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라
토니 모리슨 지음, 송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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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라.... 이 인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소설의 배경은 대체로 1920~1930년대 조그만 흑인 마을이지만, 2020년대 대한민국의 독자에게도 강렬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인물 때문이리라. '술라'보다는 '넬'처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여성들에게 '넬'의 존재는 '술라'를 이해하기 위한 좋은 대척점이자 통로라고 할 수 있겠다. 소녀 시절 둘도 없는 단짝이지만 자라온 환경도 성격도 전혀 다른 두 사람은 결국 다른 길을 가게 되는데.. 이런 설정은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시리즈를 떠올리게 한다. 


'넬'의 어머니 헐리 라이트는 창녀인 어머니로부터 멀리 도망쳐 넬을 키우고, 넬에게서 반짝이는 어떤 것이라도 발견될라치면 그걸 깊숙이 묻어버리는 사람이었다. 증조할머니의 장례에 참석하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 늘 당당하고 우아했던 어머니가 백인 앞에서 "조금 전에 걷어차여 내쫓겼던 거리의 개가 걷어차인 바로 그 푸줏간 문설주에서 금세 꼬리를 흔드는 것처럼"(38쪽) 미소짓는 모습을 보고, 유색인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 도로변에 쭈그려앉아 소변을 보는 일을 겪으면서, 넬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으로 살겠다고 결심하고, 여행을 떠나는 상상을 하기 시작하지만 결국 보텀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다.

반면, '술라'는 늘 사람이 오가고 구조가 바뀌는, 혼란으로 가득 찬 집에서 자라났다. 할머니 에바는 세 아이의 목숨을 자기 한쪽 다리와 맞바꾸었고, 그렇게 살아남은 첫딸 해나는 일찍 남편을 잃은 후 술라와 함께 에바의 집에서 함께 산다. 술라의 어머니 해나는 늘 남의 남자와 정사를 나누는 사람, 술라를 "사랑하지만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술라는 자기 아이를 불태우는 사랑을 보았고, 놀아주던 아이를 물에 빠뜨려 죽게 해도 숨길 수 있음을 알았으며, 어머니가 불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술라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어떤 자아도 확립하지 못한 상태로 보텀을 떠난다. 그리고 10년 만에 돌아온다. 


'술라'가 돌아와 마을에서 보인 행보는 전복적이다. 그녀는 결혼하지 않고, 한 남자와 한 번씩만 자며, 할머니를 부양하지 않는다. 그 대가로서 술라는 마녀화 되는데, 술라를 신비한 악마적 존재로 대하는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달리 오히려 그녀는 아이 같고, 물 같다. "그녀는 자신만의 생각과 감정을 탐색하고 오로지 거기에만 매달리면서, 남의 쾌락이 자신을 즐겁게 해주지 않는 한 그 누구도 기쁘게 해줄 의무감을 느끼지 않으면서 살아왔다. 고통을 주는 것만큼이나 기꺼이 고통을 느끼고, 쾌락을 주는 것과 동등하게 쾌락을 느끼려 한 그녀의 삶은 실험적이었다.(...) 한마디로 자아라는 게 없었다. 그런 이유로 그녀는 자신을 입증해야 할, 자기 자신으로 죽 남아 있어야 할 어떤 의무감도 느끼지 않았다."(171,172쪽) 

술라가 결국 누군가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라는 걸 처음 느끼게 되었을 때, 그 대상은 떠나버렸다. 그때야 비로소 술라는 "난 모든 노래를 다 불러봤어. 다 불러봤다고. 존재하는 모든 노래를 다 불러봤어."(197쪽)라며, 자기 자신을 찾은 만족감을 느낀 것이 아닐까? 남들처럼 살면서 술라를 이해하길 거부한 넬에게, 술라는 이렇게 말한다. 내 외로움도 내 것이라고.


"정말? 그 증거로 보여줄 수 있는 게 뭔데?"

"보여줘? 누구한테? 얘, 내 마음은 내가 갖고 있어.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것도. 무슨 말이냐면, 나는 내 거야."

"외롭잖아, 그렇지 않니?"

"그렇지. 하지만 내 외로움도 내 것이야. 지금 네 외로움은 누군가 딴사람 거고. 딴사람이 만들어서 너에게 건네준 거지. 그게 뭐 대단하니? 중고 외로움이지."  (205쪽) 



-------------------이하 스포일러 주의-------------------


<술라>는 그 전체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보텀bottom'이라는 이름의 흑인 마을이 실은 언덕배기에 자리하였다는 모순 - 백인들이 거주하는 골짜기 메달리온을 바람으로부터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바로 그 언덕배기에 위치한 흑인들의 참담한 삶이 있고, 거기서 모든 이야기는 진행된다. 또한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잊기 위해 '전국자살일'을 만든다는 모순, 자기 아이를 태워 죽인 어머니가 또 다른 자기 아이를 불에서 구하기 위해 2층에서 뛰어내렸다는 모순, 한 여자를 마녀로 만듦으로써 다른 모든 마을 사람들이 애정으로 뭉쳤다는 모순. 


