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질병 - 어떻게 하면 치료되는가? 최초의 원인은?, 뉴턴 하이라이트 Newton Highlight 14
일본 뉴턴프레스 엮음 / 아이뉴턴(뉴턴코리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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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서점에서 뉴턴 하이라이트 시리즈를 발견한 후 무척이나 읽고 싶었다.
태양계나 질병, 공룡 등등 주제들이 모두 흥미를 양껏 유발하는 것들이었다.
그 첫번째로 우리 몸과 질병에 관한 책을 선택했다.
앞으로 한 달에 한 권씩 발간될 거라고 하는데 가능하면 매달 읽고 싶다.

교과서에 시험 공부 때문에 줄 긋고 외워서 보는 것과, 잡지책에서 그림과 설명을 곁들여 흥미롭게 읽는 것은, 같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한 차이가 있다.
전공한 사람으로서 볼 때 이번 호의 내용은, 치료 방법만 세세하게 안 나왔을 뿐 (kg 당 몇 mg 의 약을 써야 하는지 같은 것) 거의 교과서와 흡사한 수준으로 자세히 설명해 놨다.
그러면서도 흥미를 잃지 않고 재밌게 읽을 수 있게끔 독자를 배려한다.
물론 내가 기본 베이스가 있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내가 약한 쪽인 천문학이나 지질학 분야의 뉴턴 시리즈도 같이 읽어 볼 생각이다.

무엇보다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 수준의 내용이란 점이 마음에 든다.
과학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동료 집단들의 엄격한 평가 시스템을 통과한 (즉 학회나 논문 발표를 통해 인정된 것들) 이야기만 있다는 점에서 신뢰가 간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상식이 바로 올바른 의학적 내용인데, 다들 뭔가 특별한 게 있을 거라 믿기 때문에 사이비 과학이 판을 치는 게 아닌가 싶다.

책에 나온 대로 운동 꾸준히 하고 기름기 적게 먹고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열심히 살면 상당한 수의 질병은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통해 이번에 정확히 안 사실은, 뇌졸중이 대체 무슨 개념인가 하는 것이다.
뇌졸중은 한의학에서 흔히 얘기하는 단어라, 그 정확한 의미를 몰랐다.
그냥 막연히 중풍 같은 거, 즉 뇌경색을 얘기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알고 보니 뇌졸중은 뇌혈관 장해를 통칭하는 표현이었다.
그러므로 뇌출혈과 뇌경색을 모두 일컫는 말이다.
뇌경색은 다시 뇌색전과 뇌혈전으로 나뉘는데, 색전은 다른데서 온 덩어리가 혈관을 막는 것으로 주로 심장에서 떨어져 나온 것들이다.
혈전은 혈관벽에 덩어리가 쌓여 혈관을 막는 걸 일컫는다.
뇌출혈은 뇌실질의 출혈과 지주막하 출혈로 나누는데, 지주막하 출혈은 예전에 "완전한 사랑" 에서 차인표가 갑자기 죽은 것처럼,  돌연사 확률이 높다.
보통 뇌경색이 오면 혈전 용해제 등을 쓰는데, 한의학에서는 어떤 식으로 접근하는지 또 치료 성적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전체적으로 매우 유익한 내용이 많아 큰 도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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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8-04-16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리즈, 사놓고서 아직 제대로 본적이 없네요.
리뷰 읽고서 다시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자세히 읽어봐야겠어요.

marine 2008-04-16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저도 이 시리즈 전부 읽어 볼 생각이예요
 
생명 최초의 30억 년 - 지구에 새겨진 진화의 발자취, 뿌리와이파리 오파비니아 1
앤드류 H. 놀 지음, 김명주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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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표지만큼이나 기대도 컸던 책인데 읽다가 포기했다.
분명히 학교 다닐 때 생화학과 분자유전학에 대해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소린지 정확한 이해가 불가능했다.
처음 몇 챕터는 그런데로 읽을만 했는데 뒤로 갈수록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고 특히 지질학 쪽은 내가 딱 질색인 분야라 결국은 포기했다.
과학에 대한 내 지적 한계가 아닐 수 없다.
좀 더 편하게 가볍게 특히 결론만 쓰여진 책이 있으면 좋겠다.
과정을 밝히는 건 아직 내 수준에 무리인 것 같다.
이런 열패감을 느끼다니...
지난 번에 읽은 "삼엽충" 보다 더 어렵다.

