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년 하버드 글쓰기 비법 - SNS부터 보고서까지 이 공식 하나면 끝
송숙희 지음 / 유노북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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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글쓰기 수업의  목표는창의적이면서도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이라고 한다. 이를 위한 방법적 툴로서 하버드식 글쓰기 수업은 O.R.E.O Map을 제시하고 있다. O.R.E.O Map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Opinion(의견 주장): 핵심 의견을 주장한다. 

Reason(이유 들기): 이유와 근거로 주장을 증명한다. 

Example(증명하기): 사례와 예시로 거듭 증명한다. 

Opinion/Offer(의견 강조 및 제안): 핵심 의견을 강조하고 제안한다. 

 

 

전하려는 주제를 오레오맵 순서대로 한 줄씩 작성하면 글의 뼈대가 만들어지고, 해당하는 문장에 세부 내용을 보태 단락으로 만들고 연결하면 한 편의 글이 완성되고, 오레오맵을 활용하면 에세이뿐 아니라 보고서, 제안서, 이메일, 상품 설명서 등 어떤 글이든 논리적인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요 주장이다.

 

글쓰기에 있어 하나의 방법적 툴로서 O.R.E.O Map을 제시한 것은 글쓰기가 막막한 초심자에게 글쓰기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줄 수 있다는 관점에서 나름 의미 있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의 방법적 툴에 대한 내용을 책 한권에 걸쳐 반복적으로 서술한 것은 다소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하나의 글쓰기 툴로 모든 형식의 글에 적용하는 것도 무리가 있고, 저자 자신이 인정하고 있는 바와 같이 애초에 글쓰기의 소재가 없다면 방법적 툴도 의미가 없다. 저자는 제목 부터 내용, 하버드 출신 유명인의 사례에 이르기까지 하버드 150년 비법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 비법 및 하버드의 교육철학과 저자가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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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사랑은 지금 행복한가요? - 기시미 이치로의 사랑과 망설임의 철학
기시미 이치로 지음, 오근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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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인간의 본성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사랑하고 사랑받길 바라고, 사랑 안에서 행복하길 원한다. <당신의 사랑은 지금 행복한가요?>의 저자 기시미 이치로는사랑 받는 기술이 아닌사랑하는 기술에 대해 주목한다. 사랑받길 원하는 사람은 자신을 변화시키고, 이를 통해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고 싶어한다.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까지 바꾸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저자는 사랑은 바꿀 수 있는 것은 상대가 아닌 자신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277)


사랑하는 노력을 하지 않았을 때,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시간은체험되는 시간이 아닌 것이 됩니다. ‘체험되는 시간’ (Le temps vecu) 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프랑스의 정신의학자 민코프스키입니다. 노력하는 두 사람만이 같은 장소에서 체험되는 시간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체험되는 시간의 반대말은 죽은 시간입니다.” (139)


저자의 말처럼 사랑은 시간을 쌓아나가는 일이다. 상대에 대한 나의 생각을 담을 수 있는 시간을 그의 곁에서 보내며 그 시간 속에 함께 했던 경험을 담는 일이다. 둘만이 기억하는 체험되는 시간을 만들고, 한번 흘러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지금 이 시간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며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둘만으로 구성되는 시간은 멋진 대화나 커뮤니케이션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이 사람 앞에서는 평소 모습으로 처신할 수 있다고 느낄 수 있는 것, 즉 그가 나를 온전히 포용하고 있고, 내가 타인에게 온전한 나 자신으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체험되는 시간과 관련한 저자의 주장은 로버트 노직을 연상시켰다. 로버트 노직은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에서 사진과 초상화의 차이를 통해 한 사람을 바라보는 행위란 어떤 것인지를 설명한다. 사진이 인물의 순간적 속사(速寫)로 한순간의 단면을 담는 것이라면, 초상화는 긴 시간 동안 각각 다른 빛 속에서 일련의 특징, 감정, 생각을 가진 개인의 다양한 모습, 지금까지 한 번도 동시에 드러난 적 없었던 여러 부분을 깊이 있게 담아낸다. 따라서, 우리가 한 사람을 본다고 할 때 그 행위는 사진을 찍는 행위 보다 초상화 그리기에 가까울 수 있고, 특히 당장 눈 앞에 있는 사람을 볼 때가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때 더욱 그럴 수 있다. 그림에는 한 사람을 일정 시간 이상 바라본 만큼의 시간성이 농축되어 있어, 어딘가 불분명한 선들로 이뤄진 한 사람의 형상이 오랜 시간 그 사람과 만나며 끌어 모은 세부사항들로 합성된 이미지처럼 나타난다는 것이다


