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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의식은 기쁨이 아닌 고통에서 생긴다. 누구나 즐거운 일을 함께 한 사람보다 고통의 순간을 함께 나눈 사람에게 더 친근감을 느낀다. 불행한 시기에 사람들은 연대의식을 느끼며 단결하지만, 행복한 시기엔 분열한다. 왜 그럴까? 힘을 합해 승리하는 순간, 각자 자기 공적에 비해 보상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상상력 사전』(318면, <연대의식> 중)


당연하지! 지당하신 말씀이지. 아무렴, 그럴 거야. 우리 마음도 항아리와 같아서 밑바닥이란 것이 있다면, 그 마음의 밑바닥을 채운 뭔가가, 힘겨운 시절을 함께 보내며 쌓은 연대 의식이란 것이 조금은 남아 있을 거야.


그런데 지금 그들은 왜 이럴까? 여기서 ‘그들’은 우리나라의 제1야당 새정지민주연합의 국회의원들을 비롯한 이해관계자들 혹은 이해당사자들이다. 그리고 지금은 2015년 5월 16일이다. 몇 분이나 지금 이 글을 읽을지, 읽는다 해도 그 때가 언제쯤일지 알 수 없다. 4.29 국회의원 보궐선거 패배의 책임론을 앞세우며  당 대표의 사퇴를 압박하는 같은 당의 국회의원들, 그리고 원로 정치인들이 보여주는 모습이 실망스럽다. 누군가 이 글을 읽는 때가 이러한 현 상황, 사태가 분명한 현 국면이 수습된 즈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글이 담고 있는 메시지가 꼭 이번 사태에만 맞춤한 제언이 아닐 것이 확실하므로 쓴다.


어쨌거나 지금 이들은 왜 이러는 것일까?
선거에서 이겨 공(功)을 다투는 것도 아니고, 왜 졌는가? 실패 원인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다가오는 본선(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되풀이되는 패배의 사슬을 끊기 위해 고육책을 내야 하는 때가 아닌가? 그런데, 그런 반성의 과정은 이하생략하고 당 대표 사퇴만이 그 해결책이란 결론을 서둘러 내렸다. 그리고 뽕나무에 올라 든든한 가지를 밟고서 오디 열매를 털듯 당 대표를 흔들고 있다. 이러이러하므로 당 대표가 사퇴해야 한다, 귀납법의 논증이 필요한 때가 아니었나. 당 대표 사퇴 말고는 길이 없다! 결론을 앞세운 연역의 논증을 하고 있는 듯한데, 내세우는 그 논거라는 것이 빈약하기가 거지 같다. 설득력이란 거의 없다. 이현령비현령이다. 돌아보면 세월호 참사 원인 규명 등 시급하고 절실한 국정 현안들을 미루고 전국 주요도시를 도는 ‘흥행’ 효과까지 거두며 뽑은 당대표가 아니었던가? 그 과정이 그렇고 그런 퍼포먼스일 뿐이었던가? 또한 이른바 당심(당원 투표)과 국민여론을 반영한 후보 경선을 통해 해당 지역구 선거에 나설 네 명의 국회의원 후보자를 뽑지 않았던가. 전략 공천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년의 본선(총선)에도 적용될 경선 원칙에 따라 후보를 선출했다. 호재도 있고 예상치 못한 악재도 있었다. 결국 받아든 성적표는 초라했다. 그렇다면 먼저 그러한 성적을 거둘 수밖에 없었던 원인 하나하나를 차근차근 규명해보시라, 그런 말씀이다. 원칙만 앞세워 유연하지 못하였던 것이 그 원인 중 하나인 듯싶다. 그러나 예외를 인정하는 원칙이란 없다. 다가올 총선에서도 국민 여론도 반영하는 경선을 후보자를 결정할 것인데, 그때에도 원칙을 고수하면 큰 문제가 생기는 모양이다. 현역 국회의원들이 훨씬 유리할 것인데, 의정활동은 물론이고 지역구 살림을 잘 챙기고 민심을 제대로 다독거렸다면 경선 걱정은 좀 덜 수 있지 않을까? 그러한 경선 과정이 총선 승리 가도에서 차질을 줄 것으로 예견되는 치명적인 문제점들을 가졌다면, 바로 지금이야말로 토론을 통해 중지(衆智)를 모아야 하지 않을까? 아니다. 절대 그렇지는 않다고 말하지만, 깃발만 꼽으면 당선은 '따 놓은 당상'인 지역구들의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깃발만 꼽으면 '따 놓은 당상'인 지역구들의 공천권을 행사하고 싶다고요?

'호남민심'이 어떻고 '광주정신'이 어떻고 하는 정치인들의 말을 듣노라면 저마다 아전인수 해석이라 씁쓸함을 느낀다. 언제까지 잡은 물고기 타령을 할 것인가? 내일모레면 5.18 광주민중항쟁 35주기다. 국가보훈처는 올해도 어김없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할 수 없다느니, 합창 정도가 알맞다느니 깨알 <보도자료>까지 내며 주장을 일삼는데 그런 억지가 따로 없다. 현행 헌법에는 5월 광주와 6월 항쟁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그렇다면, 5월에서 6월로 가는 길 위에서 목청껏 부르던 <임을 위한 행진곡>은 비록 제창할 노래까지는 아니라도, 그 의미를 폄하하거나 훼손해서는 안 된다. 여야 국회의원 대다수가 이 노래의 기념곡 지정에 찬성표를 던진 이유이지 않겠나! 내일 모레 5.18추모일에 제1야당의 깃발 아래 모이신 여러분들께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던 격동의 현장들을 떠올리시기를. 베르베르의 말처럼 힘든 시기에 힘없는 우리를 묶어주는 노래가 아니었던가! 제1야당의 강령에도 5월 광주와 6월 항쟁의 연대정신이 깃들어있지 않겠는가? ‘제창(齊唱)’도 여러 사람이 부르는 노래인 것은 맞다. 하지만 제창(諸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시는지? 모두 제(諸)가 아니라 가지런할 제(齊)의 제창이다. 합창(合唱)과 달리 동일한 선율을 두 사람 이상이 동시에 같은 음으로 노래하니까 ‘가지런하게 부른다’는 의미의 제창이다(권승호 선생의 <한자어휘사전>을 참고했다). 보훈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 합창곡이라면 모를까 제창곡은 될 수 없다고 한 진의가 무엇인지는 따지고 싶지 않다. 최소한 호남정신 운운하는 제1야당은 <임을 위한 행진곡>에 깃든 본래의 의미를 되새기는 제창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그나마 잘 맞지도 않은 화음으로 합창(合唱)하면서, 그것이 제창((齊唱)인 듯 호도하는 야당의 불협화음을 보고 싶지 않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본래 의미를 되새기는 제창(齊唱)을 하세요!

지금이 ‘자기 공적에 비해 보상이 부족하다고’ 호소하면서 당과 당의 대표를 흔들어야 하는 때인가? 어려울 때의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말이 있는데, 보다 큰 그림을 그리면서 연대할 때가 아니겠는가? 2500년도 더 된 오래된 고전에 파묻혀 사는 사람이지만, 지금 소개하는 고전의 한 대목을 읽으면서, 지금 우리들 모습을 비춰보는 말 그대로의 자숙(自肅)을 하시기를 바란다. 지금 우리에게 국가는 없다. 하지만 플라톤의 대화편 『국가』는 있다. 이 대화편의 한 대목을 소개한다. 플라톤은 이 대화편에서 철인정치를 주장한다. 지금 이 나라가 입헌군주국인 줄 아시는 분이 계시는데, 혹여라도 난독으로 철학자가 통치하는 왕도정치일 뿐이라고, 먼 나라의 옛날 옛적의 이야기라고 귓등으로 흘리지 않았으면 싶다. 철인(哲人)이란 철학자다. 통치 철학을 갖춘 국가의 지도자쯤으로 읽어도 좋을 것이다. 야당만이 아니라 여야를 통틀어 다음 대선 국면이 되면, 우리나라를 제대로 이끌 통치철학을 갖춘 후보자가 나타나 이 나라를 좋은 나라로 이끄는 말 그대로 행복의 나라로 이끄는 지도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가 누구인지는 지금 우리는 알 수 없다.

 

국가는 없다. 하지만 플라톤의 『국가』는 살아 있다.
『국가』 6권 초반부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철인 또는 철학자들이 사물에 대한 지식에 더하여 실무 경험을 쌓는다면 당연히 국가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은 용기, 정의 같은 미덕(arete)을 구비해야 할 뿐만 아니라, 배우기를 좋아하고 이해가 빠르고 기억력이 좋고 성실하고 절제 있고 도량이 넓고 우아하고 세련되어야 한다.[6권 485a] 이런 자질을 갖춘 대통령 후보를 우리는 맞이할 수 있을까? (필자는 결코 그가 누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유권자로서 꼬박 꼬박 투표권을 행사하지만 어느 정당에도 가입해있지 않으며, 가입해본 일조차 없다.) 그럴 수 있다면 우리 국민들은 참으로 행복할 것이고, 아름다운 나라를 꿈꾸어도 좋을 것이다.
그런 자격을 갖춘 철학자(=통치자)가 있다고 치자. 소크라테스(플라톤)은 얘기한다. “그러나 이런 자질을 갖춘 철학자를 국민들은 알아보지 못한다.”고. 뿐만 아니라, 우수한 자질을 갖춘 철학자들은 국가에서 푸대접을 받고 있다. 그리하여 소크라테스는 여러 척의 배나 한 척의 배 위에서 벌어지는 사태에 비유하여, 국가의 지도자를 알아보지 못할 뿐 아니라 저마다 리더가 되겠다고 나서는 어지러운 상황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배는 한 나라(국가), 조타술을 가진 진정한 키잡이는 자격을 갖춘 국가 지도자(혹은 한 조직의 리더), 그리고 배의 주인인 선주(船主)는 국민 혹은 한 조직의 구성원들이라고 생각해보자. 국회의원은 선출직이며 한 사람 한 사람이 입법기관이란다. 이때에 해당 지역구의 유권자들이 ‘선주’가 될 것이다.

