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전집 2 - 파이드로스 / 메논 / 뤼시스 / 라케스 / 카르미데스 / 에우튀프론 / 에우튀데모스 / 메넥세노스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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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플라톤전집Ⅱ에 수록된 대화편 8편 가운데 첫 번역인 세 대화편을 중심으로 얘기하겠다. 초기 대화편인 「에우튀프론」(Euthyphron)과 중기 대화편에 속하는 「에우튀데모스」(Euthydemos)와 「메넥세노스」(Menexenos)다. 중기 대화편 「파이드로스」와 「메논」은 2013년 5월에, 초기 대화편인 「뤼시스」와 「라케스」와 「카르미데스」는 2015년 1월에 한 권씩으로 출간된 바 있다. 플라톤전집Ⅱ는 플라톤의 초기 4편, 중기 4편의 대화편을 수록하고 있는 것. 기존에 출간된 대화편들은 충분하지는 않지만, 몇 차례 다룬 작품이다. 가능하다면 대화편마다 한두 가지씩 천병희 번역이 가지는 의미를 살필까 한다.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플라톤전집Ⅱ, 초기와 중기 대화편 4편씩 수록
No1「에우튀프론」은 박종현의 주석서로 일찍이 2003년에 번역되었다. 2018년 1월에는 정암학당 플라톤전집(20, 강성훈 옮김)이 오랜 만에 추가되었다. 그리고 이번에 천병희의 번역이 나온 것. 박종현은 「에우튀프론」을 「소크라테스의 변론」,「크리톤」,「파이돈」과 한 권으로 출간하였다. 이들 네 작품은 소크라테스의 최후 관련 4부작으로 분류되는 데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플라톤의 집필 시점과 무관하게 소크라테스는 사형을 선고받기 전후, 사형이 집회되는 순간까지 몇 차례 대화를 나누는데, 특정 시기에 집중되어 있다. 왜? 재판정에서의 ‘변론’ 이전에 진행된 대화는「변론」의 내용(과정)을 변론하거나 보완하고 있다. 「에우튀프론」은 그런 콘텐츠 가운데 하나일 뿐인  것이다. 그 단서는 '지식에 관하여' 논한 『테아이테토스』끝부분에서 발견된다. 
"나는 지금 멜레토스가 제출한 고발장에 답변하기 위해 왕의 주랑으로 가야 하네."(테아이테토스, 210d)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다음 날 테오도로스(테아이테토스의 대담자)와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는데, 그 대화가 『소피스트』다. 그리고 그 다음날 진행된 대화가 『정치가』로 집필된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이 중심에 있고, 이후 『크리톤』과 『파이돈』의 대화가 이어진다. 그런데, 『테아이테토스』 대화가 끝나고 고발장 관련 예비심사를 위해 왕의 주랑으로 간 소크라테스가 에우튀프론을 만나는 것, "기원전 399년 일흔 살쯤 된 소크라테스가 재판을 앞두고 아르콘 바실레우스의 주랑에서 에우튀프론을 우연히 만나 나눈 대화"가 「에우튀프론」이다.

 

「변론」이전에 변론을 위한 대화편 하나 추가요,「에우튀프론 」

멜레토스가 고발한 사유를 에우튀프론이 묻자 소크라테스는 대답한다. 1)(멜레토스는) 우리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는 자들이 누구인지 안다(그 '누구'란 소크라테스다) 2)옛날부터 믿어온 신들을 믿지 않고 생소한 신들을 만들어내는 까닭에 나를 고발했다('나'는 소크라테스다). ‘경건에 관하여’ 논의하는 「에우튀프론」는 고발 사유2 곧 '불경죄'와 관련되어 있다. 불경은 경건하지 못한 것, 신과 인간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개념이다. 플라톤은 '변론' 이전에 소크라테스가 결코 불경죄를 저지르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며칠 후 「변론」의 ‘변론’으로 기획(구성)한 셈이다. 고발사유 1)은 흔히 '소피스트 혐의'로 불리는데, 「에우튀프론」 대화에 이어 진행된 『소피스트』와 『정치가』가 「변론」을 위한 변론을 하고 있다. 또한 심오하기 그지없는 '지식에 관한' 논의 『테아이테토스』는 「에우튀프론」과는 다른 출발점에서 소크라테스가 불경죄 협의에서 벗어나는데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 최후와 관련해서는, 실제 대화가 이뤄진 순서를 다음과 같이 추정할 수 있다.
『테아이테토스』-『에우튀프론』-『소피스트』-『정치가』-『소크라테스의 변론』-『크리톤』-『파이돈』
「에우튀프론」에서 소크라테스는 경건이란 무엇이냐, 에우튀프론에게 집요하게 묻는다. 하지만 명확한 결론 없이 대화는 마무리된다. 다만 이 과정에서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질문이 등장한다. “경건한 것은 신들에게 사랑받기 때문에 경건한 것인가, 아니면 경건하기 때문에 신들에게 사랑받는가?"(10a,전집2 362면) 이른바 '에우튀프론 딜레마' 혹은 '에우튀프론 문제'라고 불리는 유명한 질문이다.

 

“신들에게 사랑받기에 경건한 것인가, 아니면 경건하기에 신들에게 사랑받는가?"
No2「에우튀데모스」의 부제는 '논쟁에 관하여'다. 액자 형식인데, 액자 밖 주 대담자는 소크라테스와 죽마고우인 크리톤이다. 크리톤(Kriton)은 다른 대화편 『크리톤』에서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소크라테스에게 목숨부터 부지하고 후사를 도모하자며 구체적으로 제안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조목조목 그러나 차분하게 반박하며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보여준다. 우리는 『크리톤』에 이어 두 친구의 아름다운 우정을 엿볼 수 있다. 심각한 철학 논쟁을 다루면서도 이들 죽마고우는 서로를 배려하고 시종일관 따뜻한 대화 분위기를 유지한다. 이 책 플라톤전집2권에 수록된 「뤼시스」는 '우정에 관하여' 논의하고 우정의 사례가 등장한다. 하지만 『크리톤』에 이어 「에우튀데모스」에서 두 대담자가 나누는 대화의 행간에서는 우정이란 무엇인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교감이란 어떠해야 하는가를 발견한다. 그러나 이것은 액자 밖 두 대담자의 대화를 읽는 가운데, 얻는 팁일 뿐이다. 친구 크리톤에게 소크라테스가 들려주는, 자신이 주도한 논쟁에 대한 이야기기는 첨예하고 때론 잔혹한 정로도 무차별 공격과 방어, 말의 전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각론에서 다루기로 하자) 다만 「에우튀데모스」는 아리스토파네스의 여느 희극보다 내용과 형식에서 조화를 이룬 한 편의 희극 작품으로 대접을 받았고 그 때문에 폄하되기도 하였다.

