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3 월11

 

 

제목:  원죄는 없다.

첫번째 사색.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성경속의 하나님은 완성형 신은 아닌것 같다.

아마도 성장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창세기때의 하나님은 분명 신이 되신지 얼마 안된것 같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고 인간인 아담과 이브를 자신과 같은 외모로 만들어 냈다고 했다.

그런데 인간을 만들어 놓고 그들을 에덴동산에 가두고 길렀다.

마치 우리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동물들이 자식을 낳고 기를때는 부모 품안에 두고 키우듯이 하나님도 그랬던것 같다.

에덴동산은 하나님의 품안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질풍노도의 시기가 찾아온다.

이 시기에는 부모가 아이 때문에 속을 태운다. 아마도 에덴동산에서도 그런일이 발생한것 같다.

마치 우리가 부모말 안듣고 친구 잘못 사귀어서 꿰임에 빠지것과 다르지 않다.  

결국 하나님도 아담과 이브를 끝까지 에덴 동산에 가둬두고 기를 수 없었다.

그건 마치 우리 인간이 자식을 낳아 길러도 어느정도 장성하면 독립시켜야 되는것 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싶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은 '원죄' 때문에 에덴동산에서 '추방' 되었다고 해석한다.

또한 종교 연구자들은 성경 내용을 곧이 곧대로 이해하거나 해석하지 말고 맥락속에서 상징적으로 살펴보라고 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하나님이 부모의 입장에서 아담과 이브를 바라 본다면...

그렇다면 이것은 이건 인간이 하나님에게서 독립한것이라 봐야 되지 않을까?

자신이 만든 피조물을 사랑했지만 그렇다고 영원히 자신이 가둬두고 함께 살수 없다는것을 깨닫게 된것은 아닐까?

에덴동산에서 추방이 아니라 독립 시키는것이 그당시 신이 인간에 대한 최선의 사랑이 아니였을까?

그렇게 하나님도 신과 동시에 부모로서 성장을 하게 되는것이 아닌가 싶다.

하나님도 난생 처음 부모 역할을 맡은셈인데 어찌 우여곡절이 없으셨을까?

자식이 부모에게서 자립하는것이 죄가 되는것인가?

그러니 원죄는 없다.

결국 성경속의 하나님도 결국 우리 인간처럼 신으로,부모로서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건 신 만이 알겠지.

나도 우리 부모님 속 몰랐고, 우리 애들도 내속을 모르듯이. 지금은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 다 이해 할 날이 올것이란것은 안다.

그때 되면 나도 아이들도 철이 들겠지.

하나님도 그렇지 않을까?


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제정신이라는 착각 - 확신에 찬 헛소리들과 그 이유에 대하여
필리프 슈테르처 지음, 유영미 옮김 / 김영사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제목:  제정신이라는 착각

(확신에 찬 헛소리들과 그 이유에 대하여)

필리프 슈테르처 지음/ 유영미 옮김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COW BEBOP)' 에서 오프닝 음악 (TANK!) 은 사람을 신나게 한다.

이 신나는 째즈음악은 현실의 혼잡한 상황을 좌충우돌 하는 가운데 경쾌한 리듬으로 헤쳐나가는 중독성 강한 매력을 지녔다.

이 음악을 들으면서 운전을 하면 내가 차를 모는게 아니라 우주 전투 비행기를 몰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마치 내가 카우보이 비밥의 주인공 '스파이크' 가 된 듯하다.

나는 카우보이 비밥이 20세기 최고의 걸작중 하나라고 확신 하지만 어느 누군가는 그저그런 유치한 만화라고 할 것이다.

이제 나이 50이 다된 내가 이런 '중2병' 같은 착각에 빠지는데 과연 나는 제정신일까?

 

 

 

이책<제정신이라는 착각>은 우리의 인식과 확신에 관한 책이다.

세계적인 신경과학자이자 정신의학자인 저자 필리프 슈테르처는 '우리가 인식하는 이 현실은 사실 우리 머리속에서 만들어 내는 즉, 뇌가 만들어 내는 세상' 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인식하는 세상은 뇌가 만들어 내는 세상이다' 는 저자의 생각은 이미 널리 알려진 내용이라 새로운 정보는 아니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뼈로 이루어진 딱딱한 공간속의 뇌가 외부세계를 직접 맞딱드리지 않고 어떻게 지각을 만들어 내는지에 주목한다.