한편 이 소설 속 여성들의 특징은 대단히 강인하다는 것인데, 대체로 남성들이 처자식을 두고 떠나버리거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술과 약에 취하는 것과 대비된다. 특히 강렬했던 인물은 술라의 할머니 에바. 그녀는 남편 보이보이가 떠나버린 후 "1달러 65센트와 달걀 다섯 개, 사탕무 세 개"를 가지고 어린 세 아이를 건사하며 살아내야 했다. 한겨울 밤중에 배가 아파 우는 막내 플럼을 안고 변소로 가서 마지막 남은 라드(고기기름)를 이용해 손가락으로 변을 빼내 준 날, 그녀는 굳은 결심을 하고 아이들을 이웃에 맡긴 채 떠난다. 그녀는 세 아이의 목숨을 자기 한쪽 다리와 바꾸었고, 그렇게 살린 플럼을 제 손으로 떠나보냈다. 하, 이 장면에서 나는 심장이 조여들고 목메여서 잠시 읽기를 중단해야 했다..ㅠㅠ 



메달리언 주민 누구라도 가장 더운 날로 기억할 오늘, 너무 더워서 파리도 잠을 자고 고양이도 털을 깃처럼 펼치고 있는 날, 너무 더워서 임신한 부인네들이 나무에 기대 울고 있는 날, 여자들은 석 달 묵은 상처를 떠올리며 애인의 음식에 유리 가루를 넣고 남자들은 음식을 보고 그속에 유리가 들었을지 모른다고 의심하면서도 너무 더워서 먹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어 그것을 먹었을 만큼 더운 날, 이렇게 더운 때 중에서도 가장 더운 날에도 에바는 살을 에는 듯한 추위와 변소의 악취에 덜덜 떨었다.  (106쪽)


어쩌면 토니 모리슨은 이렇게 처참한 이야기를 아름다운 문장들에 담을 수 있을까? 짧은 분량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 마법적이고 우화적인 요소가 있으면서도 리얼리티를 잃지 않는 소설. 몰아서는 결코 읽을 수 없겠으나, 계속하여 읽으리라 다짐하게 만드는 토니 모리슨의 작품.


* ㅈㅈㄴ님 리뷰를 찾아보니 내가 거기에다 "어서 책 읽고 리뷰 마저 읽으러 올게요"라고 썼던 게 2년 전이다 ㅋㅋ  


11월에 그가 떠났을 때 에바에게 남은 것은 1달러 65센트와 달걀 다섯개, 사탕무 세걔였다. 무슨 감정을 어떻게 느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아이들에게는 그녀가 필요했고 그녀에게는 돈이 필요했고 자신의 삶을 꾸려나갈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당장 세 아이들을 먹여 살릴 일이 너무나 절박해서, 분노할 시간과 에너지가 둘다 생길 때까지 이 년 동안은 자신의 분노를 미뤄야 했다. - P53

그를 오랫동안 깊이 증오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고부터 그녀의 마음은 즐거운 기대감으로 가득찼다. 누군가와 곧 사랑에 빠지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행복한 조짐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릴 때처럼. 보이보이를 증오하면서 에바는 그 증오로 살아나갈 수 있었다. 증오로 자신을 정의하고 강하게 만들로 일상에서 상처입지 않도록 보호하고 싶은 한, 혹은 그럴 필요가 있는 한, 그 증오는 안전했고 흥분을 주었고 지속적이었다. - P59

악의 목적은 그것을 견디는 것이며, 사람들은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홍수, 백인들, 홍역, 기근과 무지를 견디기로 결심했다. 그들은 분노는 잘 알았지만 절망은 몰랐다. 자살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로 죄인들에게 돌을 던지지 않았다. 그들이 할 법한 일이 아니었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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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3-09-18 2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년 전 약속을 지키신 건가요?ㅎㅎ 술라 저도 읽어야 하는데...ㅠㅠ 스포될까봐 저도 리뷰는 나중에 읽어야할 것 같습니다.

독서괭 2023-09-19 07:17   좋아요 0 | URL
2년이 그냥 후딱 지나가버렸네요^^;; 화가님 술라 갖고 계신가요? 금방 읽으니 주말에 한번 펼쳐보셔요^^

책읽는나무 2023-09-18 2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호...지킨다면 지킨다!!ㅋㅋ
전 이 책을 읽었다고 여겼는데 음...안 읽었나 봅니다. 전혀 색다른 내용!!

독서괭 2023-09-19 07:17   좋아요 1 | URL
몇년이 지나든 지킨다면 지킨다 ㅋㅋㅋ 저도 리뷰 안 써두면 좀 지나면 새롭더라고요?ㅋㅋ 리뷰를 써야 합니다!

