변에 책 읽는 사람들을 많이 봐서 그런지 크게 체감하지 못했는데, 갈수록 종이책을 만지는 사람들이 급감하고 있다고 한다.

종이책만이 가지고 있는 향과 질감,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켜켜이 쌓여지는 생각은 오로지 종이책을 통해 누릴 수 있는 특권과도 같은데…….

누구나 감성 어린 글을 쓸 순 있지만, 글마다 느껴지는 깊이감은 제각각이다.

즉, 심도 있는 글을 쓴 이들은 대부분 책을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10분도 안 되는 영상도 길게 느껴져 1분도 안 되는 쇼츠, 릴스 등에는 아주아주 짤막한 줄거리와 결말만이 담겨져 있다.

도중에 나의 생각을 곁들일 수 있는 느긋한 시간조차 허용되지 않는다면 결국 사고하지 못하게 되버리지 않을까.



무언가 알려주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부족한 사람이라, 나도 이랬었다고 미련했던 마음을 적어 본다.

단지 그뿐. 난 이렇지만 기필코 살아간다고.

그러니 당신도 꼭 살아내었음 한다고. _저자 정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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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11-08 07: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을 잘쓰러면 정말 경험이 중요한거 같아요. 전 경험이 부족해서 그런지 책을 통해 간접경험하는게 재미있더라구요 ㅋ

하나님은 INFJ 시군요. 이 성격이 단호한가 봅니다. 저는 ENFJ 이던데 그래서 우유부단합니다 ㅋ

하나의책장 2022-12-16 21:29   좋아요 1 | URL
오! 새파랑님은 ENFJ시군요^^
전 I는 확실한데 J는 아닌 것 같아서 두번이나 해봤는데 또 INFJ로 나오더라고요ㅎㅎ
성향같은 거 크게 따지지는 않는데 MBTI 각각 특성들을 보면 대체적으로 또 맞더라고요. 신기방기🤔
 
여우와 나 - 한없이 다정한 야생에 관하여
캐서린 레이븐 지음, 노승영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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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같은 시간에 오두막을 찾아오는 손님이 있었으니, 그 주인공은 바로 여우다.

그런 여우에게 그녀는 『어린 왕자』를 읽어주기 시작했고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은 그녀를 자연은 힘껏 안아주었다.


저자가 레인저로 일하며 야생의 세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당시, 그녀에겐 후진도 안 되는 낡은 자동차 한 대, 그리고 기본적인 캠핑 장비가 전부였다.

책은 로키 산맥 자락의 인적 없는 땅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홀로 살던 그녀가 야생 여우의 정기적인 방문을 받으며 시작된다. 오두막 근처 여우 계곡에 가면 그녀가 진창에서 회전초를 뽑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저자, 캐서린 레이븐은 1959년생으로 미국의 몬태나 대학교에서 동물학 및 식물학을 공부했고, 몬태나 주립대학교에서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글레이셔, 레이니어산, 노스캐스케이즈, 보이어저스,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레인저로 활동했으며 〈아메리칸사이언티스트〉, 〈저널오브아메리칸멘사〉, 〈몬태나매거진〉에 자연사 에세이를 기고했다.




Ⅰ 만남


3년 전, 땅 하나를 사들인 '나'는 토지를 조성하고 오두막을 건축하게 된다.

경치를 망가뜨리는 건축물이 거의 없어 꼭 엘프가 나올 것만 같은 온전한 무지개를 볼 수 있어 그 자리에서 항상 기다린다.

'나'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바로 여우다.

언덕을 정탐하다 어느샌가 거리가 좁혀지더니, 여우는 이내 좋아하는 바위의 그늘에서 쿨쿨 자고선 오후 햇볕이 쨍쨍할 때쯤 그 열기에 눈을 뜬다.


생선 뼈처럼 길고 가는 풀씨가 털에 달라붙고 가죽을 파고들었다. 그는 작은 장미 덤불 앞에 멈춰 가시에 대고 몸을 빗질하듯 비볐다. …… 선인장, 채찍 같은 바람, 생선 뼈 씨앗은 최적의 여건은 아니었다. 알팔파밭의 여우들은 푸른 들판에서 입을 벌리고 선잠이 든 채 길 잃은 생쥐가 낮고 부드러운 풀밭을 무심코 가로지르며 날 잡아드슈 하길 기다릴 것이다. 그런 게 최적의 여건이었다. 멍청한 생쥐가 우글거리는 사냥터를 장악하는 것이 유일한 인생 목표인 여우에게는 그럴 만도 했다.


일정한 거리를 둔 채, 나와 여우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Ⅱ 어린왕자


일정한 간격을 두고선 앉은 나와 여우.

나는 여우에게 「어린 왕자」를 읽어주기 시작한다.

"앙투안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란다."


여러 달 동안 여우와 마주하며 편안한 단계에 이른 나와 여우.

오랫동안 물음표와도 같았던 나의 삶, 이곳을 떠나기로 마음 먹고나니 문득 여우가 생각났다.

어린왕자를 읽어줄 때는 나름의 규칙이 있었다.

나는 여우에게 책을 읽어주고 말을 건낸 후 15초간 한참을 쳐다보는 패턴을 반복하게 된다.

쳐다보는 그 타이밍이 여유가 말할 차례라는 것을 의미했다.


상자에 갇혀있지 않은 여우와 한참 책을 읽다 제나에게 연락이 왔다.

야생동물 수업의 내용을 알려달라는 전화였다.

1년에 10주정도 취업자로 만들어주는 수업이었다.

