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 너머의 별 - 나태주 시인의 인생에서 다시없을 사랑 시 365편
나태주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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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세상은 다시금 빛나게 될 거야!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빛과 같은 시로 응원하다.


그는 진정 시의 마법사가 아닐까.

그 어떤 것도 그의 영감이 될 수 있다.

그 영감을 이내 시로 변신시키니, 그는 진정 시의 마법사라 할 수 있겠다.


그의 사랑 시 365편은 시인의 일생을 담듯 한 편 한 편 정성스럽게 고르고 고른 시들이며 그 또한 자신의 사랑 시 중 결정판이라 강조하며 특별한 애정을 보이고 있다.


저자, 나태주는 1945년 충청남도 서천군 시초면 초현리 111번지 그의 외가에서 출생하여 공주사범학교와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오랫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2007년 공주 장기 초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43년간의 교직 생활을 마친 뒤, 공주문화원장을 거쳐 현재는 공주풀꽃문학관을 운영하고 있다.

1971년 [서울신문(현, 대한매일)] 신춘문예 시 「대숲 아래서」가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 등단 이후 끊임없는 왕성한 창작 활동으로 수천 편에 이르는 시 작품을 발표해왔으며, 쉽고 간결한 시어로 소박하고 따뜻한 자연의 감성을 담아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아왔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로 「풀꽃」이 선정될 만큼 사랑받는 대표적인 국민 시인이다.

흙의문학상, 충남문화상, 현대불교문학상, 박용래문학상, 시와시학상, 향토문학상, 편운문학상, 황조근정훈장, 한국시인협회상, 정지용문학상, 공초문학상, 유심작품상, 김삿갓문학상 등 많은 상을 수상하였다.




별처럼 꽃처럼


별처럼 꽃처럼 하늘에 달과 해처럼

아아, 바람에 흔들리는 조그만 나뭇잎처럼

곱게 곱게 숨을 쉬며 고운 세상 살다가리니,

나는 너의 바람막이 팔을 벌려 예 섰으마.



까닭


꽃을 보면 아, 예쁜

꽃도 있구나!

발길 멈추어 바라본다

때로는 넋을 놓기도 한다


고운 새소리 들리면 어, 어디서

나는 소린가?

귀를 세우며 서 있는다

때로는 황홀하기까지 하다


하물며 네가

내 앞에 있음에야!


너는 그 어떤 세상의

꽃보다도 예쁜 꽃이다

너의 음성은 그 어떤 세상의

새소리보다도 고운 음악이다


너를 세상에 있게 한 신에게

감사하는 까닭이다



은방울꽃


누군가 혼자서 기다리다

돌아간 자리

은방울꽃 숨어서

남모래 지네


밤마다 밤마다

달빛에 머리 감고

찬란한 아침이면

햇빛에 몸을 씻고


누군가 혼자서

울다가 떠나간 자리

어여뻐라 산골 아씨

또다시 왔네.



또 다른 행복


그 애를 마음의 꽃으로

받아들이면서

하루도 편안할 날이 없었다


어딘가 두리번거리는

사람이 되었고

조바심하면서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낮이면 스스로 들판에 나아가

벌 받는 나무가 되었고

밤이면 어둠 속에서

혼자 우는 꽃이 되었다


그렇다 한들 어떠랴!

그 애가 주는 불행은

또 다른 행복


숨 쉬는 사람으로

살아 있는 순간순간만 그저

기쁘고 고마울 뿐이다.



너를 보았다 1


세상을 한 바퀴 돌아왔을 때

네가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늦게 만난 것이었다


너와 함께 떠날 세상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오늘도 너를 보았다


빈방에서 흐느껴 울다가 보았고

골목길 걷다가 소낙비 끝에 보았다


너는 별빛 너머 빛나는 별

꽃송이 속에 웃고 있는 꽃


더는 꿈꾸지 않아도 좋겠다.



그냥 약속


10년 뒤에도 우리가

이렇게 정답게 만날 수 있을까?


10년 뒤에도 네가

오늘처럼 예뻐 보일 수 있을까?


10년 뒤에도 우리가

살아서 숨 쉬는 사람일 수 있을까?


나무 아래 바람 아래

하늘과 구름 아래 오직 땅 위에서.



'곁에 두고선 읽고 싶은 시집이 있나요?'라고 묻는다면 그 중 한 권은 분명 나태주 시인의 시집일 것이다.

풀꽃 시인이라고도 불리는 그는 작은 풀꽃 하나에서도 큰 세상을 발견하곤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는 누구나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어려운 단어 하나 없이 그의 문체는 간결하다.


시 하나하나 놓치고 싶지 않다.

좋은 시 다음에 좋은 시가 연이어 등장하니 올해 첫 필사책이 될 수밖에 없었다.



