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이스라엘 - 7가지 키워드로 읽는
최용환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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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크게 네 지역으로 나뉜다. 레바논과의 국경에서 가자 지구까지 지중해를 따라 이어지는 해안 평야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살기 좋은 지형으로 토질이 비옥하여 텔아비브와 하이파 등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이스라엘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이곳에 몰려 산다. 해안 평야에서 동쪽 내륙으로 가면 북부 갈릴리 지역과 요르단강 서안 지구 등 산지와 구릉으로 구성된 고지대가 있다. 평균 고도 600m 정도의 고지대 사이사이마다 비옥한 계곡 지형이 존재하며 수도 예루살렘 역시 이곳에 존재한다. 다시 고지대에서 동쪽 요르단과의 국경 쪽으로 가면 갈릴리 호수에서 사해까지 이어지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중요한 수원인 요르단강 계곡이 있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면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남쪽의 네게브 사막은 극히 건조한 지형으로 내륙의 베르셰바나 이스라엘의 유일한 홍해안 항구도시 에일라트 등을 제외하면 거주하는 사람이 드물다. 그래서 이스라엘 건국 초기에 네게브 사막 지역은 팔레스타인 영토로 넘겨주자는 의견도 있었다. 훨씬 더 비옥한 골란고원을 빼앗자마자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그곳에 몰려갔다. 현재 이스라엘이 골란고원을 돌려달라는 시리아 측의 반환 요구를 거부하고 있는 것도 이미 이 일대에 10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국민이 이주, 정착했기 때문이다. 이전부터 골란고원에 살고 있던 시리아 국민도 2만여 명이나 된다.

지중해에 접해 있고 남쪽으로 홍해와도 약간 접하는데 이스라엘의 홍해 해안선은 고작 11km에 불과하다. 말 그대로 약간 걸친 수준. 홍해의 유일한 이스라엘 항구도시 에일라트가 있다. 바로 옆에 요르단의 도시 아카바가 있는데, 여기도 요르단의 유일한 항구도시다. 그래도 가상의 적 아랍 국가들에 포위되어 지정학적 운신의 폭이 좁은 이스라엘에는 이 작은 홍해 연안이 엄청나게 중요한 요충지로, 3차 중동전쟁 때도 해상 봉쇄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이스라엘은 위치상으로 전략적 요충지에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중동의 전통적인 육로는 이집트에서 가나안의 좁은 통로를 거쳐 시리아로 빠져나간 다음 메소포타미아나 소아시아로 향하며, 인구 분포 역시도 예나 지금이나 이런 양상이다. 여기서 가나안의 '좁은 통로'에 이스라엘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게 포인트.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성경의 표현이 물질적 의미에서도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국토 면적은 우리나라의 경상남북도 전체 넓이와 맞먹는 수준이다. 2020년대의 인구통계를 기준으로 이스라엘 본토 인구는 약 900만 명, 팔레스타인 인구는 약 500만 명이다. 이스라엘 본토에 속한 골란고원과 팔레스타인이 다스리는 요르단강 서안 지구는 특정 지역을 제외하고 언제든 여행과 방문을 할 수 있지만, 과격 무장단체 하마스가 다스리는 가자 지구는 매우 특별한 허가를 받아야 겨우 방문할 수 있다.

 

1장 시오니즘과 분쟁

시오니즘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조상의 땅이었던 팔레스타인 지방에 유대인의 민족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던 민족주의 운동으로,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됨으로써 실현되었다. 시온(Zion)이란 원래 예루살렘 구시가지 내의 언덕 이름으로 예루살렘, 또는 이스라엘인의 땅을 의미한다. 시온주의라고도 하며 이 용어 자체는 1893년 빈의 유대인 대학생 지도자 나탄 비른바움이 만들었다.

기원후 1세기에 망국민으로 전락한 유대인들은 시온주의를 주창한 언론인 테오도르 헤르츨을 중심으로 1890년대부터 유대인 독립국가 재건이라는 목표를 구체화해 나갔다. 1948514일에 분리독립을 최종 확정한 영국령 팔레스타인의 서부 방면에서 초대 총리 다비드 벤구리온이 이스라엘국의 건국을 선포했다. 곧이어 발발한 제1차 중동전쟁에서 겨우 승전한 이스라엘 진영이 지중해와 홍해의 바닷가를 점령함으로써 현대 이스라엘국이 비로소 성립했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이스라엘 정부는 특정 지역을 가리키는 명칭으로서 팔레스타인을 아주 철저하게 부정하고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 관청들이 제공하는 시청각 자료들은 오늘날의 이스라엘국, 레바논 공화국, 요르단 왕국이 속한 지중해 바닷가에서부터 요르단강 유역까지의 범위에 대하여 주로 가나안 또는 에레츠 이스라엘로 표기한다.