이번에는 32명의 학생들이 수업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만 50km나 떨어져 있어 승낙할 경우 여우와는 떨어져야 한다.

여우와 또다른 규칙이 있었으니, 바로 함께하는 시간의 끝은 언제나 그가 정하는 것이었다.

그가 먼저 돌아서는 것이 바로 시간의 끝이었다.

이튿날, 여느때처럼 여우를 기다렸다.

열닷새 내리 함께 책 읽는 기념비적인 순간이기에 기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축하한담?

어떻게 축하할지 한참을 고민하다 나는 여우를 떠나보내기로 마음먹게 된다.

우연을 인연으로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읍내로 내려가 장을 보다가 저도 모르게 체육관 안으로 들어갔었다.

공원 관리소에서 함께 일했던 과학자 빌이 역기를 들고 있었는데 그때 내가 말을 꺼낸다.

여우가 어쩌면, 자신을 찾아오는 지도 모르겠다고.

"당신이 인격화를 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죠."라는 말과 함께 윙크로 답한 빌에게 괜스레 굴욕감만 느끼고선 나는 체육관을 나오게 된다.

그렇다. 앞서 말했듯이 내가 우연을 인연으로 착각한 것이 아닐까?


사회가 인간과 야생(즉, 상자에 갇히지 않은)동물 사이에 깊은 협곡을 파두었음을 간파하는 데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다. 감히 협곡을 뛰어넘으려 들 만큼 무모하지 않은 사람들의 눈에 그 협곡은 너무 넓고 깊어 보인다. '왕따'가 되기로 마음먹었다면, 크리스토퍼 로빈 스타일의 반바지와 보비 삭스 차림으로 대학 강의실에 나타나는 정도는 되어야 인격화에 명함을 내밀 수 있다. 곰돌이 푸만 당신과 놀아줄 테니까.


그 후, 나는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여우와의 관계를 비밀로 부칠 수는 없다고.

또한 여우와의 관계를 해명할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도.




미국에서 잠시 머물렀을 때, 순록을 기르는 집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거의 방목해서 키우다시피 하다 보니 눈밭을 뛰는 순록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에이트 빌로우가 절로 연상될 정도였으니, 그 모든 장면이 어린 나에게는 매우 신선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교감… 감정을 교류한다.

외할머니 집에 있는 멍멍이들은 일 년에 두어 번 정도 볼 수밖에 없었고, 집에서는 애완동물도 키우지 않았으니 동물과의 교감이 어떤 느낌인지 알 턱이 없었다.

그러던 내게 기회가 다가온다.

미국에서 두어 달 정도 머물 때 함께했던 고양이, 그 후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 일 년 정도 우리 집에 매일매일 출석체크했던 길고양이들 덕분에 동물과의 교감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미국이었다. 하루를 보내고 침대에 누워 미드를 보고 있으니 고양이가 쭐래쭐래 다가와 침대 위로 폴짝 뛰어 오르더니 내 곁으로 다가오는 게 아니겠는가.

눈을 맞추고 웃어주니 슬금슬금 내 품으로 다가와 등과 엉덩이를 내 가슴쪽에, 머리를 내 턱쪽에 붙이고선 가만히 쳐다보는 그 순간은 난생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기에 잊을 수가 없다.

두둥실 구름 위에 안착해 레몬 하나를 베어 문 느낌이랄까.

벅참과 설렘이 동시에 느껴졌는데, 사실 이 감정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당시 쓴 일기에도 그 감정을 표현할 수 없다고 썼을 정도였으니깐.)

누구에게나 곁을 내주지도 않을 뿐더러 낯선 사람이 집으로 오면 일단 숨어서 절대 안 나오는데, 내 옆에 찰싹 붙어있는 고양이를 보더니 고모는 말하셨다.

"오래 머물다 갈 사람을 느끼나보다."

지난 주, 샵에 다녀왔을 때도 샵에서 키우는 강아지와 '교감'을 나누었었다.

애완동물이지만 내가 주인이 아닌데도 충분히 교감을 느끼게 해준 동물들에게 신기하면서도 참 고맙다.

저자는 아마 그 시간이 더 벅차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다.

무려 야생동물이라니! 야생 여우라니!


지금은 인간이 야생 동물들의 영역에 발을 들인 곳이 많아 서식지가 부족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서식지가 부족해지니 야생 동물 개체수 또한 자연스레 줄어들었고 멸종위기에 놓이기까지 했다.

분명 동떨어져 있지만 그럼에도 공생해야 하는 관계이다.

이렇게 해석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여우에게 어린왕자를 읽어줄 때 규칙을 세워놓고선 이를 지켰었다.

결국 넓게 바라본다면 우리 또한 정해진 규칙에 있어서 꼭 약속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오히려 저자에게 위로와 격려를 주었던 야생이었다.


어린 수사슴과 어른 암사슴은 무리로부터 적잖이 떨어져 있다.

그가 나를 쳐다보며 너무 꾸물거리자 암사슴이 안절부절 못한다. 그녀는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개울을 건너는 무리에 합류하려고 떠난다. 그는 5미터 떨어진 곳에서 여전히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따금 암사슴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180도 돌려 작은 잿빛 수사슴을 돌아본다. 그는 아직도 풀을 먹지 못했지만, 통통하고 다부진 몸을 보니 나의 근심은 가라앉는다. 어디서든 먹이를 찾아낼 것이다. 지금은, 내가 유리 덧문 뒤에 서 있는 동안 그가 바라는 것은 나를 바라보는 것뿐이다. 내가 얼굴 앞에서 오른손을 흔들어 나도 그를 보고 있음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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