 

”(여러 척의 배나 한 척의 배 위에서 다음과 같은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고 가정해 보게.) 선주는 배를 타고 있는 어느 누구보다도 키가 크고 힘이 세지만, 귀가 조금 멀고 시력도 약한 편이며 항해술에 관한 지식도 비슷한 형편이네. 또한 선원들은 키 잡는 기술을 배운 적도 없고, 자기들에게 그 기술을 가르쳐준 스승의 이름을 댈 수도 없으며, 언제 배웠는지 배운 시기조차 밝힐 수 없으면서도 저마다 자기가 키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고는 키 잡는 일 때문에 서로 싸우고 있네. 게다가 그들은 이 기술은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누구든지 배울 수 있는 기술이라고 말하는 자가 있으면 갈기갈기 찢어 죽이려 하네. 그리고 그들은 언제나 선주를 둘러싸고는 키를 자기들에게 맡겨달라고 별의별 짓을 다 하며 간청하고 있네. 선주가 그들의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면 이들은 죽여 없애버리든가 배 밖으로 내동댕이쳐버리고, 마음씨 좋은 선주를 약을 먹이거나 술에 취하게 하거나 그 밖의 다른 방법으로 꼼짝달싹 못하게 묶은 다음 배를 장악하고는 배 안의 물건들을 제 마음대로 써버리네. 그들은 흥청망청 먹고 마시며 그런 자들에게서 예상할 수 있는 그런 방법으로 항해를 계속하네. 게다가 그들은 자기들이 선주를 설득하거나 강제하여 지배권을 장악할 때 능수능란하게 도와준 사람을 항해에 능한 사람이니, 키를 잡을 만한 사람이니, 배에 관한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니 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지만, 그러지 않는 사람들은 쓸모없는 자들이라고 비난하네. 그들은 진정한 키잡이가 진실로 배 한 척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자면, 해[年], 계절, 하늘, 별, 바람은 물론이요 그 밖에도 이 기술에 속하는 모든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네. 그가 키를 어떻게 잡느냐 하는 것은 그가 키를 잡는 것을 사람들이 원하느냐 원하지 않느냐 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데도 그들은 이런 기술과 수련, 즉 조타술은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네. 이런 일이 배 위에서 벌어지고 있다면, 자네는 이런 상태에 놓인 배의 선원들은 진정한 키잡이를 실제로 점성가라든가, 수다꾼이라든가, 무용지물이라 부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천병희 옮김, 『국가』 6권 448b~489a)

 

이상의 인용이면 충분하다. 베르베르는 앞의 글(<연대 의식>)에서 친한 사람들을 갈라놓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에게 공동의 성공을 안겨주는 것이라며 묻는다.(괄호 안은...)
(1)얼마나 많은 가족이 상속을 둘러싸고 사이가 벌어지는가?(명절 때의 가족모임을 생각해 보라, 모든 가족들의 만남이 화기애애한 것은 아니다.) (2)성공을 한 다음에 로큰롤 그룹이 함께 남아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되는가?(얼마 전에 비틀즈의 멤버였던 폴 매카트니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 분명한 내한공연을 마치고 갔다) (3)얼마나 많은 정치단체들이 권력을 잡은 후 분열하는가?(참여정부 시절의 당신들의 모습은 이해할 수 있다) 베르베르는 “벗들과의 우정을 간직하려면, 자기들이 성공한 일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는 자기들이 실망한 일, 실패한 일을 자꾸 들먹이는 편이 낫다”고 한다. 지금 아베의 일본을 보면 어느 때보다도 속이 뒤틀리지만, 『일본 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라는 그들의 책을 읽던 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간담이 서늘하다. 4.29 재보선에서 제1야당은 왜 실패하였는가? 비공개라도 좋으니 끝장토론을 하고, 제대로된 백서 한 권을 낼 의향은 없는 것인가?

 

 4.29 재보선에서 제1야당은 왜 실패하였는가? 끝장토론하고, 백서 한 권을 내라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들에게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유산으로 남겼다. 소크라테스-플라톤이 말과 글로 제기한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반드시 갖춰야할 미덕들을 하나하나 총정리 한 책이다. 그런데 이런 미덕들이 조화롭고 행복한 삶을 위해 작동하려면 우애(친애)란 덕목이 필요하다. <윤리학> 8권과 9권 그리고 책의 앞부분에서 우애(친애/우정)를 강조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한 나라의 정치는 어떠해야 하는가? 우애의 개념을 국가경영에 대입한 책이 그의 『정치학』이다. 정치적인 연대는 어떻게 가능한가, 제발 공부 좀 하시라. 

어원적으로 보면, <공감 sympathie>이란 말은 <함께 고통을 겪다>는 뜻의 그리스어. soun pathein)에서 유래한다. 마찬가지로 동정compassion)이란 말 또한 <함께 고통을 겪다>라는 뜻의 라틴어<cum patior>에서 나온 것이다.”(앞의 베르베르의 책 <연대 의식>)

그레이트 킹 세종은 백성들의 문맹을 어여삐 여기는 마음으로 훈민정음을 창제했다. 서로를 어여삐 여기는 마음, 당면한 어려움을 공감하여 <연대 의식>을 회복하기를 바란다. 베르베르의 또 다른 글에서 확인하는 시사점도 가슴 저리게 한다. '분봉(分蜂)'이라는 글이다. 분봉(分封: 중국 천자가 땅을 나누어 제후를 봉하던 일)이 아님에 유의하시라. 늙은 여왕벌은 그동안 쌓은 보물들(비축식량, 잘 건설된 시가, 화려한 궁궐, 곳곳에 저장된 밀랍과 꽃가루와 로열 젤리 등)을 오롯이 남긴 채 일벌들만을 데리고 벌집을 떠난다. 그리고 몇 분이 지나면 어린 벌들이 버려진 왕국에서 부화하기 시작한다. 그들 가운데 떠난 여왕벌을 대신할 새로운 여왕이 있다. 그런데 차기 여왕벌이 결정되는 과정은 처절하다. 가장 먼저 깨어나 걷기 시작한 암벌이 살의에 찬 행동을 보인다. 다른 암벌들의 요람으로 달려들어 작은 위턱으로 눌러버린다. 밑에 깔린 암벌들을 일벌들이 빼내지 못하게 막고는 독침으로 자매들을 찔러 버린다. (다른) 어린 왕녀(王女)를 보호하려는 일벌이 있으면 제일 먼저 깨어난 암벌은 날개짓으로 호통을 치는데, 보통의 날개 짓 소리와 사뭇 달라, 신하들은 머리를 조아리고 여왕벌 후보인 암벌의 살생을 방치한다. 중요한 것은 바로 다음 순간이다. 


 

이따금 스스로 방어하는 암벌이 있으면, 두 암벌 사이에 전투가 결투가 벌어진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서로 대결할 암벌이 두 마리만 남게 되면, 둘 다 상대를 독침으로 찌르는 자세를 취하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베르베르, <분봉> 같은 책 316-317면)

 

어떤 일이 있어도 한 마리 암벌은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란다. 통치자가 되려는 욕구가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둘이 동시에 죽음으로써 여왕 없는 벌집을 만들 위험을 무릅쓰지는 않는 것이다. 마침내 한 마리의 여왕벌은 늙은 여왕벌이 떠난 왕국을 새롭게 통치하기 시작한다는, 그런 얘기다. 사람들의 정치가 다만 곤충일 뿐인 벌들보다 못해서야 쓰겠는가!

 

사람들의 정치가 다만 곤충일 뿐인 벌들보다 못해서야 쓰것는가!

야당에는 다음 대선의 후보가 될 ‘잠룡’들이 많단다. 자랑거리다. 정정당당하게 경쟁하여 본선 경쟁력이 가장 높은 한 후보를 선출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의 당 대표가 비록 지난 대통령선 총선에서 석패했다고 하여, 오는 대선의 후보가 되라는 법은 없다. ‘우리나라’ 유권자들이 가진 정치적 선택에서 보여준 역동성이 이를 입증한다. 통 큰 정치를 보여주는 이가 야당의 대선후보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지 않겠는가? 내일 모레가 5.18광주민주항쟁 25주기다. ‘광주정신’이 무엇인가를 되새기는 추모에 야당 정치인들이 함께 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망월동 구 묘역을 가시거나 국립묘지에 가시거나 무등산을 꼭 한 번 바라보시기를…….