중학교 때, 국어 선생님은 내게 무지개같은 존재였다.

힘듦과 절망에 부딪혀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면, 선생님께서는 항상 나를 따스하게 안아주시고선 매번 손수 적은 시를 건네주셨다.


그 때, 처음 깨달았다. 시 하나로도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고 보듬어줄 수 있는 것임을.


중학교 때의 선생님이 무지개같은 존재였다면 고등학교 때 문학을 가르쳐주시던 선생님은 내게 햇살과 같은 존재였다.

귀 기울여 성심껏 이야기를 들어주고 환하게 미소지어주시는 어른은 선생님을 따라올 수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주변에 좋은 어른이 있다는 것은 내겐 큰 재산인 것 같다.


자주 연락하지 못해도 간간히 연락하면서 명절과 생일 선물을 챙겨드리고 있는데, 선물과 함께 꼭 넣는 것이 있으니 바로 손편지를 첫 장에 끼워 담은 시집이다.

두분 모두 문학에 대해 남다른 분이시기에 책 또한 신중하게 고를 수밖에 없는데, 시집만큼은 절대 실패가 없다.

올 초부터 주구장창 읽고 있는, 나의 올해 첫 필사책으로 선정한 별빛 너머의 별로 올해 첫 선물을 보내드렸는데 명절은 지났지만 명절 선물 한가득 받은 기분이라 좋으셨다는 선생님들의 연락을 받고 나니 이번 선물들도 성공적이었어서 미소가 지어졌다.



이렇다할 말도 없이 언제 3월이 된 건지.

분명 몸과 마음은 움직이고 있는데 시간만 덧없이 빠르게 흐르고 몸과 마음은 그대로인 것 같아 이상하다.

나태주 시인이 말하길, "행복은 우리 안에 이미 내재해 있는 것, 우리가 할 일은 그 행복을 찾아내는 일뿐이다."라고 했다.

세상에는 없는 꽃, 아무도 모르는 꽃, 아직은 이름도 없는 꽃이지만 겨울에라도 꼭 꽃이 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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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무 - 각본
이지하 지음 / 프로젝트이오공일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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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지인의 소개로 연극 <그 나무>를 보게 된 지하.

연극의 ‘그 나무’처럼 남자 성기 모양을 본 따 깎은 나무를 보고 다큐멘터리 제작을 결심한다.

연극은 대학원 사회의 밀폐되어 있는 공기와 사건사고를 가감 없이 보여주고, 지하는 이 연극이 특정 대학을 겨냥하고 있다고 확신하게 된다.

연극이 알려지자 성기 모양 나무가 식재되어 있는 여러 대학들이 등장하고, 서로 이 연극이 자기 대학의 이야기라고 주장한다.

공연중단의 기로에서조차 연출가와 작가는 확답을 내리지 않고, 진실을 알고 싶은 지하는 취재를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아주 뜻밖의 이야기와 마주하게 된다.


저자, 이지하는 89년 서울 출생으로 대학에서 문학과 외국어를 공부했다.

졸업 후 여러 서점에서 서점원으로 지냈으며 이따금 영상을 찍고 글을 쓴다.




학생1 거기 뒤편에 나무들이 있어.

학생2 (눈을 끔뻑거리며) 맞아요. 화단 있잖아요.

학생1 지나갈 때 한번 구석을 유심히 봐봐

학생2 구석에 뭐가 있어요?

학생1 잘 보면, 그 중 하나가…. (주변을 살핀 후 작은 소리로) 고추 모양이다?

학생2 (마찬가지로 작은 소리로) 예?! 그런 게 왜 있어요?

학생1 나도 A교수님한테 들은 건데, 완전 골 때리잖아.

학생2 학교에서 심은 거예요?

학생1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음기 누르려고 그런 거래. 대학원 건물에 음기가 너무 강하다고.



A교수 나는 여러분들이 아~주 존경스러워.

학생1 (갑자기 숙였던 고개를 들어 당혹스러운 듯 두리번댄다)

A교수 정말이야, 진짜! 이 시대에 문학을 하겠다고 대학원까지 온 게 아주 존경스러워. 내 딸이 지금 고3인데, 나는 내 딸한테 절대! 내 딸이 문학 공부하겠다고 하면 절대로 반대할 거야. 그 정도로 여러분 결정을 믿어준 여러분 부모님이 정말 대단하신 거지. 부모님들 아주 대~단하셔! 내가 정말이지! 존경해! 응! 자, 그런 의미로 한 잔 하자!


학생1 (울먹이며) A교수이 술에 취하셔서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결국 흐느끼며) 제 허벅지에 손을 올리셨어요. 제가 계속 뿌리쳤는데도 만지셨어요.



