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무당 김어준 - 그 빛과 그림자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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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책이다. 새빨간 원색의 표지에, 제목 역시 원색적이다. 정치와 무당, 그리고 김어준이라니. 심지어 저자는 오래전부터 다양한 인물평을 해 온 강준만이다. 저절로 손에 한 번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제목에 실린 것처럼 김어준이라는 인물을 ‘정치 무당’으로 단정 짓고 그의 행적에 대해 강한 비판을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먼저 짚고 넘어가자면, 개인적으로는 김어준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그리 많이 알지 못한다. 그가 시작했던 딴지 일보를 한 번도 보거나 들은 적이 없고, 그가 한다는 유튜브도 애써 찾아들어보지도 않았고, 지금은 그만둔 TBS의 청취율 1위였다는 프로그램도 일부러 찾아 들어본 적은 없다.(유튜브 알고리즘에 떠서 몇 번 보긴 했다) 다만 그가 제작에 참여한 영화를 한두 번 본 것 같긴 하고, 그와 관련된 뉴스나 기사를 좀 본적이 있는 정도.




저자가 김어준을 강하게 비판하는 지점은 몇 군데로 요약이 가능하다. 먼저 김어준 특유의 음모론 제기다. 대부분의 음모론들이 그렇듯, 현실에 대한 불만에 의심을 몇 스푼 섞어 만들어 낸 거대한 음모론은 한 번도 증명된 적이 없었지만, 김어준은 이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나 발언의 철회를 한 적이 없다. 그저 시간이 흘러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거나, 새로운 이슈를 던져 덮어버리는 식이다. 전형적으로 말에 책임지지 않는 캐릭터라는 말.


또, 그가 정치적 반대파에게 쏟아 붓는 혐오적 표현들, 악마화를 하는 발언들도 문제로 지적된다. 기본적으로 이건 대화나 타협의 용어가 아니라서, 이런 표현들에 젖어버리면 근본적으로 합의점을 찾아가는 정치적 과정이 무너지고 만다. 결국 상대를 쓰러뜨리고 짓밟아야만 되는 냉혹한 정치판이 되고 만다는 것.


역지사지의 부족도 또 한 가지의 문제다. 우리 편의 잘못에 대해서는 한 없이 관대하고, 상대의 잘못에 대해서는 앞서 언급한 음모론과 혐오발언을 통해 물고 늘어지기 일쑤라는 것이다. 이런 언행은 자기편의 속은 시원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상대의 반성을 이끌어 내기는 무리고, 나아가 중간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도 환멸을 느끼게 하는 지점이 된다.


그가 공영방송을 사적인 정치적 견해를 반복해 발화하는 도구로 사용했다는 점도 지적된다. 물론 여기에 조중동은 더 하지 않느냐는 반론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것들은 민간 언론사이고, TBS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라는 차이가 있다는 것. 정권이 바뀌고, 이제 보수 진행자가 보수를 옹호하는 방송을 한다면 민주당 쪽에서는 가만히 있겠느냐는 지적은 크게 틀리지 않는다.




사실 이런 지적은 좀 과한 면이 있다 싶으면서도, 근본적으로 그 내용 자체는 귀담아 들어야 할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어준에 대한 지지는 민주당 계열의 지지자들 가운데서 압도적이다. 저자는 김어준이 마치 지지자들에게 교주처럼 굴고 있다고 비판한다. 오류가 없고,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으면서, 자신의 말을 믿으라고 지속적으로 가스라이팅을 하는 존재.


스피커로서 존재감이 워낙에 커져버린 김어준에게 민주당 소속의 국회의원들도 줄서기 바쁘고, 그런 김어준과 대화를 하다보면 저절로 강성발언에 매몰되는 경우가 많다는 내용도 인상적이다. 그가 자신과 대화하는 상대방의 템포와 수위를 자신에게 동기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은 꽤 날카롭다. 결과적으로 한국 정치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주범이라는 인식인은, 김어준 자신에게는 좀 억울하게 들릴 지도 모르지만, 이제 자신의 위치를 생각하면 좀 책임감 있는 언행을 보여야 한다는 비판으로 읽으면 어떨까 싶다.


