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 김영사 / 200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2003년도에 어디선가 이 책의 소문을 듣고, 필이 확 꽂혀 책을 구하려고 여기저기 전화했던 적이 있다.
하필이면 읽고 싶은 책이 품절되어 혹시나 서점에 재고가 있지 않을까 싶어 몇 군데 알아 봤는데 불행히도 못 찾았다.
결국 도서관에서 찾은 뒤 기대를 잔뜩 품고 책장을 열었는데, 생각보다 지루해서 별 흥미를 못 느꼈던 기억이 난다.
그 때는 왜 이 책이 논증적이고 사변적이라고 생각했을까?
구체적인 사례를 밝혀 부당함을 증명하는 귀납적 방식, 즉 읽기 쉬운 형식이 아니라. 연역적인 방식으로 추론하는 그런 어려운 책이라고 생각했었다.
막상 다시 읽어 보니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너무 평이해서 대중들에게 쉽게 어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얘기는 조심스러울 수도 있는데, 확실히 과학자들은 직업적으로 책을 쓰고 논증하는 훈련을 하는 인문학자들 보다는 필력이나 깊이 면에서 한 수 아래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지적 사기, 라는 책을 비판하는 리뷰에서 과학자들의 인문학적 깊이가 얕다는 평을 본 적이 있다.
그 때는 인문학도들의 편견 내지는 시샘어린 깍아내리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그 뜻을 조금 알 것 같다.
"만들어진 신" 에서도 전체적인 뜻에는 동의하지만, 신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추론 과정이 매우 수준높지는 않다.
그냥 평이하게 대중을 설득한다고 해야 할까?
어렵게 글을 쓴다고 훌륭한 것은 아닌데, 확실히 철학자와 과학자 사이의 인문학적 글쓰기 능력은 차이가 난다.

미국에는 UFO 신봉자들이 꽤 많은 것 같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하여튼 자본주의의 최첨단을 달리는 미국도 각종 미신과 심령술사들이 판을 치는 것 같다.
기독교적 신정 국가라는 걸 생각해 보면 뜻밖의 일만은 아니긴 하다.
전체 내용의 절반 이상을 UFO 의 존재가 황당무계하다는 것을 밝히는 데 할애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UFO 가 그 정도까지 주목받는 건 아니기 때문에 사실 크게 공감이 가지는 않았다.
우주선을 보내고 달에 사람을 보내는 나라라 그런지, 외계인에 대한 미신도 큰 모양이다.
하여튼 나는 외계인의 존재에 대해 전혀 믿지 않기 때문에 이 부분은 솔직히 지루했다.
평소에 외계인을 봤다는 류의 주장을 접할 때 궁금한 게 있었다.
왜 저 사람들이 봤다는 외계인은 인간과 닮은 걸까?
두 발로 서고 두 손으로 사물을 조작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형태야 말로 지적 생물체에게 가장 적합하단 얘기일까?
칼 세이건은 시원하게 답변한다.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착각이고 환영이기 때문에 고작 생각해낸 한계가 그 정도라는 것이다.
세이건의 말마따나, 사람들이 만들어낸 외계인은 생물학 교과서를 보는 것보다도 훨씬 더 진부하고 내용이 없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이라는 챕터는 나에게 꽤 큰 의미를 줬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도, 악마와 귀신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는다.
세이건이 말하는 악마, 즉 demon 은 기독교의 사탄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의 말을 빌리면, 정령이나 악령, 요정, 혹은 사악한 마귀 따위는 없다.
그것들은 인간의 뇌가 만들어낸 착각이라고 본다.
사람의 뇌는 형상을 만들어내는데 익숙하다.
의미없는 여러가지 이미지들 속에서 친숙한 형태를 찾아낸다.
눈은 단지 영상을 받아들일 뿐, 형상을 만들어내는 것은 뇌의 후두엽이라는 강의 내용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점을 치고 기도를 하는 것도 다 무의미한 일은 아닐까?
점성술과 굿, 사주 같은 것도 아무 의미없는 행동이 아닌가?
넓게 확장해 보면, 궁극적으로 영혼이라는 개념 자체가 실체가 없는 추상적 명사일 뿐, 결국은 뇌가 만들어낸 이미지라는 얘기가 된다.
흔히 몸과 정신은 다르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영혼이 뇌가 만들어낸 이미지 조합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정신이라는 것 자체가 뇌의 작용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정말로 실존하는 神 같은 건 없다는 것인가?
뇌과학이 더 발전하면 마음의 실체를 밝혀내지 않을까?
결국은 뇌 역시 인간이라는 육체의 일부듯, 마음이나 정신, 혹은 영혼 역시 뇌가 멈추면 사라지는, 육체의 일부이지 않을까?