은하수 2023-09-18 2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년만에 드뎌 해내셨네요~~~
저도 이 책 읽은 듯한데 안 읽었고 이렇게 다른 이웃님들 리뷰를 읽은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독서괭 2023-09-19 07:21   좋아요 1 | URL
ㅎㅎㅎ 여러 리뷰를 읽다보면 읽은 듯한 느낌이 들죠. 하지만 토니 모리슨은 직접 읽어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잠자냥 2023-09-18 22: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했어요. 괭 2년! ㅋㅋㅋ

독서괭 2023-09-19 07:22   좋아요 1 | URL
큭큭큭 장기 프로젝트…. 😂😂😂

다락방 2023-09-18 22: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모두 ㅈㅈㄴ 님 리뷰에서 만나는건가요..

아 그런데 이 책 읽기 너무 힘들겠네요. 너무 힘들겠어요. ㅠㅠ

잠자냥 2023-09-18 23:08   좋아요 2 | URL
토니 모리슨은 재미(?)있습니다.

독서괭 2023-09-19 07:23   좋아요 2 | URL
<빌러비드>만큼 힘들진 않아요 다락방님. 저는 좋기도 빌러비드가 더 좋았지만. 재밌는데, 무심하게 툭툭 던져놓는 처참함이… 쩝… ㅜㅜ

페넬로페 2023-09-19 08: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댓글로 ˝읽겠습니다, 읽어야 겠어요˝, 라고 말한 거 세어보면 엄청날 것 같아요.
ㅎㅎ
술라는 읽었는데 기억이 잘 안나 다시 읽어야겠어요~^

독서괭 2023-09-19 13:06   좋아요 1 | URL
페넬로페님, 저도 읽고싶다, 읽겠다고 해놓고 못 지킨 일이 너무 많아서.. 요즘은 그 말은 잘 안 합니다 ㅋㅋ
술라 기억 안나시면, 짧으니 재독 고고!!

새파랑 2023-09-19 1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토니 모르슨 작품이 좀 비참한 이야기가 많군요. 강인해보이기도 하지만 ㅜㅜ 술라가 사람 이름이었군요~!! ㅋ

독서괭님 리얼 토니 모리슨 찐팬이십니다~!!

독서괭 2023-09-19 13:07   좋아요 1 | URL
네 새파랑님. 술라 등장까지 시간이 좀 걸려서 뭘까, 했네요^^
토니 모리슨 찐팬 되려면 멀었습니다. 가지고 있는 <재즈>랑 <보이지 않는 잉크>도 언젠가 읽겠죠~!
 

이번주 며칠 빠졌더니 진도가 자꾸 늦어져서, 50분의 자유시간 이용해서 공부공부. (다시 찾은 50분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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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9-16 1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독서괭 2023-09-16 15:38   좋아요 0 | URL
😘😘😘😘😘

건수하 2023-09-16 1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말에도 열공 _

독서괭 2023-09-16 15:38   좋아요 0 | URL
다들 열심히 하셔서 불끈 ㅋㅋ

잠자냥 2023-09-16 12: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괭 그만 자고 일어나!

독서괭 2023-09-16 13:05   좋아요 1 | URL
쓰읍(침닦기)

페넬로페 2023-09-16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혼자 살짝 웃었어요.
저도 알라딘에서 준 사은품,
책 속에 끼어놓고 북마크와 메모지로 사용하고 있거든요~~

독서괭 2023-09-16 15:39   좋아요 1 | URL
흐흐 일력 좀 쓰다가 말고 해를 넘겼는데 메모지로 쏠쏠히 사용중입니다. 페넬로페님도^^

단발머리 2023-09-16 1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아름다운 공부의 모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멋져요, 독서괭님!!!!!!!

독서괭 2023-09-16 20:06   좋아요 1 | URL
감사해요 멋진 단발님!!^^😘
 


Chapter 6 The Jewish People


- God Speaks to Abraham -


옛날, 아주 머언 옛날에, 메소포타미아의 도시 "Ur"(우르 *이미지 참조)에 Terah라는 남자가 살고 있었어요.

그에게는 아들 Abram이 있었고, 며느리 Sarai도 있었지요.

장사를 하던 Terah는 메소포타미아를 지배하던 Sargon이 죽은 후 Gutians 부족(위키피디아에 보니 결국 이들이 Ur를 함락한 듯?)이 자꾸 전쟁을 일으키자 불안해져서, ziggurat(*이미지참조)에 가서 the moon-god에게 기도하기도 했답니다.

결국 Terah는 아들,며느리와 함께 "Haran"이라는 북쪽 도시로 이사했어요. (지도에 안 나오는데, 다른 데서 찾아보니 지도상 더 위쪽에 위치하는 듯. Haran을 검색하니 Terah의 아들 중 하나라고 나와서 헷갈림.) 

