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자의 첫사랑』은 상당히 유명한 작품이지만 작가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고, 대략적인 이야기는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었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아직 책을 읽어보질 못해서 전혀 몰랐다. 그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하이델베르크를 주무대로 황태자와
요즘으로 치자면 음식점 웨이트리스의 짧지만 강렬했던 첫사랑을 다루고 있다는 정도일 것이다.
왠지 여러 면에서 왠지 로맨틱한 분위기가 기대되어 언제고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였는데 이번에
로그아웃에서 출간된 원작소설의 완역본으로 만날 수 있게 되어 반가웠고 책 중간중간 예쁜 일러스트가 함께 수록되어 있어서 잠깐이나마 독일과
하이델베르크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었던 점도 좋았던것 같다.
카를부르크의 황태자인 카를 하인리히는 최근 졸업시험에 최종 합격한 뒤로 황제에 의해 1년간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입학해 학업을 할 계획이였고 이 유학길에 황태자의 개인 교수이자 황태자를 잘 가르쳐 최종 합격을 할 수 있게 한 업적을
인정받아 신임 궁정 고문관이 된 위트너 박사와 왕족의 시중을 드는 루츠 씨와 함께 하이델베르크로 향한다.
이제 스무 살이 된 하인리히는 그동안 자식이 없던 백부이자
지금의 황제에 의해서 엄격한 궁중 예법에 따라 키워졌고 하이델베르크로 향하는 기차행은 그에게 있어서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한 경험이 된다.
그리고 동행한 박사의 경우에는 궁중에서 근 10년 가까이 지냈던 이유로 건강이 다소 나빠져 하이델베르크에서 산책을 하며 다시금 날씬하고 건강했던
때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다만 루츠씨만이 그동안 지켜져 온 궁중 생활과는 다른 행동을
연이어 보이며 일반적인 시종과는 다른 자신을 몸종처럼 취급하는 박사와 황태자에 조금씩 불만이 생긴다. 게다가 힘들게 도착한 하이델베르크에서
황태자가 묵을 숙소는 고급 호텔이 아닌 허름한 하숙집과도 같았고 루츠씨는 자신이 골방같은 곳에서 앞으로 1년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에
우울해진다.
모든 것이 신기한 황태자는 바로 이곳에서 살림살이를 도와주는
케티라는 여성을 만나 운명적인 첫사랑에 빠진다. 부모가 없는 두 사람의 처지는 곧 어딘가 모르게 슬픈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고 오스트리아에서 온
케티에겐 프란첼이라는 삼십대의 약혼자가 있음을 알게 되지만 이들은 서로에게 급속도로 빠져든다.
게다가 황태자가 궁중에서처럼 생활하는 동시에 학업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함께 보내진 박사는 오히려 황태자에게 그가 지금까지 결코 맛볼 수 없었던 자유와 일탈을 몸소 실천해 보인다. 여기에 황태자가
학우회에 가입까지 하게 되면서 수업에는 출석하지 않고 점점 더 방탕한 생활을 이어간다.
학우회 회원들과 결투를 하고 케티와의 연애를 이어가고 그 사이
박사는 점점 더 몸이 쇠락해가면서 결국엔 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된다. 그렇지만 여전히 이제껏 꿈꾸지 못했던 자유로운, 20대의 청년 같은 자유를
누리던 생활은 그에게 카를부르크에서 전보가 도착하면서 막을 내린다.
카를부르크를 떠나오기 전에도 좋지 않았던 황제의 건강이 더욱 나빠져 황태자가 급히 돌아가야
했던 것이다. 결국 함께 돌아갈 수 없는 박사와는 어딘가 모르게 마지막이 될 인사를 하고, 케티에겐 돌아오겠다는 인사를 남긴 채 카를부르크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
그리고 돌아온 궁중에서는 역시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황제를 대신해 사실상 황제나 다름없는
업무를 보게 되고 곧 돌아가겠다는 생각은 점차 해를 넘기게 된다. 그 사이 박사와 황제는 운명을 달리하고 자신은 사촌과의 결혼식을 앞두고 있는
동시에 점차 하이델베르크로 떠나기 전보다, 백부이자 전황제보다 어딘가 모르게 냉담해지는 나날들 속에서 우연히 하이델베르크에서의 인연이 있던
노인이 그를 찾아오면서 그는 어쩌면 생애 마지막이 될 자유를 누리고자 다시 그때처럼 하이델베르크로 향한다.
박사는 그에게 카를부르크에 가더라도 하이델베르크에서의 자유와 젊은이다움을 잊지 말라고 했지만
황태자는 이미 예전의 소년이였을 때보다 더 엄격하고 냉기가 흐르는 사람이 되었고 다시 만나게 된 박사의 무덤 앞에서도, 학우회 사람들에게도 이는
달라지지 않는다.
게다가 시간이 흘러 그가 변하는 것처럼 하이델베르크에 있던 사람들도 이제는 곳곳으로 떠났고
드디어 만나게 된 케티 역시도 곧 약혼자와의 결혼을 위해 오스트리아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두 사람은 그렇게 첫사랑의 추억을
영원히 간직하겠다는 마지막 약속을 끝으로 어쩌면 그 결과가 정해져 있었던 자신들의 삶을 향해 걸어가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마치 한 여름의 밤의 꿈 같은 이야기다. 신데렐라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다. 어쩌면 모두가 알고
있었기에 박사는 그토록 황태자에게 당부를 아끼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시대에, 한 나라를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운명에 맞춰 살아 온
황태자에게 있어서 그것은 정말 한 때의 추억과도 같은 이야기처럼 느껴져 해피엔딩이 아님에도 꼭 새드엔딩 같지도 않은 그런 이야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