물론 그를 비롯한 지지자들이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는 처지로 몰려갔던 것이 큰 트라우마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일종의 죄책감은 그를 그렇게 몰아갔다고 여겨지는 이명박과 그 지지자들에 대한 강한 적개심으로 발전했고, 아마도 그 즈음에 김어준과 그 멤버들이 크게 뜨기 시작하지 않았나.


상대가 막 나가는데 우리만 점잖게 나가면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느냐는 심정도 이해는 간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뭘 하겠다는 건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증오나 혐오는 무너뜨리는 데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뭔가를 세우는 데는 적합한 도구가 아니니까. 그리고 여기서 그런 증오와 혐오는 보수 정당에서도 못지 않게 하고 있지 않느냐는 지적도 옳다. 다만 여기서는 김어준이라는 인물의 행적을 주제로 하고 있으니까.




개인적으로는 김어준의 과격하고 거침없는 발화가 늘 위태위태해 보였다. 그런 발화가 지지층의 속은 시원하게 해 줄지 모르지만, 결코 전체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선전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다.


당장 지난 대선만 해도, 선거 즈음해서 민주당 계열의 여러 스피커들이 경쟁적으로 나와 낙관적 전망과 함께 비슷한 종류의 강성 발언을 쏟아냈지만, 결과는 패배였다. 상대당 후보가 연일 헛발질을 해댔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 중 하나는, 분명 김어준을 비롯한 강경 스피커들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커지고 여기에 국회의원들까지도 부화뇌동하는 모습에 적잖은 사람들이 일종의 불안감을 느꼈기 때문은 아닐까.


한국 정치는 분명 망가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여기에 김어준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식으로 말하는 건 지나치다. 하지만 그의 책임이 또 전혀 없다고도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한 번도 선출되어 본 적이 없는 그가 어느 샌가 선출직 국회의원들의 태도를 좌우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선 것 자체만으로도 정상은 아니라고 본다. 그가 개인 방송에서 개인 자격으로 뭐라고 하던 그건 그의 자유지만, 그를 지나치게 떠받드는 건 결코 민주당에게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지적은 어쩌면 민주당을 위한 고언일 지도 모르겠다. 물론 저자의 최근 행적이 보수 쪽으로 전향(?)을 했다는 말들이 나오기도 하는지라, 진심으로 잘 되기를 바랐을 지는 확실치 않지만.


어쩌다 보니 저자의 평가에 상당 부분 동의하는 것처럼 되어버렸다. 근데 이와는 별개로 책 자체가 잘 만들어진 것 같진 않다. 꽤나 동어반복이 잦고, 책의 내용 대부분이 여기저기서 가져온 발췌문들이다. 사실 이 정도의 내용이면 30페이 정도로 요약도 가능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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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신의 연대기 - 지워진 믿음의 기록
이창익 지음 / 테오리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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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디자인이 재미있다. 새롭게 만든 건 아니고, 조선시대 민간에서 흔히 사용하던 일종의 부적 표상과도 같다고 한다. 세 마리의 물고기가 머리를 가운데로 모아 하나의 머리를 만들고, 거기에 눈이 하나가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몸이 세 개인 하나의 물고기, 일목삼신어(一目三身魚)다. 주로 눈에 뭔가 병이 생겼을 때 치유를 기원하며 만들어 붙였다고 한다. 물고기의 하나뿐인 눈에 못을 박아두고는, 내 눈의 병을 낫게 해주면 못을 빼주겠다고 위협하는 문구와 함께.



이 책은 20세기 초 우리나라(조선,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에서 유행했던 다양한 미신들을 신문이나 공식 기록물 등을 참고해 나름 정리해 준 책이다. 책에 소개되는 미신들의 수준이 꽤나 다이내믹하고 버라이어티하다.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을 때, 동네 여성들이 나서 근처 산의 신성한 곳을 향해 오줌을 싸거나, 신성한 구역에 묻힌 시신을 파내버리는 건 오히려 약과였다.