 

심각한 철학적 논쟁 다루지만 소크라테스와 크리톤의 우정 어린 대화가 돋보여
No3「에우튀데모스」가 한 편의 훌륭한 희극으로 평소의 소크라테스보다 감정의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메넥세노스」에서 소크라테스는 훌륭한 연설가로 ‘데뷔’한다. 「에우튀데모스」는 내재한 수수께끼가 하도 많아서, 다채로운 논쟁거리가 되며 늘 주시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는  천병희의 「메넥세노스」 번역은 어떤 의미일까, 간단하게 언급한다. 천병희는 한 포털사이트의 인터뷰에서 번역의 가치와 즐거움에 대해 이렇게 답한다.
"처음에 그리스어 텍스트를 대하면 완전히 앞이 캄캄합니다. …… 여러 가지 번역이나 주석 등의 도움을 받아서 손질을 좀 하면 괜찮은 번역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 내 착각인지는 모르지만. 그럴 때 어떤 희열 같은 걸 느끼죠."-[네이버 지식백과] 번역가 천병희의 서재(2015. 05. 28.)
원전(작품)의 재료인 해당 언어에 얼마나 정통하느냐와 별개로 번역 과정에서는 풀리지 않는,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는데, 기존 번역(다른 언어권 번역을 포함한다)이나 그 주석을 참고하는 과정에서 풀린다는 얘기다. 한 단어가 한 문장이 이런 추리과정을 통해 완성된다는 얘기다. 언제부터인가 천병희는 자신의 기존 번역을 참고하여 새로운 텍스트를 번역하고 있다. 그렇다면 천병희의 「메넥세노스」 번역은 어떠했을까?
연설 시간이 한정되어 있고, 해서 텍스트는 길지 않다. 해서 관련 대화편들과 묶는 계기가 없었을 뿐, 「메넥세노스」 번역 자체는 수월했으리라. 「메넥세노스」는 전후에 소크라테스와 메넥세노스가 나누는 대화(액자 밖)가 있지만, 대부분이 소크라테스가 행하는 연설(형식)이다. 그리고 이 연설(문)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투퀴디데스) 제2권 아테나이인 전몰자들을 위한 페리클레스의 추도사(Ⅱ권, 34~46장)를 패러디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원전)번역가가 천병희(2011년 6월, 숲)다. 소크라테스가 패러디하는 페리클레스의 연설은 '전쟁사' 본문에 등장하는 40여 편의 연설문 가운데 백미로 꼽히는 부분. 달리 얘기하면 페리클레스의 해당 연설은 번역가 천병희에게 1/n일 뿐이며 여기서 n은 40쯤이 되는 것.

 

'전쟁사' 페리클레스 추도사 패러디가 「메넥세노스」, 천병희의 빛나는 번역
투퀴디데스는『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전쟁(역사)의 주요 국면마다 ‘행한 것으로’ 연설문이나 대화를 재구성하여,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는 방법으로 창조하여 활용한다. 2008년 1월, 정암학당 플라톤전집으로 『메넥세노스』를 출간할 때 옮긴이(이정호)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부록으로 페리클레스의 추도 연설문을 옮겨 놓아 소크라테스의 추도 연설과 함께 살펴볼 수 있게" 한 것. 일종의 배려다. 그러나 당시에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원전)번역이 없을 때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메넥세노스」는 관련 작품 해설이나 친절한 주석보다도 ‘페리클레스의 연설’를 읽기 전 혹은 후에 비교 독서를 하지 않을 수 없는 대화편이다. 플라톤이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한 것인지 왜 그러는지 도무지 감(感)을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천병희는 2011년 제52회 한국출판문화상(번역부문)을 받는데, 수상작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다. 이번 플라톤전집 완역도 그렇고 상(賞)을 받으셔야 할 역작이 숱하지만, 그런 번역가 천병희에게 흔치 않았던 수상이다. 어쨌든 그 수상작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였고, 거기 수록된 유명 연설과 관련된 패러디 연설인 「메넥세노스」를 이제야 천병희의 번역으로 읽을 수 있게 된 것. 이것만으로도 아니 이것이야말로 이번 「메넥세노스」를 읽는 즐거움, 진가(眞價)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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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학 / 시학 - 그리스어 원전 번역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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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일을 당할 만하지 않은 사람이 치명적이거나 고통스러운 변고를 당하는 것을 보고 느끼는 고통의 감정'. 이렇게 아리스토텔레스는 '연민(clcos)'을 정의한다. 이어서『수사학』은 연민의 감정을 자세히 살핀다. 정의에서의 '변고'란 연민의 정을 느끼는 사람이 볼 때, 자신이나 자신의 친구 중 한 명이 머지않아 당할 법한 그런 것이어야 한다. 다가올 일과 관련되어 있단 얘기다. "연민의 정을 느끼자면 우리는 분명 우리 자신이나 친구 중 한 명이 어떤 변고를, 그것도 우리가 연민에 관한 정의에서 말한 것과 같거나 그와 거의 비슷한 변고를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수사학> 2권 8장-연민, 16~19행) 필자는 이 책을 일종의 '감정사전' 또는 ‘감정교육’을 위한 교재라고 정의하는데, 저자는 어떤 것이 연민을 불러일으키며, 우리는 어떤 사람에게 어떤 심적 상태에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논의를 이어간다. 

 

『수사학』은 일종의 '감정사전' 또는 ‘감정교육’을 위한 교재

『13번째 증언』을 읽었다. 저자가 응한 인터뷰들과 관련 기사들도 읽었다. 책에 관한 간단한 리뷰를 올리다가, 윤지오 배우의 책과 인터뷰에서 느낀 어떤 감정이랄까, 그것을 정확히 뭐라고 해야 할까, 『수사학』몇 장을 읽어가면서 추적해보게 돠었다. 10년 동안 저자가 간직하고 살아가는, 동료배우(언니)에 대한 감정은 어떤 것일까? 책보다 인터뷰들을 먼저 보아서인지, 가장 먼저 떠올린 단어는 '미안함'이었다. 책에는 죄책감, 자책감이란 단어도 보인다. 자신의 처지가 동료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때는 또 얼마나 두려웠을까? 첫 실명 인터뷰(<故장자연 씨 동료의 최초 증언(윤지오)_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윤 배우는, 그 기획사에 소속되기 전에 ‘언니’와 몇 개월을 알고 지냈다고 했다. 윤 배우 부모님은 캐나다에 살고 있었고, 언니는 부모님은 두 분 다 돌아가신 상태라 서로 의지하게 되었다는 것. 윤 배우는, 자신은 위약금을 물고 기획사를 나온 상태였으나 "언니는 나오고 싶은 상태"였지만 "그럴 수 없어서 기획사를 나오기 위해 작성된 문건" 때문에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보고 있다. 많은 뉴스들이 다루고 있으니, 이만큼만 언급하자.

