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21 | 22 | 2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사랑을 위한 과학
토머스 루이스 외 지음, 김한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얼마 전 감동하면서 읽은 스티븐 핑커의 "빈 서판"과 완전히 대립되는 책이다

정 반대의 주장이군, 이렇게 생각했는데 맨 뒤의 각주를 보니 아예 그의 책에 나오는 이론들을 인용하면서 잘못됐다는 코멘트를 달았다

우정이나 예술, 사랑 등의 가치를 단순한 화학 작용, 혹은 권력 관계 등으로 파악한 핑커의 진화 심리학은 변연계의 진정한 기능인 감정과 애착을 무시한 잘못된 이론이라는 것이다

어떤 것을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다

그렇지만 단 하나의 주장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만큼 우리의 뇌나 정신 세계가 단순하지 않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세 명의 정신과 의사이자 교수들이 쓴 이 책은 변연계의 기능에 주목한다

흔히 연수는 생명 현상에 관계된 일을 하고, 대뇌 신피질은 추상적 사고에 작용하며, 변연계는 감정을 담당한다고 알려졌다

저자들은 포유류에게만 변연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즉 새나 물고기, 악어 등은 부모 자식간의 애착 관계가 없고,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것의 진위는 동물학자들에게 물어 봐야 할 것 같다)

그에 비해 포유류는 변연계가 있기 때문에 감정을 느낄 수 있고 애착 관계도 형성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개와 주인의 관계다

보신탕을 먹는 사람들은 잡아 먹기 위한 가축으로서 개를 키운다고 하지만, 보편적으로 개나 고양이 등을 기르는 까닭은 정을 주고 받기 위해서다

그래서 개나 고양이를 가축이 아닌, 애완 동물이나 반려 동물이라는 용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개와 사람의 애착 관계를 잘 설명해 주는 예가 있다

개에게 공을 던지면 금방 물어 오고 주인의 손에 뺏으려고 한다

만약 주인이 공을 개에게 줘 버리면 개는 그 공에 대해 별 관심을 갖지 않는다

말하자면 주인과 놀기 위해서 공을 탐내는 것이지, 공 자체를 원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나 역시 개를 키우기 때문에 이런 현상을 자주 경험한다)

즉 개는 사람과 정서를 공유할 감정적인 능력이 있다

 

저자들은 지금까지 사회나 과학이 신피질의 사고 능력에만 관심을 보여 왔으나, 인간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는 변연계의 감정 능력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부모 자식 간의 애착 관계다

저자들은 아이를 독립적으로 키우기 위해 부모로부터 떼어 놓는 미국의 교육 방식을 통렬하게 비판하는데, 아기를 다른 방에서 재우는 것부터 베이비시터에게 맞기고 직장에 나가는 워킹맘까지 다양한 사례들이 등장한다

사실 부모 자식 간의 감정 교류나 함께 있는 시간의 절대량 따위는 굳이 논증하지 않아도 누구나 공감하는 얘기다

그런데 그 반대의 경우에 대해서도 당위성이 인정되는가는 별개의 문제라고 본다

즉 어머니가 직장에 나가서 아이가 혼자 클 경우, 그 아이가 자라 반드시 애정 결핍의 문제를 갖는가에 누가 그렇다고 100% 자신할 것인가?

또 어머니가 24시간 아이의 양육을 전담한다고 해서, 베이비시터와 자란 아이에 비해 감정적으로 월등히 우월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부모와의 애착을 중요시 하는 건 이해할 수 있으나, 어머니가 직장을 포기하고 아이의 양육을 전담해야 올바르게 자랄 수 있다는 극단적인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수많은 변수들 때문에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본다) 부모에게 자신의 인생이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어머니란 아이의 양육만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다

스티븐 핑커는 여기에 대해, 유전적 특징과 단독 경험을 강조해 부모의 양육 태도는 큰 영향을 못 미친다고 주장한다

어쨌든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는 과정에는 수많은 변수과 원인 인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한 가지 가설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흔히 자기계발서를 읽으면 자극을 받아 확 달라질 거라고 믿는다

