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브 벨은 버지니아 울프 언니 바네사의 남편. 

블룸스베리 그룹의 중요 멤버였다. 웃기고 활수하고 (약 이십년 전 어느 술자리에서, 활수하다 이 말 썼더니, 그 말 실제로 쓰는 사람 처음 본다던 사람이 있었.... 누군가를 기억하지 않고서는 쓸 수 없는 말들이 우리에게는 있는 것....) 그 웃김과 활수함으로 블룸스베리 그룹의 형성과 유지에 지대한 역할을 했지만, 결국 작가도 예술가도 지식인도 아니었던 사람. 버지니아 울프, 리튼 스트래치, 메이너드 케인스, 등등에게 "미만잡." 한참 미만잡. 


대강 저런 게 클라이브 벨에 대한 후대의 평가였다.  

그가 아무 것도 안 쓴 건 아니고 그가 남긴 예술 비평, 예술 이론 저술들이 있긴 해서, 그것들을 놓고 그를 모더니즘 미학 이론의 선구자로 읽는 시도들이 있기도 했다. 대세는 바뀌지 않음. 그런데 6백 페이지 분량의 전기가 올해 나왔고, 무슨 얘기가 여기 있을지 궁금하다. 



어제부터, 공기 청정기 아무리 돌려도 수치가 50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다. 바깥 미세먼지 수치가 100-200 사이라면 틀고 10-30분이면 청정기 수치가 30 근처로 내려갔던 거 같은데 어제 오늘 같은 수치면 아무리 돌려도. 어제 밤에 틀고 잤는데 일어나서 보니 150 근처. 밤새 틀어도 "보통" 수준이 되지 못함. 바깥 수치는 오늘 600을 넘었었지. 몇 년 전 며칠 동안 200-400 그랬을 때, 이런 곳에서 살 수 있는가, 우울하고 무력하다 한탄했었던 거 우스워지는 어제 오늘의 수치. 이런 수치에 익숙해지면 100-150까지는 좋은 공기로 느끼게 될 거 같다. 나가서 뛰고 깊이 들이마시고 그럴 것이다. 



니체와 과학. 니체의 과학철학. 이런 주제로 연구하고 글 쓰는 분들이 있고 

그 분들을 삐딱하게 보는 분들도 있다. 니체가 무슨 과학철학자야. 니체에게 무슨 과학철학이 있어. 진심이세요? 

그런데 삐딱하게 보기엔 니체가 과학을 정말 너무 많이 말한다. 독어 단어 Wissenschaft가 자연과학만이 아니라 사회과학, 인문학도 포함하는 단어라는 것, 영어로 의미에 충실하게 저 단어를 말하라면 science가 아니라 scholarship, intellectual inquiry, 이런 쪽이 더 맞는 역어가 될 것이라는 게 사정을 복잡하게 만들지만, 어쨌든 Wissenschaft, 이것이 그에게 극히 중요한 주제였다. 


인간의 정신은 거대한 방이 되어야 한다. 예술과 과학, 상충하는 힘들이 그 안에서 공존해야 한다. 

더 높은 문화는 과학과 비-과학을 동시에 다루는 "이중 두뇌 double brain"를 요구한다. : 이런 게 그의 입장이기도 했다. 


"이중 두뇌." 바로 바슐라르가 연상될 법도 한 구절. 

실제로 니체 저술들 여러 곳에, 그가 말하는 "새로운 철학자"는 바슐라르 같은 철학자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는 대목들이 있다. 바슐라르의 과학철학에, 이건 과학철학의 니체주의라고 볼 수 있는 여러 대목들이 있기도 하고. 이 모두를 앞에 놓고 "바슐라르, 니체의 후예" 이런 주제 페이퍼를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아주 좋은 주제라고 생각한다. 극히 흥미로운 (그리고 심지어 중요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는 주제다. 그러나 그런 결과가 나오려면, 적어도 한 번의 생애가 필요하고 (....) 아마 대가여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구상은 나도 (나따위도) 할 수 있지만, 구현은 전혀 다른 문제가 되는 주제인 것임. 


미미한 구현이라도, 구현하다 실패할 뿐일지라도 좋으니 해보겠다면 

거대한 방으로서의 정신들이 모인 곳에 있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만인이 만인을 가장 좁은 방에 가두려 하기. 이것이 한국의 경험이었고 그래서 우리는 

구상은 하더라도 구현은 하지 못하며 살아오지 않았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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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1-05-09 07: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상에서 구현까지. 정말 한 사람의 생애로는 부족할지도 모르겠어요.
과학과 비-과학이라고 말하면 과학 아닌 분야를 과학과 너무 반대쪽에 놓는 느낌이 들때가 있어서, 비과학이란 말 대신 과학을 넘어선 분야라고 생각하고 싶을 때가 많아요.

