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현진_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두 사람은 잘못된 동작의 예시로 늘 뽑혔다. 둘의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총체적으로 문제였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몸에 힘을 빼지 못하는 일이었다. 힘을 빼야 하지만...... 그렇다고 힘을 다 빼면 안 되고...... 이게 대체무슨 말인가. 희주는 잘못된 답이 도돌이표처럼 되풀이되는 느낌을 받았다. 힘을 빼는 거면 빼는 거고, 주는 거면 주는 거지. 그게바로 균형이라고 강사는 말했다. 남들은 어떻게 이런 균형을 어렵지 않게 잡을까. 희주는 너무 몸에 힘을 주지 않아서 혼이 났다가. 곧바로 너무 많은 힘을 주어서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반면 주호는 자기가 지금 힘을 주고 있는 건지 아닌 건지 알지못했다. 분명 힘을 뺐다고 생각했는데 강사가 소리쳤다. 이렇게몸에 잔뜩 힘을 주면 어떡해요! 또 주호가 이번엔 몸에 힘을 주었다고 생각하면 강사가 말했다. 아예 몸에 힘을 빼면 안 된다 했잖아요. 코어 잡고 중심은 안 흔들려야지! 주호는 자신의 몸이 자신과 분리되어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고장난 기계처럼 오작동하고있는 자신의 몸은 뭔가 잘못된 게 분명했다.
"부족하면 연습을 해야죠" - P86

땀과 열기와 웃음 속에서 곽은 "실례합니다"라고 말하며 가방을 품에 안았다.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속 ‘늙은 교수‘를 떠올린 날이 있었다. 현실과 괴리된, 정체된, 그래서 화자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다고 해설되는 이미지. 그 늙은 교수는 적어도 ‘노트를 끼고‘ 강의에 출석하며 밤마다육첩방에서 시를 쓰는 성실한 제자를 두었다. 나는 늙지도 않았고 교수도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다 ‘늙지도 않았고, 부분의 판단은 유보했다. - P114

냉소는 독이었지만 적당히 쓰면 자기 연민을 경계하는 데에 유용했다. 머그잔에는 『노인과 바다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 - P115

있는 꿈도 없는듯 주머니에 쑤셔넣고 문제집을 푸는 게 과거의 입시라면, 없는꿈도 있는 듯 만들어서 스토리텔링을 하는 게 지금의 입시였다. 곽은 경쟁은 여전히 경쟁이며 선택은 기만이 아닌지 의심하기도했다. 그러나 학생 주체가 자신의 결정에 따라 배우고 성장할 가능성이 마련되긴 했다는, 그런 원론적인 차원에서 새 교육정책을 얼마간 환영했다. - P117

‘수업 첫날의 수강생은 교사의 책임이 아니다. 그러나 수업 마지막날의 수강생은 교사의 책임이다.‘
3월이 지나며 곽은 수업중에 창밖을 자주 보게 되었다. - P122

지적 호기심은커녕 생에 호기심을 잃은 듯한 학생들을 깨우다 지친 날, 사실 주체성이란 드문 자질이 아닌지, 인생을 더 나은 방향으로 영위하려는 꿈과 끼가 모두에게 잠재되어 있다는 믿음은 미신이 아닌지 의심했다. "인간은 굴종을 원해" 운운했던 영화 속 파시스트 악당들을 떠올리며자신이 그런 의심을 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꼈다. 한번은 종료령도 듣지 못하고 잠든 채 교실에 남아 있는 학생을 흔들어 깨웠다. 새벽까지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봤을 거라 짐작하며 어제 무엇을 했길래 이렇게 자느냐고 물었다. 학생은 짜증내는 기색 없이 입가의 침을 훔치며 겸연쩍게 말했다.
"늦게까지 배달을 해서.. 죄송합니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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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내가 죽었는지 아는 법 - 심장이 뛰는 사체들, 산 채로 매장된 사람들 그리고 영혼에 대한 추적