일부 비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을 중동에 주둔한 '최후의 십자군 국가' 또는 '최후의 유럽인 식민지'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이들은 현대 유대인을 고대 유대인과 같은 혈통으로 인정하지 않고 무늬만 유대인인 유럽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유럽 각지의 종교적 소수자였던 미국과 유배된 범죄자 집단이었던 호주와 뉴질랜드 개척민들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유럽이 내부의 종교적 소수파나 불온 분자들을 식민지로 이주시킨 것은 그다지 드문 일이 아니다. 유대인들이 혈통적으로 다른 민족과 구분되는 공통점을 갖지 않더라도 유대교 회당을 통해 대대로 전승한 독자적인 역사의식과 민족 종교를 갖는다는 점에서는 독자적인 민족이라고 볼 수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에 대하여 각국이 통합해 새로운 정권을 만드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으나 아직도 분쟁의 해결은 요원하다.

이스라엘은 세속국가이나 유대인들의 나라인 만큼 유대인의 민족 종교인 유대교의 영향력이 굉장히 강하다. 사실상 국교의 위치에 있다. 유대교 때문에 이런저런 금기 사항이 많으나, 이스라엘은 세속국가라서 사우디처럼 심하게 강요하지는 않고 오히려 강요하면 처벌받는다. 다수의 유대인은 건국 직후부터 세속주의 성향을 보였으며, 한국인들이 유교를 바라보는 관점과 비슷하게 유대교를 전통으로써 존중하고 있다. 그동안의 조사에서 절반의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세속주의자라고 답했고, 30%는 전통주의자, 나머지 20%만이 (하레디 포함) 종교적이라고 답했다. 좌파 정당인 노동당은 말할 것도 없고, 집권당인 리쿠드당도 세속주의 정당으로 설립되었고, 집권을 위해 유대교 정당과 연정하는 정도다. 게다가 중동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퀴어 퍼레이드가 열리는 나라이기도 하다.

세속주의 유대인들이 다수라고는 하지만 이스라엘 정치 특성상 유대교의 영향력이 굉장히 높으며 타 종교를 아주 싫어해 탄압하는 판국이다. 유대교인이 아니면 징집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2016년 미국 퓨리서치의 조사에서도 이스라엘은 타 종교에 대한 차별이 가장 심한 국가로 뽑혔을 정도이며 다른 종교들의 선교도 철저하게 금지한다. 무신론자도 은근히 차별이 있는데 이스라엘에선 무신론자는 징집하지 않는다. 좋을 것 같아도 이스라엘에서 병역을 마치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불이익이 크기 때문에 절대 그렇지 않다. 한마디로 국가에서 간접적으로 무신론을 탄압하며 유대교를 가지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다만 무신론이 아닌 종교에 관심이 없는 무종교인에 대한 탄압은 없는 편이다. 기독교와 이슬람은 선교를 교회와 모스크 내에서만 하게 하고 밖에서만 하면 무조건 징역 5년이다. 심지어 기독교인과 이슬람교도가 유대인에게 친절과 호의를 베푸는 것 또한 선교 행위로 간주하여 징역 5년이다. 이스라엘 정계를 휘어잡는 극우 정치인들이 유대교를 신봉하다 보니 유대교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유대교 신자들이 타 종교인들한테 저지르는 폭력과 테러도 제대로 된 처벌을 안 하며 해봤자 가볍게 넘어가는 상황이다. 오죽하면 하레츠에서 나라가 광기로 치닫는 것도 모자라 광신이 판치기 시작한다며 한탄할 정도였다. 특히 종교 정당인 유대교 정당들은 틈만 나면 이스라엘을 유대교, 유대인만의 국가로 만들고 싶어 한다. 당연히 세속주의 정당들은 반발하며 제동을 걸어 유대교 정당들의 계획을 막으려 한다. 그러다 보니 세속주의 정당들과 종교 정당 간의 갈등이 굉장히 깊어 틈만 나면 정책 결정을 두고 서로 욕하고 싸운다. 단적으로 이스라엘을 영 좋게 보지 않는 유대교인들도 많다. 유대교 정통파(하레디)의 인구수는 교세가 커지면서 이스라엘의 미래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외부에서의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도 커다란 암이 자라고 있다. 외부적으로는 미국이라는 강력한 뒷배경이 도움도 주고 자기들끼리도 싸우느라 정신없으니 그나마 낫지만, 내부의 위험 요소는 아예 대책이 없다.

