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본성(들) - 인간의 본성을 만드는 것은 유전자인가, 문화인가?
폴 R. 에얼릭 지음, 전방욱 옮김 / 이마고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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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페이지 남짓 되는 꽤 두꺼운 책이지만, 내용은 비교적 평이하다.
지난 번에 읽은 비슷한 스타일의 <호모 쿠아에렌스>보다 더 쉽게 읽힌다.

본성과 양육의 논쟁은, 어쩌면 논쟁 자체가 무의미한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빈 서판으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유전자가 인간의 모든 행동 양식을 일일이 지정하는 것도 아니다.
저자의 말마따나 영구배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런 쓸데없는 논쟁은, 어설픈 인문학자들이나 대중 저술가들이 문제를 위한 문제, 식으로 야기시킨다는 생각이 든다.
유전자는 환경의 영향에 따라 다양한 표현형질을 발현시킬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성격 어떤 기질을 갖느냐는 각자의 처한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어렸을 때 언어 환경에 노출되지 않으면 언어 습득이 불가능해진다.
지적 자극을 많이 받으면 표현될 수 있는 재능도 늘어날 것이다.
물론 유전자라는 한계는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면 영재교육도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인종이 얼마나 잘못된 분류인지, 차별을 위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한지 새삼 느꼈다.
피부색을 기준으로 종을 나눈다는 게 과연 타당한 일일까?
차별을 정당화 시키기 위한 유사과학에 불과하다.
다름을 억압과 증오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편협한 행동에 불과하다.
대표적인 예로 미국 대선 후보가 된 오바마를 들겠다.
케냐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났지만 미국 문화에서 자라나 당당히 대선 후보까지 되지 않았는가?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의 동질성을 생각해 본다면 민족이나 피부색으로 나누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어떤 범주로도 단일하게 묶일 수 있는 집단은 없다고 생각한다.

의식이나 윤리가 뇌의 진화라는 생각은 이제 주류 의견이 된 것 같다.
여전히 정신의 특별함과 영혼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인간의 가치를 깍아 먹는 소리겠지만 결국 자아나 의식, 윤리, 양심 이런 추상적인 개념은 뇌의 진화 덕분인 것 같다.
그러니 몸이 죽고 나면 영혼은 저 세상으로 간다는 생각도 그저 망상에 불과할 뿐.
과학 서적을 읽으면 읽을수록 교회나 신앙에 대한 회의가 든다.
죽음의 공포를 이기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 혹은 절대자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지만 그것이 정말 우리가 믿고 있는 바로 그 교리, 그 신조인지는 정말 모르겠다.
죽으면 그저 사라질 뿐이고, 천국과 지옥, 영혼불멸 같은 것은 우리의 머릿속에나 있는 게 아닐까?

꽤 분량이 나가는 책이라 쉽게 읽지는 못했다.
당직 서고 나서 유난히 피곤했던 차라 100% 흡수하지는 못한 것 같다.
그렇지만 비교적 재밌게 읽은 책이라 추천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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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쿠아에렌스 - 자연과학자의 눈으로 본 인류문명사
찰스 파스테르나크 지음, 서미석 옮김 / 길(도서출판)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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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독특한 구성이다.
보통 인류의 문명사나 분자 유전학 혹은 자연사 쪽은 한 곳만 기술하기 마련인데 (각자 자기 분야가 있으니까) 이 책은 지구의 탄생부터 시작해 인류 문명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역사를 서술한다.
그래서 좀 광범위한 느낌이다.
앞쪽의 지구 탄생 분야나 식물과 세균의 광합성 분야 등은 좀 어려웠다.
확실히 나는 과학 쪽은 약하다.
대신 인간의 문명사가 등장하는 부분부터는 쉽고 재밌어 진도가 빨리 나갔다.