아라 논문심사 전날 카페에서 마지막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그때 같은 지도 제자였던 오빠가 들어와서 얼렁뚱땅 잡담을 나누게 됐어요. 거의 그 오빠의 하소연이었어요. 지도교수가 어떻고, 저떻고, 힘들다, 어쩐다. 그래도 논문은 꼭 쓰자, 그만두지 말라고 당부를 하는데 갑자기 기운이 쏙 빠지더라고요. '내가 겪은 일은 아예 모른 채로 살 수 있어서 좋겠다'는 생각이 퍼득 들었어요. 저보고 택일 하라면, 무조건 그 오빠의 고충을 선택했을 거예요. 그 오빠가 겪은 일이 그 정도로 사소했다는 뜻이 아니에요. 누구에게나 힘들었을 상황이었어요. 그럼에도 저는 이 사람이 '부럽다'고 되뇌었어요. 차라리 남에게 언제든 털어놓을 수 있는 정도의 일을 겪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럼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 텐데.



아라 …… 그 정도는 괜찮다고 누군가 얘기해줬다면 좋았겠지만, 제 얘기 자체를 동기 외에는 아무에게도 할 수 없었어요. 지도교수를 바꿀 수도 없었어요. 다른 분들은 모두 제 연구 분야와 무관했거든요. 그렇다고 연구 분야를 바꾸는 것은 한 가지만 생각하고 해오던 사람에게 갑자기 그것을 그만두고 다른 것을 하라고 강요하는 일과도 같았고요. 꼭 그 안에서만, 꼭 그 교수에게서만 그 공부를 할 필요는 없었다는 것을 지금은 알지만, 당시에는 다니던 학교를 갑자기 그만두는 게 두려웠어요. 무엇보다 부모님께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 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어요. 어떻게 말해야 할까, 일이 커지면 어떡하지, 겨우 그걸로 관뒀냐고 혼날 것 같았어요. 오직 동기하고만 모든 걸 이야기할 수 있었어요. 동기와 여러 번 논의를 하면서, 논문은 무조건 써야겠다고 결정했어요.





책에 대한 느낀 점을 말하기에 앞서,

모든 대학원과 모든 교수님들이 다 그렇지는 않으며, 이러한 행동을 행한 교수님과 이를 방치한 대학원이 그 대상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책에서는 대학의 부조리함을 현실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각본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어 내용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해도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나 또한 대학교 다닐 때부터 선배들에게 대학원의 부조리함에 대해 심심치않게 들을 수 있었다.

특히 조교라도 하게 되면 일부 교수님의 심부름꾼이 된다는 소문도.

아무래도 대학원은 대학과 달리 그 전공으로 나아가겠다는 확실한 목표가 있어 선택하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사회에 나가기 전단계나 다름없어 혹여나 교수가 그 분야의 굵직한 사람이라면 교수의 입김으로도 좌지우지될 수 있는 부분도 있어 대학보다 대학원이 특히 수직관계가 더 심한 편이다.

이렇게 책에서는 대학원 생활이 얼마나 폐쇄적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좋은 선생님, 교수님들과 만날 수 있었고 지금도 몇몇 분들과는 꾸준히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다 좋을 순 없는 법!

고등학교 1학년 때, 음악 선생님께서 과하게 나를 예뻐해주셨다.

평소 내게 이름까지 불러주며 다정다감하게 대해주셨는데 그게 마냥 달갑지는 않았다.

어느 여름 날, 영어선생님의 개인적 사유로 인해 자율 학습으로 전환되어 음악 선생님이 대타로 교실에 들어왔던 적이 있었다.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다들 자습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음악 선생님이 내게 다가오더니 공부 열심히 한다며 등을 가볍게 두들기며 머리를 쓸어내렸다.

물론 가볍게 한두 번 두들겨 줄 수 있다.

그러나 여름이라 하복을 입으면 끈나시를 입었어도 속옷이 드러날 수밖에 없어 등을 두들기면 당연히 후크 부분이 만져질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몸을 돌려 살짝 미소지으며 "아, 네."하고 다시 고개를 돌려 책을 봤다.

그 순간, 어쩜 이렇게 열심히도 하냐며 기특하다는 말과 함께 내 왼쪽 뺨을 살짝 꼬집고선 왼쪽 귓볼을 만지는 게 아니겠는가.

기분이 좋질 않아 눈만 미소지으며 '네, 열심히 하려고요.'라는 말과 함께 몸을 틀었다.

훗날 대학생이 되어 무슨 얘기를 하다 음악 선생님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니 다들 기겁을 했었다.

사실 그 때는 어려서 기분나빴던 터치라는 것만 느꼈을 뿐 무슨 의도로 만졌었는지 전혀 몰랐었다.

