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머리만 하나 있으면 돼 - 참수와 회생, 그리고 인간의 머리이식

전신이식과 관련한 학문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화이트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심장이 뛰는 사체의 머리를 잘라내고 거기에 다른 머리를 끼워 붙이려는 사람들은 기증자의 동의라고 하는 커다란 장애물을 해결해야 한다. 신체에서 떼어낸 장기 하나는 비인격적이고 비개인적이다. 장기기증으로 얻는 인도주의적 이익이 장기적출에 따르는 슬픈 감정보다 크다. 우리 대부분의 경우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신체이식은 다른 문제이다. 낯선 사람 한 명의 건강을 회복 시키기 위해 온전한 신체 하나를 전부 기증할 유족이 있을까? - P24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8장 내가 죽었는지 아는 법 - 심장이 뛰는 사체들, 산 채로 매장된 사람들 그리고 영혼에 대한 추적

중환자실 담당자들은 심장이 뛰는 사체가 지니는 모순 때문에 감정적으로 혼란을 겪을 수도 있다. 이들은 장기회수가 있기 전 며칠 동안 H 같은 환자들을 살아 있는 것으로 생각해야 할 뿐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으로 보살피고 치료해야 한다. 24시간 내내 지켜보면서 이 사체들의 ‘목숨을 유지시켜주는‘ 활동에 나서야 한다. 뇌가 혈압과 호르몬 양을 조절하지 못하고 혈류 속으로 호르몬을 내보내 지도 못하기 때문에, 장기들을 정상상태로 유지시키는 일은 중환자실 담당자들이 대신 해주어야 한다.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교 의과대학 의사들 팀은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에 실린 ‘장기회수의 심리적 윤리적 영향‘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은 관찰결과를 내놓았다.
"중환자실 인원들은 사망진단이 내려진 환자에게는 심폐소생술 을 실시하면서도, 그 바로 곁 침상에 ‘소생시키지 말 것‘이라는 지시사항이 붙은 환자가 있을 때 혼란을 느낄 수 있다." - P191

심장이 뛰는 사체를 두고 사람들이 느끼는 혼란은 죽음을 정확히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또 정신이 - 영혼이, 기가, 또는 뭐라고 이름을 붙이든 그것이 - 사라지고 오로지 시체만이 남는 정확한 순간을 어떻게 집어낼 것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수 세기 동안 이어져 내려온 혼란의 연장선이다. 뇌의 활동을 측정할 수 없었던 시절에는 심장이 멈추는 순간을 죽음의 순간으로 여겼다. 실제로 뇌는 심장이 피 보내는 일을 멈춘 순간부터 6~10분 정도 더 살아 있지만 그것은 필요 이상으로 정밀하게 따지는 것이고, 대부분의 경우 심장의 활동정지를 기준으로 하는 정의로 충분했다.
문제는 수 세기 동안 심장이 박동을 멈췄는지 아니면 잘 들리지 않을 뿐인지를 확실하게 분간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청진기는 1800년대 중반에 들어서야 발명되었고, 그나마도 초기에는 귀에다 대는 나팔 모양의 확성기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익사나 심장발작, 특정 유형의 약물중독같이 박동이 특히 약한 경우에는 아무리 꼼꼼 한 의사라 해도 분간이 힘들었고, 그래서 환자들은 실제로 목숨이 다하기도 전에 장의사에게 보내질 위험을 안고 있었다. - P192

법조계에서 뇌사 개념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의사들보다 시간이 좀더 걸렸다. 돌이킬 수 없는 혼수상태‘를 사망의 새로운 기준으 로 삼고, 그럼으로써 장기이식의 윤리적 문제를 일소한 ‘뇌사의 정의를 조사하기 위한 하버드 의과대학 임시위원회’ 보고서가 《미국 의학협회지>에 실린 것은 1968년이었다. 그리고 법률은 1974년이 되어서야 그 뒤를 따랐다. 이 문제가 대두된 계기는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에서 있었던 이상한 살인사건 재판이었다.
살인범 앤드루 라이온스는 1974년 9월에 한 남자의 머리에 총을 쏘아 뇌사상태로 만들었다. 라이온스의 변호사는 피해자의 가족이 피해자의 심장을 장기이식에 기증했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라이온스의 변론에 이용했다. 피고측은 만일 수술 동안 심장이 계속 뛰고 있었다면 라이온스가 그 하루 전날에 어떻게 그를 죽일 수 있었겠 느냐고 주장했다. 배심원들 앞에 선 그들은 엄밀히 말해 그를 살해 한 사람은 앤드루 라이온스가 아니라 장기회수를 맡은 외과의사라고 설득했다.
심장이식의 선구자로서 그 사건에서 증언한 스탠포드 대학교의 노먼 섬웨이에 따르면, 판사는 피고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판사는 배심원들에게 일반적인 사망의 판단기준은 하버드 위원회가 정한 것임을 알려주면서, 그 기준으로 평결에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희생자의 뇌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지의 표현대로, "두개골에서 스며나오는" 사진 역시 라이온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라이온스의 살인죄가 확정되었다. 캘리포니아 주는 이 재판의 결과를 바탕으로 뇌사를 법적 사망기준으로 하는 법을 도입했다. 다른 주들도 이내 뒤따랐다. - P212