저자들은 왜 이것이 불가능한지를 과학적으로 논증한다

우리의 신경계는 수많은 경험을 통해 특정 방식으로 판단하는 회로가 형성되어 있다

같은 일을 당해도 반응하는 것이 제각각이듯, 어떻게 인지하느냐는 각자의 프로그램에 달려 있다

정신과 의사들이 어렸을 때의 강렬한 경험과 같은 (성폭력이나 왕따 경험 등) 외부 인자를 찾기 위해 애쓰지만, 실상 중요한 것은 내제적인 가치라고 한다

그것은 너무나 오랫동안 정교하게 다듬어진 프로그램이라, 본인 스스로도 인지하기 어려울 뿐더러 (마치 공기의 존재를 모르고 살듯) 정신과 의사의 몇 시간 진료 따위로 쉽게 바뀔 수 없는 문제임을 지적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심리 치료를 하려면 적어도 몇 년의 세월이 필요한데 (즉 내제적 가치를 바꾸려면) 보험회사들은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탄한다

또 의사나 환자 역시 그것들이 단 몇 번의 치료로 해결될 거라는 환상을 버리라고 한다

이 지적에는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수십년 동안 외부의 사건을 인지하고 판단해 온 문제 해결 시스템이 일순간의 충고나 치료 따위로 바뀔 수 있다면, 저자의 말처럼 처음부터 병이라 진단하지도 않을 것이다

인지 시스템을 바꾸려면 장기간의 끈질긴 노력이 필요하다

어쩌면 그것은 삶의 근간을 뒤흔드는 끔찍한 사건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뉴런은 끊임없이 반복하면 경로를 바꿀 수 있는 가변적인 것이라고 희망을 준다

(앤서니 라빈스의 책들은, 그런 의미에서 다른 자기계발서 보다 훨씬 훌륭하다 그는 끊임없는 반복을 통한 신경회로의 변화를 제안한다)

 

번역은 "사랑을 위한 과학"이라고 멋지게 했지만, 원제목인 "A General Theory of Love"가 훨씬 잘 어울린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이란, 연애와 다른 개념이다

흔히 남녀간의 순간적인 연애 감정을 사랑이라 착각하기 쉬운데, 저자들이 말하는 love란 오랜 시간의 감정 교류를 통해 서로에게 상호작용 할 수 있는 attachment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남녀 관계에 국한되지 않고, 부모 자식간, 친구간 등 다양한 범위로 확대될 수 있다

회사에 애착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짓인데, 인간과 달리 회사는 감정을 갖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무리 자신을 희생해 가며 일을 해도 어느 순간 해고할 수 있다

스타를 동경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그를 사랑하고 동경해도 브라운관의 스타와는 어떤 애착 관계도 형성할 수 없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

 

저자들의 인간 중심주의에 상당 부분 동의한다

특히 환자를 질병 중심으로 볼 게 아니라, 애착 관계를 먼저 형성하라는 충고는 무척 유용하다

(대체 의학이나 민간 요법 등이 효과의 검증 여부와 상관없이 특정 위치를 점하는 것도, 환자 중심적 자세 때문이라고 한다 플라시보 효과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 돈이나 명예 등 외부적인 가치보다 가족간의 사랑, 친구간의 우정,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 등 내적인 가치에 중심을 두라는 말도 깊이 공감하는 바다

그렇지만 모든 것을 이 관점으로 볼 수는 없다

스티븐 핑커가 지적하듯, 우리의 유전자는 도덕적으로 무장하지 않았으므로 바람직한 방향이 반드시 인간의 본성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결국 상황에 맞는 취사 선택이 필요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포전쟁 - 인체는 질병과 어떻게 싸우는가
매리언 켄들 지음, 이성호, 최돈찬 옮김 / 궁리 / 2004년 3월
평점 :
품절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학문적인 책이다

