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 관내분실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 + 마지막 로그 + 라디오 장례식 + 독립의 오단계
김초엽 외 지음 / 허블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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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김초엽!! 인공지능, 안드로이드 로봇이 대세인 속에서 김초엽 만의 소재와 주제로 풀어낸 애잔하고 다정한 이야기. 김혜진의 돌봄 노동의 딜레마와 간병로봇의 고뇌, 오정연의 안락사 호텔에서의 마지막 일주일도 머지않아 다가올 미래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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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4-01-29 2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여기 김초엽의 “관내분실” 수록되어 있나요? 전 단행본에 실린 걸로 읽었는데, 좋았어요!

햇살과함께 2024-01-29 22:37   좋아요 1 | URL
관내분실 대상 우빛속 가작 동시 수상한 작품집입니다! 저도 김초엽 작가 2편은 우빛속 단행본으로 이미 읽었는데 다시 읽어도 좋네요!!
 

관내분실_김초엽

한 명의 여성 MC를 둘러싼 네 명의 남성 패널들이 마인드와 영혼이라는 주제로 토론을 하던 중이었다. 패널 중 누군가가 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전기적 신호와 화학적 신호의 연속으로 해석할 수 있고, 마인드를 구축하는 데에 성공한 것은 뇌 속의 다양한 화학적 신호들, 펩타이드와 신경전달물질의 영향을 전기적 신호로 데이터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여자가 말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 결과들은 부정적입니다. 마인드가 영혼이 아니라는 가장 결정적인 반박은, 그렇게 스캐닝된 시냅스 패턴이 더 이상 가소적으로 변형되지 않는다는 관찰로부터 나왔죠. 한사람의 자아는 끊임없이 변해갑니다. 성장하고, 배우고, 반응하고, 노화하면서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변형되지 않는 마인드는 영혼 그 자체가 아니라 죽은 시점에서 고정되어버린, 일종의 박제된 정신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요?" - P44

수상 소감_김초엽

그래도 최악인 건 아니다. 과학의 좋은 점 중 하나는 실패가 완전한 실패를 뜻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틀리지 않는다면 새로운무언가를 찾아내는 일도 불가능하다.
오랜 시도 끝에, 나는 글을 쓰는 일도 비슷한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실패는 그리 나쁘지 않다. 그게 과학소설이라면 더더욱. - P62

마지막 로그_오정영

D2-62는 슬퍼 보이지 않았다. 어느 한구석이 고장 난 채 자기만의 방식으로 오랜 세월을 견디고 나면 결핍도 원동력이 되는 걸까. 저의 이야기는 어떻게 끝이 날까요, 묻고 싶었다.
"혹시 마음이 바뀔지도 몰라요."
내 마음을 읽은 듯 그가 말했다.
"죽고 싶은 마음, 죽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었던 근거가 갑자기사라지는 거죠. 안락사 담당 안드로이드들은 그런 감정 변화 인지에 특화된 앱을 장착하고 있어요. 담당 안드로이드가 좀 더 살아보라며 손을 내민다면 굳이 마음을 다잡지 말아요."
D2-62가 내 어깨 너머로 눈짓을 보내며 말을 이었다.
"저 영감도 그렇게 마음을 바꿨죠. 당시 담당 안드로이드를 계속 담당자로 배당해달라 요청했다더군요. 살아야겠다는 욕구라는 게, 죽겠다는 결심보다 쉽고 당연해야 하잖아요. 노을이, 하늘이예쁘네요, 함께 볼까요, 누군가 매일 같은 시간에 권해주기만 해도살아지는 게 하루하루니까."
그가 가리키는 곳에 겨우 혼자 거동할 수 있는 수준의 노인과 그에게 찻잔을 건네는 안드로이드가 있었다. 조이였다. 조이의 미소가 멀리서도 보였다. 어제 내가 보았던 미소와 다르지 않았다.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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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계절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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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권여선 작가의 <안녕 주정뱅이> 읽고 반해버려서 전작 읽자 하고 초기작 2권 읽고 중단했는데, 다시 읽은 권여선 작가의 책도 역시 권여선했다. 각자의 소주잔을 기울이며 먼 과거의 그때 그 시절을 회상하는 사람들. 어떻게든 살아지는 삶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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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4-01-03 12: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시 읽은 권여선 작가의 책도 역시 권여선했다. --> ㅋㅋ 오후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햇살과함께 2024-01-03 23:31   좋아요 1 | URL
술이 필요한 책입니다^^

자목련 2024-01-03 16: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권여선 작가, 언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것 같아요!

