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사회 - 순 자산 10억이 목표가 된 사회는 어떻게 붕괴되는가
임의진 지음 / 웨일북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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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마치고 사회생활을 갓 시작하던 무렵 지인이 주선해 준 소개팅에 나갔다. 그때까지 만나본 상대 가운데 가장 빼어난 미모였기에 은근히 호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나의 허를 찌르는 그녀의 첫 질문은 연봉이 얼마나 되세요였다. 결혼을 염두에 두었으니 당장 현실적으로 궁금했으리라 짐작은 하면서도, 사람을 만났으면 사람에 관해 물을 일이지 사람을 어떻게 보고 얼마나 버는지부터 묻다니? 사람의 됨됨이를 연봉으로 계산하는 것 같아 굉장히 예의가 없다고 느끼고는 당시 연봉의 두 배 넘는 액수로 답을 했다. 순간, 그녀의 눈이 반짝거리는 게 아닌가. 정작 본인은 무직이면서 아무리 돌려 물어도 그녀의 주된 관심은 고소득에 머물렀다. 50대 중년이나 되어야 가능한 수입을 아직 서른 살도 안 된 총각에게서 기대하다니.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하다고 판단, 정중하게 집까지 자동차로 바래다준다며 일어섰다. 차는 물론 아버지가 타시는 중형차였고 무심코 맞춰놓았던 주파수에서 흘러나오던 우아한 피아노 연주가 끝나기도 전 집 앞에 내려주었다. 그런데 왜 이리 그날의 기억이 선명한 걸까?

 

나이와 직급, 외모 등을 포괄하는 넓은 의미의 사회적 지위에 지나치게 민감한 현상은 내가 너보다 더 낫다는 우위를 확인하고픈 마음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기질이 결합한 결과이다.(p.45)

 

20년 전 여름 휴가차 안면도의 꽃지 해수욕장을 찾았다. 이제 임신 5개월밖에 안 되었지만, 쌍둥이를 가진 아내는 이미 만삭이었다. 개펄에서 캐낸 조개를 굽다가 우연히 옆 텐트의 중년 부부와 간단한 술자리에 합석하게 되었다. 대전에 산다던 그들의 당시 목표는 자산 10억 확보하기였다. 휴가비용 단돈 10만 원에도 즐거웠던 우리 부부에게 그들의 목표는 그야말로 어마무시한 미래였다. 그러면서 휴가를 왔지만 속은 편치 않다고 했다. 그럴 거면 휴가 올 시간에 돈을 더 벌 일이지 왜 휴가까지 와서 속앓이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버는 건 권장할 일이지만, 오로지 돈만을 목표로 현재가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글쎄, 개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 아닌가 싶었다.

 

한국인에게 가장 치명적인 동시에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은 중간보다 못하는 것 또는 평균에 미달하는 것이다.(p.73)

 

평소 희망이었던 취미 드럼 교습을 받은 지 6개월 될 무렵, 가족 식사 자리에서 연주하는 동영상을 자랑삼아 보여주었다. 이를 보신 아버지가 말씀하시기를, ‘그건 배워서 뭘 하냐 돈벌이라도 된다더냐 취미는 무슨. 남들만큼 돈이나 벌어라이러신다. 상처받지 않으려 애쓰는 편이지만 그때는 좀 울컥했다. 세상 모든 일을 돈벌이와 관련짓고 최고의 선으로 간주하는 듯하여 매우 껄끄러웠다. 그런데 그렇게 돈을 벌었으면 뭘 하나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결국은 요양원에 다 갖다 바치고 있질 않는가.

 

과거 급제-토지 확보-수확량 증대라는 조선시대의 성공 기제는 현재 한국 사회의 성공 공식으로 여겨지는 고시 정규직 합격(시험을 매개로 한 간판)-아파트(자산) 보유-소득() 증대와 정확하게 일치한다.(p.162)

 

