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 

무에서 유가 나왔다는 것. 

존재의 문제. 철학과 물리학의 접경 지대. 

철학은 너무 중요해서 철학자들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


존 휠러 인터뷰 찾아보았는데 이 클립, 7분 지점에서 저런 말씀 하신다. 

특히 마지막 문장. Philosophy is too important to be left to the philosophers.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특히 물리학자들이, 철학에 우호적이지 않은 태도로 비슷한 얘기를 

많이 해왔던 거 같긴 하지만 오늘 아침 들으면서는 (......) 그냥 몰표. 이런 말을 하고,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해도 되는) 사람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클립이 업로드 되었을 때 

메릴랜드인지 델라웨어인지에서 60대의 존 휠러라는 남자가 피살되어 쓰레기 매립지에서 발견되고 

그게 연방정부를 향한 어떤 메시지가 담긴 살인이었고 ..... 이런 사건이 있었나 보았다. 댓글들이 ㅎㅎㅎㅎ 

60대 피살당한 존 휠러 얘기들을 하고 있음. "사람들아 야 이 바보들아. 다른 사람이야! 이 분은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과학자였다. 양자 우주론의 아버지시다." 이러는 댓글 나오고. 이런 미친 스레드는 

처음 본다는 댓글도 나오고. 




여름 동안 오래 산책하기가 힘들었는데 

10월 시작하면서 다른 건 몰라도 산책하기가 훨씬 즐겁고 쉬워져서 좋다. 

아침에 늦게까지 어둡다는 것. 시원하다는 것. 기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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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교향곡 4부작의 4부에서 

아론 콥랜드가 중요하게 등장한다. 

영국은 수세기에 걸쳐 "음악이 없는 나라 land without music"라 불리었지만 

미국은 음악이 "아직" 없는 나라... 미국적 음악을 만든 미국 작곡가들은 

20세기에 나오게 되는데 그 중 누구보다 아론 콥랜드. 


말년에 그는 

뉴욕시에서 거리로는 멀지 않지만 

은둔자처럼 살 수 있는 시골에 집을 지었고 

실제로 그 집에서 은둔자처럼 살았다. 모더니즘 양식이 어느 정도 보이는 집이고 

초라한 집은 아니지만 그가 평생 그의 삶에서 보여준 절제, 검박함이 드러나는 집이다. 

(.....) 저런 설명을 하는 사람이 나오는데 조금 찾아보니 그가 살았던 집이 지금은 기념관으로 

쓰이나 보았다. 





아슈케나지와 그의 스위스 집이 

나오는 다큐가 있었는데 아슈케나지의 집은 

............ 아 저기서 그처럼 피아노 칠 수 있으면서 산다면 

매일 초월의 체험이겠. 매일 현세를 떠나 저 너머로. 아니 현세도 이토록 아름다운데. 

그의 집도 넓은 창이 있었고 창밖은 그 그림같은 스위스 산들의 풍경이었다. 


뉴욕주 시골에 지었다는 콥랜드의 집은 

그에 비해 현실적인 집이라 느껴지긴 한다. 





이제는 이런 용도로도 쓰인다는 Copland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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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소나타 연주 중에서 이 분의 연주 좋았다. 

다른 연주들은, 다들 다르긴 하지만 무슨 차이가 있다는 거야? 였다가 

이 분 연주에서는, 그의 이 다름은 그만의 개성일 거 같고 

개성 정도 아니고 천재성일 거 같다.......... 느낌 든다. 


위키피디아에서 찾아보면 그가 남긴 이런 말들 볼 수 있다. 

"(피아니스트는 해석자고) 해석자는 실행자다. 작곡가의 의도를 가장 충실하게 실행해야 한다. 

이미 작품에 있는 게 아닌 그 무엇도 보태어선 안된다. 만일 그에게 재능이 있다면, 그는 작품의 

진실을 우리에게 보게 한다. 해석자는 작품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작품 속으로 용해되어야 한다." 


그는 소규모 공연을 좋아했나 보았다. 그 점에 대해 그가 남긴 말은: 

"트럭에 피아노를 싣고 시골길로 떠나야 해. 새로운 풍경이 보일 때까지 오래 운전해 가는 거지. 

교회 건물이 있는 예쁜 곳이 나타나면 거기서 멈추어. 트럭의 피아노를 내려놓고 마을 사람들에게 

말해. 공연을 해. 공연에 와 준 고마운 사람들에겐 꽃을 주어 보답해야 해. 그리고 다시 떠나는 거야."  


쇼스타코비치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리히터는 경이로운 현상이다. 그의 재능 앞에서 우리는 비틀거린다. 우리의 영혼이 사로잡힌다. 

음악 예술에 속하는 현상들 모두를 그는 이해한다." 




미친 드립력 소유자인 로버트 그린버그 교수가 

리스트의 초인적 일정 콘서트 투어에 대해 말하면서 이런 얘기 한 적 있다. 

"자 그럼 콘서트 투어라 우리가 부르고 있으니 그 시절 리스트가 

옆구리에 Team Liszt라 적힌 대형 버스 군단과 등짝에 Team Liszt 찍힌 옷 입은 스탭 동원하고 

자기는 리무진 타고 이동 중엔 숙면하면서 했을 거 같니? 

