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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무법자
크리스 휘타커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2월
평점 :

삶은 직선이 아니다. 인생이라는 그래프는 출생이라는 하나의 '점'으로 시작하여 사망이라는 '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선택의 결과로 점철된다. 저마다 다른 그래프이지만 삶은 그 누구에게도 예측 가능한 형태의 직선을 허용하지 않는다. 삶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 안정된 상태라고 느끼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미지의 것이 느닷없이 닥친다. 이렇게 질서가 무너진 혼돈 속에서 우리 삶은 현실부정과 절망,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잠식되어 간다. 삶은 질서와 혼돈으로 점철되어 있다. 안정된 질서 속에 갑자기 혼돈이 찾아오기도 하는 반면, 모든 것을 상실한 듯한 절망적 순간에 새로운 질서가 나타나기도 한다. 삶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질서와 혼돈의 경계 위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삶의 불확실성 속에서 인생의 의미가 빛을 잃어가고, 절망과 두려움이 고개를 드는 순간 우리는 무엇에 의지하며 세상을 살아가야 할까?
˝그날 밤 이후로, 그 일을 저지른 뒤로 녀석은 우리 중 누구도 자유를 되찾을 수 없다는 걸 알았던거야.˝ (P. 352)
크리스 휘타커 작가의 <나의 작은 무법자>는 이러한 삶에 대한 이야기다. 30년전 ‘빈센트 킹’이라는 이름의 10대 소년의 철없는 실수는 ‘시시 래들리’라는 어린 소녀의 생명을 앗아가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결코 없던 일이 될수 없고 되돌릴 수도 없는 그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진 후부터 소녀의 주변인들은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린 상처와 아픔을 안고 힘겨운 삶을 살아간다. ‘시시’의 자매인 ‘스타’는 사건 이후 두 아이의 엄마가 되지만 “시간이 과거부터 미래까지 동시에 존재한다고 웅얼거리며 과거와 현재가 충돌하고 그 힘에 미래가 궤도에서 벗어나 결코 제자리로 돌아갈 수 없다.” (P. 17) 고 고백한다. ‘스타’의 오랜 친구이자 경찰서장인 ‘워크’는 그 비극이 미친 영향을 “헤아릴 수 없는, 거미줄처럼 얽힌 상처가 숱한 인생에 그림자를 드리워 새로운 것을 낡은 것으로, 생생한 것을 부패한 것으로 바꿔버렸다. 그 흔적을 스타에게서도 보고 스타의 아버지에게서도 보았지만, 그 흔적을 누구보다 많이 보인 것은 더치스였다.” (P. 43)고 말한다. 맞다. 그 비극은 많은 이들의 삶을 헤집어 놓았지만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건 ‘스타’의 딸이자 ‘로빈'의 누나인 '더치스'였다. '더치스 데이 래들리.' 13살의 소녀 '더치스'는 작은 무법자였다.
'누나, 무법자는 어떤 사람이야?'
'허튼수작을 받아주지 않는 사람. 아무도 우리를 괴롭힐 수 없어. 아무도 우리를 비웃을 수 없어. 내가 너를 지켜. 우리에겐 같은 피가 흘러.' (P. 435)
13살의 '더치스'는 누군가를 보호하기 보다는 아직 보호를 받아야 할 나이의 어린 소녀였다. 하지만 자신의 가족에게 한 줄기의 빛마저 비춰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그러한 세상에 맞서 순진무구한 어린 동생을 지킬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는 사명감이 소녀를 무법자로 만들었다. '더치스'는 세상을 향한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 채 오직 동생을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정의가 무엇이고,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누군가의 질문에 '더치스'는 6살의 동생 로빈은 자기가 뭘 원하는지, 세상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는데, 자신은 너무 많이 알고 있다고 대답한다. 소설을 읽으며 소녀가 처한 운명이, 소녀가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가,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걸 극복하고 일어나는 소녀의 분투와 헌신이 마음을 울렸다. 하지만 무법자인 소녀도 동생 '로빈'과 피할 수 없는 이별의 순간이 다가왔을 때에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주체하지 못했다. 마지막 순간 애써 감정을 추스르고 조용히 혼자만의 이별을 고하는 '더치스'를 보며 나도 같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소녀는 자기가 잃은 모든 것을 생각하며, 그리고 동생이 얻은 모든 것을 생각하며 울었다." (P. 565)
우리는 예기치 못한 '상실'과 ‘결핍’을 마주하며 삶을 살아간다. 인간은 매순간 죽음의 가능성을 안고 살아가다 종국에는 모두 소멸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상실'과 '결핍'의 경험은 삶의 온도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공간 감각을 둔화 시킨다. 눈앞에서 아름답게 펄럭이는 '현재'가 좋았던 과거 같기도 다가올 미래 같기도 하지만 어찌 됐든 현재의 내 것 같지는 않은 기분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상실과 결핍을 대면하게 될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들은 저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인간이란 저마다의 상황 속에서 그만의 역사와 고유한 존재 방식, 중력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인물들은 각자가 처한 입장과 상황 속에서 각자만의 존재방식으로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실수와 절망, 용서와 구원, 또 다른 기회 등으로 거미줄처럼 얽힌 삶의 굴레는 풀리지 않았고,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상황은 마지막까지 만들어지지 않았다.