 

2장 디아스포라와 이민

선진국 중 출산율이 대단히 높은 나라로 유명하다. 흔히 하레디 때문이라는 인식도 많으나 비종교적인 유대인조차 합계출산율 2.0을 기록하여 서구 최고다. 서양에서 출산율이 높은 영미권조차 1.6~1.7 정도다. 출산해도 아기를 가정에서만 돌보지 않고 사회가 도와주는 체계가 잡혀있고, 자립 능력을 키우는 교육과 그 능력을 인정하는 풍토로 육아에 대한 부담이 적은 편이다. 한편 해외 유대인의 경우 대부분 이스라엘보다 출산율이 낮은 거주국의 풍토를 따르기에 이런 경향이 없다고 한다. 오히려 많은 인구로 인한 환경 영향 같은 사회 문제가 있어도 이런 풍토 때문에 쉽게 자녀 수를 줄이지 못하고 있다.

 

3장 유대국가와 유대 정체성

이스라엘 민주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극한으로 치닫는 민족주의다. 극우 유대 민족주의 정당이 의회 의석의 12%를 차지하고 있으며 정부와 국민은 이를 당연시한다. 집권당인 리쿠드당부터가 현실적, 기본적으로 팔레스타인과의 협상을 반대하며 군사력을 동원한 폭력진압과 정착촌 확대를 주장한다. 특히 같이 연정을 구성하는 유대교 초정통파들이 팔레스타인 극단주의자들 때문인지 날이 갈수록 초강경책으로만 치닫고 있다. 반면에 노동당은 1994년 이츠하크 라빈 총리 주도 아래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정 체결까지 간 적도 있지만, 이쪽도 리쿠드당과 다를 게 없는 유대 민족주의를 보이며 날이 갈수록 강경책과 군사력 우선주의로 치닫고 있다. 심지어 이스라엘 최대의 야당인 카디마당조차 하마스를 무력으로 멸망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니 정치계는 정당들이 이름만 다르지 하나같이 유대 민족주의 성향임은 변함없다. 이러다 보니 평화와 안정, 유대 민족주의 철폐를 추구하는 좌파는 항상 밀리거나 불이익받고 탄압받아 정치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고, 메레츠나 공산당, 무슬림계 정당들이 추가적인 평화협정을 주창하고 있지만 실상은 철저하게 무시당하고 있다. , 이스라엘인이나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유대인(특히 아슈케나짐계 출신)들에게는 평화주의가 완전히 비현실적이라고 보면 된다. 사법부 역시 정치판처럼 인종차별과 민족주의가 심해서 팔레스타인인들과 이스라엘 아랍인들에게 불공정하게 판결한다는 논란이 있다. 일례로 2020년 이스라엘 의회가 유대인 민족주의를 표방하면서 유대인만이 민족자결권을 가질 수 있으며 히브리어와 함께 국가 공식 언어였던 아랍어를 특수 언어로 격하시키는 내용을 담은 유대민족 법안을 통과시켜 이스라엘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아랍계 국민의 거센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4장 작은 나라 강한 군대의 비밀

이스라엘군은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이미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예 강군이며 수차례에 걸친 전쟁에서의 다양한 무용담을 자랑하고 있다. 빛나는 무용담에 가려져 있지만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에 비견되는 리버티호 공격 사건, 민간인 탄압 및 전쟁 범죄 혐의 같은 어두운 면도 있어서 여러모로 말이 많은 군대이기도 하다. 나라가 생길 때부터 전쟁을 여러 번 치른 탓에 일찍이 병영 국가(Garrison State)화되어 남녀가 병역의 의무를 함께 수행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사실 진짜 이유는 인구 부족 때문이다. 정작 현역으로 입대해서 복무하는 이스라엘 여성은 전체 인구 중에서 절반밖에 안 되는 데다가 다방면으로 편법이 만연한 실정이다. 전역자를 대상으로 학비를 지원해주니까 불만의 목소리가 적은 것뿐이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전쟁이 끝난 직후 이스라엘 방위군의 수뇌부는 여군이 제1선의 전투 부대 참여를 제한하였고, 의무병과 행정병처럼 비전투병 임무만을 수행하게 했다. 이는 이스라엘 여군이 적군에게 포로가 되는 경우 적군이 심리전(이스라엘군의 사기 저하)을 목적으로 포로로 잡힌 여군에게 심각한 학대를 가할 수도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당시 이스라엘 여성계 일각에서는 여성에게도 공평하게 제1선에서도 군 복무를 수행할 의무와 권리를 부여해달라는 목소리도 있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기부터 대규모의 상비군과 거대한 예비군을 지탱하기 위해서 수많은 여군이 헌병대와 경비단 및 통신병과 정비병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이스라엘 군인들은 휴가와 외박을 다녀올 때도 테러에 대비하여 총을 들고 나갈 정도라, 여차하면 남자 군인들과 함께 총을 쏴야 하는 것은 그대로다. 그러다 결국 미국과 영국처럼 다시 전투병과에 여군을 배치하려는 모양이다. 문제는 이러다 보니 총기 사고가 틈만 나면 일어나 골칫거리가 되었다는 점이다.