'

마차 타고 다녔던 거야! 덜컹덜컹. 길은 좋았을 거 같아? 피아노나 사람이나 남아나기 힘든 길이었어!" 


Team Liszt. 21세기식 콘서트 투어. 

상상하면서 혼자 비틀비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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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표지에 쓰인 저 이미지, 굉장히 유명한 사진이라고 한다. 

오른쪽 남자는 마르셀 뒤샹이고 왼쪽의 누드 여자는 당시 20세였던 Eve Babitz. 

이브 바비츠는 60년대 LA의 "잇걸"이었고 다른 누구도 아닌 짐 모리슨, 그리고 그 외 락스타, 예술가, 작가, 배우들과 숱한 염문을 뿌렸다. 고 하는데 


나는 어제 처음 들은 얘기. 

그녀의 아버지는 20세기 폭스사 소속 바이얼리니스트였고 어머니는 예술가("an artist" 이렇게만 소개하면 대개는 (취미 이상은 아니었던) 화가, 혹은 사진가 아닌가)였다. 그들은 LA의 여러 예술가들과 절친한 사이였고 그 예술가들 중엔 스트라빈스키도 있었다. 스트라빈스키는 이브 바비츠의 대부가 되었다. 짐 모리슨의 LA woman에서 LA woman이 그녀였다. LA를 지배한 파티걸이었음에도 그녀는 진지하고 성실한 작가이기도 했고 60년대 LA에 보내는 찬사라 요약될 그녀의 작품들은 당시엔 조셉 헬러, 이후엔 브렛 이스턴 엘리스 등 본격작가들의 칭송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은 진지한 비평의 대상이 되지는 못했고 

작가로서 그녀 삶은 결국 불발이었다. 그러나 뒤늦게, 이제 와서 '촉발'할 수도. New York Review of Books에서 

그녀 선집들이 나오는 중인가 보았다. 


저렇게 젊었던 (젊고 예뻤던) 시절. 

지금의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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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트는 말하자면 당대의 믹 재거(외 여러 락스타 이름들이 나열됨)였다는데 

그의 연주회에는 그를 보기 위해 몰려드는 수많은 여성 팬들이 있었고 그들은 울고 실신하고 

그들의 몸을 그의 발치(에만 제한된 건 아니고....)에 던졌다. 


그의 삶을 쥐고 흔든 여자들이 있었다.

그의 이십대에 같이 살았으며 그와의 사이에 세 아이들을 낳았던 마리 다주. 백작 부인 마리 다주. 

그가 삼십대 후반에 만나 오십대 초까지 같이 살았고 진정 삶의 동반자였던 캐롤라인 공주. 

마리 다주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고 나중 바그너와 결혼하면서 아버지 리스트의 심장을 찢었던 딸, 똑똑하고 감정이 풍부했고 제멋대로였던 코시마 리스트. 이 세 여자들이 가장 거세게 흔들었겠지만 이들 외에도 그의 삶에 번민과 기쁨을 안겼던 여러 여자들이 있다.  


길고 상세한 전기(무려 세 권으로 나온 전기가 있다)로 읽는다면 

다르게 느껴질 거 같기도 한데, 7시간이 못되는 강좌로 그의 삶에 대해 전해 들으면 

말년에 그의 삶에 일어난 일은 이전 그가 알던 인간들과의 결별이 다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마리 다주와 원수가 되고 캐롤라인 공주와 여러 복잡한 이유로 헤어지게 되고 딸 코시마와 한편 거의 

의절하게 되고. 


세 아이를 함께 낳았지만 그녀가 그에게, 그도 그녀에게 원수였던 마리 다주. 

마리 다주가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살롱을 운영하기도 했던 인물이라서 그녀가 죽었을 때 

리스트는 신문을 보고 그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이에 대해 그가 남긴 기록이 있다. 


"위선이 끼여들지 않게 하자. 그녀의 생전에 흘릴 수 없던 눈물이 그녀가 죽었다 해서 흐를 리 없다. 

다주 백작부인에게 허위를 향한 위대한 사랑, 위대한 열정이 있었다. 그 사랑과 열정은 가끔 찾아온 

희열의 순간엔 사라졌지만 그 희열을 그녀는 기억하려 하지 않았다. 지금 내 나이가 되면, 축하가 그렇듯이 

조의도 당혹스럽다. 세상은 세상대로 가야할 길을 가고 인간은 인간대로 살아야 할 삶을 산다

할 일을 하고 상실을 슬퍼하고 고통을 치르고 실수를 하고 관점을 바꾸고 그러다 죽는 것이다.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죽는 것이다."   


1877년. 리스트가 66세일 때의 일. 




이런 두꺼운 책이 세 권. 

전기를 쓴 앨런 워커는 음악학 교수던데 

나는 그의 열정도 놀랍다. 이 정도 분량으로, 지극히 호평 받은 전기를 쓸 수 있었다는 게. 

나는 뭐하고 살았던 건가 (그렇게 오래 학교를 다녔으면서), 돌이켜 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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