즉 뇌는 어떻게 지각을 만들어 낼까?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한 거듭된 연구를 진행 하면서 지각의 변화 증상은 심리질환과 연관이 되어있음을 알게 된다.

 

 

 

뇌가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상을 만들어 내면 타인이 볼때는 미쳤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조현병 같은 정신 질환에 주목하게 된다.

 

연구가 깊어짐에 따라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아 보이는 환각증상, 망상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겪는 확신을 통해 저자는 한가지 결론에 도달한다.

 

 

 

저자는 확언한다. (저자는 이또한 또다른 확신이라고 양해를 구한다.)

'망상'과 '정상' 의 경계가 확실하지 않고 구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한다.

책에서는 여러 예시를 들며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는 거의 한끗 차이라고 말한다.

데이터와 사실을 토대로 하는 과학자들 마저 자신의 열의에 빠져서 말도 안되는 이론을 제시하게 된다던가 음모론 신봉자나 열성적인 종교주의자를 다 미쳤다거나 조현병으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미 '탈진실의 시대'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세상은 보이는 현상뒤에 감춰진 근본적인 원인을 파헤치고자 하는 음모론 신봉주의자들, 서로 자신이 걷는 길이 정도(正道)라고 믿는 신념주의자들로만 이루어 진것 같다.

감춰진 진실을 파헤치고 자신의 신념만이 옳다는 확신으로 꽉 찬 세상속에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정도(正道)인지를 두고 충돌하고 있다.

 

사실과 근거를 무시하고 자기가 보고 싶은것만 보고, 듣고 싶은것만 듣고, 믿고 싶은것만 믿는 것이 우리 인간이란 동물의 기본 설정값 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는 전부 제정신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해결이 어려워 보이는 문제와 갈등들에 대한 저자가 제안하는 바는 주목할 만하다.

우리가 확신하는 '모든것은 단지 가설' 일뿐임을 인정하라고 한다.

우리의 확신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었다.

원시시대 부터 우리의 감각기관이 뇌에 제공하는 이해할 수 없고, 불확실하고 종종 모순이 되는 신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실이든 망상이든 확신을 우선적으로 내려야만 했다.

그와 동시에 우리의 뇌는 예측 기제도 함께 발달 되어졌다.

즉 확신은 살아남기 위해서 형성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확신의 형성에는 정신질환이나 정상이나 별차이가 없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달리 이해한다면 결국 우리 사피엔스 종은 태초에서 부터 함께한 불안으로 인해 오히려 확신을 강화 시켰다는 뜻이 되는것 아닌가?

불확실한 현실과 미래는 현재 확신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게 되는 셈이다.

이제 확신이 현실에 부합이 되든지 되지 않던 모두 중요한게 아닌것이다.

오히려 불확실할 수록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더욱 더 확신을 하게 된다.

 

이렇게 이해를 하면 모든 갈등을 야기하는 서로 다른 확신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다.

그래서 우리가 합리적이라고 여기는 과학적 시각 조차도 우리가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관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저자는 과학적 시각을 버리지 말라고 충고한다.

우리의 확신은 단지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고 언제나 수정 될 수 있으니 불확실한 세상을 대함에 언제나 열린 태도로 세상을 대하길 권한다.

 

자기 확신으로 점점 분열되어 가는 듯한 세상을 향한 저자의 통찰에 깊이 공감하고 내 자신이 확신하는 모든것들에 대해 다시금 점검이 필요함을 절실히 일깨워준다.

 

 

 

카우보이 비밥에서 '비밥( BEBOP)' 의 뜻은 재쯔 음악에서 즉흥연주를 말한다.

정해진 악보 없이 뮤지션들이 각자 개성에 맞게, 상황에 맞게, 각자의 연주가 하나의 화음으로 연주 되는 것이다.

우리의 문학이나 영화 장르를 보면 단순하게 하나의 장르로 비교적 쉽게 규정한다.

로맨스, 액션, 스릴러, 공상, 코믹, 비극, 공포, 전쟁 등등 하지만 실제 우리가 사는 현실은 어느 장르 하나로 규정 할 수 없다.

삶은 모든 장르를 포함하고 있으며 세상은 각자의 다른 장르가 공존한다.

 

나에게 세상은 코믹이지만  내 동생에게 세상은 액션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건 한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보면 세상 전체는 영원한 한가지 장르만으로 존재 하질 않는다.

