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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었다는 착각 - 어른들을 위한 문해력 수업
조병영 외 지음 / EBS BOOKS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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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시 EBS 에서 나온 책을 읽게 될줄은 몰랐다.

30년도 더 된 옛날, 고등학교때 EBS 방송교재를 사서 TV방송 수업을 들었던 기억이 생각났다.

그땐 대학 입시에 도움 된다고 방송을 들었었는데, 나에게는 별로 도움이 된것 같지는 않은것 같다. 집중도 안했고, 몇번 듣다가 말았던 기억만 있다. (지금으로 치면 인강인데... 난 왜 그때 열심히 하지 않았을까?)

EBS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 국민의 교육을 위해 항상 열심히 일 했을 것이다.

다만 내가 어른이 되면서 먹고 살기 바쁘느라 EBS를 찾을일이 없었을 뿐이었다.

그러다 어쩌다 알라딘에서 이책의 제목만 보고선 반드시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나는 분명 읽은것 같은 책인데... 책의 내용을 떠올릴려고 해도 도무지 생각이 안날때가 있다. 책 제목 조차도 모르겠다. 그런데 읽기는 분명 읽은것 같은데...

나이탓인가? 기억력의 문제인가?

이책은 나같은 어른들을 위한 책이다.

어른들의 문해력을 높이기 위해 지어진 책.

문해력(: , : 이해할 : ), 글뜻 그대로 글을 이해 할수있는 힘을 기른다는 뜻이 담겨 있다.

영어로는 '리터러시(Literacy: 문자화된 기록물에서 지식과 정보를 얻고 이해할수 있는 능력)' 라고 한다. 요즈음은 앞에다 인터넷이나 핸드폰같은 정보의 디지털화로 인해 디지털을 넣는다. '디지털 리터리시'  

이책의 서두에 밝히길 문해력은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학생들이나 청소년들은 학교에 다니면서 교과서라도 읽지만 어른들은 일년에 책 한권도 읽지 않는 통계를 언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은 현실에서 각종 언론 매체나 업무상의 메일, 각종 도표나 수치, 재테크를 위한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 계약서, 법률 문서등을 마주 해야 한다.

그런데 어른들이 만일 문해력이 낮다면? 이러한 상태라면 각종 문서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에 대해서 심히 우려가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현실의 각종 정보의 홍수속에서 어떻게 하면 정보의 편향이나 함정속에서 지켜낼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도 함께하고 있다.

이러한 정보를 접할때 항상 질문하고, 관찰하고, 사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 왜, 어떠한 목적으로 썼는지(올렸는지) 에 대한 무조건 비판적인 의심보다는 합리적인 의심으로 전체 맥락의 의미를 살펴보라고 제시하고 있다.

이책에서는 문해력을 높이기 위해 독서만을 해야된다고 제시하지 않는다.

물론 독서량이 많다는 것은 문해력을 높이는데 크게 도움이 될것 이다.

하지만 책에서의 요지는 글의 의미만 해석하는 것을 넘어선 '세상을 읽을줄 알아야 된다는 것'이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것으로 이해하고 기억하는 수준을 넘어서야 된다고 한다.

결국 문해력이란 '세상을 읽고 쓰는 능력과도 통할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7명으로 구성된 전현직 국어 교육과 교수님과 연구원들이다.

출판사는 EBS.

이책엔 독서를 넘어선 이메일 관련 작성 요령이나 인터넷의 가짜 뉴스 판별법, 수치에 관련된 의미 해석, 계약서 작성및 법률 문서까지 실생활에서 접할수 있는 모든 기록물에 대한 읽기가 언급되어졌다.

학교선생님 같은 교과서적인 어투로 하나하나 잘 설명되어 있다. 그것도 친절하게.

마지막 부록엔 책을 본 이후에 이에 대한 테스트 개념인 문해력 검사지가 있었다.

이거 부록이라고 무시하면 안된다.

그래 맞다. 공부를 했다면 테스트를 해봐야 한다. 역시  EBS 답다.

주말에 혼자 책상에 앉아 아이들처럼 시험을 친다는 마음가짐으로 나의 문해력 테스트 검사를 해봤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받아 들이기 힘들게도 종합 점수가 70점도 안됐다.  

내 딴에는 책을 많이 읽는다고 자부했는데도 이게 현실이었다. 더구나 난 문과 였는데...

애들 보고 공부 못한다고 잔소리 할 수가 없다. 그게 다 내 유전자탓이다.

