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트레버
허수경, 혼자 가는 먼 집
조지 손더스
헤밍웨이, 빗 속의 고양이

그리고 단편소설을 쓰는 데 있어서는 플래너리 오코너, 앨리스 먼로, 존 치버, 윌리엄 트레버가 소중한 선생님입니다. 특히 윌리엄 트레버는 글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글 너머의 정신까지 좋아합니다. (존 치버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치버샘, 죄송합니다!).....

- 이미상 - P17

6. 소설이 한 글자도 써지지 않을 때 어떻게 자신을 다스리시는지 궁금합니다.

우선 저 자신을 안심시킵니다. 안 써도 돼. 내일은 쓰겠지. 내일도 아니면 내일모레, 영영 못 쓰면 말지 뭐. 그렇게 배짱과 여유를 부려요. 밖으로 나가 산책하고 다른 사람이 쓴 좋은 책을 읽습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새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도 봐요. 내가 글을 쓰지 않아도 세상은 잘 돌아가고 있다는 걸 확인합니다. 그러다보면 다시 책상 앞에 앉고 싶은 마음도 생기고요. 정신이 번쩍 들도록 도움을 주는 건 어려운 일상을 헤쳐가면서도 꿋꿋이 글을 쓴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이 사람은 이렇게 힘들었구나, 그래도 썼구나, 그게 삶이고 행복이구나. 그런 단순한 진실을 저 자신에게 확인시켜줍니다.

- 김멜라 - P22

7. 십년 후에는 어떤 소설을 쓰고 있을 것 같으신가요?

저에겐 십 년 후가 까마득한 미래처럼 느껴지네요! 저는 시계가 그리 넓지 않거든요. 병으로 얻은 습관 같아요. 병을 얻고 나면 정기검진을 갈 때마다 새로 시간을 얻는 느낌이 들거든요. 다음 정기검진 때까지는 괜찮은가보다. 그런 식으로 육 개월, 일 년 단위로 삶을 연장하는 느낌이에요. 십 년 후라, 감히 상상하기는 어렵지만, 지금보다는 조금 더 솔직한 이야기를 쓰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제 소설은 아직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거든요. 그 주변을 이리저리 돌아가고있는 중인 것 같아서요.

- 성혜령 - P28

4. 젊은 근희의 행진」에서 가장 마음에 두고 있는 문장과 그 이유를 말씀해주세요.

"산업과 연결되어 있는 해방운동은 없다.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진정한 해방이 아닐 것이다."(같은 책, 166~167쪽)
문희의 생각이 담긴 이 문장입니다. 요즘 해방의 의미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어서 이 문장이 새롭게 마음에 남아요. 산업과 결부된 해방일지라도 인류의 진보를 향한 해방이라면 좋은 게 아닐까, 산업과 결부되지 않은 해방은 결국 실패하고 마는 게 아닐까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을 합니다. 인류의 역사는 해방의 역사 같기도 하고, 저의 역사도 어떤 의미에선 그랬던 것 같아요. 앞으론 더욱더 해방되고 싶네요.

- 이서수 - P33

4. 가슴에 두고 자주 꺼내 보는, 혹은 저절로 떠오르는 문장이있으신가요?

허수경 시인의 혼자 가는 먼 집」이라는 시를 좋아합니다. 필사도 몇 번이나 했는데요. 다 외우지는 못하고 띄엄띄엄 구절들을 떠올릴 때가 있어요.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 그러나 킥킥, 당신" (『혼자가는 먼 집』, 문학과지성사, 1992, 27쪽). 특히 마지막 구절인 ‘그러나 킥킥 당신‘을 저도 모르게 가끔 중얼거릴 때가 있어요.

- 정선임 - P39

누구나 그렇겠지만 제게도 오래된 외로움이 있는데요. 타인으로도 메울 수 없는 외로움 같아요. 소설이나 영화는 이 외로움을 마주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해결해주진 않고, 다만 대면하게 해줘요. 곳곳에 혼자 있는 것들과 저를 연결해주는 거죠. 심지어 나쁜 이야기조차 그런 역할을 해냅니다. 그들이 만들어준 뿌리에 내처 연결되고 싶다는 마음에 소설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마음이 지금도 뱃속에 있어요.

- 함윤이 - P47

당겼다 험상궂은 얼굴로 신음을 토하는 소란스러운 운동을 하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성격에 너무 잘 맞더라고요. 부작용은 어떤 사람이 저에게 쓴소리를 할 때 저도 모르게 ‘첫 전완근도 작으면서‘라거나 ‘그런 말 할 시간에 바벨로나 해라‘ 하고 생각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 현호정 - P52

조지 손더스의 말은 이런 의미다. 단편소설 작가가 장편소설을 씀으로써 ‘진정한 작가로 거듭나는 것이 아니다. 거개의 장편소설이 훨씬 짧게 쓰였어야 했다.……… 비가 내린다. 일과를 마친사람이 침대에 누워 오늘 하루도 고됐다. 짧은 소설 한 편 읽고 자야지 하며 머리맡에서 단편집을 집어드는 순간의 고요와 충족감이 빗소리와 함께 교실을 가득 채운다. 사람들은 창문을 열어 들이치는 빗방울을 느끼며 손더스 선생님의 독법에 따라 헤밍웨이의 「빗속의 고양이를 아주 아주 느리게 읽어나간다. 거의 장편소설 한 편을 읽는 속도로, 위대한 단편소설 작가들이 그 짧은 이야기를 쓸 때 그토록 오래 걸렸던 것처럼.