세상은 언제나 고정되지 않고 변화하며 모든 장르가 함께 공존하고 있다.

즉 우리는 삶의 무대에서 각자의 악기로 고정되지 않은 리듬과 박자로 째즈를 연주하는 비밥 뮤지션과 무척 닮지 않았나?

우리가 어떠한 신념을 가졌거나, 도저히 변할수 없는 확신을 가졌다 하더라도 세상은 언제나 고정되지 않은 째즈연주 '비밥' 과 다르지 않음을 잊지 말아야 겠다.

 

 

 

카우보이 비밥 마지막 에피소드.

스파이크가 숙명의 라이벌 비샤스와 대결을 마치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온다.

스파이크는 이미 달관한 모습으로 멍때리고 쳐다보는 조직의 잔당들을 향해 손가락 권총을  겨눈다. 입으로 빵 소리 내고 스파이크는 쓰러져 버린다.

화면은 스파이크의 쓰러진 모습에서 하늘로 점점 클로즈업을 시키며 올라간다.

푸른 하늘, 구름, 그리고 계속 올라가며 별들이 보이는 어두운 하늘로 향한다.

결국 한참을 올라 우주까지 올라가 버린다.

우주 공간속에는 방금전 까지 격렬했던 삶과 죽음의 경계는 모두 사라져 버렸다.

지구안에서 우리가 가진 신념과 확신으로 죽기 살기로 싸우고 투쟁하던 그 모든것은 우주의 입장에서 아무것도 아닌것이 된다.

애니메이션 이였지만 삶을 관조하는 이런 연출은 나에게 깊은 여운을 남겨 주었다.

 

이래도 카우보이 비밥이 그렇고 그런 만화영화 였을까?

 

 

 

불교의 선지식들 께서는 '나' 를 제대로 깨닫는것이 우주를 아는것 이라고 하셨다.

법성계 구절에 '일중일체 다중일, 일즉일체 다즉일(一中一切 多中一, 一卽一切 多卽一) 하나안에 일체가 있고 일체 안에 하나가 있어, 하나가 곧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라.' 고 했다.

내가 우주 그자체요, 우주가 곧 내가 되는 것이라.

제정신이든 제정신이 아니든 '나' 부터 제대로 깨어나야 한다.

바뤼흐 스피노자의 말을 빌리자면 이렇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돌아가거나 행운이 그들에게 언제나 호의를 베풀어준다면, 그들은 미신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 P285

진화의 명령은 ‘현실과 일치하는 세계를 구성하라!‘는 것이 아니라, ‘생존과 번식 가능성이 극대화되도록 세계를 구성하라!‘는 것이다. - P296

우리는 세계에 대한 완전한 진실을 알 수 없다. 우리의 확신은 이런 불확실함에 대처하기 위한 우리 뇌의 중요한 전략이다. 확산은 우리에게 불확실함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옳은 것을 하고 있다는 안도감을 준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주관적 확실함에 오도된 채 자신의 확신만이 옳다고 여겨서는 안된다. - P32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밀 쿠에 자기암시 - 긍정적인 자기암시가 우리 몸과 마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에밀 쿠에 지음, 윤지영 옮김 / 연암사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제목:  에밀 쿠에 자기암시

( 긍정적인 자기암시가 우리 몸과 마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에밀 쿠에 지음/ 윤지영 옮김

 

이책 <에밀 쿠에 자기암시>는 뭔가 독특하다.

보통 책을 읽고 나서 독후감을 쓰려면 뭔가 써야할 내용이나 감상등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책은 별다른 감상이 없다.

그저 떠오르는 구절,

'나는 모든면에서 날마다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 '

이 한 구절이 책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고 있다.

 

 

상상의 힘은 의지를 이기니까 자기암시로 상상을 현실화 시키라는게 주요 핵심이다.

즉 무의식의 힘은 어마어마해서 의식을 눌러버린다는 전제 조건을 깔아 놓고 항상 이 주문을 외우면 내게 닥친 그 어떤 병이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암시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선행 되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은 자신을 위한 믿음에 관한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에밀 쿠에의 자기암시 구절은 나는 작년  여름에 처음 접했었다.

그당시 좌절의 밑바닥에서 몸부림치는 나의 배드민턴 실력을 올리기 위해 구매했던 책(동호인 배드민턴: 지은이 이종인)을 읽다가 발견한 구절이 자기암시법 이었다.