인간은 설명 체계를 원한다.
과학이 발달하기 전, 종교가 자연 현상을 설명해 줬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초자연적인 존재,  신의 뜻으로 해석했다.
이제 과학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설명해 준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과학이 종교라는 말은 종교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주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종교는 숭배의 대상이고, 누구 말마따나 이해가 안 되니까 더욱 열심히 믿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은 이해되지 않은 부분은 미완으로 남겨 두고 알고 있는 것의 범위를 넓혀 간다.
무조건 믿으라는 종교와, 정교한 설명 체계를 원하는 과학이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는가?

이른바 신들린 사람은, 정신분열증의 일부로 보는 관점이 흥미롭다.
무조건 미친 사람으로 모는 것은 아니다.
통념적인 의미의 미친 사람이 아니라, 의학적으로 혹은 뇌과학적으로 일반인들과 다른 뇌작용이 있을 것 같다.
정신분열증 환자가 전체 인구의 1% 라는 걸 생각해 보면, 생각해 볼 만한 얘기다.
뇌과학이 좀 더 진보한다면 그동안 이해할 수 없는 일로 치부하던 정신적인 영역, 이를테면 귀신들린 사람, 방언을 하는 사람, 환영을 본 사람, 미래를 예언하는 사람 등등의 실체가 밝혀지지 않을까?
결국 우리가 믿고 있는 것들의 거의 대부분은, 뇌가 만들어낸 이미지이고 환영이고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속해 있는 문화권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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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ngkiller 2007-12-25 0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무지하게 두껍고 빡샌 책이었던 기억이...ㅎㅎ 샀다가 다른 책으로 바꿔버린 기억이 있습니다. ^^

prongkiller 2007-12-25 0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린님 페이지를 한번 쭈~욱 하고 훑어봤습니다. 이정도면 뭐 '문사철 600' 정도야 대학시절에 가뿐하게 끝내셨겠네요. 부럽습니다.
철학 쪽만 보강하신다면 정말 무시무시한 내공이 되겠네요.(물론 지금까지 읽으신 철학 서적도 충분히 많으시지만^^)
주로 네이버 블로그에서 활동하느라 알라딘엔 무척 오랜만에 들어왔습니다. 혹시 시간 되시면 여기 한번 방문하시길 빌께요. http://blog.naver.com/ivorymind
그럼 즐거운 크리스마스 맞으세요 마린님~~
 
인간은 왜 늙는가 - 진화로 풀어보는 노화의 수수께끼
스티븐 어스태드 지음, 최재천.김태원 옮김 / 궁리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블루노트라는 다이어리 프로그램을 쓰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장점은 스킨이 마치 진짜 다이어리처럼 아기자기 하고 예쁘다는데 있다.
그런데 최근 문제가 발생했다.
리뷰를 이 곳에 쓰는데 간혹 저장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분명히 저장을 했는데 다음에 열어 보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알라딘의 리뷰란에 직접 쓸 경우 갑자기 인터넷 연결이 안 되면서 리뷰가 등록되지 않고 날아가 버리는 경우가 생겨 블루노트에 먼저 작성을 하곤 했는데 이제는 이 프로그램도 믿을 수가 없게 되서 역시 워드에 쓰는 수 밖에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컴퓨터가 편하면서도 이런 경우에는 참 난감한 것 같다.
방금도 이 책에 관해 열심히 리뷰를 썼는데 사라져 버려 허탈하다.
같은 얘기를 두 번 하면 김이 빠질 뿐더러 처음 같은 느낌이 안 살아난다.

책의 결론은, 다소 맥이 빠진다.
특별한 노화 방지책은, 아직까지는 없다는 게 결론이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 책이 믿을 만 하기도 하다.
현재까지 연구 결과에 따르면, 노화를 막는 특별한 방법은 없고 입증된 것도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러니 무수한 안티 에이징 산업은 확인되지 않은 어설픈 이론을 가지고 돈을 벌고 있는 셈이다.
책을 읽으면서 배운 새로운 개념은 노화와 질병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흔히 생각하기로 늙으면 병이 들고, 마치 기계가 오래되면 녹이 슬듯 질병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그것은 기계화의 오류라고 한다.
그러니까 늙는다고 해서 반드시 질병에 걸리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물론 질병에 걸릴 확률은 나이에 따라 늘어나긴 한다.
질병은 신체 기관 하나가 고장나는 것이고, 노화는 전반적인 기능 쇠퇴를 의미한다.
기능이 떨어진다고 해서 작동이 잘못되는 것, 즉 아프다는 건 아니다.
그러고 보니 어떤 다큐멘터리에서 들은 얘기가 생각난다.
그 노화학자의 주장은,  늙더라도 아프지 않는 이상, 신체 기능이 점점 쇠퇴하여 기능을 멈추는 것 (죽음) 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시력이나 청력 등 일부 기능은 젊을 때 보다 떨어질 수 있으나 죽음에 이를 정도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대부분의 기능은 젊은 사람과 비교했을 때 큰 차이가 없고 병에 걸리지 않을 경우, 자연수명을 다 채우면 어느 날 갑자기 죽게 된다는 것이다.
쉽게 얘기해서 우리가 흔히 호상이라고 부르는, 편안하게 자다가 돌아가시는 노인들의 죽음을 생각하면 된다.
우리 할머니를 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할머니는 85세인데 시력과 청력이 약간 떨어지고 관절염이 있는 것을 제외하면 (활동을 제한할 만큼 심하지는 않다) 매우 건강한 편이다.
미국 변호사와 노화학자가 함께 쓴 어떤 책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본 기억이 난다.
신체의 변화는 어떤 시점을 기준으로 젊을 때와 달라지지만, 즉 어느 정도의 쇠퇴를 보이지만, 단계적으로 점차 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질병에 걸리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일정 수준 이상의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게 결론이었다.