핵무기 보유가 거의 확실하나, 국제적으로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정책(NCND, Neither Confirm Nor Deny)을 유지하고 있다. 핵확산금지조약 NPT에는 가입하지 않았다. 전에는 음모론으로 치부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으나 핵무기 보유 여부를 폭로한 모르데카이 바누누가 당했던 고문과 투옥을 고려하면 사실로 보인다. 현재는 공공연한 사실이 되어 이스라엘 당국에서도 누가 뭐라 해도 무응답으로 일관한다. 디모나 핵 시설 등에 핵무기 약 2백 기를 보유했다고 추정된다. 적성국에 둘러싸였고 인구도 얼마 안 되니 소모전을 할 수 없어 핵무기를 보유했는데, 당연히 이 과정에서 미국이 적당히 눈감아 준 듯하다. 선제공격용으로 핵을 쓰는 것은 정치적 자살 행위이고 우방인 미국도 핵무기 사용을 가만 놔둘 리가 없어서 핵은 보관만 하지 함부로 쓰지 못한다.

 

5장 창업정신과 후츠파

영토가 매우 척박하고 땅도 비좁고 인구도 적지만 높은 수준의 과학, 기술, IT분야와 스타트업을 통해 경제가 발전했다. 대부분 군사 기술에 기반해 성장한 굵직한 기업들로,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명한 기업이 여럿 있는데 삼성전자가 2019년 첫 M&A1700억 원에 인수해 화제가 되었던 모바일용 광학줌 카메라 모듈 제조 스타트업이었던 코어포토닉스가 이스라엘 기업이었으며, 작곡 업계에서는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사운드 플러그인 ‘Mercury Bundle’을 개발한 업체 웨입스 오디오(Waves)’도 대표적인 이스라엘 기업이다.

이스라엘이 사회주의적 기반에서 건국된 탓에, 공산주의 국가에 주로 존재하는 집단 농장이 아직도 있어서 유명하다. 이를 키부츠라고 하는데 이곳에 사는 주민들은 노동량에 상관없이 동일한 임금을 받으며, 식사도 공동, 빨래도 공동, 모든 걸 공동으로 소유한다. 한때 국내 교련 교과서나 여러 유대인 관련 책자에서 유대인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긍정적으로 다룬 탓에 한국 사람들이 견학차 이스라엘까지 갔는데, 키부츠에서 일해 보고는 너무 힘들고 짜증이 나서 오래 일하지 못하고 돌아오기 일쑤였다고 한다. 게다가 요즘은 유대인들도 키부츠를 외면해서 많은 수가 떠나버려 인력이 부족한 나머지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들로 인력을 땜질하는 실정이다.

이스라엘에서도 2010년 가스와 여러 자원이 개발되었으나, 양이 많지 않은데다 수출도 극히 어렵다. 가스전 개발로 인해서 이스라엘은 에너지 자원을 적국들로부터 수입해 와야 하는 위험성을 극복하고 주변국들에 대해 경제적 균형을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일례로 레비아탄 가스전의 가스는 이집트로 수출하며 키프로스를 거쳐 그리스까지 가스관을 건설할 예정이다. 다른 천연자원이 없다 보니 여전히 수입 자원에 많이 의존한다. 특히 인구 증가와 사막화로 인한 수자원의 부족은 심각한 문제로 손꼽히고 있다.

 

6장 조약 없는 영혼의 동맹 미국

이스라엘과 미국과의 동맹 관계는 아랍 세계에 널리 퍼진 반미(反美) 국가관에 대항한 양국 간의 공조라는 점을 우선 이해해야 한다. 1967년부터 1991년까지 미국과 이스라엘을 묶어주었던 이해관계는 분명하고도 실질적이었으나 1991년 구소련의 해체 이래로 양국 관계의 기초가 상당히 불확실해졌다.

1948년 미국은 이스라엘의 건국이 발표된 이후 불과 11분 만에 공식 승인하지만 두 나라는 어떤 면에서든 결코 동맹이라고 할 수 없었다. 비록 미국이 언제나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기는 했어도 미국의 정책이 실제로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 당시 미국의 주된 관심사는 소련의 팽창을 억제하는 것이었으며, 주로 터키와 그리스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그리스에서는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으며 또한 그리스와 터키 모두 외부적으로 소련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미국이 볼 때 이 지역의 요충지는 터키였다. 소련의 흑해 함대가 지중해로 진입하지 못하도록 봉쇄하는 방법은 이스탄불의 좁은 해협, 즉 보스포루스 해협 뿐이었다. 만약 소련이 보스포루스 해협을 얻게 된다면, 소련은 미국의 힘에 도전하며 남유럽까지 위협할 수 있게 된다. 중동에서 미국의 봉쇄 전략에 대한 주요 장애물은 영국과 프랑스가 2차 세계 대전 이전에 이 지역에서 누렸던 영향력을 재구축하려는 시도였다.