이책은 또 한가지 가르침을 줬다.

그동안에 읽고나서 내용이 가물가물한 독서였었다면 결국 수박 겉핡기 식의 독서를 한 셈인것이다.

그렇다면 독서후 내용에 대한 독후감을 써보는것이다.

읽기 와 쓰기. 독서와 독후감.

실과 바늘의 관계가 되는구나.

잘 꿰메야 할텐데... 어느 순간 끊기지는 말아야 할텐데...

 

많은 경우 주장의 차이는 그 주장 자체보다는 그 뒤에 숨겨진 ‘전제(warrant)‘의 차이에서 연유한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 P268

우리는 늘 자신이 편향되고 기울어질 수 있음에 주의를 기울어야 한다.
혹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어떤 믿음이나 가정이 글 내용의 이해와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는지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즉,자신의 전제가 무엇인지 질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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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발의 시대 - 경제혁명, 종교개혁, 르네상스, 그리고 세계를 뒤흔든 40년의 역사
패트릭 와이먼 지음, 장영재 옮김 / 커넥팅(Connecting)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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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년 7월 천둥과 폭풍우를 헤치며 말을 달리던 22살의 젊은 마르틴은 두려움에 떨며 광부의 수호 성인을 부르며 찾았다.

'성안나여! 이 폭풍우 속에서 살아남는다면 곧 바로 수도원으로 들어가 수사되겠습니다' 라고 맹세를 한다.

기적과 같이 천둥번개가 멈추자 이 젊은 마르틴은 경건함과 금욕으로 유명한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로 들어간다. > 책의 내용 일부 요약.

이 사람이 바로 1517년, '비텐베르크 성당' 대문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멘' 으로 시작하는 95개조 선언문을 못으로 박아 종교개혁의 첫 도화선을 이끈 '마르틴 루터'  이다.

이책에서는 이와 같은 형식으로 여러 대표적인 인물들을 만날수 있다.

이책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서로 전혀 다른 삶을 살았지만 자세히 보면 사실 그 시대를 만드는 일에 서로 연결되어 이어져 있음을 알수있다.

'상상을 현실화한 '콜롬버스', 운명을 개척한 '이사벨라 여왕', 역전의 용사 '베를리힘엔', 최고의 투자자 '아코프 푸거', 출판업자 '마누티우스', 양모상인 '존 해리티지', 오스만투르크 '쉴레이만 대제', 유럽 최고의 금수저이자 주걱턱 대제 '카를 5세' 등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책속에서 우리가 잘아는 역사적 인물들로 유명한 사람도 있지만 처음들어 보는 생소한 사람들도 만날수 있다. 마치 <사마천 사기 열전>의 서양 중세판이라고도 볼수 있겠다.

이책엔 현대에 이르러 <서양이 어떻게 동양보다 더 잘살게 되었나?> 라는 수많은 동서양의 학자들이 갖는 의문에 대한 작가의 통찰이 담겨져있다.

작가의 이에 대한 대답, <낙후됐었던 서양이 세계의 중심이 될수 있었던 이유는 1490년에서 1530년 까지 40년의 기간동안에 경제, 정치, 기술, 문화, 사회, 종교가  동시다발적인 발전과 변화가 충돌하고 연결하면서 창발을 일으켰기 때문에 현대 세계의 토대가 되었음>을 제시한다.

즉 작가의 요지는 1490년에서 1530년, 이 40년의 시기가 창발이 일어난 중요한 시기라는 것이다.

작가의 통찰에 공감할수 있는점은 혁명적인 기술이나 참신한 사건들은 대개 단순히 한가지 원인만으로는 발생할수 없다는 것이다. 여러개의 원인이 동시에 합쳐지고 반응하여 발생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서양이 급속도로 앞서나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작가는 창발의 시대라 일컫는 시기부터 빌드업을 했다고 통찰한것이다.

이시기에 유럽전체가 르네상스 시기의 인간중심의 사상이 싹을 텄고, 신대륙 발견으로 항해술과 무역업이 발전했으며, 또한 더불어 인쇄술로 인한 지식보급의 확산, 크고 작은 전쟁으로 인한 화포의 발달, 게다가 그 모든것의 뒷받침이 될수 있는 금융업이 발달하고 마지막으로 종교개혁까지 이어진것이다.

책의 작가 '패트릭 와이먼' 은 현재는 역사 팟케스트 진행자이다. 

