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엘리자베스 핀치(ELIZABETH FINCH)

그녀는 메모도 책도 초조함도 없이 우리 앞에 서 있었다.
교단은 그녀의 핸드백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고 미소를 짓더니 가만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 P11

"이 강의 이름이 ‘문화와 문명‘이라는 건 다들 
알고 있겠죠. 하지만 불안해하지 마세요. 여러분한테 원그래프를 마구 던지지는 않을 거니까. 여러분 머리를 이런저런 사실로꽉 채우려 하지도 않을 거예요. 거위 배 속에 사료를 채우듯이. 그래봐야 간만 부어올라 건강에 나쁘겠죠. 다음 주에 여러분한테 참고도서 목록을 나눠줄 텐데 읽고 말고는 전적으로 여러분의 선택에 맡겨요. 그걸 무시한다고 해서 점수를 손해 보지도 않을 거고 맹렬하게 파고든다 해서 
점수를 더따지도 못할 거예요. 당연히 여러분은 성인이고 나는 여러분을 성인으로 여기고 가르칠 겁니다.  - P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누런 벽지 - 샬럿 퍼킨스 길먼 단편선 에디션F 4
샬럿 퍼킨스 길먼 지음, 임현정 옮김 / 궁리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가부장제 하의 여성의 삶에 희망을 품었고 꿈을 꾸었으며, 여성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세상을 작품 속에서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이루어 낸 강력한 힘은 바로 ‘연대‘였다. 이 힘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아직 필요하다는 걸 작품으로 보여주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클래식, 비밀과 거짓말] 유윤종
--- 모차르트 미공개 작품, 233 년만에 발견

얼마전, 모차르트의 새로운 현악 3중주 곡이 독일의 한 도서관에서 발견되었다. 라이프치히의 모차르트 연구자들에게 발견되었는데, 9월 19일 라이프치히에서 처음으로 연주되었다.
12분 길이의 현악 3중주곡(제1,2바이올린과 첼로)이며, 7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작품번호는 KV. 648(Serenade in C KV648),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의 이름을 차용하여 간쯔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아주 작은 밤의 음악)로 명명되었다.

들어보니 누가 들어도 모차르트의 곡이란 느낌이 들었는데 항간에서는 AI 합성이 아닐까 의심하는 전문가들도 있다고 하니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보긴 해야할 거 같다. 라이프치히 야외음악당에서 연주가 되었다는데 그렇기 때문에 관객들의 박수소리, 브라보! 하고 외치는 소리, 기침 하는 소리까지도 담겨있어 생생함은 살아있었다. 물론 초연의 어색함, 생생함도 담겨 있었다. 유튜브에 올라온 연주 영상도 들어봤는데 제2 바이올린의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고 마이크가 중앙의 첼로 가까이에 있어 상대적으로 첼로 음량이 컸다는 댓글들이 많았다. 대체적으로 이번 모차르트 음악에 호의적이었다.
유려한 곡 흐름은 역시 듣기에 편하고 귀에 감기는 모차르트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었고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와 흡사한 부분도 많았지만... 글쎄 내가 듣기엔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에 비해 임팩트는 확실히 떨어졌고 귀에 쏙 들어올 주제부가 없어 좀 아쉬웠달까.... 10대 때 작곡한 곡이라고 하니? 음 .... ^^


이 책에서도 모차르트의 일화가 나오는데 우리가 흔히 알기로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관계가 나빠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독살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모차르트 사후에 모차르트의 둘째 아들인 프란츠 크사버 모차르트의 음악교육을 살리에리에게 맡기기까지 한 점에 비추어 보더라도 두 사람의 불화설, 독살설은 항간에 떠도는 소문일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1786년 요제프 2세가 궁정 연회에서 연 살리에리와 모차르트의1막 오페라 대결은 두 사람의 앙금을 깊게 한 이벤트로 기억되고 있다. 살리에리가 「음악이 먼저, 말은 나중에」를, 모차르트가 극장흥행사를 무대에 올렸고, 살리에리의 작품이 갈채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리에 모인 손님들은 모차르트가 받은 대본에 결함이 많았음을 느끼고 있었으며, 공식적으로 한편의 ‘승리‘가 선언된 바는 없다. 모차르트가 크게 상처를 받을 일은 아니었다. - P143

이후 기록은 오히려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관계가 좋아졌음을 보여 준다. 
1788년 궁정 카펠마이스터로 임명된 직후 살리에리는 자신의 오페라를 공연하지 않고 대신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을 무대에 올렸다. 1790년 레오폴트 2세의 대관에 즈음해서는 직접 모차르트의 미사곡들을 지휘했다. 두 사람은 나아가 공동으로 칸타타 「오펠리아의 회복을 작곡하기도 했다(이 작품은 아깝게도 분실되어 남아 있지 않다). - P143