실제 미국-이스라엘 동맹의 배경에는 유대계 자본가들의 로비가 있었다. 미국 내 유대인들은 현재 650만 정도로 전체의 2% 수준이지만 유대인들이 창업했거나 경영하는 세계적인 대기업은 부지기수다. 페이스북, 구글, 제너럴 일렉트릭, 엑손모빌, 씨티그룹, 골드만삭스, 스타벅스 등등, 인물은 스티븐 스필버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전의장 앨런 그린스펀과 벤 버냉키, 오바마 정권의 재무장관 티머시 가이트너 등이 유명한 유대인이며 보통 상원에서 10(정원 100), 하원에서 30(정원 435) 정도의 유대계 의원을 배출한다. 세계 4대 통신사인 AP, AFP, 로이터, UPI와 신문사인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 방송사인 NBC, ABC, CBS 등이 모두 유대인들이 세웠거나 유대인들과 유대 자본이 소유한 언론사다. 여기에 할리우드의 6대 메이저 영화사 모두 유대계 자본이 세웠으며 그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직간접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렇듯 미국과 전 세계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미디어 매체의 상당수가 유대계 자본과 연관돼있다. 물론 이들이 무작정 이스라엘만을 편든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과거 오랜 세월 유대계가 당해왔던 박해를 계속 강조하면서 현재 이스라엘의 어두운 면에 침묵하는 방식으로 친이스라엘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현실적으로 미국의 교육, 의료, 금융, 그리고 문화계에 이르기까지 유대인의 영향을 끼치지 않은 곳이 없을 지경이다. 즉 미국의 핵심 동력에 유대인들이 존재하는 셈이다. 따라서 미국은 이스라엘을 조건 없이 지원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였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미국으로부터 지원받은 것들을 나열해보면 미국이 이스라엘의 하수인 내지는 식민지가 아닌가 의문이 드는 수준이다. 무기 거래만 봐도 절대적인 액수 자체도 크지만 똑같은 무기라도 이스라엘에는 더 빨리, 더 싸게 인도한다. 다른 나라들은 돈이 있어도 미국이 판매를 거부할 때 이스라엘은 미국이 준 돈으로, 그것도 다른 나라보다 훨씬 싼 값에 사서 이미 운용하고 있다.

외교적으로도 미국은 무조건 이스라엘 편만 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UN에서 팔레스타인의 국가 승인이나 이스라엘의 과도한 군사 행위에 대한 제재안에 대해 언제나 반대표만 던져서 '미국이야말로 현재 세계 평화의 적'이라는 비난, 비아냥, 욕까지 듣고 있는 판국이다. 실제로 미국이 중동문제와 관련해 UN 안보리 회의에서 이스라엘에 불리한 결의안 채택을 막기 위해 행사한 거부권은 20123월까지 무려 32회에 달한다. 특히 이스라엘이 UN을 공격한 것도 항상 감싸준다. 이렇다 보니 양국 관계를 두고 미국은 이스라엘의 위성국가라는 말을 들을 정도다. 이스라엘과 관련된 사안이면 거의 이스라엘 편만 들면서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려 드니 국제사회가 미국의 공정성을 불신하게 되어 미국의 위상마저 크게 흔들고 있다. 곤충에 비유하자면 이스라엘은 뇌를 조종하는 연가시이고 미국은 연가시의 조종을 받는 숙주 같은 모양새다.

 

7장 젊은 나라 속의 오랜 율법

우리에게는 하브루타 교육이 널리 알려졌다. 과학 기술이 발달한 국가로 유명하면 유대인 출신 노벨상 수상자가 많다. 유대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부모들이 자녀들의 교육에 철저히 관여하여 명문대로 진학시키려는 교육열, 학구열이 대단하다. 그러나 한국과 크게 다른 점이 하나 있는데, 무조건적인 부모의 금전적 지원을 좋게 여기기보다는 창의성과 실용성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아시아의 국가와 달리 어떤 자녀가 태어나든 그 자녀에게 맞는 자질을 길러 자립하기 쉽도록 교육이 이루어지므로 교육열이 저출산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런 자질을 가진 사람들을 두고 상대의 표면적인 지위가 높다는 이유로 주눅 들지 않는 문화도 있다. 이스라엘 최고의 명문 대학으로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와 테크니온-이스라엘 공과대학교가 있다. 이스라엘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기 위해 치르는 표준화된 대입 시험으로 대입능력 계량시험(Psychometric Entrance Test, PET)이 있다. 이 시험은 히브리어, 아랍어로 일 년에 네 번 치러져 응시 기회가 매년 1회뿐인 한국 수능보다는 SAT 등에 가깝다.