비타민을 많이 먹으면 젊어진다거나 적게 먹으면 오래 산다거나 하는 얘기들은 현재까지는 인체 내에서 유의한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실험실에서 쥐를 상대로 한 연구가 많아 실제 사람에게 적용되는지 여부는 입증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비타민은 항산화제로 각광받고 있는데,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생긴 부산물인 자유 라디칼이 유해한 영향을 끼친다는 이론에서 비롯됐다.
탄수화물이나 지방, 단백질을 태울 때 연료가 되는 게 바로 산소다.
그래서 이 과정을 산화라고 부른다.
이 때 생겨나는 자유 라디칼이 인체에 나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산화를 방지하는 항산화제를 먹으면 노화를 막을 수 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실험실에서 세포 수준으로 발생하는 일이 과연 인간이라는 유기체에서도 똑같은 효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그리고 항산화제는 과일이나 채소로 일정양만 섭취하면 충분하다.
정제 형태로 엄청난 양을 먹는다면 오히려 과용량으로 해를 끼칠 수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러고 보면 흔히 알려진 상식, 즉 저자의 재밌는 표현처럼, 엄마가 하라는대로, 혹은 FDA에서 권고하는 대로만 하면 최소한 질병에 덜 노출되고 덕분에 기대수명만큼은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적당히 운동하고 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고 지방질이 적은 식사를 하고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 정도가 현재까지 입증된 질병 예방책이다.
이 때도 중요한 것은,  이것이 노화를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질병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준다는 사실이다.
담배를 안 피우면 폐암에 걸릴 가능성이 떨어지고 저지방 식이를 하면 유방암에 덜 걸리며, 운동을 하면 혈관벽에 찌꺼기가 낄 틈이 없어질 것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사실이 바로 기대수명은 고대로부터 변함이 없었다는 것이다.
평균수명이 늘어난 것은, 고대보다 수명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유아사망률이 줄어들고 감염성 질환이 항생제의 개발로 급감했기 때문이다.
고대 이집트인이나 현대인이나 병에 안 걸렸을 경우 자연사 하는 나이는 거의 일치한다고 본다.
현재까지 인정받은 최고령은 고흐와 악수했다는 것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잔 칼망 여사다.
그녀는 몇 년 전에 122.5세를 채우지 못하고 사망했다.
그녀는 확실히 입증될 만한 출생기록을 가지고 있으나 그녀보다 오래 살았다는 사람들은, 근거가 전혀 없기 때문에 과학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그러니 현재까지 인간의 최고 수명은 122세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노화연구가 계속 진행될 경우 최고 150세까지 살 수 있다고 내다본다.
반면 저자와 반대 의견을 펼치는 쪽에서는 120세가 최고라고 주장한다.
아무리 노화연구가 발전해도 120세 이상 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저자는 유전자 치료에 희망을 거는 것 같다.
유전자 지도가 완성되고 염기 서열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갖게 되면 어떤 부분에서 노화를 일으키는지 통제할 수 있을리라 본다.
그러나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느낌을 받았다.
노화 메커니즘은 너무나 복잡하고 정교하여 지금까지 연구로는 실제적인 도움을 받기 어렵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다행히 곧 뭔가 획기적인 발전이 있을 거라고 낙관한다.