"희망은 세속적인 거요. 삶은 쉽게 깨지는 거고. 그리고 우리는 이따금 너무 꽉 매달리지. 부서질 거라는 걸 알면서도." (P. 220)
살아가면서 개개인이 켜켜이 쌓아올린 저마다의 사연들은 상실과 결핍의 기억을 머금은 채 조용히 빛난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역사와 존재이유, 상처와 결핍을 가진 하나의 '섬'이다. 섬은 연결과 단절의 이중성을 가진 특별한 공간이다. 수면 위 드러난 부분을 기준으로 보면 섬은 단절된 공간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수면 밑으로 섬과 섬들은 연결되어 있다. 우리 앞에 놓인 수많은 경계들, 그리고 그 수많은 경계에도 불구하고 맺어지는 수많은 관계들... 서로의 고유한 존재 방식, 상실과 결핍의 기억들은 우리 각자를 섬으로 만들지만 우리는 삶의 흔적, 아픔을 매개로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한다. <나의 작은 무법자>를 읽으며 삶이란 저마다 쌓아 둔 사연들로 섬들이 나누는 대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서로가 단절된 채 살아가는 것 같아 보이지만 우리는 함께 더불어 살아가며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온기를 나누는 존재들이니 말이다.
<나의 작은 무법자>는 실수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극복과 성장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한, 희생과 용서, 구원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30년 전의 비극적 사건으로 인해 과거의 시간에만 존재하면서 미래를 외면한 채 힘겨운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을 보며 개별적 삶을 살면서도 타인과 또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한 시대를 이루고, 그것이 되풀이되고 순환되는 과정을 거쳐 역사를 구성하는 인간의 삶이 마치 밤하늘의 별자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자리는 저마다 거리와 밝기가 다른 별들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각각의 별들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제각기 저마다 다른 속도와 방향으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별들은 인간의 가시거리를 아득하게 넘어서는 먼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각각의 별들의 위치와 움직임을 감지해내지 못하고 고정되어 있는 하나의 군집된 별자리로 인식하게 된다. 동시대를 같이 호흡하면서도 온전히 현재를 살아내지 못하고 누군가는 과거의 한때에 머무르고, 또 누군가는 과거의 기억을 넘어 미래를 향하는 것은 인간은 물리적 시간인 ‘크로노스 (Kronos)' 보다 주관적이고 심리적 시간인 ‘카이로스 (Kairos)'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의 기억은 현재의 우리를 구성하는 것인 동시에 미래를 꿈꾸고 호흡하게 하는 두 번째 심장이다.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원치 않는 슬픔과 고통으로 인해 제아무리 반듯이 펴놓는다 해도 구겨진 은박지처럼 삶에 흔적과 얼룩이 남는 경험 말이다. 그것은 삶 자체에 내포되어 있는 속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을 살아가며 시대의 풍랑을 힘겹게 견뎌내야 할 때 최고이자 최선의 응원은 자신이 살아 있고 사랑 받는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 묵묵히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즉, 가족과 사회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종국에는 가난하고 고된 시간이라 할지라도 사랑만 있다면 그곳이 어디이든 장엄한 기억으로 남게 될 것임을, 무엇을 기억하든 실제로 기억하는 건 사람과 사랑임을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보여주었듯이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깨닫게 되길 바란다. 소설 속 더치스에게는 따로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고통과 불안을 견디는 일은 어쩌면 삶을 살아간다는, 살아있음에 대한 방증이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결국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최선의 혹은 최소의 방법은 자신에게 기대며 자신을 돌보는 것이라는 걸 생각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 몸이 아닌 마음을 다쳐 돌아오는 날이 많아질 수도 있을 꺼야. 그럴 때면 타인의 오른손에 너의 왼손을 가만히 얹고서 서로의 온기를 느껴봐도 좋을 것 같아. 엄마와 동생, 할아버지, 스타 서장님, 돌리 아줌마, 그리고 아빠가 묵묵히 그들만의 방식으로 너의 삶을 지지했던 것처럼… 마지막으로 동생은 너무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로빈에게도 로빈만의 삶이 있는 거야. 그리고 결국 몸과 마음이 성장하면서 너희들은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될 거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