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짧은 우주의 역사 - 빅뱅 이후 138억 년
데이비드 베이커 지음, 김성훈 옮김 / 세종연구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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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우주의 모든 이 나타난다. 공간이 나타나 그 모든 을 담을 장소를 부여한다. 시간이 나타나 그이 형태를 바꾸는 것, 즉 역사를 가능하게 한다. 그 모든 은 원초적 에너지이자 물질이며 이것이 우리 주변의 다양한 사물로 바뀐다. (16)

 

저자는 138억 년 전 빅뱅의 순간부터 년 후의 미래까지 우리를 안내한다. 놀랍도록 방대한 숫자인데, 300페이지가 조금 안되는 분량으로 이를 달성한다. 전체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역사의 시기를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1. 무생명 단계: 138억 년에서 38억 년 전.

2. 생명 단계: 38~315,000년 전.

3. 문화 단계: 315,000년 전부터 현재까지.

4. 미지의 단계: 현재에서 년 후

 

서문을 보면 인류가 여기에 얼마나 짧은 시간을 살아왔는지, 그리고 전체적인 흐름에서 인류가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 알 수 있다. 인류가 나타나기까지 수십억 년이 걸렸고, 겨우 30만 년밖에 살지 않았으며 아마도 그보다 더 짧은 시간 안에 사라질 것이다. 그 후에도 대자연 지구와 우주는 마침내 소멸할 때까지 수천억 년 동안 계속될 것이다. 저자가 책 전반에 걸쳐 일관되게 사용하는 주제는 다음과 같다:

 

1. 사회의 복잡성(여기에 흥미로운 순환이 설명되어 있다).

2. 사회/유기체/존재의 에너지 흐름.

3. 공동 학습(우리가 발전하고 혁신하는 방법).

 

위의 내용은 저자가 여기서 논의한 복잡한 문제들을 표현하고 이해할 수 있는 좋은 틀을 제공한다. 이 책은 전문적으로 저술된 지적인 책이며, 매우 빠르게 진행된다. 이렇게 짧은 책에서 이런 내용을 다룬다는 것은 대단한 업적이다. 지구는 이미 불과 얼음, 우기와 건기, 극심한 폭염과 혹한 등 많은 일을 겪어왔고, 앞으로도 더 많은 일이 일어날 것이 분명하다.

 

지구가 살짝 덜 치명적인 곳으로 변하면서 생명에게 생존 가능성이 열린다. 분화와 소행성 폭격을 통해 최초의 바다가 만들어진다. 그 바다 안에서 긴 유기 화학물질 가닥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이 유기 화학물질이 자기복제와 진화를 시작하며 생명의 출현을 촉발한다. 이 생명체 중 일부가 광합성 생명체가 된다. 이 광합성 생명체가 대기를 엉망으로 만들어 수많은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간다. 이런 역경을 이기고 진핵 생명체와 유성생식이 진화한다. 지구 위에서 일어난 이 마지막 눈덩이 지구 사건으로 최초의 다세포 생명체가 만들어진다. (76)

 


전반적으로 이 책은 정말 재미있다. 저자는 우주의 탄생부터 지구의 형성, 세포 하나에서 시작된 생명의 진화를 거쳐 현대 인류 사회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어떻게 현재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흥미진진하고 종종 유머러스하게 살펴본다. 한편으로는 이 책이 세계의 짧은 역사에 초점을 맞추기가 광범위한 범위와 상충되는 것 같아 세부적인 면에서 아쉬움이 없지 않다. 과학, 인류학, 역사의 흥미로운 사실과 유머를 적절히 섞은 저자의 발표 스타일은 과학이나 인류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많지 않더라도 누구나 이 책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의 설명은 명확하고 이해하기 쉬우며, 특히 복잡한 시스템을 통해 또는 시스템 간에 에너지가 교환되는 방식을 보여주기 위해 다이어그램을 사용하는 것이 마음에 든다. 지구와 우주의 잠재적 미래에 관한 부분이 포함되어 있어 생각을 자극하는 독서를 할 수 있었고, 우주가 끝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에 대한 저자의 예측이 상당히 흥미롭다.