"인체는 질병과 어떻게 싸우는가?"라는 광고 문구를 보고, 소설 형식의 흥미로운 책일 거라 기대했는데 거의 면역학 교과서 수준이다

이 정도 책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면, 아마도 면역학 전공자가 아닐까 싶다

하긴 면역학 교과서도 소설처럼 흥미로운 면이 있다

생화학이나 면역학 등을 배울 때 그 씨스템들이 워낙 정교하여, 한 편의 추리 소설을 읽는 기분이었다

 

저자의 주장처럼 유전자 연구가 더욱 발달하면, 질병 치료의 개념은 면역력을 키우는 쪽으로 갈지도 모른다

수많은 질병의 치료법이 수액 요법과 침상 안정인 걸 보면, 어지간한 병은 인체 내의 면역 시스템이 해결해 주는 듯 하다

그 면역력을 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관한 내용은 아니다

흔히 일반인을 대상으로 출판된 건강서들을 보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등 학문적인 논증은 없고 충고 형식이 대부분인데, 이 책에서는 그런 충고를 찾기 힘들다

면역 시스템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질병의 침투에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관하여 자세히 설명한다

그런 면에서는 정직한 교양 도서란 생각도 든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뇌와 면역계가 화학적으로 대화한다는 문장이었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면역력이 떨어져 질병을 유발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저자는 그 까닭을 학문적으로 논증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가 면역계에게 화학적 분비물을 통해 전달하기 때문에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사실 우리의 몸은 전기적 자극과 화학적 전달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인체가 유기적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전달 시스템을 말하는 건지도 모른다

화학물질에 의한 뉴런 사이의 신경 전달 과정을 "화학적 대화"라는 멋진 단어로 표현한 저자의 문학 적 재능도 상당해 보인다

 

저자는 흡연과 음주의 폐해에 대해 역설한다

위생 환경이 좋아지고 항생제가 개발되면서 감염성 질환은 상당 부분 개선됐으나, 생활 습관에 의한 만성 질병이 늘어나는 추세다

담배의 해악이야 새삼 논증할 필요조차 없지만, 저자는 입증되지 않은 건강 학설에 대해 연구할 게 아니라, 확실하게 해롭다고 밝혀진 담배를 끊는 길이 건강의 최우선임을 강조한다

특히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습관적으로 술을 마시기 때문에 더욱 상승 작용을 한다

저자는 고도로 정제된 영양제의 효능에 대해서도 반신반의 한다

식품을 통한 섭취가 아닌, 정제 형태의 영양제는 반드시 유익하지만은 않다는 얘기다

건강 식품을 찾아 해맬 게 아니라 적당한 운동과 금연, 절주, 편안한 마음가짐 등 생활 습관의 변화만이 건강을 보장한다고 한다

깊이 새겨 들을 말이다

 

현대는 과학의 시대다

사이비 과학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과학에 대한 일정 수준의 교양은 반드시 필요하다

인체의 신비가 어떻게 작동되는지, 과학적으로 알고 싶은 분이라면 읽기를 권한다

그렇지만 가벼운 독서를 원한다면 말리고 싶다

면역학을 전공 필수로 배운 사람이지만,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담과 이브에게는 배꼽이 있었을까
마틴 가드너 지음, 강윤재 옮김 / 바다출판사 / 2002년 5월
평점 :
절판


상당히 어렵게 읽은 책이다

사이비 과학이 왜 틀린가를 과학적으로 논증한 책이기 때문에 술술 읽히지가 않았다

양자 역학에 관한 부분은 특히 어려웠다

양자 역학에 대한 개념이 부족해서 사이비 이론도 이해가 안 가는데, 왜 틀렸는가를 과학적으로 논증한 내용은 더더욱 어려웠다

그렇지만 나머지 부분은 대체적으로 수긍이 가고, UFO에 관한 내용은 황당무계해서 재밌기까지 했다

적어도 칼 세이건의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보다는 쉽다

(오래 전에 절판된 책이라 구하느라 꽤 애를 먹었는데, 막상 헌책방까지 뒤져 손에 넣고 보니 내용이 너무 어려워 읽다 만 기억이 있는 사연있는 책이다)