무등산(無等山)이다. 등(等)은 ‘무리’ ‘같음’ ‘등급’ ‘기다림’의 뜻을 가지고 있다. 등급(等級)이 없는(無) 산(山)이다. 등급을 정할 수 없는 산, 등급을 따질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산이 무등산이다. 1980년 5월 광주 시민들은 무등(無等)을 보며 ‘평등’의 가치를 떠올리며 죽음을 무릅썼다. 가진 것이 많고 적음, 지위가 높고 낮음을 따지지 않고 그들은 생사를 넘나드는 어려움 앞에서 연대하였고, 민주주의라는 소중한 가치를 지켰다. 또한 이 좋은 봄날 5월에 광주에 오시려거든, 어느 방향에서도 바라보아도 그 모습이 그 모습인 무등산의 또 다른 얼굴도 확인하시길. 동쪽(영남 쪽에)서 바라보아도 북쪽(수도권)에서 바라보아도 서쪽과 남쪽(호남)에서 바라보아도 무등산은 그 모습이 그 모습 같다. 고(故)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노풍’의 진원지가 왜 광주였을까? 그대들은 잘 알고 있다. 지역감정을 깊은 골을 넘어서서 아름다운 우리나라가 되기를 열망하는 시민정신, 그것이 광주정신이고, 어느 쪽에서 보아도 항상 그 모습인 무등산을 바라보면서 터득한 지혜라고 생각한다.

 

이 나라의 주인이지만 투표지 한 장으로 '주인임을 확인하는' 권리를 행사할 수밖에 없는 유권자들은 보다 훌륭한 지도자를 보호하고 선택할 권리가 있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병이 나면 의사(병원)의 문을 두드리는 것(처럼)이, 지배받기를 원하는 사람이면 지배할 줄 아는 사람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 도리다.”(플라톤 『국가』  6권 489c)

 

통치자의 자질을 갖춘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국민의 부름을 받아 그 소임을 맡아야 한다. 그렇게 통치자의 역할을 맡기 위해서 자기 관리는 물론이고, 현재 선 자리에서 주어진 소임을 다해야 한다. 그러면 지도자로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통치할 사람들이 통치하는 일에 가장 열의가 적은 나라는 가장 훌륭하고 가장 조용하게 통치하게 되지만, 그와 반대되는 치차들을 둔 나라는 그와 반대로 통치하게 될 것이오.“(플라톤 『국가』 7권 520d)

그럴 수 있다면 그리 항 수 있게 된다면, 국가는 있는 것이고 그 국가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까?
-다시 맞이한 5월, 먼발치에서 무등(無等)을 바라보며,

 

無等에 올라

 

무등에 올라
그리운 분지 광주가 눈시울에 가득할 때
행복했던 어느 봄 남쪽바다 제주에서 보았던
분화구 산굼부리를 생각했다.
생명 있는 것과 없는 것 땅과 하늘을 태우던 용암과
뜨거운 불 토하기를 잊은 채
깊고 깊은 가슴의 끝까지
푸르른 숲과 바람과 안개를 가두고 키우던
적막의 웅덩이
그때 나는 여행중이었고
햇빛과 나의 신부가 따뜻했으므로
둥글게 가라앉은 억 년의 고요가
차라리 평화로와 좋았다.
절망과 희망으로 혼을 놓고 다시 깨어나는
그 후의 몇 년이 지나면서
단단하여 결코 죽지 않는
세상에 흔한 한 풀씨가 되어
어느 날 무등에 올랐을 때
의롭고 귀한 것을 위하여 눈물겹게 아프게
사는 사람들의 마을이
침묵 속에 아름다웠으므로 오래 생각했다.
무엇이든 없애고 새로이 일으킬 수 있는
용솟음의 불덩이를 갈무리한 채로도
다만 소리없이 숲과 바람, 벌레를 키우며
참고 견디며 끝끝내 기다리던 분화구
그리고 우리들 무등.
깊은 소용돌이 희망의 화염을 다독이는
넉넉한 사랑과
끝까지 기다림에 드는 아름다움.

 

-<나해철 시집 『무등에 올라』(창작과비평사 1984)에서

 

그리고 한 장의 사진.

올해도 어김없이 망월동 구 묘역과 인근의 국립묘지 두 곳에서 각각의 추모식이 진행될 예정이다. 더구나 구 묘역의 기념식에는 5.18 유가족들과 4.16 세월호 유가족들이 함께 한다. 그들은 전국에서 모인 시민들과 함께 올해도 어김없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齊唱)할 것이다. 지난 2월 안산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출발하여 진도 팽목항까지 도보 순례를 하던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광주 금남로 5.18광장(옛 도청 앞)을 찾았을 때 촬영한 사진이다. 옛 도청 앞 광장에는 마침 시계탑이 돌아와 있었고, 참가자들은 행사 끝 무렵에 분수대를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며 군무를 펼칠 예정이었다. 광장 건너편 커피전문점 3층 창가에서 전경을 촬영하기 위해 기다렸다. 그런데, 할머니 한 분이 무대 앞에 나와(작은 사진이지만 '호'와 '를' 사이에 선 분이다) 긴 말씀을 하시는데, 실내에 앉아 있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 수가 없었다. 광주를 대표하여 이귀님 할머니(오월어머니회)가 5.18의 역사와 상처, 그 극복을 위한 투쟁을 세월호 가족들 앞에서 증언하신 것이다. 먼발치에서 하시는 말씀은 듣지 못하였지만 떠올린 네 글자면 충분했다. ‘동병상련(同病相憐) 여러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다.

사진과 글_타임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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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메난드로스의 희극 <사모스의 여인>이 처한 상황을 약간 뒤틀어볼 차례이다. 

동거녀가 낳은 아이인 것으로 두 아버지를 속인 상태에서 아이가 자란다고 생각해보자(그리고 그 아이가 딸이라고 하자). 자신의 혈육이 태어난 상태이므로, 데메아스는 동거녀 크뤼시스를 정식으로 아내로 맞이한다. 크뤼시스는 동거녀일 뿐인 불안정한 신분에서 정실 부인으로 신분 상승을 이뤄냈다. 아이의 어미를 자처한 목적을 이룬 것이다. 이제 아이는 친아빠 모스키온을 오빠로 알고 자란다. 또 친엄마를 오빠의 아내, 올캐로 알고 자란다. 시누이와 올캐 사이가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보다 더 나쁘다는데, 당시 그리스의 상황은 알 길이 없으나, 그냥 우리나라라고 하자. 시누이를 엄마보다도 더 알뜰하게 보살피는 올캐의 친절함에 가끔은 의구심이 생기지만 하지만, 둘의 사이는 다정하다. 

대체로 아직 어린 딸이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성폭행을 당하거나 철없는 시절의 '불장난'으로 임신을 하게 된다. 그 딸의 부모들은 딸에게서 태어난 아이를 자신들 호적에 늦둥이쯤으로 올리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딸)는 친엄마를 언니로 알고 자란다. 그 언니는 새로운 남자를 만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결혼하여 집을 떠나고, 할머니를 엄마로 알고 자랐던 소녀는 어느날 자신의 엄마가 사실은 할머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소설이 드라마로 만들어지면서, 원작소설의 개정판이 나오고, 후속편이 나온 최문정 장편소설 <바보엄마1_영주 이야기>다. 후속작 <바보엄마2_닻별 이야기>는 친엄마를 언니로 알고 자라지만, 할머니를 엄마라고 불러야 한다. 그런데 그 언니이자 친엄마가 정상인이 아니다. 이런 사실을 남편에게 알리지 않고 결혼하고, 언니이자 친엄마를 요양원으로 보내버린다. 할머니를 엄마라고 불러야 했던 영주가 할머니에게서 받은 스트레스도 상당했다. 훗날 딸 하나 낳게 되는데, 이런 상황을 알고 있는 딸의 입장에서 겪는 이야기가 후속편에서 이어진다, 어린 딸이 성폭행을 당해 아이를 낳은 사실을 숨기려는 데서 파생된 비극을 다룬 소설이다.

"'동생'이라……. 틀린 말은 아니었다. 분명 난 그녀의 동생이었으니까, 하지만……. 결코 진실도 아니었다. 난 출생에서부터 기존의 모든 가족 관계를 깨뜨리고 나온 아이였다. 외삼촌이 오빠가 되었고, 외할아버지가 아버지가 되었으며, 외할머니가 엄마가 되었다. '언니'라는 호칭으로 부를 수도…… '엄마'라는 호칭으로 부를 수도없는……. 그래서 그녀는 나에게 영원히 '그녀'라는 3인칭이 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바보엄마1>, 초반부)

 

<Mr. 박을 찾아주세요>라는 이색적인 제목의 박현숙 장편소설. 필리핀에 있던 작가의 딸에게 한 필리핀 여성이 ‘서울에 사는 미스터 박’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는 실제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았다.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간 한국의 젊은이가 현지의 필리핀 아가씨를 만나 사랑을 나누고, 남자가 한국으로 돌아가버린 뒤에 아빠 없는 혼혈 아들이 태어난다. 과묵한 아이인 '코피노 ' 리바이다. 필리핀 엄마는 아들에게 한국인 아빠를 찾아주려는 일념으로 스무 살 많은 남자와 결혼하여 한국에 왔다. 그리고 끝내 그녀는 목적을 이룬다. 

