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트 1 - 보이지 않는 적, 판타스틱 픽션 블루 BLUE 2-1 판타스틱 픽션 블루 Blue 2
스테프니 메이어 지음, 홍성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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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학교에서 개최된 과학의 달 행사에서 그렸던 그림의 주제 중  빠지지 않고 등장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외계인의 지구 침공. '우리가 어른이 되면 그 때는 외계인이 지구를 점령해서 지구인들은 그들의 노예가 되어있을지도 몰라' 라며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그렸던 그림들. 외계인의 그 계획(?)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지만 그들이 저 지구 바깥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 외계인들이 보기에 우리들도 그들에게는 외계인에 지나지 않으므로. 그들도 우리가 이 지구에서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모를 수도 있으므로. 

[트와일라잇] 시리즈로 뱀파이어와 인간의 사랑을 환상적으로 그려낸 스테프니 메이어가 이번에는 외계인과 인간의 사랑을 그려낸 작품으로 찾아왔다. [트와일라잇] 시리즈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던 나로서는 그녀의 새작품 소식을 듣고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외계인'이라는 단어에는 약간 거부감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상상속의 외계인, 매체를 통해 접한 외계인의 모습은 머리가 크고 몸통은 없으며 오징어같은 다리들을 자랑하거나 두 다리로 서 있다고 해도 도저히 인간과 비슷하다고는 할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외계인과 인간이 어떻게 서로를 사랑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외계인은 상상 속의 모습과 전혀 다르다. 이 책은 은색으로 빛나는 작은 몸의 외계인, 그들 사회에서는 방랑자로 불렸던 한 외계인과 그의 호스트에 관한 이야기다. 

생명체의 뇌에 침입해 본래의 영혼을 몰아내고 기생하는 외계 종족 소울에 의해 인간이 점령당한 지구. 소울에 대항하는 인간 반란군들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들은 소울에 비하면 턱없이 약하다. 동생 제이미, 연인 제러드와 함께 소울들을 피해 도망다니던 멜라니는 결국 소울들에게 붙잡히고, 그녀의 뇌에는 오리진 행성에서 태어나 이제 멜라니를 통해 아홉번 째 삶을 시작하려는 '방랑자'가 삽입된다. 본래 소울이 삽입되면 인간의 정신은 잠식당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멜라니의 존재는 사라지지 않고 한 몸에 두 개의 영혼이 존재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머릿속에서 계속 들려오는 멜라니의 목소리와 존재를 무시할 수 없었던 방랑자. 그녀들은 결국 수색자를 피해 헤어진 동생과 연인을 찾아 떠나고 살아남은 인간들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시작되는 그녀들의 사랑. 

소울이 삽입된 인간은 겉모습으로는 판별하기 힘들다. 눈의 색으로 구별할 수 있을 뿐, 인간 호스트에 삽입된 소울들은 그 인간의 기억까지 고스란히 자기 것으로 만들기 때문에 소울들이 연기만 잘 한다면 인간들을 쉽게 속일 수 있다. 소울들의 사회에서는 폭력과 분노, 사랑이라는 감정도 인간들의 기억을 통해 어렴풋이 느낄 뿐이고 살인과 절도가 없기 때문에 화폐가치도 소용없다. 호스트의 생명이 다할 때마다 또 다른 호스트에게 삽입되면 그만이므로 영원히 살아갈 수도 있다. 