햇살과함께 2024-01-03 23:31   좋아요 0 | URL
그래도 저의 최애는 <안녕 주정뱅이>입니다^^
 

어머니는 잠 못 이루고

오래된 자료를 들여다보는 게 점점 힘들어지고 있었다. 한글자한 글자씩 읽어나가는 게 마치 원채의 장부를 들여다보는 일 같았다. 지도교수인 박선생은 오익이 논문에서 간과한 부분을 오익 스스로 알아채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를 가혹하게 몰아붙였다. 자신이 알아챘다면 간과했겠는가. 마찬가지로 오익은 오숙이 얼마만한 분노가 있었기에 자신을 ‘너‘라고 부르며 의절을 통보하는 문자를 보냈는지 알지 못했다. 앞으로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가까운 이에게 그런 분노를 심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몰랐다. 알았다면 그렇게 했겠는가. 무지는 가장 공격받기 쉬운 대상이지만, 무지한 자는 공격 앞에서 두려워 떨 뿐 무지하여자기 죄를 알지 못하므로 제대로 변명조차 할 수 없다. 차라리 자신이 딸이었다면, 모든 걸 희생하고 차별받고 살아온 그런 존재였다면 오숙처럼 무섭게 돌변할 기회라도 있었으련만, 그는 한없이 - P199

억울했고 뭔지 모를 어떤 감정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당장이라도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어머니만 그런 게 아니라 자신도 어머니를 닮아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다고, 자신이 오숙처럼 되기를바라느냐고, 앞으로 자기가 다 포기하고 희생하고 살면 되겠느냐고, 어머니가 원하는 게 무엇이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 P200

기억의 왈츠

그건 무엇이었을까. 내 속에서 예기치 않은 순간에 발사된 것은.
지금의 내 생각에 그건 아마 당시에 내가 가지고 있던 어두운 정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물네 살의 삶이 품을 수밖에 없던 경쾌한 반짝임 사이에서 빚어진 어떤 비틀림 같은 것, 그 와중에 발되는 우스꽝스러움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어지간한 고통에는 어리광이 없는 대신 소소한 통증에는 뒤집힌 풍뎅이처럼 격렬하게 바르작거렸다. 턱없이 무거운 머리를 가느다란 목으로 지탱하는 듯한 그런 기형적인 삶의 고갯짓이 자아내는 경련적인 유머가 때때로 내 삶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발사된 건 아니었을까. - P218

죽어 버릴까………… 죽어 버릴까…...
나는 여자의 말투를 흉내낸 게 아니라 내 속에 오랫동안 고여있던 가래 같은 말을 내뱉은 것이다. 학대의 사슬 속에는 죽여버릴까와 죽어버릴까밖에 없다. 학대당한 자가 더 약한 존재에게 학대를 갚는 그 사슬을 끊으려면 단지 모음 하나만 바꾸면 된다. 비록 그것이 생사를 가르는 모음이라 해도.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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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4-01-03 1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햇살과함께 2024-01-03 23:30   좋아요 0 | URL
서곡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사슴벌레식 문답

정원의 질문에 주인이 잠시 생각하는 눈치더니 이내 득도한 듯 인자한 얼굴로 대답했다.
어디로든 들어와.
그리고 가버렸다. 사슴벌레를 대변하는 듯한 그 말에 나는 실로감탄했다. 너 어디로 들어와, 물으면 어디로든 들어와, 대답하는사슴벌레의 의젓한 말투가 들리는 듯했다. 마치 가부좌라도 튼 듯한 점잖은 자세로 그런데 나의 상상과 달리 정원의 말에 따르면방에 있던 사슴벌레는 몸이 뒤집힌 채 계속 버둥거리며 빠른 속도로 움직여 다녔다고 했다.
약을 쳐서 그랬나봐. 정원이 사슴벌레에 빙의된 듯 양 손가락을바르르 떨며 말했다.
그렇다면, 하고 내가 말했다. 사슴벌레의 등에 작은 휴지를 대고 양쪽 다리에 빗자루 싸리를 몇 개씩 매달아 너 대신 청소를 시켰으면 어땠을까.
정원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 어떻게 그렇게 잔인해?
나 어떻게든 그렇게 잔인해정원이 씩 웃으며 해보자는 건가 했고 우리는 해보았다.
인간은 무엇으로사는가?
인간은 무엇으로든 살아. - P21