저자는 인류 문명의 원동력을 호기심이라고 표현했다.
호기심 때문에 탐험을 하고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고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 낸다.
호기심은 인간의 독특한 특성이면서 또 하나의 본능이라고 역설한다.
빛을 찾아 가는 굴광성이나 화학 물질을 찾는 주화성 등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호기심도 유전자에 입력된 본성의 하나라는 것이다.
저자는 자극에 끌리는 본성을 PAS 영역이라고 표현했다.
아마 지적 호기심도 이 영역 중 하나일 것이다.
인간은 자극이 필요한 동물이고 이것은 생존본능을 넘어 문화까지 창조할 수 있게 됐다.

인간에 대해 과학적으로 분석하면 할수록 도킨스의 말마따나 결국 인간도 그저 지구 위에서 자기복제를 하고 있는 하나의 생명체일 뿐이고 영혼을 가진 존재라느니 특별히 창조주로부터 구원을 받을 존재라느니 하는 것도 하나의 헛된 망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메바보다 인간이 더 우월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오직 인간만이 유전자의 조합이 아닌, 영혼이 존재하는 고귀한 존재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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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의 시대 - 1억 6천만 년 동안 지구를 지배하다 뉴턴 하이라이트 Newton Highlight 12
일본 뉴턴프레스 엮음 / 아이뉴턴(뉴턴코리아)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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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래 기다린 책이다.
3월 3일에 희망도서로 신청한 책인데, 4개월 만에 받아 봤다.
공룡은 어렸을 때부터 무척 관심있는 주제였는데 생각보다 책이 많지 않아 정보를 얻기 힘들었다.
이융남 박사의 책 외에는 국내 저자의 책은 전무하고 그나마 번역되는 책들도 거의 아이들을 위한 책 뿐이다.
공룡에 대한 사회적 관심사에 비해 정보는 턱없이 부족한 편.
그래서 뉴턴 하이라이트의 공룡 이야기가 무척 반가웠다.
잡지책이다 보니 간략하게 읽기 편하게끔 축약하여 깊이 면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많다.
특히 공룡 최고의 궁금증인 변온동물 VS 정온동물설, 멸종의 이유, 생물학적 분류, 조류로의 진화 등등에 관한 토의가 없어 무척 아쉽다.
대신 화보가 화려하다.
이렇게 많은 공룡을 복원도와 함께 제공하는 책은 드물 것 같다.
공룡의 종류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추천한다.

제일 인상적인 그림은, 아무래도 네 발에 모두 깃털이 달린 공룡이었다.
시조새나 익룡처럼 생긴 것도 아니고, 온통 화려한 깃털로 뒤덮여 있는데 얼굴은 익룡 모양이다.
중요한 것은 네 발이 모두 깃털로 덮여 있다는 사실이다.
조류가 앞발만 깃털인데 비해 이 공룡류는 사지가 전부 깃털이라 아마도 이 공룡에서 조류로 진화하면서 뒷쪽은 퇴화한 게 아닌가 추론한다.
공룡과 조류의 관계는 아마도 최고의 수수께끼일 것이다.

진화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종교적인 문제를 생각해 봤다.
인간이 과연 영혼이라는 걸 가졌을까?
인간은 다른 생명체와 전혀 다른 존재인가?
그래서 인간만이 신에게 구원받을 수 있는가?
리처드 도킨스가 종 우월주의를 비판하면서 아메바가 인간보다 하위에 있다는 개념 자체가 잘못됐다고 했을 때, 무척 거부감이 들었는데 (인간은 고등동물이니까) 진화론에 대해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결국 인간 역시 긴 생명의 역사에 한 부분을 더할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엄청난 생명체들이 환경에 적응해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명과 죽음, 생존 욕구, 대체 이런 것들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
공룡들이 지구를 뒤덮고 있을 때 그들이 그 오랜 시간, 무려 1억 6천만년을 살아간 까닭은?
정말 생명이란 것은 생각하면 할수록 신비롭고 위대하다.