 

『13번째 증언』과 인터뷰를 접하며 먼저 떠오른 말은 '미안함'

그런데, <수사학>을 살피는데, '미안함'이란 항목이 없다. 가장 근접한 감정들을(항목) 살피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연민'이었다. <위키백과>는 연민(憐愍/憐憫)을 ‘다른 사람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 또한 ‘상대의 슬픔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마음’으로 소개한다. 국어사전은 연민(憐憫)을 ‘불쌍하고 가엾게 여김’으로 유의어로, 동정(同情)을 소개한다. 같을 동[同]에 정 정[情]이다. 낯설고 새롭다. 명사 '동정'의 기본의미는 ‘남의 어려운 처지를 자기 일처럼 알아주거나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란다. 이런 사전풀이를 앞세우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연민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기술과 비교핼 볼 필요는 느껴서다. 우리가 연민의 정을 느끼는 사람들은 '안면은 있지만 아주 가까운 사이는 아니어야 한다.'는 것. 그럴 경우에는 우리 자신이 위험에 처한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되기에 그렇단다. 연민을 느끼는 대상과 나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끔찍한 것(기억)은 가련(可憐)한 것과는 다르며, 때로는 연민과 ‘반대되는’ 감정을 유발하기 때문이란다. 연민과 ‘반대되는’ 그 감정은 무엇일까?
끔찍한 것이 나의 문제로 다가오면 우리는 연민의 정을 느끼지 못한다. <수사학>에 따르면 10년을 마음감옥에서 보내고 있는 윤 배우가 언니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감정은 곧 '연민'이라고 볼 수는 없을 듯하다. 비록 남남이지만 윤 배우가 언니의 비극에 ‘참전하고’ 있는 정도가 연민 그 이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대신에 책의 한 대목에 주목한다.
"죽음으로 말하려 했던 언니의 고통이 다시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는 그 기억들을 피하지 않고 다시 마주했다. 다행히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13번째 증언』 244면
'다시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그가 숱한 증언을 마다하지 않았던 이유다. 비슷한 길을 걷는 이들 가운데 희생자가 다시는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잠재독자를 향하는 저자의 마음이야말로 ‘수사학’이 정의하는 연민에 가깝다. 

 

연민을 느끼는 대상과 나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가 필요하다

<수사학>에 따르면 연민에 가장 ‘대립되는’('반대되는'이 아니다) 것이 '분개(nemesan)'이다(같은 책, 2권 9장_분개). 그러데 이 감정도 예사롭지 않다. “부당하게 고통 받는 자들을 동정하고 연민하되 부당하게 번영하는 자들에게는 분개하는 것이 (인간이 가지는) 도리라는 것.” 부당하게 ‘고통 받는’ 자들에게 가지는 감정이 ‘연민’이다. 그리고 부당하게 '번영하는' 자들에게 가지는 감정이 분개다. 이렇게 연민과 분개는 대립각을 형성한다. 자신과 너무 가까운 사람이 고통받을 것이 예상될 때 가지는, 연민보다 더욱 깊이 참전하는(반대 되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런데, <수사학>은 이번에도(‘분개’의 경우도) '어떤 불상사가 우리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고 예상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이웃에게 일어나는 일 때문에 생긴다.'고, 분개라는 감정도 ‘부당하게 번영하는’ 상대와 나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가 필요하단다. 이에 따르면 『13번째 증언』이나 인터뷰는 ‘분개하는’ 감정을 포함하고 있지만, 또한 독자들로 하여금 분개하게 하지만, 앞서 제기한 어떤 ‘미안함’과는 좀 다른 듯하다.

 

부당하게 '번영하는' 자들에게 가지는 감정이 분개,  연민과 대립각을 형성

오히려 저자가 겪은, 겪고 있는 그 감정은 두려움을 동반하고 있거나 아직도 두려움 그 자체로 보인다. '두려움'(수사학 2권 제5장) '파괴나 고통을 야기할 임박한 위험을 생각할 때 느끼는 일종의 고통 또는 불안'이다. 세월이 약이라고는 하나, 이 사건과 관련하여 정작 두려워해야 할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고, 분개의 대상이 되오 있으며, 먼저 떠난 동료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그 친구를 제대로 배웅하기 위해 용기를 낸 자가 오히려 두려워하는 것으로 보인다. 뭔가 한참 잘못되어 있다. 『일리아스』라는 서사시의 배경은 10년 전쟁(트로이아 전쟁)이다. 그러나 그 주제는 ‘아킬레우스의 분노’, 일반화하면 ‘인간의 분노’다. 전쟁 10년째에 이르러 ‘끝내’ 아킬레우스는 분노한다. ‘분노’란? <수사학>은 '자신이나 자신의 친구가 까닭 없이 명백하게 멸시당한 것을 두고 복수하고 싶어 하는, 고통이 뒤따르는 욕구'라고 정의한다. '복수'나 '고통이 따르는 욕구'가 생경하게 다가오는데, 차분히 생각하면 심오한 정의가 아닐 수 없다. 아킬레우스가 아가멤논에게 분노한다. 그러나 절친인 파트로클로스가 죽자, 헥토르에게 복수하기 위해, 아가멤논을 향한 분노를 거두어들인다. ‘자신의 친구의 복수’를 위해 ‘자신의’ 분노를 거두는 것. 『일리아스』는 이처럼 주제인 분노에 대해 섬세하게 다루고 있다. 

 

 

‘친구의 복수’를 위해 곧바로 ‘자신의’ 분노를 거두어들이는 아킬레우스

<수사학>은 앞서의 정의에 입각하여, 만약 분노가 그런 것이라면, 분노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언제나 인류 전체가 아니라 특정 개인(일부)에게 화를 낼 것이며, 그 이유는(분노하는) '특정 개인이 분노하는 사람 자신이나 그의 친구를 해코지했거나 해코지하려 하기 때문'(이 책 2권 제2장-분노)이란다. 『일리아스』를 떠올리면 얼른 이해가 된다. 『13번째 증언』의 저자가 10년 전에 세상을 떠난 언니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은 어떤 미안함이고 자책감이고 회한일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그 감정을 정확히 뭐라고 할 수가 없다. 이 책이 계기가 되어 새롭게 사건의 진상을 밝혀히는 과정이 시민들을 ‘분노’하게 만드는 것과 다른 문제이다. 그것은 무엇일까? '연민'과 '분개' 사이에 있을까? '두려움'과 '분노' 사이 어디쯤에 있는 것일까?『수사학』의 목차를 살펴보기시를. 이 가운데 몇몇 항목들을 살폈으나 저자가 고인에게 느끼고 있는, 그 아음 읽기는 실패한 것 같다. 다만 그 그 과정에 의미를 부여할 뿐이다. 이처럼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은 인간이 가진 감정을 섬세하게 파고든다. 이 책이 일종의 '감정사전'이면서 ‘감정교육’을 위한 교재라고 정의하는 이유다. 연민과 분개와 두려움과 분노를 각각 꼭지점으로 하는 사각형 내부에 한 점을 찍는다면 과연 어느 지점이 될까? 과연 이런 가상의 사각형 안에 한 점을 찍을 수는 있는 것일까?  책 『13번째 증언』과 저자의 인터뷰, 관련 기사들을 대하는 마음은 예사롭지 않다.  『13번째 증언』 저자가 책의 출간과 인터뷰를 통해 보여준 우정이랄까. 그 아레테(arete)를 굳이 우리말 한 단어로 옮긴다면 그것은 ‘용기’가 아닐는지.