한 가지 흥미로웠던 사실은 여성의 폐경 문제다.
야생에서는 인간처럼 번식이 중지되고도 오래 생명을 유지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당장 남성만 봐도 평생 동안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된다.
반면 여성은 50을 전후해 난자가 고갈되고 에스트로겐 분비가 중단되지만 오히려 남성보다 오래 산다.
뭔가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 같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아이를 낳는 것 보다 낳은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 번식에 유리하기 때문에 적당한 시기에 폐경이 온다고 할 수 있다.
한 번에 하나 밖에 못 낳고 낳을 때 죽음을 무릅쓸 정도로 위험한 걸 보면, 확실히 계속적인 출산은 개체를 위협할 수 있다.
또 인간의 아이는 오랜 시간동안 양육해야 하기 때문에 계속 출산을 한다면 제대로 돌보기 어려울 것이다.
이게 바로 좋은 할머니 이론이다.
자기가 계속 위험을 무릅쓰고 출산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그동안 낳은 아이를 잘 키워 그 아이가 출산할 수 있도록 돕는 전략을 택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에스트로겐 분비가 끊긴 것이 여성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대표적인 문제로 유방암과 골다공증을 들 수 있다.
유방암은 에스트로겐에 의해 유선 세포가 재생을 반복할 때 즉 자극이 활발할 때, 조절되지 않은 복제 세포, 즉 암이 발생한다.
보통 암은 분열이 활발한 장기에서 생긴다.
피부나 소화기관, 면역계의 혈구 세포, 난소나 자궁, 전립선 등의 생식기관에 암이 생기는 것도 이 기관들의 상피 세포가 활발하게 분열되기 때문이다.
한 번 분열할 때마다 DNA를 복제해야 하는데 여러 번 복제하다 보면 실수하는 놈이 생길 것이고 이것이 자가 치유 기전에 의해 교정되지 않는다면 무한 증식되는 암세포로 변하게 된다.
그러니 생리가 끊길 경우 유방암에 걸릴 확률은 매우 떨어지게 된다.
마찬가지로 성생활을 하지 않는 수녀들은 자궁암에 걸릴 확률이 떨어진다.
그러나 출산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규칙적인 월경으로 인해 유선 세포가 계속 자극되므로 유방암 확률은 높아진다.

에스트로겐의 중요한 기능으로 뼈의 밀도를 높여주는 것이 있다.
폐경기 이후의 골다공증은 골절의 가장 위험한 요인이다.
그렇다면 호르몬 치료가 골다공증을 예방할 수 있을까?
인위적으로 에스트로겐을 주입하다가 오히려 유방암 위험이 커진다면?
에스트로겐의 역할은 간단하지 않기 때문에 이득과 손실을 따지기도 매우 복잡한 것 같다.
요즘은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트론의 복합 요법을 실시하고 용량도 줄이는 쪽으로 나가기 때문에 암에 대한 공포는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또 폐경기 이후 여성 사망률 1위는 유방암이 아닌 심장병이기 때문에 호르몬 치료를 받을 경우 심장병으로부터 보호될 수 있어서 이런 저런 이유로 저자는 저용량 복합 호르몬 요법을 지지하는 것 같다.
그러나 워낙 복잡한 기전이라 반드시 득만 있는 것은 아닌 듯 하다.

제일 큰 수확은 실험 결과를 얼마나 믿을 것인가의 기준을 정해 줬다는 점이다.
확실히 과학자들은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경험론자들이다.
저자가 든 예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스티븐 제이 굴드가 말하기를, 세계 지도의 양쪽 끝을 맞춰 보면 누구나 아프리카 해안과 남아메리카 해안이 퍼즐처럼 들어맞는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저확장설이라는 이론으로 설명되기 전까지는 지구가 하나의 초대륙에서 떨어져 나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즉 과학자들은 타당한 설명 가능 체계가 세워지지 않는 한 절대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단지 실험실에서 그랬다더라, 하는 것 가지고는 어떤 주장이든 함부로 믿어서는 안 된다.
저자가 지적한 바대로 실험실의 쥐에게 발생한 효과가 인간에게도 똑같이 나타날 거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저자에 따르면 오히려 인간과 비슷한 조건의 포유류, 즉 인간만큼 오래 사는 고래류나 원숭이류 등을 가지고 연구해야 하는 게 낫다는데 동물 보호론자들이 가만히 있을지 모르겠다.
실험실에서 쥐를 쓰는 이유는 물론 그들이 번식이 쉽고 세대가 짧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설치류에 대한 거부감과 편견이 사람들로 하여금 동물 실험을 받아들이게 했을 것이다.
하여튼 어디서 이랬다더라, 이 정도로 쉽게 받아들여서는 안 되고 우연한 결과가 아니었는지 확실한 인과 관계가 있는지를 반드시 따져 봐야 한다.
그렇지만 솔직히 일반인들이 복잡한 과학자들의 실험을 검증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간단한 기준으로 저자는 세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다양한 연구가 같은 결론에 도달했는지, 둘째 위험 인자가 있다면 그 크기를 측정해서 질병을 일으키는데 적어도 세 배 이상의 위험이 있는지, 셋째 동물 연구의 증거가 있는지, 그 효과가 일어날 수 있는 메커니즘을 설명할 수 있는지 등을 든다.
인간에게 직접 실험할 수는 없으니 대안으로 동물 연구라도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뜻 같다.
하여튼 이런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하여 공인된 이론으로는, 담배가 폐암을 유발한다거나, 적당한 운동과 저지방 식이가 심장병을 예방한다는 것 정도가 있을 것 같다.
항산화제가 노화를 막는다는 것은 저자의 말에 따르면 아직까지는 실제적인 효과를 얻지 못하고 있으니 비타민제 너무 좋아할 일은 아니다.