 

길게 이어 내려온 혈통으로부터 호모 사피엔스가 진화한다. 집단학습이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해진다. 인류 역사 98퍼센트 동안 250억 명 정도의 사람이 수렵채집 공동체를 이루어 산다. 유전자 병목 현상으로 우리의 유전자 풀이 1만 명 미만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148)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이 책이 너무 짧다는 점이 단점으로 작용한다. 저자의 스토리텔링 스타일은 흥미롭게 읽히지만, 특히 우주의 탄생과 생명의 진화를 다루는 처음 두 챕터에서 많은 부분을 줄여야만 했다. 그 결과 이 책은 마치 저자가 단어 수를 줄이기 위해 더 깊이 있는 정보를 많이 잘라내듯 과학과 역사 모두를 간략하게 요약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차라리 이 책이 비교적 잘 다루고 있는 인류의 역사만 다루었더라면 더 유익한 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의 느낌을 요약하는 가장 효과적인 표현은 '마음에 들었지만 아쉬움이 남는다일 것이다. 빠르고 이해하기 쉬운 과학과 인류학 입문서를 원한다면 이 책을 확인해 볼 가치가 있지만, 짧은 분량으로 인해 많은 설명이 손실된 느낌이다. 그래도 저자의 스타일은 재미있고 매력적이며 정보가 매우 흥미롭기 때문에 만약 그가 가장 긴 우주의 역사를 쓴다면 꼭 확인해 보고 싶다. 애초부터 "가장 짧은 역사" 시리즈는 방대한 학술서가 아니라 학습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며 그 점에서 저자는 꽤 잘 해낸 셈이다. 과학 및 측정 시스템에 대한 지식에 대한 몇 가지 가정을 하고 있지만 상당히 접근하기 쉬우며, 아마도 고등학교 후반 또는 대학교 초반 수준으로 적당해 보인다.

 

인류세에 살고 있는 인류의 운명은 크게 네 가지 가능성 중 하나로 좁혀진다. 자연적으로 찾아올 우주의 미래에는 복잡성이 서서히 희미해진다. 머나먼 미래의 잠재적 복잡성은 초문명의 등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우주의 최후는 대동결, 대파열, 대붕괴, 대구원 중 하나가 될 것이다. (254)

 



이 책을 관통하는 가장 흥미로운 공통점은 우주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거의 자연의 법칙처럼 점점 더 복잡해진다는 생각이다. 우주를 전체적으로 볼 때 생물학적 복잡성이 천체물리학적 복잡성보다 정말 더 큰가를 묻는 일부 질문은 객관적 사실보다는 가치 판단에 가깝다는 점에서 회의적이지만, 이 생각에 반드시 동의할 필요는 없다. 저자는 "용기를 내서 서로에게 잘해주자"는 말로 이 책을 사랑스럽게 마무리한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개인적으로나 한 종으로서, 그 모든 복잡성에 밀치고 밀리는 가운데 아마 이보다 더 좋은 마무리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생각해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우주 #가장짧은우주의역사 #빅뱅 #빅퀘스천 #생명 #세종연구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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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짧은 우주의 역사 - 빅뱅 이후 138억 년
데이비드 베이커 지음, 김성훈 옮김 / 세종연구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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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억년의 역사를 300쪽에 담은 대단한 이야기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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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탄생 - 한국사를 넘어선 한국인의 역사
홍대선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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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국인 학생이 외국 유학생을 만났다. 낯선 이들끼리 어떤 대화가 오갈지 대략 짐작이 가지 않으시는지? 첫 질문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Where are you from?’이겠다. 이 시각 이후로 한국인 학생은 이 유학생의 출신성분을 캐내는데 열중한다. 그리고 그의 출신 국가와 한국을 비교하는데 그 기준은 대체로 GDP이다. 대체 한국인에게 일개 유학생이 어느 나라 출신인지가 왜 그리 중요할까? 상대의 국적이 어딘가에 따라 유학생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도 속물근성이라 욕하지만, 굳이 부정은 못한다.