배드민턴을 정말 잘 하고 싶은데 몸으로 하는 노력만으로는 한계를 느꼈다.

하다보니 자기암시까지 동원을 해야 하는 나의 상황에 어이가 없지만 물에 빠진 사람이 된 심정으로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다.

'나는 모든면에서 날마다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

'상상은 의지를 언제나 이긴다.'

 

그렇게 열심히 자기암시를 걸었다.

지금도 매일 자기암시를 건다.

자기암시의 효과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배드민턴 실력은 진짜로 쫴금, 아주 쫴금  손톱만큼 나아지고 있다.

그렇게 라도 믿고 싶다.

A조가 되는날 까지.

 

<나는 모든면에서 날마다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

Day by day, in every way, I am getting better and better.>

 

 

 

사기에 나오는 내가 좋아하는 구절이 있다.

泰山不让土壤,故能成其大。태산부양토랑, 고능성기대

大河不择细流,故能就其深。 대하불택세류, 고능취기심

태산은 한줌의 흙도 마다 하지 않아, 그처럼 크게 이루었고

대하는 한줄기 시내물도 마다하지 않아, 그처럼 깊이 있었다.

 

 

또 성경에는 <진실로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태복음중)  구절이 있다.

 

모든 위대함의 출발은 아주 작은 믿음에서 시작하는 셈이다.

결국 자기암시는 자기신뢰를 말한다.

자기신뢰, 그것이 곧 나를 태산 만큼 높이 만들고 바다 처럼 깊게 만든다.

또한 산을 옮길수도 있다.

자신을 믿자.

당신을 낫게 하는 것은 ‘바로 당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병의 치료는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중략.... 당신안에 자신을 치유할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기만 하면 됩니다. - P168

핵심은 이 말을 할 때 아이가 말하듯 단순하게 단조로운 어조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특히 중요한 것은 노력을 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핵심 조건 입니다. - P17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 삶이 불쾌한가 EBS 오늘 읽는 클래식
박은미 지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EBS BOOKS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제목: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삶이 불편한가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박은미 지음

 

236년전의 오늘, 1788년 2월 22일은 쇼펜하우어의 탄생날 이다.

 

 

쇼펜하우어(1788~1860)는 지금은 폴란드 영토, 당시에는 독일 영토였던 '단치히' 라는 곳에서 부유한 사업가인 아버지와 여류 문학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한마디로 쇼펜하우어의 삶을 요약하자면 아빠, 엄마 찬스를 잘 사용했던 철학자?

물론 쇼펜하우어 자신의 의지는 아니였겠지만 요즘 세대의 시각으로 보면 금수저나 엄친아 정도 아니였을까?

아버지가 남겨준 물질적 유산으로 평생 돈 걱정 없이 살았고 또 정신적으로는 어머니의 문학적 재능과 인맥을 이용한 교육을 아주 그것도 잘 받았다.

 

 

어릴때는 유럽 여행을 하다가 아버지 친구가 있는 프랑스에서 2년을 살며 프랑스어를 배웠고, 이후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의 권유로 라틴어와 그리스어 공부를 하게된다.

이때 학교교장에게 직접 개인 교습을 받았다 하니 쇼펜하우어는 부모님 찬스를 아주 잘 쓰며 자란셈이다.

그렇지만 찬스를 잘 썼다고 쇼펜하우어 전반적인 인생은 순조롭고 또 화려하게 살았던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쇼펜하우어는 부모님 찬스와는 별도로 당대에 손꼽는 천재중의 한명임은 분명한 것같다.

30세때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세상에 내놓았고, 일찍이 당대의 최고 문학가 괴테는 쇼펜하우어의 재능을 알아보고 자신의 색채론 연구에 동참하라고 권유를 했다고 한다.

또 훗날 베를린 대학에서 강사를 하며 정반합 변증법으로 유명한 당시 철학계의 거두 이자 이성 철학의 최고봉인 헤겔보다 자신이 한수 위라고 생각 했다고 한다.

그만큼 자신의 천재성에 대해서 자부심이 대단한 양반이었던 셈이다.

 

 

우리가 종종 말하는 시대를 앞서간 천재들중 쇼펜하우어도 그들중에 한명이었던것 같다.

당시의 명성은 헤겔에 비해 인지도가 거의 없었다고 하니...