그런데, 여기에 또 다른 혼외자녀인 리바이와 같은 반 여자아이 강파랑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딸이 젊은 날 원치 않은 임신을 한 것을 알게된 파랑이의 할머니는 파랑이를 자신의 딸로 호적에 올린다. 그리고 파랑이가 손녀라는 사실을 비밀로 한 채 살아간다. 파랑이의 친엄마이자 언니는 시집을 가 시치미를 뚝 떼고 잘 살고 있다. 가끔 동생(딸)이 찾아오면 남편에게 들킬까봐 전전긍긍하기도 하지만. 그런데 홀로 살아가던 파랑이의 늙은 엄마(사실은 할머니)는 노년을 기대고 싶은 결혼 상대(노신사)를 만나 결혼할 예정이다. 여기에서 파랑이 인생에 파란이 일어난다. 이제야 파랑이의 출생의 비밀을 넌지시 알려주는 할머니, 결국 파랑이는 편의점 아르바리트를 하며 겨우 살아가는 생물학적인 아버지를 찾으러 나서고, 친구 리바이와 다르지 않은 처지인 자신을 발견한다.

 

두 여성작가의 세 작품은 메난드로스의 희극 <사모스의 여인>이 가지 않은 길을 떠올리게 한다. 두 작품 속의 할머니가 할머니이면서 딸의 딸을 딸로 여기며 살아간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2013년 초반 SBS에서 방송된 24부작 월화드라마 <야왕>을 기억하시는지, 박인권 화백의 만화 《대물: 야왕전》이 원작인 이 드라마다. 여기에서 백학그룹의 백창학 회장(이덕화 분)의 장님 백도훈(유노윤호 분)이 사실은 누나 백도경(김성령 분)이 젊은 날의 실수로 낳은 아들이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이런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이야기가 등장하는 예는 비일비재하다. 그 자체가 중요 화소(話素)이기도 하고, 양념으로 곁들여지기도 한다. 한 예로 든 <야왕>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이런 출생의 비밀을 애용하는 드라마는 이른바 '막장 드라마'라 불리거나 그런 드라마로 흐를 위험성을 안고 있다. 아니, '막장 드라마'라면 이런 설정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첫번째 페이퍼에서 저승으로 찾아가 만나는, 고대 그리스의 구희극 대표시인 아리스토파네스와 신희극의 대표시인 메난드로스를 설정한 바 있다. 고대 그리스 희극의 창시자와 그 희극의 완성자로 부를 수 있는 두 시인은 훗날 끊임없이 변용되어 활용되거나 진화되는 소설이나 드라마들을 보며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 것인가? 우리의 1970~80년대에 활발한 순수-참여 논쟁과 같은 상황이 극적으로 벌어질 수 있으리라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죽은 시인의 사회가 아니라, 죽은 언론의 시대를 살아간다. 아리스토파네스라는 위대한 희극 시인을 진정한 선배로 모셔야 할 사람들은 우리 시대의 언론인들이다. 막장 드라마를 씹으면서도 매회 놓치지 않고 보는 시청자들이 있기에 막장 드라마는 계속된다. 소재로만 보면, 우리의 막장 드라마와 다를 바 없는 듯하지만, 비극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삼아, 유쾌한 웃음을 선사하는 메난드로스 희극에서 배울 점이 있다. 드라마 작가와 시청자 모두가 자극 받아야 할 작품들이 2400년 전에 이미 연극 무대에 올랐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때론 산다는 것은 거기서 거기,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일 때가 있다. 우리 생(生)이 가진 보편성을 전제할 때 진정 새로운 작품이 탄생하여 우리 생이 간직한 또 하나의 이면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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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고대 그리스의 신희극 4편이 담긴 희극집과 현존 고희극 11편이 2권의  전집 2권이 번역되어 한눈에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옛날 옛날 아테네에 테세우스라는 용맹하고 고독한 왕이 살았다. 그는 일찍이 비로 맞이했던 아마존 여왕 힙폴리테가 아들을 하나 남긴 채 죽자 크레타 왕의 딸 페드라(파이드라)와 결혼한다. 페드라는 젊은 날의 왕(테세우스)에게 버림받은 아리아드네의 자매였다. 아테네에 당도한 페드라 공주는 전처 소생의 아들 힙폴뤼토스와 만난다. 그는 아버지의 덕목을 상속한 아름다운 젊은이였다. 이야기(신화)는 구애를 거절당한 페드라가 '포세이돈 신에게 복수를 기원해' 바다 괴물이 힙폴뤼토스의 이륜차를 산산조각 내는 것으로 끝난다.  한편 라신의 운문비극 <페드르>에서는 왕의 저주가 아들을 죽이고 페드라도 자살한다.

<위, 알렉시스를 열연한 안소니 퍼킨스, 신화 속 힙폴뤼토스>

<아래, 비극 <힙폴뤼토스>를 수록하고 있는 천병희가 옮긴 <에우리피데스비극전집1>>

영화 <페드라>(미국, 프랑스, 그리스)는 1967년에 개봉되었고, 1996년에 재개봉되었다. 바하의 토카타가 파이프 오르간 연주와 함께 울려나오며, 과속하는 자동차의 거친 소음 그리고 앨렉시스(안소니 퍼킨스)의 격정에 찬 소리, "페드라~" 곧이어 차가 절벽에 떨어지는 듯한 소리. 영화 음악이 특히 유명하다. 영화에서 페드라는 선박왕의 딸(멜리나 메르쿠리)이고, 알렉시스(안소니 퍼킨스-신화의 힙폴뤼토스)는 현재의 남편과 헤어진 영국 출신 아내와 낳은 아들이다. 영화에서 알렉시스는 새엄마와 동행한 파리  여행에서 그녀의 유혹에 한 순간 넘어간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방학을 맞아 아버지의 집(그리스)으로 돌아온 아들은 더 이상 그녀에게 눈길조자 주지 않는다. 애를 태우는 페드라의 선택은 극단적인 비극에 이르게 된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 <죽어도 좋아>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었다. 페드라 역의 그리스 여배우 멜리나 메르쿠리는 훗날 그리스 문화부장관을 역임했다.

'시골의사' 박경철은 작년 이맘때 펴낸 그리스기행 1권 <문명의 배꼽 그리스>에서 대장정의 첫 여정으로, 영화 페드라의 마지막 장면 배경인 메가라를 지나 해안을 따라가는 옛길을 소개한다.

"이 길은 고대 그리스인들의 영원한 주제였던 '금기를 넘어서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 신과 어깨를 겨루던 당대의 영웅조차도 결국에는 인간의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신 앞에 무릎을 꿇고 만다는 '나약한 인간의 실제'에 대한 내러티브가 담긴 비디오 가이드인 셈이다.'(29면)

<한겨레>의 종교전문기자 조현은 <그리스 인생학교>에서 그리스 본토를 떠나 크레타 섬으로 여정을 이으며, 젊은 날 테세우스 신화 속 인물들의 비극을 소개한다. 테세우스는 아버지 아이게우스(아테네)가 미노스(크레타)에게 해마다 14명의 소년소녀를 조공으로 바치던 관행을 끊기 위해, 그들 중 한 명이 되어 크레타 섬으로 향한다. 미노스 왕의 딸 아리아드네의 도움으로 미션에 성공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아리나드네를 버리고, 아테나이를 떠나던 날, 아버지와의 약속을 깜빡 잊는 바람에 비극을 맞이한다. 아버지는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 성공했으면 흰 돛을 실패했으면 검은 돛을 달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테세우스는 흰 돛으로 바꿔다는 것을 깜빡한 것이다. 아들이 죽었다고 생각한 아이게우스 왕은 절망 끝에 바다에 몸을 던져 죽는다. 오늘날 '에게 해'라는 아이게우스에게서 유래한다. 파이드라는 크레타의 미노스 왕와 파시파에 왕비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아리아드네와 자매간이다.

이제 파이드라(1)와 휩폴뤼토스(2), 테세우스(3)의 비극을 메난드로스의 희극 <사모스의 여인>과 비교할 차례다. 이들과 대응하는 희극 속 인물은 '사모스의 여인' 크뤼시스(1), 아들 모스키온(2)과 아버지 데메아스(3)다. 신화와 비극에 충실할 것인가, 영화(시나리오)에 충실할 것인가는 고민거리다. 다만, 희극 <사모스의 여인>이 고대 희극이라는 점에서 영화는 접어두고, 신화(비극)를 비교 대상으로 삼기로 하자.