한국인의 정서 구조에서 가장 상위를 차지하는 것은 국가주의다. 자국의 K 리그는 썰렁해도 일본과의 국가 대항전에서는 열 일을 제쳐두고 응원한다. 올림픽에 나가는 것만 해도 훌륭한데 굳이 금메달 개수에 집착한다. 국외 축구 리그에서 뛰는 모든 한국인은 빠짐없이 국가대표로 인식한다. 선수 개인을 한국의 얼굴쯤으로 여긴다. 그의 실수와 잘못은 모두 우리의 것이다. 선수가 저지른 잘못을 두고 본국에서 단체로 사과문을 보내는 나라다. 외국인들이 보기에는 참으로 진풍경이 아닐 수 없다.

두 번째는 시장 만능주의다. 모든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고 그 가치에 우선순위를 매긴다. 예컨대 한국과 프랑스의 중산층을 정의하는 기준 자체도 다르다. 빚 없이 30평대 아파트에 살면서 중형차를 굴려야 하고 해외여행은 분기에 한 번쯤 가 주시고 현금 10억은 있어야 중산층이다. 직접 할 줄 아는 요리와 운동, 외국어, 교양 위주인 프랑스의 기준에서 보자면 잘 사는 속물쯤으로 보이겠다. 그런데 요즘은 수저의 재질에 따라 일반화된 수저론도 먹힌다.

세 번째는 나이와 재산으로 위아래를 따지는 위계질서다. 상대방의 나이 따위는 모르고 지내지만 일단 잘잘못을 따지는 유사시에는 나이부터 확인한다. 나이가 곧 진리요 생명이니 연식이 그대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든 위아래 순서를 정해야 마음이 놓인다. 알아서 형님으로 모셔 주어야 서로 편하다. 상대와 나의 평등 관계는 영 불편하다. 그리고 대학과 기업은 아직도 군대식 문화에 젖어 상하 관계를 의식한다. 대학생들은 자기를 가르치는 교수보다 학과 선배한테 깍듯하게 대한다.

이처럼 정치,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속물에 찌든 한국인의 정서 구조는 여전히 전체주의적 성향을 보인다. 무엇보다 나부터 살기 위해서는 남을 떼어내야 한다. 그래서 한국인은 한국인을 가장 싫어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기주의가 아닌 개인주의다. 나부터 자신의 몫을 다 하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생각이 중요하다. 국가와 개인을 구별하고 객관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개인주의가 필요하다. 애국이란 게 별건가? 자신의 위치에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아닌가. 개인과 개인 사이의 평등한 연결망이 구축되어야 한다. 우리의 사고방식 및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 자율적 주체로서의 개인주의와 사회적 연대감을 회복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드높다.

그런데, 도대체 이 쓸데없이 성질 고약한 한국인의 집단 이기주의라는 기질적 특성은 어디서 온 것일까? 대선진리교의 교주인 저자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어법으로 한국인만이 가진 특질을 한반도의 역사에서 찾는다. 저자가 단군과 고려 현종, 정도전에서 발견한 세 가지를 핵심어로 요약하면 생존, 전쟁, 혁명이다. 단군은 한국인이 살아가는 터를 닦았지만 부동산 투자에는 실패하여 우리가 지금에 이 모양 요 꼴이라고 흉을 본다. 고려 현종은 거란족을 상대로 버티고 버텨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한국인들의 근성을 기초했다.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창업했던 정도전은 한국인들의 특질을 개별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대한민국이 중국이라는 거대한 외세를 곁에 두고도 세력권에 휩쓸려 들어가지 않은 것만도 신기할 지경인데, 한국인들은 흔히 떼놈이다 왜놈이다 하며 무시하기 일쑤다. 떼놈은 본래 북쪽에서 온 사람 즉 만주 지방에 살던 여진족을 낮잡아 이르는 말 되놈이 변형된 것으로, 미아리고개의 다른 이름인 되넘이고개는 청나라놈이 쳐들어온 고개가 된다. 북쪽을 가리키는 의 풀이가 지나치게 편협해진 경우다. 되놈을 떼놈으로 부르는 데에는 거란과의 전쟁, 두 차례의 호란을 비롯한 전쟁과 같은 역사적 배경이 있다.