별다른 치료법이 없었던 나병에 걸린 사람들이 아이들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의 신체를 먹었다는 신문 기사는 수없이 등장하고, 몇몇 지역에서는 전염병에 걸려 죽은 아이의 시신을 땅에 묻지 않고(그러면 땅이 더럽혀진다는 미신) 줄에 매어 공중에 달아놓는 풍장이 유행하기도 했다. 우리 조상들은 얼마나 하드코어한 삶을 살았던 건지.


책의 후반 두 개 장은 당시 전국적으로 유행하던 신흥종교들을 다룬다. 수십 명의 여성을 첩으로 삼고, 교인들이 바친 돈으로 주지육림에 빠져 살았던 대표적인 사이비종교 백백교의 교주 이야기(아, 요즘도 비슷한 광인이 만든 사이비가 있지 않나)와 그 자식들과 제자들이 만든 분파들의 이야기를 쭉 따라가고 있으면 어질어질하다.





단순히 다양한 기사들을 항목에 따라 배열해 놓았을 뿐이지만, 책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왜 그런 미신들이 당시 유행했는지에 대해 나름 합리적인 추론을 해 보려고 애쓴다. 사람의 손가락을 잘라 먹고, 간과 쓸개를 빼 먹는 나병 환자들의 모습에서는 그 만큼 병이 주는 절망감이 컸음(87-88)을 읽어내고, 시신을 공중애 매달아 두는 풍장은 전염병의 급속한 확산으로 채 제대로 된 장례를 치를 수 없었던 상황(178-179)을 보는 식이다.


또, 당시 유행하던 다양한 신흥 종교에 대한 탄압에서는, ‘조선적인 종교’의 탄생을 저지하려는 정치적인 계산이 있었을 것이라고도 추론(34)한다. 일견 나름 일리가 있는 추정들이다. 사람이 사람의 신체를 먹고(사실 이건 다른 맥락에서는 극진한 효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정신병을 치료하겠다면서 죽을 때까지 복숭아나무로 만든 도구로 때리고 하는 짓을 아무 이유 없이 한 거라고 넘어가기는 쉽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뭔가 이유가 있겠거니 하고 합리화하고 넘어가기엔 확실히 여기 소개된 사건들이 충격적이고 엽기적이다. 일제강점기였던 당시 일제당국에서 한 분석, 그러니까 당시 조선 민중의 비과학적이고 충분히 비판적이지 못한 사고에 기인한 것이므로, 서둘러 개화를 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쉽게 부정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의 판단을 오늘날의 잣대로만 평가하는 건 확실히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오늘 우리의 판단에, 오늘날의 상식과 과학의 대답이 전제되어 있고, 그것에 충실한 사고의 결과가 도출되었다면, 과거에도 그건 마찬가지였을 테니까. 물론 그래도 인육은 좀...



조금은 선정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내용들이 많지만, 기본적으로 당시의 역사 자료를 잘 정리해 둔 책이다. 좋은 자료로 사용될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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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민주주의 - 오래된 이상과 도전
폴 우드러프 지음, 이윤철 옮김 / 돌베개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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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세계에서 어떤 형태로든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는 전체 국가 중 60%를 넘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100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왕정에서 식민지로, 다시 공화국과 군부독재를 넘어 결국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유일한 정치제도가 민주주의인 상황에서, 우리는 정작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무엇이 민주주의를 유지시키는 핵심적인 요소인지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 원칙으로 꼽는 것이 ‘다수결의 원칙’일 테지만, 고대 아테네에서 시작한 민주주의를 연구하는 이 책의 저자는 다수결은 애초부터 민주주의의 핵심이 아니었다고 단언한다. 그럼 민주주의의 핵심은 어디에 있을까?