신화(비극)에서 파이드라(1)는 유모의 조언을 받아들여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휩폴뤼토스(2)가 자신을 겁탈한 것처럼 위장하여 테세우스(3)가 아들을 오해하게 만든다. 희극에서도 아버지 데메아스의 오해가 극을 절정으로 이끈다. 선의(善意)에서 꾸민 일인 줄 알지 못한 데메아스(3)는 아이 아버지가 아들 모스키온(2)이라는 말을 엿듣고, 자신의 동거녀 크뤼시스(1)가 자가 아들과 잠자리를 하여 아이까지 낳았다고 생각한다. 신화(비극)와 달리 희극에서는 '아이'라는 너무나 확실한 증거가 있다. 신화(비극) 속 파이드라가 연출한 겁탈의 정황 증거보다는 분명하다. 데메아스(3)의 여행 기간은 어느 정도였을까? 최소한 10개월 이상이라야 자신이 없는 동안 에 아이를 잉태한 것이 된다. 만약, 10개월 이내라면 자신이 여행을 떠나기 전 집에 있는 동안에 불의한 일이 생긴 셈이다. 자신이 집에 있는 동안이냐 집을 떠나 있는 동안이냐는 중요한 부분이다. 자신이 집에 있는 동안 저지른 불의라면 누구도 용서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없는 동안에 생긴 일이라면 성인이 된 아들과 젊은 여인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 또 하나 친아들은 아니므로, '근친상간'이기는 하나 심각성은 덜하기 때문이다. 다만, '오이디푸스 왕'의 경우를 떠올릴 때, 오이디푸스는 왕비가 자신의 친어머니인 줄 모른 상태였으며, 정식 부부였다. 그러나 혈연 관계였기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다. '희극'의 경우는 아버지와의 관계를 아는 상태에서 아들이 저지른 일이라는 점에서는 용서할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아들과 동거녀는 혈연 관계는 아니다.   

신화(비극) 속 테세우스는 젊은 날을 총기을 잃은 상태로 정황을 분별하지 못해 오해한다. 아마도 '희극'의 아버지 데메아스의 경우도 앞서 '여행 기간'을 추정해본 것처럼 사실은 10개월 이내로, 자신과 동거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일 수 있다는 점을 깜빡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아이를 아버지의 아들인 것처럼 꾸미는 과정이 별다른 고민(갈등)이 없기 때문이다(일부 누락된 대목 때문에 생긴 작품에 대한 오해일 수도 있고, 작품 해석이 달라질 수도 있다). 다만 신화(비극)와 희극이 아버지가 자신의 여자와 아들 사이를 '오해'한 데서 갈등을 촉발된다는 점에서, 아버지들의 오해된 성급한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비극(신화)과 희극, 둘이 달라지는 지점은 사태를 파악한 아버지들의 반응과 후속 조치다. 테세우스나 데메아스나 아들 사랑은 극진했다. 일반적인 아버지들의 아들에 대한 사랑과는 비교할 수 없이 각별한 것이었음을 강조되고 있다. 

테세우스는 기도를 올리는 정도로 대응하지만, 그 대상이 자신의 또 다른 아버지(헬레네가 제우스의 딸이기도 한 것처럼)인 포세이돈 신이다. 포세이돈이 자신의 소원 세 가지를 들어주기로 약속이 되어 있다는데, 그 가운데 하나를 사용한 것이니, 강력한 조치가 아닐 수 없다. 포세이돈은 아들의 소원을 곧이곧대로 들어줌으로써, 오해에서 비롯된 소원을 들어줌으로써 아들의 아들을 죽인 셈이다. 또 다른 비극이다. 테세우스의 아들에 향한 증오는 애증(愛憎)이 발생한 것으로, 이런 감정의 복잡성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다. '사랑하기에 떠나신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과 같다.

희극의 아버지 데메아스는 지체하지 않고 아들의 입장을 옹호하고, 대응한다. 아들에 대한 분노는 거의 없고 동거녀와 아이를 집에서 쫓아낸다. 비록 친아들은 아니지만, 친아들 이상으로 사랑하는 아들이 낳은 아이라면, 어쨌거나 자신의 손자가 아닌가. 아들은 보호하고 동거녀는 내치는 행동은 순간의 흐려진 판단력 때문에 또 하나의 아들인 손자까지 버린 셈이다. 의도와 달리 결과는 포세이돈과 데메아스가 닮았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손자의 존재는 사는 동안 아들에 대한 분노를 끊이지 않게 할 것이므로,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다. 어쩌면 아들이 친아들이 아닌 점도 혈육에 대한 정을 벗어난 선택을 하게 된 셈이다.('오해'로 곧 풀리는 상황이지만 선택하는 동안에는 '진실'이다)

또 하나, 자신의 아이를 낳은 여인과의 결혼식이 코앞인데, 아버지를 떠나기 위해 해외용병으로 합류하려는 모스키온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아버지의 사랑이 극진했으므로, 실제는 아님에도 아버지가 자신을 '그렇게' 오해했다는 것을 견딜 수 없기에 떠난다는 것이다. 신화(비극) 속 휩폴뤼토스의 경우도 사실이 아니므로, 사실이 아니라고 하면 될 것을, 거의 자살에 가까운 죽음을 받아들인 것일까? 어떤 여자도 사랑하지 않는, 그의 결벽성과 데메아스의 선택은 닮았다.

 

<사모스의 여인>은 왜 '사모스의 여인'일까? 희극에서 사모스의 여인, 크뤼시스의 비중은 제목에 배해서 높지 않다. 그녀의 선의에서 시작된 제안이 극의 주요한 갈등을 만든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자신이 아이 엄마인 것으로 하자는 제안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유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동거녀'일 뿐 데메아스의 정식 아내가 아니다. 둘 사이의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난 상태였다면, 곧이어 정식 아내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이를 잃은 상실감도 감안해야겠지만, 자신의 지위 변화에 '속도 위반'으로 태어난 예비부부의 아이가 필요했을 것이다. 희극 속 크뤼시스는 신화 속 파이드라와 공통점은 1)외국에서 온 2)아버지의 첫번째 부인이라는 점만 일치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희극을 다 읽었을 때의 느낌은 그저 '착한'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상실감'과 그것을 채우려는 불순한 '의도'를 고려할 때, 그저 '착한 여자'라고만 볼 수는 없을 듯하다. 파이드라 못지 않은 집요함이 엿보인다. 두 여자의 가장 큰 공통점이 새롭게 추가되는 셈이다. 

 

이상으로 유사 주제를 다룬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신화)과 메난드로스의 희극의 사건과 인물들을 비교해보았다. 영화 <페드라>가 파이드라를 중심으로 비극 <힙폴리토스>을 각색한 결과라면, 희극 <사모스의 여인>도 '문제의 여인'을 중심에 놓고 새롭게 해석했다고 할 수 있다. 신화(비극)은 아버지의 그 오해가 풀리지 않은 채 비극으로 치닿고, 희극은 곧이어 오해가 풀림과 동시에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사모스의 여인'의 의도를 비롯, 그저 화기애애한 마무리가 되는 듯하지만, 메난드로스의 희극은 그 안에 그리스의 신화(비극)을 품고 있다.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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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발행된 <메나드로스 희극>에는 고대 그리스 '신희극'을 대표하는 메난드로스의 현존 작품 4편이 실려 있다. 그가 생전에 100여 편의 작품을 썼다는데, 상당수를 제목만 파악할 수 있는 정도이고, 유실된 상태다. 다만 작품의 파편이랄 수 있는 대사 단편들이 명언들로 남겨져 여러 글들에서 인용되고 있다. 20세기에 이집트에서 다량의 파피루스가 발견되었는데, 덕분에 4편의 그의 희극들을 복원할 수 있었다. 수록된 4편의 글 가운데, 필자는 <사모스의 여인>라는 작품을 중심으로 살펴볼까 한다. 개연성이 있는 사건 혹은 에피소드는 훗날의 작품들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다뤄지기 마련이다. 그 이야기가 어떻게 변용되는지, 그것을 일종의 진화라고 볼 수 있을지, 반드시 선행 작품을 참고한 끝에 새로운 작품에서의 유사한 설정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사는 것이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이다.

  

 

 

 

 

 

 

 

 

 

 

 

 

   [왼쪽부터 (1)2003년 출간된 천병희의 최초 원전번역 (2)최근 펴낸 개정증보판 메난드로스 희극 (3)은 아리스토파네스 일부 작품과 메난드로스의 <사모스의 여인>을 수록한 책. 이상 세 권의 책에는 <사모스의 여인>이 수록되어 있다. <사모스의 여인>은 메난드로스 희극들이 왜 '풍속연극'으로도 불리는지 이해할 수 있는 친숙한 소재를 다룬 작품이다.]

 

‘결혼 계약’으로도 불리는 신희극 「사모스의 여인」은 약혼 상태인 예비 신랑(모스키온)과 예비 신부(플랑곤)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난 상태에서 시작한다. 두 집안은 이웃사촌이고, 곧 사돈이 될 두 아버지, 데메아스(신랑의)와 니케라토스(신부의)가 해외에 나가 있는 사이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둘의 해외 출장(혹은 여행) 기간은 꽤 길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데메아스에게는 젊은 동거녀가 있는데(크뤼시스는 사모스 출신으로, '사모스의 여인'이다.) 예비 부부의 아이가 태어날 즈음 자신의 아이를 유산을 한 상태이다. 크뤼시스는 두 젊은이에게 제안한다. 행복한 출발을 위해 '속도위반'으로 낳은 아이를 자기가 낳은, 데메아스의 아이라고 하겠다고. 그렇게 일은 마무리된다. 그런데 여행에서 돌아온 두 아버지들은 결혼식을 서두르고, 결혼식을 준비하던 데메아스는 집안의 유모가, 그 아이는 아들 모스키온의 아이라고 말하는 것을 엿듣게 됨으로써 충격을 받는다. 그는 곧바로 크뤼시스와 아이를 집에서 내좇고, 둘은 니케라토스의 집으로 가는데, 그녀는 니케라토스의 아내와 돈독한 사이다. 그 집에는 아이의 생모인 플랑곤이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니케라토스는 딸이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고, 당황한다.