장경룡과 어룡이 공룡의 일종이라 생각했는데 전혀 다른 바다 파충류였다.
장경룡은 말 그대로 목이 몸보다 더 긴 파충류고 어룡은 상어처럼 생겼다.
날아다니는 익룡까지 합하면, 중생대의 지구는 파충류의 전성기였음이 분명하다.
브로키오사우르스가 물 속에 살면서 위로 솟은 콧구멍으로 호흡했다는 이론은 이제 폐기된 가설이다.
정확한 조사 끝에 그 콧구멍은 정수리 부위에 있는 게 아니라, 입 근처에 있었음이 밝혀졌다.
브라키오사우르스처럼 30여 톤에 달하는 용각류들이 물에 들어가면 부력 때문에 폐가 짜부러든다고 한다.
이구아노돈의 발톱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는 이론들이 많다는 것도 고생물학의 재미 같다.
중국 고고학자의 말처럼, 아마 상상력에 있어 고생물학자를 따라올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생물을 단지 뼛조각만 보고, 그것도 전체가 아닌 일부만 주어 모아 완전한 생명체로 복원시킨다는 것은, 위대한 상상력이 없는 이상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확실히 일본 사람들은 여러 분야에서 앞서 간다는 느낌이 든다.
선진국의 저력인가?
이런 과학 분야 (먹고 사는데 별 지장 없는) 에 많은 돈을 투자해서 연구할 수 있는 제반 여건들이 무척 부럽다.
뉴턴 하이라이트는 한 가지 주제에 대해 가볍게 일독할 만한 좋은 과학 잡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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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의 과학세상 - 우리가 외면했던 과학 상식
이덕환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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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과학 에세이다.
잘못 알려진 상식을 집중적으로 파헤친다는 특징이 있다.
잘못 보도된 과학 기사들을 발췌해서 뭐가 문제인지를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는데, 언제 어떤 신문에서 인용된 건지 밝히지 않아 아쉽다.
이런 걸 보면 역시 기자들은 절대로 전문가가 아니다.
요즘 의학 전문기자니 과학 전문기자니 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나는 저자의 의견에 거의 동의하는 편이다.
과학의 발달이 인류에게 가져다 준 엄청난 선물을 절대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과학만능주의라는 말 자체가 매우 감상적이고 추상적인, 실체가 불분명한 비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 자연은 비단 환경오염이 문제시 되는 오늘날에만 가혹한 게 아니라, 원래 인간의 필요와는 별 상관없이 변해 왔다.
자연을 훼손시키는 인간에게 내려진 분노도 아니고 신의 징벌 따위는 더더욱 아니다.
카트리나 태풍에 희생당한 이재민들을 가엾게 여기기는 커녕, 문란한 미국 흑인들에게 내려진 천벌이라고 설교하는 목사의 정신상태는 과연 온전한 것인지...
에이즈로 고통받는 환자들이나, 쓰나미에 휩쓸린 희생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설교하는 목사들을 보면, 인간에 대한 동정심이나 연민의 감정은 전혀 없는, 머리 구조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정신병자들을 보는 것 같다.
거기 앉아서 그런 설교를 듣고 있는 신자들의 정신 상태는 또 정상적인지 매우 의심스럽다.

과학에 대한 상식을 키워야 상술에 휘둘리지 않는다.
원적외선이니 해저심층수니 하는 것들이 얼마나 기가 막힌 사기인지 책을 읽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과학 기술의 혜택은 누리면서 기본 원리는 등한시 하는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라도 이런 상식적인 책들이 많이 나와야 할 것이다.
뒷쪽에 LED 나 나노 기술 등은 솔직히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관심을 가지고 다른 책을 읽어 볼 생각이다.
내용이 가볍긴 하지만 대신 어렵지 않아 편하게 읽을 수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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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8-05-23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자들이 잘못 보도하는 가장 큰 책임은 전문기자제도나 대기자제도가 아직 정착되지 않아서라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비전문가가 쓰니까 의도하지 않은 오보가 남발되는 거죠. 저도 꽤 보도자료를 쓰는 편인데, 기자가 토씨 하나 안 바꾸고 전제하거나, 잘못 인용할 때마다 속상하더라구요.
 