과학적인 내용을 쉽게 풀어 쓴 덕분에 흥미를 가지고 읽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저자가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선을 지켰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과학자와 비과학자의 차이일 것이다.
과학의 안정성과 신뢰성을 지키는 것이 바로 엄격한 회의주의임을 새삼 확인한 기분이 든다.
역자가 추천한 다른 노화 관련 서적도 읽어 볼 생각이다.
빼먹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역자 후기다.
지난 번 "과학의 변경 지대" 를 읽으면서도 역자에게 감탄했는데 이 책의 역자 역시 성실하게 역자 후기를 쓰고 또 관련 서적까지 추천해 줘서 도움이 많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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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과학자의 외로움
    from 내가 사귀는 이들, 翰林山房에서 2007-12-12 09:45 
    * 과학자의 외로움 * marine님의 <인간은 왜 늙는가> 2007년 12월 12일자 리뷰 중에서 발췌  스티븐 제이 굴드가 말하기를, 세계 지도의 양쪽 끝을 맞춰 보면 누구나 아프리카 해안과 남아메리카 해안이 퍼즐처럼 들어맞는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저확장설이라는 이론으로 설명되기 전까지는 지구가 하나의 초대륙에서 떨어져 나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즉 과학자들은 타당한 설명 가능 체계가 세
 
 
마립간 2007-12-12 0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의 일부를 저의 페이퍼에 인용합니다.
 
과학의 변경 지대 - 과학과 비과학의 경계에서 과학의 본질을 탐구한다
마이클 셔머 지음, 김희봉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퍽 재밌게 읽은 책이다.
사실 이 책보다는, 이번에 새로 나온 저자의 다른 책,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의 홍보글을 보고  이것보다 먼저 번역된 "과학의 변경지대" 를 읽게 됐다.
시간상으로는 이 책이 나중에 쓰여졌는데, 번역이 먼저 됐던 모양이다.
문득 드는 생각이, 칼 세이건이 쓴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을 읽고 싶어진다.
언젠가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너무 지루하고 어려워 읽다가 던져 버렸는데 다시 읽으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나는, 굳이 이런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왜냐면 이런 회의주의야 말로 내 신념과 100% 일치하기 때문에, 굳이 책을 읽어 설득당할 필요가 없기 때 문이다.
오히려 이런 책은,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에서 방황하는 경계선 상의 사람들이 읽어야 할 것 같다.
나는 확신범이기 때문에 동어반복인 이런 책들을 굳이 읽지 않아도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을 때마다 참 재밌다.
리처드 도킨스의 책들도 마찬가지지만, 하여튼 나는 진화론에 100% 동의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창조론 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논쟁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한다.
다만 이런 책들은 읽고 싶다.
진화론자이면서도 독실한 신앙인이 될 수 있는지, 그런 갈등을 해결해 주는 책은 읽어 보고 싶다.
도킨스의 책이 재밌으면서도 가끔은 섬뜩한 것은, 그가 신을 발명품 취급하기 때문이다.
책에서 읽은 건데, 나는 理神論 자가 아닌가 싶다.
18세기 계몽주의 시대 때 유행했던 사조인데 다윈도 바로 이신론자였다고 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것은 믿지만, 신의 계시나 초자연적인 기적은 믿지 않고, 세상은 법칙에 따라  독자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거야 말로 내 생각을 정확하게 대변해 주는 사상이다.
신앙인과 진화론자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스티븐 제이 굴드의 단속 평형설을 새롭게 알았다는 점이 기쁘다.
나중에 읽어 볼 생각인데, 리처드 도킨스가 그 이론을 비판했다는 점만 알고 있었을 뿐 대체 무슨 얘기인지  몰랐었다.
왜 중간 고리의 화석이 없냐는 질문이야 말로, 창조론자들이 제일 들먹거리는 비난이다.
단지 발견을 못했을 뿐이라고 하지만, 사실 이것은 굴드의 주장처럼, 발견되지 못한 게 아니라, 미처 화석으 로 만들어질 시간이 없었다는 게 맞을 것 같다.
종의 변이는 짧은 시간에 급격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화석으로 보존될 충분한 시간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아직 발견되지 못했다는 무책임한 말보다는, 이 이론이 훨씬 합리적으로 들린다.
에른스트 마이어가 주장했고 굴드에 의해서 유명해진 이론이라고 하는데, 고생물학계에서는 새로운 패러다 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한다.
다윈의 점진적 진화론을 부정한다는 것 때문에, 리처드 도킨스 같은 다윈주의자들은 반대하고 있다고 하지 만, 저자의 지적처럼 패러다임이 반드시 모든 과학계를 다 포괄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적어도 고생물학계에서는 통용될 수 있는 패러다임이 아닌가 싶다.