한때는 대학원에서 유전학, 법의학적 분석,동위원소 분석, 전염병 연구를 통해 과학적 분석론으로 역사를 연구하는 방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이러한 작가의 경력이 창발의 시대라는 통찰을 지닌 책으로 나올수 있게 된것이다.

그렇다면 서양에서의 창발의 시기에 우리 동양은 어떠했을까?

작가의 책에는 당시 동양의 상황이 없는것이 유감이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별도로 동양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먼저 내가 생각하는 동양은 동남아시아를 무시하는것은 아니지만 동양이라 하면 어쩔수 없이 한,중,일 세나라가 중심으로 본다. (물론 인도로 포함할수 있지만 오늘은 일단은 제외하기로 하고...)

그래서 한중일 위주로 살펴보았다.

이 시기때(1490~1530) 우리나라 조선은 9대 성종, 10대 연산군, 11대 중종으로 3대가 이어지는 시기였다.

옆의 명나라도 9대 홍치제, 10대 정덕제, 11대 가정제로 역시 신기하게도

똑같이 3대로 이어지는 시기였다.

이때 일본은 조선과 명처럼 중앙집권체제가 아닌 각 지방의 사무라이들의 세력 싸움으로 얽혀있었다. 히데요시가 통일(1585)하기 전까지 혼란의 전국시대였었다.

즉 일본과 달리 조선과 명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나라를 세웠기 때문에 조선 임금과 명 황제의 집정시기와 두나라 왕실과 황실의 성향도 서로 이상하리 만치 비슷하게 겹쳐보인다. (둘이 운명 공동체냐? )

이때만 해도 명나라는 단연 세계 최고의 국력이였다.

'창발의 시기'보다 70~80년이나 앞선 시기에 명나라의 환관 '정화' 는 군단(2만 7천명 규모) 을 이끌고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까지 원정을 다녔다. (그것도 7차례나.)

명은 콜럼버스가 유럽왕실의 재정을 지원받아 겨우 마련한 몇척의  항해와는 비교도 안되는 규모로 압도적인 국력을 자랑했다.

조선과 명의 국가초기는 왕권이 안정됐었고 이때 유럽의 어느나라와 비교해도 국력은 앞선것으로 봐도 될것 같다.

문제는 그 이후인데 자세히 조선부터 살펴보면 먼저 9대 성종재위시기 (1469~1495)는 세종대왕 이후의 성군으로 칭송 받을만큼 나라를 안정시키고 잘 다스렸다.

그러나 10대 연산군 재위시기(1495~1506)는 임금이 조선역사상 유래 없는 막장과 폭군짓을 해버린다.

참다못한 신하들에 의해 결국 중종 반정(1506)이 일어난다.

11대 중종 재위시기(1506~1544) 때 왕은 신하들의 눈치를 봐야하는 처지로 전락하고 만다.

그러면서 조선은 서서히 당파싸움으로 내부의 힘이 결속이 안되고 그러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어야 했다.

즉 이시기 부터 조선은 서서히 왕권이 약화되기 시작한것이라 봐도 될것같다.

명도 살펴보면 9대 홍치제 때(1487~1505)는 명의 역대 황제중 성군으로 칭송을 받는다.

이때는 조선의 9대 성종이나 명의 9대 홍치제도 똑같이 성군이란 칭호로 평가한다.

하지만 명도 조선과 비슷하게 그의 아들 10대 정덕제 시기 (1505~1521) 부터 황제가 국정보다 '어떻하면 재미있게 놀까?' 에만 심취한다.

예를 들어 황제가 스스로 1인 2역 놀이에 빠져버린다.

자기가 자기한테 벼슬을 내려 스스로를 장군으로 임명하여 전쟁에 나가 오랑캐에 직접 토벌하고 공을 세우기까지 한다. 그리고 또 자신에게 상을 내린다. 역대 중국 황제중 가장 독특한 인물중에 하나임에 틀림없다.

또 막무가내로 황궁을 벗어나 기행을 하고 말리는 신하들을 벌하기도 한다. 그렇게 황제놀이도 질렸는지 뱃놀이를 하다 어찌 물에 빠져 결국 창창한 나이 30에 후손도 없이 황당하게 죽어버렸다.

자손이 없으니 직계도 아닌 방계인 사촌 '가정제(1521~1567)' 가 11대 황제로 등극하게된다.  가정제는 재위기간 내내 도교술에 빠져버린다.

명나라 역사는 이때부터 본격적인 암군(暗君) 의 시기로 점차 국력이 쇠퇴하는 시기로 향해간다.