한국 사회가 온통 돈 때문에 난리다. 늙으나 젊으나 주식과 코인, 주택과 부동산에 투자한다며 영혼까지 끌어모은 빚투성이 삶을 산다. 주택담보 대출액과 국가 채무액이 매년 기록을 경신한다. 사회에 기댈 곳이 없으니 오로지 돈뿐이라며 돈 모으기에 혈안이다. 쉽고 빠르게 돈 버는 방법을 배우고 가르치겠다며 여기저기 아우성친다. 그러나 돌아보면 돈 번 사람은 없고 죄다 파산 직전이라며 울상만 짓는다. 호황을 누려본 지는 어언 30년은 된 듯하고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의 글로벌 3고 현상에다 수출 채산성은 빨간불이고 무역수지는 계속 적자다. 경제가 성장할 낌새는 안보이고 스태그플레이션은 유력해 보인다. 상황이 이러니 믿을 데라고는 돈뿐이다. 그러나 정작 돈은 또 투자할 곳을 잃고 돌지 않아 악순환이 반복된다. 하루하루가 전쟁이고 한국에 사는 자체가 서바이벌 게임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좇는 것은 흠이 아니지만, 돈만 바라보는 인생에서 삶의 의미를 찾기는 요원하다. 무전유죄 유전무죄 사회가 된 지도 벌써 옛날이다. 대체 왜 이렇게 변했을까?


본인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굳이 힘들게 경쟁해 사다리에 오르지 않아도 기본적인 삶을 보장받으며 사람답게 사는 사회를 꿈꾼다.(p.250)

 

저자는 시험-아파트-이라는 견고한 연결고리를 해체함으로써 성공의 정의를 다시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돈에 관한 생각을 조금만 더 바꾸고 사회적 인식을 달리하며 유물론적 세계관에 머물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한다. 우리 사회는 국민 기본 소득을 보장하고 아파트를 지급할 여력이 충분히 있으며 중산층의 삶을 회복할 방도가 있는데도 다들 외면하고 승자독식 논리에 취해있음을 신랄하게 지적한다.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없는데도 나만은 패자가 아닐 거라고, 아니, 반드시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승자는 못되어도 패자는 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승자는 되기 어려운 현실을 보고 승자 쪽에 가까워야 한다고 몸부림친다.

 

숫자 외에도 가치를 발견하고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 하루가 팍팍한 사람들에게 삶에서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목소리는 공허하다. 당장 내일이 불안한 이들에게 경제적 자유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는 이야기는 와닿지 않는다. 사회가 사람들에게 돈이나 직업, 학벌, , 아파트 등 결국 숫자로 환산되는 유무형의 가치 외에도 삶의 성공과 만족에 이르는 길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p.276)

 

본래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는 단계가 가장 어렵고 오래 걸린다고 했다.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며 오로지 돈에 매달리지 않아도 세상은 결딴나지 않는다. 다만 그때까지의 불편을 어떻게 참아낼 것인지 사회적 합의로 끌어내기만 하면 된다. 물론 여기까지 이론적으로는 완벽하다. 문제 인식의 다음 과정은 신뢰의 회복이다. 믿을 수 있는, 믿을만한 공정한 세상을 말한다. 해답은 있으되 성취하기 난망한 것은 특히 돈과 물질에 관한 사회적 합의는 매우 지난한 과정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런데도 우리는 그렇게 가야 한다고, 그것만이 우리가 살길이라고 말한다. 우리, 다 함께 삽시다.

 