사람들은 이성적인 차원에서는 대체로 뇌사와 장기이식이라는 개념을 잘 받아들인다. 그러나 감정적인 차원으로 가면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특히 가족의 뛰고 있는 심장을 꺼낼 수 있게 허락해달라는 장기이식 상담자를 만날 때에는 더욱 어렵다. 환자의 가족 54퍼센트가 거절한다고 한다. 오즈는 말한다.
"그게 아무리 불합리한 생각이라 해도, 그들은 심장을 꺼내는 순간이 사랑하는 사람의 진짜 최후가 될 거라는 두려움을 어떻게 하 지 못하는 겁니다."
사실상 자기가 환자를 죽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심장이식 담당의조차도 심장이 펌프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때로는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 P2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6장 사체, 신고합니다! - 총알과 폭탄 그리고 까다로운 윤리

코허는 - 라가드 역시 어느 정도는 - 사체들을 상대로 하는 탄도학 연구가 좀더 인도주의적인 형태의 총격전으로 이어지기를 바랐다. 코허는 전투의 목표가 적을 죽이는 게 아니라 싸울 수 없게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와 관련하여 그는 총알 크기를 제한하고 재료로는 납보다 녹는점이 높은 물질을 사용하라고 권했다. 변형이 덜 되면 인체조직을 덜 파괴하기 때문이다.
무력화, 군수업계의 용어로 ‘저지능력’이 탄도학 연구의 지상목표가 되었다. 적이 나를 불구로 만들거나 죽이기 전에, 내가 먼저 적을 확실히 저지시키면서 가능하면 불구로 만들지도 않고 죽이지도 않는 방법! 실제로 1904년에 라가드 대위와 매달린 사체들이 다시 무대에 올랐 을 때의 목표는 저지능력 향상이었다. - P151

"그것은 무게가 다양한 물체들을 매달아놓고, 그것들의 운동량을 서로 연관지어 측정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게 저지능력과 관련하여 뭔가 의미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가정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의심스러운 실험으로부터 의심스러운 자료를 추정해내는 작업이었다."
라가드 대위는 총이 사람을 어떻게 저지시킬지를 알아보려면 이미 영구적으로 저지된 대상을 상대로 실험해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닫는다. 다시 말해 살아 있는 대상이 필요했다. 라가드는 "대상으로 결정된 짐승 들은 시카고 도축장에서 도살될 예정인 비프들이었다"고 기록했다. - P152

만일 내가 옛날 전쟁부의 결정권자였다면, 사람들이 총에 맞고도 가끔씩 그 자리에서 쓰러지지 않는 까닭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토록 쉽게 쓰러지는 까닭에 대해 연구하게 했을 것이다. 출혈로 인해(그래서 결국 뇌에 산소공급이 이루어지지 않아) 의식을 잃기까지 10~12초가 걸린다 고 한다. 그렇다면 총에 맞은 사람 대부분이 바로 그 자리에서 쓰러지 는 까닭은 뭘까? 텔레비전에서만 그러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나는 이 질문을 덩컨 맥퍼슨에게 해보았다. 그는 탄도학 전문가로 존경받고 있으며 로스앤젤레스 경찰서의 고문이기도 하다. 맥퍼슨은 그게 순전히 심리적인 효과라는 입장이다. 쓰러지느냐 마느냐는 마음 상태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동물들은 총에 맞는다는 게 뭔지 모르고 따라서 바로 그 순간 그 자리에 쓰러지는 경우가 드물다. 그는 총알에 심장을 관통당한 사슴 대부분이 40~50미터 달아난 다음에야 쓰러진다고 지적한다.
"사슴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조금도 모릅니다. 그래서 10초쯤 그대로 사슴답게 행동하다가 더 이상 그러지를 못하는 거죠. 좀더 성질이 포악한 짐승이라면 그 10초라는 시간을 이용해 우리에게 달려들겠지만요." - P15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5장 블랙박스를 넘어 - 승객들의 시신이 추락사고의 진실을 말해주어야 할 때

샤나한이 800기 사고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신체의 대부분이 비교적 온전했다는 것이다.
"멀쩡한 신체는 그렇지 않은 신체보다 더 마음에 걸립니다." 우리 대부분은 다루는 것은 고사하고 보는 것조차도 상상하기 힘든 잘린 손, 다리, 살점조각 등이 그로서는 대하기 더 편하다는 것 이다.
"그렇게 되면 그건 그냥 조직입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제 할일을 하는 거죠."
처참하지만 슬프지는 않다. 처참함에는 익숙해지지만 망가진 인생에는 익숙해지지 않는다. 샤나한은 병리학자들이 쓰는 방법을 쓴다.
"그들은 인간이 아니라 부분에 초점을 맞춥니다. 부검 동안 그들은 눈의 상태를 설명하고 그런 다음 입을 설명하죠. 뒤로 한 걸음 물 러서서 ‘이건 아이가 넷 있는 가장의 시체입니다‘라고 말하지는 않는 거죠. 감정적으로 살아남으려면 그 길뿐입니다." - P134