몰리 2021-05-09 07:10   좋아요 0 | URL
정말 한 번의 생애는 무엇을 하든 제대로 하기엔 부족하지 않나는 생각도 듭니다. 내 손으로 집도 지어보고 싶고 목공도 배워보고 싶다면 그러면서 동시에 책도 읽고 글도 쓰기는 거의 불가능. 얼마 전에 윤회설에 대해 들으면서, 아 이것이 주는 막대한 위안이 있구나, 다른 삶에서 해보았다, 다른 삶에서 해볼 것이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했었어요.
 




아래 포스팅한 패트릭 리 퍼머의 책 표지들 중 

브뤼겔의 그림 아니면 브뤼겔 "풍"의 그림을 쓴 게 있었던 거 같은데 

다시 검색하면서 찾지 못함. 브뤼겔 그림이 그 자체로 수도원이지... 수도원에 실제로 가지 않아도 돼. 브뤼겔의 그림이 있다면. 이런 (아마 근거없는) 생각이 그걸 보면서 들기도 했으나.  


그래도 그의 책 조금 읽으면서 확신하게 되는 건 

집은 "성소"가 될 수도 있다는 것. 패트릭 리 퍼머가 칭송하는 수도원 삶의 요소들을 자기 집에서 가질 수도 있다는 것.  

브뤼겔의 그림이 그에 기여할 수 있다면 브뤼겔 그림을 집 어디에 모셔두면 좋을 거라는 것. 


몽테뉴의 서재. 둥근 탑 안에 있었던 그의 서재. 그곳이 그에게 성소이기도 했을 (그 자신은 그렇게 규정하지 않았을지라도. 보는 나의 관점에 따라) 거라는 것. 



Domaine de montaigne - Picture of Montaigne's Tower, Saint-Michel-de- Montaigne - Tripadvis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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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터다이크 인터뷰집 Neither Sun Nor Death, 첫번째 인터뷰가 이 책 논의로 시작한다. 

"96년 출간된 당신의 책 <자기 실험>엔 뭔가 으스스한 느낌이 있다. 자발적 신체 훼손이 일어나는 차가운 실험실을 나는 연상하게 된다. 살 것이냐 죽을 것이냐, 이것이 그 책의 주제같기도 하다.(...) 파편화와 통합성. 당신의 철학은 파편화와 통합성에 대한 개인적 경험에서 원천을 찾는가?" 


<자기 실험>은 영어 번역, 한국어 번역 안된 책이다. 인터뷰집 읽기 전 슬로터다이크 책들을 어느 정도 

읽으면서 영역된 그의 책들 서지 파악해 두었었고, 하여 독일어로만 존재하는 이 책 <자기 실험>은 

제목을 기억할 의지도 일지 않던 책. 모든 책은 바로 번역되어야 한다. 1언어로만 존재하는 모든 책에 역자를 보내라. 

올해 안에 모든 책에 번역이 있게 하세요. 


고달픈 재미라도 재미가 있는 책이긴 하겠지만 

고달픔이 지금 감당 안될 고달픔일 수도 있겠지. 아예 알지 말자. 

구글 번역 돌리면 어떤 책인가 대강은 알겠지만 구글 번역 돌리지 말자. 


했다가 어제 인터뷰집 다시 읽던 동안 아마존 독자 리뷰 찾아서 구글 번역 돌려 보았다.  

일단 표지가 마음에 든다. 독일어 책들 중에도 이런 표지 책들이 있구나. 주어캄프의 이런 책들 





2색, 3색이 다인 이런 표지와 달리 

색들의 축제 같은 표지를 한 책도 있구나. 


구글 번역 돌려 보니 <자기 실험>도 인터뷰집이었고 

한 리뷰에 따르면 너무도 재미있는 책, 파티같은 책이라고 한다. 

"즉석에서 이런 생각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 시대 최고의 지성일 것이다" 이런 말도 한다. 


파티같은 책. 그렇다면 그림의 책일지라도 구하기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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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1-04-30 0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미 표지가 파티각! ㅋㅋㅋㅋㅋ 원저자도 그렇지만, 이럴때는 번역자들도 칭송받아 마땅하지요.

몰리 2021-04-30 06:53   좋아요 0 | URL
번역가는 계몽의 전령이다??

굉장히 유명한 말이지만, 정확히 기억 못하겠는 유명한 말!
실러가 했다던가 괴테가 했다던가. 지금 막 별별 검색을 다 해봤는데 찾지 못했어요. ㅎㅎㅎ 그런데 어쨌든 정말 번역가가 하는 엄청난 역할. 뛰어난 번역을 남기신 분들에게 경의를. 비오는 금요일엔 빨간 장미;를 번역가에게.
 



이 책은 데릭 자만이 말년에 쓴 일기.