#사회과학 #숫자사회 #임의진 #천민자본주의 #삶의의미 #한국사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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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사회 - 순 자산 10억이 목표가 된 사회는 어떻게 붕괴되는가
임의진 지음 / 웨일북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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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만능이 된 한국 사회의 민낯과 속살을 파헤치는 우리들의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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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역사 - 세계를 탐구하고 지식의 경계를 넘다
윌리엄 바이넘 지음, 고유경 옮김 / 소소의책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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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일대학교 출판사의 '작은 역사책' 시리즈에 새로 추가된 이 책은 현대적 이해의 뿌리와 함께 지식인들이 자연 세계의 주요 측면을 탐구하기 위해 취했던 행위를 다룬다. 영국 런던대학의 의학사 명예 교수 바이넘은 탄탄한 연구 배경을 바탕으로 이 분야를 깊이 있게 탐구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다.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와 이유를 알고 싶어 하는 열렬한 과학 애호가부터 연금술 분야, 화학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스위치를 누르면 어떻게 불이 켜지는지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까지 다양한 독자들이 이 책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을 접하면서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가 떠오른다. 우주의 과학과 작동원리에 관한 훌륭한 탐구이자 우리가 학교에서 분명히 배웠지만 잊어버렸을 듯한 훌륭한 교훈을 담고 있다. 브라이슨이 매우 매력적인 유머 감각으로 글을 썼다면, 바이넘은 과학의 역사를 진지하고 친절하게 다루어 읽기 쉽고 매우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다. 브라이슨의 복잡한 우주 역사와 비교하면 바이넘의 작품은 평균 5페이지 정도 짧은 이야기로 다양한 독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스타일로 쓰였고 과학 역사에 편안하게 접근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가끔 등장하는 고급 어휘는 괄호 안이나 본문 안에 깔끔하게 설명하여 진입 독자층을 배려했다. 이는 독자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교묘하게 이루어졌는데, 이미 해당 용어에 익숙한 독자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백과사전 같은 구조의 용어집보다는 이런 방식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데, 호기심 많은 어린 독자들에게는 호평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또한 다양한 연령대의 독자에게 어필할 수 있고, 어느 부분을 펼쳐도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오래된 이야기를 다시 익힐 수 있는 점이 마음에 든다. 물론 이 책이 연대순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 분야의 주요 인물들 역시 언급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고 몇 가지 주제만 읽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유명하든 안 하든 자연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바꾼 과학자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싶은 퀴즈 애호가에게는 훌륭한 자료집이 되겠다.

 

중국과 동아시아에서 시작되지만, 적어도 비교적 근대 역사에서 가장 많은 일이 일어난 곳이 바로 유럽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주로 유럽의 과학 발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원전 시대부터 암흑기, 르네상스까지 광범위한 역사를 다루며, 마지막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종식한 화학전 및 군수품 개발 이야기도 포함된다. 이 책은 현대 과학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구성하는 놀라운 이야기를 상기시켜 준다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다.

 

각 장의 제목은 눈에 잘 띄는 목판화 스타일의 흑백 삽화로 장식되어 앞으로 다룰 핵심 개념을 재미있게 묘사한다. 예를 들어 22'힘과 장, 자기'에서는 전류와 전자기학을 연구한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특정 분야를 발전시킨 여러 주인공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종종 과학자들 간의 연결에 초점을 맞추는데, 과학자들은 자신보다 앞서간 다른 과학자들의 연구를 기반으로 하거나 전임자들이 해결하지 못한 미스터리를 풀어낸다. 저자는 또한 과학자들의 연구에 영향을 미친 정치와 종교 같은 요소에도 초점을 맞춘다. 히포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갈레노스, 갈릴레오, 베이컨, 데카르트, 아인슈타인 등의 업적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2세기에 중국인들은 높은 가열과 냉각을 통해 철을 자화시키는 방법을 배웠고, 그 결과 철이 남북 방향을 가리키게 되었다. 중국인들은 또한 숯, 유황, 질산칼륨을 혼합하여 화약을 발명했다. 이 세기에 중국인들은 최초의 의학 서적을 만들었으며 침술도 이 시기에 치료법으로 등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은 그의 사후 천 년 동안 과학 사상을 지배했다. 그는 자신의 과학을 살아있는 세계, 변화의 본질, 하늘의 구조라는 세 부분으로 구분했으며 공기, , , 물의 네 가지 기본 원소를 제시했다. 하지만 고대에는 일부 중요한 과학자들이 자신만의 길을 걸었는데 그 첫 번째는 유클리드다. 유클리드는 예수가 탄생하기 200년 전 <기하학의 원소>라는 걸작을 통해 점, 선의 표면, 부피를 설명했다.

 

그다음으로 위대한 과학자는 에라토스테네스(BC 284~BC 192)였다. 그는 유클리드의 기하학을 사용하여 지구의 둘레를 측정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에서 하지의 태양 각도를 측정한 다음 기하학을 사용하여 알렉산드리아에서 시네까지의 거리를 25,000마일로 계산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실제 거리는 24,901.55마일이다. 마지막 위대한 인물은 클라우디우스 프톨레마이오스(100년경~178년경)로 그는 별, 행성, 달의 움직임을 계산하였고 우주의 별 위치를 도표로 만들었다. 그의 책은 수 세기 동안 천문학자 교육의 주요 자료로 사용되었다.