Terah가 죽고 나서, 어느날 Abram은 신의 목소리를 듣게 되지요. "I am the ond God"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는 그에게 "Cannan"(*이미지 참조)으로 가라고 말합니다. 말 잘 듣는 그가 Cannan으로 식솔을 모두 이끌고 옮겨가자, 신은 너와 네 아내가 모든 이의 부모가 될 것이라 약속합니다. Sarai는 이미 90이 넘은 나이였으므로 이들은 웃고 말지만, 이름까지 개명한 (Abram-> Abraham = father of many children / Sarai->Sarah = princess) 이들에게 아이가 태어나지요. (90세에 출산이라니..가혹하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Issac, 그 이름은 'laughter'라는 뜻이랍니다. 

Issac은 Jacob을 낳았고, Jacob은 열두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이들의 이름을 딴 12부족은 "became known as the nation of Israel, or the Jewish people". 


- Joseph Goes to Egypt - 


Jacob은 열두 아들 중에도 Joseph을 가장 예뻐했어요. 어느날 Jacob은 Joseph만 불러서 몹시 아름답고, 부드럽고, "trimmed with a border of purple" 한 코트를 선물합니다. 다른 형제들은 grumbled about Joseph's coat, but he boasted about his coat. 

요셉이 꼴보기 싫었던 형제들은 그를 몰래 노예로 팔아버립니다. 그러고는 이들은 코트에 smeared some goat blood 한 후 야곱에게 요셉이 죽었다고 뻥치죠. 


이집트에 노예로 끌려간 요셉, 그러나 운좋게도 그는 Potiphar(이름임. 당시 the captain of the pharaoh's guards. 파라오의 경호대장?)의 신임을 얻지만, 경호대장의 아내가 요셉을 모함하여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아이들을 위한 책이라 간단히 넘긴 것 같은데, 사실 아내가 요셉을 유혹하려 했는데 요셉이 도망가자 그가 자기를 강간하려 했다고 모함했다는 내용. 이것이 '꽃뱀' 신화의 모태인가??) (* 이미지 참조)


감옥에 갇힌 요셉. 어느날 다른 수감자의 꿈을 '감옥에서 곧 나간다는 뜻'이라고 해몽해 주었는데, 며칠 후 정말로 간수가 오더니 "You've been pardoned"라며 풀어줍니다. 요셉은 출소하는 수감자에게 나를 잊지 말라며 신신당부하지만 홀랑 까먹어버리는 으-리없는 수감자. 그러나 신은 아직 요셉을 버리지 않았으니, 어느날 파라오가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하자, 드디어 요셉을 생각해낸 수감자에 의해 파라오 앞에 오게 되지요. 

꿈 내용은 "seven fat cows graze. seven thin cows swallowed the fat cows." -> 요셉은 그 의미를 "7년 동안 풍작, 그 후 7년 동안 가뭄"이라 해몽하고, 요셉이 마음에 쏙 든 파라오는 "I will put you in charge of gathering the grain" 하며 그를 chariot에 태워 방방곡곡에서 식량을 모으게 합니다. 

7년 뒤, 진짜로 famine이 찾아옵니다. 저 멀리 Cannan에서 굶주리던 형제들이 식량을 구하기 위해 이집트에 오자, 요셉은 이들을 용서하고 모두 이집트로 이주하게 합니다. 그들은 다른 이집트인들이 여러 신을 믿는 와중에도 꿋꿋이 그들을 인도한 "the one god"을 worship 했답니다. 끝. 



*  Ur (우르, 이미지출처: 위키피디아)  



* Ur 에 있었다던 ziggurat (이미지출처: 위키피디아)




* Canna의 위치. 도시가 아니라 지역이네요. (이미지출처: 위키피디아)




* 경호대장 부인의 유혹에 도망치는 요셉. 

 Joseph and Potiphar's Wife - Filippo Falciatore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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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3-09-15 19: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저 이미지에 나오는 Amorite (Jerusalem 약간 오른쪽) 이 제가 오늘 올린 분량에 나오는 왕 Shamsi-Adad의 출신지역 입니다 :) 레반트 지방이라고 하더니 저쪽이군요. 저때는 지중해를 The Great Sea라고 불렀나봐요 ^^

독서괭 2023-09-15 19:48   좋아요 1 | URL
오호 그렇군요. 계속 지도를 보며 읽어야겠어요 ㅎ 사르곤도 the great Sargon이라고 나오던데 great가 최고 좋은 뜻이었나 봅니다 ㅎㅎ

거리의화가 2023-09-16 0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글 지도 굉장히 친절하네요!ㅎㅎ
저도 90세에 출산이라니 너무했다라는 생각과 더불어 꽃뱀 신화 끄덕끄덕했습니다. 역시 그림이 있었군요^^