신랑 모스키온은 어린 시절에 데메아스에게 입양된 아이로, 물심 양면으로 친아들도 받지 못할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아직 청년임에도 아버지 덕분에 연극 경연의 코로스 비용을 부담하기도 했다. 놀라운 사실을 들었음에도 아들의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아버지. 자신의 동거녀와 잠자리를 가져, 아이를 낳은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동겨녀의 유혹 때문에 실수한 것이라고 아들을 옹호한다. 그리고 이 사실을 신부 측에 알리지 않기로 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이런 마음을 알 수 없는 모스키온의 고민은 깊어지고 신부 아버지에게 자기 아이라고 고백하는데, 여기에서 새로운 오해가 시작된다. 자신과 신부 플랑곤 사이에 태어난 아이라는 말이 빠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근친상간의 패륜아를 사위로 맞이할 뻔 했다! 니케라토스는 극노한다. 결국 두 아버지들의 오해가 풀리지만, 절망한 모스키온은 해외용병으로 나감으로써 집을 떠나려 한다. 친자식보다도 자기를 사랑하고 보살펴준 아버지가 자신을 오해했다는 사실 자체를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오해가 풀렸다는 사실을 알게되면서 결국 이야기는 헤피엔딩으로 끝난다. *이 작품은 기원전 317년과 307년 사이에 무대에 오른 것으로 추정한다. 일부 누락된 부분이 있지만, 플롯과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복원된 상태이다.  

 

이 작품을 읽으며 발견한 흥미로운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른바 '속도위반'이 예나 지금이나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에게서 문제가 되고 있다. 당연한 사실이 왜 새롭게 다가온 것일까? 피임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20세기 이집트 파피루스의 발견으로, 인류의 피임의 역사는 기원전 1870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약이며 기구에 이르기까지 현대에도 예기치 않은 임신이 생기는 상태이니, 옛날에는 속도위반이나 예기치 않은 임신이 비일비재했을 것이다.

둘째, 당시에도 '속도위반'을 수치로 여겼다는 점이다. 하여 부담 없이 출발하기를 바라는 것인데, 사모스의 여인 플랑곤의 배려가 돋보인다. 그러나 과도한 친절은 금물이다. 그 배려로 인해 플랑곤이 얻는 것은 무엇일까? 사심은 없는 것일까?

셋째, 근친상간의 일종으로 파악한 니케라토스의 반응이다. 그가 인간의 도리에 어긋나는 행위로 오해하는 것은 당연한데, 빗대는 예가 흥미롭다. 

"테레우스와 오이디푸스와 티에스테스와 그밖의 다른 자들이 저질렀다고 하는 근친상간을, 자네(모스키온)가 무색하게 만들어버렸구먼."

물론 크뤼시스는 말 그대로 데메아스의 동거녀일 뿐이다. 본부인도 아니며, 재혼을 약속한 상태도 아니다. 그녀는 젊어서 아들과 나이차가 크지 않는 듯하다. 그녀의 젊음은 보통의 아버지라면 더욱 분노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늙은 남자(아버지)가 젊은 남자(아들)에게 젊은 동거녀를 빼앗겼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니까. 모스키온이 친자식이 아니라는 점은 아버지에게 어떤 의미일까? 물론 오해하는 상황이지만, 관계로는 근친상간이지만 친자식일 때보다는 심각성은 덜한 상태다. 다만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것이 아니라는둥, 큰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여기에서 아테나이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테세우스 관련 신화와 비극을 떠올리게 된다.  

 

 

 


 

 

 

 

 

 

 

 

 

(1)천병희와 (2)강대진이 각각 번역한 일명 '도서관'으로 불리는 아폴로도로스의 저작을 통해, 테세우스의 신화의 원형을 만날 수 있다. 책의 후반부 부록과도 같은 '요약집'이라고 실려 있는데, 책의 본문에 해당하는 '도서관' 후반부에서 '요약집' 전반부에 걸쳐 테세우스와 관련된 신화가 소개되어 있다. 

테세우스는 아마존 여인에게서 휩폴뤼토스라는 아들을 얻은 상태에서 아내가 죽자 크레테의 미노스의 딸인 파이드라 공주를 새 아내로 맞이한다. 파이드라는 테세우스에게 아카마스와 데모폰을 낳아주는데, 테세우스의 아들인 휩폴뤼토스를 사랑하게 되고, 자기와 동침하자고 유혹한다. 그러나 어떤 여자도 사랑하지 않는 휩폴뤼토스(남자 아르테미스 여신이라고 할 수 있다)는, 그녀의 유혹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그가 이런 사실을 아버지에게 일러바칠까 두려워진 파이드라는 정황을 만들어 그가 자신을 겁탈했다고 모함한다. 테세우스는 포세이돈에게 아들이 죽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마차를 몰고 해변길을 달리던 휩폴뤼토스는 파도에 휩쓸려 비참하게 죽고, 파이드라도 자신의 사랑이 알려지자 스스로 목을 매어 죽는다.

 

이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계모 파이드라 이야기는 에우리피데스에 의해 <휩폴뤼토스>라는 비극으로 만들어지는데, 천병희의 <에우리피데스 비극전집1>에 수록되어 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테세우스 전'도 참고할 만한 고전이다. 전체를 번역한 동서문화사의 번역에서 테세우스 일대기를 확인할 수 있다. 천병희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원전번역이지만 그리스와 로마의 주요 영웅 5인씩, 10명만을 다루고 있고, '테세우스 전'은 없다. 동서문화사 번역에는 주석이 없어 아쉬웠는데, 이다희 번역의 영웅전이 여러 권으로 나오고 있는데, 1권에서 테세우스를 만날 수 있다. 

 

 

 

 

 

 

 

 

 

 

 

 

 

 <가운데가 아버지(이윤기 기획) 선생의 유지를 받든 딸 이다희가 우리말로 번역한 영웅전의 1권에 테세우스 편이 수록되어 있다.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은 흘러간 가요의 한 대목처럼, '사랑해선 안 될 사람'(전처의 아들)을 '사랑하는 죄'를 짓게 되는 파이드라의 슬픈 사랑을 다룬다. <사모스의 여인>에서 아버지 데메아스는 오해하는 상황이기는 하나, 테세우스처럼 신에게 아들을 죽여달라는 기도를 올리지 않는다. 

 

에우리피데스는 '고희극'의 대표시인인 아리스토파네스의 작품에 아이스퀼로스와 함께 실명으로 등장하는 비극 시인이다. <아리스토파네스 희극전집2>에는 <개구리>라는 희극이 실려 있다. 기원전 405년에 공연된 작품으로 40세의 아리스토파네스가 집필하고 연출했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등장인물인 디오뉘소스(신)는 헤라클레스로 분장해 저승으로 내려가는데, 위기에 처한 아테네 시민들을 일깨울 (비극)시인 한 사람을 데러오는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서다. 3대 비극시인은 이미 고인이 되어 저승에 가 있는 상태. 아이스퀼로스와 에우리피데스 중 누가 최고인지 겨루고 디오뉘소스가 심판을 본다. 디오뉘소스는 대결에서 승리한 아이스퀼로스를 지상으로 데려가고, 에우리피데스가 승복하지 않는 가운데, 빈 옥좌는 소포클레스가 차지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기원전 404년에 아테네의 패배로 끝나는데, 기원전 405년은 승전 소식이 들려오기도 하지만 아테네의 패배가 기정사실이 된 상태다. 

이 작품에서 에우리피데스는 자신의 공로를, 비극에서 필요없이 산만한 표현을 줄이고 우리에게 유용한 일상사를 무대에 올려 새로운 비극을 개척한데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자, 아이스퀼로스가 공격한다. 자신은 시민들이 본받을 수 있는 점잖은 영웅들을 묘사했다. 한데 에우리피데스는 뚜쟁이들(<힙폴뤼토스>, 파이드라의 유모), 신전에서 아이를 낳는 여인들(<아우게>의 여사제), 오라비와 살을 섞는 여인(<아이올리스>의 카나케), 자식을 죽이는 여인(<메데이아>) 등 건전한 시민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악한 내용만을 다뤘다고 비난한다.

'고희극'을 대표하는 아리스토파네스의 <개구리>는 일종의 문학평론 혹은 공연리뷰인 셈이다. 이 작품에서, 아리스토파네스가 아이스퀼로스의 입을 빌려, 에우리피데스를 비판하는 근거가, 훗날 아리스토파네스 자신과 달리 보통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무대에 올리는 메난드로스의 출현을 예고하는 듯하다. 소재와 기교에서 메난드로스 희극은 3대 비극작가 중 에우리피데스의 작품들과 유사한다.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들은 연극을 통해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려는 예술작품으로서의 역할보다는, 희극이라는 도구를 써서 당면한 국가/사회의 굵직한 문제들에 처방을 제시하는 여론에 가까웠다. 관객들 중 누구일 수도 있는 보통 인물을 무대에 올리고, 그들이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소재에서 웃음을 찾아낸 메난드로스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다음과 같이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개구리>를 패러디한다면?