대멸종 - 페름기 말을 뒤흔든 진화사 최대의 도전 오파비니아 3
마이클 J. 벤턴 지음, 류운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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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리뷰에서 보고 읽고 싶었던 책이다.
내가 책을 고르는 루트는,  일단 일간지의 북세션이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신뢰 수준 높음) 두 번째는 인터넷 서점의 서평이다.
특히 나귀님처럼, 믿음이 가는 서재는 수시로 방문해 읽을 만한 책이 없나 살펴본다.
서점에서도 가끔 재밌는 책을 발견하기도 하는데, 상대적으로 횟수가 적은 편이다.
이 책은 TTB 리뷰를 통해 파도를 타다가, 우연히 이 책을 감수하신 분의 블로그에 들르게 되어 추천받았다.
<삼엽충>을 출판한 <뿌리와 이파리> 에서 나온 같은 시리즈물인데, <삼엽충> 보다 덜 자세하고 읽기도 쉬운 편이다.
<삼엽충>은 세부적인 기술이 너무 많아 결국 절반 정도 밖에 이해를 못한 채 덮고 말았는데, 이 책은 분량이 많으면서도 비교적 쉽게 넘어가는 편이다.
지구과학적인 부분, 그러니까 지질 연대나 화산 활동 같은 게 나오면 좀 헤매긴 했다.
확실히 나는 이런 부분에서는 약하다.

흔히 멸종 하면 6500만년 전의 공룡만 생각한다.
너무나 엄청난 사건이었고, 또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고생물이다 보니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다 보니 마치 멸종은 그 때 딱 한 번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난 번 <삼엽충>에서도 본 바와 같이, 지금까지 총 다섯 번의 대멸종이 있었고, 보다 작은 규모의 멸종은 꾸준히 있어 왔다.
특히 바다의 지배자인 삼엽충은 일거에 쓸어버린 고생대 페름기 말의 대멸종은, 생명의 역사에서 가장 큰 참변으로 기록된다.
전체 종의 90%가 사라졌다고 하니, 얼마나 큰 재앙이었는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흔히 KT 사건이라고 부르는 백악기 말의 멸종은, 공룡을 포함한 50%의 종이 사라졌다고 한다.
이제 공룡 멸종의 원인은, 운석 충돌로 확정이 된 모양이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어렸을 때 열심히 읽은 공룡 관련 서적에서, 멸종의 원인을 설명하면서 운석 충돌 같은 허무맹랑한 가설도 있다고 소개했었다.
그 때는 지구의 기온 하강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 온갖 억측을 잠재우고 우주에서 날아온 지름 10km 의 거대 운석이 지구를 강타한 후 150km에 이르는 거대 운석구를 만들면서 뿜어내는 먼지 구름이 햇빛을 차단하고 대기의 성분을 변화시켰다는 식으로 결론이 났다.
다소 허무하기도 하다.
과연 공룡은 왜 멸종했을까, 하는 미스테리 같은 분위기 때문에 더욱 공룡이 신비로워 보였는데 말이다.

아직까지 페름기의 대멸종 원인은 결론이 안 난 것 같다.
KT 사건처럼 외계에서 온 소행성 충돌 같은 이론도 있지만, 저자는 시베리아 트랩을 주원인으로 거론한다.
간단히 말해 거대한 화산 폭발이락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베수비오 화산처럼 한 번 폭발하는 게 아니라, 80만년의 시간을 두고 계속 폭발하면서 겹겹히 층이 쌓여 트랩을 이룬다.
이 때 먼지나 재, 이산화황 등이 대기로 유출되면서 햇빛을 막아 기온이 하강하기도 하고, 반대로 이산화탄소 등이 온실 효과를 일으켜 당시 지구의 온도는 무려 6도나 상승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찜통 같은 더위였을 것이다.
끔찍한 건기가 지속되고 수많은 생명체들이 말라 죽어 간다.
또 산성비가 내려 토양을 쓸어 내려 식물들이 사라진다.
이 때 씻겨진 토양들은 바다를 오염시켜 무산소화를 촉진한다.
그러니 심해에서 산소 없이도 버티는 일부 완족류들만 겨우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
보통 대기에 이산화탄소가 많아지면 네거티브 피드백을 통해 양을 조절하는데, 바다에서 메탄 가스가 분출하면서 오히려 포지티브 피드백을 형성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는 끝도 없이 증가한다.
생체 조절 시스템의 파괴라고 할까?
기온이 상승하면 극지방의 얼음이 녹게 되는데, 단순히 해수면만 올리는 게 아니라 메탄을 함유하고 있는 기체수화물을 방출하게 되는 게 이것을 메탄 트림이라고 표현했다.