 

*이 글은 『13번째 증언』이란 책과 인터뷰들을 보면서 착안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 방점을 찍은, 필자의 '의견'이라, 해당 책과는 연동하지 않습니다. 이 책과 관련된 리뷰는 따로 올렸기 때문이기도 합니다.(필자 timeroad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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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번째 증언 - 2009년 3월 7일, 그 후 10년
윤지오 지음 / 가연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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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구매해놓고 한동안 펼치지 못했다. 저자의 인터뷰들과 관련 뉴스를 따라가기에 바빠서였을까? 뭔가 응원하고 싶은 마음을 짧게라도 밝혀야 할 것 같았는데, 그래도 차근차근 읽어나갔다. 읽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저자가 맞서 싸워야 했던 전쟁은 ‘오래된’ 것이었고, ‘고독한’ 전쟁이었다. 그런 전쟁의 기록들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고 장자연 씨의 '동류배우' 윤지오 씨가 펴낸 에세이집 『13번째 증언-2009년 3월 7일, 그 후 10년』 얘기다. 실명과 얼굴을 드러낸 첫 인터뷰도 놀라웠지만, 한 유명배우와 민형사상의 손해배상소송을 겪으면서도 이 사건을 놓지 않았던 이상호 기자와 저자의 만남은 한마디로 감동이었다. 이상호 기자와의 인터뷰가 거듭 진행될수록 많이 밝아진 저자의 표정을 살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을 다룬 독자 리뷰를 찾아보았는데, 쉽게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짧게 쓴 응원메시지는 많다. 이 사건이 가진 복잡성과 뭐라고 표현하기 쉽지 않은 미묘한 감정 때문이리라.

 

=『13번째 증언』의 저자가 10년 전에 세상을 떠난 언니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이, 미안함이고 자책감이고 회한이라고, 그렇지만 그 감정을 정확히 뭐라고 끄집어낼 수는 없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감정사전'이라고 할 수 있는『수사학』을 읽으면서 '연민'일까, '분개'일까, '두려움'일까, '분노'일까? 살펴보았지만 딱 떨어지는 한마디는 찾을 수 없었다. 어쨌든  이 책의 출간으로 상기하게 된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는 과정에는 '분노'가 따르고 있는 듯하다.

미란 기자가 고발뉴스(홈페이지)에 올린 이 책에 대한 글이 눈에 띈다. 어렵게 찾은 리뷰다.  

"그러나 여전히 장자연 죽음을 둘러싼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고, 윤지오 씨는 또 다른 피해자가 되어 있었다. 가해자들은 여전히 처벌받지 않은 채 잘 살아가고 있다." -<장자연 사건의 ‘유일한 증언자’ 윤지오 ‘13번째 증언’>
[출처:] http://www.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7217

 

=서양 고전을 주로 읽는 사람으로서, 그렇고 그런 비유를 함으로써 글을 맺어야 할 것 같다. 희랍어 아레테(arete)은 '미덕'으로, 번역가에 따라서는 '탁월함'이나 '훌륭함'으로 옮기기도 한다. 최근 발행된 플라톤 대화편 주석서 『고르기아스/메넥세노스/이온』(서광사, 2018.12.30.)에서 박종현 교수는, 「메넥세노스」편에서 아레테(arete)를 '용기'로 옮긴 까닭을 언급한다. 『펠로폰테소스 전쟁사』 Ⅱ권에 수록된 유명한 연설, '전몰자들을 위한 페리클레스의 추도연설’과 대비되는 소크라테스의 추도연설이 담긴 대화편이 「메넥세노스」다. 그런데 박종현은 전몰자들을 찬양하면서 언급되는 아레테(arete)를 '용기'로 옮기고 있는 것, 전쟁과 관련된 일반적인 언급이기에 'agathos'도 덩달아 '용감한' 또는 '용기 있는'으로 옮기게 된다는 주석도 있다.(「메넥세노스」 239d의 주24.) 이처럼『13번째 증언』의 저자가 책의 출간과 인터뷰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아레테(arete)를 굳이 번역해야 한다면, '용기'가 아닐는지. 그가 10년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그리고 편안하게 동료배우를 배웅할 수 있기를! 『13번째 증언』은 저자가 치르고 있는 10년 전쟁의 기록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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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투퀴디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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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 전쟁사』 1권을 참고하여, 서사시 『일리아스』의 배경, 트로이아 전쟁의 ‘속살’을 살핀다. 이 전쟁이 실제로 일어났을까? 이 전쟁을 왜 일어났을까?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읽는' 독자라면,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의 제1주제는 '아킬레우스의 분노'다. 나아가 '인간의 분노'인데, 10년 전쟁 가운데, 본격전투는 나흘(4일)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서사시는 당대의 거대한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서사시 『일리아스』의 배경, 트로이아 전쟁의 ‘속살’을 살핀다.

투퀴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이하 <전쟁사>> 1권에서 27년 전쟁(기원전 431~404)의 역사를 쓰는데, 본격적으로 쓰기에 앞서 이전의 그리스 역사를 살핀다. 그리고 이 전쟁(트로이아 전쟁)이 일어난 배경, 아니 '인간들의 전쟁이 왜 발생하는지'를 고찰한다. 호메로스의 작품으로 만나는 트로이아 전쟁을 객관적으로 다루는 것. 그렇게 긴 내용이 아니므로, 『일리아스』읽기 전후에 한 차례 읽는 것이 적잖은 도움을 줄 것이다. 그것이 힘들다면, 지금 소개한 내용들만 살펴보 아도 윤곽을 잡을 수 있으리라.(아래 내용 정리에서 ‘아티케’는 아테나이로, 헬라스는 '그리스'로 보아도 될 것임. 인용은 <전쟁사>1권이며, 가령 출처 [1(3)]은 1권의 1장 2절이다.괄호 안은 필자의 설명이다.)