독서괭 2023-09-16 17:14   좋아요 1 | URL
역시 한글로 보니 눈이 확 트이더군요 ㅋㅋㅋ
네 그림도 여러개 있나 봐요! 요셉 꽃미남 ㅋㅋㅋ

단발머리 2023-09-16 1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성경에는 보디발의 아내가 여러 번 꼬셨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창세기 39:10) ㅋㅋㅋㅋㅋㅋㅋ 죄송합니다. 잘생긴 청년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독서괭 2023-09-16 20:05   좋아요 1 | URL
날마다요?? ㅋㅋㅋ 엄청난 열정이네요 ㅋㅋㅋㅋㅋ ㅋㅋ

단발머리 2023-09-16 20:23   좋아요 0 | URL
😍😍😍 이렇게 되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맨날 ㅋㅋㅋㅋㅋ
 
호르두발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카렐 차페크 지음, 권재일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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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후에 사람들은 나에 대해 뭐라고 말할까?

지인이 사망했을 때, 혹은 죽은 사람에 대해 신문에서 떠드는 모양을 볼 때, 많은 이들이 이런 생각을 해볼 것이다. 

오래전 부검에 대해 알게 되었을 무렵, 나는 꼭 부검이 필요 없는 명확한 사인(死因)에 의해 죽게 되기를 바랐다. 그때는 신체가 낱낱이 해부되는 게 불편하고 유족에게 끔찍한 일이라 그랬지만, 이제는 정신적인 측면에서 더욱 그걸 바라게 되었다. 말이 많이 나게 되는 죽음, 그 원인을 파헤치다 보면 망인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을까? 


<호르두발>은 부정적인 답을 내놓는 것으로 보인다. 이보다 앞서 읽은 <평범한 인생>에 비하여 어둡고 공허한 느낌을 주는데, 해설을 보면 조금 이해가 된다. <호르두발>에서 '어느 누구도 주인공의 진실에 접근할 수 없다'는 명제(테제)가, <별똥별>에서 '누구라도 주인공의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는 반명제(안티테제)가 제시되며, 마지막으로 <평범한 인생>은 '주인공 자신의 내면에 들어 있는 여러 모습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진실을 확보'하게 되는 합명제(진테제)를 담아냄으로써 카렐 차페크의 '철학 3부작'은 완성된다. (284쪽) 


내용을 간단히 보자. 

유라이 호르두발은 고향에 아내와 어린 딸을 두고 돈을 벌러 아메리카에 갔다가 8년 만에 귀향한다. 추레한 모습으로 도착한 남편을 본 폴라나는 몹시 당황할 뿐 조금도 반겨하는 기색이 없는데.. 딸 하피에는 아빠가 낯설기만 하다. 집 안의 머슴으로 들어와 있다는 스테판 마냐는 호르두발과는 여러모로 반대편에 있는 젊은 사내다. 이들의 기묘한 동거생활, 호르두발의 누구에게도 뱉어내지 못하는 괴롭고 외로운 독백이 1부의 전반부를 구성한다. 폴라나와 스테판이 그렇고그런 사이라는 소문을 듣게 된 호르두발은 스테판을 내쫓지만, 폴라나의 무언의 시위에 견디지 못하고 하피에와 약혼시키겠다며 스테판을 다시 데려오고, 스테판의 성질을 계속 긁은 후 다시 내쫓는 희극을 벌인다. 어느 날 빗속을 헤매고 온 호르두발은 병을 앓아 눕게 되는데... 

전체 분량의 2/3를 차지하는 1부(이 소설은 3부로 이루어졌다)는 호르두발의 떠들썩한 침묵(호르두발은 말수가 매우 적지만 그의 내면에서는 여러 사람과의 대화가 오간다)으로 이루어져 다소 지루한 순간도 있다. 하지만 끝까지 읽고나면 이 부분이 꼭 필요했음을 알게 되니 꾹 참고 읽어 보시길. 


--------이하 스포일러 주의-----------


2부와 3부는 완전히 분위기가 다르다. 화자가 바뀌었기 때문. 이미 사인(死因)이라는 말을 던져두었기 때문에 새삼 스포일러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바로 호르두발의 죽음 이후에 일어난 일들을 다루고 있는 것. 호르두발의 죽음은 사인도 경위도 동기도 불명확하여 경찰관들이 수사에 나선다. 2부에서 수사를 마치고 3부에서는 법정 풍경이 펼쳐진다. 피고인으로 기소된 것은 폴라나와 스테판. 많은 사람들이 증인으로 나와 호르두발의 삶에 대해, 폴라나와 스테판의 행적에 대해 증언한다. 우리는 1부에서 호르두발의 내면을 보아 그의 진실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으므로, 2,3부에서 그의 진실이 어떻게 왜곡되는지 보면서 허탈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호르두발이 고향에 돌아오면서 소중히 품에 안고 온 상당한 액수의 달러는 매우 상징적인 역할을 한다. 그는 그 돈으로 무엇을 할까 상상한다. 소를 사고, 폴라나가 팔아버린 목초지를 다시 사고, 마을 사람들에게 한턱 내며 우쭐대고..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그의 머릿속에서만 진행될 뿐이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입밖에 내지도 실행하지도 못한다. 결국 그의 죽음 후 그가 목에 걸고 다니던 돈주머니는 사라지고 만다. 

