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 : In Memory of 申海澈 1968-2014
강헌 지음 / 돌베개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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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이리도 어두웠었기에 더 절실했던 낭만, 지금 와선 촌스럽다 해도

그땐 모든 게 그랬지. 그 때를 기억하는지. 그 시절 70년대를

모두 지난 후에는 말하긴 쉽지만 그때는 그렇게 쉽지는 않았지.”

 

- 신해철, 70년대에 바침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줄리언 반스는 소설 <시대의 소음 (The Noise of Time)>에서 예술과 권력의 충돌로 점철된 쇼스타코비치의 삶을 묘사하였다. 쇼스타코비치는 소련 최고의 작곡가였지만,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 예술과 문화의 영역마저 재단 받으며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았다. 그는 당국의 일방적인 오해로 인해 하루 아침에 형식주의자로 낙인 찍히고 극도의 불안 속에서 음악가로서의 예술적 자유 이전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인간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그는 존경하는 동료 음악가인 스트라빈스키를 자본주의의 하수인으로 매도할 것을 강요 받았고, 말년에는 자신의 신념까지 부정하면서 그의 삶에 수많은 상처를 남긴 공산당에 가입하게 된다.

 

 



나는 시대의 소음을 읽으며, 마왕 신해철을 생각했다. 그 이유는 내가 시대의 소음을 처음 접했던 시점이 그의 기일인 10/27 무렵이라는 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시대의 소음에 맞서 문화는 물론 사회, 정치적 이슈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데 두려워하지 않았던 음악인이었기 때문이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신해철은 나에게 음악인로서 처음 다가왔다. 지금도 드라마의 한 장면으로 인용될 정도로 강렬했던 데뷔의 순간은 당시 어린 내 기억에 많이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데뷔 후 무한궤도와 솔로 활동들 그리고 밴드 넥스트를 결성하고 본격적으로 활동했던 시기는 내 청소년 시절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넥스트의 전성기는 락이라는 장르에 관심을 가지고 빠져들기 시작한 내 중고등학교 시절과 함께 했기 때문이다. 학생시절 용돈을 모아 처음으로 산 콘서트 티켓도 넥스트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또한 아티스트로서 그가 제공하는 음악만이 아닌 더 큰 차원의 음악이라는 넓은 세계로 인도해 준 초대자인 동시에 안내자이기도 했다. 고스트스테이션의 DJ로서 그는 이제 막 음악이라는 세계를 탐구해가는 내게 지도였고 네비게이션이었다. 인터넷이 발달되기 이전이었던 시기였고, 많은 음반을 사기엔 금전적으로 많이 부족했던 학생신분으로서 그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은 내가 좋아하는 음악에 대한 최신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창구였고 동시에 좋은 음악을 선별하고 음악관을 확립하는데 지침이 되는 바이블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 강헌은 예술가는 예술로만 자신의 의견을 표명해야 한다고 굳게 믿는 자들이 아직도 존재하며 그러한 주장은 예술을 신비화하여 현실로부터 소외시키려는 생각 보다도 더 불순한 사고임을 지적하고 있다. (p. 159) 나도 예술가는 그 어떤 한계에도 불구하고 예술의 영역 안에서는 자유로운 존재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예술의 영역 안에서 마저도 예술가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용기와 인내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음악가들은 누구나 자신의 음악이 시대의 소음에 맞서는 역사의 속삭임 이길 바랄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생존의 문제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국가와 권력의 폭력 앞에서 그들은 예술가 이전의 한 명의 고독한 인간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쇼스타코비치가 존경한 스트라빈스키는 혁명후의 러시아에 등을 지고 서방세계에 건너와 미국시민으로 죽었다. 그의 동료 프로코피에프는 서방세계에서 살다가 고국으로 돌아와 탄압과 굴욕 속에서 죽었다. 쇼스타코비치는 러시아에서 태어나 러시아를 떠나지 않고 러시아에서 성장하고 생을 마감하였다. 당신이 예술가라면 예술과 권력의 불협화음이 빚어 낸 시대의 소음 앞에서 어떠한 선택을 내릴 것인가? 당신은 스트라빈스키, 프로코피에프, 쇼스타코비치의 삶을 비판하고 지적할 수 있을까?

