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95년에 나온 책. 나오미 쇼어의 마지막 책. 

나오미 쇼어는 1943년생이고 2001년에 58세로 타계했다. 사인은 뇌출혈. 

예고 없던 죽음이었다. 낸시 K. 밀러가 그 갑작스러웠던 죽음 후 있은 변화에 대해 자세히 회고한다. 

그 죽음 전에 두 사람은 이미 긴 세월 절교한 사이였다. 쇼어가 쓴 모든 책을 쇼어의 서명과 함께 쇼어가 주는 

책으로 받았다가 (절교한 다음이라) 이 책은 밀러가 직접 샀다고 한 걸 보면, 적어도(가 아니라, 길면) 7년의 단절. 이 책 전의 책은 93년에 나온 George Sand and Idealism 제목의 책 (관심이 간다! 상드와 관념론.....) 


두 사람의 우정이 겪은 가장 결정적 타격은 

밀러가 쇼어에게 쓴 수많은 편지들을, 쇼어가 이혼하면서 남편을 떠날 때 남편이 마음대로 볼 수 있는 곳에 

두었다는 것. 쇼어의 남편은 그 편지들을 다 읽었고 그 편지들을 이용해 소설을 썼다. 쇼어를 비방하고 그와 함께 

밀러도 저격하는소설. 편지 문장들이 그대로 소설에 인용되었고 그 소설의 진실(이혼 당한 쇼어 남편이 전부인 쇼어를 매도하기 위해 썼고 쇼어 절친 밀러가 쇼어에게 보낸 편지들이 그대로 쓰였음)을 온세상이 알았던 건 아니라도 적어도 밀러-쇼어 주변의 사람들, 불문학 전공자 다수가 알았다. 


나라면 이 때 마음이 완전히 떠났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밀러는, 소설 출간과 함께 격심한 고통이 시작했음에도 오랜 세월 쇼어의 편에 섰다. "어떻게 편지들을 남편이 볼 수 있게 하고 집을 나오니? 어떻게 내가 쓴 편지들을 그렇게 할 수 있니?" 따졌다고 회고하기는 한다. 쇼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위키피디아에서 전남편 이름이 나오긴 하는데 그 이름에 해당하는 항목이 없는 걸 보면 유명한 작가는 아닌듯. 그 소설 궁금해서 찾아지면 구할 생각도 했다...) 


이들이 아직 젊었을 때. 삼십대였을 때. 서로 경쟁하지만 서로 보완하는 사이이기도 했을 때. 

첫책이 나왔을 때 "To Nancy, The Woman in My Life" 이런 헌사를 쓰고 주는 사이였을 때. 그 시절에 대한 회고가 

가볍거나 허위스럽거나 감상적이거나 그렇지 않다. 긴 책이 아니라서 사실 그리 길지 않은 분량에 긴 세월이  

압축되는데, 7-80년대 뉴욕에서 두 사람이 어떻게 살았을지 보이고 잡히듯 생생한 느낌 있다. 


그랬다가 금이 가고 부서진다는 것. 

헤일브런 장에서도 헤일브런과 우정에 대해 양가 감정이 없지 않았다. 그토록 가까웠고 많은 시간을 같이 했음에도 우리는 사실 진짜로 만난 적은 드물었다.... 같은 말 하는 대목도 있다. 이것도 그 사정이 이해가 된다. 그들 관계가 어떤 것이었겠고 밀러의 양가감정, 진짜 만난 적은 드물었음 이런 게 진실일 것임을 알면서 동시에, 두 사람은 중요한 무엇을 지속적으로 같이, 그리고 서로에게, 했다는 것도 알아진다. 이걸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이게 우정이 아니면 무엇이 우정인가? 하게 되기도 한다. 


쇼어와의 관계도 마찬가지. 두 사람은 결별하고 나서 

그러니까 서로 연락없이 지내면서도, 복잡하게 우호적인 관심을 지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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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counterpoint 책 구글 이미지 검색으로 찾을 수 있는, 저자와 저자 어머니 사진. 

1974년 플로리다 해변. 


7월이 왔고 오전에 이 책 포함 여러 책 주문했다. 이런 내밀한 개인사 회고가 이렇게 재미있고 

이렇게 도움을 주고 이렇게 삶을 (저자의 삶만이 아니라 독자의 삶도....) 바꿀 위력과 함께 할 수 있는 거라면........ 

저런 느낌, 생각이 경이감으로 밀려들던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세상엔 얼마나 아직 쓰이지 않은 

그 무수한 걸작들이 있는 것이냐. 모든 인간에게 그가 모르는 걸작이 있는 것이란 말이냐 (....) 느낌. 

그 걸작들이 빛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런 심심한 표지 철학사 책도 주문. 

철학사 책들, 아주 조금 본 게 몇 권 있긴 하다. 러셀의 철학사. 

코플스톤. 그리고 그..... 강유원이 50번 필사했다던가 주황색 "서양철학사". 

이것도 오디오북 듣다가 종이책도 사는 것인데, 철학사 장르의 진화를 보여주는 책 같다. 

적지 않게 개인적인 (어쩌면, 사적인) 접근이면서 동시에 핵심에 충실하다는 인상. 

핵심으로 결코 가지 않는다(못한다), 코플스톤 책에서 받았던 느낌. 칸트라는 나무가 있다면 

계속 잎만 따고 있음? 칸트 핵심이 뭐냐, 보려고 코플스톤 책을 폈다가 물론 그게 단 몇 페이지로 

정리되고 그럴 것은 아니겠지만 .... 이거 어디까지 가야 칸트 철학으로 갈 열쇠 비슷한 것 나오는 건가요. 