 

마틴 가드너라는 작가 자체가 칼 세이건처럼 과학자는 아닌 듯 싶다

그의 약력은 다만 과학 에세이스트 혹은 퍼즐 전문가 정도로만 나왔다

사실 그 점 때문에 또 하나의 말장난에 휩싸이는 건 아닌지 걱정을 했는데, 책의 수준은 그런 걱정이 기우임을 보여 준다

다만 본인의 논증 보다는 다른 과학자들의 반론을 많이 인용했다

확실히 미국 사람들은 출처 밝히기에 열심이다

 

이 책에서 제일 인상깊었던 부분은 패러다임의 틀이었다

그는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에 관한 글이 사이비 과학에 종종 잘못 인용된다고 지적하는데, 그 글은 수능 문제집에서 본 기억이 난다

언어 영역 지문에 인용됐는데, 그 때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을 처음 알았을 뿐더러, 우리가 진리라고 믿는 것들이 (이를테면 뉴턴의 만유 인력 법칙 같은) 패러다임이 변하면 진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패러다임이란 사물을 보는 틀이자 관점이기 때문에 패러다임이 변하면 당연히 진리도 바뀐다고 했다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뀌는 것도 대표적인 패러다임의 변화다

지난 세대에는 진리라고 믿었던 창조론이나 천동설 같은 이론도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라 폐기되었다

우리가 믿고 있는 진리들도 다음 세대가 되면 전혀 엉터리가 될 수 있다는 게 그 글의 요지였다

 

그러나 저자는 바로 이 포스트모더니즘주의가 과학과 사이비의 경계선을 모호하게 하는데 이용된다고 한탄한다

과학적 진실들은 1과 0 사이에 나열되어 있으나 우리가 진리라고 받아들이는 것들은 (이를테면 지동설과 진화론 등) 0.999999999의 가능성을 가진, 말하자면 1에 거의 근접한 것들이기 때문에 사실로 받아 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학 평론가들이 흔히 이용하는 과학의 오류나 거짓, 숨겨진 이야기 따위는 사실과 분리되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성경이다

저자는 왜 성경을 과학으로 증명해 내려는가 의아해 한다

신의 말씀을 인간의 과학으로 풀어내려는 시도 자체가 사실은 신성 모독이 아니냐는 것이다

즉, 성경은 신의 말씀을 기록한 경전일 뿐이지, 자연 법칙이나 과학적 사실들을 논증한 책이 아니다

그런데도 수많은 사람들은 경전이 마치 과학책이라도 되는 양, 그 안에서 과학적 사실들을 찾아내려고 애쓴다

여기서 바로 이 책의 제목, "아담과 이브는 배꼽이 있었는가"라는 질문이 나온다

아담과 이브가 신에 의해 지어진 최초의 인간이라면 당연히 그들은 부모의 탯줄을 의미하는 배꼽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아담과 이브를 그린 모든 그림들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처럼) 배꼽을 당연시 한다

창조론도 마찬가지다

이미 로마 카톨릭은 진화론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잃어 버린 고리들을 예로 들어 진화론이 허구라고 공격한다

그렇다면 화석의 존재는 무엇이고, 수많은 지질학적 증거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들은 진화론을 부정하는 대신, 그것을 대체할만한 어떤 논리적 증거나 과학적인 이론도 내 놓지 못한다

다만 모든 것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식이다

 