 

맺는말

이스라엘 현지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한 저자의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중동의 평화 수호자, 작지만 강한 나라, 여성 군 복무가 의무인 나라 등 긍정적인 면을 비롯하여 2천 년 동안 영토 없이 떠돌다 팔레스타인의 배려로 더부살이를 시작하더니 도리어 이제는 안방을 차지하고 주인을 박대한다는 부정적인 면 역시 정확하고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지정학적 위치나 국제 관계에서 한국과 많이 닮았다는 저자의 시각을 포함하여 그동안 낯설고 잘 알지 못했던 국가의 이모저모를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 시중에 찾아보기 힘든 귀한 자료를 접할 수 있어 그만큼 희소가치를 지녔으며 현대 이스라엘에 관한 fact book으로 손색이 없다. 일반교양뿐 아니라 중동 지역과 국제 정세 및 세계 평화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2023-04-13)

 

#역사 #7가지키워드로읽는오늘의이스라엘 #세종 #서평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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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환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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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 관해서라면 이 한 권으로 충분하다. 현지에서 살아 본 사람만이 가능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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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우진 지음 / 사개모개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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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아보고 처음 펼쳐보는데 갑자기 제본 부분이 훅 꺾어지니 앗~! 이 책 파본 아닌가? 싶었다. 지금까지 접해 본 책 가운데 330쪽 분량이면서 실로 꿰맨 제본은 처음 접해본다. 그런데 사용해보니 생각보다 굉장히 편리하다. 접착제 제본의 경우 도입부와 마무리 부분의 비율이 맞지 않아 둥그레진 책장 가운데를 눌러가며 읽어야 한다. 그런 책은 대개 사진을 찍거나 글씨를 써넣을 때면 두 손을 다 써야 하고 자꾸 덮여 마냥 불편한데, 실로 꿰맨 책은 180도 펼쳐지니 아주 그만이다. 독서대에 올려놓아도 책갈피와 씨름할 일이 없다. 딱 하나 흠이라면 제본의 특성상 책의 어깨 부분이 없어 반드시 이를 가려주고 제목을 붙인 표지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어느 날 쓰기과목을 담당한 동료 선생님을 찾아갔다. 수년간 책을 읽고 써서 모은 서평 묶음을 보여주며 첨삭해주실 의향이 있는지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동료 교사로서 첨삭 작업이 부담스러웠는지, 아니면 같은 남성이 아니라 남우세스러웠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소원을 이룰 수 없었다. 나중에야 느꼈지만 그건 참 바보스러운 짓이었다. 처지를 바꿔놓고 생각해서 누군가가 나에게 자신의 문집이라며 첨삭을 부탁해온다면 흔쾌히 들어주었을 것인가? 참 쉽지 않은 부탁인데 그렇게나 서슴없이 말하다니, 쯧쯧.


인생 최초의 글쓰기 첨삭은 대학 졸업반 때, 국문도 아닌 영문 에세이였다. 당시 외국 유학을 막 마치고 돌아온 같은 학과 7년 선배님이 가르치던 교양과목으로 시사영어를 수강했는데, ’타임지 사설을 읽고 다수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에세이를 써내는 과제가 주어졌다. 그때만 해도 대개의 과제물은 제출하고 끝이었는데 특이하게도 이 선배 교수님은 일주일 후 수강생 전원의 과제물을 빨간펜으로 불바다를 만들어 돌려주시는 게 아닌가. 영문법에 취약한지라 나 역시 불바다를 면치 못 하리라 예상했는데, 뜻밖에도 창의적인 내용이라며 후한 점수를 매겨주셨다. 더불어 교수님이 첨삭한 모든 글귀는 그 자체로 훌륭한 예문이었으며 글자마다 작성자에 대한 넘치는 애정과 격려가 담겨 있었다.

 

이 책은 전체 6장으로 구성되었다. 1통하는 기법은 글이 독자의 시선을 붙잡는 필요한 흥미 유발이나 임팩트 던지기 기법을 말한다. 이야기의 흡인력을 좌우하는 주요 기법인 플롯은 소설 외에 수필 등에도 요긴하게 쓰인다. 언론계와 출판계에서 권하는 각 잡아 쓰기는 글의 전달력을 높여준다. 앵글 맞추기와 프레임 기법을 익혀 적절히 구사하면 글쓰기 고수가 된다. 인용하면 글이 풍성해지고 위트를 잘 도입하면 글발이 빛난다. 종결부는 일의 끝을 단단히 마무리한다는 뜻의 매조지기로 끝낸다. 2짜임새 있고 두서 있게에서는 글의 구성단위는 문장이 아닌 문단이라 정의한다. 문단은 두괄식과 안내문, 미괄식으로 구분되며 글의 구조를 시각화한 형식이 개조식이다. 3장은 글의 설계와 전개를 다룬다. 문단은 글의 설계도 격인 아우트라인과 잘 맞물려야 하며 문단 단위로 써야 독자는 글을 읽으면서 글의 뼈대를 추린다. 설계에 이어 전개에서 피해야 할 여러 유형을 제시한다. 4문장과 문장들접속사를 쓰지 말라단문 위주로 쓰라는 두 가지 널리 알려졌지만 틀린 지침을 지적한다. 5장은 글쓰기 종류의 책에서 잘 보기 힘든 예로 공들인 보고서라도 중요한 수치가 틀렸다면 다 틀릴 수 있음을 강조한다. 6장에서는 앞뒤가 들어맞지 않고 심지어 충돌하여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는 논문과 사실을 외면하고 자가당착에 빠진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등의 사례를 통해 정확한 글이 나오려면 생각이 정확해야 함을 말한다.