당시에 선생님이 시킬 게 있다고 음악실로 와보라고 했을 때 혼자 안 내려간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항상 혼자 다니지 않고 친한 친구들이랑 같이 다녔었는데, 두어번 친구랑 함께 내려가니 '아, 다른 얘 시켰으니 괜찮아'라는 말로 보낸 게 지금도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순수하게 심부름 시키려고 부르신 걸 수도 있다.

그렇기에 크게 의심하진 않고 있지만 결국 심부름은 시키지 않으셨다.


한 기사에 따르면,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에서 지난 2019년 학부생과 대학원생 1902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이들 중 46.4%가 입학 이후 '인권침해' 피해 경험이 1회 이상 있었다고 답했다.

또 이들 중 49.5%가 사적 만남 강요, 스토킹, 성희롱 등 성폭력을 가장 힘들었던 피해 경험으로 꼽았다.

주된 성폭력 가해자 중 교수(전임교수·비전임교원)는 25.5%를 차지, 1위인 선배(32.4%) 다음이었고 동기(23.5%)보다 많았다.

특히 이공계와 예체능계, 의학계 등에 속한 피해자는 가해 교수가 학계에서 얼마나 많은 네트워크를 가졌는지, 얼마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안다며 문제 제기를 할 때 한 사람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전체와 싸운다고 생각해야 한다.

가해 교수가 파면되거나 해임되어도 사실상 관련 업계에서는 그의 입장을 옹호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지금도 권력형 성범죄가 만연한 대학이 분명 있을 것이다. 피해자는 잘못이 없지만 침묵해야 하는 현실이 참 안타깝기만 하다.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는 내부 고발을 배신이라고 여기는 분위기가 있어 폭로하는 것이 어려운 것 또한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다.

피해자를 온전히 보호하면서 대학에 만연한 위계형 성범죄를 근절시키기 위해서는 피해자가 처해있는 학업·연구·노동 여건을 총체적으로 고려해 건설적인 대안을 모색할 수 있어야 하며 사회적 인식 또한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결국 올리지 못했던 임시저장글을 정리하다 진즉 올렸어야 할 글들이 있어 후다닥 올려본다.

설 연휴 전에 업로드하려고 작성했던 글인데, 병원 왔다갔다 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제라도 봤으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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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8 17: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09 17: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한다
지에스더 지음 / 체인지업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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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10대에는 집에서 뛰쳐나오고 싶었지만 부모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고 20대에는 그토록 바랐던 특수교사가 되었지만 꽃길은 착각이었고 30대에는 두 아이 독박 육아로 죽을 만큼 힘들었다.

자연스레 내면에 비평가를 키우게 된 저자는 어느 날 깨닫게 된다.

"나를 힘들게 한 건 나였다!"

저자는 깨우침을 얻고 새벽에 홀로 일어나 고전을 필사하고 글을 썼다.

그 글이 모여 탄생한 것이 바로 『나는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한다』이다.


저자, 지에스더는 아홉 살, 다섯 살 남매를 키우는 워킹맘이다.

2007년부터 초등학교 특수교사로 일했고, 현재는 광주에 있는 특수학교에 재직 중이다.

고요한 새벽 4시, 홀로 깨어 고전을 읽고 필사하는 시간을 사랑한다. 온전히 나를 느끼고 찾아가는 여정을 즐긴다.

아이와 엄마가 함께 자라는 균형 육아를 지향한다. 엄마로만 사는 것이 아닌 나답게 성장하는 삶을 중요하게 여기며 나 자신의 팬으로 살고 있다고 한다.




Ⅰ 나를 지키는 마음


어린 시절 부모님이 싸울 때마다 두려웠던 저자는 남편과 약속을 하게 된다.

트러블이 생겼을 때 과거의 일은 언급하지 않고 현재 사건에 대해서만 다뤄야 하며 아이들 앞에서는 절대 싸우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10년 동안 그 약속을 지켜냈는데 그런 그녀가 아픈 남편에게 괜스레 화를 낸 일이 발생하고 만다.


평소의 저자였다면 꾹 참았겠지만 저자는 달라지고 싶었다.

꾹 참기만 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었고 건강한 감정 처리 방법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친정엄마가 화를 받아준 적이 별로 없었던 데다 오히려 친정엄마 쪽에서 화를 더 크게 내다 보니 꾹 참는 게 일상이었던 그녀는 오히려 화를 내기보단 숨기는 게 편했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단순히 보이는 평화만 유지하는 게 정답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또한 그녀는 타인에게 버림받고 싶지 않을뿐더러 착한 사람이 되려고 했기에 더더욱 감정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타인에게는 착하지만 자신에게는 못된 사람으로 살았던 그런 그녀가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먼저 자신의 감정을 알아주는 것이 그 시작이었다.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소리를 들으며 그녀 자신을 진심으로 존중해주었다.