결국 서양이 창발의 시대를 겪는동안 일본은 혼란중이고 조선과 중국은 안정기에서 혼란스러운 시기로 접어들게 된다.

그 이후 역사를 보면 일본은 노부나가가 통일의 기틀을 마련했으나 '혼노지의 변' 으로 죽게 된다. 바로 그때 혼란한 틈을 탄 그의 부하 히데요시가 일본을 순식간에 장악해 해버린다.

하지만 히데요시의 과한 망상으로 인해 임진왜란을 일으키는 패악질로 한중일 삼국이 혼란에 휩싸인다. 결국 7년 전쟁후 일본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다시 통일된다.

그후 막부시대를 거쳐 메이지유신시기 혼란, 일본 제국주의, 일본패망, 다시 현대 일본순으로 거쳤다.

한편 명은 임진왜란을 겪고난 후 얼마 안가서 완전히 멸망해 버린다.

오랑캐 이민족 청이 들어서고 100년간 전성기를 유지하는듯 하다가 외세에 의해 혼란, 결국 청이 망하고, 또 혼란, 그러다 중국이 내전으로 혼란, 최후엔 공산당이 대륙을 차지하여 지금까지로 이어진다.

조선은 임진왜란 시기에 망하지는 않았으나 곧 병자호란을 겪고 이후 쇠망의 길에 들어선다.

그러다가 근대엔 결국 일본에게 치욕적인 식민지 지배, 후에 해방됐으나 다시 6.25사변등을 혼란과 시련의 연속이었다. 이게지금까지 이어진 역사이다.

좀 멀리 나가긴 했지만 이렇게 전체를 보면 세상의 이치가 조금 보이는것 같다.

세상의 이치는 혼란과 안정, 다시 혼란, 다시 또 안정으로 반복되는것 아닌가 싶다.

서양적인 사고에서는 시간과 역사는 앞으로 전진한다.

그러나 동양적인 사고에서는 시간과 역사는 순환한다. '발전과 쇠퇴', '혼란과 안정' 이란 식으로 길게 보면 세상은 순환하는것이다.

혼란이 있으면 질서가 생긴다. 질서라고 해서 늘 고정된것은 아니다.

물리학의 엔트로피 법칙처럼 다시 또 시간이 흐르면 무질서로 되어 버린다.

혼란은 나쁘고 질서는 좋다는 개념으로 접근하는게 아니다. 모든것은 변한다.

항상 고정된게 아니다. 혼란속에서 질서를 찾고 , 그 질서를 계속 유지하기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들어간다. 동양적인 시각으로 보면 그게 세상이치라고도 볼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 현대 시점으로 봤을때 동양이 서양보다 뒤쳐졌다는 의문은 애초에 잘못된 질문이 아닐까 싶다. 긴 안목으로 본다면 결국 다 똑같지 않을까?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 기근, 전염병을 극복한 현대시기가 과거에 비해 비교적 안정적인 시대였다면 이제 곧 혼란의 시기를 맞이하는 준비를 해야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 이시기(2023)를 우리 후손들이 미래에서 돌아본다면 제 2의 창발의 시기로 부를수도 있지 않을까?

4차 산업혁명과  GPT와 인공지능의 부상, 지구 온난화와 기후문제, 탈원전문제, 탄소중립문제, 변이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 등등 이미 겪고 있는 문제와 다가올 문제들로 혼란을 겪게 되었다. 또한 경제의 성장 둔화, 가짜 뉴스의 범람, 정치와 사회의 양극화, 물질 만능주의의 심화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넘치고 또 넘친다.

미래에 대한 희망보다 절망이 더 앞서 보인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할 시기인것이다. 지금까지 인류가 헤쳐나온것 처럼 역사속에서 답을 찾아보는것도 좋은 방법일것 같다.

안정은 지속되지 않고 곧 무질서가 찾아왔고 혼란스러울 수록 오히려 변화를 통한 발전이 있었다. 혼란스럽고 어지러워 보이는 지금이 곧 변화와 발전의 시기일수도, 그러니 절망은 하지 말자.

세상에 대한 공부와 자신을 성찰하는 길에 답이 있다고 믿는다.

그것이 독서를 해야하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Deus enim et proficuum
(신과 이익을 위하여)
중세 상인의 장부에 흔히 기록된 문구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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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나들이 2023-10-04 0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공이 느껴지며 상당히 알찬 글이네요. 적극 공감합니다.