사실 한국이 중국에 병합되지 못한 이유는 한반도의 척박한 지형과 기후 때문이다. 이 땅에 뿌리 내린 사람들도 힘들다면 침략자들은 더 힘들다. 지금이야 살기 좋은 나라라고 하지만, 한국은 전통적으로 자원이 부족하여 쌀농사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농경 국가였다. 먹고 사는 일 자체로도 힘들었으니 게으른 자는 주려 죽을 수밖에 없었다. 일상이 생존의 결과였다. 여기서 근면 성실한 국민성이 만들어졌다고 본다.

또한 한국인의 자존심은 또 얼마나 센가. 개뿔 아무것도 없는 백성이지만 억울한 일은 못 참는지라 아무리 나랏님이라도 꼭 할 말은 들어줘야 한다. 백성의 입을 틀어막았다가는 민란이라도 불사할 기세다. 매장을 찾았다가 조금이라도 불편을 겪었다 하면 여기 책임자 누구야 사장 나와라는 기본이다. 이런 콩가루 속물 한국인들이 국채보상운동이나 금모으기 운동의 경우처럼 나라의 존폐가 걸린 일이라면 세상에 없는 결집력을 보여준다. 2002년 월드컵 때는 응원 인파 수십만이 모여 다치는 사람 하나 없이 앉았던 자리를 스스로 청소하고 떠나지 않았던가. 이처럼 극과 극을 오가는 태도의 차이는 연교차가 극악스런 한반도의 기후와 닮았다.