과연 표현되지 않은 선의는, 전달되지 않은 생각은 진실이라 할 수 있을까? 또는 고인의 생전에 그의 의사로 분명히 표현된 것이라 하여 진실이라 믿을 수 있을까? 호르두발은 생전에 그의 모든 재산을 "부인으로서의 그녀의 정절과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폴라나에게 상속한다는 내용의 유언장을 작성해 두었다. 또한 그는 생전에 스테판과 하피에를 약혼시키고 그에게 상당한 재산을 주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에 의해 우리는 그가 품었던 생각- 의심과 선의-도 알 수 없고 그 자체(폴라나의 정절과 사랑)를 사실로 믿을 수도 없다. 호르두발 살인사건에 대한 아무런 직접적인 증거도 없고, 스테판의 자백은 증거와 들어맞지 않는다. 진실은 대체 무엇인가? 진실이란.. 과연 존재는 하는 걸까? 


유라이 호르두발의 심장은 어딘가에서 분실되었고 영원히 매장되지 않았다. (281쪽)


이 작은 마을에서 남편을 배신하고 머슴과 간통하며 심지어 남편을 죽이기까지 한(아마도) 폴라나는 순식간에 악마화/마녀화 된다. "자신의 부인을 믿지 못하는 삶은 과연 어떠할까!"(248쪽), "그런데 폴라나의 목을 매달지 않는다고 한다면 여자들이 조만간 줄줄이 자기 남편들을 살해하지 않을까?"(249쪽)

이런 상황에서 변호인의 아래와 같은 변론은 중요한 부분을 지적한다. 


신사 여러분, 잠시 생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들 중 그 누가 자신의 가까운 사람이나 이웃 사람 앞에서 완전히 안전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주위사람들이 여러분들에 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혹시 아십니까? 아마도 이 여자에 관한 것보다도 더 나쁜 것일 수 있습니다. 어떠한 완전무결도 비열한 험담과 중상으로부터 여러분들을 보호할 수 없을 것입니다. (266쪽)    



이 책도 곱씹을수록 좋았는데, 별을 네 개 준 이유는 1부가 다소 지루해서 다시 읽을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 그래도 카렐 차페크의 철학 3부작은 소장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미 <별똥별>을 사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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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9-15 11: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266쪽 인용문이 진짜 허를 찌르네요. 그러게요. 저도 비열한 험담의 대상으로 수시로 소환될텐데요. 다른 사람의 험담을 일삼고 다른 사람의 프라이빗한 상황을 가벼이 전달하는 그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험담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수시로 해야 할텐데 말입니다.
책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저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이니 평소에 정리정돈을 잘해둬야 할텐데 생각해요. 제가 없는 곳에서 제 자리 정리하려던 사람은 경악할 테니까요.. ㅠㅠ
생각만 하고 있네요. ㅠㅠ

독서괭 2023-09-15 12:55   좋아요 2 | URL
또다시 생각나는 다락방님의 책상샷...ㅋㅋㅋㅋㅋ
전 가끔 갑자기 죽게 되면 알라딘 서재를 어떻게 해야하나, 서친님들께 어떻게 알려야 하나 고민해봅니다. 가족,친구 누구도 모르고 있기 땜시.. 한명한테만은 얘길 해놔야 하나 싶기도 하네요. 가끔 갑자기 사라지는 서친님들 계신데 궁금하고 걱정도 되고 해서요 ㅠㅠ
이 책 좋아요 다락방님. 그러고보니 <평범한 인생>에서 병든 노년의 화자가 열심히 하는 일이 책상정돈이었던 것 같은데 ㅎㅎ 이 책도 읽어보시면 좋겠네용!
참, 인용문 보면서 저도 그런 생각 했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도 남의 얘기는 더 조심해야겠다 다짐하게 되네요.

페넬로페 2023-09-15 20: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호르두발, 별똥별, 평범한 인생
순서로 읽어아 하는 건가요?
우리가 사실 타인에 대해 얼마나 알 수 있을까요!
내 속에 있는 나도 모르는데요.

독서괭 2023-09-15 21:15   좋아요 1 | URL
페넬로페님,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땡기는 것부터 읽으심 될 듯요. 저도 알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반테제라는 별똥별은 어떤 내용일지 궁금합니다!