'땅이 기름진 곳일수록 주민이 자주 바뀌었다.'[1(3)] (그러나) '땅이 척박한 앗티케(아테나이인들이 사는) 지방에는 옛날부터 파쟁이 없었고, 늘 같은 사람들이 정착해 살았다.'[1(4)] '전쟁이나 내분 때문에 나라에서 쫓겨난 자들 가운데 가장 유력한 자들이 헬라스의 다른 지방에서, 안정된 공동체인 아테나이로 망명하여 그곳 시민이 되었고, 그 결과 도시의 인구가 증가하여 앗티케 땅으로는 수용할 수 없게 되자, 아테나이는 이오니아 지방에까지 이주민을 내보내야 했다.'[1(6)] (그러나) '헬라스 공동체는 허약하기도 하고 서로 교류가 없던 까닭에 트로이아 전쟁 이전에는 어떤 종류의 집단행동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이 힘을 모아 트로이아 원정에 나설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전에 바다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3(4)]

 

본격적으로 쓰기에 앞서 '인간들의 전쟁이 왜 발생하는지'를 고찰한다.

헬라스에서 최초로 함대를 창건한 사람은 미노스다. 그는 지금 헬라스 해(에게 해)라고 부르는 바다의 대부분을 통제하고 퀴클라데스 군도(에게 해의 남쪽)를 정복하여 대부분의 섬에 처음으로 식민시를 세웠다. 그 과정에서 그는 원주민들을 축출하고 자신의 아들들을 통치자로 앉힌다. 그는 또 세수(稅收) 확보를 위해 있는 힘을 다해 해적을 퇴치하고자 했다. 트로이아 전쟁 이전이다. 식민(植民)의 역사가 이처럼 오래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식민시', '세수 확보', '해적 퇴치'와 같은 용어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것이 지금 생각하면 상당히 당황스럽다. 훗날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발발했을 때, 그리스의 여러 나라들 가운데  아테나이가 가장 강력한 해군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고려할 때, 헬라스 전체보다는 '앗티케(아테나이)'의 역사처럼 다가온다(투퀴디데스는 아테나이 사람이다).  당시 해적질은 오늘날 강도짓과 같은 불법(부정) 행위라기보다는 일종의 경제활동으로 취급되었다. 섬에 있는 도시든 육지에 있는 도시든 '장기간' '지속된' 해적질 때문에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세워야했다. 해적들은 자기들끼리도 약탈하고, 항해 여부와 상관없이 해안지대에 거주하는 모든 주민들을 약탈했다. <전쟁사>를 좀 더 읽어보자. 
 '옛날에는 헬라스인들과 대륙(아시아)의 해안지대나 여러 섬에 살던 비(非) 헬라스인들이 배를 타고 자주 왕래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해적질을 생업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해적질은 유력자들이 주도했는데, 개인적인 이익을 챙기고 백성들 중 약자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였다. …… 이것이 그들의 주된 생계수단이었다. 또한 이것은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라 일종의 영광스러운 행위로 간주되었다.'[5(1)] '…… 그리고 옛 시인들도 바다에서 상륙하는 자들에게 으레 "당신들은 해적이오?"라는 질문을 던지게 하는데, 이는 질문 받는 자들은 스스로의 행위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질문하는 자들은 그런 행위를 비난받아 마땅한 짓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5(2)] 

 

 '식민시', '세수확보', '해적퇴치'와 같은 용어들의 자연스러움이 당황스럽다. 

"당신들은 해적이오?"와 관련하여 『오뒷세이아』 3권 초입이 자주 거론된다. 텔레마코스가 아버지(오뒷세우스)의 생사 여부를 수소문하려고 트로이아 원정의 전우를 찾아 퓔로스를 갔을 때다. 네스토르(왕)가 식사를 대접한 후 나그네들은 누구냐고 텔레마코스 일행에게 묻는 대목이다.

 

"그대들은 뉘시며 어디서부터 습한 바닷길을 항해해 이리로/ 오셨소? 그대들은 장사를 하려는 것이오? 마치 해적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재앙을 안겨주며 자신의 목숨을 걸고 떠돌아다니듯이 말이오."  -『오뒷세이아』 3권 71~74행.

직업이 장사요? 해적이요? 네스토르는 경계하는 빛이 없을뿐더러 대수롭지 않게 묻고 있다. 트로이아 전쟁이 끝나고도 10년째에 이른 시점이다(오뒷세우스가 집을 떠난 지 20년째). 다시 <전쟁사> 1권. 그리스인들이 트로이아 원정에 나서기까지의 얘기다. 식민시 개척과 보호와 관련 있는 진술이다. '그러나 미노스가 함대를 장악한 뒤로 해상교통이 활발해졌다. 그는 대부분의 섬에 식민시를 건설하고 악명 높은 해적들을 몰아냈다.'[8(2)] '그리하여 바닷가 주민은 부를 축적해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었다. ……약자들은 이익이 될 것 같아 강자들의 예속을 받아들였고, 강자들은 획득한 자본에 힘입어 작은 도시들을 자신의 통제 아래 두었다.'[8(3)] '이런 상태가 제법 오래 지속된 뒤에야 헬라스인들은 트로이아 원정길에 올랐다.'[8(4)]

 

직업이 장사요? 해적이요? 네스토르는 대수롭지 않게 묻고 있다.

앞서 살폈듯 척박한 땅(아티케)을 가진 아테나이인들은 곡물을 비롯 생필품을 수입에 의존했다. 이런 물품들은 주로 헬레스폰토스해협(아시아 지역) 일원에서 왔는데, 배편을 이용했다. 헬레스폰토스해협은 바로 트로이아(트로아스)의 앞바다다. 일리아스』에는 트로아스가 얼마나 풍요로운 그리고 축복받은 땅인지 자세히 소개한다. 헬라스인들에게 트로이아는 한마디로 '탐나는', 원정할 가치가 충분한 나라였다. 또한 헬라스의 해양국가들은 헬레스폰토스해협 일대에 출몰하는 해적들을 소탕할 필요가 있다. 생필품 공급선이 안정화를 위해서다. 물론 '파리스의 선택'(신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또 하나의 전쟁 원인을 살필 수 있다. 스파르테의 왕 메넬라오스(그리스연합군 총사령관 아가멤논의 동생)의 아내인 헬레네를 트로이아(파리스)로부터 되찾아오기 위한 ‘명예회복 전쟁’이다. 헬레네의 구혼자들이 스파르테의 왕 튄타레오스에게 맹세했다. 까닭에 그리스 주요 국가들의 왕들이 함선을 몰고 전사들을 거느리고 종군했다. 그러나 이는 전쟁의 명분일 수 있다. 일찍이 미노스가 일군 해상도시들의 '안전' 도모, 어쩌면 이 원정 자체가 일종의 생계활동은 아니었을까? 거기다가 앗티케는 인구가 너무 많았다. 약탈하는데 세운 공과 그것을 배분하는 동안 발생한 '불공정'이 전쟁 중에 일어난 또 하나의 전쟁이다. 