모차르트가 부인 콘스탄체에게 보낸, 오늘날 남아 있는 마지막편지는 모차르트에 대한 살리에리의 호의와 애정을 분명히 보여준다(물론 영화 <아마데우스>와 같은 관점에서는 이 편지가 살리에리의위선을 나타내는 징표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살리에리를 「마술피리」 공연 극장으로 데려갔지.(...) 살리에리는 주의를 집중해 감상했고, 서곡에서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한 부분도 빼놓지 않고 ‘브라보! 아름다워!‘를 외쳤어." - P14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베르트 발저의 소설을 연달아 읽고 있다!
이 단편집에는 42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 중 첫번째 단편인 ‘시인‘의 전문이다.
˝나는 참으로 멋지게 그리고 보기 좋게 옆으로 비껴나 있었다.˝는 이 문장이 바로 작가 자신를 표현하는 거 아닐까.




시인

아침의 꿈과 저녁의 꿈, 빛과 밤. 달, 태양그리고 별. 낮의 장밋빛 광선과 밤의 희미한빛. 시와 분. 한 주와 한 해 전체. 얼마나 자주 나는 내 영혼의 은밀한 벗인 달을 올려다 보았던가.

별들은 내 다정한 동료들. 창백하고 차가운 안개의 세상으로 황금의 태양빛이 비쳐들 때 나는 얼마나 크나큰 기쁨에 몸을 떨었던가. 자연은 나의 정원이며 내 열정, 내 사랑이었다.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모두 나에게 속하게 되니, 숲과 들판, 나무와 길들. 
하늘을 올려다볼 때 나는 왕자와도 같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은저녁이었다. 나에게 저녁은 동화였고, 천상의 암흑을 소유한 밤은 달콤하면서도 불투명한 비밀에 감싸인 마법의 성이었다. 종종 어느 가난한 남자가 뜯는 하프의 현이 영혼을 울리는 소리가 되어 밤을 관통하곤 했다. 나는 그 소리에 귀 기울이고, 또 귀 기울였다. 모든 것이 좋았고, 옳고 아름다웠다.

세계는 온통 이루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장엄하고 유쾌했다. 그러나 음악 없이도 나는 유쾌했다. 
나는 시간에 현혹당하는 듯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하듯이 시간에 말을 걸었고, 시간도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고 생각했다.
시간에 얼굴이 있는 듯 한참을 쳐다보았고,
시간 또한 묘하게 다정한 눈동자로 나를 말없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떨 때 나는 마치 물에 빠져 죽은 사람과도 같았다. 그만큼 고요하고, 소리 없고, 말없이 나는 그냥 살았다. 
주변의 모든 사물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으나 사람들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누구도 생각하려고 애쓰지 않는 것을 나는 하루 종일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나 감미로운 생각이었는지.

아주 드물게 슬픔이 나를 방문했다. 때때로 보이지 않는 무모한 무용수처럼 구석진 내방으로 불쑥 뛰어드는 바람에 웃음이 터진적도 있었다. 나는 아무도 아프게 하지 않았고,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 역시 아무도 없었다. 나는 참으로 멋지게 그리고 보기 좋게 옆으로 비껴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벤야멘타 양이 내게 아주 이상한 말을 했다.
 "야콥." 그녀가 말했다. "난 죽을 거란다. 놀라지 말고. 조용히 내 이야기를 들어줘. 도대체 왜 너는 나에게 이토록 친밀한 사람이 되어버린 거지? 네가 이곳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나는 네가 상냥하고 다정하다고 생각했어. 그러니 제발 마음에도 없는 반론은 펴지 말아다오. 너에겐 허영심이 있지, 그렇지? 들어봐, 그래, 나는 죽어가고 있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수 있지?

그러니까 넌 지금 듣고 있는 말을 누구에게도 얘기하면 안 돼. 다른 누구보다도 너의 주인인 오빠가 알아서는 안 되니 꼭 명심해. 난정말 완벽하게 마음이 편안하단다. 그리고너도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 그리고 네가약속을 지키며 입을 다물어줄 거라는 것도알고 있지. 괴롭구나, 무언가 속으로 가라앉고 있어. 그리고 난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고. 그게 너무 슬프단다, 내 사랑하는 어린 친구야, 너무나도 슬퍼. 난 네가 강하다고 믿는다, 그렇지 않니, 야콥?