새파랑 2023-09-15 2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ㅋ 독서괭님 차페크의 팬이 되신거 같습니다 ㅎㅎ 스포일러 위까지만 읽었는데 완전 재미있을거 같습니다~!!

독서괭 2023-09-16 13:13   좋아요 1 | URL
차페크 계속 읽을 것 같아요^^ 새파랑님 이 책도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9장 뉴라이트가 벌이는 원한의 정치


오호. 9장은 매우 흥미롭고, 역시나 열받는 내용 투성이다. ㅋㅋ 페미니즘은 열뻗침과 함께합니다. 

대놓고 여성의 권리에 반대하는 게 어려우니 오히려 '여성해방'의 용어를 가져다 쓰면서 여성들에게 '진정한 선택권'을 준다는 - 뜯어보면 결국 그 선택이란 건 가정으로 돌아가는 것 뿐이지만 - 궤변을 외치는 방식은 앞서도 저자가 누누히 말해왔다. 하지만 이 장에서는 정치적으로 뉴라이트라는 집단이 어떻게 '가족 친화적', '모성 친화적'이라는 등의 용어로 자기들 이미지를 세련되게 포장했는지 보다 자세히 알려준다. 

뉴라이트 여성들이 얼마나 페미니즘에 유해한지 생각하면 아찔하고 씁쓸하다. 이들 중에는 '마슈너'라는 사람처럼 진심으로 여성이 능력만 있으면 차별받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화려한 성취로 여성들의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자신이 누린 기회들을 처음부터 박탈당한 이들도 있다는 점을 외면하고 그냥 "하면 된다"라고 외치며 여성들에게 명예 남성이 되길 권한다. 자신은 아주 적극적인 외부활동을 펼치면서도 여성은 가족의 품에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여성들은 "사적으로 페미니즘을 이용"하면서도 다른 이들이 페미니즘의 수혜를 누리지 못하게 막는다는 점에서 상당히 악의적이다. 


읽다가 궁금했던 점, "오웰식 말장난"이 뭘까? 조지 오웰일텐데. 오웰이 이런 말장난을 즐겨했던 걸까?



* 인용문



오늘날의 반격에 출생지가 있다면 아마 이곳 뉴라이트 집단 속일 것이다. 바로 여기서 반격은 처음으로 분명한 이데올로기적 의제를 가진 운동으로 꼴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뉴라이트의 대표 주자들은 여성평등은 여성의 불행을 낳는다는 반격의 핵심 주장을 만들어 낸 최초의 인물들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들은 가장 널리 인용되지만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죄, 도덕적 가치보다 물질주의를 더 드높이는 (그러니까 여성들을 탐욕스러운 여피로 만드는) 죄와 전통적인 가족지원 시스템을 뒤흔드는(그러니까 여성들을 생활 보조금에 기대 사는 엄마들로 전락시키는) 죄를 저질렀다며 페미니즘을 비난한 최초의 집단이기도 했다. 주류에서는 이들의 과열된 비유와 지옥불의 이미지를 거부했지만 이들의 핵심적인 정치적 메시지는 살아남아서 미디어의 ‘트렌드‘로 변질되었다. 362,363


정치학자 시모어 마틴 립셋과 얼람은 현대 미국의 정치에서 나타나는 이런 주기적인 현상을 연구하면서 ˝반격의 정치는 자신들의 중요도, 영향력, 권력이 줄어든다고 느끼는 집단에 의한 반동으로 정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고전적인 보수 세력과는 달리 이런 ‘사이비 보수층(이는 테오도르 아도르노 Theodore Adomo가 이런 현대의 우익 운동 세력을 지칭한 표현이다)‘은 스스로를 현 상태의 수호자가 아니라 사회적 외톨이라고 인식한다. 이들은 지배 질서를 옹호하려 하기보다는 철이 지난 질서나 상상 속의 질서를 복원하려 한다. 363

이는 뉴라이트의 이상을 상징하는 최초의 법안 발의였다. 이들은 이 법안을 가족보호법Family Protection Act이라고 불렀지만 결국 이들이 1981년 의회에 소개한 법안은 가족에게 도움을 주는 것과는 무관했다. 사실 이 법안의 목표는 단 한 가지, 여성운동의 거의 모든 법적 성취를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이 법안에서 제안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남녀 평등 교육의 근간이 되는 연방법들을 없애고, ˝모든 스포츠나 여타 학교 관련 활동에서 남녀가 섞이는 것˝을 금지하고, 결혼과 모성이 여학생에게 적합한 직업이라고 의무적으로 가르치도록 하고, 비전통적인 역할을 맡는 여성을 담은 교과서를 사용하는 모든 학교에 연방의 자금을 중단시키고, 구타당한 아내를 남편으로부터 보호하는 모든 연방법을 폐지하고, 낙태에 대한 조언이나 이혼을 원하는 모든 여성에게 연방의 자금으로 법적 원조를 하지 못하도록 금지할 것. 이 법안은 전체적으로 무언가를 금지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는데, 이 기나긴 금지 목록에서 유일하게 무언가를 하자고 제안한 것은 기혼 여성이 아이를 낳고 집에서 지내도록 유도하기 위한 새로운 세금 인센티브 뿐이었다. 369,370