나오긴 나오나요? 


천천히 힘들게 몇 장 읽다 덮은 적 있다. 

이 책은 (사실 분량이, 그럴 수 밖에 없는 짧은 분량이기도 하다) 바로 바로, 빨리 빨리 

핵심을 준다. 빠르고 어느 정도 내실도 있는 "개관" 목적으로 이보다 더 좋은 철학사 책이 많지는 않을 거 같다 짐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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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교향곡 4부작의 4부에서 

아론 콥랜드가 중요하게 등장한다. 

영국은 수세기에 걸쳐 "음악이 없는 나라 land without music"라 불리었지만 

미국은 음악이 "아직" 없는 나라... 미국적 음악을 만든 미국 작곡가들은 

20세기에 나오게 되는데 그 중 누구보다 아론 콥랜드. 


말년에 그는 

뉴욕시에서 거리로는 멀지 않지만 

은둔자처럼 살 수 있는 시골에 집을 지었고 

실제로 그 집에서 은둔자처럼 살았다. 모더니즘 양식이 어느 정도 보이는 집이고 

초라한 집은 아니지만 그가 평생 그의 삶에서 보여준 절제, 검박함이 드러나는 집이다. 

(.....) 저런 설명을 하는 사람이 나오는데 조금 찾아보니 그가 살았던 집이 지금은 기념관으로 

쓰이나 보았다. 





아슈케나지와 그의 스위스 집이 

나오는 다큐가 있었는데 아슈케나지의 집은 

............ 아 저기서 그처럼 피아노 칠 수 있으면서 산다면 

매일 초월의 체험이겠. 매일 현세를 떠나 저 너머로. 아니 현세도 이토록 아름다운데. 

그의 집도 넓은 창이 있었고 창밖은 그 그림같은 스위스 산들의 풍경이었다. 


뉴욕주 시골에 지었다는 콥랜드의 집은 

그에 비해 현실적인 집이라 느껴지긴 한다. 





이제는 이런 용도로도 쓰인다는 Copland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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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히터: 이니그마>에서 리히터가 마지막으로 하는 말. 

"I don't like myself." 그리고 그는 고개 숙이면서 양팔로 머리를 감싼다. 


그가 생전에 인정한 바 없는 그의 동성애와 연결하여 

생각할 말이라는 댓글이 있었다. 


리히터에게 평생의 파트너가 있긴 했다. 니나 돌리아크. 

두 사람이 결혼을 실제로 하긴 한 건지, 서류 상 부부였다는 것인지 아닌지 

두 사람 얘기 하면서 이에 대해 명확히 말하는 글은 아직 못 보았고, 사실 두 사람의 관계나 

리히터의 동성애는 아무도 길게 말하고 싶어하지는 않는 주제인 느낌. 


돌리아크는 리히터의 마지막 몇 년 병약해진 리히터를 돌보았고 리히터가 타계하고 몇 달 후 

그녀도 타계했다. <리히터: 이니그마>에 그녀가 적지 않은 분량 출연하는데, 그들의 관계가 

보통 이해되는 사랑의 관계가 아니었다는 걸 그녀 자신 전하고 싶어한다는 느낌 드는 장면 있다. 

그녀는 오페라 가수였고 어느 날 (연습이 끝나고 난 뒤?) 밖에 나와 걷던 그녀를 리히터가 붙잡는다. 

"그는 내가 노래할 때 자기가 피아노를 치고 싶다고 했다." : 이 말을 (이 정도 말하면 알아들어라...) 

식으로 말한다는 느낌. 


남자가 자기 동성애를 숨기면서 하는 위장 결혼. 

이게 아예 처음부터 아니었을 것 같다. 돌리아크는 알고 있었고 

그리고 그를 사랑했다.......... 였던 것일 듯. 검색되는 사진들을 보면 부부처럼 보이는 사진은 거의 없는가 하면 





그런가 하면 이런 사진은? 



아 지금 내게 중요하지 않은 걸 넘어 

의미도 없는 주제. 그들의 동반자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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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히터 연주 들으면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겸손한데 광적인. 번민과 희열이 공존하는. 

투명한. 폭발하면서 소실점으로 사라지는. 


어려서부터 오래 들어왔다면 

감수성이나 지향의 일부가 되었을 거 같기도 하다. 

그는 1915년생이고 1997년에 타계했다. 어려서부터 들어왔다면 

생전의 그를 기억하고 그의 죽음도 기억할, 동시대인이셨던 것임. 



그런데 여성 피아니스트가 드물고 

'거장' 여성 피아니스트는 더욱 드문 이유는 

드레스를 입기 때문 아닌가. 열정 소나타 (24분 정도 길이인) 연주하면서 

바렌보임은 (한 2악장 중간 정도 지나면?) 땀을 비오듯이 흘린다. 건반으로 땀이 줄줄 떨어진다. 

리히터가 쇼팽의 녹턴 중에서 고요하고 부드러운 걸로 유명한 녹턴을 연주할 때 

(특히 힘이 들거라고 상상하기 어려운 곡을 연주할 때) 그의 셔츠가 땀으로 다 젖곤 했다고 한다. 

등과 어깨 가슴이 드러나는 드레스는 많은 양 땀흘리면서 입기엔 곤란한 옷 아닌가. 


작업복 같은 옷 입고 피아노 앞에 앉은 리히터 같은 

그런 여성 피아니스트 이미지도 흔히 볼 수 있는 이미지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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