나는 이 책을 읽은 다음, 비행기를 탈 때마다 비상구 앞에 쌓인 시체 가운데 하나로 최후를 맞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할 사람들에게 충고할 만한 게 있는지 샤나한에게 물었다. 그의 대답은 주로 상식적인 것들이다. 비상구 가까이에 앉아라. 열과 연기를 피해 몸을 낮춰라. 독한 연기에 허파가 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오래 숨 을 참아라. 또 그는 창가 좌석을 더 좋아하는데, 복도 쪽에 앉는 사람들은 비교적 가벼운 사고에도 머리 위 짐칸에서 떨어지는 옷가방 벼락을 맞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란다. - P147

식사가 끝나고 청구서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샤나한에게 또 질문한다. 지난 20년 동안 그가 칵테일파티에 나갈 때마다 받은 질문이다. 추락할 때 살아날 확률이 비행기의 앞쪽에 앉아 있는 게 높은가, 아니면 뒤쪽인가? 그는 참을성 있게 대답한다.
"그건 어떤 식의 추락이 될지에 따라 다르죠."
나는 말을 바꿔 묻는다. 비행기 안 어디든 마음대로 골라 앉을 수 있다면 어디에 앉을 건데요?
"1등석이죠." - P14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4장 죽은 자의 운전 - 충돌실험용 인체모형 및 충돌한계라는 무섭고도 필요한 과학

아름답지는 않지만 필요성은 충분히 인정된다. 사체연구의 결과가 가져온 변화 덕분에 지금은 시속 100킬로미터의 속도로 벽에 정면으로 충돌해도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 1995년에 〈외상저널》에 실린 ‘부상방지에 대한 사체연구의 인도주의적 이익‘이라는 기사에서, 앨버트 킹은 사체연구를 통해 차량의 안전장치가 개선된 덕 분에 1987년 이후 매년 8,500명이 생명을 건지는 것으로 추산했다. ‘3점 지지‘ 안전띠를 시험하기 위해 충돌장치에 올랐던 사체 1구당 매년 61명이 생명을 건졌다. 얼굴에서 에어백이 터진 사체 1구당 매년 147명이 정면충돌에서 살아남았다. 에어백이 아니었다면 이들은 사망했을 것이다. 또 앞유리에 머리를 부딪친 사체 1구당 매년 68명이 목숨을 구했다. - P106

어린이 자료를 제외하면 인체 주요부분의 충격 허용한도는 이미 오래 전에 파악되었다. 오늘날 사체들은 주로 신체의 주변부, 즉 발목, 무릎, 발, 어깨 등의 충격연구를 위해 이용된다. 킹은 내게 이렇 게 말해주었다.
"옛날에는 큰 충돌사고를 당하면 대부분 영안실 신세가 됐습니다." 그러므로 죽은 사람의 발목이 으스러졌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이제는 그런 사람들도 에어백 덕분에 살아남습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에 신경을 써야 하는 거죠. 사고로 양쪽 발목과 무릎이 손상되어 다시는 똑바로 걷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기니까요. 그게 지금 중대한 장애원인이기도 하죠." - P110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도록 사체 머리에 꼭 맞는 흰색 두건이 씌워져 있다. 은행을 털려는 사람 같다. 팬티스타킹을 머리 위에 쓸 생각이었는데 실수로 운동선수용 양말을 쓰고 나온 사람 같다.
매트는 노트북 컴퓨터를 내려놓고 루한을 도와 사체를 옮겨 자동차 의자에 앉힌다. 의자는 충격기 옆 탁자 위에 놓여 있다. 루한의 말이 맞았다. 요양원과 같다. 옷을 입히고, 안아 올리고, 옮기고. 아주 늙고 병약한 사람과 죽은 사람 간의 거리는 짧은데다가 그 경계도 그리 분명하지 않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노인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다 보면(내 부모님 두 분이 모두 그랬다) 노년을 죽음에 점점 익숙해지는 과정으로 보게 된다. 늙어 죽어가는 사람들은 점점 더 잠이 많아지고, 어느 날부터는 내내 잠자는 상태로 들어간다. 점점 더 몸을 가누지 못하다가 어느 날부터는 앉히면 앉히는 대로, 누이면 누이는 대로 있게 된다. 노인들은 여러분이나 나와 닮은 만큼 UM006과도 닮았다.
나는 죽은 자들이 죽어가는 자들보다 더 대하기가 편하다. 그들응 고통을 받지 않는다.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화제가 필연적인 부분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어색한 침묵과 대화도 없다. 사체들은 무섭지 않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보낸 한 시간이 고통 속에 죽어가던 어머니와 보낸 수많은 시간보다 단연코 쉬웠다. 어 머니가 죽기를 바랐다는 말이 아니다. 그저 그게 쉬웠다는 말이다. 사체들은 일단 익숙해지고 나면-그것도 상당히 빨리 익숙해지는데 -놀라우리만치 상대하기가 쉽다. - P1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