늘 철학계의 비주류로 치부 되었지만 말년이 되서야 자신이 30세때 내었던 책들을 쉽게 대중적으로 다시 써내자 많은 사람들이 알아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말년에서야 비로서 주목을 받게 되고 사후엔 톨스토이, 바그너, 니체에 이르기까지 쇼펜하우어의 천재성에 탄복하게 된다.

 

 

이책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삶이 불쾌한가> 에는 쇼펜하우어가 정의한 '천재' 에 관한 고찰이 나온다.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직관한 이념을 예술 작품에 구현해 놓는 사람이 천재라 정의 한다.

또한 천재는 천재가 아닌 사람들도 직관을 할 수 있도록 매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즉 천재는 자신의 천재성을 눈앞으로 내보여 준다는 것이다.

대상이 문학이든, 미술 작품이든 혹은 음악이든 또 몸으로 하는 운동이든간에 그걸 사람들 앞에 내놓으면 일반 사람들은 천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내놓은 결과물에 대해 공감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이다.

 

천재는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통찰해서 전달함으로써 일반인들도 천재가 느끼는것을 그대로 느끼게끔 해준다는 뜻이다.

그래서 천재는 항상 통찰을 해야 하는 시간을 허비하느라 일반 세속적인 삶을 잘 영위하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이 말은 쇼펜하우어 본인이 천재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소위 천재라 불리는 사람들은 어찌보면 바보 같은 면이 있다고 하질 않던가?

그런데 쇼펜하우어는 천재라기 보다는 뭔가 항상 불쾌함에 찌든 괴짜 철학자 같은 분위기가 물씬 난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라고 소개하는 사진을 보면 앞머리는 대머리이고 양옆의 부슬부슬 흰머리는 어릴때 로봇 만화영화을 보면 악당의 편에서 일하는 박사 같은 이미지.

염세주의자로 세간에 알려진 철학자라 나에게는 어쩌면 이번생에 그냥 영원히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철학자중의 한사람이였다.

최근 들어서야 이 사람 철학이 단순히 염세주의 철학이 아니란것을 알게 되었다.

이책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삶이 불쾌한가> 는 쇼펜하우어에 대해 이해 하기 좋은 책이다..

지은이 박은미님은 쇼펜하우어 철학의 입문자들이 쉽게 들어올수 있도록 구성을 잘 한것 같다. (그래 맞다. 달리 EBS 이겠나?)

책의 앞부분은 쇼펜하우어의 전반적인 사상과 철학에 대해 비교적 쉽게 설명되어 있고 뒷 부분의 원래 책을 보는데 참고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을  '철학의 이정표' 란 제목으로 친절히 소개하고 있다.

 

 

쇼펜하우어가 말한 의지는 세계의 본질이며 이것은 이성으로 어떻게 해 볼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즉 세계는 의지가 객관화된 것이며 의지에 의해 지배된다고 말한다.

또한 의지는 고통을 유발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의지의 세계는 고통의 세계.

뭔가 비슷 하지 않는가?

 

 

불교의 일체개고(一切皆苦), 즉 일체가 다 고통이다.

쇼펜하우어가 염세주의자라는 소리를 듣는게 다 이것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불교가 허무주의 종교라는 오해를 듣는것 처럼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염세주의라는것 또한 잘못 이해된 면이 많다고 생각되는 지점이다.

 

쇼펜하우어는 의지에 종속되지 말고 의지를 극복하는것으로 '동고(同苦)' 를 설파한다. 동고란 남의 고통을 남 아픔처럼 여긴다는 뜻이다.

이것도 불교의 자타불이(自他) , 나와 남은 둘이 아니다. 라는 사상과 일맥상통한다.

즉 나와 남을 둘로 나눌때, 나와 상대를 분별할 때 그것은 의지의 작용으로 고통을 유발하지만 나와 남을 둘로 보지 않는 동고일 경우, 본래 하나라는 인식을 한다면 의지로 부터 자유로와 진다는 것이다.

 

즉 불교에서 뜻하는 보살의 경지를 말하고 있다.

 

이는 이책의 지은이 박은미님도 이와 같은 의미로 설명하고 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거듭남' 의 상태와 불교에서의 '반야바라밀' 의 경지라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척 공감이 가는 내용이라 그동안 세간에 오해 되어져 왔던 쇼펜하우어가 염세주의 철학자라는 오명을 씻을수 있기를 바라는 심정이다.