트로이아는 한마디로 '탐나는', 원정할 가치가 충분한 나라였다.

트로이아 전쟁은 왜 10년이나 지속되었을까? 그보다 10년 동안 어떻게 그리스연합군은 수성전(守城戰)에만 집중하는 트로이아와 전쟁을 지속할 수 있었을까? 원정군은 늘 불리하다. 특히, 그 많은 전사들의 식량과 전쟁물자들은 어떻게 조달했을까? 『일리아스』 9권에서 그들의 절절한 사정을 살필 수 있다. 아가멤논과 화해하라며 사절단으로 온 오뒷세우스에게 아킬레우스가 거세게 쏘아대는 말들이다.

 

"꼭 그처럼 나는 숱한 밤을 뜬눈으로 새웠고/ 또 낮은 낮대로 피비린내 나는 숱한 날을 적군과/ 싸우며 보내기 일쑤였소. 그자들의 아내들을 위해서 말이오./ 사람이 사는 열두 도시를 나는 이미 함선들을 타고 가서 파괴했고,/ 또 육로로도 기름진 트로이아 도처에서 열한 도시를 파괴했소./ 그리고 그 모든 도시에서 값나가는 보물들을 수없이 노획해 와서/ 모두 아트레우스의 아들 아가멤논에게 갖다 바치곤 했소." -『일리아스』 9권 : 325~331행)
배를 타고 열두 도시를 파괴했고, 육지에 있는 도시는 트로이아 성 하나만 남겨놓은(열한 도시를 파괴했다) 상태다. 『일리아스』 곳곳에는 '12(열두)'라는 숫자가 자주 등장하는데. ‘전체’ 혹은 '모두'를 의미한다. 말하자면 헬레스폰토스해협을 낀 바다와 육지, 인근의 거의 모든 도시들을 초토화했다는 얘기다. 그동안 아킬레우스의 맡은 역할은 피비린내가 가득하며 처절하다. "마치 어미 새가 저는 고생을 하면서도 구할 수 있는/ 모든 먹이를 아직 깃털도 나지 않은 새끼들에게 갖다/ 먹이듯이,"(9권 323~325) 해적질을 하여 그리스연합군의 전쟁 자금과 군량을 확보했다. 그가 선봉장으로서 나선 보급투쟁은 또 하나의 전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가멤논은.. 그가 오뒷세우스에게 하는 말을 더 살펴보자.

 

"유독 나에게서만 마음에 맞는 여인을 빼앗아 가졌소. 그녀와 동침하며/ 재미나보라지! 하나 무엇 때문에 아르고스인들이 트로이아인들과/ 싸워야만 했던가? 무엇 때문에 아트레우스의 아들은 백성들을 모아/ 이곳으로 데려왔던가? 머릿결 고운 헬레네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필멸의 인간들 중에 아트레우스의 아들들만이/ 아내를 사랑한단 말이오? 천만에! 착하고 분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제 아내를 사랑하고 아끼는 법이며, 나 역시 비록/ 창으로 노획한 여인이긴 하지만 내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했소." -9권, 336~343행

브리세이스를 진심으로 사랑한 '내 아내'로 표현하는 것이 흥미롭다. 결국 메넬라오스의 아내(헬레네)를 되찾기 위한 전쟁 아니냐, 그의 형 아가멤논에게 날리는 직격탄이다.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해묵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전쟁이 10년째인 점, 앞서 인용한 『오뒷세이아』가 10년 전쟁이 끝나고 다시 10년 후인 점을 고려한다. <전쟁사>의 기술을 따르면, 아킬레우스의 경제활동(해적 행위)은 『이솝우화』가 그러듯이 약육강식의 '정의'에 따른 공적 활동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아킬레우스의 어미 새 비유는 얼마나 그럴듯한가! 흔히 『오뒷세이아』를 한 편의 로비무비이며 '성장소설'로 이야기한다. 또한 그리스인들이 이 작품을 통해, 바다(항해)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식민지 개척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 펠로폰네소스전쟁은 그러한 제국주의의 욕망이 극대화된 시기를 대변한다. 그런데, 『오뒷세이아』이전에 씌어진 『일리아스』의 배경이 식민지 (개척)전쟁의 일환이며, 안정적인 식민시 운영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쟁사> 1권 투퀴디데스의 진단에 따르면 그러하다.


『일리아스』의 배경은 식민지 (개척)전쟁의 일환, 식민시 운영과 관련되어

'호메로스의 증언이 믿을만한 것이라면'이라 전제하지만 <전쟁사> 1권 초반부에서 트로이아 전쟁 규모를 살피는 역사가의 시선은 예리하다. 원정군의 함선에 승선한 자들은 전사이면서 선원이어야 했다(그러나 펠로폰네소스 전쟁시에 선장도 선원들도 일정 급여를 주고 고용하였으며, 전사들의 역할은 따로 있다). 원정에 나서는 전사들 수를 최소한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갑판도 없이 옛날 해적선 모양으로 건조된 함선에 무구(武具)를 몽땅 싣고 난바다를 건너야 했으니까. 신들의 개입이 많을수록 인간의 자연(재해)에 대한 두려움을 많고 크다.

 

"그 이유는 인구(전사)가 부족해서라기보다는 물자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식량을 조달하기 힘들어 싸우는 동안 현지에서 식량을 조달할 수 있다고 예상되는 정도로 인원을 줄였던 것이다. 그들은 상륙 직후의 전투에서 승리한 뒤에도 모든 병력을 전투에 투입하지 않고, 식량이 부족해 케르소네소스 반도에서는 농사를 지으며 해적질을 일삼은 것 같다." -<전쟁사> 1권 11(1)
케르소네소스 반도는 에게 해의 북동쪽 헤레스폰토스 해협을 끼고 있는 트라케의 반도이다. 에게 해와 흑해를 있는 프로폰티스 해(海) 입구에 있으며, 건너편 트로이스(트로이아)와 비좁은 해협을 끼고 마주보고 있다. 농사가 한두 달에 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리스연합군들이 이처럼 분산되었기 때문에 전쟁이 무려 10년째 계속되었던 것,  원정군이나 성에 갇힌 트로이아 군이나 이 전쟁은 '생존투쟁'이기도 했던 셈이다. 먹어야 싸울 수 있고, 먹여야 싸우게 할 수 있는 그런 전쟁이었음을 <전쟁사>의 저자는 예리하게 분석하는데, 27년 전쟁을 살피는(읽는) 중요한 기준이기도 하다. 경제력은 예나지금이나 가장 든든한 전쟁의 조건이다. 또한 경제제재는 또 얼마나 ‘오래된’, 그들에게는 ‘확실한’ 전쟁무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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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road 2019-03-24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팁1]해적의 역사는 참으로 오래 되었으며, 우리나라에도 아주 오래 전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조선시대, 남서해안은 ‘왜구들‘로 불리는 해적들로부터 자주 공격을 받았다. 때문에 ‘진도(珍島)‘‘는 조선시대에, 유사시 섬 전체의 주민들을 소개(疏開)시켰다. 오늘날의 ‘진도군청‘쯤에 해당하는 관청이 전남 해남군 대흥사 입구에 ‘임시관공서‘로 설치되기도 했다. 이 부분을 언젠가 소개할 날이 있을 것이다.
 