그런 소울사회를 등지고 인간들의 삶 속으로 스며든 방랑자.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의 의심과 분노를 사지만 곧 '완다'라는 이름으로 그들과 함께 하게 된다. '완다'라는 외계인과 '멜라니'라는 인간이 한 몸에 같이 살아가게 되는 설정은 혼란스러우면서도 흥미롭다. 멜라니는 완다를 조종할 수 없다. 완다가 이성을 잃었을 때는 본래의 멜라니가 가끔 튀어나오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주체는 완다이다. 완다가 만약 멜라니의 목소리를 처음부터 무시하고 강한 의지력으로 그녀를 제압했다면 멜라니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무리 멜라니의 존재가 강했다고 해도 완다가 그녀에게 느끼는 연민이 없었다면 완다는 온전히 그녀를 소유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몸 안에 들어온 완다를 멜라니가 처음부터 받아들였던 것은 아니었다. 기억 속에 자리잡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보금자리를 보여주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그들의 아지트를 공개할 바에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고 결심했었다. 완다에게 적대적이었던 멜라니였지만 완다가 자신을 통해 제이미와 제러드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는 이제 그녀들은 서로를 이해하는 단 하나의 동지가 된다. 갈등과 슬픔을 극복하고 하나의 몸 안에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게 되는 그녀들의 이야기는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또한 멜라니가 사랑하는 제러드와 멜라니의 몸 속에 들어있는 완다를 사랑하는 이안이 등장, 그들의 관계는 가슴 두근거리는 사각관계를 연출하는데 '사랑'이라는 감정이 등장하면서 등장인물 뿐만 아니라 책을 읽는 나도 무척 혼란스러웠다. 멜라니의 모습을 하고 있는 완다를 제러드는 어떻게 멜라니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었을까. 은빛으로 빛나는 외계 생물체인 완다를 이안은 어떻게 사랑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소울들의 사회에서는 강하게 느낄 수 없는, 오직 인간적인 '사랑'이라는 감정으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비록 소울들에 의해 점령당했지만 인간들은 희망을 잃지 않는다. 희망을 잃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소울들과의 공존을 생각한다. 그 어느 쪽도 다치지 않고 희망적인 미래를 암시하는 결말 부분이 특히 좋았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외계인의 지구 점령,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인간들의 생존본능과 사랑, 그리고 외계인과 인간들의 조화까지 생각한 이 작품은 [트와일라잇] 시리즈처럼 커다란 돌풍을 몰고 올 것이라 확신한다. 표지에서 눈을 반짝이며 나를 쳐다보고 있는 완다(로 추정되는 인물) 에게 나는 이미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한 번쯤은 밤하늘을 올려다보게 되는, 환상적이고 감동적인 아주 재미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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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터 -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선물
글렌 벡 지음, 김지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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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고마워요. 멋대로 굴었던 거 죄송해요.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이에요. 그리고 크리스마스 선물로 스웨터를 주신 거, 제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르실 거예요. -p244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추어 출간된 이 책을 공교롭게도 해를 넘긴 후에야 읽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산타할아버지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보다는 그저 흥겨운 분위기를 즐겼던 탓에 '크리스마스 마법' 같은 이야기를 잘 믿지 않는 탓인지도 모르겠다. 눈꽃으로 가득한 테두리 안에 자리잡고 있는 따뜻한 스웨터. 그 스웨터를 보니 어렸을 때 엄마가 만들어주신 내 스웨터들도 어렴풋이 생각이 난다. 완성된 스웨터를 나에게 입혀주시며 뿌듯함으로 반짝반짝 빛나던 엄마의 눈도. 크리스마스는 이미 지나버렸지만 이 책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줄 스웨터같은 작품이다. 

빵가게를 운영하던 아빠를 병으로 잃은 열 두살 소년 에디. 아빠가 돌아가신 후 살림이 어려워지자 열심히 일하는 엄마와 둘이 살고 있는 에디의 소원은 이번 크리스마스에 '검은색 바나나 모양 안장이 달린 빨간색 허피 자전거'를 선물로 받는 것이다. 자전거를 받기 위해 착한 아이가 되려고 노력하고 하느님께 기도도 많이 했지만 크리스마스에 에디를 반긴 선물은 자전거가 아닌 엄마가 만들어준 스웨터. 마음 속에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에디의 가슴 속은 자전거를 선물로 받지 못했다는 서운함과 심통으로 가득하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할아버지댁을 방문해서 하룻밤 묵고 올 계획이었지만 에디의 고집으로 집으로 돌아가던 길, 뜻밖의 사고로 에디는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고 만다. 그리고 찾아온 에디의 고통과 방황, 그리고 성장의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감동적으로 그려져있다. 