 

특히 이책에서 동고(同苦)라는 개념을 접했을때 '토리노의 말' 로 유명한 일화를 남긴 니체(1844~1900)가 떠올랐다.

1889년, 니체가 죽기 10년전에, 니체가 토리노 라는 광장을 지나다가 채찍으로 주인에게 얻어 맞는 말을 보게 되었다.

주인의 모진 채찍질에도 꿈쩍도 안하는 말을 보고서 니체는 온몸으로 말을 끌어안고 울었다고 한다.

말이 채찍으로 맞는것이 마치 니체 자신이 맞는것 처럼 느꼈다는 것이다.

즉 니체는 말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물론 니체가 당신 정신병을 앓아서 그랬다느니 택도 없는 소리라 무시할 수도 있지만.

니체는 젊은 시절에 쇼펜하우어 추종자중의 한사람 이었다.

지금은 니체가 쇼펜하우어보다 훨씬 대중적으로 유명하고 현대 철학에 끼친 영향은 어마어마 하지만 당시의 니체의 정신적 스승들 중 쇼펜하우어의 사상은 지대했으리라 짐작된다.

 

내가 볼때 어쩌면 진정한 쇼펜하우어 철학의 완성자는 니체가 아닐까 싶다.

망치 철학자 니체에게 망치 만드는 법을 가르쳐준 스승.

 

니체는 쇼펜하우어를 헌책방에서<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만났다고 한다.

스승과 제자가 직접 만나지 않고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책을 통해서 만나게 되었다.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책에서 크나큰 영감을 받고 자신의 철학을 만들게 되는 동기가 되는 셈이다.

니체는 본래 철학을 전공하지 않았다. 단지 고전문헌학 분야에 천재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젊은 나이에 바로 교수로 임용된것이라고 한다.

그런 그가 철학을 하게 된 결정적 이유가 쇼펜하우어의 책 때문이다.

니체가 헌책방에서 쇼펜하우어의 책을 만나지 않았다면, 현대 철학에서 니체는 없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의 니체의 영역은 철학에 국한되지 않는다. 현대 종교, 문학,예술에 이르기 까지 니체의 철학은 세계를 뒤덥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까 싶다.

 

'청출어람이청어람(靑出於藍而靑於藍) '청색은 남색에서 나왔지만 남색보다 더 푸르다.

이렇게 이어지는 이 두사람의 인연도 참 아름답지 않는가?

같은 시대에 접접은 있었지만 둘은 한번도 만나지 못했던 인연.

 

니체를 오늘날 니체로 만들어준 인물.

그게 바로 쇼펜하우어가 아니었나 싶다.

 

 

쇼펜하우어는 그때나 지금이나 제대로 된 평가나 인정을 받지 못한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그래서 요즘 더욱 쇼펜하우어에게 빠지게 되는것 같다.  

 

우울할 땐 쇼펜하우어를 ....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벽에 붙은 서가에서
나는 쇼펜하우어를 꺼내본다
그는 이세상살이를 일컬어 ‘슬픔으로 가득찬 감옥‘이라 했다.
그의 말이 맞는다 해도 나는 아무것도 잃은것이 없다.
감옥의 고독 속에서
그 옛날 달리보처럼 행복하게
나 나의 영혼의 현을 깨우니까
- P4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 (크리스마스 에디션) - 인생의 갈림길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하는 법
러셀 로버츠 지음, 이지연 옮김 / 세계사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제목: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 (인생의 갈림길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하는 법)

러셀 로버츠 지음/이지연 옮김

<(그는) 영국 비글호를 타고 여행하며 77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일지를 쓰고, 1750페이지 분량의 기록을 남기고, 5436점의 동물의 가죽, 사체,뼈를 수집한... 따개비를 8년간 연구 한 사람, 마지막 프로젝트를 위해 지렁이를 29년간 실험한 사람 . >- P.44일부-

 

그는 바로 찰스 다윈(1809~1882)이다.

그를 상징하는 진화론의 등장으로 19세기 동안 서구 유럽의 근간을 지탱해온 일신교의 창조론적 신념 체계는 순식간에 허물어져 버렸다.

또한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그의 생물학을 토대로 생태학, 유전학, 생명공학, 뇌과학등 자연과학의 범주를 넘어선 다른 과학적 학문과 통합 연구를 진행 하면서 과학이란 학문 자체를 진화 발전 시킨 토대를 마련했다.