의학계에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라는 수많은 규칙을 만든 것으로 유명한 히포크라테스와 실제 천재이면서 자신도 천재임을 자랑스레 밝히던 갈레노스라는 두 명의 거인이 있다. 갈레노스는 건강해지려면 신체가 균형 잡힌 상태여야 한다고 믿었으며 혈액, 황색 담즙, 흑색 담즙, 가래의 네 가지 체액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뜨겁거나 차갑고 습하거나 건조한 상태였으므로 뜨겁고 습한 질병은 차갑고 건조한 방법으로 치료하였다. 갈레노스는 또한 환자의 맥박을 짚어낸 최초의 의사로 맥박의 강도로 환자가 질병에 걸린 여부를 가릴 수 있었다. 그는 해부학도 공부하면서 많은 동물을 해부했고, 이를 바탕으로 인간의 장기와 그 기능을 설명하는 책 <장기의 용도에 관하여>를 저술했다. 그는 또한 가장 중요한 신체 기관(, 심장, )을 중심으로 세 부분으로 구성된 영혼의 체계와 함께 많은 질병이 우리 마음의 창조물이라고 믿었다.

 


위대한 화학자 중 한 명은 파라셀수스였다. 그는 소금, 유황, 수은이라는 세 가지 기본 원리를 고안했다. 소금은 사물의 형태를 만들고, 유황은 사물을 태우는 원인이며, 수은은 연기와 유동성 물질을 유발한다. 그는 외부의 힘이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이라고 믿었는데 이 의견은 당시의 생각과 달랐기 때문에 그의 생전에는 대부분 무시되었지만 수년 후 사실로 입증되었다. 또한 미량의 수은을 사용하여 당시 가장 위험한 질병 중 하나였던 매독 치료제를 만들었다.




16올라간 것은 반드시 떨어진다는 뉴턴에 대한 내용처럼 개별적으로 영웅급 과학자에 초점을 맞춘 챕터도 있다. 뉴턴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생산적인 인물이었으나 그의 유명세에 비해 세간에는 매우 비호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저자가 중점을 둔 또 다른 측면은 이러한 이야기의 기초가 된 과학자들의 기원과 배경, 교육 수준 등에 대해 약간의 내용을 얹어주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과학자라고 생각하는 많은 철학자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교육받을 수 있었지만, 자연 세계를 탐구하기 위해 자신의 수완에 의존한 사람들도 많았다.




아마도 이 책에 대한 호불호는 전적으로 독자의 기대와 배경에 따라 갈릴 듯하다. 어학을 전공했으나 수학은 이미 중학생 때 포기했고 과학은 수박 겉핥기만 했던 필자는 뒤늦게 기초 과학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이 책의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되었다. 이 책은 과학에 대한 심층적인 내용을 다루지는 않아도 현대 과학이 어떻게 지금까지 발전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광범위한 역사적 배경을 통해 앞서간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또한, 유명 과학자와 그들의 과학적 아이디어 및 개념에 대한 역사적 맥락을 제공하고 이들을 서로 연결하여 참조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유명 과학자의 흥미로운 일화나 그들의 삶과 업적에 대한 세부 정보를 제시하며, 그에 반대되는 아이디어, 이론, 철학을 기반으로 다른 사람들과 연관시키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28엔진과 에너지에서는 엔진의 작동원리, 전기와 자기의 관계 등 이해가 짧았던 몇 가지 개념을 자세히 설명한다. 아울러 더 읽어봐야 할 인물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이 책은 정말 접근하기 쉬운 방식으로 쓰였기 때문에, 고등학생쯤 되는 영어 실력이라면 영어도 배우고 과학 상식도 쌓으며 공부 삼아 원서로 읽어보아도 좋겠다. 아쉬운 점이라면 각 장 끝마다 해당 주제에 대해 더 읽어보고 싶은 구역을 달아주었으면 더 좋겠다는 것이다. 결국, 63빌딩 높이에서 과학을 내려다보는 관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볼 만한 과학사 입문서로서, 전체적으로 소화해야 할 내용은 많은 편이지만 책장에 꽂아두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찾아볼 만한 책으로 추천해 드린다.