원전번역 일리아스 / 오뒷세이아 세트 - 전2권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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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망’과 더불어 ‘교만(Hybris: 히브리스)’은 『일리아스』를 읽는 핵심 개념 중 하나인데, 이 서사시에서 가장 먼저 이 교만이란 말을 입에 올리는 사람이 아킬레우스다. 반면에 '미망(ate)'을 처음 그리고 자주 거론하는 이는 아가멤논이다. 이런 미망과 교만이 고대 희랍인들의 사고방식을 엿보는 데에서만 등장하는 것일까? 현대 서구인들(특히 미국의 지도자들)이 자신의 과오를 시원스럽게 인정하지 않는 데서도 그 DNA가 살아있음을 엿본다."(이 글에 피력한 필자의 의견에 대한 요지입니다.)

 

『일리아스』 19권 핵심은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의 화해 장면이다. 그리고 19권을 대표하는 핵심어 하나만을 고르라면 ‘미망’이다. 인간들의 왕 아가멤논이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기는 하지만 ‘신의 탓’으로 돌리면서, 체면치레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미망은 『일리아스』 의 제1주제가 ‘아킬레우스의 분노’임을 고려하면, 이 서사시를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개념임을 알 수 있다. 가급적 관련 언급(텍스트)들을 따라가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19권. 절친 파트로클로스가 전사하자,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를 죽여 복수하고자 다짐하고, 복수를 하자면 전투에 나설 수밖에 없다. 아가멤논을 향한 분노 때문에 전투불참을 선언한 그로서는, 그런 선언을 뒤집어야 하고, 그러려면 아가멤논과 화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군 지휘관들과 전사들이 회의장으로 모여든다. 마지막으로 아가멤논이 참석한다. 먼저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을 향해, 자신들이 여자 하나 때문에 불화한 것을 개탄한다. 이제 상황이 안 좋으니 감정을 억제하자고 제안한다. 분노를 거두겠다. 화해를 거부하고 계속 화를 낸 것은 옳지 않았다고, 그리스 군을 일으켜 전투에 나서자고 권한다. 자기도 싸우겠다고. 그리스 전사들은 아킬레우스가 분노를 거둔 것을 기뻐하지만, 아가멤논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채 말을 한다[그러자 인간들의 왕 아가멤논이 그들 가운데로 걸어 나오지 않고/ 앉은 자리에서 그들을 향해 말했다. 19권: 16~77행] 아킬레우스에게 직접 대답하는 것도 아니고, 회의장에 대중을 향해 말한다. 사람들은 아킬레우스가 전투에 나오지 않은 것이 내 탓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신들의 책임이라고. 희랍인들의 사고방식을 얘기할 때 자주 인용되는 대목은 이렇다.

 

"하지만 그 책임은 나에게 있지 않고 제우스와 운명의 여신과
어둠 속을 헤매는 복수의 여신에게 있소이다. 아킬레우스에게서
내가 손수 명예의 선물을 빼앗던 그날 바로 그분들이
회의장에서 내 마음속에 사나운 광기를 보내셨기 때문이오.
신이 모든 일을 이루어놓으셨는데 난들 어쩌겠소?
미망(迷妄)은 제우스의 맏딸로 모든 이의 마음을[91]
눈멀게 하는 잔혹한 여신이오. 그녀는 발이 가벼워 결코
땅을 밟는 일이 없지요. 그녀는 사람들의 머리를 밟고 다니며 
사람들을 넘어뜨리는데 둘 중 하나 꼴로
걸려들게 마련이지요."(19권: 86~95)

 

아가멤논은 그 책임을 제우스와 운명의 여신(모이라) 그리고 복수의 여신(에리뉘스)에게 돌린다. 자신이 아킬레우스의 여자를 빼앗은 것은 이 신들이 자기에게 ‘아테’를 보냈기 때문이라는 것. 아테는 보통 미망(迷妄)으로 옮기는데, ‘정신적으로 눈 먼 상태’를, 좀 더 넓은 의미로는 ‘피해, 손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아래 ‘강대진의 책’) 
그런데 『일리아스』에서 ‘미망’이란 단어는 2권(아가멤논의 꿈_함선목록) 아가멤논의 발언에 처음 등장한다(이 글의 맨 뒷부분 인용, ‘교만’이란 말을 처음 언급하는 이가 아킬레우스인 것과 대조를 이룬다). 출전(出戰)에 앞서 관례에 따라 말로 전사들(아레스의 시종들)을 시험하는, 전쟁을 그만 두고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슬쩍 떠보는 대목에서다. 

 

"친애하는 다나오스 백성들의 영웅들이여, 아레스의 시종들이여!
크로노스의 아드님 제우스께서 나를 큰 미망에 빠뜨리셨소이다."(2권: 110~111행)

 

이 경우 아가멤논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지만, 제우스가 보낸 거짓 꿈에 속아 (아킬레우스 없이도) 승리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는, 출전 준비를 하는 것. 9권에서도 아가멤논은 미망을 언급한다. 전세가 트로이아 군에 밀려 위급한 상황이기에, 여기에서의 ‘미망’은 앞(2권)의 경우와는 다르다. 그런데 그의 '신 탓'은 습관적이며 상습적임을 알 수 있다.  

 

"친구들이여, 아르고스인들의 지휘자들 및 보호자들이여!
크로노스의 아드님 제우스께서 나를 큰 미망에 빠뜨리셨소이다."(9권: 17~18행)

 

역시 9권에서 이번에는 네스토르(제안)에 대답하여 ‘미망’을 언급한다. 네스토르는 아가멤논의 과오를 지적하고 아킬레우스를 찾아가 우정의 선물과 상냥한 말로 달래고 설득하자는 제안을 하는 것, “나는 그러지 말라고/ 진심으로 말렸건만 그대는 자신의 거만한 마음에 복종하여(9권: 108~109)” 아킬레우스를 분노하게 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나이 많은 원로라고는 하지만 네스토르의 지적은 날카롭다. 이런 네스토르의 말에 아가멤논이 대답한다.