한국인 스스로 한국인의 기질적 특성을 밝히는 일은 매우 드물다. 이 책은 그래서 재미있다. 역사를 다루는 책은 지루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여지없이 깨부순다. 한국인의 기질 형성이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였으니 흥미로우면서도 반박이 불가하다. 우리가 살아온 모습이 우리를 만들었음을 경쾌한 어조로 밝힌다. 혹자는 이 책을 일컬어 대선진리교 입문서라고 하는데, 그것은 이미 전작 <유신 그리고 유신>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 책을 읽고 늦게라도 팬덤에 뛰어드시길 바란다. (2023-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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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없다 - 이태원 참사가 우리에게 남긴 이야기
정혜승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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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없다. 아니, 없어졌다. 분명히 있었는데 어느 날 일어나 보니 없어졌다. 핼러윈 축제가 벌어진 이태원에서 159명이 인파에 깔려 죽었다는 후진국형 소식을 들었는데, 어떤 이들은 왜 하필 그날 그 자리에 놀러 갔다가 참변을 당했냐고 숨진 이들을 탓하는 반면 어떤 이들은 이 참변을 어떻게 수습할지부터 얘기한다. 그런데 막상 이 참변을 진두지휘할 지휘 본부가 없고 이 참변에 대하여 누구도 책임을 지려 하거나 책임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꼭 누군가 책임을 지고 공무원이 옷을 벗는 모습을 보자는 게 아니다.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일이었고 실제 정부는 그럴 능력도 있는데 두 손을 놓고 있었다. 운 좋게 죽지 않고 이런 소식을 접하는 이들의 머릿속에는 정부가 국민을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각성과 함께 오로지 각자도생 네 글자만이 뚜렷이 남는다. 이런 난리를 겪은 지 벌써 1년인데 아직도 이 정부는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다. 핼러윈 축제에 모일 인파를 모이지 못하게 하는게 전부였다. 너무 익숙하지 않나? 세월호 사건 때 해경이 부실했다며 해경을 해체시켰던 그림과 너무도 비슷하지 않나? 정부가 사라졌다. 사람 하나 잘못 뽑은 것뿐인데 나라의 기강이 무너지고 안전이 뿌리째 흔들리는 느낌이다. 국민의 불안감은 사라질 줄 모른다. 대체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어느 정부에서건 다수의 인명사고는 불시에 일어나곤 했다. 우리는 그걸 참사라고 부른다. 지하철에 불이 나고 건물이 주저앉고 다리가 끊어졌다. 미리 손을 써서 막을 수도 있었고 알았더라도 손을 못 쓰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도 지금처럼 무능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지침에 따라 뭐라도 했다. 지금은 지침 자체도 없는 것 같다. 노랑색 방제복을 멋대로 이상한 남색으로 바꾸는 데에 돈을 들였을 뿐, 옷 색깔이 바뀐다고 나아진 건 없다. 일방적으로 정부 탓을 하자는 게 아니다. 문제는 미리 막을 수 있느냐가 아니라 일어난 이후에 정부가 대처하는 방식에 있다. 대체로 보수를 자처하는 정권일수록 더 많이 다치고 죽었다. 사람보다 이윤에 더 눈독을 들여서 그렇다는 얘기도 있다. 오죽하면 특정 정당이 집권하면 사람이 더 많이 죽어 나간다는 연구도 있다. 이쯤 되면 정설이다. 하필 이번 정부는 자칭 보수에다가 검사들 판으로 깔린 정치 초짜들이 풍년이다. 재해를 지휘하거나 현장에 출동하여 보살피는 게 아니라 그 어느 해보다 재해 예방을 문자로 해결하고 있다. 책임지는 모습은 간데없고 해외 유람에 쓸 돈이 모자란다는 타령만 한다. 그리고 스스로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그래서 이 책은 묻는다. 정부는 어디로 갔나? 이 질문과 함께 저자는 유능하고 일 잘하는 공무원들이 어째서 복지부동하는지 그 과정을 설명한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느라고 이전 정부에서 일하던 공무원들을 싹 물갈이하고 결국은 시스템이 제 기능을 못 하게 되는 연유를 말한다. 결국은 최종 보스인 대통령의 세계관과 인식론이 공무원 사회에 영향을 주는 동력원이라 말한다.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세계관이 아닌 경우 어떻게 망가지는지를 우리는 지금 똑똑히 보고 있다. 거기다 더 큰 우려는 기왕에 망가진 공무원 시스템은 앞으로 누구 한 사람이 바뀐다고 변할 것 같지 않다는 전망이다. 우리는 앞서 정권에서부터 이미 그런 경험을 겪지 않았던가. 이 책이 주는 우울한 기대감은 바로 그런 전망을 가능케 한다.

 