중환자실 담당자들은 심장이 뛰는 사체가 지니는 모순 때문에 감정적으로 혼란을 겪을 수도 있다. 이들은 장기회수가 있기 전 며칠 동안 H 같은 환자들을 살아 있는 것으로 생각해야 할 뿐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으로 보살피고 치료해야 한다. 24시간 내내 지켜보면서 이 사체들의 ‘목숨을 유지시켜주는‘ 활동에 나서야 한다. 뇌가 혈압과 호르몬 양을 조절하지 못하고 혈류 속으로 호르몬을 내보내 지도 못하기 때문에, 장기들을 정상상태로 유지시키는 일은 중환자실 담당자들이 대신 해주어야 한다.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교 의과대학 의사들 팀은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에 실린 ‘장기회수의 심리적 윤리적 영향‘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은 관찰결과를 내놓았다.
"중환자실 인원들은 사망진단이 내려진 환자에게는 심폐소생술 을 실시하면서도, 그 바로 곁 침상에 ‘소생시키지 말 것‘이라는 지시사항이 붙은 환자가 있을 때 혼란을 느낄 수 있다." - P191

심장이 뛰는 사체를 두고 사람들이 느끼는 혼란은 죽음을 정확히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또 정신이 - 영혼이, 기가, 또는 뭐라고 이름을 붙이든 그것이 - 사라지고 오로지 시체만이 남는 정확한 순간을 어떻게 집어낼 것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수 세기 동안 이어져 내려온 혼란의 연장선이다. 뇌의 활동을 측정할 수 없었던 시절에는 심장이 멈추는 순간을 죽음의 순간으로 여겼다. 실제로 뇌는 심장이 피 보내는 일을 멈춘 순간부터 6~10분 정도 더 살아 있지만 그것은 필요 이상으로 정밀하게 따지는 것이고, 대부분의 경우 심장의 활동정지를 기준으로 하는 정의로 충분했다.
문제는 수 세기 동안 심장이 박동을 멈췄는지 아니면 잘 들리지 않을 뿐인지를 확실하게 분간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청진기는 1800년대 중반에 들어서야 발명되었고, 그나마도 초기에는 귀에다 대는 나팔 모양의 확성기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익사나 심장발작, 특정 유형의 약물중독같이 박동이 특히 약한 경우에는 아무리 꼼꼼 한 의사라 해도 분간이 힘들었고, 그래서 환자들은 실제로 목숨이 다하기도 전에 장의사에게 보내질 위험을 안고 있었다. - P192

법조계에서 뇌사 개념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의사들보다 시간이 좀더 걸렸다. 돌이킬 수 없는 혼수상태‘를 사망의 새로운 기준으 로 삼고, 그럼으로써 장기이식의 윤리적 문제를 일소한 ‘뇌사의 정의를 조사하기 위한 하버드 의과대학 임시위원회’ 보고서가 《미국 의학협회지>에 실린 것은 1968년이었다. 그리고 법률은 1974년이 되어서야 그 뒤를 따랐다. 이 문제가 대두된 계기는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에서 있었던 이상한 살인사건 재판이었다.
살인범 앤드루 라이온스는 1974년 9월에 한 남자의 머리에 총을 쏘아 뇌사상태로 만들었다. 라이온스의 변호사는 피해자의 가족이 피해자의 심장을 장기이식에 기증했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라이온스의 변론에 이용했다. 피고측은 만일 수술 동안 심장이 계속 뛰고 있었다면 라이온스가 그 하루 전날에 어떻게 그를 죽일 수 있었겠 느냐고 주장했다. 배심원들 앞에 선 그들은 엄밀히 말해 그를 살해 한 사람은 앤드루 라이온스가 아니라 장기회수를 맡은 외과의사라고 설득했다.
심장이식의 선구자로서 그 사건에서 증언한 스탠포드 대학교의 노먼 섬웨이에 따르면, 판사는 피고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판사는 배심원들에게 일반적인 사망의 판단기준은 하버드 위원회가 정한 것임을 알려주면서, 그 기준으로 평결에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희생자의 뇌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지의 표현대로, "두개골에서 스며나오는" 사진 역시 라이온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라이온스의 살인죄가 확정되었다. 캘리포니아 주는 이 재판의 결과를 바탕으로 뇌사를 법적 사망기준으로 하는 법을 도입했다. 다른 주들도 이내 뒤따랐다. - P212