 

 

 

내가 인간으로서의 신해철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신해철은 개인의 자유, 그리고 그 한 사람 한사람의 행복만이 인생의 진정한 가치라고 생각한 사람이며, 자신이 가진 모든 무기를 동원해 그것을 위협하고 훼손하는 모든 적과 두려워하지 않고 싸우고자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p. 199) 그는 예술가로서 예술의 영역뿐만 아니라 현실의 영역에서도 자신과 공동체의 신념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높인 사람이었다.

 

 

 

우리가 왜 사느냐라는 질문에 위대한 업적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알려준 아주 멋진 남자가 있었습니다. 마왕 신해철 (p. 444)

 

 

 

락키드 출신답게 내 젊은 시절의 한 챕터를 장식하고 있는 마왕 신해철에 바치는 헌사도 락으로 마무리를 해야겠다. 이언 헌터의 노래 'Old records never die'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 가끔, 인생에도 끝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죠.

하지만 음악은 어디에나 있어요. 결코 사라지지 않는 명반처럼 말이죠."

(Sometimes you realize That there is an end to life.

But music's something in the air. Old records never die.)

 

 

 

시대와 기술의 변화는 많은 것들을 바꿔 놓았다. 하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명반처럼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것들이 있다. 음악을 대하는 진지한 자세, ‘New Experiment Team’이라는 팀명에서도 드러나듯이 락과 밴드음악 포맷 뿐만이 아닌 테크노와 일렉트로니카, 영화음악, 재즈 등을 넘나드는 도전정신은 아티스트로서 그가 가진 장점이다. 그가 남긴 30여장의 디스코그래피는 그에 대한 반증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인간으로서의 신해철은 우리 사회의 마이너리티를 대변하며 목소리를 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 Adios! 내 어린 시절의 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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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수상자가 말하는 아이들 교육은 부모로부터 시작된다 - 아이들이 행복해지는 23가지 방법
나카무라 슈지 지음, 조수기 옮김 / 양문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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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책의 부제 『 노벨상 수상자가 말하는 아이들이 행복해지는 23가지 방법 』에서 알 수 있듯이 14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나카무라 슈지가 쓴 책이다. 책의 제목 『 아이들 교육은 부모로부터 시작된다 』는 저자의 핵심 주장을 잘 표현하고 있다. 저자는 교육을 책임의 문제로 본다면 교육의 당사자는 아이들의 삶과 미래에 대해 책임을 지지도 질 수도 없는 제도권 교육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아이와 가장 가까이 오랫동안 접하는 사람은 부모기 때문에 아이의 개성과 자질, 좋아하는 것을 가장 잘 아는 사람도 부모일수 밖에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자신이 메인스트림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주류는 아니며 교육에 있어서도 비전문가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지만 그 자신이 부모와 일본의 제도권 교육의 수혜자로서 어려움과 고난을 극복하고 노벨상을 수상하기까지 겪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교육 개혁을 위한 23가지 제안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세계가 재료로서의 가능성을 포기한 질화갈륨으로 청색 LED 개발에 성공하여 노벨상까지 수상한 저자의 체험을 바탕으로 저자는 가망 없는 아이는 없고 가망 없다고 보는 편견과 가망 없게 만드는 교육제도가 더 문제일 수 있음을 지적한다. 또한 과학의 엔트로피 증대의 법칙에 빗대어 각양각색으로 개성과 꿈이 다른 아이들을 한가지 잣대로만 평가하고 교육하는데서 교육의 근원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한국에서 교육에 종사하고 있는 역자는 한국과 일본 교육현실의 괴리 문제와 대학입시제도 철폐와 같은 저자의 과격한 주장을 독자들이 한국적 현실에서 이해할 수 있게 도움을 준다.