캄브리아기의 대폭발이 일어나기 전부터 지구는 끊임없이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한 준비를 해 왔다는 게 이 책의 요지 같다.
원핵생물에서 진핵생물로 넘어가기 전까지 무려 30억년의 준비 기간이 필요했던 것.
진핵생물이 광합성, 산소호흡, 발효 등의 세 가지 방법으로 에너지를 내는데 반해, 열등하다고 알려진 원핵생물은 엄청나게 다양한 방법으로 에너지를 생산한다.
산소가 없는 혐기성 세균부터 시작해, 질소나 황화합물 등으로도 에너지를 내고 심지어 고온에서만 사는 호열균, 고농도의 바다에서만 사는 세균 등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생명의 신비는 알면 알수록 위대하고 신비롭다.
생명이 설계도를 밝히는 일은 가슴 떨리는 일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 과정은 지루하고 어렵다...

좀 더 가벼운 책을 우선 읽어 본 다음에 도전해 볼까 한다.
역시 내 수준은 눈에 확 띄는 공룡이 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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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엽충 - 고생대 3억 년을 누빈 진화의 산증인 오파비니아 4
리처드 포티 지음, 이한음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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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말해서 난 이 책의 절반도 이해를 못한 것 같다.
가볍게 생각하고 집어든 게 화근이었다.
어렵다.
생각보다 어렵다.
차라리 공룡에 대한 이야기였으면 좀 더 쉽게 이해를 했을 것 같다.
어쨌든 공룡은 많이 알려진 동물이고 무엇보다 큼직큼직 하게 생기지 않았는가!
이 놈의 삼엽충들은 어찌나 작은지 아무리 저자가 수십 만종의 삼엽충이 있다고 열을 내도 내 눈에는 다 똑같이 보인다.
그저 괴상한 갑각류로 밖에는 안 보인다는 얘기다.
감별이 안 된다.
시각적으로 식별이 안 되니 다 거기서 거긴 것 같고 흥미를 끌어 낼 수가 없다.
지구를 3억년이나 지배했다는 이 놀라운 생물들의 비밀이 아무리 많이 밝혀진다 해도 공룡처럼 어린이들의 관심을 끌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 같다.
마치 아무리 귀여운 벌레가 있다고 해도 개나 고양이처럼 인간들에게 사랑받는 애완견의 위치는 차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삼엽충이라는 그 이름 자체가 너무 특이해 항상 궁금했는데 알고 봤더니 아주 간단한 단어들의 조합이었다.
세 개의 엽을 가진 벌레라는 뜻이다.
기막힌다.
이러니 잘 안 쓰는 한자어를 모으면 기묘한 이미지로 바뀌어 버린다.
세 개의 엽, 즉 머리부, 가슴부, 꼬리부가 그것이다.
머리, 가슴, 배로 나뉜다는 곤충과 똑같다.
곤충류와 삼엽충류는 똑같은 절지동물에 속한다.
인간은 어류와 기원이 같은 척추동물이다.
관절다리가 있는 절지동물, 등뼈가 있는 척추동물!
정말 간단한 분류다.
척추동물과 절지동물의 공통점은?
그런 게 있기는 할까?
놀랍게도 우리들은 눈을 가지고 있다!
삼엽충과 곤충과 인간의 공통 조상은 등뼈나 관절다리는 몰라도 적어도 눈은 확실히 가지고 있었다.
놀라운 사실이다.
빛을 인지하는 시각 기관의 발달이 절지동물에게도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니!
사실 이 부분은 아직 안 읽은 부분이다.
제일 흥미로운 부분이기도 하다.