각기 다른 시간과 빛을 거치며 덧입혀진 개인적 삶과 역사가 녹아 있는 초상화가 순간의 단면을 정확히 포착한 사진 보다 더 풍부하고 깊은 맛을 낼 수 있음을 나도 삶에서 맺은 수많은 인간관계 속에서 체험하였다. 사랑도 마찬가지 아닐까? 초상화의 매력은 초상화의 주인공이 어떤 사람이고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훌륭한 화가일수록 사진의 매력을 넘어서는 대상의 아름다움을 포착할 수 있다는 것도 초상화의 또 다른 매력이기 때문이다. 연인과 공유한 체험되는 시간은 상대를 순간을 포착하는 사진이 아닌 영원을 지향하는 초상화의 이미지로 느낄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


책을 읽으며 인디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의 <>의 가사가 떠올랐다.

 

"우린 긴 춤을 추고 있어. 자꾸 내가 발을 밟아. 고운 너의 그 두 발이 멍이 들잖아. 난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해. 이 춤을 멈추고 싶지 않아. 그럴수록 맘이 바빠. 급한 나의 발걸음은 자꾸 박자를 놓치는 걸. 자꾸만 떨리는 너의 두 손."

 

연애는 사랑하는 한 쌍의 연인이 추는 춤이다. 그 춤은 혼자서는 절대 출 수 없고, 어느 일방의 리드만으로 지속될 수 없다. 또한 두 사람이 선율에 맞추어 추는 춤은 아름다운 장면만으로 구성되지도 않는다. 때론 춤을 추는 과정에서 상대의 발을 밟기도 하고, 때로는 박자를 놓쳐서 상대가 손을 떨게 만들기도 한다. 이는 타인과 삶의 온도를 맞춰가는 일이며, 상대적 성숙의 시간을 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연인들의 인생의 주어는에서우리로 변한다. 저자의 말처럼 자립이란 결코 혼자 사는 것, 자신의 일을 자기 혼자서 처리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를 위해서가 아니라우리를 위해 생각하고, ‘가 아니라우리의 행복을 달성한다는 과제에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 바로 자립이다. (166)


사랑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이며, 또한 사랑은 활동이며 과정이기 때문에소유의 대상도 아니다. 설레임 가득한 사랑의 시작은 여리고 깨지기 쉬운 불안정한 감정에 불과한 것이나, 그러한 사랑의 가능성을 발전시켜 사랑을 완성시키고 결실을 맺게 하는 것은 관계의 진전을 위한 연인의 끊임 없는 노력에 기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오만과 착각 속에서 사랑을소유할 수 있는것으로 여기며, 관계의 진전을 위한 노력을 소홀히하곤 한다. “사랑은 오직 사랑하는 것으로 존재한다 (138)”는 저자의 조언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서로의 고유한 존재 방식, 상실과 결핍의 기억들은 우리 각자를 섬으로 만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인간은 초월적인 존재를 통해서도 치유 받을 수 없는, 오직 사람에게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 즉 사랑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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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오년 : 3.1혁명과 대한민국임시정부
박시백 지음 / 비아북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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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의 애독자로서 현재까지 출간된 3권까지 이미 읽었지만, 3.1운동을 다룬 2권이 이렇게 특별판으로 재출간되어 반갑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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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릇 (50만 부 기념 에디션) - 비울수록 사람을 더 채우는
김윤나 지음 / 오아시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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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은 평범한 사건들이 빚어낸 기적이고 역사다.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삶의 순간들이 누적되어 이루어진 인생은 누구에게나 값지고 귀한 것이다. 그러한 순간들이 모여서 시간과 역사를 이루고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개별적 세계가 빚어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본서 <말그릇>에서 관계의 법칙 3가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진실'이 다르고, 본능적으로 자신을 정당화하고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건강한 관계를 위하서는 '경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역사와 존재이유를 가진 하나의 섬이다. 섬은 연결과 단절의 이중성을 가진 특별한 공간이다. 수면 위 드러난 부분을 기준으로 보면 섬은 단절된 공간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수면 밑으로 섬과 섬들은 연결되어 있다. ''은 섬들 사이를 부유하며, 섬과 섬들을 연결시키는 다리가 된다.