성경에 대한 사이비 과학의 정점은 종말론일 것이다

부끄럽게도 1992년 다미 선교회 사건이 그 예로 기록되어 있다

나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 때 중학생이었는데 92년 10월에 종말이 올 거라는 광고를 보고 (그들은 뉴욕 타임즈에까지 광고를 실었다고 한다) 혹시 그 예언이 맞으면 어쩌나, 두려워 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했지만, 정작 이장림 목사는 신자들에게 거둔 돈을 다음해가 만기인 채권에 투자했다고 한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사건들이 지금도 미국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사실 신앙을 공고히 하는 지파일수록 다니엘서와 요한 계시록을 분석하여 종말론을 내세운다

다미 선교회처럼 특정 날짜를 명시해 신자들의 재산을 갈취하지는 않을지라도,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세상의 마지막이고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며 666이라는 짐승의 숫자가 새겨진 바코드를 이마에 받고 여기서 살아 남은 사람만이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한 후 천년 왕국에서 살게 될 거라는 일련의 이야기들은 너무나 익숙하다

정상적인 사회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이 최후의 심판이 우리 세대에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최후의 심판은 기독교의 기본 교리 중 하나다

그러나 성경에 흩어진 지엽적인 사실들을 교묘하게 짜 맞추어 바로 지금이 그 시기라고 주장하는 자칭 예언자들은 사이비라고 규정할 수 밖에 없다

 

UFO에 관한 믿음도 종말론 만큼이나 널리 퍼져 있다

제일 웃긴 건 정부가 이 사실을 알면서도 발표를 안 한다는 것이다

음모론이 판을 치는 미국에서 UFO에 관한 은폐설도 한 몫을 하고 있다

하버드 대학의 존 맥이라는 정신과 교수는 외계인에게 납치된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다는 책을 썼다

에모리 대학의 브라운 교수는 원격 투시를 통해 외계인 세력이 멕시코에 거주한다는 책을 썼다

도대체 이런 정신병자들이 대학의 교수로 멀쩡하게 강의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다만 대학 당국은 그들이 종신 교수이고, 학문의 자유를 인정한다는 입장을 취하긴 하지만 그들이 대단한 골치거리임은 분명하다고 한다

브라운의 외계인 이주설을 들으면 영락없는 정신 분열증 환자다

과대 망상의 표본이다

대기 오염으로 화성이 황폐화 되자 다른 은하인의 도움을 받아 지구로 건너 온 화성인은 현재 멕시코 산 속에서 거주하고 있다는 식이다

 

(정신과 인턴을 할 때 환자를 면담했는데, 그녀는 본인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교시를 받고 있다고 했다 너무나 멀쩡하게 생기고 너무나 분명하게 얘기를 해서 처음에는 약간 어리둥절 했다 식사는 잘 하냐고 의례적인 질문을 했더니, 화를 내면서 나의 하나님이 밥을 굶으라고 할 만큼 나쁜 분이 아니라고 했다 안 죽을 만큼 잘 먹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의 얘기나 브라운의 얘기는 질적으로 다를 게 없는데 왜 한 사람은 정신병원에 수감되어 있고, 한 사람은 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그 얘기책으로 돈방석에 앉았는지 정말 의아하다)

 

설마 브라운 같은 사람이 책을 팔기 위해, 혹은 이름을 얻기 위해 일부러 황당무계한 얘기를 지어낸 건 아닐 것이다

그런 얘기가 받아들여질 만큼 UFO에 관한 사이비 과학이 우리 시대에 널리 퍼진 것이다

식인 풍습이 일반적이라는 믿음도 저자는 사이비 과학으로 보고 있다

특수한 경우를 (이를테면 적의 시신을 먹음으로써 공포감을 조성하거나 전쟁 같은 극한 상황) 제외하고 일상적으로 사람을 잡아 먹는 풍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런 믿음이 퍼진 것은 선교사들이 전해 들은 이야기를 확인없이 책에 기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인류학자들이 조사해 본 결과 식인 풍습이 일상적인 곳은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반론이 쿠루병인데 광우병이 인간에게 발생한 것으로 파푸아 뉴기니의 원주민들이 죽은 이의 뇌를 먹는 풍습 때문에 걸린다고 알려졌다