- 이미상 자선 에세이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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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제1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이미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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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읽는 유일한 수상작품집. 올해는 딱 이거다 라는 느낌이 오는 픽이 없다. 내가 점점 ‘늙어가서’ 인가 하는 서글픈 생각이 드네.. 그래도 <당신의 4분 33초>로 흥미를 가졌던 이서수 작가의 <젊은 근희의 탄생>에서 보여주는 경쾌한 문장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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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우울이 느긋하게 자기 자리를 찾아 돌아오고 낯선 슬픔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머릿속을 파고드는 이른 오후였다. 사람들의 구둣발 밑에서 투둑거리며 연필들이 부러지는 소리가 여전히 머릿속을 두드리며 손과 발을 떨게 하고 팔과 다리를 뻣뻣하게 했다. 나는 공들여 숨을 내쉬었다.

- 현호정, 연필 샌드위치 - P308

그 인터뷰는 대중의 상투적 기대를 만족시켜주기 위한 것이지 서연화 개인의 진실을 담아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소설의 본질은 서연화의 셀프 인터뷰다. 작가는 몇 군데에서 그가 눈을 감는 행위를 보여주는데, 그것은 그가 자신의 진실 안에 존재하는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에, 서연화는 이렇게 말하기까지 한다. "눈을 감을 수 없다는 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작가는 서연화의 눈꺼풀 안쪽까지를 들여다보며 그의 진실을 함께 지켜낸다. 너무도 긴 시간과 많은 감정이 응축돼 있어서 다른 말로 바꿔 쓸 수조차도 없는 한 단어 ‘요카타‘로 귀결될 그런 진실을. E. M. 포스터는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조차 진실하게 말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게 말하는 다른 인간을 만나고 싶어 소설을 읽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딱 그런 소설이다.

- 신형철 평론가 - P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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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있는 집 자식들이 잘되는 건 왜 그렇게 뻔해 보일까.
언니, 언니는 무너지다를 무‘노‘지다로 발음하는 거 알아?
언니, 이 술집 선불이야.
언니, 어묵탕에 청양고추를 넣어야지 오이고추를 넣는 사람이 어디 있어?
언니, 나 오늘 돈이 없어서 고깃집 앞을 지나다가 울 뻔했어.
언니, 오늘 목사님의 설교 주제는 ‘우리는 왜 일하고 있는가‘야.
언니, 맛동산을 물에 불리면 개똥처럼 보이는 거 알아?
그 밖에 그 아이가 했던 많은 말들이 밤새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 P181

언니, 김오리는 늙지 않잖아. 이십 년 뒤에도 그 얼굴이고, 삼십년 뒤에도 그 얼굴이잖아. 내가 환갑이 되어도 김오리는 지금그 얼굴이야. 김오리의 매력 자본은 사라지지 않는 거야. 김오리는 나와 다르게 늙지 않고 썩지 않는 거야. 하지만 그런 김오리도 언젠가 결국 잊히겠지. 그렇더라도 진짜가 아닌데 잊힌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김오리는 상처받지도 않을 거야. 상처받을 줄 모르는 존재이니까. 그건 너무 부러워. - P183

언니, 관종이 되려면 관종으로 불리는 걸 참고 견뎌야 해.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언니는 모르지? 한가지 더 언니가 모르는 게 있어. 관종도 직업이 될 수 있다는 거야. 그걸 왜 모를까. 왜겠어. 언니가 꼰대라서 그런 거지.

- 이서수, 젊은 근희의 행진 -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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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두 개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기 위해 글을 씁니다. 완벽하게 끌려갈 수밖에 없는 꿈의 힘을 날마다 체험합니다. 지독한 잠꼬대 끝에 젖은 얼굴로 깨어나면 죽음의 얼굴을 마주하고 돌아온 기분입니다. 그러던 어느 새벽, 저는 알았습니다. 나쁜 꿈이 저를 살리고 있었다는 것을요. 더러운 물이 모이는 제일 낮은자리의 수챗구멍처럼 꿈은 저를 위해 온갖 두려움과 슬픔을 자신의 통로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꿈에서 죽고 나면 저는 다시 태어났고, 꿈에서 슬퍼하면 현실에서 울지 못했던 울음을 마음껏 풀어놓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악몽이었지만 그 꿈의 숨은 뜻은 이해와 보호였습니다. 반으로 선택되는 역설의 죽음이다.

- 김멜라 작가노트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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