그러자 벤야멘타 씨는 전보다 더 유쾌하게 
웃어대면서 말했다. "그저 참아야지, 너를 
바라보면 그저 웃을 수밖에 없어, 야콥, 너에게 입 맞추지않기 위해 참아야 한다니까, 이 멋진 녀석아." 나는 소리쳤다. "저에게 키스를 한다고요? 미치신 건가요, 원장 선생님? 아니길 빌어요." 난 너무나도 거리낌 없이 그렇게 말한 나 자신에 놀랐고, 마치 주먹을 피하려는 듯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자비와 관용 그 자체인 벤야멘타 씨는 기이한 내적 만족감으로 떨고 있는 입술로 말했다. "얘야, 넌 굉장해. 너와 함께 사막 혹은 북해의 빙산 위에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라면 나를 유혹하고도 남을 것 같구나. 이리 오거라! 아아, 제발 나를 무서워하지 마. 네게아무 짓도 하지 않을 테니. 내가 대체 너에게
무슨 짓을 할 수 있겠냐, 무슨 힘이 있겠어? 너를 귀중하고 진기한 존재로 느끼는 것, 봐라, 난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고, 그렇게 느끼고 있어. 하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건 그렇고, 야콥. 아주 진지하게말하는 건데, 들어봐라. 너 정말로, 정말로내 곁에 아주 머무르고 싶니? 넌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그러니까 냉정하게 깊이 생각해봐라. 여긴 이제 종말이 임박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니?" 난 갑자기 뚱딴지처럼 말해버렸다. "아, 원장 선생님, 제 예감들 말이에요!" 그는 다시 웃으면서 말했다. "봐라, 벤야멘타 학원이 말하자면 오늘까지도 존재하다가 내일이 되면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넌 벌써 예감하고 있었다. 그래, 그렇게 말할 수 있지. 넌 마지막 학생이었어. 난 더이상 훈련생을 받지 않는다. 나를 쳐다봐라.
내가 이곳 문을 영원히 닫기 전에 너무나도 곧은 인간인 너를, 어린 야콥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 그것이 나를 너무 기쁘게 하는구나.

... 그리고 이제 너한테, 아주 특이한 행복의 사슬 같은 것으로 나를 묶어버리는 개구쟁이에게 묻겠다. 나와 함께 가겠니? 함께 살며, 함께 뭔가를 해보고, 계획하고, 시도하고, 창조해 나갈래? 작은 존재인 너와 큰 사람인 내가, 우리 두 사람이 함께 삶을 헤쳐나갈 방법을 찾아볼래? 부탁이니, 지금 이 자리에서 대답해주렴." 나는 대답했다. "저는 그 질문에 급하게 답을 드려야 할 이유가 없네요, 원장 선생님. 하지만 당신이 하신 말씀은 저의 흥미를 돋우는군요. 그러니 그 일에 대해, 내일 정도까지, 곰곰이 숙고해보지요. 왠지 예라는 대답을 하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벤야멘타 씨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말했다. "매혹적이야." 잠시 쉬었다가
그는 그 말을 또 한 번 되풀이했다. 

"왜냐하면 말이다, 봐라, 너와 함께라면 위험해 보이는 일도, 대담하고 모험적인, 그리고 탐험가의 일 같은 그 어떤 일도 해낼 것 같구나. 물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뭔가 고상하고 점잖은 일이어도 괜찮아. 너한텐 두 가지 피가 흐르고 있어. 여린 피와 대담한 피. 너와 함께라면 뭔가 용감무쌍하거나 아주 고상한 일을 벌일 수도 있을 거야." "원장 선생님."
나는 말했다. "달콤한 말은 마세요. 속이 메스꺼워지고, 또 의심스러워지거든요. 그런데 잠깐만요! 기억하시겠지만, 제게 얘기해주기로 약속하셨던 당신의 지난날 이야기는어떻게 된 거지요?"

그 순간 누군가가 문을벌컥 열었다. 크라우스, 바로 그였다. 숨을헐떡거리면서, 너무나도 창백한 얼굴로, 소식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며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의 입술에는 뭔가 급한 전갈이 맴돌고 있었지만 그는 말을 못하고 있었다. 그는 다만 우리보고 빨리 와야 한다는 급한 손짓을 할 뿐이었다. 우리 세 사람은 모두 컴컴한 교실로 들어섰다. 거기서 우리가 목격한 것은 우리의 몸을 얼어붙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교실 바닥엔 영혼을 떠나보낸 벤야멘타양이 누워 있었다. 원장 선생님은 그녀의 손을 움켜잡았다. 하지만 마치 뱀에게 물린 사람처럼 그 손을 재빨리 놓아버리고는 경악하면서 뒷걸음질쳤다. 그러고는 다시 고인 가까이로 다가가서 그녀를 바라보았고, 또다시 멀어졌다가는 곧 다시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크라우스는 그녀의 발밑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나는 벤야멘타 양의 머리가 딱딱한 바닥에 닿지 않도록 두 손으로 머리를 받쳤다. 눈은 아직도 열려 있었다. 아주 크게 열려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눈꺼풀이 금세라도 깜빡거릴 듯했다. 벤야멘타 씨가 그녀의 눈을 감겨주었다. 그 또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우리 세 사람 모두 말이 없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