칼 세이건의 평전이야 말로 가장 재밌게 읽은 부분이었다.
이 사람이 쓴 책 몇 권을 워낙 흥미롭게 읽었던 터라, 무척이나 좋아했던 과학자다.
특히 그의 마지막 에세이, "에필로그" 를 감동하면서 봤던 기억이 생생하다.
백혈병에 걸려서도 마지막까지 긍정적인 생각과 유머 감각을 잃지 않고 재기발랄한 글을 썼다는 점이 무척 이나 마음에 들었다.
사실 나도 칼 세이건이 단지 대중 매체에서만 유명한 건지, 아니면 정말 과학자로서 인정을 받았는지가 궁 금했었다.
저자처럼 제대로 객관적인 자료를 가지고 분석한다면 평전도 하나의 과학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평전을 읽을 때 짜증이 나는 까닭은, 저자가 지나치게 대상을 영웅시 한다는 점이다.
물론 영웅은 대중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마치 연예인처럼 우리의 상상력을 발동시킨다.
나 역시 위대한 영웅의 업적을 읽으면 가슴이 쿵쾅거린다.
그렇지만 정도가 있지, 너무 오버하고 너무 신격화 시켜 버리니, 감동이 확 줄어 버린다.
독자의 수준을 너무 무시한 게 아닌가 싶고, 실제로 전기를 쓰는 작가들의 수준도 한참 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칼 세이건의 업적을 수치를 통해 객관적으로 분석한다.
그가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 수를 다른 유명 과학자들과 비교한다.
역시 열정적인 사람이라 방송 출연 횟수만큼이나 학회지 발표 횟수도 엄청나다.
나는 이런 열정적인 사람이 좋다.
그가 과학계에서 받는 평가가 인색하다 할지라도 유사과학이 판치는 이런 험한 세상에 마치 과학이라는 진 리를 전파하는 전도사 같은 과학저술가들이 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사실 학자가 대중 매체에 글도 잘 쓴다는 건 아주 힘든 일 아닌가?

천재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기억에 남는다.
모짜르트가 평균적인 인간에 비할 때 엄청난 천재임은 분명하지만, 단 한 번도 악보를 고친 적이 없다는 식 의 문구는 대체 어떻게 나온 건지 모르겠다.
이런 식의 신격화는 너무 유치하지 않은가?
저자는 끝없는 노력이야 말로 천재를 결정짓는 가장 큰 특성이라고 설명한다.
수많은 반복, 열정, 그리고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과감하게 버리는 결단력, 이런 것들이 평범한 인간을 천재 로 만든다.
물론 유전적인 특성도 중요하다.
유전과, 속해 있는 문화 환경이 한계점을 만들 것이다.
천재는 인간의 범주나 한계를 결정짓는 사람이라는 저자의 정의가 재밌다.
희망을 얻어서, 열심히 공부를 좀 해 볼 생각이다.
누구나 자신의 한계점까지 애를 쓰면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하니, 오늘부터는 좀 열심히 일을 해 봐야 겠다.

전체적으로 너무너무 재밌게 읽은 책이다.
나 같은 회의주의자들 입맛에 딱 맞는 책이라 거부감이 들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역자의 성실한 번역과 후기도 돋보인다.
역자가 소개해 준 책도 함께 읽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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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최전선에서 인문학을 만나다
존 브록만 엮음, 안인희 옮김 / 소소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당직 선 다음날 본 책이라 너무 졸려 제대로 못 읽었다
그렇지만 정말 감동적이었고 시간을 내서 다시 읽고 싶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정말 소중한 이야기들이었는데 너무 피곤해 꾸벅꾸벅 졸다가, 명문장을 만나 가슴깊이 감동하고 다시 졸고, 결국은 끝까지 못 읽고 책을 덮었다
어쩌면 이 책은 편파적일 수도 있다
특히 편집자 존 브룩만의 서문은 논쟁꺼리가 많다
그는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아마도 자신감의 발로겠지만) 말미에 반대 의견도 같이 실어 주었다
역시 인문학자들은 지나친 과학 만능주의를 경계하는 반론을 폈다
브룩만은 평범한 이들의 매우 평이한 수준의 불안감을 너무 가볍게 보는 것 같다
마음의 위안을 얻는 것을 너무 경시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니까 평범한 우리들은 브룩만의 생각보다 훨씬 더 약하고 어리석은 인간들인 것이다