메난드로스가 작고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웃음이 사라진 아테나이 시민들에게 웃음을 되찾아주고자, 다시 디오뉘소소 신을 불러, 저승을 찾게 한다. 아리스토파네스와 메난드로스가 자신이 해결사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디오뉘소스가 심판을 본다. 희극이란 중차대한 국가의 문제를 다뤄야 하며, 비판 기능을 해야 한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주장한다. 희극이란 웃음을 선사하는 그 자체가 목적이지요, 메난드로스는 대선배에게 감히 맞선다. 극과 극이 대립하는 극이 되지 않을까

결국 <비극의 창시자-아이스퀼로스: 인간 중심의 비극 에우피피데스=아리스토파네스:메난드로스>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메난난드로스는 시민 관객들이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휩폴리토스>를 공유하고 있음을 전제한 상태에서 <사모스의 여인>을 무대에 올린 것은 아닐까? 에우리피데스의 작품 혹은 작품 속 상황을 자기 희극의 또 다른 배경으로 활용(전제)한 건 아닐까? 훗날 <페드라>('파이드라'의 영어)라는 영화가 파이드라 공주를 중심으로 극화되듯, 메난드로스는 '사모스의 여인'을 갈등의 중심에 놓는 <사모스의 여인>으로, 비극 <휩폴뤼토스>의 희극 버전을 새롭게 만들었단 생각이 든다. <사모스의 여인>에서 딸의 아버지가 예비사위를 근친상간을 한 인간 말종이라고(오해하여), 거침없이 쏟아내는 부정한 사례들에는 없지만, 테세우스-파이드라-휩폴뤼토스의 신화(비극)는 이 희극과 씽크로율이 가장 높은 비극이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세계 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희극작가이다. 그에 비하면 몰리에르는 무뎌 보이고, 셰익스피어는 어릿광대 티가 난다."

랑프리에의 <고전사전>에 실린 평가이다. 그렇다면, 당대의 시민들이 일상에서 겪는 실감나는 소재를 무대에 올려, 오늘날 드라마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는 세련미와 웃음을 창조한 메난드로스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다음에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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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병희 원전번역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이 출간되었다. 책정보에 나와 있듯이 <윤리학>은 <정치학>을 위한 개론서이면서, 정치학은 윤리학에서 그린 밑그림, 곧 개인과 가족의 행복을 보다 넓은 범위의 공동체 국가(폴리스)의 행복으로 확대 적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표지들은 이런 두 저작의 관계에 충실한 셈이다. '윤리학'을 읽으면서 떠올린 다른 책들의 어떤 대목에 맞춰,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이 책의 출간에 앞서 여러 권의 다른 번역으로 읽었다. 강독에 가까운 해설서도 나와 있어 읽었다. 그러나 어떤 주석이나 해설이나 강독보다도 텍스트 자체로 다가와야 하는 것이 번역의 1차 소임이 아니겠는가. 물론 이러한 사전 독서 덕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인데, 천병희의 '윤리학'은 안개가 걷힌듯 속도를 내서 읽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당대(2013년)의 나와 우리를 생각하게 만드는 '살아 숨쉬는 저작'으로 다가왔다.

일명 '산파술'이라 불리는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은 단도직입으로 말하면 대화의 상대방이 무엇을 모르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일깨움이고, 스스로 깨닫게 하는 학습법이며 상대방을 배려하는 눈높이 학습법이며, 궁극으로는 자기주도의 학습을 가능하게 하는 교수법이다. 물고기를 먹는 법만이 아니라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치고 있으며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무지를 인식하는 것이 앎의 시작이자 완성임을 역설하고 있다.

알다시피 소크라테스의 어머니의 직업은 산파였다. 요즘으로 치면 산부인과 의사였다. 우선은 아이가 안전하게, 가급적이면 아이 엄마의 산고도 줄이는 방법으로 태어남의 과정을 ‘케어’하는 것이 좋은 산파가 가진 자질이고 기술이며 재능이었으리라. 거칠지만 소크라테스가 부모 특히 어머니로부터 얻은 유산은 바로 그 어머니의 직업에서 받은 것이고, 그것을 가르치고 배움의 학습법으로 응용 발전시켰다는 데에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해보면, 부모의 역할은 조기교육이니 조기유학이니 대안교육이니 하면서 공교육이 채워주지 못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들에 대한 못미더움 때문에 요란을 떨기 이전에 한 사람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맡은 바 소임을 잘 해내는 그 자체로 자식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 바로 부모 자신들의 인생의 완성도에 있지 않을까?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소크라테스에서 아리스토렐레스로, 고대 서양철학자 3대의 가교 역할을 하는 플라톤을 거론하지 않는 것은, 선후의 두 학자 사이에서 묘한 상태로 낀 처지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지금 나는 아리스토텔레스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트텔레스의 집안은 대대로 궁정 의사 집안이었다. 우리 역사로 치면 전의(典醫)였다. 우리 역사에서 조선 후기에, 궁내부의 태의원에 속하여 왕의 질병과 왕실의 의무(醫務)를 맡아보던 주임(奏任) 관직이다. 그런데 당시에는 집안 대대로 가업처럼 직업을 이어가는 흐름이었다고 하니, 일종의 업계의 비밀(노하우)을 유산처럼 대물림하는 절차가 반복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런 과정의 되풀이를 통해 의술의 발전에 활력을 주는 측면도 없지 않았으리라 예상할 수 있다. 의사라는 직업은 무엇보다 인간이 가진 몸의 건강을 다스리는 사람이다. 당시 불안정한 궁정의 상황이나 아버지의 이른 작고 등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의사의 길을 걷지는 않게 되는데, 궁극적으로 그는 인간의 행복을 규명해낼 뿐 아니라 만학(萬學)의 아버지로서, 이른바 인류에게 ‘학문’이라는 골치아픈 세계를 선물하게 되는 사람이다.

아리스토텔레스를 기준으로 어디까지가 스승의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생각이고, 어디서부터가 스승인 플라톤의 생각인지를 구분해내기란 쉽지 않다. 분명한 것은 두 스승이 주창한 이론은 소크라테스의 경우 지극히 상식적인 앎(상태)에서 논지를 전개하여, 단순하게 느껴질 정도이고 플라톤의 경우는 스승의 생각에서 출발하여 체계화와 심화의 과정을 거쳐 가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당위적이고 하여 심플한 측면이 있다. '좋음의 이데아'론이 그 대표라 할 것인데, 받아들이기만 한다면(마치 오늘날 상당수 종교가 믿음의 문제에 집착하고 그런 방향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것처럼) 흔히 하는 말로 ‘플라토닉한 사랑’처럼 어찌 보면 마음의 평안을 얻기란 생각보다 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러한 스승으로부터의 독립의 꿈을 결코 놓지 않았으니, 의사 집안의 출신다운 사물과 개념에 대한 ‘자연과학적인’ 접근방법을 유전인자인 양 체득하고 있었기 때문은 아닌가, 생각한다.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이상적으로 꿈꾸는 사랑에 비해 현실의 사랑은 구체적이고 팍팍하다. 사랑에 대한 다른 점들처럼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만사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관찰과 분석에 입각한 디테일한 문제로 다가오는 ‘문제적인’ 세상이었다. 결국 인간의 정신작용으로 분류할 수 있는 만족, 곧 인간의 행복의 문제에 대한 혜안을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담았다는 점에서 그는 훌륭한 정신의 의사로서의 가업을 계승한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어디서부터가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유한 사상이냐를 구분해내는 문제도 스승과 스승의 스승의 뒤엉킴 못지않게 학문의 중요한 과제물일 것이다. 아카데미아에서 배우고 가르치면서 플라톤 문하에서 지낸 세월이 20년이다. 그의 초기의 저작들은 플라톤의 저작에서 익숙하게 접할 수 있는 대화편의 형식을 따른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카데미아 시절의 대중을 대상으로 한 초기 저작들은 지금 남아 있지 않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정치학><시학> 등 현존하는 그의 저작들은 후기의 학원내부용 교재였던 것이 책의 형식으로 묶이게 된 것들이다. 앞서 초기의 저작들이 책의 형식으로 묶여서 널리 읽히는 것을 아리스토텔레스 당대에 확인할 수 있었던 것과는 비교가 되는 점이다. 키케로(기원전106~43년)는 사는 동안 아리스토텔레스의 초기 대화편들을 읽은 것으로 기록이 남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몰(기원전 384~322년) 연대를 고려하면 상당히 중요한 기록이다.