얼마전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 기사단장 죽이기 』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깊숙이 들여다보면 어떤 인간이든 저 안쪽에 반짝이는 무언가를 갖고 있기 마련이다.” 저자 나카무라 슈지의 말처럼 아이들을 가장 가까이 깊숙이 들여다보는 사람이 부모라면 아이들에게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는 사람도 부모가 아닐까? 한국에서 자녀교육에 성공하기 위한 3대 요소는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라는 속설이 있다. 어쩌면 한국의 사(私)교육이 성공하지 못하고 사(邪)교육으로 전락하는 건 자녀에 대한 진정한 관심이 부족했던 것 때문 아닐까?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서 생각해볼 것이 많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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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아주 먼 섬
정미경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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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기 위해 막 집을 나섰을 때 아내의 핸드폰이 울렸다. 아내의 친한 친구 아버지의 부고 소식이었다. 자식들이 임종도 지키지 못한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그 자신 조차 예상하지 못한 이별 앞에서 먼저 떠난 이는 삶을 정리할 시간적 여유도 갖지 못했다. 남겨진 이들은 되돌릴 수도, 잊을 수도, 없던 일은 더더욱 될 수 없는 준비 없는 이별의 슬픔을 견디며 삶을 살아 갈 것이다.

 

<당신의 아주 먼 섬>의 인물들은 모두 저마다의 슬픔을 안고 있다. 이우는 가장 소중한 친구 태이를 사고로 잃었고, 이삐 할미는 세 명의 아들을 바다에서 차례로 잃었다. 천국은 도서관일 거라는 보르헤스의 말을 믿는 정모는 시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판도는 말하는 능력을 잃었다. 이들의 슬픔의 중심에는 상실과 결핍이 존재한다.

 

인간의 삶은 평범한 사건들이 빚어낸 기적이고 역사다.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삶의 순간 순간들이 누적되어 이루어진 인생은 누구에게나 값지고 귀한 것이다. 그런 순간 순간들이 모여서 시간과 역사를 이루고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개별적 세계가 빚어지기 때문이다. 터무니 없는 죽음도 악다구니 같은 억센 슬픔의 순간이 지나가면 곧 일상이 된다는 (p.130) 소설 속 정모의 말처럼 피할 수 없는 상실과 결핍의 경험도 인생의 한 부분으로 녹아 든다. 하지만 상실과 결핍의 경험은 삶의 온도를 변화시킨다. 상실과 결핍의 경험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공간 감각을 둔화 시키기 때문이다.

 

절벽 아래엔 동굴이 하나 있다. 만 번 또 만 번의 파도가 저 동굴을 만들었겠지. 넌 모르겠지만 내 안에 저만한 구멍이 있어. 내 몸보다 더 커. 휑하고 휑해서 나는 가끔 내가 없는 것 같아. 그 구멍이 언제 생겼는지. 너한테 얘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아무리 네가 못 듣는다 해도. 구멍이 생긴 순간, 그 이전의 나로는 돌아갈 수 없거든. (p. 136)

 

아직도 태이의 크레파스처럼 쨍한 파랑색 베스파 위에 올라앉아 있는 것 같고, 바다에서 눈을 감으면 태이의 숨결이 묽은 콘크리트 반죽처럼 몸을 휘감는다는 이우의 고백처럼 그들은 눈앞에서 펼쳐진 눈부신 자연을, 지금 이 순간의 살아 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지 못한다.

 

먼 하늘에 별 몇 개가 가까스로 돋아났다. 저 별빛은 지푸라기로 변한 누군가가 놓쳐버린 행복의 순간일 수도 있고 스쳐갔으나 잡지 못한 빛나는 순간이기도 하며 다시는 들을 수 없는 지상의 음악일 수도. (p.194)

 

그들은 눈 앞에서 반짝이는 저 별이 누군가의 행복했던 과거 같기도 하고 어쩌면 미래에 들을 수 있을지 모를 지상의 음악 같기도 하지만 결코 현재의 내 것은 될 수 없을 것 같은 감정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렇게 슬픔은 그들을 하나의 섬으로 만든다. 이우가 언급한 슬픔은 깎다 만 사과라는 시 구절처럼 그들 각자는 맑은 슬픔, 헛헛한 슬픔, 차가운 슬픔, 말간 슬픔 등을 가진 하나의 섬이다. 섬은 연결과 단절의 이중성을 가진 특별한 공간이다. 수면 위 드러난 부분을 기준으로 보면 섬은 단절된 공간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수면 밑으로 섬과 섬들은 연결되어 있다. 서로의 고유한 존재 방식, 각자가 겪은 상실과 결핍의 기억들은 그들 각자를 섬으로 만들지만, 그들은 삶의 흔적, 슬픔을 매개로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이해하고 위로하게 된다.