어쨌든 나는 과학이 우주와 생명체가 움직이는 원리를 설명해 주는 "진리" 라고 생각한다
논쟁이 필요한 당위적인 의미의 진리가 아니라, 사실을 밝히는 실제적인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오류가 없다는 얘기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과학자가 문제가 아니라, 과학적 사실을 정치 사회에 잘못 해석해서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정치가나 사회학자들이 문제다
과학은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는 조국이 있다는 황우석 식의 말 만들기는 진정한 과학자의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방식의 말하기야 말로 과학자가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매우 위험한 시도가 아닌가 싶다

인간이 폭력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남자가 보다 지배적인 성향이 있음을 받아들이고 본능이나 유전자가 우리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이해할 때, 비로소 우리는 보다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차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면서 어떻게 운전할 수 있겠는가?
진실을 받아들이려면 용감해야 한다

물론 갈등은 존재한다
제일 큰 것은 역시 종교의 문제다
우리가 흔히 영혼이라고 하는 것이, 단순히 뇌의 화학 작용에 의한, 일종의 연산에 불과하다면 대체 사후 세계나 구원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래서 한 발 더 나아가면 도킨스처럼 철저한 무신론자가 되는 모양이다
물론 나는 여전히 하나님을 믿고 인지과학의 발달과 기독교가 얼마든지 양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솔직히 불안하기는 하다
과연 신은 인간의 뇌가 만들어 낸 집단적인 발명품인가?
이런 식으로 빠지다 보면 과학은 그저 세상을 보는 여러가지 관점 중 하나라는 오류에 빠지고 만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3천 년 전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해했던 신에 대한 개념을, 그 존재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현대의 우리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는 건 아닐까?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해했던 세상은 일주일 만에 세상이 창조됐고 완전한 조상, 곧 아담과 이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신이 만든 우주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다
21세기의 인간이 꼭 수 천 년 전의 조상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해야 하는 걸까?
이런 것들은 하나의 말장난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어쨌든 나는 진실은 변하지 않고 그것을 무기로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남들과 논쟁할 필요도 없고 다만 내가 얼마나 그 진실을 용감하게 받아들이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종교 문제 다음으로 힘들었던 것은 여자가 남자에 비해 사회성이 떨어지고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이야 말로 내가 가장 혐오해 마지 않던, 남녀차별주의 이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냉정하게 따져 보면 수천년 동안 사회가 남자 중심으로 이루어져 온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과거에 그랬다고 해서 그것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도 만들어 냈고 여자들 역시 핸디캡을 극복하고 사회로 진출하고 있다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은 그저 한 종의 특징일 따름이고 궁극적으로 우리는 보편적인 인간의 특성을 너무나 많이 공유한 똑같은 존재들일 따름이다
인종이나 문화적인 차이 역시 무시할 수 없으나, 전체적으로 보면 공통점이 차이점을 압도하는, 인류라는 큰 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오히려 이런 본능이나 유전적 성과를 토대로 인종주의나 남성 우월주의로 나가려는 일반인들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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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 - 살아가기 함께 행복하게
프란스 드 왈 외 지음, 프란스 랜팅 사진 / 새물결 / 2003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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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재밌게 읽고 있다
함께 실린 사진이 매우 훌륭하다
책값이 아마도 사진 때문에 비싸진 것 같은데 침팬지보다 작은 이 귀여운 친척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실려 있어 충분히 값을 한다
보노보라고 하면, 피그미침팬지로 알고 있어서인지 막연하게 침팬지의 한 종류라고만 생각했다