마힐 2023-10-09 11:10   좋아요 0 | URL
글쓰기가 서툴러 너무 길다고 생각했어요. 그럼에도 끝까지 읽어 주시고 공감까지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죽음의 역사 - 죽음은 어떻게 우리의 세상을 변화시켰는가?
앤드루 도이그 지음, 석혜미 옮김 / 브론스테인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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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 읽고 있으면 초딩시절 좋아했던 잡학상식이 떠오른다.

'백신(VACCINE)' 은 우두를 치료하기 위해서 만든 라틴어 '소(VACCA)' 에서 유래했다. (나는 이제까지 '백신' 이란 단어가 영어인줄 몰랐다. 한자가 아닐까 하는 추측만 했었다.)

19세기 중반까지 '전염병은 더러운 공기를 통해 병이 생긴다'는 '포말전염설' 이 '미세물에 의해 병을 옮긴다' 는 설보다 우세했다. (과학계에서는 정확한 사실보다 힘있는 집단의 지지로 가설이 인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19세기 말이 되서야 질병의 '세균유래설' 이 인정됐다고 한다.)  

출산하다가 사망한 산모 대부분은 불청결한 위생상태의 의사들로 인해 산욕열로 사망했다. (19세기까지 의사들은 사용했던 수술복 교체나 깨끗히 손씻기 조차 안했다고 한다. 즉 위생개념 자체가 없었다. )

 

17세기까지 유럽의 지배자들은 자신이 다스리는 나라와 도시의 인구가 얼마인지도 몰랐다. (인구조사는 사탄의 유혹이라는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조사하길 꺼려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일반적인 성인 남성의 키 177이고 몸무게 78키로라 한다면 하루 필요한 열량은 2280칼로리이다.  250년 전엔 이정도 체격이였다면 굶어 죽었을 것이다.

(인류가 수렵채집에서 농경사회로 변화되자 오히려 심각한 영양실조를 겪게된다. 기근과 전염병, 전쟁으로 인해 제대로 된 영양공급을 받을수 없었기 때문이다.)

'왕의 딸들'이라 불리는 프랑스 미혼 여성 800명은 17세기, 루이14세때 캐나다로 이주하여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 지금 캐나다의 프랑스계인은 500만명에 이른다. 안젤리나 졸리, 힐러리 클린턴, 마돈나가 그들의 후손이다.

러시아의 보드카는 황제가 세금을 걷기위한 수입원으로 대대적인 홍보로 국민음료로 자리를 잡았다. 등등

알아두면 재미있는 잡학상식으로 가득차 있다. (다만 전부 머리속에 남을지는 의문이지만... 확실히 재미는 있다.)

이책은 인류가 시작된 이래로 통계할수 있는 죽음에 관한 과학 역사서 이다.

작가는 죽음을 주제로 하여 중세 유럽의 흑사병으로 인한 죽음, 기근으로 인한 죽음, 콜레라, 장티프스나, 말라리아, 괴혈병등의 전염병에 의한 죽음 , 유전병, 자살, 술 담배 중독, 교통사고로 인한 죽음. 등등 인류가 과거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죽음의 종류와 역사를 광범위 하지만 정말 지루하지 않게 전한다.

17세기 영국에선 지금의 일기예보 와 같이 사망하는 사람들의 숫자와 사망유형을 주간 통계표를 발간 했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 통계표를 보고 다음날 외출을 할때 참고 하였다고 한다. 마치 우리가 코로나시기때 몇명이 감염됐고 어디서 감염 됐는지에 결과 보고를 매일 했듯이. 그 시기에 이미 대중적으로 공유 됐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콜레라로 죽어 가는 사람들에 대한 원인을 파헤치기 위해 셜록 홈즈 버금가는 추리와 탐문으로 홀로 고분분투하는 영국인 '존 스노우' (존 스노우 이름하면 '왕좌의 게임' 이 먼저 생각 나버린다.) 라는 의사의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먼저 존 스노우는 콜레라가 위생적이지 않은 물 때문이라는 가설을 세운다.

이후 스노우는 집단 사망자가 발생한 마을 우물을 중심으로 그 지역과 이웃 마을, 맥주공장등 여러곳의 탐문 수색과 역학 조사를 펼친다.

우물과 상관없는 지역에서 발생한 죽음에서 다시 의문점을 제기 한후 모든 실마리를 풀어낸다. 최후에는 진짜 범인을 잡아낸다.

범인은 역시 '우물물!' 이라고 지목하는 지점에서는 셜록 홈즈를 안 떠올릴수가 없다. (소설속의 셜록 홈즈 또한 영국인 이다.)