크리스마스에 읽었다면 더 가슴 깊이 다가왔을 소설이지만 이 책은 일년 중 아무때나 읽어도 좋을 책이다. 에디의 성장소설이면서도 우리가 잊고 지낸 소중한 것을 일깨워주는 작품. 소중한 것이 곁에 있음데도 우리는 종종 그것을 잊고 산다. 그리고 우리가 갖지 못한 것만 바라며 그것만 손에 들어오면 세상이 달라질 것이라 믿기도 한다. 하지만 에디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서야 자신이 가장 아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그런 대가를 치르지 않고 이 책을 통해 우리 삶을 다시 돌아볼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에디의 슬픔과 방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고집불통 소년의 모습은 가끔 나를 화나게 했다. 그런 에디를 포근하고 따뜻하게 감싸주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우연히 만난 러셀 할아버지다. 그들이 에디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삶이 힘들고 외로울 때 언제나 우리를 지탱해줄 수 있을 것처럼 아름답고 희망차다. 결국 그들의 사랑과 끈기로 고통 속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에디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될 것이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화이트 크리스마스조차도 기적이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던 나에게도 이 책의 결말은 가슴을 울컥하게 만든다. 누구에게나 에디같은 행운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주위를 한 번 잘 둘러보자. 우리가 가장 소중한 것을 아무렇게나 방치해 두지는 않았는지. 만약 그랬다면 구겨진 스웨터를 잘 정리하는 것처럼 방치된 그것도 탁탁 털어 바르게 걸어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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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 - 제138회 나오키 상 수상작
사쿠라바 가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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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책장까지 쉼없이 달려왔는데 끝이 난 지금 가슴이 답답하다. 대체 이 책이 말하려 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이리저리 책장을 뒤적여봐도 작가후기, 역자후기는 찾아볼 수가 없다. 내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과연 이해하기는 해야하나 등 복잡한 감정들이 가슴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가운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이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게 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이 사람 없이는 내가 살아갈 수 없겠다, 헤어진다면 나는 그저 목숨을 이어가는 것일 뿐 진정으로 살아있는 것은 아니라고 느끼게 만드는 사람. 내 사람은. 

이 책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해서는 안 될 가장 처절하고 슬픈 사랑', 맞다. '아름답지만 위험하고 달콤하지만 죄의 향기가 나는 소설', 그것도 맞는 말이다. 제138회 나오키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과 출간 당시부터 화제가 되었던 표지로 그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내용은 생각보다 훨씬 충격적이다. 준고와 하나의 그 사랑이, 어렵지만 두 사람이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어쩌면 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던 사랑이 양아버지와 양녀의 관계가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피로 맺어진 인연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독특한 구성. 결혼을 앞둔 하나와 요시로, 그리고 하나의 아버지 준고. 이야기는  준고가 사라짐과 동시에 과거의 시간 속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지진으로 가족을 모두 잃은 하나 앞에 준고가 나타난다. 친척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은 마주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 사이를 메우는 것은 '피'라는 질긴 인연이다. 각 장은 각각 하나와 준고, 요시로, 한때 준고의 연인이었던 고마치의 시점이 번갈아가며 진행되지만 그들 각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니, 그들의 이야기이면서 하나와 준고의 이야기다. 다른 사람의 시점으로 바라본 하나와 준고의 관계, 그리고 그들 자신들의 눈으로 본 그들의 사랑이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작품의 키워드는 '피'다. 피로 맺어진 '가족' 안에서 느낄 수 있는 정이 하나와 준고에게는 결여되어 있다. 준고는 어릴 때 아버지를 바다에서 잃었고, 아버지의 부재는 어머니와의 관계도 원활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자상했던 어머니는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사라졌고 여자 혼자 몸으로 아이를 키우려는 어머니의 각오가 준고의 마음속에 응어리를 만들었다고 봐야겠다. 하나 또한 온전한 가정과 거리가 멀다. 지진으로 가족을 잃기 전부터 가족 안에서 느꼈던 괴리감. 자신은 이들과는 다른 사람이다, 이 안에 속할 수 없다는 감정이 마음 속에서 점점 커졌고 준고와의 만남을 통해 충족된 소속감 혹은 사랑이 그와의 관계에 맹목적으로 매달리게 만들었다고 생각된다. 