 

우리를 만드는 것은 경험이 아니라 그 경험에 반응하는 태도이다. 우리는 수많은 경험을 하면서 삶을 살아간다. "동일한 사건을 두고서도 사람들은 서로 다른 언어적, 신체적, 심리적 반응을 보인다. 이것은 그 사건을 대하는 개인의 믿음, 즉 공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101) 저자가 언급한 A-B-C 법칙처럼 사건(Accident)을 경험하면서 개인은 자신만의 공식(Belief)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Consequence)를 창출해낸다. 마치 세월의 풍화 속에서 동식물이 퇴적, 암석화의 과정을 거쳐 화석이 되듯이 우리가 겪은 경험은 사건의 잔상과 흔적, 진실의 파편 속에서 원형만이 살아남아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구성한다. 본도서 <말그릇>에서 다루고 있는 ''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축적되고 숙성되어 각자의 독자적인 ''의 방식이 되고, 개인의 고유한 방식은 일상의 다양한 만남과 대화를 거치며 수정되고 발전되어 간다. 과거 경험을 토대로 현재의 일상을 탐구하는 모든 개인은 모더니스트 (Modernist)인 동시에 자기 자신의 역사가 (His own Historian)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말그릇'은 그 사람의 내면과 닮아 있다. 저자는 기술이 아닌 내면에 집중해야 할 필요성, 즉 단순히 말 잘하는 법을 넘어선 말 그릇의 의미와 그것을 보다 단단하고 깊이 있게 만들 수 있는 방안을 탐구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결국 나를 이해하고 사람을 이해하는 힘을 기르는 것으로 귀결된다. ''에는 어떤 상황에서도 누구에게나 통할 수 있는 특별한 비법이나 정도(正道)는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말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발굴하듯이, 탐험하듯이, 채집하듯이 사람의 감정과 메시지를 찾아내려는 집중력과 노력과 세밀한 기술이 필요하다." (205)는 저자의 말에 귀기울여야하는 이유이다. '말그릇'은 단순히 특정 형식을 준수하거나 상황에 맞는 말을 하는 기술에 대한 것이 아니라 주변의 상황과 감정을 세심하게 살피고 진심을 다해 마련한 나만의 그릇에 '사람'을 담는 방법에 대한 통찰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말그릇>을 읽으며 가장 가슴을 울렸던 말은 아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저자의 말과 그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었다. "아마도 (사랑한다는) 이 말은 네 마음속에서 영원히 살겠지. 엄마가 사라져도 이 말은 남겠지." (310) 우리가 남긴 한마디 말은 우리가 없는 순간에도 사람들의 마음을 떠다니며 타인의 인생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오래도록 흔적을 남긴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말이 남긴 흔적으로 기뻐하거나 아파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말은 가시적인 권력의 힘을 넘어서는 영향력을 보유하며, 편하고 가까운 관계일수록 '말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더 깊은 상처를 남긴다. 세상이 변화가 더딘 이유는 어쩌면 가시화되고 권력화된 악 때문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악의 없는 무심함, 선의로 포장된 무례가 말로서 표현되어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앙금으로 남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저자는 '말그릇'이 추구해야할 방향성을 씨름과 왈츠로서 비교설명하고 있다.