이책엔 이러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곳곳에 펼쳐져 있다. '네이더'라는 변호사 홀로 거대 기업 GM(제너럴 모터스: 자동차회사) 간의 법정싸움, 인간이 완전히 박별한 천연두 이야기등 자세히 보면 하나하나의 소재를 가지고 각각의 흥미있는 소설을 써도 무방할것 같은 내용들이 넘쳐난다.

이책의 작가 앤드루 도이그는 영국인으로 맨체스터대학의 생화학 교수이다.

요즘 읽는 책중에 정말 개인적으로 잘 썼다는 책의 저자들을 보면 영국인들이 쓴 책들이 많다. 어쩌면 세익스피어의 나라의 후손이라 그런가? 아니나 다를까? 이책 역시 책의 첫머리 구절도 햄리의 한구절을 인용해 놓았다.

<우리가 이 속세의 번뇌를 벗어버린 다음, 죽음의 잠속에 어떤꿈이 올지 생각하면 잠시 머무를 수밖에>

또한 이책 영문제목 <THIS MORTAL COIL> 햄릿에 나오는 시어로 '죽음'을 뜻한다. 이쯤이면 영국인 작가들은 대부분 세익스피어의 피가 흐르는게 맞는것 같다.

이책의 특징으로 뒤편에 부록으로 생명표가 있다. 자신의 생이 얼마나 남았는지가 궁금하다면 재미삼아 볼만하다. 영국의 2014~2016년 평균으로 작성한 통계표인데 지금의 시점에서 오차가 있을수 있겠지만 참고할만하다. 난 아직 32년 정도 더 살수가 있단다. 우린 모두 시한부 삶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이책을 집필하게된 작가의 말을 보면, 사망원인에 대한 변천사를 쓰겠다가 결심했을땐 주로 의학적인 논의를 할줄 알았다 한다. 그런데 막상 자료를 찾을수록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는게 의료가 아니었고 법률, 정책, 공학, 통계, 경제학 과 같은 훨씬 많은 영역을 이해 해야 했다고 한다. 한권에 책에 이모든 분야를 통섭했다면 작가의 역량이 대단한거다.

또한 줄기세포의DNA 염기서열 기술을 이용한 인류의 미래에 대한 작가의 긍정적인 해석도 공감이 된다.

이책은 작가가 40년간의 교육현장에서 쌓아온 내공이 깃들어 있다. 죽음이란 무거운 주제를 통섭의 시각으로 보게 했줬고 많은 지식을 알게해줘서 작가에게 감사하다. 무조건 읽어 볼만한 책이다.

다만 이 좋은 내용들을 머리속에 집어 넣기에 나의 뇌 용량이 너무 작은게 아쉬울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도 오늘도 독서다.

 

 

 

수많은 자가 죽었다. 모두 세상의 종말이 왔다고 믿었다.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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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 그런 나는 없다
홍창성 지음 / 김영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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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얇다. 디자인도 깔끔하다.

불교의 핵심 진리인 '무아'에 대한 책이다. 제목도 '무아' 라는 뜻에 걸맞게 하얀 바탕에 드러나지 않는 음각으로 인쇄가 되어있다.

이책의 흥미로운점은 불교라고 해서 어려운 한문풀이나 구구절절 고리타분한 교리에 관한 내용이 아니다. 요즘 세대들도 쉽게 읽을수 있는 문체로 되어있어 편하게 볼수 있다. 철학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볼만한 책이다.

이책에서는 먼저 '나는 누구인가?' 라는 궁극적인 철학적인 질문에서부터 문제를 제기한다. 이 질문이 과연 타당한것인가? 라는 작가의 견해가 흥미를 끈다.

이후 기독교의 '영혼'과 소위 '나' 라고 일컫는 실체에 대해 파헤쳐본다.

파헤치는 도구는 언어철학, 불교의 연기론, 근대 데카르트의 서양 철학등을 동원한다.

그리고는 비교와 분석을 통해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무아를 역설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작가의 철학적인 분석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의도는 충분히 볼만하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고난 후 몇가지 아쉬움이 사라지지 않는다.

먼저 작가가 강조하는 '무아' 는 글자 그대로 '내가 없다'는 무기공(無記空)에 치우친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왜냐하면 작가는 '참나'를 부정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참나' 라는것은 힌두교의 '아트만'과 같은것으로 간주했고, 작가의 시각으로 보는 일부 불교계에서 주장하는 '참나' 라는것은 부처님께서 설한 '무아' 와는 위배가 된다는 것이다.