“이 시기(아카데미아에서 20년)에 그는 스승인 플라톤의 영향을 받아 윤리학과 정치학에 관한 많은 대화편들을 써서 출간한 것으로 보이는데, 문체가 유려하다고 키케로(Cicero) 등에게 칭송받던 그의 대화편들은 지금은 모두 없어졌다.”(이 책 <옮긴이 서문>에서)

 

키케로가 자신의 저서 『의무론』에서 아들(뤼케이온학파, 일명 소요학파, 아리스토텔레스의)과 달리 자신은 아카데미 학파에 속함을 밝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아카데미아에 소장되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아리스토렐레스의 초기 대화편들을 읽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 아카데미아 학파와 소요학파는 양자 모두 소크라테스계열과 플라톤계열에 소속되고 싶어하니까, 진정 나는 아무런 방해도 하지 않을 테니 소요학파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나의 철학책들을 읽으면서, 네 자신이 책들의 내용 자체에 대해 판단을 내리도록 하라.”(<키케로의 의무론> 18면, 허승일 옮김)

이런 키케로가 탐독한 초기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의 영향은, 다름 아닌 키케로의 저서 <우정에 관하여>와 <노년에 관하여> 등에 시사점을 주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플라톤이 숱한 자신의 대화편에서 직접 등장하는 일이 거의 없듯이, 키케로의 경우도 ‘우정’의 소중함과 ‘노년’의 즐거움, 곧 생을 어떻게 마감하느냐에 대한 심오한 문제를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자리에 본인은 없다. 오히려 나는 다만 기록자일 뿐이다, 라는 설정을 통해 설득력을 배가시키는 장치를 사용한 것인데, 나는 이것이 플라톤과 조금 다른 방식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이 가진 대화편 형식에서 참고한 바가 없지 않으리라, 추정해본다.

또 하나, 키케로에게서 발견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은 다름 아닌 자신의 아들에게 편지 형식으로 <의무론>을 집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아들에게 남기는 유언과도 같은 아버지의 당부 말씀인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들 니코마코스에게 전달하는 방식과는 상당히 다른, 그러니까 키케로의 경우는 편지 형식으로 직접 아들에게 들려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들에 의해 정리되었다고도 하고, 그저 아들에게 ‘헌정한 책’으로서의 의미만 있을 뿐이라는 등 의견이 분분한데, 굳이 아들을 독자로 특정하지 않고 이론을 전개한다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 어쨌거나 키케로의 경우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들에게 윤리학을 남겼듯이, <의무론>을 남기고자 한 것으로 판단할 때 흥미로운 관전포인트가 생기는 셈이다.

더구나 조선 후기의 다산 정약용[1762(영조 38)∼1836(헌종 2)] 유배지에서 망가진 집안의 신세를 직시하고 분발할 것을 아들들에게 강조하는 편지들(『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박석무 엮음, 창비)까지 연동하여 읽는다면, 유의미한 독서가 되리라 생각된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들에게 주는 형식의 <윤리학>을 집필하면서도, 이 책의 쓰임에 대해 잘 파악하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듯 하다. 윤리학 1권 제10장 “살아 있는 동안에는, 어느 누구도 행복하다고 할 수 없는가?” 제11장 “살아 있는 사람들의 운세가 죽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가” 등에서 솔론을 언급하고, <일리아스>의 프리아모스 왕의 일생을 거론하면서 언급하는 얘기들이 그러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11장 끝에서 다음과 같이 논의를 맺는다.

“따라서 친구들의 행운 또는 불운이(1) 죽은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영향은 미치지만(2), 그 영향은 행복한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거나 그와 비슷한 변화를 가져다주는 그런 종류나 그런 정도는 아닌 것 같다.”

당대는 물론이고 이후로도 그 명성이 높거나 평판이 좋은 사람을 살았던(2) 이의 후손이나 지인들의 삶이 불행을 맞이할 때(1), 죽은 사람의 행복과 불행을 논의하는 것, 세인들의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은 아니었다느니, 무수한 말을 하겠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아버지의 인생은 아버지의 인생일 뿐이지 않을까, 당연하지만 촘촘하게 행복의 이모저모를 아리스토텔레스는 저인망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듯이 살피고 있다.

이 말은 동양의 역학(사주)으로 돌아와 이른바 사주, 생년(生年), 생월(生月), 생일(生日), 생시(生時) 가운데, 자신의 태어난 시각 곧 ‘생시’는 말년운(末年運)인데, 이 말년운이 아직 펼쳐지지 않은 미래운으로, 우리가 궁극적으로 사주니 점이니 해서 그 분야 전문가들을 수소문하여 대가를 지불하고 미리 알고자하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자신의 미래를 알게 되었다고 하자, 노년의 행복을 무엇인가? 누구나 행복한 삶을 원하고 특히 행복하게 생을 마감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여한(餘恨)을 두고 떠나는 일생은 결코 행복했다 말할 수는 없으니까. 바로 이 때에 가장 큰 부분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자손들이 대대손손 행복하게 살아갈 것으로 굳게 믿어 의심하지 않아도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왕조도 아닌데 권력을 3대 세습하는 북한이나 자기들이 이나라 사람들을 다 먹여 살리는 것처럼 은근히 과시하지만 알고 보면 부의 세습과정에 불과한 삼성가의 모습도 궁극에는 모든 인간이 가진 행복이라는 프레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 있다.

 

그리고 우리는 저마다 다른 형태의, 처지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자손들이 잘 살아가기를 바라고, 보다 높은 지위에 오르도록 교육에 열을 올리고, 기러기아빠와 그 엄마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또한 공교육을 맡은 교사가 정작 자신의 아이들은 대안학교로 보내는 경우와도 같이(아이가 원한다는 것을 전제로 진학하는 것으로 알지만, 아이가 깨닫기 전에 부모 입장에서 이런 교육은 아니다라는 선험적인 결론이 먼저인 경우가 일반형일 것이다, 그 밖의 과외 운운하는 과열된 교육열에 대한 운운을 또 할 필요가 있겠는가)-김두식 교수가 <불편해도 괜찮아> 초반부에서 자식교육에 관한 우리의 현 상태를 적시하듯이, 그러니 어쩌겠는가, 그것이 인간이고 인생인 것을~

 

다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이 돋보이는 점이 바로, 자식인 니코마코스는 편집이나 제작과정에서든 아버지가 너에게 준 것이라고 제목에서부터 못박아 두어서이든, 잘 참고하여 좋은 인생을 살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을 은근하게 담았다는 점에 있지 않을까? 혹자는 제목에 아들 이름을 넣은 그 자체에 대해 아버지의 ‘욕심’을 말할 수도 있겠으나(뛰어난 행적을 남긴 조상의 비석을 남길 때 그 조상만이 아니라 후손들의 이름도 새겨진다는 점을 유념하시라, 비석은 선조에 대한 의무감 때문이라고만 할 수 없는 인정욕구가 더불어 새겨지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렇게 제목을 지었다는 확증은 없으므로, 어쨌거나.
소크라테스의 제자로 아테네의 10대 웅변가 중 한 사람인 이소크라테스(기원전 436~338년)와 아리스토텔레스를 비교하며 키케로가 남긴 한마디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가장 훌륭한 그리고 오래된 리뷰가 아닐까,

“아리스토텔레스와 이소크라테스에 대해서도 나는 똑같이 생각하는데, 그들 각자는 자신들의 연구에 심취한 나머지 서로를 경멸했다.”(의무론)

플라톤이 광장에서 연설했다면, (플라톤의 제자로 아테네의 유명한 웅변가) 데모스테네스가 플라톤에게서 배운 바를 계속 연구하여 발표하기를 원했다면, 둘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극히 수사적이고 눈부신 저작활동을 하였으리라고 키케로는 이들 두 쌍의 비교의 연장선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을 평가하고 있다. 메시지의 전달 방식으로 말을 선택했느냐 문자를 선택했느냐에 따라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 플라톤의 방식을 계승한 사람이면서, 보편적인 사실(진리)에서 근거를 찾아 자신의 주장을 입증해나갔다는 점에서 소크라테스의 충실한 제자로서의 면모를 저작에 담아냈다. 책의 제목에만 충실하자면, 아들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 일종의 지침을 아버지로서 남긴 것인데, 단지 니코마코스에게만 맞춤한 것이 아니고 훗날을 살아갈 모든 후배들을 위한 선배 아리스토텔레스의 따듯한 사랑과 꼼꼼한 배려를 담은 것이 이 책 윤리학이라 할 수 있다.

구슬이 서 말이라고 꿰어야 보배다. 부뚜막에 소금이라도 집어넣어야 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은 ‘정치학’으로 나아가는 개론서이다. 달리 얘기하면 정치학은 윤리학의 밑그림이고 행복론의 적용범위를 보다 큰 사회로 국가(폴리스)로 확대한 것이라 할 것인데, 공정사회를 외치던 지난 정부 시대를 살면서 숱한 국민들이 왜 ‘정의린 무엇인가’ 타령을 했는지, 다음 정부인 2013년 현재는 우리는 우리가 간직했어야 할 도덕성(윤리)이 그 바닥을 드러내는 것을 확인하고 맞이하고 있다. 기간에 여러 권의 윤리학 번역서들이 나왔고, 그 가운데에는 원전번역도 있지만, 학문 차원에 앞서, 쉽게 읽고 자신의 삶에 우리 일상과 현실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데에 적시타와 같은 출간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서들)의 개념어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아쉬움이 있을 것이다, 바로 이점이 70대 중반의 희랍라틴어 원전번역의 노전사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을 새롭게 펴낸 뜻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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