굴드의 단속평형설이 소개되서 반가웠다.
도킨스는 점진적 진화를 주장한다는데 적어도 고생물 쪽에서는 갑작스런 진화가 맞다는 얘기를 읽은 적이 있다.
잃어버린 고리는 원래부터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단속평형설에 따르면 중간 고리, 즉 새로운 종으로 변화하는 전이 단계를 지닌 생물은 너무나 짧은 시간에 존재하고 곧 우세종의 확산이 이뤄지기 때문에 화석으로 남을 시간이 없다.
고리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오히려 진화를 뒷받침 하는 증거가 되버렸다.
바다 속 지층에 매장된 삼엽충의 화석은 점진적 진화 단계를 보여 주는 매우 귀중한 화석이라고 한다.
산소 대신 황결합물을 분해해서 에너지를 내는 특이한 황세균에 의해 부패가 방지되고 전이 과정이 화석에 기록됐다고 했는데 너무 세부적인 내용이라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하여튼 삼엽충의 집합복안도 그렇고 이 놈들이 진화의 신비를 밝히는데, 마치 유전자 지도 작성에 초파리가 엄청난 수훈을 세웠듯,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요지다.

공룡이 나타나기 전에 멸종해 버린 가엾은 삼엽충은 말 그대로 고생대를 대표하는 표준화석이고 삼엽충의 특정 종이 고생대의 특정시기를 가리키는 이른바 화석시계로 사용할 수 있다.
신생대에서 공룡 화석이 나타나지 않듯, 혹은 티라노사우르스가 보이면 백악기 지층이듯, 삼엽충이 나타난 지층은 반드시 고생대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학교 다닐 때 삼엽충 고생대, 공룡 중생대 하고 외웠던 것 같다.
무려 3억년을 지배했다는 데 정말 오랜 시간 동안 살았다.
그 정도 생존했다면 멸종한 게 크게 억울하지는 않을 것 같다.
지구의 환경 변화는 생물들에게 너무 가혹한 것 같다.
그러나 낙관적으로 보자면 멸종을 통해 진화의 역사는 새로운 종을 창조해 내므로써 우리의 생태계는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이런 지구의 신비를 생각해 보면, 가이아 이론을 신봉할 수 있을 것 같다.

삼엽충에 대한 저자의 애정은 놀라울 정도다.
열 네 살 때 우연히 삼엽충 화석을 발견한 뒤 평생 직업으로 삼은 이 학자는, 책에서 정말 놀라운 애정을 내뿜는다.
책에 소개된 위대한 삼엽충 학자들의 열정을 보면, 누가 감히 과학자를 메마르고 냉정한 감성의 소유자라고 욕할 수 있겠는가?
끈기를 가진 예술가라고 말하고 싶다.
인문학과 과학의 우위를 논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같다.
과학은 예술의 대척점에 있는 게 아니라 과학 역시 예술이고 인문학이다.
통섭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다만 이들은 근면과 끈기가 남다를 뿐이다.
취미와 직업을 일치할 수 있는 이 행복한 남자의 책은, 그러나 좀 지루하긴 하다.
워낙 삼엽충이 덜 알려진 분야라 자세한 소개 부위가 지루한 점도 있지만 분명히 위트있는 문장인데도 번역이 이상해서 그런가 아주 재밌지가 않았다.
어쨌든 자연사 박물관에서 삼엽충의 학명 붙이는 직업을 가진 이 남자의 다른 책도 읽어 볼 생각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이 고생물을 좀 더 애정을 가지고 지켜 봐야겠다.
빼먹지 말고 기록할 것은, 삼엽충이 가재나 게 같은 갑각류가 아니라 투구게와 비슷한 친척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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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북
리처드 도킨스 외 지음, 피터 탤랙 엮음, 김희봉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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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늘 읽은 책은 일단 규모에 살짝 기가 질리는 책이다.
지은이가 리처드 리키인데 왜 나는 이걸 리처드 도킨스라고 봤는지 모르겠다.
도킨스가 서문을 썼다고 들었는데 눈 씻고 찾아봐도 도킨스 이름은 안 나온다.
내가 자꾸 착각을 하는 건지...