 

#과학 #과학의역사 #소소의책 #과학상식 #과학교양 #서평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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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역사 - 세계를 탐구하고 지식의 경계를 넘다
윌리엄 바이넘 지음, 고유경 옮김 / 소소의책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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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빌딩 높이에서 과학을 내려다보는 관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볼 만한 과학사 입문서로서, 전체적으로 소화해야 할 내용은 많은 편이지만 책장에 꽂아두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찾아볼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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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중개자들 - 석유부터 밀까지, 자원 시장을 움직이는 탐욕의 세력들
하비에르 블라스.잭 파시 지음, 김정혜 옮김 / 알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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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먹는 음식과 연료로부터 일상적인 물건을 구성하는 재료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물질의 세계에 살고 있다. 이 원자재들을 생산자로부터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상인들은 세계 경제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동시에 가장 비밀스럽고 가장 감시를 적게 받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들은 블룸버그 뉴스에서 에너지와 천연자원을 보도하는 기자들로서, 소수의 원자재 중개기업들이 엄청난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써온 모호하고 부도덕한 방식을 폭로하며 베일에 가린 그들의 실체를 벗긴다. 때로는 손에 땀을 쥐는 범죄 소설처럼 읽히는 이 놀라운 폭로는 업계 관련자든 호기심 많은 행인이든 모두 놀랄만한 내용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지난 20년 동안 천연자원을 취재해 온 기자로서 놀랍게도 소수의 원자재 중개자들에게 집중된 권력과 영향력을 파헤친다. 그리고 한 번 더 놀라운 것은 그에 대해 알려진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머잖아 곧 바뀔 것으로 보인다. 저자들은 글렌코어, 트라피구라, 비톨 등 중개기업의 주요 인물을 포함해 100명 이상의 전현직 임원들을 만났다. 대부분 미친 듯이 열심히 일하고, 지독하게 똑똑하고, 무장 해제될 정도로 인격적이며, 오로지 돈 버는 데만 집중하는 특별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마치 군대 같은 남성 편향적 인적 구성 덕분에 군대 못지않게 편향적이라는 월스트리트 은행가의 성 다양성조차 매우 진보적으로 보일 지경이다. 실제로 일부 대형 원자재 중개기업의 최고 경영진 가운데 여성은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 무역의 역사는 수 세기에 걸쳐 이루어졌으며 이 책의 이야기는 1950년대 필립브라더스, 카길과 같은 기업이 각각 금속과 곡물 무역 제국을 지배하던 시절부터 시작한다. 국제 석유 무역은 이제 막 개척되기 시작했고, 1970년대에 눈부신 성공을 거둔 중개업자 중 한 명이 바로 마크 리치였다. 그는 이후 수십 년 동안 중개업계의 사업 방식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저자들은 이후 다양한 원자재 시장으로 진출한 여러 대형 중개업자들의 흥망성쇠를 도표로 정리했다.

 

저자는 지난 50여 년 동안 이러한 어둠의 비즈니스가 수백만 달러에서 수십억 달러의 수익을 올리며 번창할 수 있었던 네 가지 발전 과정을 중심으로 역사를 정리한다. 첫째, 1911년 록펠러 비즈니스 제국의 해체와 함께 미국 7개 석유 회사의 독점을 깨고 국제 석유 무역이 등장하였다. 둘째,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화석 연료와 금속을 시장에 공급하는 국가의 역할을 상인들이 대신하게 되었다. 셋째, 2000년대 중국의 도시화로 수억 명의 중국 소비자들이 풍요로운 생활방식을 누리게 되었다. 넷째, 은행 부문의 성장과 세계 경제의 자금 조달 방식에 대한 다양한 발전으로 중개업계가 혜택을 받았다. 이쯤 되면 그래, 부당 거래로 더러운 부자가 되는 사람도 가끔 있는 거지라며 어깨를 으쓱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업계에서의 성공 여부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하느냐에 달려 있다.