이것을 밝힌 영국의 의사는 노벨상을 탔다

당연히 그는 식인 풍습을 지지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이 많다고 한다

저자는 아직 결론이 난 문제가 아니라고 한 발짝 비켜 선다

 

내 입장에서 제일 흥미로웠던 부분은 역시 대체의학이다

소변을 마시는 게 좋다거나 발이 몸의 모든 곳을 관장한다는 식의 믿음은 서양에도 널리 퍼진 모양이다

사내아이의 소변을 받아 마시면 정력에 좋다거나, (채만식의 태평천하에서 읽었다) 더러운 물을 마시느니 차라리 자신의 소변을 마시는 게 낫다는 식의 (홍신자의 수필집에 보면 인도를 여행하는데 물이 너무 더러워 깨끗한 자신의 소변을 마셨다고 한다) 이야기는 웃고 넘어 가더라도, (과학자들은 바다 위에서 표류할 때 조차도 소변을 마시는 건 득보다는 해가 많다고 일축한다) 반사학에 대해서는 쉽게 넘어가기가 어렵다

반사학이라고 이름 붙인 사이비 과학은 우리 식으로 보면 수지침이나 발마사지, 경락, 경혈 이런 식으로 풀이될 수 있을 듯 싶다

사실 나 역시 한의학에 대해 별 신뢰를 못하는데 요즘 신경과에서 IMS나 TPI, 테이핑 요법 등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이는 걸 보면 침에 대한 생각도 바뀌어야 하지 않나 싶었다

흔히 발바닥은 몸의 모든 기와 혈이 모여 있어 장이 안 좋으면 어느 부위를 누르라는 식의 믿음이 꽤 통용되어 왔다

저자는 발의 특정 부위를 누르면 특정 장기에 영향을 끼쳐 치료 효과가 있다는 식의 믿음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의학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저자의 이 주장은 받아 들이기가 좀 애매하다

그는 대부분의 대체의학들을 아무 실험도 거치지 않은 채, 그저 그럴 것이다는 식의 직관에 의존해 잘못된 믿음을 설파한다고 비판하는데, 적어도 과학적인 절차를 통한 검증이 필요함은 분명한 듯 싶다

 

점성술이나 UFO, 대체 의학 등은 사이비는커녕 다양한 과학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패러다임이 변하면 어떤 것들은 진리가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직관에 의해 이럴 것이다, 하는 식의 주장은 진리가 될 수 없다

어떤 주장이나 논리든지 과학적 방식에 따라 철저하게 검증한 후에서야 비로소 진리인지 아닌지 판명이 될 것이다

막연히 과학은 오류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게 전부는 아니다는 식의 문학적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의 정신 의학계가 프로이드를 상상력 풍부한 과학 문예가 정도로 밖에 평가하지 않는 이유는, 그가 과학적 실험 보다는 지나치게 직관에 의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건 좀 놀라운 일이다 나는 정신과 시간에 프로이드를 제일 첫장에서 배웠다 그의 이론이 이미 낡은 이론으로 변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꿈이 무의식의 욕망을 표출한다는 프로이드의 해석은, 뇌파 분석과 여러 실험들을 통해 별 관계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예컨데 신경증 환자를 치료하려면 꿈을 해석할 게 아니라, 약물 치료를 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그의 이론들은 여러 실험을 통해 하나씩 격파되고 있다

20세기 최고의 지식 혁명이라고 평가받는 프로이드조차 냉정한 심판을 받는데, 사이비 과학들이 아무 근거나 논증 과정도 없이 막연히 우리가 모르는 것이 있을 거다는 식으로 검증되지 않은 지식을 팔아 먹는 건 잘못된 일이다

더불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역시 과학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기울여 우리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원리에 대해 정확히 알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21 | 22 | 2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