칼 세이건의 전 부인인 린 마굴리스가 역사적인 과학의 발전을 이끈 250 인 가운데 한 명으로 등장하는 걸 보고, 과연 이 아주머니의 명성이 허상이 아님을 알았다.
나를 떠나는 건 당신의 큰 실수라면서, 린의 이혼요구에 깜짝 놀랬다던 세이건 보다 학문적으로는 더 유명한 사람이 되버렸으니, 당시의 마굴리스가 콧방귀를 뀌었을 것 같다.
하여튼 생물학 책에 나오는 이론, 즉 세포 안에 미토콘드리아는 원래 박테리아가 숙주에게 기생한 것으로써 공생관계로 진화했다는 이론이 바로 이 마굴리스에 의해 전개된 이론이라고 한다.
교과서에 나올 때는 뭔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릴 끄적거려 놨나, 학자들의 말장난 아닌가 싶었는데 과연 찬찬히 성립 배경을 읽어 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보통 핵 안에만 DNA가 들어 있는데, 핵 밖에 있는 미토콘드리아에도 DNA 들어 있는 걸로 봐서 두 생물은 과거에 각기 별개의 존재였다고 보는 것이다.
셀이 박테리아를 잡아 먹어 붙잡고 지금까지 20억년에 걸쳐 살아왔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경이롭게 들린다.
아, 정말 생명의 신비와 정교함은 얼마나 놀랍고도 위대한지!
핵과 미토콘드리아에 각기 DNA를 가지고 있는 게 바로 진핵생물이고, 미토콘드리아가 없는 게 원핵생물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원핵과 진핵의 차이가 바로 이 미토콘드리아의 유무, 그리고 DNA가 한 벌인가, 두 벌인가 차이라는 거다.
원핵 생물은 지금으로부터 40억년 전부터 있어 왔고 진핵 생물은 20억년 후에 진화했다.
분자의 진화까지 논하는 현대 생물학의 깊이는 정말 놀랍다.

 

천왕성의 발견자인 윌리엄 허셜은 당시 영국 국왕의 이름을 따서 조지의 별이라고 부르자 했단다.
조지 3세는 너무 기쁜 나머지 그를 천문학대의 수장으로 임명했다고 하니, 과연 대단한 처세술이 아닐 수 없다.
전문적인 천문학자도 아닌 사람이 단지 취미로 망원경을 만지다가 이런 놀라운 발견을 할 수 있다는 게 더 놀랍다.
두루두루 넓은 범위의 교양을 추구했다는 당시 영국 신사들의 과학에 대한 놀라운 열정과 애정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번역자에 대한 불만으로는, 가능하면 중요한 용어는 영어로 함께 표기를 해 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정확한 용어가 뭔지 궁금한데 무조건 한글로 번역만 해 놔서 아쉬웠다.
고유 명사처럼 쓰이는 단어들일텐데 영문 표기를 알면 인터넷에서 찾기도 쉽지 않겠는가.
내 전공 분야인 생물학 쪽에서는 그런대로 잘 알아 먹었는데 솔직히 물리 쪽은 고개만 끄덕이고 지나갔다.
물리학의 상식을 넓힌다는 의미에서는 유용했다.
특히 도저히 감이 안 잡히던 초끈 이론이 대체 무슨 얘기인지 좀 알 것 같다.
양자역학도 자주 반복되니까 이제 확률론이구나, 하고 감이 좀 잡힌다.
역시 21세기의 교양인 과학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거의 대부분이 노벨상을 받은 업적들이 많았다.
현대로 올수록 대부분 노벨상 수상자들이라 노벨상이 과학 발전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놀라운 것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개념도 처음 도입됐을 때는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었다는 것이다.
가속도를 이해하기 위해서 뉴턴이라는 천재를 기다려야 했다는 문장이 확 와 닿았다.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이나 케플러의 행성의 타원 궤도 같은 당연한 상식은 물론이거니와, 화석이 대체 뭐냐는, 너무 당연한 질문에도 당시 사람들은 고민해야 했다는 걸 보면, 역시 과학의 위대함은 누적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의 개념이 정립되면 그 위에 쌓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러나 발상의 전환, 혹은 새로운 개념 정립은 수많은 실패와 위대한 천재가 나오기 전까지는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 소개되는 과학자들은 죄다 놀라운 천재들 같다.
역자 후기에 동양의 과학이 소개되지 않은 점이 아쉽다고 했는데, 과학이라는 것이 동서양, 혹은 국가와 민족을 굳이 나눌 필요가 있냐는 생각이 든다.
여기 소개된 이들은 인류 문화의 보배들이다.
다만, 동양 쪽 과학의 전통은 어떠했는지는 궁금하다.