결국 가족의 사랑을 온전히 느낄 수 없었던 준고와 하나는 '피'에 매달리게 되었고 준고가 하나를 '엄마'라고 부르게 된 배경에는 그런 '피의 충족' 의 결여가 원인이지 않았을까. 작품 안에는 준고가 하나에게 '피의 인형'이라고 부르는 부분이 있다. 처음에는 그 단어가 그들의 저주받은 관계를 지칭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말 그대로 받아들여도 될 것 같다. 고통스러울 때 위안을 주는 포근한 하나 인형. 피로 맺어진 준고만의 인형.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사랑이지만 내 마음 속 어딘가에서는 도저히 그들의 사랑을 거부할 수 없다는 기분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자꾸만 빨려들어가게 되는 치명적인 사랑. 누구도 행복하게 할 수 없을 사랑의 죄악. 단순히 선과 악, 옳고 그름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혼란스러운 사랑이 살인사건들과 연관되어 더욱 지독하게 불타오른다. 읽은 뒷맛이 개운하지는 않지만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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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도시를 디자인하다 1
정재영 지음 / 풀빛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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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조금'이라고 대답하겠다. 내가 알고 있는 철학 지식은 철학이기는 하지만 교육철학에 관계된 것이다. 서양철학과 동양철학, 공자와 맹자,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 그 외 많은 철학자들이 자신의 철학을 교육에 어떻게 적용했는가에 관한 지식이기는 하지만 대부분 그들 철학의 토대를 이루는 내용임에는 다름 없다. 어려웠던 것은 그들이 사용한 자신들만의 철학용어와 개념이었는데 그런 용어적 장벽이 철학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하지만 아무리 어려운 분야라고 해도 철학은 재미있는 학문이기도 하다. 허망한 것을 좇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과 깊이 관련된 학문,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행하는 사고의 정립과정이 바로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 또한 '생각하는 힘으로서의 철학' '생각하는 과정으로서의 철학'이 철학의 본질에 가깝다고 보고 있는데 그러한 철학을 '동사로서의 철학'이라 명명한다. 

이 책의 구조적 특성을 잠깐 설명하고 넘어야겠다. 거의 모든 철학책이 고대에서 근대의 방향으로 변화한 철학 이야기를 다룬다면 이 책은 근대에서 중세, 고대로 넘어가는 독특한 구조를 지녔다. 또한 철학사상과 철학자에 알맞는 12곳의 도시를 선정하여 말 그대로 철학이 도시를 디자인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서를 즐겨읽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이 책은 철학에 보다 쉽게 다가가게 했다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 단 여행서로서 차지하는 비중이 많이 적다. 

만약 이 책이 단순히 철학자와 그들의 사상을 논한 책이었다면 나는 아마 이 두 권의 책을 끝까지 읽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들이 쉬웠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근대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비엔나 편에서 다룬 논리실증주의, 실재와 표상에 관한 이야기, 프랑스에서 태어났으나 네덜란드로 피신한 근세 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 그리고 칸트와 헤겔의 이야기들은 한 번 읽어서 모두 이해하기에는 내 앎의 깊이가 너무 얕다. 저자 나름대로는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했지만 구체적인 사물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관념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읽으면서 몇 번이나 되새김을 해보곤 했다.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부분은 2권의 맨 마지막 장 '고대로 가는 길-로마' 편과 1권의 '철학의 새 천년, 1968년에 시작되다-파리' 편이었다. 고대 철학 부분은 교육철학을 공부하면서도 가장 재미있게 공부한 부분이라 다시 보는 즐거움이 있었고,  파리에서 일어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난 68운동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운동의 시초가 된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두 도시에서 다뤄진 철학 이야기 모두 큰 어려움 없이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도 한몫한다. 