 

저기 섬과 섬 사이. 유난히 빛나는 한점. 거기 어디쯤 네가 있는 듯하다. (p. 105)

 

서로의 존재에 대한 인정그리고 ‘이해’는 품이 드는 일이다. 그것은 타인과 삶의 온도를 맞춰가는 일이며, 상대적 성숙의 시간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그들은 슬픔을 무조건적으로 거부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슬픔의 따뜻함에 대해 긍정하고 진정한 위로의 경험을 얻는다.

 

슬픔이라는 그릇에 담긴 따뜻함이라면 그 힘으로 당분간은 팔을 돌리며 달려갈 수 있지 않겠나 (p. 135)

 

소설 속 정모의 말처럼 그들은 소금꽃을 닮았다. 짜디짠 기운으로 제 슬픔을 절이다 못해 하얗게 엉겨드는섬을 떠났으나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출발했으나 아직 도착하지 못한 사람들은 지친 삶의 흔적들과 슬픔을 간직한 채 섬에서 만난다. 그들을 진정으로 위로했던 건 말 못하는 판도가 이우의 손바닥에 적었던 따스함, 시력을 잃어가는 정모를 위한 이우의 약속이었다. 묵묵히 나를 바라보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내가 사랑 받는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 , 타인의 온기를 느낄수 있다는 것,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이것 이상의 위로가 있을까?

 

그냥 소금이잖아!, 꽃이 별거냐. 징하게 모인 기운이 터져나오면 그게 꽃이다. (p.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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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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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일, 그 공포, 혼란, 좌절의 연속에 대한 인생 현장 보고서"

 

 

이는 이 소설의 홍보문구이다. 소설은 주인공 김지영씨의 이상행동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담당의사가 그녀의 삶을 되돌아보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김지영씨는 "계집질 안 하고, 마누라 때리지 않은 게 어디냐고, 그 정도면 괜찮은 남편이었다고 진심으로 생각"(p. 26)하는 할머니와 "아들이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고, 그게 가족 모두의 성공과 행복이라고 생각하는"(p. 35) 어머니로부터 "여자는 위험한 길, 위험한 시간, 위험한 사람은 알아서 피해야한다고. 못 알아보고 못 피한 사람이 잘못이라고"(p. 68) 배우며 자랐다. 남동생과 남동생의 몫은 소중하고 귀해서 "아무나" 함부로 손대서는 안 되는 것이었고, 불행히도 김지영씨는 그 "아무나"에 속했다. 태어나면서 부여 받은 주민등록번호는 여성은 2번이었고, 초등학생 때의 학급번호도 남자부터였다. 남자부터 급식을 먹었고, 반장도 남자가 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학창시절 남성으로부터의 스토킹, 언어폭력은 그 자체의 고통과 더불어 사회 문화적 분위기를 이해 못하는 사람이라는 낙인으로 이중의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여성에게 가혹한 취업시장에서 홍보대행사에 어렵게 입사하여 악착같이 살아남지만, 아이를 가진 후 버티지 못하고 퇴사한다. 생활도, 일도, 꿈도, 심지어 자신까지 전부 포기하고 힘들게 아이를 키우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건 '맘충'이라는 비난이었다. 그녀는 결국 그녀 주변의 여성들에게 빙의하는 이상증세를 보이게 된다.

 

 

인물, 사건, 배경 등 이 소설을 구성하고 있는 각각의 요소들은 지극히 평범하다. 아니 평범함을 넘어 진부한 쪽에 가깝다. 이 소설은 82년생 여성 중 가장 흔한 이름을 가진 주인공 '김지영씨'가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30대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직간접적으로 경험했을 법한 사건들을 겪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철저하게 평범하고 진부한 개별적 요소로 쌓아 올린 소설의 구성은 역설적으로 이 소설을 빛나게 한다. 소설의 주인공이 '김지영'이 아닌 '김지영씨'인 이유는 '김지영씨'가 현재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에코세대 여성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종 통계자료와 기사들을 근거로 객관적으로 재현해낸 지극히 평범한 그녀의 평균적인 삶은 독자들에게 진부함이 아닌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보편적 체험이자 삶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그럼으로써 그 보편적인 일상이 얼마나 차별적이고 불합리한지 깨닫게 해준다. 이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많은 지지와 공감을 얻은 이유는 우리 주위에 보편적인 평범한 삶을 살아가며 아픔과 상처를 겪고 있는 수많은 "김지영"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지영씨'의 삶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30대 여성들의 이야기이지만 다른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할 삶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어느 누구에게는 결코 경험하지 못한 또 공감하지 못하는 삶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지영씨의 담당의사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좌절을 겪은 아내를 지켜보며 평범한 남자들은 결코 알지 못할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는 여성으로서의 김지영씨의 삶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고 앞으로의 삶을 응원하지만 그러한 그마저도 자신의 병원에서 일할 직원을 채용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여전히 성차별적인 사고에 머물고 있다.