실제로 20세기 초반의 학자들은 보노보를 체구가 작은 침팬지 쯤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예리한 관찰자들이 이 매력적인 동물과 침팬지의 차이점을 기술해 가면서 비로소 둘이 전혀 다른 종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역시 세밀한 관찰과 묘사가 중요하다
침팬지 보다 체구가 작고 특히 두상이 매우 작으며, 목소리 톤이 높다고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이들의 생활상인데 침팬지가 수컷 지배 사회인데 반해 보노보는 암컷들의 연합체라고 한다
그래서 종종 평화로운 사회로 미화되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보노보가 평화라는 개념을 알 리 만무하다
침팬지는 암컷이 수컷의 절반 밖에 안 되기 때문에 철저하게 수컷에게 예속되어 있고 한 마리 수컷이 여러 마리의 암컷을 거느린다
반면 보노보는 암컷과 수컷의 크기 차이가 거의 없을 뿐더러, 여러 마리의 암컷들이 서로 연합해서 수컷을 억누르기 때문에 수컷들은 항상 무리의 주변부에 머무른다
특이한 것은 수컷 침팬지들이 형제끼리 연대하여 우두머리 자리를 지키는 반면, 보노보 암컷들은 혈연 관계로 묶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근친상간을 막기 위한 자연의 법칙이라고 설명되는데, 암컷은 생식 가능한 나이가 되면 자연스럽게 다른 무리를 찾아 떠나기 때문에 자매들이 한 무리 안에 있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보노보는 돌봐 줘야 할 어린 시절이 길어서 오랫동안 어미가 자식을 데리고 다닌다
인간과 이 점에 있어서는 매우 유사하다
그래서 수컷의 서열도 엄마의 지위에 의해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뭐니뭐니 해도 제일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들의 액티브한 성생활일 것이다
침팬지가 일곱 시간 마다 섹스를 하는데 반해, 보노보들은 한 시간 단위로 섹스를 한다고 한다
잠자거나 먹는 시간을 제외한다고 해도 하루에 수십 번을 한다는 얘기인데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성기의 길이가 길다는 이유로 해마 같은 어처구니 없는 야생동물이 정장제로 팔려 나가는 걸 생각해 보면, 보노보가 조금만 더 일반적인 동물이었던들 아마도 이미 멸종됐지 않았을까 싶다
성기가 부풀어 오른 암컷의 사진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랬다
동물원 관람객들은 심지어 암컷에서 엄청난 cancer가 있다고까지 생각했다고 하는데 충분히 이해가 간다
너무 부풀어서 bleeding도 잦고, 제대로 앉지도 못한다고 한다
과연 섹스의 지존 답다
재밌는 건 이들의 섹스 장면이 전혀 야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책의 설명대로 긴장 완화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놀이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나 역시 섹스에 사회적 통념을 지나치게 내면화 하고 사는 것 같다
인간의 포르노 비디오를 보면 토할 것 같고, 성욕이 끓어 오르기는 커녕 굉장한 수치심으로 얼굴이 붉어지는데 똑같은 섹스 장면이 실린 이 책을 볼 때는 오히려 미소가 지어졌다
정말 섹스란 누군가의 말처럼 그저 친밀한 행위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하여튼 책에 실린 보노보들의 섹스 장면은 아름답고 정겨우며 또 매우 귀엽다
아마도 보노보들의 침팬지 같은 거친 이미지가 아니라 얼굴 표정이 풍부판 종이라 더 정답게 느껴지는 것이리라
그러고 보면 이들의 표정은 정말 풍부하다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를 볼 때 사랑스럽다는 느낌을 받는데, 사진 속의 보노보들도 마치 인간의 아기처럼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는다
얼굴 근육 사용이 인간처럼 활발하기 때문에 다양한 표정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우리들의 사촌 보노보는 침팬지와 공통 조상을 갖고, 그 윗대에서 인간과 분리되었다
다시 그 윗대로 올라가면 고릴라가 떨어져 나갔고 그 윗쪽에서는 오랑우탄이 갈라져 나갔다
그러니까 확실히 침팬지는 우리와 가장 비슷한 유인원이고 특히 보노보는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우리와 공통 조상을 공유하였던 셈이다
사실 생물학에 관련된 모든 책은 진화를 베이스에 깔지 않으면 읽을 수 없다
과연 이런 책들을, 이른바 창조론자들은 어떻게 읽을지 궁금하다
여담이지만, 창조론자들과 논쟁이 붙을 때 진화론을 설명해야 할 당위성을 느끼지 못한다
너무 당연하게 옳은 얘기이고, 또 창조론자들이 내세우는 주장들이 어찌나 유치한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웃으면서 논쟁을 포기해 버린다

꼭 덧붙여야 할 말은, 보노보 연구에 평생을 바친 일본인 학자 가노 박사에 관한 얘기다
외국 책에서 일본인 학자들을 발견할 때마다 느끼는 바지만, 확실히 일본은 놀라울 정도로 선진국이고 한국이 어깨를 마주하기엔 너무 큰 나라다
학술 분야에서 일본의 놀라운 투자와 발전 상황을 접할 때마다 정말 허걱 하고 놀라게 된다
보노보 연구 역시 교토 대학에서 수십 년 동안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가노 박사는 혼자 자이르의 밀림 지대로 들어가 사탕수수 밭을 경작하면서 경계심 많은 이 동물들을 유인했다
야생 상태의 보노보를 연구하기 위해 먹이를 주는 것은 서양 학자들과 완전히 다른 방법인데 이 방법의 장점은 오랜 시간을 두고 야생 동물 집단을 추적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단기간에 성과를 얻는 것이 아니라 수 십 년 동안 관찰한 바를 학술 논문으로 제출한다고 하니, 과연 일본인답게 끈질기고 철두철미 하다
어쨌든 이 외로운 밀림에서 보노보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가노 박사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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