또한 상대에게 요구해야 할 것이 있으면 말이나 글로 정확하게 전달했다.

상대의 행동을 비난하지 않고 어떻게 해줬을 때 편안하고 사랑받는 기분인지에 대해서만 전한 것이었다.


그녀는 그녀에게 말한다.

"그동안 미안해, 이제 나부터 챙길게."



저자의 첫 책은 <하루 15분, 내 아이 행복한 홈스쿨링>이다.

첫 책을 출간하고선 존경하는 교수님께 책 출간에 대한 소식을 전하며 선물하고 싶은 마음을 내비쳤고 이때 친구에게 용기 내어 교수님께 연락드렸단 사실을 말하게 된다.

"너무 바쁘신 분인데, 네 책을 살 시간이나 있으시겠냐?"

한 방 맞은 기분이 들게 한 친구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나 바빠서 네 책 읽을 시간 없어. 읽으라고 강요하지 마!"

애써 웃으며 당장 읽을 필요 없고 여유 있을 때 보라곤 끊었지만 저자의 마음은 이미 시퍼렇게 멍이 든 상태였다.

남편과 부모님을 제외하면 책을 썼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전한 첫 친구였다.

이후 그 친구와는 연락이 끊어졌지만 쌓였던 관계가 무너져 받아들이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복직한 이후 책을 썼다는 사실이 직장 동료들에게 퍼지게 되었고 그 중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휴직해서 왜 책을 썼어?"

"두 아이를 집에서 키우면서 너무 우울하고 힘들어서요. 살고 싶어서요."

"그렇게 힘들었으면 복직을 했어야지."


앞서 말한 친구나 직장 동료는 가까이 하지 않아도 될 분류에 속한다.

응원은 아니더라도 비난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게 관계의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다보니 우리 주변에도 상처와 비난을 주는 이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에게 그 누구도 상처입힐 수 없다.

자신의 멘탈을 깨부셨다는 말을 할지라도 그 파편 하나라도 나를 해치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 사람의 말이 옳다고 받아들일 때 상처입는 것이니 타인의 말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타인의 말에 끝없이 휘둘릴지 아닐지는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니깐.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어떠한 생각이나 행동에 정답을 내릴 순 없다.

즉, 한 사람의 판단이 진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멘탈을 부수려는 사람을 만난다면 나를 지킬 수 있도록 관계를 끝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내 멘탈을 깨부수는 당신과는 손절하겠습니다."




Ⅱ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하는 법


'지겨워. 제발 부탁이야. 이제 좀 그만하자. 또 시작이니.'


내면의 비평가는 쉴 틈 없이 비평한다.

조금이라도 외면하거나 눈 돌려버릴 것만 같으면 이렇게 말을 한다.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만드는 내면의 비평가는 잘해보겠다는 다짐도 무색하게 만든다.

우울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생각의 전환이다.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하지?'라는 마음과 함께 최종 목적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길을 잡는 대신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 하지?'라는 마음으로 내가 가야 할 방향으로 분명히 가야 한다.

이때 저자는 고전 필사했던 노트를 살펴보았다고 한다.


'너무 완벽한 목표와 기준을 잡은 거 아닌가?'

그래. 나는 그동안 너무 높은 기준을 세워왔다.

'남에게 있고, 나에게 없는 것에 집중한 거 아닌가?'

그래. 다른 사람들과의 결과물에 비교하며 내가 노력한 과정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내 안에서 나온 판단으로 계속 나를 힘들게 할 것인가?'

그래. 나를 힘들게 한 생각은 바로 내 안이다.


저자는 고전 필사를 통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끊임없이 답을 얻었던 것이다.

세 가지 질문은 꼭 고민하고 있는 자신에게 던져봐도 좋을 질문들이다.

내면의 비평가가 하는 방해에서 벗어나 오늘을 살아야 하기에.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발전하는 과정을 즐기며 살아야 하기에.




사랑받고 싶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맞추며 애쓸수록 내 존재는 희미해졌다. 더 외로웠다. 시간이 갈수록 나를 사랑하는 힘이 점점 사라졌다. 결국 내 곁에 아무것도 남는 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어른이 되었지만 나를 사랑하지 못했다.


나 자신에게는 유독 엄격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기에, 유독 저자의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 가정과 학교에 대한 영향으로 인해 나 자신이 아닌 타인을 먼저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

특히 가정에 작은 잡음이라도 나는 것이 싫어 유난히 나는 속으로 삼키는 훈련을 본의 아니게 받아왔었다.

힘들면 힘들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아프면 아프다고 말할 줄 알아야 하는데, 속으로 삼키고 또 삼켰다.