 

 

 

"당신 정말 육아휴직 갈꺼니?"

 

 

 

올해 세상에 태어난 딸에 대한 축하인사 다음으로 회사의 경영지원부문 임원이 내게 건넨 말이다. 일과 가정의 균형을 위해 회사는 올해부터 남성육아휴직을 의무화하기로 하였지만 아직 안정적으로 정착이 되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의 인사와 복지정책을 총괄하는 경영지원부문 임원의 농담인 듯 진담인 듯 건넨 말 한마디는 내게 항거할 수 없는 압박이었고 보이지 않는 권력이었다.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지만 그 안의 소소한 규칙, 약속, 습관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는 소설 속 김지영의 말을 일상에서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또한 이는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평범한 남자들은 모르는 게 당연하다는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아내로, 엄마로 살아가는 것의 고충을 느끼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세상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가시화되고 권력화된 악 때문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악의 없는 무심함, 선의로 포장된 무례가 누적된 결과가 아닐까?

 

 

작가는 저자의 말에서 소설 속 지원이 보다 다섯 살이 많은 과학자와 작가를 꿈꾸는 딸이 있음을 밝히며 딸이 살아갈 세상은 자신이 살아온 세상보다 더 나은 곳이 될 것을 믿고 그를 위해 노력할 것임을 다짐하고 있다. 나도 아버지로서 갓 태어난 딸이 살아갈 세상은 여성들에게 더 많은 기회와 선택지가 주어지길 바란다. 딸이 성장해나가면서 가장 많이 받게 될 질문 중 하나는 꿈과 장래희망에 대한 것일 것이다. 아이에게 꿈이 무엇인지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묻는 건 상당히 흔하고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질문이 담고 있는 의미는 딸이 성장해가면서 '너는 도화지와 같아서 어떤 그림으로든 완성될 수 있단다. 너의 무한한 가능성을 맘껏 펼쳐보렴'에서 "이제는 무슨 일을 하며 살 것인지 정해야 하지 않겠니?"로 바뀌어 갈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여자인 네가 그걸 한다는 게 가능할까?"로는 변질되지 않길 바란다.

 

 

우리 주변의 수많은 김지영들은 일상의 부조리 앞에서 눈을 감고 입을 닫고 살았다. 기득권 가해자들이 작은 것 하나를 잃을까 전전긍긍할 때 피해자인 여성들은 삶의 전부를 잃을 각오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p.156) 또한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세상은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피로와 보복, 무력감 속에서 괴로워해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의 작은 순간들이 누적되어 한 사람의 일생을 구성하듯 세상의 변화도 생각보다 작은 부분에서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올해 회사에 남성 육아휴직을 신청하였다. 이는 물론 태어난 아이를 위해 앞으로 일정부분 여성이 아닌 엄마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될 아내 그리고 세상에 태어나 또 다른 여성으로서 살아갈 내 딸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내린 결정이 조직 구성원들의 부정적 인식을 전환시켜 육아휴직제도가 안정화되고 나아가 조직문화가 개선되는데 미약하나마 기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쉽사리 변하지 않는 세상에 절망하지 않고 신뢰하고 연대하며 협력과 공생의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것, 그것이 비록 사소하고 미약한 성공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아내와 엄마가 아닌 여성으로서의 삶이 빛나는 사회로 나아가는 동력은 그러한 곳에서 나온다고 나는 믿는다. 대한민국이라는 공간에서 지금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김지영들의 희생과 헌신이 그리고 그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작지만 끊이지 않는 목소리들이 포스트 김지영들을 현재의 김지영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게 할 것임을 믿는다.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엄마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여성들의 삶에 행복이 깃들길 진심으로 바라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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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1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6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백승무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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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톨스토이의 3대 걸작이라고 하면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을 꼽는다. 톨스토이의 3대 걸작 중에서도 <부활>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 작품이다. 톨스토이의 일생과 작품세계는 <참회록> 출간 전후로 나눌 수 있다. 톨스토이는 그가 쓴 참회록에서 자신의 과오를 통렬하게 참회하고 도덕적으로 거듭나기 위한 다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독자와 연구자들은 <참회록>의 출간을 톨스토이의 '회심'으로 간주하고 있다. 톨스토이는 그가 집필한 에세이 <예술이란 무엇인가>에서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를 비롯하여 회심하기 전에 쓴 모든 작품을 부정하였다. 톨스토이는 <예술이란 무엇인가>에서 모든 예술은 사람들의 윤리적인 교화를 도와 사람들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예술이 가진 사상은 어떤 무지한 사람에게라도 전파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 기준에 따라 톨스토이는 이전에 쓴 자신의 모든 작품들이 보통 사람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헛된 목적으로 쓴 '귀족의 예술'이었을 뿐이라고 부정한 것이다.