이제 과학은 일개 학문적 영역의 경계에서 벗어나 유일신을 대체할 만한 신흥 종교에 버금갈 정도의 위치로 어느새 올라와 버렸다.

또한 그의 업적도 갈수록 식을줄 모르며 지금도 과학계에는 수 많은 다윈주의 추종자가 생겨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현대 과학계의 교주와도 같은 위상을 가진 다윈도 한때 인간적인 고민으로 심각하게 고려한 문제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결혼을 하느냐 마느냐' 에 대한 문제였다고 한다.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 다윈은 노트에 결혼을 한다 안한다 를 적어놓고 서로 비교하며 분석을 했었다는 것이다.

 

그가 당시에 썼던 글에는 결혼을 한다면 '동반자가 생겨 일단 외롭지는 않겠다' 거나 '함께 놀 상대로 개 보다는 나을것 같다', '여성과 수다를 떨수 있고 음악이 주는 매력을 얻을수 있고 자녀가 생기면 노후에 자신을 돌봐 줄수도 있겠다' 고 썼다.

하지만 그에 반해서 '자신은 아내를 즐겁게 해줘야 하는게 시간 낭비가 되고, 아내 친척을 방문해야 하는 수고와 시간 낭비, 자녀에 대한 걱정, 가족 부양을 위해 돈벌이를 해야 하는것, 사교 클럽에서 재치있는 남자들과의 대화를 못하게 되는점 등 자신 뜻대로 살수 없음' 에 무척 아쉬워 했다고 한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그당시 다윈의 황당한 생각에 어이가 없을정도 이지만 당시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시대적 배경을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가기도 한다.

다윈의 시대에는 남자는 독신으로 살아야만 위대한 업적을 이룰수 있다는 생각이 팽배했다고 한다.

아마 다윈도 자신이 위대한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독신을 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가진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다윈의 사후 발견된 당시 일기에 쓰인 글에는 '결혼한다. 결혼한다. 결혼한다. 증명 끝.' 이라 적으며 그의 아내 '에마 웨지우드(1808~1896)' 와의 결혼을 선택 하고야 만다.

 

이책<결심이 필요한 순간들>에서는 이처럼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다윈의 심각했던 고민,  '결혼을 하느냐 마느냐' 에 대한 문제를 소개 한다.

또한 이 문제는 책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화두 이기도 하다.

저자 '러셀 로버츠'는 세계적 석학의 반열에 오른 경제학자로 저자는 선택을 해야 하는 문제들, 즉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 특히 우리 삶에서 번번히 마주하는 답이 없는 문제에 대한 성찰을 유쾌하게 담아냈다.

 

삶에서 만나는 수많은 답이 없는 문제들, 찰스 다윈이 고민했던 결혼을 하느냐 마느냐 같은 문제나 이와는 반대로 이혼을 해야 하나 마나, 직장을 계속 다녀야 하나 마나, 아이를 가져야 하나 마나 등등, 내 앞에 놓인 선택의 갈래길에서 결심이 필요한 문제를 나열하자면 수도 없이 만들어 낼 것이다.

 

우리 인생의 굴곡점에서 전환을 맞이 하게 될 때 반드시 직면해야 하는 문제들.

하다못해 우리는 '오늘 점심에 뭘 먹을까?' 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던가?

그런 답이 없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우리는 항상 망설이게 된다.

수많은 위인들 조차도 예외가 없다. 그들도 그런면에서 우리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다.

결국 답이 없는 문제는 모든 인간에게는 필연적으로 안고 사는 문제 이기도 하다.

과연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어떻게 결심해야 하는가?

 

경제학자가 쓴 글이니 경제학의 효용적인 측면을 다룬 비용과 혜택에 따르거나 공리주의 입장에 따르는 합리적 의사 결정을 하는 방법으로 답을 구하는가 싶었다.

그런데 러셀 노교수는 그러한 경제학적인 이론들 가운데 답을 선택하고 싶지 않은것 같다. (이 또한 답이 없는 문제가 아닌가?)

그는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경제학 이론으로 내세워 펼치지 않는다.

그는 의외의 담론을 펼친다.

 

"답이 없는 문제에서 최선 이라 할 만한것이 그 무엇이든 간에 최선을 찾아내려고 시도하는 것은 잘못이다. 