대통령 선거 결과가 간발의 차이이든 박빙이든 간에 지금의 정부는 우리 다수가 선택한 결과이다. 물론 표면상으로야 승복은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정부로부터 도움을 받는다기보다 정부 때문에 일상의 짜증만 더한다면 정부는 대체 왜 존재하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뭔가를 지향하는 바도 없이 그냥 표류만 하는 것 같다. 영업사원 1호의 대활약으로 무역수지는 곤두박질치고 온갖 지표를 보아도 나라의 위상은 아닌말로 떡락하고 있다. 그럼에도 저자는 우리가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번 정권만큼은 그럴 일 없겠지만 다정한 정부를 기대하고 있다. 모처럼 모은 365일의 기록이자 훌륭한 책인데 아쉽게도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기가 마뜩잖음을 발견한다. (2023-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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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법의 바다 - 보이지 않는 디스토피아로 떠나는 여행
이언 어비나 지음, 박희원 옮김 / 아고라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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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바다의 광활함 때문에 해사법 집행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과 버려진 요새로 한 국가를 만들고, 해상 낙태 시설을 제공하며, 낚시와 밀렵을 넘어 현대의 바다 노예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이 약점을 이용하는 다양한 방법을 말한다. 바다에서는 물리적 법적 거리가 멀기 때문에 육지에서는 적발될 수 있는 행위도 쉽게 저지를 수 있다. 바다에서의 국경은 모호하며, 각국은 근해에서 발생하는 범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수익성이 있을 때 자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해역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한다. 그러나 선박이 의도적으로 선적을 변경하여 읽기 어렵게 하고, 어로작업이 금지된 다른 해역에서 작업하고, 다른 국가의 외부 인력 대행업체에서 근로자를 고용하기 때문에 누구의 책임인지도 불분명하다. 따라서 전체 공급망을 추적하고 책임을 묻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저자는 장마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집필했다. 그는 이주 노동자들이 왜 이런 위험한 일을 하면서도 그 끔찍함을 드러내지 않는지(선원 대부분이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다), 왜 정부가 아닌 비영리단체가 바다를 단속해야 하는지, 밀항자들을 항구에 내려놓지 않고 바다에 버리는 이유는 무엇인지, 왜 여성들이 목숨을 걸고 외국 해역에서 낙태권을 제공하는지, 샥스핀 수프와 고래고기에 대한 수요는 역사적으로 어디서 유래했는지 등 독자들이 이러한 결정을 내린 이유를 이해할 수 있는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제공한다. 그리고 바다에서의 진실을 밝히기 어려운 이유는 각자의 다양한 인센티브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무엇보다도 저자는 독자를 배에서 생활하는 신체적, 정서적 경험에 몰입시키는 데 매우 능숙하다. 배 안에서의 시간을 묘사하는 방식이 그렇다. 지금은 새벽 3시이고 한 시간 후면 새벽 3시 5분이 된다는 식이다. 아울러 비위생적인 냄새, 땀, 바퀴벌레, 쥐, 상한 음식은 물론 망망대해, 암초, 파도, 추격전 등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아울러 이 책은 제한과 책임이 강제되지 않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탐구하고 해양 역사, 문화적 관행, 무법, 투명성 부족, 고통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다. 인간에게는 타인과 환경을 희생하면서까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극한까지 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명확한 한계가 없으면 그런 경향이 나타나고 극단으로 치닫기 전까지는 주목받지 못한다. 이 책은 또한, 문명화의 이면에 숨은 과거의 잔인한 관행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인간의 본성 외에도 바다는 무한하다는 물리적 착각을 일으킨다. 우리는 바다의 자원이 풍부하다고 쉽게 생각하며, 쓰레기 투기와 같은 우리의 행동은 바다의 크기에 비해 사소하다고 느낀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무한한 공간에는 한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인식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규칙을 마련해야 한다. 합의된 규칙을 설계하고, 책임을 할당하고, 시행하려면 지속적이고 전 세계적인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이 책에서 심도 있게 살펴본 바와 같이 현재 시스템에서는 면책과 눈앞의 이익이 매우 고무적인 상황에서 기업들은 이를 우선순위에 두기 어렵다. 페스카테리언(육류는 먹지 않지만 어류는 섭취하는 사람)에게 왜 별도의 식단이 필요한지, 음식에 대한 암묵적인 위계가 존재하는지, 새로운 삶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쉽게 이용당하는지 등 저자가 탐구하는 인간 본성에 관한 질문은 흥미롭다.

또한, 저자는 정보 부족과 거리감이 이러한 관행을 유지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그리고 이러한 시스템을 넘어서는 사고의 어려움에 대한 주제를 강조한다. 힘의 불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정보는 보류되거나 가려진다. 정보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것은 정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느껴진다. 소비자로서는 물건이 싸고 편리하고 잘 팔린다면 그 이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설령 정보가 있다고 해도 거리감이 존재한다. 바다에 나가 있는 것만으로도 법과 책임으로부터 물리적인 거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문제가 너무 멀게 느껴져 현실로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식탁에 오르는 생선이 노예 노동으로 제공되었거나 월드컵을 개최하기 위해 노예 노동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더라도, 해산물을 먹는 즐거움과 애국심이라는 삶의 즉각적인 연관성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 너머를 바라보거나 단순히 기억하기 위해서도 정신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저자가 말했듯 사람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지키도록 설득하기는 어렵다.

#이언어비나 #무법의바다 #아고라 #디스토피아 #해사법 #취재기 #동반취재 #현장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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