 

소설가나 전문 작가까지는 아니어도 우리가 일상에서 글을 써야 하는 경우는 자주 생긴다. 대개는 업무상 보고서이겠지만 저자는 수필, 자기소개서, 논문 등의 핵심이 되는 글쓰기 원리를 알려준다. 마치 내가 쓴 글을 첨삭해주는 듯 원문과 대안을 유형별로 제시한다. 사실 내가 잘 다듬어진 글을 원하는 이유는 남들 앞에 나설 때 말을 잘하고 싶어서다. 훌륭한 연설은 잘 읽히는 글을 소리 내어 말한 결과이기도 하다. 같은 내용이라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읽힌다면 전달력은 분명 달라진다. 글쓰기 훈련에는 첨삭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없다고 하니 저자가 제시하는 지침을 충실히 따르면 될 일이다. 첨삭의 사례로 원문과 대안을 마주 보게 하여 비교가 편리하며, 첨삭한 부분에 밑줄을 그어 보다 나아진 글을 확인하도록 구성한 점이 매우 독특하다. 문제 해결의 첫걸음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된다는 말처럼, 기존 예문들의 첨삭을 통해 평소 자신이 즐겨 쓰는 문체나 어법, 구성상의 오류가 있음을 알아채기 쉽도록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말처럼 모든 초고는 쓰레기이지만 초고를 어떻게 첨삭하느냐에 따라 글의 품격이 달라진다고 한다. 이제 더 이상 대학생은 아니지만, 글을 쓸 때면 이 책을 곁에 두고 첨삭 글쓰기 선생님으로 모시기로 했다. 얼굴 붉힐 일도, 계면쩍음도 피해 갈 정말 괜찮은 가정교사가 되어줄 책으로 추천해 드린다. (2023-04-06)

 

#첨삭글쓰기 #서평단 #박현애_교수 #서경호_논설위원 #이용재_감독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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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우리를 다정하게 만드는가 - 타인을 도우려 하는 인간 심리의 뇌과학적 비밀
스테퍼니 프레스턴 지음, 허성심 옮김 / 알레 / 2023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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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퍼니 프레스턴은 미시간 대학교의 심리학 교수이자 생태 신경과학 연구소 소장으로, 기능적 신경 영상, 정신 생리학, 행동 연구를 통해 감정이 공감과 의사 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왔다. 이 책은 다른 사람이 고통받거나 어려움에 부닥친 것을 보았을 때 우리가 그들을 돕게 되는 충동과 동기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이 책의 핵심 주제는 타인을 돕고자 하는 감정이 우리 종의 진화와 공동체 형성의 핵심 요소이며,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이기적이고 다른 인간에게 공격적이라는 생각에 반하는 것이다.

 

저자는 자기 경험과 동물(주로 설치류와 영장류) 및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이타주의가 우리 뇌라는 시스템에 어떻게 녹아들어 있는지를 설명한다. 인간은 여느 동물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종으로서 자손을 살아남게 하려는 생존 본능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고도로 문명화된 사회에서는 이러한 본능이 덜 절실해졌지만, 저자는 우리의 도움이 다른 사람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기 시작한다면 이타주의가 진보와 성장의 핵심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다른 사람을 돕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지원하고, 취약한 사람들을 돌보고자 하는 이러한 감정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많은 예를 제시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심리학, 신경과학, 신경생물학, 행동 및 생물학 분야의 진화 연구를 통해 얻은 과학적 증거에 의해 뒷받침된다.

 

행동하는 이타주의의 예는 대중의 상상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2007년 웨슬리 오트리는 한 청년이 발작을 일으켜 뉴욕 지하철 선로에 쓰러지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곧바로 뛰어내려 다가오는 열차가 바로 위를 지나가는 동안 청년의 몸을 자기 몸으로 눌러 목숨을 구했다. 몇 년 전 수중 동굴에 갇힌 태국 축구 선수들을 구하기 위한 노력에 전 세계가 열광한 적이 있다. 안타깝게도 구조대원 중 한 명이 작전 중 사망했지만, 소년들은 모두 구출되었다.