민주주의는 고대 그리스, 그 중에서도 아테네를 중심으로 시작되고 발전되어 왔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당시 일반적인 정치 형태는 왕정(군주정)이나 귀족정, 혹은 그와 유사한 참주정이었다. 그 중에서도 아테네 민주주의의 목표는 참주정으로부터의 자유에 있었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참주는 일종의 독재자였다. 귀족정이나 왕정에서의 통치권은 핏줄이라는 나름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사람들이 소유한다. 민주정도 마찬가지로 선거라는 제도를 통한 합법적 정통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하지만 참주는 그런 정통성이 없이 스스로의 “능력”으로 권력을 획득하고 사용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흥미로운 건 어떤 참주들은 선거를 통해, 그러니까 다수결로 뽑혔다는 점이다. 선거를 통해 뽑힌 거면 민주정이 아니냐고 반문을 할 수도 있지만, 선거라고 해서 다 같은 선거가 아니지 않은가. 절차적인 정당성을 획득했다고 해도, 선거의 내용에 문제가 있었다면, 그게 좋은 결과라고 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선거에 제공되는 정보가 심각하가 왜곡, 오염되어서 유권자들이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거나, 사회적인 분위기가 매우 강압적이어서 특정한 선거 결과가 유도되거나 하는 경우를 말한다.


권력을 잡은 참주는 이제 어떤 견제도 없이 자신의 권력을 휘두르려 한다. 정적은 가차없이 탄압해서 반대파의 입을 막으려 하고, 딱히 정상적인 시스템을 따른 조언을 듣거나 하지도 않는다. 고대 아테네에는 이런 참주들이 여럿 존재했고, 그들 중 일부는 아테네의 국력을 신장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지만, 결국 아테네는 이런 참주들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아마도 당장의 유익이 장기적인 유익으로 이어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고대 아테네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단지 제도만이 아니라, 일종의 사회적 분위기, 시민 개개인의 민주적 소양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조화, 법에 따른 통치, 본성에 다른 자연적 평등, 시민 지혜, 바른 추론, 교양 교육 등이 여기에서 중요해진다. 즉, 시민들이 충분히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교육을 하고, 그들이 모여 내리는 합리적 결정에 따라 통치되는 사회야말로 민주주의라는 것.


저자는 이런 민주주의의 이상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하지만 고직 십 수 만 명이었던 고대 아테네와 수백, 수천 만 명이 속해 있는 현대 국가 사이의 물리적 차이를 고려하면, 옛 방식을 그대로 오늘날로 이식하는 건 불가능하다. 어떤 식으로든 변용, 혹은 적용이 필요한데 아쉽게도 이 책에선 그 부분이 깊게 다뤄지지는 않는다.


또, 저자가 찬탄해 마지않는 민주주의가 왜 ‘옳은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별다른 답이 없다. 그저 민주주의는 옳다는 생각 뿐. 하지만 고대 아테네에서 이 민주주의는 그 도시 안에서도 수많은 피해자들을 낳았고(소크라테스는 민주주의자들에 의해 사법살해되었다), 아테네 제국 시기에는 그 범위와 강도가 훨씬 심각해지기도 했다. 저자는 그건 사람의 문제고 제도의 문제는 아니라는 식으로 빠져나가려 하지만, 어떤 일이 어떤 제도 안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한다면 그 제도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추정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어떤 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그 제도를 바로 폐기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일부 사람들은 그런 단순한 해결책을 선호하기도 하지만, 세상 일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으니까. 그리고 인류는 아직까지 민주주의보다 나은 정치제도를 발명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니까. 어떻게 하면 이 하자 많은 제도를 좀 더 고장나지 않게 끌고 갈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또 하나, 책 속의 참주에 관한 설명이 인상적이다. 선거로 뽑힌 참주가 독재자가 될 때, 시민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책에 소개되는 참주의 특징이 오늘 우리의 최고권력자와 크게 다르지 않은 걸 보고 씁쓸해진다. 결국 시민들의 무지함과 무능력이 이런 참주를 국가의 원수로 뽑아 놓은 셈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다양한 고민들을 해 볼 수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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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 - 삶의 완성으로서의 좋은 죽음을 말하는 죽음학 수업
박중철 지음 / 홍익출판미디어그룹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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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0년이 넘었다. 돌아가시기 전 몇 년 동안을 병원 생활을 하셨고, 소위 “중환자실”이라고 불리는 집중치료실에서도 오랜 시간을 보내셨었다. 수년 동안의 입원생활로 몸의 근육이 거의 사라지면서 건강하셨을 때와는 전혀 다른 외형이 되셨고, 위독한 고비를 몇 번이나 지나신 후, 결국엔 병원에서 세상을 떠나셨다. 그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나였던 지라, 이 책의 내용 하나하나가 가슴에 와 닿는다.