아마 엄마가 그래왔던 것을 첫째인 내가 그대로 따라 했을지도 모른다.

훗날 성인이 되고 나서야, 잘못되었던 일은 잘못되었다고 확실하게 말하지 못했던 내가 참 야속했다.

그게 결국 마음의 병이 되었다는 것도 너무 늦게 깨달았었다.


그나마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꾸준히 써왔던 일기와 독서가 유일한 안식처였다.

어느 날, 선생님과 상담과도 같은 대화를 나누고선 집으로 돌아왔었다.

일기와 다이어리를 싹 모아놓고 보니 72L의 상자에 가득 찰 정도였는데, 이내 정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지나고 나면 추억일 텐데 아깝지 않냐는 말도 많이 들었다.

당연히 아깝다. 그때 그 시간에 한 자, 한 자씩 적었던 소중한 일기인데 안 아깝겠냐마는 굴레에서 조금은 벗어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기억에 남기고 싶은 특별한 일이 있었던 일기장은 그대로 상자에 넣어놓고 벗어나고 싶었던 그 순간이 담긴 일기장들은 싹 버렸다.


책을 읽던 도중에 좋은 구절이 보았을 때,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좋은 대사를 들었을 때,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인상깊었던 말을 들었을 때, 책을 읽고 난 뒤 수기로 서평을 작성했을 때…….

이럴 때, 바로 꺼내 드는 게 '글쓰기 노트'이다.

분홍빛 바인더에 꽉 채워져 있는 기록물들은 나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독서하는 도중에 커피를 쏟게 되었다.

곧장 발견하지 못하고 조금 늦게 인지하는 바람에 눈앞에 마주했던 것은 축축해진 바인더였다.

바인더를 펼쳐놨고 바인더 자체는 튼튼했기에 상관없었지만 속은 이미 다 젖어있었다.

한 장, 한 장 분리해 말려보려고도 했지만 앞쪽은 이미 축축해져 있어 통째로 뜯겨졌고 뒷부분도 성치않았다.

나의 실수로 나의 보물이 사라져 며칠을 끙끙 앓으며 자책했었고 한동안은 버리지도 못하고 선반 위에 올려놨었다.

며칠은 무슨, 몇 주를 끙끙 앓았다. 근 10년간의 기록이 사라졌던 것이니깐.

기록물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나였기에 더더욱 힘들었었다.


그런 내가 일기장을 과감하게 버렸다는 건 나름의 큰 결정이었다.


"삶의 주도권을 나에게로"

새해 다짐에 필사를 넣은 것은 책의 영향이었다.

예전에 논어 등 동양고전을 서너 번 필사한 적이 있었는데, 이후 인상깊었던 구절을 글쓰기 노트에 옮기는 것만으로도 조금 벅차 필사 노트는 따로 만들지도 못했다.

저자가 3년 넘게 필사하면서 모은 필사 노트만 무려 총 다섯 권이라고 하는데, 나 또한 내 마음 돌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필사를 택하려고 한다.

사실 12월 31일에 다짐했던 것이 무색하게 1월 첫째 주부터 병원에 왔다갔다하며 검사하고 컨디션이 좋질 않아 귀한 일주일을 통째로 날렸었다.


1일 2포는 무리더라도 1일 1포는 하고 싶었는데… 그럼에도 노력해본다.

이 책도 1일이나 2일에 올라갔어야 할 서평이었… 지만 지금이라도 올렸다.

3권 정도 추려놨는데 2023년 첫 필사책을 어떤 책으로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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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제대로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다. 나에게 관심을 두기보다는 타인에게 눈을 돌렸다. 온 마음을 다해 다른 사람을 위해 썼다. 거기에 나는 없었다. 이상했다. 사랑받고 싶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맞추며 애쓸수록 내 존재는 희미해졌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존재다. 나는 나를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말만 듣고 그들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스스로 내 행동에 가치를 매긴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즐겁게 살면 된다. 그러면 충분하다.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생각을 다른 방향으로 바꿔주는 질문을 하고 스스로 답을 찾는다. 나에게 찾아온 감정을 자연스럽게 흘려보낸다. 지금 내 자리에서 진짜 내 실력을 높이는 데 최선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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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라이터
앨러산드라 토레 지음, 김진희 옮김 / 미래지향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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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32살, 헬레나 로스는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부와 명성을 지니고 있는 그녀는 마냥 승승장구할 것 같았지만,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된다.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으니 죽기 전엔 쓰려고 미뤄두었던 마지막 소설을 더 이상은 미룰 수 없었다.

하지만 3개월 만에 완성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해."

지난 4년간, 비밀로 간직해 온 그녀가 쓰고 싶어 하는 그날의 기억은 과연 무엇일까?