이게 왜 아쉽냐면은 작가는 무아에 대한 단순히 평면적인 해석(내가 없다)을 한것이 아닌가 싶었다.

대행 큰스님께서는 무아에 대한 개념에 대해 '나를 무엇이다' 라고 딱 '나' 라고 고정할수 없어서 '무아'라고 설하셨다. 즉 '고정됨이 없는데 어찌 나 라고 세울수 있는가?' 하셨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무아' 라는것은 단순히 내가 없다는 개념이 아니라 '에고로서의 나' 를 없애면 자연히 참성품이 드러난다는 것 까지 포함된것 일것이다.

참성품은 곧 부처님께서 설법하신 법화경에서의 우리 모두에게 내재되어 있는 '불성' 인것이다. 작가가 '참나'를 인정 하지 않겠다면 '불성'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인지? 그점이 모호하다.

만약 '불성'도 없는것이고 다 '무아' 라고 한다면 부처님께서 설하신 '누구나 다 불성이 있고 부처가 될수 있다' 는 법화경의 설법은 무엇이란 말인가?

조주선사의 선문답, 개에게도 불성(性)이 있습니까? 에 대한 대답 '무()' 라고 한것 처럼, 우리의 불성도 '무' 라고 받아 들여야 하는건지?

책에서는 정작 중요한 불성과 마음에 대한 언급은 전혀없다.

또한 부처님 열반시 '법등명(燈明) 자등명(燈明)' 하라는 부촉(咐囑)을 남기신것은 불자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서 자등명 즉 '자신을 등불 삼아 밝히는것' 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된다는 것인지? '무아' 이므로 '밝혀야할 나' 는 없게 되는것인가?

이처럼 작가의 무아론을 확대하면 단순하고 피상적인 철학적 논리로는 부족해서 좀더 해설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었다.

더구나 책에서 마지막 해설중에 진제(참된 진리)라는 면에서는 무아가 맞지만 속제(세속적인 진리)라는 면에선 '실용적인 나' 의 일면도 존재한다고 인정했다. 이것으로 작가 나름의 결론인지 제안인지 모호한 설명을 내놓은것이다.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나' 라는 존재에 대해서 작가가 일관되게 주장해온 '무아' 와 함께 어설픈 절충안을 내놓은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불교는 수행의 종교이자 실천의 종교이다.

분명 불교가 철학적인 면이 있는건 사실이지만 목적은 마음의 불성을 깨닫고 부처가 되고 자유인이 되는데 있다. 또한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위로는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한다)' 이라 하지 않던가?

불교는 분명히 서양 철학식의 분석과 비교로 배우고 깨닫는 종교가 아니라고 본다.

게다가 불교 또한 종교이기 때문에 믿음을 기본적으로 가져야 된다.

더구나 그 믿음이 절대자를 향하는게 아니라 자신 자신에 대한 믿음, 즉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자기불성에 대한 믿음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철학적으로 '무아'가 이치에 맞는다 하더라도 마음으로서 믿음과 수행이 깔려있지 않는다면 '사상누각(沙上樓閣)' 이 되는게 아닐까 싶다.

이책의 작가' 홍창성' 은 현재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학의 철학과 교수님이시다.

작가가 주장하는 진리는 신비한 무언가가 아니고 오히려 단순하다는 명쾌함은 동의를 하지만 <무아가 곧 깨달음이고 행복이요 자유>라는 불성을 배제한 '무아만능론' 에 가까운 주장에 대해서는 납득이 잘 안간다.

철학과 교수님답게 서양철학으로 불교 철학을 해석하신점은 탄복하지만 마음을 떠난 믿음과 수행이 바탕이 되지않은 문자 논박에 치우친점은 많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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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나들이 2023-10-04 0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핵심적인 사항을 잘 배웠습니다. 수준높은 글입니다. 초심자에게 배움을 주시니, 매우 감사드립니다.

마힐 2023-10-09 11:07   좋아요 0 | URL
저도 아직 배우는 중입니다.부족한글에서 배우셨다니 저도 감사드립니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 삶, 사랑, 관계에 닿기 위한 자폐인 과학자의 인간 탐구기
카밀라 팡 지음, 김보은 옮김 / 푸른숲 / 2023년 4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읽으면서 작년에 방영 됐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연상됐다.