아무리 차근차근 생각해보려 해도 추모 모임에서 들은 이야기때문인지 취기 때문인지 내 정신은 급격히 혼탁해지고 제대로 된사고를 할 수가 없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하다가 문득 그럴수도 있지, 한다. 인간의 자기 합리화는 타인이 도저히 이해할 수없는 비합리적인 경로로 끝없이 뻗어나가기 마련이므로, 결국 자기 합리화는 모순이다. 자기 합리화는 자기가 도저히 합리화될 수없는 경우에만 작동하는 기제이니까.
술을 한 잔 마시며 나는, 어떻게 치아 교정을 하나, 탄식하다가또 한 잔을 마시며,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같이 활동하던 동료이자 친구의 남편을 감옥에 팔 년 동안 갇히게 한 진술을 하고도 자신의 입매나 치아 배열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쉰이 넘고도 치아 교정기를 몇 년이라도 달 수 있는 것이다. 무시무시한 조직 사건 연루자로 조사를 받으면서도 지켜낸 교수 자리인데 뜻밖의 법인화 문제로 규정이 바뀌어 자리가 위태로워지면 곳곳에 전화를걸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방도를 알아볼 수도 있는 것이다. 무엇과 바꾼 자리인데 지키지 않을 수 있을까. 필요하면 무슨 법사도만나고 무슨 포럼에 패널로 갈 수도 있는 것이다. - P36

실버들 천만사

우리 있잖아, 아빠랑 오빠도 이름 부를까? 병석씨, 명운씨 이렇게.
그러자 그래야 내가 흥분해도 감정의 거리가 생길 것 같네.
세상 모든 사람에게 공평해지는 게 좋지.
반희가 채운을 보았다. 채운은 반희가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고, 내가 좀 멋진 말을 했나 싶어 어깨가 으쓱했다. - P53

아,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채운씨. 반희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지금도 고개를 못 돌리는 건 아닌데 무서워서 못 돌아보는 거잖아. 경추가 빙빙돈다고 돌아볼 수 있을까?
그래? 그럼 아까 그 물고기처럼 뇌를 젤리화하는 수밖에 없는건가?
그렇지. 그리고 제대로 보려면 머리카락도 반은 밀어야 할걸.
와, 그러네. 그 풍경 참 기괴한데. 여자들이 외계인처럼 머리 절반이 그렇게 돼서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면.
채운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말했다.
엄마, 우리가 먹을 거 놓고 마음껏 싸우지도 못하게 된 건 뭐 땜에 그런 걸까?
음, 반희가 생각하다 말했다. 그것도 물고기랑 같은 이유겠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세상 뭐 다 이렇게 슬픈 얘기야, 젠장. 채운이 맥주를 벌컥 마시고 말했다. 나는 원래 생겨먹은 데서 얼마나 많이 바뀌었을까.
반희는 뭐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 P73

하늘 높이 아름답게

그날 새벽 내내 잠을 설친 탓에 베르타는 마리아와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일단 몸부터 일으키자 하니일어나졌고 일어나니 이내 침대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욕실로 가자 하니 욕실 쪽으로 발이 움직였다. 신기하게도 마리아의 말대로였다.
몸이란 게 움직이자 달래면 움직여져요, 사모님. - P103

자신이 왜 그들과 계속 만남을 이어왔는지가 분명히 이해되었다. 참 고귀하지를 않다. 전혀 고귀하지 않구나 우리는…… 베르타는 카디건 앞섶을 여미고 종종걸음을 쳤다. 한 계절이 가고 새로운 계절이왔다. 마리아의 말대로라면 새로운 힘이 필요할 때였다.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들지요, 사모님.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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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피닷 2024-01-01 0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햇살과함께 2024-01-01 21:05   좋아요 1 | URL
루피닷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려주시는 시 잘 읽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