 

마크리치앤드코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시대 정부와 거리낌 없이 거래했고, 아프리카 개발도상국에 대한 할인 혜택을 악용하여 유령 회사를 세운 뒤 석유를 더 싸게 사들이는 방식으로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기만하였다. ‘비톨은 쿠바에 대한 미국의 무역 금수 조치를 우회하여 쿠바의 설탕을 사들이고 소련산 석유를 판매했다. 또한 인종 청소 혐의로 기소된 군벌을 고용하여 구 유고슬라비아의 부채를 해결하기도 했다. 1992년 마크리치앤코가 두 개의 새로운 자회사로 분할되었을 때, 두 회사 모두 조사받게 되었다. ‘글렌코어는 사담 후세인 정권 시절, 석유 거래 특권을 얻기 위해 이라크 대사관에 뇌물을 주고 석유 수입을 인도주의적 목표에 사용하려는 유엔의 식량용 석유 프로그램을 훼손했다. ‘트라피구라는 코트디부아르의 오염 스캔들에 연루되어 유독성 폐기물을 현지 계약업체에 팔아넘겨 약 95,000명이 질병에 시달리게 했다.

 

이 사례들은 독재 정권 및 전쟁으로 폐허가 된 국가와 거래하고, 뇌물 수수와 부패 관행에 가담하고, 역외 기업을 통해 더러운 돈을 퍼뜨리는 등 중개업자들이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거래했던 많은 놀라운 사례 중 일부에 불과하다. 경제와 국제 무역에 익숙한 독자라면 저자들이 균형 잡힌 보도를 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할 것이다. 위의 과도한 내용이 그 자체로 시사하는 바가 크지만, 이 책의 목적은 명예훼손 캠페인에 있지 않다. 저자들은 상품을 거래하는 유일한 동기가 거의 언제나 금전적 이해관계일 뿐이라며 철저히 비정치적 논리를 주장하는 중개업자들의 입장에 동의한다. 하지만 정치적 영향력이 목표가 아니라 하여 중개업자들이 미치는 영향력이 없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이 외에도 선물, 현물 시장, 톨링, 원자재 슈퍼사이클 등 생소한 거래 관행과 전문 용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저자들은 중개기업들로부터 지옥 불 같은 맹렬한 고소를 피해 어떻게 이 책을 쓸 수 있었을까? 2020년 사망하기 전 인터뷰에서 비톨의 회장 겸 CEO인 이안 테일러는 저자들에게 이 책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분명히 경고했다. 마지막 두 챕터는 많은 것을 명확히 설명한다. 2011년 글렌코어의 상장사 전환 결정은 폭탄과도 같았다. 투자자, 언론인, 비정부기구(NGO) 및 정부로부터 엄청난 조사를 받으면서 글렌코어뿐만 아니라 그늘에 가렸던 중개업계 전체가 노출되었다. 거래업체의 공급자와 구매자를 포함하여 대부분 사람은 이들 기업이 얼마나 많은 부를 축적했는지 거의 알지 못했다. 또 다른 이유는 정보를 찾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빠르고 저렴하고 쉬워지면서 중개기업의 경쟁력이 약해진 점이다. 기업의 투명성이 높아지면 뇌물 수수와 부패가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수의 광업과 석유 회사들이 물류를 직접 처리할 정도로 성장하였다. 요컨대 이 책이 나온 시점은 때가 무르익은 덕분이었다. 하지만 저자들은 중개업자들의 시대가 아직은 끝나지 않았다고 경고한다. 일부 기업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유가가 급락하자 슈퍼탱커를 고용하여 임시로 석유를 저장함으로써 큰 이익을 취하기도 했다.

 

원자재 중개기업들이 지닌 영향력은 가히 충격적이다. 5대 석유 유통사는 전 세계 석유 수요의 거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하루 2,400만 배럴을 처리한다. 7대 농산물 중개기업은 전 세계 곡물 및 유지 종자의 절반가량을 취급한다. 세계 최대 금속 거래업체인 글렌코어는 전기 자동차의 중요한 원료인 코발트 세계 공급량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오로지 그들의 이익을 위해 설계된 것으로 추정되는 정부 정책 또는 실제 정부의 다양한 변화가 목격된다. 글렌코어의 러시아 곡물 사업 책임자가 곡물 가격 상승을 예측한 내기를 걸어온 지 불과 몇 주 만에 수출 금지를 공개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글렌코어는 201065,9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이처럼 이들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것은 종종 부패한 관행에 얽혀 있기 때문이다. 석유 중개기업 군보르의 창립자 토르비욘 토르크비스트는 저자들에게 불행히도 원자재 산업을 괴롭혀온 장본인은 부패라면서, 숨겨진 영업비밀이 많으며 대부분 무덤까지 가져갈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도 저자들의 이 정도 시도는 괜찮은 편이다. 보스니아에서 유혈 분쟁이 벌어지고 있을 때, 비톨은 악명 높은 세르비아 군벌 아르칸에게 보안 예방 차원에서 100만 달러를 지불하고 그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회의에 참석했다. 50만 파운드의 현금을 들고 런던 히스로 공항에서 체포된 한 글렌코어 임원은 일본과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처럼 뇌물이 불가능한 나라가 있는 한편, 중국처럼 매우 성공적인나라도 있다고 말한다. 스위스는 2016년에야 개인에 대한 뇌물 지급을 더 이상 사업상 정당한 비용으로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선언했음을 지적한다.