이 책의 작가 '카밀라 팡'은 영국인 생물화학 과학자이자 자폐스펙트럼과 야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신경장애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그들의 대뇌에서는 우리 지구별에 사는 대다수의 인류와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하는 사람들인것 같다. 그들에게는 '인간사용 설명서'가 필요할 정도로 지구별에 적응하기가 무척 어렵다고 한다. 그들의 머리속에는 일반적인 우리 보통사람이 생각할수 있는 사고를 넘어선 세계가 펼쳐지기 때문이란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생각들과 현실에서의 혼란스러운 소음들, 지극히 예민한 후각으로 인해 불쾌한 냄새들, 그리고 대인공포증까지 그들이 체험하는 세계는 그들을 정서적으로 늘 불안케한다. 그러한 고통은 우리 보통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오히려 우리는 그들의 평상시 나타내는 표정과 행동에서 우리와는 다른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게 된다.

작자는 어린시절부터 이러한 고민을 인식하게 되자 지구별에 사는 사람들과의 소통을 위해 자신이 직접 인간사용 설명서를 제작한다. 바로 그러한 시도가 이책에 담겨져 있다. 놀라운것은 이러한 과정에서 자신을 직접 실험대상으로 삼았다는데 있다. 이책은 상대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또 자신을 실험하고 실패하는 수없는 자기 단련의 보고서 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결국 이러한 실험정신과 수많은 실험의 실패에서 자신과 세상을 재해석해낸다. 즉 카밀라 팡은 과학(생물학, 물리학, 확률, 역학, 화학, 컴퓨터 프로그램밍 등) 이라는 자신이 완벽히 이해할수 있는 도구를 이용하여 세상의 현상을 해석함으로써 자신이 가진 '자폐세계'와 일반적인 '현실세계'를 잇는 브릿지가 되었다.

더구나 작가의 통찰에 감탄했던것은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있던 작자가 어떻게 자폐를 버리지 않으면서 세상과 소통하고 연결하는 방법이었다.

마치 선불교에서 '번뇌를 버리지 않고 보리를 추구하는것'과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야스퍼스 증후군이 있는 우리는 모든것을 인지하고 상황의 모든 세부 사항까지 정보로 저장하기 때문에, 우리의 기억은 금세 가득찬다. ... 그리고 다른 자극에 항상 대비하는 중이라면, 그저 스위치를 꺼버릴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더불어 나의 일부분인 이 특성을 나는 절대로 잃고 싶지 않다.  끝없는 준비와 루틴으로 나타나는 집착은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보게 해주는 지각 능력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은 눈길도 주지 않을 곳에서 아름다움과 다름을 발견하는 특성이다. 관찰하는 능력이 나를 개방적이며 활기차게 해주고, 종종 기술적인 현대성이 허락하는것 보다 내 야성에 더 가까워 지도록 해준다.>

작가는 자신의 장애를 장애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보는 능력이라고 여긴다. 이러한 수용의 정신과 끊임없이 세상을 향해 자신을 내던지는 실험정신 가득한 작가의 모습에서 자신의 본성품을 찾아가는 구도심 가득한 수행자의 일면을 느낄수 있었다.

책에 나오는 과학적인 내용은 결코 쉽지만은 않은 내용이라 과학적인 내용 일부는 정확하게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난 아직도 베인즈정리나 퍼즈논리가 잘 구분이 안된다. 이래서 과학공부를 해야한다...) 작가가 해석해 내는 방식에 대해서는 깊이 감탄하고 박수를 쳐주고 싶다.

아직 젊은 과학자이지만 앞으로 인류에 크게 기여할 만한 인물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생겼다.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가 되는 작가이다.

자폐가 장애가 아닌 또 다른 시각이라는 것, 나 또한 그러한 시각을 과학을 통해 이해 할수 있게 해준점, 책을 통해 공감할수 있었다.

카밀라 팡(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팡'이라는 성씨를 보면 영국으로 아주 오래전에 정착한 중국인 후손이 아닌가 싶다. 자폐를 가졌다고 하지만 전통적으로 무뚝뚝한 영국인과는 다른 혼혈 같다. 어쩌면 진짜 지구별에 불시착한 외계인 일수도.... ㅎㅎ 믿거나 말거나.)

우영우는 드라마에서 고래에 대한 남다른 집착과 동시에 고래를 통해 세상를 재해석했다.

자폐는 또 다른 세상이자 또 다른 시각이었다.

자폐증 환자만 자신만의 세상에 갇힌게 아니다. 우리도 각자 자기 세상에 갇혀있지않는가? 어쩌면 우리 모두  자폐증 환자일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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