페름기 말 대멸종은 한 가지 원인이 아니라, 여러 가지 원인이 연속적으로 일어나 생명계에 치명타를 입힌 경우라고 설명한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 을 인용해 재밌게 설명한다.
객실 안에서 승객이 살해당했는데 열 두 번 칼에 찔린다.
열차에 탄 승객은 모두 열 두 명, 그들은 서로 옆 사람의 알리바이를 제공한다.
알고 보니, 이들은 공모하여 지난 날 유아를 살해했던 그 승객을, 각자 한 번씩 열 두 번 찔러서 죽였던 것이다.
재밌는 비유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까 페름기의 대멸종은 KT 멸종처럼 운석 충돌 한 번으로 끝난 게 아니라, 여러 번의 강타를 맞아 쓰러졌던 것이다.
이 때 또 문제가 됐던 것은, 당시 대륙이 하나로 붙어 있었다는 것이다.
시베리아 트랩보다 더 큰 폭발은 얼마든지 있었지만, 대륙 사이의 바다들이 그 충격을 흡수했다.
그러나 페름기 말의 초대륙은, 거대한 현무암질 용암 분출의 쿠션 역할을 할 수 없었다.
결국 전체 종의 90% 멸종이라는 끔찍한 대참변을 낳게 된다.

지금은 이런 대변혁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만, 저자가 지구과학을 배울 때만 해도, 점진주의가 대세였다고 한다.
지구과학 시간에 배웠던 동일 과정설 때문이다.
이 법칙은 지구과학의 기본 전제라고 매우 중요하게 배웠던 기억이 난다.
과거에도 현재와 같은 법칙에 의해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속도의 차이다.
오랫동안 동일과정설을 주장해 온 라이엘은, 현상 뿐 아니라 속도마저 현재와 같다는 점진주의를 지지한다.
반면 비교해부학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퀴비에는 (이 사람도 수업 시간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변화 속도의 급격함을 주장해 대멸종설을 지지한다.
간단히 말해 점진주의는, 공룡이 500만년에 걸쳐 서서히 죽어갔다는 것이고 이 논리를 더 확장하자면, 탄생, 성장, 노쇠의 곡선대로 때가 됐으니까 사라졌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유전학과 진화론의 발달에 힘입어 이런 논의는 그저 사변적인 가설에 불과함이 밝혀졌다.
사실 모든 생명체가 번성하다가 정점에 이르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는 논리는, 관찰을 무시한 책상머리 사고에 지나지 않는다.
철학과 과학의 차이가 이런데서 발생한다.
공룡이 후기로 갈수록 종의 다양성이나 개체수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나, 일거에 멸종한 것은 대변혁 설이 아니고서는 설명될 수 없다.
때가 되서 자연스럽게 퇴화한 것이 아니라, 운석 충돌이라는 기가 막힌 참변 때문에 잔혹하게 바뀐 자연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멸종한 것이다.
비슷한 예가 또 있다.
페름기의 대멸종을 이기고 살아남은 유일한 파충류가 리스트로사우르스인데, 한 방송 매체에서 이것을 진화상의 유리한 점으로 설명했으나, 즉 가장 우수한 형질이라 생존했다고 설명했으나, 사실 그것은 우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우연히 바뀐 생태계와 맞아 떨어진 것이다.

전체적으로 흥미롭게 읽은 책이고, 분량에 비해 가독성도 뛰어난 편이라 읽는 내내 즐거웠다.
인류가 존재하기 이전의 엄청난 사건들이 보다 많은 조명을 받아 대중들에게 알려짐으로써 연구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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