철학과 관련해서 이렇게 재미있고 신나게 책을 읽은 적은 처음인 것 같다. 물론 내용을 모두 이해했는가와는 별개의 이야기다. 내가 가보고 싶어하는 도시들, 그 도시들에 여전히 살아숨쉬는 철학자들과 그들의 사상들. 저자는 '지금', '여기', 그리고 '우리의 눈'을 강조하고 있다. 그의 의견에 동의하기도 하지만 철학이 살아숨쉬는 도시들을 통해 조금이나마 '예전' '거기' 그리고 '그들의 눈'으로 철학을 바라볼 수 있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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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네이크 스톤 - 비잔티움 제국의 마지막 보물
제이슨 굿윈 지음, 박종윤 옮김 / 비채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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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굿윈의 [환관 탐정 미스터 야심] 은 제목만 들었지 읽어본 적은 없다. '환관'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어쩐지 가벼운 이미지와 표지에 그려져 있는 야심의 모습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자는 책을 읽는 데 표지가 무슨 상관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책의 표지는 나에게만큼은 큰 영향을 미친다. 아무리 재미있는 책이라도 표지가 이상하면 속이 상하고, 재미없는 책이었더라도 표지가 멋지다면 어떻게든 움켜쥐고 있고 싶기 때문이다. '책은 사람에게 읽혀져야 진정한 제 기능을 하는거야'라고 말하는, 정말로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말을 들으면 기가 차겠지만 어쨌든 나는 그렇다, 흠흠.

[환관 탐정 미스터 야심]  표지에서 느껴지는 야심은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무척이나 잘난 척을 할 것 같은 사람이다. 왕에게 충성을 다하면서 소리없이, 때로는 촐싹거리면서 사건 속을 종횡무진 헤집고 다니는 야심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는데 [스네이크 스톤] 에 나타난 그는 예상 외로 진중하다. 마치 물같은 느낌이랄까. 흐르는대로 언제 어디서나 변하지 않는 정적인 느낌. 그에 대한 내 편견이 순식간에 깨지면서 이슬람의 신비로운 문화가 나를 책 속으로 이끈다. 

배경은 술탄 마흐무트 2세가 죽음을 앞둔 19세기 중반의 이스탄불. 야심의 친구 조지가 습격을 당해 큰 부상을 입는다. 그리고 잇달아 벌어지는 살인사건들. 책방을 운영하는 상인이 살해되고 야심의 친구 팔레브스키와 함께 그를 방문한 프랑스인 르페브르 또한 이유를 알 수 없는 죽음을 당한다. 르페브르가 야심에게 도움을 청하러 온 그 때 르페브르는 야심의 방에 한 권의 책을 숨겨놓고, 훗날 그 책을 발견한 야심은 '헤티라'라는 단어를 단서로 범인들을 뒤쫓기 시작한다. 술탄에게만 전해내려오는 전설과 책이 간직한 비밀,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가운데 19세기 이스탄불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예전에는 미스터리 팩션을 참 좋아했지만 요즘은 어쩐지 잘 읽지 않게 된다. 별다를 것 없는 소재와 그리 크게 차이나지 않는 이야기들은 나를 질리게 했고 점차 팩션들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 만약 이 책이 또 성서 다시 구성하기 등의 이야기였다면 나는 절대 이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나를 끌어당긴 이 책의 매력은 19세기 이스탄불의 서민적인 모습이었다. 굉장히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을텐데도 야심이 등장하면 금새 조용해지는 듯한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다. 새롭게 알게 된 이스탄불의 역사와 문화, 그리스 비밀결사대 등의 이야기도 처음 접해보기 때문인지 흥미로웠다. 

하지만 추리소설이 흔히 갖추고 있기 마련인 숨가쁜 추격전이나 스릴은 조금 부족하다. 그런 분위기에 익숙해져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을 읽고 약간 실망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주인공 야심을 이해한다면 그런 분위기도 곧 적응이 된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환관이지만 내가 가진 환관 이미지와는 영 다른 남자. 오히려 정적이고 차분한 그의 모습은 추리소설에서 보기 어려운 모습이지만 그것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면 이상하게 들릴까. [환관 탐정 미스터 야심] 에서의 야심도 한결같은 모습일지 궁금하다. 

2007년 세계 최고의 추리문학상을 수상했다는 [환관 탐정 미스터 야심], 그리고 이 책 [스네이크 스톤]. 이스탄불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야심의 사건 수사 모습이 궁금하다면 읽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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