 

"노인장! 그대는 내 미망을 거짓 없이 사실대로 지적해주었소. [115]
내가 어리석었음을 부인하지 않겠소. 제우스께서는 지금
그 사람의 명예를 드높이고자 아카이오이족 백성들을 무찌르시거늘
그분이 그토록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야말로 실로 만군(萬軍)의 가치가
있소이다. 내가 사악한 마음에 복종하여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으니,
이를 바로잡기 위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보상금을 기꺼이 바치겠소."(9권: 115~120행)

 

흥미로운 것은 『일리아스』에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미망’(이란 개념)은 9권과 19권에서 보듯이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의 갈등, 그 중에서도 아가멤논의 ‘과실’과 연관되어 등장한다는 것이다.『일리아스』의 제1주제가 “아킬레우스의 분노”라는 점, 그 분노를 유발한 이가 아가멤논이며, 분노는 한 여인(브리세이스)을 빼앗은 데서 촉발되었음을 생각하자. 물론 아가멤논이 자신의 책임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신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아니다. "희랍인들은 늘 인간의 결정이 두 가지 수준에서 이뤄진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신의 영향이기도 하고, 자신의 책임이기도 한 것이다.”(강대진, 『일리아스, 영웅들의 전장에서 싹튼 운명의 서사시』 452면) 9권에서 약속한 바 있는 보상금을 언급하는 아래 인용에서 그러함을 읽을 수 있다.

 

"먼저 내 마음을 눈멀게 한 미망의 여신을 잊을 수가 없었소. [136]
하나 내가 이렇게 마음이 눈멀고 제우스께서 내 지혜를
빼앗으셨으니 나는 이를 바로잡기 위해 많은 보상금을 내놓겠소." (19권: 136~138행)

 

아킬레우스에게 주기로 약속한 보상금을 지불하는 것은 자신의 책임에 대한 인정이다. 자신의 ‘지혜를 빼앗은’ 제우스에게도 잘못이 있단다. 잘못을 했으면 잘못했다고 흔쾌히 인정하면 될 것은 결코 그러는 법이 없다. 물론 이 전쟁 전체를 지휘하는 총감독은 제우스이고, 앞서 2권에서 살폈듯이 제우스는 아가멤논에게 ‘거짓 꿈’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비록 용서를 구하고 화해를 청하지만 아가멤논은 인간들의 왕(왕중의 왕)으로서의 존엄을 잃지 않으려 한다. 아킬레우스는 그것을 잘 알고 있다. 9권에서도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이 (화해를 청하기 위해) 보낸 사절단(오뒷세우스)의 말을 들으며, 아가멤논의 말이 진심이 아님을 그 맥락에서 읽어낸다. 그럼에도 19권에서 아킬레우스는 대중들이 모두 듣는 자리에서 ‘미망’을 언급하며, 제우스가 준 ‘시련’ 때문에 아가멤논이 자신을 분노하게 했음을 '보란듯이'  언급한다.
 
"아버지 제우스여! 그대는 인간들에게 엄청난 미망을 주시나이다. [270]
그렇지 않았던들 아트레우스의 아들은 내 가슴속 마음을
격분시키지 않았을 것이며, 내 뜻을 거슬러 고집스레
소녀를 데려가지도 않았을 것이오. 이는 결국 제우스께서
많은 아르고스인들에게 죽음이 닥치기를 원하셨던 탓이오.
자, 우리가 어우러져 싸울 수 있도록 그대들은 가서 식사하시오!" (19권: 270~275)

 

아가멤논 스스로가 미망을 언급하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소녀(브리세이스)를 데려간 일을 다시 언급하는 것을 보면, 아킬레우스가 전적으로 아가멤논을 용서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 소녀 때문에 많은 그리스 전사들이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지 않은가! 그러나 왕의 체면을 살려주는 것이다. 투퀴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서두에(1권) 호메로스가 그리는 트로이아 전쟁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살피고 있다. 아가멤논이 그리스연합군 총사령관을 맡게 된 것은 여러 참가자(국) 중에서도 ‘실세’였음을 언급한다.

 

"아가멤논은 이 왕국을 물려받은 데다 누구보다도 강한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 트로이아 원정군 모병에는 충성심보다는 위압감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한 듯하다. 호메로스의 증언이 믿을만한 것이라면, 아가멤논은 누구보다도 많은 함선을 이끌고 갔고, …(중략)… 내륙에 살던 그에게 상당 규모의 함대가 없었다면, 바닷가에서 가까운 소수의 섬들 말고 다른 섬들까지 지배할 수 없었을 것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1권: 9(3), (투퀴디데스/천병희/숲) 

 

‘호메로스의 중언이 믿을만한 것이라면’을 전제하고 하는 기술이지만, 그가 당시 가장 유력한 통치자였기에 아가멤논은 이런 대군을 모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거슬려 오르면 아가멤논은 펠롭스의 자손이며, 펠로폰네소스(반도)라는 지명은 ‘펠롭스의 섬’이란 뜻임을 상기한다. 19권 맨 앞에서 인용한 부분에 이어 아가멤논은 신들의 왕인 제우스마저도 한때 미망(아테)에 눈이 먼 적이 있었다(신화)고, 하물며 인간은 나는 오죽하겠는가, ‘체면’을 잃지 않기 위한 발언을 한다.  하지만 아킬레우스가 진심으로 아가멤논을 화해를 받아들이는 것은, 23권 파트로클로스를 위한 장례경기를 마무리할 무렵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19권)은 절친이자 시종인 파트로클로스의 복수를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전투에 나서야 하며, 전투는 혼자서만 치를 수 없는 것, 결국 아가멤논이 나서야만 하기에, 내심이야 어쨌든 화해하는 모양새를 갖추는데, ‘미망(ate: 아테)’이란 개념은 절묘하게 쓰이고 있는 것이다.
‘미망’과 더불어 ‘교만(Hybris: 히브리스)’은 『일리아스』를 읽는 핵심 개념 중 하나인데, 이 서사시에서 가장 먼저 이 교만이란 말을 입에 올리는 사람이 아킬레우스다. 분노가 치밀어 아가멤논을 죽이려하자 이를 제지하는 아테네 여신에게 하는 말이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아이기스를 가지신 제우스의 따님이여!
아트레우스의 아들 아가멤논의 교만을 구경하기 위함입니까? [202]
내가 지금 그대에게 하는 말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인즉,
이제 곧 그는 자신의 교만 때문에 목숨을 잃게 될 것입니다."

-『일리아스』: 1권 201~205행. 

 

그런데, 이런 미망과 교만이 고대 희랍인들의 사고방식을 엿보는 데에서만 등장하는 것일까? 현대 서구인들(특히 미국의 지도자들)이 자신의 과오를 시원스럽게 인정하지 않는 데서도 그 DNA가 살아있음을 엿본다. 과연 자리를 박차고 떠난 그 회담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의견과 해설이 분분하지만, 제2차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와 그 참모진들이 보인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봄이 오나 했더니, 한반도의 평화의 봄은 아직 멀리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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