저자, 앨러산드라 토레는 뉴욕 타임스, USA 투데이, 월스트리트 저널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그녀의 출세작 『블라인드폴디드 이노센스(Blindfolded Innocence)』는 아마존 전자책만으로 출간되어 전자책 순위 1위에 오르며 큰 성공을 거두었고, 주요 출판사들의 관심을 끌며 작가로 데뷔하였다.

2017년, 그녀의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할리우드 더트(Hollywood Dirt)』는 장편 영화로 개봉된 바 있다.

토레의 소설은 지금까지 18개 언어로 번역되어 30여 개국에 출간되었다.

그녀는 또한 작가 커뮤니티이자 온라인 학교인 「앨러산드라 토레 잉크」를 설립하였고 20,000명 이상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자비 출판을 장려하는 앨러산드라는 대학, 컨벤션, 작가 단체 등에서 연설과 강연을 한다. 플로리다주 키웨스트에 있는 그녀의 집에서 다양한 글쓰기 프로젝트에 매일 몇 시간을 할애하고, 페이스북, 트위터 그리고 핀터레스트에서 팬들과 교류하고 있다.




나는 죽고 있다

'나'에게 작은 레몬만 한 종양이 생겼다.

주치의가 구구절절 설명한 바에 의하면 결론은 바로 이것이다. _'말기' 그리고 '석 달'


나는 슬퍼야 한다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전해야 하지만 친구는 물론 가족도 없는 '나'였다.


나는 기다려 왔다

어쩌면 탈출구가 나타났으면 하는 마음으로 4년을 기다려왔다.

지난 4년 동안 회피해온 그 진실을 말이다.


내가 그를 만났던 그 밤에는 퍼넬 케이크 냄새와 담배 연기가 짙게 배어있었다. 그가 미소 짓는데 내 안의 무언가가 움직였다. 허리가 곧게 펴진다. 심장이 평소보다 아주 조금 더 세게 뛰었다.

그 같은 남자는 나 같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눈으로 계속 나를 쫓거나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거나 나에게 더 많은 걸 원하지 않는다.

그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는 다르다. 그는 비웃지 않았다.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우리의 눈이 마주쳤다. 그의 입꼬리가 올라가고, 나의 세계가 변한다.


잔잔한 내 삶에 파도처럼 밀려왔던 사이먼, 그는 진정 사랑이었다.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나, 헬레나는 이제 일을 그만두어야만 했다.

그렇게 케이트에게 은퇴란 말을 꺼내자 서른 두 살에 누가 은퇴하는 사람이 있냐며 규칙 4번을 어긴 채 개인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사실상 헬레나가 은퇴하게 되면 케이트에게는 밥줄 자체가 끊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나 새 책을 쓸 거예요. 편집은 트리샤 프리전이 맡아주면 좋겠어요."

출판계에서 핫한 스타 에디터인 트리샤 프리전에게 헬레나의 원고를 맡길 순 없었던 케이트는 최대한 마지막 보루로 남겨놨던 친절한 목소리까지 장착한 채 마음을 돌리려 했지만 결국 무용지물이었다.

케이트에게 헬레나는 무뚝뚝 그 자체여서 두통과도 같은 존재였다.

처음엔 까다로운 고객이 될 줄 상상도 못 했으니깐.


헬레나의 조기 은퇴 선언으로 케이트는 헬레나의 집에 방문하게 된다.

그리고 마주한 것은 바로 헬레나의 모습이었다.

"이야기 나누고 싶었어요. …… 은퇴에 대한 얘기요."

"나를 직접 봤으니 이제 답이 됐어요?"

그랬다. 헬레나 로스는 은퇴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죽어가고 있었다.


세 달 남았다. 의사가 그렇게 말했다. 3개월이 남았고, 3백 페이지는 수월하게 넘을 써야 할 책이 있다. 나는 눈을 감고 셈을 해본다. 40일 간 초고를 쓰고, 40일 간 퇴고를 하고, 남은 열흘은 병가로 자유롭게 보내는 것. 그러려면 하루에 여덟 페이지, 그러니까 2천 단어를 써야 한다. 스트레스가 올라간다. 석 달 중 열흘 휴가는 말도 안 되는 스케줄이다. 그리고 하루에 2천 단어는 너무 벅차다. 특히나 책 한 권 쓰는데 보통 1년씩 걸리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얼마 남지 않았지만 글은 써야 했던 헬레나.

그녀에겐 대필 작가가 필요했다.


지금 내게 필요한 사람은 기술을 갖춘 사람, 나의 글 스타일을 아는 사람, 재능이 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지만 나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 내 이야기에 감정적으로 얽매이지 않을 사람. 자신의 감정을 모두 내려놓고 쓸 수 있는 사람이다.