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책이 지적하는 문제는 오늘날 우리가 접하고 있는 죽음이 상당히 “불친절”하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장 편안한 곳(아마도 집)에서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있는 상황에서 되도록 고통 없이 세상을 떠나기를 바라고 있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음에 임박해 찾는 곳은 병원이다.


일단 병원에 도착하면 바늘을 찌르고, 수액을 꽂고, 온갖 검사들을 돌아다니다가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집중치료실(대부분의 병원에는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임종실을 따로 마련해 두지 않는다)에서 죽을 때까지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버티다가 마침내 진이 빠져 숙는다. 이게 과연 존엄하고, 존중받는 죽음의 모습일까?





저자가 말하는 건 호스피스 의료의 중요성이다. 생애 말기에 이르러 더 이상 회생의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무작정 영양을 공급하고. 심폐소생술을 비롯한 약물투입으로 환자가 고통을 겪는 시간을 늘리기만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대신 환자가 남은 생을 최대한 안정적이고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처치를 제공하는 호스피스 의료가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것.


개인적으로는 이 주장에 크게 동의한다. 오랜 병원 생활이 얼마나 사람을 초췌하게, 그리고 고통스럽게 만드는지를 옆에서 봐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재의 의사들이 ‘최선’이라는 모호한 기치 아래 일종의 교조주의적 집착에 빠져, 환자에 대한 치료 아닌 치료를 고집한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굉장히 여러 번 반복되는데, 동료 의사들의 고집과 자존심 지키기에 대한 저자의 분통이 터져 나오는 부분이다.


물론 여기에는 법의 모호함으로 인한 책임추궁을 피하려는 의사들의 심리와, 죽음 자체에 대해 제대로 고민할 틈이 없는 일반적인 상황들, 그리고 완화의료(호스피스 의료)가 현재로서는 병원 운영에 경제적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도 있다. 사람(의사)과 문화와 결국 돈의 문제.




난 그렇게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은 없다. 내가 가진 것으로 내가 받은 것을 충분히 갚고 나면 남은 삶은 여유를 좀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있지만, 뭐 그것도 경제력이 어느 정도 받쳐줘야 가능한 일일 게다. 그렇다고 무슨 큰 부자가 되겠다는 욕심이나 노력을 하는 건 아니다. 그저 잠언의 한 구절처럼, 너무 부자가 되지도, 너무 빈곤해지지도 않기만을 바랄 뿐인데 잘 될지는 모르겠다.


죽음에 관해서는 부디 큰 고통이 없이 맞이했으면 좋겠다 싶지만, 책에 묘사된 대로 일단 병원에 잡혀가고 나면 그런 기대가 실현되는 건 쉽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이미 고령사회로 접어든 우리나라에서 죽음은 점점 더 익숙한 일이 될 텐데, 이에 대한 좀 더 속 깊은 대화가 좀 더 빨리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나도 좀 편안히 갈 수 있을 테니까.