사람들은 이성적인 차원에서는 대체로 뇌사와 장기이식이라는 개념을 잘 받아들인다. 그러나 감정적인 차원으로 가면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특히 가족의 뛰고 있는 심장을 꺼낼 수 있게 허락해달라는 장기이식 상담자를 만날 때에는 더욱 어렵다. 환자의 가족 54퍼센트가 거절한다고 한다. 오즈는 말한다.
"그게 아무리 불합리한 생각이라 해도, 그들은 심장을 꺼내는 순간이 사랑하는 사람의 진짜 최후가 될 거라는 두려움을 어떻게 하 지 못하는 겁니다."
사실상 자기가 환자를 죽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심장이식 담당의조차도 심장이 펌프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때로는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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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멜라_이응 이응

이번에도 내가 쏜 화살을 찾지 못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잃어버린 화살을 찾으려면 같은 방향으로 한번 더 활을 쏴야 한다고 할머니는 말했었다. 오래 고민할 것도 없다고 했다.
"그 짓이 맞나 틀리나 긴가민가할 땐 똑같은 짓을 한번 더 해봐."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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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홍련전 보리 어린이 고전 6
민경하 지음, 정지윤 그림 / 보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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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의 죽음을 외면한 어리석고 무기력한 아버지를 용서하고 좋은 배필도 소개하고 다시 그 아버지의 쌍둥이 딸로 태어나고. 억울한 죽음 만큼 슬프고 무서운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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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사체, 신고합니다! - 총알과 폭탄 그리고 까다로운 윤리

코허는 - 라가드 역시 어느 정도는 - 사체들을 상대로 하는 탄도학 연구가 좀더 인도주의적인 형태의 총격전으로 이어지기를 바랐다. 코허는 전투의 목표가 적을 죽이는 게 아니라 싸울 수 없게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와 관련하여 그는 총알 크기를 제한하고 재료로는 납보다 녹는점이 높은 물질을 사용하라고 권했다. 변형이 덜 되면 인체조직을 덜 파괴하기 때문이다.
무력화, 군수업계의 용어로 ‘저지능력’이 탄도학 연구의 지상목표가 되었다. 적이 나를 불구로 만들거나 죽이기 전에, 내가 먼저 적을 확실히 저지시키면서 가능하면 불구로 만들지도 않고 죽이지도 않는 방법! 실제로 1904년에 라가드 대위와 매달린 사체들이 다시 무대에 올랐 을 때의 목표는 저지능력 향상이었다. - P151

"그것은 무게가 다양한 물체들을 매달아놓고, 그것들의 운동량을 서로 연관지어 측정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게 저지능력과 관련하여 뭔가 의미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가정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의심스러운 실험으로부터 의심스러운 자료를 추정해내는 작업이었다."
라가드 대위는 총이 사람을 어떻게 저지시킬지를 알아보려면 이미 영구적으로 저지된 대상을 상대로 실험해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닫는다. 다시 말해 살아 있는 대상이 필요했다. 라가드는 "대상으로 결정된 짐승 들은 시카고 도축장에서 도살될 예정인 비프들이었다"고 기록했다. - P152

만일 내가 옛날 전쟁부의 결정권자였다면, 사람들이 총에 맞고도 가끔씩 그 자리에서 쓰러지지 않는 까닭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토록 쉽게 쓰러지는 까닭에 대해 연구하게 했을 것이다. 출혈로 인해(그래서 결국 뇌에 산소공급이 이루어지지 않아) 의식을 잃기까지 10~12초가 걸린다 고 한다. 그렇다면 총에 맞은 사람 대부분이 바로 그 자리에서 쓰러지 는 까닭은 뭘까? 텔레비전에서만 그러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나는 이 질문을 덩컨 맥퍼슨에게 해보았다. 그는 탄도학 전문가로 존경받고 있으며 로스앤젤레스 경찰서의 고문이기도 하다. 맥퍼슨은 그게 순전히 심리적인 효과라는 입장이다. 쓰러지느냐 마느냐는 마음 상태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동물들은 총에 맞는다는 게 뭔지 모르고 따라서 바로 그 순간 그 자리에 쓰러지는 경우가 드물다. 그는 총알에 심장을 관통당한 사슴 대부분이 40~50미터 달아난 다음에야 쓰러진다고 지적한다.
"사슴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조금도 모릅니다. 그래서 10초쯤 그대로 사슴답게 행동하다가 더 이상 그러지를 못하는 거죠. 좀더 성질이 포악한 짐승이라면 그 10초라는 시간을 이용해 우리에게 달려들겠지만요."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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