최선의 반대말은 최악이 아니라 '그럭저럭 괜찮음' 이다.

따라서 우리는 삶을 보는 방식을 바꿔야만 한다.

즉 내가 삶이라는 합창에서 디바가 되려고 하지 말고 세상과 앙상블을 이룰 수 있도록 삶의 하모니를 즐겨야 한다.

자신만의 삶의 간결한 원칙을 세워 비용과 혜택을 고려하기 보단 원칙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

그러한 원칙을 두고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열망하며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연습해야 한다.

또한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를 고민하기 보단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을 더욱 늘릴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

선택권이 많을 수록 인생에서의 경험과 좋은 인연을 만날수 있는 가능성의 지평을 더욱 넓혀준다.

삶은 불확실성을 통제하고 제어 하는게 아니라 경험하며 알아 가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은 당신이 쓰면서 동시에 읽고 있는 한권의 책과 같다."

 

경제학자의 철학적인 대답에 어안이 벙벙하다.

그래서 어쩌면 이런 이유로 최재천 교수 추천사에서  '늘 곁에 두고 매일 아껴 읽고 싶은 책' 이라 했나 보다.

 

우리는 학창시절 부터 객관식 4지, 5지선답, 단답형 주관식 풀기에 익숙해져 있다.

모든 문제엔 반드시 정답이 있다는 생각이 머리속 깊이 박혀 있다.

문제집의 모르는 문제는 아는 사람에게 묻거나 혼자서 문제집 뒷면에 있는 정답과 풀이집을 보면 이해를 할 수 있었다.

도서관의 수많은 책는 각종 이론서와 법칙을 내세운 책도 많고 자연계에 존재하는 물리학의 법칙 처럼 삶의 법칙도 존재 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삶의 문제집엔 정답지가 따로 존재 하지 않는것 같다.

 

결국 노학자의 삶에 대한 조언은 경제학적 이론과 법칙을 넘어선 무언가 더 큰 심오한 진리를 담은듯 하다.

머리로 재고 따지고 분석 하지 말고 그냥 내 직관을 따르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어짜피 내가 살아가는 삶에서 정답은 없다는 명제는 동의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남은것은 오직 선택의 문제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선택의 결과에 대해 좋다 나쁘다로 규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인생만사 새옹지마(人生萬事 塞翁之馬) 를 이렇게 이해 할 수도 있을 듯 하다.

 

결과적으로 다윈의 결혼은 아주 훌륭한 선택으로 증명 됐다.

아내 에마는 평생 다윈 곁에서 다윈의 연구를 도우며 훌륭한 아내이자 조력자 역할을 했다고 한다.

다윈의 자식들 역시도 위대한 과학자인 아버지 연구를 도왔으며 각자 모두 당대 각자의 분야에서 성공했다고 한다.

다윈이 결혼을 앞두고 쓴 일기장에 쓴 '결혼한다. 결혼한다. 결혼한다. 증명 끝.' 처럼 다윈은 자신의 인생 여행을 아주 훌륭하게 무사히 마쳤다.

 

 

 

'인생은 탐험과도 같은 여행이며 최고의 질문은 답이 없는 문제들이다' 라고 전하는 저자의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열정과 깊은 통찰에 경의를 표한다.

내 인생 여행은 아직도 헤메고 있는 중 같다.

가다가 부딪히고, 순조로운줄 알았는데 막히고, 그래서 돌아가게 되고,

그래도 결국엔 나도 여행을 무사히 마칠수 있게 되리라 기대해 본다.

 

 

당신이 일단 미지의 세계에 뛰어들면 상상하지도 못했던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세로운 세상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으로 완전히 달라진 자신이다. - P47

어디에 사느냐는 내가 무얼 경험하게 되느냐 뿐만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냐에 관한 문제이다. - P108

어떤 인생 문제들은 정답이 없다. 그래도 괜찮다.
삶은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눈부시게 아름다운 일이다.
인생이란 지도 없이 지구를 행군하는 여행이다. - P143

당신이 얼마나 재치 있는 대화를 나눴는지를 음미하기보다는 다른 한 인간과 교류를 나누었다는 경험 자체를 음미하라. - P170

어느 의사 결정이 ‘본질적으로 내가 어떤 사람이냐‘를 보여준다면 대가는 고려하지 말라. 자아감을 지키는 쪽을 선택하라. - P18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