정답에 도달하기까지 필요 이상으로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정답은 나의 뇌 언저리에서 서성이다가 불쑥 들어온다.

나에게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다.

그 여자에게 부탁하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낫겠다.


곰곰히 생각하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바로 마르카 반틀리였다.

여차저차하여 드디어 마주하게 된 마르카 반틀리, 순간 그녀 스스로 미쳤나 싶을 정도였다.

"마크 포춘이라고 하오. 마르카 반틀리로 더 잘 알려져 있지요."

마크 또한 헬레나를 자신과 비슷한 연배로 생각해 희끗희끗한 머리에 안경을 썼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작디 작은 여자가 내뿜는 분노를 보고있자니, 분노가 사람이라면 그것을 헬레나 노스라 생각할 정도였다.

단순히 돈이 걸려 대필을 부탁하는 게 아니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예요."

"가족 이야기지만 책의 시작은 그전부터예요. 사랑 이야기요. 남자가 여자를 만나고, 둘이 사랑에 빠지는 거요."

"둘이 결혼해서 아이를 하나 낳아요."

"비극이에요. 결국 아내는 그 둘을 잃고 말아요."

남겨진 시간에 글을 쓰겠다는 헬레나의 말에 마크가 자리에 일어서자 헬레나는 금액을 더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크는 돈 때문이 아니라며 자신에게 열아홉 살의 매기라는 딸이 있다고 입을 열었다.

"좋으시겠네요. 내 딸의 이름은 베서니예요. 3주 전에 케이크에 초 열 개를 꽂았어야 했는데. …… 그게 내 책과 무슨 상관이죠?"

"나라면 우리 딸이 인생의 마지막 몇 달을 썰렁한 집에 틀어박혀 나 같은 사람이랑 글이나 쓰고 있게 하지 않을 거요."

그러자 헬레나는 이내 입을 열게 된다.

"책은 내 남편과 딸에 대한 거예요. 둘 다 죽었어요. 나는 죽어가고 있고요. 그쪽이 앞으로 세 달 동안의 내 계획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건 나도 유감이에요. 하지만 나에게는 이게 중요해요. 그들의 이야기……. 나에게 중요한 건 이거 하나뿐이라고요."




처음부터 힌트를 던져주지 않아 그 비밀이 궁금해 빠르게 읽어내려갔다.

초반에 마크에게 입을 연 순간, 남편과 딸의 죽음에 분명히 개입되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진실을 마주하니 소름이 오소소 돋았었다.


나는 아이를 사랑한다. 아이 혼자 내버려두고 작업실에 있었을 때도 정신병원에서 행복하게 글을 쓰고 있었을 때도, 내 화를 못 이겨 접시들을 바닥으로 내동댕이쳤을 때도 나는 아이를 사랑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사랑했다. 나는 아이를 사랑한다. 나에게는 아이가 필요하다. 나에겐 필요하다…… 필요하다…….


그렇다. 헬레나는 분명 딸을 사랑했다.

그리고 마크 또한 진실을 마주하고 나니 헬레나가 얼마나 아이를 사랑했는지를 확인시켜 주었다.

남편 사이먼과 딸 베서니의 죽음, 그 내용의 실체는 뒷부분에서 밝혀진다.

뒷부분 내용을 적고 싶어도 결말이 오픈될 수밖에 없어 말할 순 없지만, 살짝 말하자면 사이먼에게 문제가 있다.


마지막 장을 덮기도 전에, 이미 헬레나의 마음이 십분 이해갔다.

읽고있는 독자 모두가 나와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그렇게 남편과 아이가 죽고 4년 후에 눈을 감게 된 헬레나는 딸 옆에 안치되었다.

직접 고른 묘비에는 '미안합니다'라고 적혀져 있는데 에필로그임에도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진실의 문을 열었기에, 이제 헬레나의 완벽한 거짓말은 무너지고 말았다.

헬레나가 가지고 있던 그 진실은 책에서 확인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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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라 2022-12-24 1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무게가 메리크리스마스를 외치기엔 너무 무겁네요.
하지만 즐거운 크리스마스 이브 되셔요. 하나님 메리크리스마스^^

하나의책장 2023-02-24 20:42   좋아요 1 | URL
조금 질질 끈 감도 있었지만 그래도 반전을 쥐고 있던 소설이었어요.

지각쟁이 하나가 이제야 댓글을 답니다ㅠ
하라님께 Merry Christmas! 라고 외쳤어야 했는데ㅠㅠ
다음주면 3월이라는 게 믿겨지시나요?
하루하루가 이렇게 빠를 수가 없어요ㅎㅎ
이제 봄이 성큼 다가왔네요.
아직은 쌀쌀하니 감기 조심하시고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