 

투자자들의 자금이 종종 그들도 모르는 사이 부패에 연루된다. 저자들은 펜실베이니아, 사우스캐롤라이나, 웨스트버지니아의 공무원 연금 기금이 어떻게 쿠르드의 고위험 투자에 유입되었는지 말한다. 이는 세금이 적게 들고 감시가 소홀한 관할지역에서 익명의 수단을 통해 돈이 오가는 현대 금융 시스템에 대한 비유이다. 이들은 세계가 기후 변화의 현실에 눈을 뜨고 있지만 중개업자들은 여전히 환경을 오염시키는 상품에 크게 의존함으로써 업계 개혁의 속도를 늦추고 있다면서, 소비자들이 제품의 추적 가능성과 윤리적 외주에 점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지적한다. 정보의 민주화, 세계화의 역전 등 다른 역풍도 중개자들의 입지를 위축시키고 있다. 또한 미국 정부는 외교 정책의 도구로 경제제재를 사용하여 부패에 대한 그물망을 점점 더 촘촘히 좁히고 있다. 그 결과 다수의 중개기업이 뇌물 제공의 수단이 되기도 했던 에이전트(제삼자 해결사) 사용 중단을 발표했다.



그러나 원자재 중개기업의 종말을 예측하는 것은 거의 확실히 시기상조이며, 신규 진입자의 역할이 계속 존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의 제재가 확산되고 서구의 중개자들이 특수 시장에서 물러나도록 강요받으면서 중국 거래자들이 이득을 얻게 되었다. 코프코, 차이나 오일, 주하이 젠룽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무대는 다시 러시아로 이어진다. 2017년 글렌코어의 전 CEO인 이반 글라센버그는 러시아 국가에 기여한 공로로 블라디미르 푸틴으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2014년 미국 재무부는 푸틴이 군보르에 투자하고 있으며 군보르 자금에 접근할 수 있음을 언급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한 세대 만에 에너지와 식량 공급에 가장 큰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지금, 이 책의 속편을 써야 할 때일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고 몇 가지 관찰할만한 점이 눈에 뜨인다. 저자들은 당연히 공범(?) 두 명에 대해 간략하게만 언급하고 있다. 하나는 마지막 장에서 강조했듯 최근 미국 정부의 표적이 되어 미국 달러에 대한 중개기업들의 의존도를 높이고 있는 은행들이다. 두 번째는 이러한 기업의 본사를 두고 있으면서도 고집스럽게 딴청을 피우고 있는 스위스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크게 벗어난 원자재 중개업 분야를 용감하게 폭로하면서 독자의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드는 이 책은 경제나 무역 전문지를 읽지 않더라도 충분히 이해하고 즐길 수 있도록 잘 쓰인 책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제품의 출처에 관심 있는 소비자라면 이 책을 반드시 읽어볼 만하다.


- 핵심요약

1. 전 세계에서 거래되는 자원의 상당 부분을 소수의 회사가 처리하고 있으며, 다시 그중 상당수를 소수의 사람이 소유하고 있다.

2. 이 책은 중개자들의 영향력이 경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세계 전략 자원의 흐름을 통제함으로써 강력한 정치 행위자가 되었다.

3. 중개자들의 수많은 부패와 악행에 관한 이야기가 제시되며, 투자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이에 연루되어 있다. 앞으로 이런 상황이 바뀔 수 있을까? (2023-06-12)

 

 

#경제 #얼굴없는중개자들 #시공사 #원자재 #국제무역 #서평단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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