 

"씨름은 서로의 힘과 기술을 겨루어 승자와 패자를 가른다. 그 관계에서는 한 명이 이기면 나머지는 한명은 반드시 지게 되어 있다. 반면 왈츠는 다르다. 왈츠는 동행이다. 파트너가 앞으로 몇 걸음 나오면 상대방은 그만큼 물러서서 균형을 맞추고, 한 명이 화려한 동작을 구사할 때 나머지 한 명은 그가 쓰러지지 않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준다. 그렇게 두 사람은 아름다운 선율에 맞추어 하나의 스토리를 완성해나간다." (303)

      

이 대목을 읽으며 인디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의 <>의 가사가 떠올랐다.

 

"우린 긴 춤을 추고 있어. 자꾸 내가 발을 밟아. 고운 너의 그 두 발이 멍이 들잖아. 난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해. 이 춤을 멈추고 싶지 않아. 그럴수록 맘이 바빠. 급한 나의 발걸음은 자꾸 박자를 놓치는 걸. 자꾸만 떨리는 너의 두 손."

 

저자의 말처럼 '말그릇'은 씨름이 아닌 춤이다. 하지만 혼자서는 절대 출 수 없는 춤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선율에 맞추어 추는 춤은 아름다운 장면만 담겨 있지는 다. 때론 춤을 추는 과정에서 상대의 발을 밟기도 하고, 때로는 박자를 놓쳐서 상대가 손을 떨게 만들기도 한다. 이는 타인과 삶의 온도를 맞춰가는 일이며, 상대적 성숙의 시간을 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의 고유한 존재 방식, 상실과 결핍의 기억들은 우리 각자를 섬으로 만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초월적인 존재를 통해서도 치유 받을 수 없는 오직 사람에게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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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매혹된 사상들 - 인류를 사로잡은 32가지 이즘, 개정증보판
안광복 지음 / 사계절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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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광복 작가의 『 우리가 매혹된 사상들 』의 부제는 인류를 사로잡은 32가지 이즘이다. 작가는 정치, 철학 및 예술, 국가, 경제, 사회라는 5가지의 카테고리 안에서 인류를 매혹시키며 발전해 온 32가지 사상들을 다루고 있다. ‘사상또는 이즘 (Ism)’이란 사고와 행동을 근본적으로 제약하고 있는 신념의 체계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이즘은 역사적, 사회적 입장이 반영된 현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틀이라고 할 수 있다.

 

이즘은 현실 속 욕망들이 투영되어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이론과 현실의 괴리로 인해이즘은 현실의 문제들을 온전히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조국독립, 경제성장, 민주화를 거쳐 발전해 온 우리의 역사 속에서 사회주의는 개인의 욕망을 대변하지 못하고 오히려 욕망실현을 억압하였고, 개인을 이상사회 건설이라는 이념에 종속시켰다. 또한 자유주의는 원칙과 기준을 잃고 표류하였다. 그것은 비정상적 과정을 통한 성장이었고 이는 결국 자유의 부재로 이어졌다. ‘이즘의 존재 이유는 현실에서 살아 숨쉬는 가치를 지키며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것이지만 은 역설적으로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충돌 과정에서 빛을 잃어갔다.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은 사상의 생몰(生沒)을 잘 표현하고 있다. 태백산맥의 무대인 벌교는 당시 오만의 읍민들 중 팔할이 농민이었고, 그 농민들 중에서 구할이 소작인이었다. 벌교뿐만이 아니라 해방 당시 한국은 전 농가의 86%가 소작농이었고, 전농지의 64%가 소작지였을 정도로 농업은 핵심적 경제기반이었고 인구의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갑오농민혁명, 일제하의 소작쟁의에 이어 토지제도의 모순이 당시 주요 사회갈등의 원인으로 등장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민중의 대다수를 구성하는 농민들은 지식을 통해 현실의 모순구조를 인식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삶을 통해, 체험을 통해 그 문제상황의 핵심을 꿰뚫고 있었고, 시대 상황 속에서 이데올로기 대립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개인적 동기는 사회갈등으로 구체화되었고 이는 다시 집단적 이념으로 확장되었다. 소설 속 문서방의 한 맺힌 외침은 이를 잘 표현하고 있다.