책에서 지적되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우리 사회가 제대로 볼 때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의 모습에 관한 대화를 시작하기에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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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교 경제권의 이해 커뮤니케이션 이해총서
조은상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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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Zoom), 엔비디아, 킹스톤, 그리고 야후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모두 미국 기업이라는 공통점도 있지만 또 하나의 중요한 공통점은 이들 회사가 모두 화교가 창업한 회사라는 점이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꽤 놀라운 사실이었다. 원정, 황인훈, 손대위, 두기천, 양치원 같은 중국식 이름들을 보면 그 느낌이 좀 더 와 닿는다. 미국 전체 인구의 1%도 되지 않는 화교의 힘을 보여주는 예다.


사실 화교들이 좀 더 지배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곳은 동남아시아다. 지리적으로도 인접해 있고, 명청 시대에 일찌감치 여러 가지 이유로 해외이주가 시작되기도 했고, 제국주의 시대 서양에 의해 식민지의 중간관리자로 많이 채용되기도 했다. 각 나라마다 상황은 조금씩 달랐지만, 동남아 지역 상장사 중 화교가 운영하는 기업이 약 70%에 달한다고 하니 엄청난 비중이다.


단지 경제적인 비중만이 아니다. 필리핀의 독립운동가 호세 리살, 베트남의 호치민, 캄보디아의 론 놀, 싱가포르의 리콴유, 미얀마의 네윈 같이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인물도 모두 화교였다고 하니, 이 지역에서 그들의 영향력이 얼마나 뿌리가 깊은지도 새삼 놀라게 된다.





이 책은 그런 화교의 상황에 관한 짧은 보고서다. 책 초반의 세 장에서는 화교가 누구인지, 그들의 네트워크가 어떤 식으로 연결되고 확장되고 있는지 같은 일반적인 사항에 관해 설명한 뒤, 이어서 동남아 각국의 화교들의 상황이 어떤지를 정리한다. 마지막 미국의 상황까지 살핀 뒤 우리나라를 포함한 기타 지역의 화교 상황을 언급하는 것으로 마친다.


여러 해 전, 36개월간의 군생활(장교로 전역했다)을 마치고, 필리핀의 한 선교사님 집에서 몇 개월간 머문 적이 있었다. 그 때까지 한 번의 일탈도 없이 16년을 학교와 군대에서 보냈으니, 잠시 쉬어가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년 정도 그 동안 모아둔 돈을 조금씩 아껴 써 가며 처음에는 마닐라 인근에서, 나중에는 나가라는 지방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어딜 가나 잘 사는 집은 화교들이었다.


특히 나중에 갔던 지방에서는 도시의 발전설비에 문제가 생겨서 매일 일정 시간 정전이 되곤 했었는데, 그 와중에 동네에서 정전을 피해가는 집들은 모두 화교들의 집이었다. 그들은 집에 아예 발전기를 두고 사용하고 있었으니까. 또, 그 동네에선 꽤나 비싼 스타벅스에 들어가면 온통 중국계 아주머니들이 잔뜩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일부 반중정서 때문에 제대로 평가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어느 지역, 어느 동네에 가나 화교들이 경제적으로 윤택한 삶을 살고 있다는 건 분명 그들의 강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부지런하게 일하고, 단단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도 시기할 일만은 아니고. 어디에서나 끈질기게 살아남으면서 또 크게 번영하는 모습은 우리도 배울 수 있다면 배워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또 하나 흥미로운 포인트는, 그렇게 아시아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화교가 유독 일본과 우리나라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경우 화교가 해외로 한창 이주할 당시 청나라와 관계가 적대적이었기 때문이었고, 우리나라는 이승만, 박정희 정부에서 대대적인 화교 탄압정책을 폈기 때문이라고 한다.



책은 무슨 스토리가 있는 건 아니고, 담담하게 현 상황을 조목조목 정리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무슨 보고서를 읽는 느낌도 살짝 들었지만, 평소 모르던 것을 알아가는 즐거움이란 기분을 가지고 책장을 넘겨보는 것도 재미있다. 일단 얇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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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4 15: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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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4 18: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24 18: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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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3-24 18:52   좋아요 0 | URL
아, 내일 1시에 강남역 10번 출구 나오시면
지오다노 앞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2023-03-24 1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