나는 그의 3대 걸작 중 <안나 카레니나>를 <부활>보다 먼저 접했다.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며 인간의 행동과 심리에 대한 탁월한 묘사와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으로도 일컬어지는 소설의 유명한 첫 문장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과 같은 인생에 대한 통찰을 보고 감동한 기억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부활>에 대해 기대감과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작가 자신이 3대 걸작 중 유일하게 인정한 작품은 과연 어떨까 하는 기대감이었다.




<부활>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네흘류도프라는 귀족 청년이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영혼의 부활을 이루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 네흘류도프는 새로운 삶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에서 타락과 향락에 젖은 상류층들의 삶과 가난에 시달리는 민중의 삶 사이의 모순을 인식하게 되는데, 작가 톨스토이는 이러한 주인공을 통해 당대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각성과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그가 죽기 전 남긴 마지막 말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설이 있긴 하지만 "내가 지금이라도 농민이 되겠다고 나왔는데 이리 죽게 생겼으니, 죽는 순간이라도 농민이고 싶다. 그런데 어떻게 죽어야 농민으로 죽은 거라고 할 수 있는 거냐?"였다고 한다. 이는 작가로서 민중에 관심을 둔 것을 넘어 죽어서라도 농민과 함께 하고픈 톨스토이의 진심이 잘 담겨 있는 말이며 소설 <부활>의 메시지와 상통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부활>은 한 인간의 도덕적 결단을 통한 영혼의 고양이란 측면에서 가치 있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당대의 사회를 비판적으로 그려 낸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즉 한편에는 부정과 향락에 젖은 귀족들의 사치스러운 삶이 있는가 하면, 또 한편에는 가난과 억압 속에 힘들게 삶을 영위하는 민중의 삶이 있음을 보여 줌으로써 당대 현실의 모순을 그려 내고 있다. 작가의 세상과 인간을 꿰뚫어보는 통찰은 다음과 같은 소설 속 문장을 통해 잘 표현되어 있다.







재산을 뽐내는 부자는 결국 약탈자이고, 전력을 자랑하는 사령관은 결국 살인자이며, 권력을 과시하는 정치가는 결국 압제자가 아닌가? 이들 역시 마찬가지인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인생관이나 선과 악의 개념을 왜곡하는 이들의 행동은, 우리에겐 잘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이런 왜곡된 관념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데다, 우리 역시 그 안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1권 p. 234)



작가 톨스토이는 소설 <부활>에서 인간 영혼의 넓고 깊은 심리 분석과 예술적이고 지극히 현실적인 묘사를 통해 인간의 죄와 악행에 대한 하나의 관점을 구현하고 있다. 톨스토이는 "작가는 민중보다 한발 앞서 가라. 그러나 한발은 민중 속에 딛고 있어라."라는 명언을 남겼다. 인간의 현실적인 삶을 작품을 통해 반영하고, 또한 작품을 통해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려 한 거장의 면모를 잘 표현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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