 

인류학자 마가렛 미드는 인류 문명의 첫 번째 흔적을 찾아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선사 시대의 골절된 대퇴골이 치유된 것을 언급했다. 이렇게 치명적인 부상을 치료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고려할 때, 이 고대 조상은 다른 사람들의 엄청난 보살핌이 없었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은 때로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이기적이지만 칭찬받을 만큼 베풀기도 하고, 때로는 차갑고 이기적이지만 놀라울 정도로 관대하며, 시간이나 돈뿐만 아니라 생명과 사지까지도 아낌없이 내어주는 복잡한 종이다.

 

이 책은 인간의 이중적 성격의 놀랍고 따뜻한 면을 설명하기 위해 그럴듯한 가설을 세운다. '이타적 반응 모델'은 자손을 돌보려는 성인의 광범위한 본능을 기반으로 한다. 이러한 성향은 부모의 성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지만 부모의 성향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며, 인간의 어머니나 오로지 인간에게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저자는 인간의 광범위한 선함을 설명하고픈 게 아니다. 다만 인류의 유전자에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고 여러 종에 걸쳐 존재하는 특정 유형의 이타주의가 존재하며, 심지어 영웅적으로도 돕고자 하는 동기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미시간 대학교의 심리학 교수이자 생태신경과학연구소 소장인 프레스턴은 이타주의가 다차원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돈이나 관심을 기부하기로 마음먹기란 종종 시간이 걸리는 의식적인 숙고의 결과이다. 반면, 이타적 반응 모델은 오트리의 경우처럼 신속한 정신적 처리와 즉각적인 반응에 적용되며, 종종 생각에 앞선 자동적 행동으로 묘사되고는 한다.

 

저자는 이러한 충동이 돌봄에 특화된 포유류로서의 우리 조상을 반영한다고 주장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자손이 완전히 무력한 상태로 태어나고 발달이 느려서 엄청난 양의 보살핌이 필요한 '알트리셜' 종이다. 태어나자마자 바로 달릴 수 있는 어린 영양과는 대조적이다. 따라서 보살핌을 제공하려는 충동을 부여받지 못한 성체는 진화적 의미에서 적합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며, 다시 말해 자기 유전자를 후손에게 전달하는 데 실패했을 확률이 높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리고, 무력하고, 취약하고, 힘들어하는 피해자들에게 실천 가능하며 즉각적인 도움을 주고픈 충동을 느낀다.

 

심리학자 B. F. 스키너는 우리가 설명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서는 존경스러운 행동을 공로로 인정하자고 제안했다. 이타적 충동이 부모의 보살핌에서 비롯된 다소 자동적인 반응 때문에 동기가 부여되고 다른 많은 포유류가 공유하는 행동이라면, 아마도 그 행동 역시 별로 존경받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누가 신경이나 쓸까? 감탄할 만한 일에 감탄을 표하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타적 반응 모델은 도우려는 결정이 의식적일 필요가 없으며, 종과 관계없이 기계적으로 작동한다. 시카고 동물원의 암컷 고릴라가 자기 새끼를 돌보던 중 우리에 빠진 3살짜리 남자아이를 구해낸 가슴 따뜻한 이야기가 그 좋은 사례다.

 

프레스턴의 가설의 기초가 된 연구는 수십 년 전에 수행되었는데, 출산 후 몇 시간 동안 새끼를 계속 찾아다니던 어미 쥐는 연구원들이 지루해지고 지쳐서 포기할 때까지도 계속 새끼를 찾아다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인간의 이타심이 쥐에서 사람으로 단순하게 추론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오히려 진화의 시간 동안 본능 깊숙이 보존된 성향이라고 말한다. 이 부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저자는 유추와 상동성의 중요한 차이점을 설명한다. 전자는 기능의 융합(새와 파리의 날개)이고, 후자는 진화적 조상을 공유한 결과(박쥐의 날개와 인간의 팔)로 나타난다.

 

끝으로, 이 책의 장점은 과학적 엄격함과 타인에 대한 지원, 도움, 배려에 대한 진심 어린 예시가 섞여 있다는 것으로, 저자의 공감이 이 책의 모든 페이지에서 쏟아져 나온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진화에 관한 매우 흥미로운 이론을 통해 인간은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돕고, 사랑하도록 설계된 사회적 존재라는 사실을 더욱 확신하게 된다. 혐오가 난무하고 인륜이 바닥을 치는 부정적인 상황의 압박 속에서 이 사실을 잠시 잊을지 몰라도, 인류의 진정한 본성은 생존과 배려에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타주의와 배려가 우리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관심이 있거나, 우리의 뇌가 어떻게 남을 돕는 행동과 태도를 진화시켜 왔는지 궁금한 독자라면 일독을 추천해 드린다. (2023-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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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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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우리를 다정하게 만드는가 - 타인을 도우려 하는 인간 심리의 뇌과학적 비밀
스테퍼니 프레스턴 지음, 허성심 옮김 / 알레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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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진정한 본성은 생존과 배려에 있음을 과학적으로 설명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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