데릭 자만은 이름은 들어봤고 작품도 본 적이 있는 거 같지만 

그래도 어쨌든 나는 이름만 알고 있는 감독. 심란하고 집중하기 힘든 영화들이지 않았나? 아님? 

막연히 그런 인상 남아 있는 거 같지만 그게 실제로 보긴 보아서 남은 인상인지도 확실치 않음. 


그런데 알라딘 중고샵에 이 책이 있었고 아마존의 어떤 독자는 

"나는 그의 영화는 좋아하지 않고 견디지 못한다. 그런데 이 일기는 내가 읽은 

일기 중 최고의 일기다. 너는 빠져들 것이다"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일기, 편지, 회고록, 자서전 

이것들 중 호평 받는 거라면 바로 사둠. 해서 이것도 사두었다. 






그가 남긴 일기를 묶은 책이 하나 더 있는데 이 책. Modern Nature. 

89년 HIV 양성 판정을 받고 부친의 죽음을 겪고 나서, 그는 런던의 소음, 소문을 떠나 영국 해변 시골 마을에 정착했고 오두막에 살면서 정원을 가꾸었다고 한다. 5년 후 94년에 타계한다. 일요일마다 오는 Brain Pickings 이메일이 전해 준 내용. 


구글 이미지에서 그의 오두막과 정원 이미지들 다수 찾아진다. 




유튜브에 저렴한 시골집 매물을 주로 올리는 채널이 있는데 

어떤 집들은 "오 마음에 든다" 같은 느낌이 바로 들기도 한다. 3천만원 이하 매물이 그렇기도 하다. 

어떻게 100-300평 대지 집들이 2천, 3천만원에 나오냐. 평당 10만원. 혹은 이하. 그럴 수도 있군요. 버지니아 울프가 

남편과 만들었던 몽크스 하우스. 나의 집. 나의 정원을 이 부부 따라해서 만들어 보는 게 아주 큰 돈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이었. 



요 집도 마음에 들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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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슐라르가 이 책 불어판을 위해 쓴 서문이 있다. 

이런 문장들이 나온다. 


"이 책의 모든 페이지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든 그에 빛과 찬란함을 보태는 화가의 시선, 현대 화가의 시선과 만난다. 그의 눈은 전설이 품은 어둠의 가장 깊은 곳을 투시한다. 지난 시대들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시대를 보는 우리 시대의 눈이 여기 있다. 생명의 여명기, 인간이 태어나면 가장 강인한 나무처럼 자라던 시대, 인간이면 바로 초인이기도 했던 시대. 이 시대 사람들을 그가 우리를 위해 발견하고 보여준다. (...) 샤갈의 그림 속에서, 성경은 초상화집이 된다. 이 책에,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했던 한 가족의 초상화가 담겨 있다. 


형식의 창조자이며 천재인 화가에게, 천국의 (Paradise) 일러스트레이션을 하는 작업이란 어떤 특권일 것인가! 그러나, 볼 줄 알며 보는 걸 사랑하는 눈을 가진 이에게, 모두가 천국이다. 샤갈은 세계를 사랑한다. 세계를 볼 줄 알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 더, 세계를 그릴 줄 알기 때문이다. 천국이란 아름다운 색깔들을 갖는 세계다. 새로운 색을 발견한다는 것, 화가에게 이것은 천국의 기쁨이다.  


그 기쁨과 함께 그는 그가 보지 못하는 것을 응시한다. 그는 창조한다. 모든 화가에게 그의 천국이 있다. (....)" 






불어판 표지로는 이런 게 있는 거 같다. 


바슐라르가 쓴 이 서문, 거부감도 들고 잘 이해되지 않는 문장들이었는데 

종교, 기독교에 대한 태도가 조금 바뀌는 것만으로도 갑자기 이해되기 시작하고 

심오하고 진실하다는 ㅎㅎㅎㅎㅎ 감탄이 일기 시작한다. 


아니 이렇게까지 말씀하실 일인가요, 부정직하게? 부정직한 거 아닌가요. 신과 성경과 

천국을 이렇게 말한다는 건. (....) 이런 쪽이었다가 

읽고 생각하고, 침묵할 줄도 알게 되는 쪽으로. 

샤갈의 그림들에 바슐라르가 경탄하며 쓴 논평들이, 전엔 잘 이해되지 않던 말들이 

이제 이해되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종교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게끔 자극한) 

슬로터다이크에게 감사할 일이다. 





종교에 대해 조금이라도 열린 태도가 해방시키는 정신의 면모들도 있는데, 선, 면, 색의 체험도 

그에 속할 것이다.........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위의 책 이미지가 다르게 보인다. 

물론 세속주의가 수행하는 해방도 있을 것인데, 종류가 다르겠으니 

세속주의가 해주는 해방도 추구하고, 종교에 열린 태도가 가능하게 하는 해방도 추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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