 

250개의 주제에 불과하다고 해서 금방 읽을 줄 알았는데 아직 1/3이나 남았다.
생각보다 내용이 방대하다.
한쪽은 설명, 한 쪽은 올 컬러 사진이라는 획기적인 구성을 취한 점이 마음에 든다.
단 책 도판이 너무 커서 읽느라 힘들다.
과학에 관심있는 대중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 같다.
무엇보다 과학의 전분야를 골고루 망라하고 있고, 한 페이지에 핵심적인 설명만 압축했기 때문에 너무 깊이 들어가지 않아서 교양서로 좋다.
가끔 꺼내 놓고 한 장씩 읽어 봐도 좋을 것 같다.
옆의 사진이나 그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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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오해
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 김동광 옮김 / 사회평론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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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했던 내용과는 퍽 달랐다.
제목이 주는 뉘앙스로 봤을 때, 인간이 최고의 가치가 아니라는, 인간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자는 그런 류의 주장인 줄 알았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의해 지구 중심주의에서 벗어났듯, 진화론에 의해 인간 중심주의에서 벗어나게 됐다는, 그런 류의 과학 에세인 줄 알았다.
그런데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나는 굴드의 책을 처음 접했는데, 확실히 이 사람은 스스로 고백했듯, 사회주의적인 신념이 있는 것 같다.
리처드 도킨스나 칼 세이건 등과는 굉장히 다른 느낌이었다.
뭐랄까, 사회에 보다 관심이 많고 과학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순수한 믿음 같은 게 있다고 해야 할까?
과학이 실재적인 팩트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충분히 찾아질 수 있다는 기본적인 생각에는 동의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은 문화와 계급에 의해 영향을 받고 발전 방향 역시 그 과학이 속한 사회와 분리될 수 없음을 강조하는 부분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이런 식의 고백은 자칫하면, 과학 역시 상대적이며 가변적이라는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굴드는 퍽 신중하게 진술을 한다.
나 역시 과학은 절대적인 진리를 찾는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의 법칙을 발견하고, 우주의 실체를 밝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생학이나 골상학 같은 황당무계한 이론들도 과학이라는 이름하에 맹위를 떨쳤다는 걸 사실을 접하고 보면, 굴드의 말마따나 오히려 우리가 절대적인 객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자만이 훨씬 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별히 더 관심을 쏟는 분야가 정해져 있고 과학자 역시 편견을 갖는 제한된 능력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오히려 자신이 편견을 가질 수 있음을 끊임없이 인정함으로써 자료의 선정과 계측에 보다 신중할 수 있다는 굴드의 지적도 일리가 있다.
과학이라는 절대적 진리를 찾아가는 과학자는, 질투와 시기심과 명예욕과 편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겠는가?
하여튼 과학과 과학자를 구분하는, 어찌 보면 인간의 한계를 실토하는 그런 솔직한 자세가 신선하게 와 닿는다.
그러나 이 말은, 황우석 같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과학은 국경이 없어도 과학자는 조국이 있다는 식의 민족주의적인 말로 오인해서는 안 된다.