 

"가난허고 무식헌 것들이 믿고 의지헐 디 웁는 판에 빨갱이 시상 되먼 지주 다 처웁애고 그 전답 노나준다는디 공산당 안헐 사람 워디 있겄는가요. 못헐 말로 나라가 공산당 맹글고, 지주들이 빨갱이 맹근당께요." (소설 태백산맥 中)

 

어떤 면에서 보면 이즘이라는 것은 모순투성이고 부정확한 존재인 인간이 만들어낸 인간의 본질적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는 새로운 구속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인간이 이념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이념의 실현을 위한 도구가 된, 이데올로기란 이름으로 인간이 희생되었던 사례를 많이 지켜봐 왔다. 작가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으로 칭송 받는 민주주의도 이천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현실적이지 않은 제도로 여겨져 주목 받지 못했고, 소크라테스도 민주주의의 핵심인 다수결의 원칙에 의해 희생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류는 왜 사상에 매혹되고, 우리는 왜 사상에 주목해야 하는 것일까?

 

앞서 언급한 대로 이념은 현실의 순수한 열망이 빚어낸 결정체다. 각각의 사상에는 열망의 실현을 약속하는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 욕망을 꿰뚫고 있는 시대적 사상들에 인류가 매혹 당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사상의 발전사는 인류의 욕망과 희망의 변천사이기도 하다. 사상은 인류를 위해서’, ‘인류에 의해탄생하였지만, 사상 중에서는 인류의 사상이 되지 못하고 스러져간 것들이 많았다. 사상이 현실의 일면만을 반영하거나, ‘인간을 담지 못하고 변질되고, 때론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상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인류를 사로잡았던 사상들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처럼 사실에 대한 냉철한 이해야말로 좋은 변화의 출발이다. (8)

 

사상은 늘 갈 길 모르는 인류에게 앞날을 비추는 횃불이 되는 덕분이다. 맹목적으로 하나의 횃불만 따라가지 않는다면, 여러 방면에서 타오르는 불빛들을 냉정한 눈으로 가늠할 수 있다면, 사상은 우리를 정말 희망의 나라로 데려갈 수 있.” (7)

 

절절하고 뜨거운 사랑, 생생하게 살아나는 나의 감정, 삶에 대한 열정, 완전한 자유와 해방감, 삶에서 이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을까? 냉정한 과학은 이 모든 것을 절제하고 억눌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다운 순간은 사랑과 감정, 열정과 자유를 한껏 꽃피웠을 때가 아니던가? (102)

 

 

독일 시인 헤르더의 말처럼 모든 시대 모든 장소의 사람들에게 통하는 단 하나의 사상이란 없다. (105) 때로는 계몽주의에 기반한 냉철한 이성과 과학적 판단이, 때로는 낭만주의의 열정과 의지가, 또 어느 순간에는 이성과 감성의 조화가 시대를 발전시켜왔다. 해체주의는 인간이 절대적으로 옳고 바람직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한다. 다만 인간의 생각과 언어로서 진실에 다가서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또한 실존주의는 현실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내 인생을 스스로 만들고 개척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러한 매순간의 결단이 어느 누구도 빼앗지 못할 내 삶의 의미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123) 오늘날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해체주의의 교훈을 수용하면서, 실존주의적 실행력을 갖추는 것 아닐까? 초점이 맞지 않은 한장의 시진은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을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 여러 장이 쌓이고 모이면, 본연의 의미가 입체적으로 형상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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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보이 2019-02-22 18: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매혹된 위대한 사상들에 대한 개론서이자 간략한 역사서의 느낌이네요.

잭와일드 2019-02-22 23:03   좋아요 0 | URL
네 사상의 흐름을 개괄할수 있는 흥미로운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