뉴라이트는 여성들이 새롭게 획득한 출산에 대한 권리에 반대하면서 여기에 ˝ 생명 친화적˝이라는 표현을, 여성들이 새롭게 포용한 성적 자유에 반대하면서 여기에 ˝순결 친화적˝이라는 표현을, 그리고 여성들의 대대적인 직업 시장 진출에 적개심을 표출하면서 여기에 ˝모성 친화적˝이라는 표현을 갖다 붙였다. 마지막으로 뉴라이트는 그들 자체, 그러니까 여성의 권리 신장에 반대하는 자신들의 퇴행적이고 부정적인 태도에 ˝가족 친화적˝이라는 표현을 갖다 붙였다. 과거 남녀평등헌법수정안에 반대했던 집단인 이글포럼은 자신들을 공식적으로 ˝여성해방의 대안' 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1980년 선거 이후 이들은 자신들의 수식어를 “1972년부터 가족 친화적 운동을 선도하고 있는˝으로 바꿨다. 과거 웨이리치는 자신의 적을 ‘여성해방‘이라고 설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웨이리치는 자신의 원수를 ‘반가족 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상황을 주도하는 것은 그였고, 페미니스트들이 그의 프로그램에 반발할 차례였다.
이런 오웰식의 말장난은 뉴라이트 지도자들을 수동성이라는 궁지에서 꺼내 주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날로 증가하는 여성의 독립성에 대한 이들의 분노를 감춰 주는 기능도 해냈다. 이는 성공적인 마케팅 수단이었다. 전통적인 가족의 가치라는 깃발 아래 행진할 경우 이들은 언론으로부터 더 많은 공감을, 그리고 대중들로부터 더 많은 추종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373

마슈너는 그 모욕을 잊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개인적인 상처를 다독거릴 줄 알았다. 스스로를 ‘여자애‘의 하나로 여기지 않음으로써 말이다. 그녀는 스스로를 그 테이블의 반대편에 앉아 여성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명예 남성 중 한 명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순전히 재능만으로 그곳까지 갔다. ˝난 한 번도 직업 시장에서 차별받는다는 느낌을 받아 본 적이 없어요. 난 모든 걸 내 능력을 통해서 얻었어요.” 그녀는 여성에게는 공적인 영역에서 성공할 기회가 없는 게 아니라 능력이 없다는 법칙에서 ‘예외‘적인 존재였다.
따라서 여성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운동은 ˝아둔하다˝고 그녀는 말한다. 어차피 실력이 있으면 성공하게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그건 능력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381

그녀를 비롯한 다른 많은 주부들은 ˝상당히 형편없는 자아상˝과 ˝수동성˝, 그리고 ˝열등감˝에 시달렸다. 그녀는 자기주장을 가지고 ˝장점˝을 발휘하고 싶었지만 교회에 도전하거나 남편을 위협하지 않고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는 만일 자신이 ˝영적인 힘˝만을 추구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기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권위에 대한 갈망을 ˝성령의 힘에 접근하고자 하는˝ 욕망이라는 틀에 끼워 넣으면 용인 가능했던 것이다. 그녀의 야망이 종교의 테두리 안에 있기만 하면 복음주의 공동체 내의 그 누구도 그녀의 야망에 반대할 수 없었다 388

뉴라이트 여성들은 어떤 면에서는 반격의 소용돌이에 갇힌 좀 더 진보적인 ‘여피‘ 자매들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모습이었다. 주류 직장 여성들이 내부적으로 반격이 만들어 낸 자기 의심과 비난에 맞서면서 페미니즘의 원칙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편이었다면, 뉴라이트 여성들은 여성운동의 메시지를 내면화하고 자기 결정과 평등, 선택의 자유라는 여성운동의 교의를 자신의 사적인 행동에 말없이 녹여 내면서도 반페미니즘 관점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었다. 396,397

미국을걱정하는여성모임의 활동가들은 정장을 입고 사무실에 나가 보고를 하고 여성들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언론 보도 자료를 배포하면서도 절대 모순을 느끼지 않았다. 이들은 개인적인 자유와 성 정치에 대한 공적인 입장을 분리시킴으로써 공식적으로는 페미니즘의 영향력을 개탄하면서도 사적으로는 페미니즘을 이용할 수 있었다. 이들이 실제로 ‘모든 걸 가질 수 있었던 건 다른 모든 여성들이 자신들과 같은 기회를 누리지 못하게 저지하는 일에 열성적이었기 때문이다. 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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