책의 주제는 범주화와 서열화로 압축될 수 있다.
솔직히 나는 책을 읽으면서 너무나 어이없는 이론들이 사회를 지배했다는 사실에 더 놀랬다.
흑인이 가장 열등한 인종이고, 코카서스 인종이 가장 우수하며, 그러한 서열화는 두개골 용량이나 길이 측정 등으로 지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열등할수록 원숭이를 닮았기 때문에 침팬지의 두상과 아프리카인의 두상이 비슷하다는 식으로 기술됐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인터넷 상에서 논쟁을 벌였던 사람이 생각난다.
그 사람 말이, 흑인이 미학적으로 못생기고 열등한 것은 사실 아니냐는 것이다.
이 개명천지한 21세기에도 이런 주장이 서스럼 없이 통용되는 걸 보면, 제국주의가 판을 치던 19세기에 흑인을 백인과 똑같이 보는 게 오히려 더 이상했을 것 같다.
범주화는 많은 오류를 낳는다.
이를테면 나는 여자고, 유색인종이고, 전라도 사람이다.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이 사회에서 나를 규정하는 척도가 된다
내가 실제로 그 범주의 일반적인 경향을 따르는지 안 따르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간주되느냐 아니냐가 문제기 때문이다.
물론 여자는 생물학적으로 남자와 완전히 똑같고 다만 관습과 교육에 의해 여자로 키워진다는 식의,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우리는 굴드의 말마따나, 같은 조상의 후손들이고 우리들의 유전학적 차이는 구분하기 매우 힘들 정도로 미세하다고 생각한다.
진화론이야 말로 인간이라는 종이, 동질한 집단임을 보증해 주는 가장 훌륭한 학설이 아닌가 싶다.
인류가 멸망하고 오직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원시 부족만 살아 남는다 해도, 그들은 인류의 유전적 다양성의 대부분을 충분히 후손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문화적 진보와 생물학적 진보가 다르다는 굴드의 지적은 매우 통찰력 있다.
생물학적 진화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획득형질은 유전되지 않기 때문에,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겨우 5천 여년 가지고는 어떤 변화도 관찰될 수 없다고 한다.
반면, 문화적 진화는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에 의해 진행된다.
사람들은 자기가 습득한 지식과 행동양식을 후손에게 학습을 통해 전수시키고, 모방과 반복을 통해 우리는 문화를 건설해 나간다.
우리가 흔히 유전적 특징이라고 주장하는 인종별 혹은 집단별 특징은, 생물학적 진화가 아닌 이러한 문화적 진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구분이야말로, 인류의 기원과 특성을 밝히는 생물학이 함부로 기득권자들에게 이용되는 위험을 막을 방패라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도킨스의 밈이라는 개념도 문화적 진화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생물학자들은 문화권에서 보이는 인간의 특성이 유전자에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윌슨 등이 이러한 사회생물학을 지지한다고 한다.
이를테면 공격성은 인간의 본성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굴드는 오히려, 행동의 유연성을 인간의 본성으로 지적한다.
어떤 상황에서는 공격적이 되고, 어떤 상황에서는 평화적으로 행동하는 것, 즉 환경에 적절하게 대응하도록 행동을 바꿀 수 있는 것이 바로 지능의 가장 큰 특징인 유연성이라는 것이다.
사회생물학자들의 주장은 가끔 모든 것이 유전자에 내제되어 있다는 말인가, 하는 허무주의와 변화의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얘기인가, 하는 절망감을 느끼게 할 때가 있는데, 적용의 범위와 한계가 학자들에 따라 차이가 많은 모양이다.
제일 의아했던 것이 나는 아이를 굳이 원하지 않는데 이런 것은 인간의 본성에 위배되느냐는 문제였다.
굴드는 자식을 가질 수 없는 동성애자의 성향이 인간의 풀 속에서 계속 유지되는 것을 이렇게 설명한다.
동성애자들은 이성애자가 낳은 아이들을 돌봄으로써 그 집단의 생존률을 높히는 역할을 한다.
그들의 손에 자란 아이들은 동성애자의 유전 코드를 복사함으로써 동성애 성향을 계속 이어갈 수 있다.
나는 동성애자는 아니지만, 자손의 번식에 대해서는 특별한 욕구가 없는데, 이것이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설명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굴드는 재치있는 문장을 잘 구사한다.
기본적으로 문장력이 괜찮은 편이며, 무엇보다 위트가 있어서 좋다.
번역본으로 읽어야 한다는 게 안타까울 정도로 톡톡 튀는 문장들이 많아서 읽는 내내 무척 즐거웠다.
기본적으로 유명한 학자가 되려면 문장력도 훌륭해야 하는 것 같다.
세이건이 수사적인 문장을 많이 구사하는 데 비해, 굴드는 재치있는 문장이 많다.
도킨스는 비꼬는 식으로, 정면 공격을 잘한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수사를 늘어 놓는 창조론자들이나 유사과학자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정면으로 공격하기 때문에 읽을 때 시원한 느낌이 든다.
이렇게 즐거운 책을 쓸 수 있는 과학자가 겨우 60의 나이에 폐암으로 세상을 떴다는 게 너무 안타깝다.
세이건도 그렇지만, 60이라는 나이는 21세기에는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젊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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